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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트윈룩은 이제 그만 #트렌치코트

만인의 트윈룩은 이제 그만
100년 역사 트렌치 코트의 과거와 현재

최초의 트렌치코트
보통 사람들은 트렌치코트를 만든 사람을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로 알고있다. 하지만 최초로 트렌치코트 원형을 만든 사람은 맥킨토시(Macintosh)로 지금까지도 맥킨토시 던킨 트렌치코트는 고가에 판매되며 전통성 있는 옷으로 각광받고 있다.


버버리
토마스 버버리는 트렌치코트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가장 유사하게 만든 인물이자 브랜드 버버리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일명 버버리코트라 불리며 트렌치코트를 대표하는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버버리. 20세기 초 영국을 통치한 에드워드 7세는 본인의 트렌치코트를 입을 때 부하들에게 "내 버버리를 가져와라." 라고 명령하기도 했다고 한다.


트렌치코트의 유행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이후 대중들에게 널리 퍼진 영웅주의와 애국주의는 군인의 상징인 트렌치코트를 유행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당대부터 트렌치코트는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애용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세기의 스타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이 트렌치코트를 착용하면서부터 패션용어로 일명 '스타일 전쟁에서 영원한 승자'란 정의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현재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인기가 많은 아이템이 되었다.


트렌치코트의 구성
군인들의 의복에서 유래된 트렌치코트는 용도의 쓰임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가진다. 어깨에 달린 견장은 총이나 망원경과 같은 군용장비를 고정시키는 용도로, 크고 넓은 포켓은 지도를 넣고 다니기 위해서, 허리띠와 벨트는 수통과 야삽을 메달기 위해, 손목 스트랩은 군인들이 구덩이를 팔 때 소매를 걷을 수 있도록 고안한 디자인이다. 전쟁이 끝난 후, 트렌치코트의 다양한 구성은 더 이상 쓰일 용도가 없어졌지만 클래식한 형태의 기본 디자인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양한 트렌치코트
요즘의 트렌치코트는 흔히 알려진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말고도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있다는 사실! 트렌드세터답게 연출하고 싶다면, 위의 제품을 유심히 살펴보자. PVC소재와 시스루소재의 투명 트렌치코트는 환절기 날씨에 레이어드룩으로 스타일링하기 안성맞춤.


셀럽들의 트렌치코트
이 밖에도 면 소재 위에 레이스를 코팅처리한 트렌치코트부터 비비드한 오렌지컬러와 레더가 조합된 코트, 레인부츠의 대명서 헌터(Hunter)가 제작한 레인코트까지. 다양한 소재와 컬러의 트렌치코트가 존재한다. 아이템을 들여다보았으니 이제부터는 최근 가장 인기있는 셀럽들의 코디법을 살펴보자.


셀럽들의 트렌치코트
넥버튼만 잠궈 독특한 스타일을 연출한 송민호, 만화<원피스>의 조로를 연상케하는 두건을 함께 코디한 딘, 전반적으로 마일드한 톤의 룩에 보라색 슈즈로 포인트를 준 효민, 클래식하지만 세련된 룩을 선보인 정려원, 오른숄더 원피스처럼 트렌치코트를 멋스럽게 연출한 티파니까지.. 모두 멋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스타일링이 가장 좋은 스타일이 아닐까?! 올가을에는 만인의 트윈룩에서 벗어나 나만의 트렌치룩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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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잘 봤습니다 :) 하지만 트렌치를 입을 수 있는 계절이 이제는 점점 짧아지는 슬픈 사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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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보고’ 조리 ‘보고’] 시각이 미각을 지배할 때!
#1. 사람은 보통 시각적인 요소를 통하여 가장 많은 정보를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엔 다양한 분야에서 시각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요리를 시작하여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요식업계에서는 어떤 때는 양식이 유행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베이커리가 유행하기도 하고 가정요리, 파인다이닝, 혼밥식당 등의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요식업계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스타일링’이다. 미각을 주체로 두던 요식업계에서도 시각적인 요소가 첨가되었다는 뜻이다. #2.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옛말을 통하여 이전부터 요식업계에서 ‘스타일링’의 시각적 효과는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인기 있는 스타셰프들의 등장과 다양한 요리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요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게 되었고, ‘스타일링’이라는 주제는 조리의 본질을 변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쉽게 말해서 ‘맛 따라 멋 따라’ 가던 음식들이 이제는 ‘멋 따라 맛 따라’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작년 TV속 스타셰프들의 화려한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요리사라는 꿈을 심어주었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3. 하지만 조리사라는 직업은 ‘맛’을 만드는 사람이지 ‘멋’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조리사의 위생 상태는 음식의 맛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조리사들은 자신의 위생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조리복을 착용하여야 한다. 조리사들이 흰색의 조리복을 착용하는 이유는 업장에서 조리를 하며 자신의 위생이 어떤지를 한눈에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조리복은 흰색으로 제작이 된다. #4. 하지만 요즘엔 최현석셰프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조리복이 멋있다는 이유로 검정 조리복을 선호하는 조리사들이 많이 늘고 있다. 최현석셰프 같은 경우에는 방송용으로 매번 새로운 유니폼을 착용하기 때문에 위생에 문제가 없으나, 업장에서 근무를 하는 요리사들이 검정 조리복을 착용할 시에는 때가 잘 타지 않고 더러워져도 티가 나지 않아서 위생상태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문제는 자주 빨기 귀찮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이런 점을 악용하는 몇몇의 조리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전의 직장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동료 조리사의 실제 사례 중 하나였고, 몇 번의 식중독 사고가 일어나고 난 뒤 검정 앞치마의 착용은 금지되었다. #5.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하루에 평균 70~80가닥이 빠진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의 요리사들은 현장에서 9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그렇다면 법정근로시간 9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머리카락은 평균적으로 30~35가닥이 빠진다. 3명 이상의 조리사가 근무를 하는 업장이라면 하루에 100가닥이 넘는 머리카락이 잠재적 이물질의 상태로 주방 안을 둥둥 떠다닌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조리사는 기본위생인 손톱과 머리를 가장 단정하고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 #6. 그러나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에서의 스타셰프들은 위의 사진처럼 조리모를 쓰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그들도 알 것이다. 현장에서는 절대 조리모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간혹 요즘 파인다이닝과 같은 신세대적인 레스토랑에서는 조리사들이(대게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 조리사라고 소개하기보다는 셰프라고 소개를 하곤 한다.) 조리모를 쓰지 않고 홀에서 근무를 하는 직원들처럼 포마드 제품을 치덕치덕 발라 멋을 부리며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객이 볼 때 결코 멋있는 모습 아니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주방이 개방된 형태의오픈키친에서는 보이는 만큼 위생을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한다. #7. 하지만 겉멋만 든 자칭 셰프들은 고객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서 ‘맛’보다 ‘멋’을 더 신경 쓰고 있다. 뭐 가끔 사진 속 홍석천셰프처럼 머리털(?)이 없는 조리사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머리털대신 매끈한 두상을 타고 흐르는 땀 때문에라도 조리모를 필수로 착용해야 한다. 물론 조리모를 쓰기 싫어서 머리를 빡빡 미는 요리사도 없긴 하겠지만... #진짜요리사의멋과맛에대한개인적인고찰 Edit by @b0bhansul 에디터 추천!! 맛있는 #글밥 혼자 먹기 아까운 잡지食을 소개합니다✍
파리일기_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https://youtu.be/zlTMPWmYS-E 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파 일어난 시간은 새벽 5시. 콩피느멍때문에 집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밤낮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밤을 지새운 채 오전 수업에 좀비처럼 앉았다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그러고도 침대에서 좀 더 등을 굴려대다가 오후 서너 시쯤 잠이 들어 밤 9시 10시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어제는 평소처럼 9시쯤 일어나 잠시 움직여 보았다가 눈이 너무 안 뜨여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보통 때면 그러다가도 결국 일어나 앉아 커피 샤워를 하곤 했을 텐데 그날은 왠지 엠마도 잠이 들어 있어 그 온기에 취해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는 무척 긴 느낌이 든다. 수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오랜만에 배당받은 오후를 어떻게 쓸지 고민을 해 보았다. 습관이라는 중력 바꿔 걸리면 바닥이 천장이 되고 천장이 바닥이 된다. 집에만 있는 것이 너무 답답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옷을 고쳐 입고 3중 현관을 열고 나가는 일이 좁은 계단을 걸어내려 가 지하철에 올라타고 하는 일이 우주복을 껴입고서 로켓에 실려 날아가는 일처럼 버겁게 느껴진다. 연말이고 하니 어디든 한 번쯤은 나가자 했었지만 그 버거움과 조금의 두려움이 주저함이라는 문턱으로 우리를 둘러싸버려 트후티네뜨의 작은 바퀴로는 쉬이 넘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텔레비전이 되어 주면서 좁게 좁게 맞았다. 그리고 손님들은 아침이 되자 잠자리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공간으로 정 없이 돌아들 가버렸다.  그렇게 이름 난 다리 아래에서도 연결을 잃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들처럼 우리의 시간들은 어느 낚시 바늘 하나에도 걸리지 않은 채 은은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속도로 마흔이라는 이름의 강이 되었다. 마흔이라는 안내표지도 꿈에서는 무척이나 차갑고 커다랗고 그러했었지만 실제에선 좁게 선 내가 쉬이 넘어갈 만큼 구멍도 사이도 꽤나 커 나는 진동 없이 침묵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정말 나갈 거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물었고 응이라는 대답 대신 나는 늘 입던 바지를 들추고 개어진 대로 각이 지어 버린 낯선 바지를 꺼내 입었고 엠마는 마른 마스카라를 물로 풀어내었다. 마침내 우리는 외출을 했다. 조금 떨어져 있어 한동안 가지 못한 아시아 마트와 한인 마트도 들를 겸 장바구니도 3개나 쑤셔 넣고 따뜻한 차와 카메라도 같이 쌓아 넣고 대기권을 넘을 각도에 올라탔다.  파리는 야간 통행금지가 실행 중이라 멀리까진 가지 못하고 파리 식물원이 있는 에꼴 드 보따니끄 가든을 들렸다가 센 강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센 강은 구름이 비켜서 있었다. 겨울바람이 꽤 세찼지만 우리는 강에 닿아 있는 가장 아래 둑까지 내려가 강변을 따라 걸었다. 앙상한 나무 가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벌써 봄이 장전되어 있었다. 며칠 사이 추워진 날씨에 코까지 붉어진 우리는 서로를 예보 옆에다 세워두고 기점 같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어떤 일들은 이런 사진들 근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원에는 운동 겸 산책을 하는 노부부들과 경주처럼 거친 러닝을 하는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센 강변을 걷자 마치 서울에 있다가 파리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스웠다. 그래 시간들은 신발 끈을 묶을 때도 흘러가지. 작년 파리 지하철의 전동차마다 서로의 건강을 위해 간격을 유지하라는 스티커가 붙었을 때만 해도 얼마 안 가서 떼야할 텐데 괜한 돈을 들이는구나 싶었는데 오늘 보니 그 스티커들이 어느새 수만 발에 닿아 닳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놓쳐 버린 걸까.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닻을 내린 채 흔들리는 배들, 다리 위에서 교차하는 전동차들, 식물로 덮여 있는 옥상, 같은 높이의 건물들, 스케이트 보드와 함께 날았다가 뒹구는 배추머리 아이, 갈비뼈를 다 내어 놓고 있는 노트르담.. 봤던 것들은 반갑게 못 봤던 것들은 신기하게 그런 자잘한 얘기들로 걸음과 걸음 사이를 충실히 즐기면서 우리는 오랜만의 산책을 꼭꼭 씹어 삼켰다. 그래 소중함은 상대적인 감각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집중하면 어느 시간 어떤 곳에서든 우리의 혀를 달랠 수 있다고.  우리와 같은 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마주치던 노부부는 30분을 돌아 한 우체통에 작은 편지를 집어넣고 발을 돌려 분명 집일 곳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도 긴 산책을 마치고 마트에 들려 어깨를 괴롭힐 것들을 잔뜩 사들고 분명 집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산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은 이런 날들일 것이다.  https://youtu.be/khJzXSqq_Qw 오늘은 파리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드문 이곳에 하루 종일 눈보라가 쳤다. 빨간색 패딩을 입은 길건 편 집 아이가 할머니와 눈 구경을 나가는 것을 엠마와 훔쳐봤다.  산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은 이런 날들일 것이다.  W, P. 레오 2021.01.16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빌더젤을 이용한 간단한 큐빅장식네일~
정말 오랫만에 올려보는 네일카드네요~^^ 살짝 밝은듯한 인디핑크인데 사진을 찍으니 그냥 핑크처럼 보여요... 양손중 왼손 약지만 큐빅으로 장식해서 한손만 찍었다가 너무 횡해서 다시 양손다 찍어 올리는데 여전히 밝은 조명탓에 핑크로 나오네요ㅡㅡ; 점점 주름만 느는 탓에 손톱만 찍고 싶어지다보니 네일카드를 올리는게 즐겁지가 않더라구요 ㅜㅜ 이번엔 큐빅을 손쉽게 올리는 방법을 알려드리려 올려봤어요~ 베이스까지만 큐어링한뒤 사방으로 0.2정도를 남기고 손톱 가운데쪽으로 살짝 도톰하게 빌더 젤을 바르고 큐어링전 원하는 큐빅들을 젤큰 큐빅부터 안에서 바깥순으로 올린후 탑젤을 큐어링하는 만큼의 2배를 큐어링한후 큐빅을 올리고 남은 여백에만 또 빌더젤을 꼼꼼하게 메꿔준후 큐빅을 올렸을때처럼 탑젤보다 2배시간동안 큐어링해주면 끝이예요~ 제일 큰 큐빅은 3mm을 안넘기는게 좋구요~그보다 작은것들과 적당히 섞어올리는 정도는 글루로 올린것만큼은 유지되요~^^ 2배시간을 2번정도 큐어링한뒤에도 불안할땐 큐어링된 큐빅위에 손가락을 살짝 올려 흔들었을때 흔들림이 있다면 한번정도 더 큐어링해주시면 되는데 전 요런걸 신경쓰기 힘들어 다른손 컬러링 하기전에 큐빅 올릴 손가락을 먼저 해놓고 다른네일에 컬러링을 두개씩 하다보면 계속해서 구워주게되어 횟수신경 안쓰고 끝내게 되더라구요~^^ ※ 빌더젤은 좀 띡한거루다 고르시면 여러모로 좋아요~ 연장이든 큐빅을 올리든 여러모로 편하게 사용 가능해요~^^
모델들보다 더 모델같은 패션 디자이너들
1. 입생로랑 태초에 입생로랑이 있었다 내가 생로랑 쓰는거 입는거 둘 다 얹짢아할 상  1936년생 2.에디 슬리먼 그리고 이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온게 에디 슬리먼   내가 매장 들어오면 이렇게 쳐다볼 상 어릴때부터 남자치고 너무 얇고 긴게 컴플렉스였어서 사회분위기를 바꾸고자 스키니패션을 창조했다는 그 분 기럭지.. 3. 톰포드 이 배우같은 사람은  톰 포드 실제로 모델 경력 있음 지금은 존나 꽃중년 4. 그렉로렌. 잡지 화보같은 이 사람은 랄프 로렌 조카 그렉 로렌 금수저에 능력도 쩌는데 잘생김 수트만 입을것같은데 존나 누더기같은 옷만 만듦 첫번째 사진에 소매도 존나 뜯겨있는데 얼굴만 보느라 눈치 챈 새람? 5.크리스토프 르메르. 크리스토프 르메르 유니클로 U, 르메르 디자이너이고 올해 54세 참고로 이 사람은 사라 린 트란이라는 연인/동업자가 있는데 둘 다 스타일이 엄청 좋고 커플이 그림같이 이쁨 6. 피비파일로 이 유명한 사진의 주인공은 전 셀린느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 거의 요즘 여성 패션의 틀을 만든 사람 개 멋져 패션쇼보면 항상 운동화 신고나오는데도 존나 길쭉하고 마름 개멋있음 7. 시몬 포르테 자크뮈스. 이 사람은 요즘 핫한 디자이너 시몬 포르테 자크뮈스, 브랜드명은 자크뮈스  요즘 남성복+여성복 다 엄청난 영향을 주고있는  젊은 디자이너  이 사람은 매우 해맑음 해맑음 키즈모델이였는지 인스타에 어릴때 찍은 광고들 자주 올리는데 이때도 해맑음 해맑+관종임 인스타보면 맨날 장난치거나 웃고있음 8.니콜라스 게스키에르 ㅎ 또 내가 자기 제품 쓰는걸 경멸할것같은 불안한 예감이 드는 이 사람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루이비통 여성디자이너, 전 발렌시아가 디자이너 이 사람도 레전드로 불리는 엄청난 재능충임 요즘 루이비통 컬렉션 반응이 잠잠한데 얼굴은 여전히 잘생김 9. 마크 제이콥스 포스 개쩌는 이 사람은 워낙 유명해서.. 마크 제이콥스  존나 레전드  사실 난 마크 제이콥스  꽃중년 모습보단 어릴때 머리길고 풋풋한 또라이같은 모습을 좋아함 개멋져... 이런 모습 내 취향이다.. 이 사람들 특징은 쇼 보면 다 자기같이 생긴 모델들 데려다 씀 (ㅊㅊ - 더쿠) https://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page=4&document_srl=128093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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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TOO  타투, 우리는 불편하지 않다  #1 한 버라이어티 프로에 출연한 인기 래퍼의 손등에 반창고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출연자가 묻는다. "다친거예요?" #2 고민 자랑 프로그램에 어머니 한 분이 출연했다. 고민은 온몸에 끊임없이 타투를 하는 아들. #3 1980년대 사회정화 운동의 일환으로 삼청교육대가 있던 시절,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타투가 있는 사람은 범죄 행위와 상관없이 순화 교육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타투가 범죄라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후 TV드라마나 영화에서 타투는 조직폭력배의 상징처럼 노출되면서 범죄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왔다. #4 여전히 공중파를 탈 수 없는 타투지만, 해외를 비롯해 국내 셀럽들의 타투가 주목받고 있다. 20~30대 남성들 사이에서는 이미 아메리카노만큼은 아니지만 에스프레소 정도로는 인정받는,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일상이 되었다. 타투도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고 이제 예술적인 측면으로 타투이스트를 ​아티스트로 분류하기도 한다. #5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한 해 타루를 받는 인구는 100만 명이다. Chic Chic한 남자들을 위한 스타일 매거진 #GEEK N0.49 / SEPTEMBER 2016 / 54p 발췌 에디터 추천!! 맛있는 #글밥📗😲 혼자 먹기 아까운 잡지食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