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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더큰 배꼽이 된 장가계 여행.
이제까지 한자로 中京인줄 착각하고 있었는데 重庆(Chongqing)이어서 깜짝 놀랐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어서 두번째 놀랐다. 2019.08.06 08:35 인천에서 3시간여후 면적과 인구에서 세계 최대도시인 충칭에 도착하여 비행장 근처에서 3,000원 짜리 뷔페식 점심을 먹고 장가계로 가는 중국 국내선 16:00 출발이 태풍때문인지 17:25으로 변경되더니 비행기에 탑승하고도 1시간여를 대기하다가 장가계에 19:00경 겨우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8명은 호선쇼를 보러 가고 2명은 일찍 대성산수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 먹고 옵션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난상토론 끝에 천문산 유리잔도/귀곡잔도/천문사, 양가계, 황석채, 유리다리/대협곡 4개에 220달러로 정했다. 이튿날 천문산으로 가려고 8인승 케이블카에 중국인 6명과 같이 타고 올라가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바깥 경치도 제대로 보지못할 지경이었다. 천문산 정상인 운몽산장에서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 계단을 걸어 내려와 서쪽의 유리잔도와 귀곡잔도를 돌아 안개속의 천문사를 구경하고 리프트를 타고 다시 꼭대기인 운몽산장으로 올라가서 내렸다. 동쪽으로 제법 걸어 내려가서 자동 에스컬레이터를 7개를 바꿔타고 내려가 안개속의 천문동을 구경했다. 다시 에스컬레이터 5개를 바꿔타고 내려가 광장으로 나와서 안개가 걷히고 비가 내리는 천문동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오후에 배낭에 텀블러 보온병을 넣은 줄도 모르고 유리다리를 가기위해 검색대에 넣었다가 걸려서 버스에 다시 갖다 놓을 수도 없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출발했다. 바닥이 보이는 유리다리 위에서 사진 몇장 찍고 대협곡 바닥으로 가려고 잔도를 계단으로 내려가다 수평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탔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다. 대협곡 바닥에서 좁은 협곡을 따라 1시간 30분 이상 걸어가서 유람선을 타고 나왔다. 셋째날 천자산 국립공원 정문에서 버스로 십리화랑으로 이동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서 세자매봉을 보고 다시 모노레일로 타고 원위치로 돌아와 버스를 5분정도 타고 가서 원가계로 가는 백룡 엘리베이터 탑승하여 산위에서 아바타에 나오는 경치들을 대충 구경했다. 연이어 버스로 양가계 정상으로 이동하여 원숭이도 보고 케이블카로 골짜기 아래로 내려오는데 경치가 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황석채로 이동하여 케이블카로 올라가 황석공이 제를 올린 제단과 손오공의 오봉을 구경하였다. 넷째날 장가계 마지막날 보봉호 유람선을 타고 가는데 토가족 남자와 여자가 강가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가이드가 평균 수심이 72m인데 한국해병대 출신이 확인하러 잠수했다가 아직 안 나왔다는 둥 저팔계 반얼굴 바위와 아가씨 얼굴이 있는 촛대바위를 설명해도 왠지 웃기지가 않았다. 오전 보봉호 가기전에 라텍스와 한약, 오후에 진주, 연변 농협까지 쇼핑만 4군데 들러 짜증이 났고 충칭행 비행기가 두시간 이상 지연되어 19:45에 장가계에서 충칭으로 비행기로 이동하였다. 어제 게르마늄과 토르말린/죽탄까지 사흘에 6개를 끌려다니다 보니 관광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생각에 한국에 관광오는 중국인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충칭에서 저녁 10시에 먹는 훠궈는 사공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채소와 고기를 넣는 바람에 맵고 맛도 없는 탕이 되어버렸다. 밤 11시 30분에 양쯔강과 기륭강이 만나는 양강에 있는 번화가인 홍애동에 갔더니 사람들이 많이들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일 12:30분 비항기로 귀국할 예정이지만 이번 여행은 기본관광이 부실하고 옵션이 더 커져버린 느낌이어서인지 설명도 잘 못하는 조선족 가이드의 자질도 미달수준이었다.
조선족 출신 주일대사와 연변 지도자 주덕해
이미지는 연변대 총장을 지낸 주덕해. 역대 최장수인 9년 2개월(2010년 2월 취임)의 임기를 마친 청융화(程永華) 주일 중국대사 후임으로 쿵쉬안유(孔鉉佑,59)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부임한다. # 9년 2개월 최장수 중국 주일대사 전임 청융화 대사의 9년 재임은 중일 관계가 그만큼 공고하다는 걸 의미한다. 7일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환송연에는 이례적으로 아베 신조 총리,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등 정재계의 인사 10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융화 대사는 이날 유창한 일본어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려고 했다”며 중일관계의 중심에 섰던 자신의 노력을 피력했다. ᐅ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일 관계 ᐅ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교체되는 한국대사 자리와는 사뭇 대조적인 장면이다. #조선족 출신 후임대사 쿵쉬안유 특이한 건, 청융화 후임 대사인 쿵쉬안유 부부장이 중국 흑룡강(黑龍江)성에서 태어난 조선족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1976년 고등학교 졸업 후 흑룡강성 삼림조사설계국의 노동자가 되었다. 1979년 상하이국제대학 일본어과에 입학, 1983년에는 외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1985년 6년간의 학업을 마친 쿵쉬안유는 오사카 중국총영사관으로 발령. 처음으로 해외 근무에 나섰다. 본격적인 외교관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후 ᐅ도쿄 중국대사관 공사(2005~2011) ᐅ베트남 주재 대사(2011~2014) ᐅ외교부 아시아 국장(2014~2015) ᐅ외교부 차관(2017) ᐅ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특별사무대표 겸 외교부 부부장(현재)의 경력을 거쳤다.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판은 지난 달 4일 “쿵쉬안유가 15년 간 일본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보도했다. ‘일본통’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쿵쉬안유는 2018년 1월에는 제13차 중국인민정치협의회 전국위원회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의 루안 종 쩌(Ruan zong ze) 부회장은 쿵쉬안유에 대해 “오랫동안 아시아 문제를 다루어 왔기 때문에 관련 문제에 정통하다”고 평가했다.(중국 CCTV) # 중국 당서기가 존경한 '연변 지도자' 주덕해 중국 조선족 출신 정치인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주덕해(朱德海: 1911~1972)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연변 조선자치주 초대 주석과 연변대학교 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연변대학교 뒷산에는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1984년 호요방(胡耀邦: 후야오방)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글을 쓰고 제작을 지시했다는 점에서 주덕해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본명이 오기섭인 주덕해의 원적(본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다. 항일운동, 중국 공산당 가입, 러시아(소련) 유학을 거쳐 일제 패망 후 조선의용군 3지대 정치위원을 맡아 흑룡강성 일대에서 활약했다. 중국공산당 연변 지부 서기로 발령받은 것이 1949년의 일이다. 조선족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1949년 3월 20일 ‘동북조선민족인민대학’을 열었다. 현재의 연변대학교다. 연변대 개교년인 1949년은 중국 역사에서 의미가 큰 날이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날짜인 1949년 10월 1일을 건국일로 삼고 있다. 중국 정부는 주덕해의 요청에 따라 1952년 연변 조선족 민족자치구 설립을 비준했다. 흑룡강성과 같은 행정단위인 성(省)과 동급인 자치구의 탄생은 주덕해의 공로라는 것이 중국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 주덕해는 문화대혁명 당시 ‘지방민족주의 분자’라는 죄명으로 박해를 받다가 1972년 세상을 떠났다.(‘중국의 숨은 보석 연변’, 도서출판 직지, 조현국 추이헝룽 공저 참고) #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뿌리’ 다시 쿵쉬안유 일본대사 이야기. 중국 외교부의 자료에는 쿵쉬안유의 외교 경력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조선족이라는 것 외에는 ‘뿌리’에 대한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검색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재팬올은 쿵쉬안유의 조선족 관련 사항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한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인(한족)에게 문의했다. 좀 더 전문적인 검색이 가능하지 않을까해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였다. 이 중국인은 “인터넷에서 중국 관련 자료를 다 뒤져봤지만 조선족이라는 사실 이외에 나온 게 없다”며 “그의 아버지나 가족 이야기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선족 뿌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중국 공무원의 특성쯤으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뿌리를 찾을 수는 없지만 조선족 출신의 중국 외교관이 주일대사를 맡게 됐다는 것은 한중일 외교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설 연휴, 운전에 도움이 되는 4가지 정보
민족 최대 명절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속버스나 KTX 대신 자차로 고향 가시는 분들 많으시죠? 귀성길 도로는 평소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사고도 많아 운전하기 쉽지만은 않은데요. 이런 귀성길 운전에 도움이 되는 정보 4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올해 설 연휴에도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 올해 설 명절 연휴 기간에도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됩니다. 통행료 면제기간은 설 연휴 3일 (2월4일(월) 0시 ~ 6일(수) 자정까지)입니다. 통행료 면제 시간 내에는 잠깐이라도 이용하면 면제 대상이 됩니다. 하이패스 장착 유무 상관없이 평소처럼 이용하시면 되고, 따로 요금이 청구되지 않습니다. 하이패스를 이용하신다면 반드시 단말기를 켜주시고, 일반 차로를 이용하신다면 통행권을 뽑고 출구에서 꼭 제출해주셔야 합니다. (부산시 5개 유료 도로는 설 연휴기간, 지난해 무료에서 유료로 변경됨, 거가대로와 광안대교는 그대로 무료) 공영 주차장, 지자체, 공공기관 주차장 무료 개방 설 연휴 기간 동안 지자체와 학교 등 공공기관 주차장 및 공영 주차장이 무료로 개방됩니다. 무료로 개방되는 주차장은 총 1만 6000여 개로 지난해 추석보다 15% 증가했습니다. 목적지 근처에 공공기관 건물이나 학교가 있다면 미리 검색해보시고 이용하시면 편리하겠네요! 혹시 모를 고장/사고를 위한 긴급출동 번호 저장! 설 연휴에 장시간 운전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요. 이 경우 보험에서 제공되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단, 보험사마다 무료로 제공되는 횟수가 정해져 있고, 상황에 따라 견인시간, 거리가 늘어나면 추가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10km 이내 무료) 미리 계약 내용의 서비스 정보를 확인해보세요. 고속도로에서 차에 문제가 생겨 정차할 경우 긴급견인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고 발생 위치부터 인근 휴게소, 영업소, 졸음쉼터까지 견인해주는 서비스로 외부 정비소까지는 별도 견인 서비스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전국 고속도로와 10개 민자 고속도로에서 모두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급할 경우 다른 견인 서비스보다 빠르게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현대해상 긴급출동 1588-5656 · 삼성화재 긴급출동 1588-5114 · KB손해보험 긴급출동 1544-0114 · DB손해보험 긴급출동 1588-0100 · 흥국화재 긴급출동 1688-1688 · 한화손해보험 긴급출동 1566-8000 · 롯데손해보험 긴급출동 1588-3344 · 메리츠화재 긴급출동 1566-5000 · 한국도로공사 콜센터 1588-2504 (각 민자고속도로 마다 긴급출동 번호가 다릅니다) 장거리 운전 전 필수 차량 점검 항목 귀성길은 평상시와 다르게 장거리, 장시간 주행을 하실 텐데요. 자동차도 평상시와 다른 주행 상황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장거리 주행 전 기본적인 점검 항목은 직접 점검해보세요. 미리 가까운 정비소를 방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_______________ 이번 귀성길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정체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을 티맵은 '2월 2 ~ 4일, 오전 7시 이전', 카카오네비는 '2월 4일, 오후 7시반 ~ 9시'로 예측했습니다. 귀성길 계획에 참고 하시고 위에 알려드린 4가지 정보도 운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풍요롭고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_______________ 운전자 필수앱! 마카롱 아직 마카롱 모르세요? 주유할 때 기록만 하면 마카롱이 내 차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챙겨줍니다!
설(창작 단편)
한 노인이 툇마루에 앉아 털신에 발을 집어넣는다. 오래되어 겉이 반질반질하다.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두 발을 신에 집어넣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에 선 노인은 무릎이 시린지 손을 무릎에 대고는 가만히 서 있다. 입에서는 오메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에 한 손을 대고 걸음을 옮긴다. 산책을 나가는 건가 싶어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던 마당의 하얀 똥개 한 마리가 결국 웡웡 짖어 대기 시작한다. 노인이 다가가니 똥개가 배를 드러내고 드러눕는다. 노인이 헥헥대며 꼬리를 흔드는 개의 배를 긁는다. “복실아. 오늘은 이 할미가 무릎이 아픈께 산책은 나중에 가자잉.” 노인이 손을 떼고 일어나 대문으로 향한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복실이는 짖는 걸 멈추고 조용히 낑낑댄다. 노인이 나가고 파란 철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닫힌다. 철문을 나선 노인이 논두렁을 따라 걷는다. 중간중간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쉬어가며 2~30분쯤 걸었을까, 저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 노인은 아이고 소리를 내며 파란색 페인트가 다 벗겨진 의자에 앉는다. 추운 날씨에 노인의 귀가 빨갛다. 의자에 앉아서도 노인은 연신 무릎을 두드린다. 한참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추위를 견디던 노인의 귀에 버스 엔진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목도리를 고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목 같은 손을 흔든다. 버스가 노인의 앞에 멈추고 문을 열자 노인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노인이 올라서기 무섭게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가 시장 앞에 서고 문이 열리자 노인이 천천히 내려선다.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버스를 뒤로 하고 노인은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근처에 생긴 마트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노인이 한 옷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뽀글거리는 파마를 한 아줌마가 노인을 맞는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떤 거 사러 오셨어?” 노인이 가게를 휘휘 둘러보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쩌그 있네. 내복 사러 왔는디 요즘 애기들은 어떤 걸 좋아한당가?” “애기가 몇살인디?” 아줌마의 말에 노인의 얼굴에 주름진 미소가 번진다. “손주가 7살이고 손녀가 5살이여. 지 애비랑 애미 똑 닮아가지고 을매나 잘생기고 이쁜디. 게다가 우리 변호사 아들 내미 머리를 물려받아갖고 머리들이 비상혀.” “오메, 아들이 변호사여? 부러워 죽겄네. 우리 아들은 스물 여덟이나 먹었는디 아직도 백수여, 백수.” 한숨을 내쉬며 내복들을 뒤적거리던 아줌마의 손에 파란색과 분홍색 내복이 들려 올라온다. “요즘 애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그려진 내복이여. 5살, 7살이면 이게 좋을 것 같은디?” “박스 열어봐도 된당가?”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박스를 열고 꼼꼼하게 내복을 살핀다. 바느질이 성긴지, 천은 좋은 걸 썼는지, 색은 빠지지 않을지. 한참 내복을 만지작거리던 노인이 박스를 닫고 건넨다. “이걸로 줘. 얼마여?” 아줌마가 능숙하게 박스를 포장한다. “원래 이만원씩인디 그냥 두 개에 삼만 오천원만 줘요. 포장도 해줄게.” 노인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만원 짜리 세 장을 꺼낸다. “삼만원 밖에 없는디 좀만 깎아줘. 다음에 또 팔아줄텐께.” “아이고, 안돼요 어머니. 삼만 오천원도 엄청 깎은 거에요. 남는 것도 없어.” 한참을 실랑이하더니 결국 삼만 이천원에 합의를 본다. 꼬깃꼬깃 접혀 있는 천원 짜리 두 장을 주머니에서 꺼낸 노인이 삼만원과 합쳐 지폐 다섯장을 건넨다. “어머니 다음에 꼭 오셔서 더 팔아줘야 돼요. 진짜 내가 손해 보면서 드린거야.” 노인이 내복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들며 말한다. “걱정하덜 말어. 이번 설에 아들 내미랑 손주들 오면 꼭 데리고 올텐께.” 노인이 두 손에 묵직한 비닐을 든 채 파란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엎드려 있던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노인의 뒤를 따른다. 툇마루에 비닐 봉지 두 개를 올려놓은 노인이 오메오메 소리를 내며 허리와 무릎을 연신 두드린다. 얼핏 보이는 비닐 봉지 안에는 곶감과 과자, 내복 등 여러 가지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 허리와 무릎에서 손을 뗀 노인이 비닐 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주방으로 들어간 노인은 과일과 과자, 곶감들을 냉장고와 찬장에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빈 비닐 봉지를 주방 한 구석 비닐 봉지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 안에 구겨 넣는다. 정리를 끝낸 노인의 귓가에 따르릉 거리는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내복 두 개를 들고 안방으로 향한다. 노인은 들고 온 내복 두 개를 펴져 있는 이부자리 위에 조심히 올려 놓고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노인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오메, 둘째냐. 잘 있냐잉?” 수화기 너머로 “잘 지내시죠 어머니”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다.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래 잘 있제. 너가 이번 설에 손주들이랑 며느리랑 내려온다고 해서 니 좋아하는 곶감이랑 애기들 선물도 다 사놨다. 니 형은 이번에 일이 바빠서 못 오고. 근디 언제쯤 내려오냐? 미리 방도 좀 뎁혀 놓고 해야된께.” 수화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꽤 길게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이 대뜸 말한다. “괜찮은께 걱정 말어. 못 올수도 있제. 변호사가 오죽 바쁘겄냐. 다음에 보면 된께 엄마 걱정은 하덜 말고 일 열심히 혀. 니가 잘되는 것이 엄마한테 효도하는 것이여.” 노인이 입을 다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연다. “그려. 일 잘하고 항시 몸 건강하고. 다음에 시간 되면 내려오그라잉.” 노인의 얼굴에 피어났던 꽃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시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노인은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 위에 있는 내복 두 개를 집어 든다. 자개로 된 옷장 문을 열자 한 구석에 무언가 쌓여있다. 어린이들이 입을 법한, 캐릭터들이 그려진 내복 박스 여러 개가 먼지가 쌓인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위에 쌓인 먼지를 슥슥 쓸어내고 그 위에 새로 산 내복 두 개를 올려놓는다. 노인은 옷장 문을 잡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내복들을 바라본다. 늙은 고목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쌓인 내복들을 응시하던 노인이 천천히 옷장 문을 닫는다. 노인이 툇마루에 나와 앉는다. 앉아 있는 노인의 옆으로 복실이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풀쩍 뛰어올라 노인에게 몸을 기대고 눕는다. 노인은 마디가 불거진 마른 손을 들어 복실이의 하얀 털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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