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MbS 왕세자님은 일이 이렇게 커지리라 예상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까쇼끄지 사건은 안 그래도 복잡한 그동네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됐으며, 미국도 더이상 실드를 쳐주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기에 앞서서, 사실 자말 까쇼끄지가 이런 인물인지는 그의 사망 이후에나 알았다.
마침 메디아파르트에서 그의 인생을 정리한 기사가 나왔다. 어떤 인물인지 알아 봅시다. 1953년 메디나에서 태어난 그의 가문은 확실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 가문 중 하나였다. 할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의 주치의였으며, 제일 유명한 이는 아드난 까쇼끄지, 무기상이다. 유명한 이는 또 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사귀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사람 기억하시나? 도디 알-파이드가 자말 까쇼끄지의 사촌이었다.
여느 사우디 유력 가문의 자제들처럼 미국 유학을 마친 그는 도서관 사서(?!)가 됐다가 언론에 투신하기로 한다. 그래서 중동 지방과 수단,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하러 돌아다녔는데, 이 엄한 짤방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이때 그는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난다.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은 소련에 대해 투쟁 중이어서 그랬는지 그는 빈 라덴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아무래도 저항하는 자들 편에 서기 시작한 계기가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가령 1992년 알제리 대선에서 결과를 뒤집고 친위 쿠데타가 났을 때에도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쫓겨나다시피 하여 주영 사우디 대사관으로 건너가고, 9.11이 터진다. 이때는 그도 빈라덴을 격하게 비난한다. 하필이면 9.11을 일으킨 테러범 15명 중 11명이 사우디 인들이었을까? 혹시 와하비즘(참조 1)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당연히 사우디 왕실의 미움을 사는 카쇼끄지였다.
반대로 거침 없이 사우디를 비판하는 일종의 내부자(!)로서 까쇼끄지는 서구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가 일종의 사우디아라비아 “전문가”가 된 것이다. 심지어 그도 같은 저널리스트. 결국 2017년 초, 사우디아라비아는 그의 모든 공개 활동을 금지한다. 그래서 그는 2017년부터 스스로를 유배당한 셈 치고 미국(워싱턴 DC)으로 이주한다.
물론 그냥 놔둘 사우디 당국이 아니다. 그는 강제 이혼당하고, 아들과의 연락도 금지됐다. 게다가 MbS 왕세자님이 어떤 분이신가, 레바논 총리를 납치하기도 하시고(참조 2) 예멘 내전을 이끌고 계시며, 카타르와 단교도 하시었다. 내부적인 합의와 봉건 체제로 문제를 해결하던 사우디아라비아에 절대군주가 등장한 것이다.
때마침 주미 사우디 대사는 MbS 왕세자님의 동생, 대사는 까쇼끄지에게 높은 자리를 주겠다며 사우디 귀환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거절. 그는 언론의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나는 약간 그녀가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때마침 터키는 사우디 망명객들이 모이는 나라이기도 했고, 그는 에르도안의 정치 체제를 우호적으로 봤다(…). 여친과 결혼하여 터키에 아예 눌러 살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10월 1일 주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 갔다가 다음 날 서류 찾으러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10월 2일 오후에 들어간다.
10월 2일 아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해결사들이 총영사관 안으로 들어갔고 말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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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과 카타르의 와하비즘(2018년 1월 10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924163529831
2. 함정에 빠진 하리리(2017년 11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766799769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