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oll
500+ Views

아사히 맥주를 위기에서 구한 남자①


간단한 질문 하나로 시작해 보자. 교세라(京セラ)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 일본전산(日本電産)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회장, 아사히맥주의 무라이 쓰토무(村井勉) 전 회장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와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무라이 쓰토무 전 회장의 이름은 다소 생소할 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 사람 모두 기업 재생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베마 경영’으로 유명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일본기업재생기구(ETIC)의 요청으로 2010년 파산을 신청한 JAL(일본항공)을 3년 만에 우량기업으로 부활시켰다. 그에게는 ‘경영의 신’, ‘기업 회생의 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죽어가는 회사도 살려 낸다’는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M&A계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에겐 ‘기업 재생의 신’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그럼, 아사히 맥주의 무라이 쓰토무 전 회장은 어떨까?


그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8년 10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아사히신문은 그의 부음을 전하면서 <기업 ‘재건옥’이라는 별명을 지닌, 무라이 쓰토무씨가 사망했다>(企業再建屋の異名, 村井勉さん死去)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의 보도처럼, 무라이 쓰토무에겐 ‘사이켄야’(再建屋)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사이켄야는 ‘재건 전문가’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그에게 이런 별명이 생긴 건, 스미토모(住友)은행 (현재의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 중역으로 일하던 현역 시절,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잇달아 재생시키는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주거래은행의 무라이 쓰토무가 구원투수로 투입된 대표적인 회사는 스포츠카 메이커인 동양공업(현 마쓰다)과 맥주기업 아사히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일본 최고의 스포츠카로 평가받는 ‘마쓰다 RX-7’를 잘 알 것이다. 이 스포츠카를 만든 회사의 전신이 동양공업이다.


무라이 쓰토무는 1976년 스미토모 상무 시절, 경영 부진에 빠진 동양공업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파견돼 재건에 올인했다. 그는 이후 스미토모에 복귀해 부행장직을 맡았다. 그가 장기간 실적 부진을 겪던 아사히 맥주 사장에 취임한 건 1982년이었다. 당시 아사히맥주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경영잡지 ‘기업가구락부’(kigyoka.com)라는 매체를 좀 참고해 보자. 이 잡지는 1999년 12월호에서 ‘아사히 맥주 기적의 진실’(アサヒビール奇跡の真実)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자는 아사히 맥주 명예고문을 지낸 나카죠 다카노리(中條高徳:1927~2014)다. 그는 당시 잡지에 이렇게 썼다.


<1982년, 아사히 맥주는 난공불락인 기린맥주 타도를 향해 점유율 탈환에 나섰다. 당시 챔피언 기린의 점유율은 60% 이상이었다. 한편 아사히는 10%미만까지 떨어져, 후발주자인 산토리에도 밀리는 침몰 직전의 상황이었다.>


(원문:1982年、アサヒビールは難攻不落といわれたキリンビール打倒に向けて、シェア奪還を目指した。当時、王者キリンのシェアは60%強。一方アサヒは10%弱まで落ち込み、新参のサントリーにも抜かれそうな、沈没寸前の状況にあった。) <2편에 계속>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도쿄와 서울…두 도시 최저시급의 다른 점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도쿄 도요(東洋)대에 다니는 유학생 이모(26)씨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이씨는 이자카야에서 단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급을 받고 있다. 다음은 그의 글이다. <한국의 경우, 내년 최저임금 시급이 8350원으로 결정되면서 시끌시끌한 것 같다. 올해 시급 7530원 대비 10.9% 인상된 금액이라고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려 한국 편의점의 점주들과 자영업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일본에서 인터넷을 통해 이런 보도를 자주 접한다. 일본에서는 아베 내각이 2016년부터 ‘1억 총활약 사회’ 기치를 내걸고 최저임금 인상을 이어가고 있는 추세다. 나는 이자카야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현재 도쿄의 최저시급은 932엔이다. 한국 돈으로는 9300원 정도다. 10월 1일부터는 여기서 26엔이 인상된다. 일본 정부가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3.1% 인상했기 때문이다. 이를 결정하는 기관은 후생노동성 최저임금심의위원회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지자체마다 최저시급 액수가 다르다. 47개 도도부현을 시급이 가장 많은 A등급부터 가장 적은 D등급으로 나눈다. 예를 들면 도쿄도가 A, 오키나와 같은 곳이 D지역이다. 일본에서 최저임금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메야스’(目安:めやす)다. 한국 말로 하면, ‘참고 기준치’다.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메야스는 A단계 26엔, B단계 25엔, C단계 24엔, D단계 22엔’(目安はAランク26円、Bランク25円、Cランク24円、Dランク22円~)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에는 중앙최저임금심의회와 지역최저임금심의회가 별도로 있다. 4개 그룹별 메야스를 제시하는 것은 중앙심의회의 몫이다. 47개 도도부현에 있는 지역심의회는 중앙심의회의 메야스를 기준으로 해당지역에 맞게 최저임금을 의결한다. 의결된 사항을 다시 정부에 답신을 보내면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고시한다. 아무튼, 내년 일본 전지역의 평균 최저시급이 874엔(한화 8918원)으로 결정됐다. 한국이 8350원으로 확정됐으니, 일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도쿄의 최저시급은 932엔이라고 위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 돈을 주고는 주인들이 알바생을 구할 수 없다.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균액에서 조금 더 얹어줘야 한다. 이게 한국과 다른 점이다. "도쿄 최저시급(932엔) 보다 좀 많은 1100엔 받아 이동거리 만큼 교통비도 지급하는 경우 많아" 내 경우, 현재 이자카야에서 1100엔을 받고 있다. 하는 일은 단순 서빙이다. 한 푼이 아쉬운 유학생 입장에서 보면 1100엔은 적은 돈이 아니다. 돈 욕심이 나서 알바 시간을 늘릴 법도 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유학생의 경우 주28시간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일본이 한국과 다른 것은 또 있다. 교통비 지급이다. 대부분의 알바생에게 주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교통비로 하루 340엔 정도를 받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알바 장소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드는 차비가 딱 그 정도다. 교통비 지급은 제한선을 두고 있다. 주위에서 들어보면,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기를 의미하는 ‘잃어버린 20년’이후 호황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내놓은 실적 발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안달이라고 한다. 졸업을 하지도 않은 학생들을 미리 ‘찜’해 두는 입도선매(青田買い:푸른 밭을 미리 사들이는 것)를 넘어 ‘즉시전력감’을 나타내는 ‘초입도선매’(超青田買い)라는 단어도 경제신문에서 보인다. 또래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의 취업 상황이 계속 어렵다면, 나는 졸업 후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한국 사정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객원기자/일본 도요(東洋)대 유학생 이모씨>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새해에 ‘껌 좀 씹어야 하는’ 이유
뇌신경 내과&인지증(치매) 분야 전문의인 하세가와 요시야(長谷川 嘉哉) 박사는 ‘껌 권장론자’다. 그는 “35세부터 껌을 씹어라”(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 기고)고 권한다. 단순한 껌을 씹으라는게 아니다. 충치와 치주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다음과 같은 성분이 들어간 껌이다. ᐅ자작나무로부터 얻은 천연감미료 자일리톨, ᐅ우유에서 추출한 단백질 물질인 CPP-ACP ᐅ감자를 원료로 하는 인산화 올리고당 칼슘(POs-Ca) ᐅ사람 유산균인 루테리(Reuteri)균. 하세가와 박사가 껌 씹기를 권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치주 질환 예방 때문은 아니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박사에 따르면, 치아를 잃는 주원인은 치주 질환으로, 35세를 전후로 발병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때부터 노화에 의해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하세가와 박사는 “(좋은 성분이 들어간) 껌 씹는 과정은 치주 질환을 다스리고, 더 나아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20만 명 이상 인지증(일본은 치매를 이렇게 부른다) 환자를 치료했던 하세가와 박사는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사의 말을 빌리면, 일반적으로 치아 사이에 뭔가를 넣고 한번 물거나, 씹을 때마다 3.5㎖의 피가 뇌로 보내진다고 한다. 보통 초밥 도시락에 들어있는 물고기 모양의 간장 용량이 그 정도다. 한번 물거나 씹을 때마다 ...<김재현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 기자다른기사 보기
‘쇼핑난민’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이 사람
일본에서 ‘쇼핑난민’(買い物難民 또는 買物難民)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쇼핑난민은 거동이 어려워 생필품을 사거나 장보기가 어려운 고령인구를 말한다. 쇼핑난민 외에 쇼핑약자(買い物弱者 또는 買物弱者), 쇼핑빈곤자(買い物困難者 또는 買物困難者)라는 말도 쓰인다. 쇼핑난민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언제 생겼을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8년 9월 책이 한 권 출간됐다. ‘쇼핑난민-또 하나의 노인 문제’(買物難民-もうひとつの高齢者問題)라는 제목의 책이다. 저자는 오비히로(帯広) 축산대학의 스기타 사토시(杉田聡) 교수.(오비히로 축산대학은 홋카이도 오비히로 시에 있다) 스기타 사토시 교수는 책에서 ‘두부 한 모 조차 사기에도 힘겨운’ 자신의 어머니 체험을 묘사했다. 쇼핑난민이라는 말의 출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베프런티어대학(宇部フロンティア大学)의 사토 준이치(佐藤祐一) 교수의 논문을 참고했다. (우베프런티어대학은 야마구치현 우베(宇部)시에 있다) 2010년 발표된 이 논문의 제목은 ‘지역사회와 구매행동’(地域社会と買い物行動). 사토 준이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쇼핑난민은 오비히로(帯広) 축산대학 교수 스기타 사토시(杉田聡)씨가 명명한 말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쇼핑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문: 買物難民とは 帯広畜産大学教授の杉田聡氏により 名づけられた言葉で, ‘食料品や生活必需品の 買い物に困る人々’の ことを 指す。) 사토 준이치 교수는 논문에서 “요미우리신문이 2009년 6월 5~12일에 걸쳐 쇼핑난민에 대한 특집기사를 싣고 각 지역의 다양한 상황을 보도했다”고 썼다. 그는 “쇼핑난민이라는 단어가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TV 등에서는 쇼핑약자(買物弱者)라는 말로 바꾸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는 쇼핑난민이 얼마나 될까.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4명 중 1명이 이미 쇼핑난민’이라고 한다. 농림수산성의 농림수산정책연구소는 지난 6월 ‘식료품 접근이 곤란한 인구 추계’(食料品アクセス困難人口の推計)를 발표했다. 연구소는 “가장 가까운 소매점까지 직선거리로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는 65세 이상의 사람은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824만6000여 명”이며 “이는 2005년에 비해 약 21.6% 증가한 수치”라고 했다. 신체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 상점이 줄면서 쇼핑할 곳이 없는 경우도 많다. 소매업의 한 관계자는 시사매체 주간아사히(11월 9일 발매 예정)에 “노인이 걸어서 쇼핑 갈 가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전국 어디서나 쇼핑난민이 생겨 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高齢者が歩いて買い物に行ける店が、どんどん消えています。全国どこでも買い物難民が生まれる危機に直面しているのです。)고 말했다. 쇼핑난민은 비단 농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 지역도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전국 쇼핑난민(824만 6000 명) 중 지방권은 447만 명,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에선 377만6000 명에 달한다. 이는 2005년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난다. 지방권은 416만 3000 명(2005년)에서 10년 새 30만7000 명이 늘어났다. 비율로 보면 7.4 % 증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3대 도시권은 262만1000 명(2005년)에서 10년 만에 115만 5000명이나 불어났다. 44.1% 대폭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불러오는 쇼핑난민은 한국에도 이미 들이닥친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틀림없다. <김재현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올 여름 해외여행 필수 어플리케이션 모음!
1.항공권은 어디가 제일 싸지? 자유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항공권 어플을 꼽으라면 바로 ‘스카이스캐너’ 일 것이다. 저가항공에 대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출발 날짜 전후의 다른 날짜 항공권의 가격추세도 제공하고 있다. 사용하기 편리한 UI와 기능에 충실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인기가 높다. 2.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 ‘에어비엔비’는 숙박의 개념을 바꿔 놓은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다. 숙박은 원래 호텔과 모텔 펜션 등 에서만 이뤄진다는 고정관념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숙박만으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향상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현지인과 관계를 맺고 그 지역만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필수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다. 3.가까이 있는 맛집은 어디? ‘트립어드바이저’는 전세계 여행자들의 리뷰 수가 무려 1억 건이 넘을 정도로 다른 어플의 리뷰와는 그 수를 견줄 수 없을 정도이다. 호텔과 명소 맛집의 정보를 제공한다. 전 세계 유저들이 어떤 호텔과 맛집에서 만족을 느꼈는지 알고 싶다면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간단 검색만으로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작성한 리뷰도 다른 여행자들을 위한 팁이 되어 줄 것이다. 4.여행지도는 무엇을 고르지? ‘구글맵스’는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필수가 된 어플리케이션이다. 물론 국내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국내 포털 서비스의 지도가 더 우수하다. 하지만 해외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중교통 시간표까지 제공되어 단순 지도정보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도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와이파이나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 자유롭지 못한 지역을 다닐 때도 요긴하다. 5.해외에서 꿀잠은 어떻게 청하지? 한국에서 개발한 ‘슬립셋(SLEEP SET)’은 개인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나에게 맞는 수면소리를 추천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다. 매일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기술은 스마트폰의 중력센서와 가속센서를 활용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완성시켰다. 슬립셋에 내장된 약 100여종의 숙면사운드는 모두 적정 주파수 스펙트럼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거친 후 최소 100여 차례 이상의 실제 반복청취 테스트를 마쳤다. 이후 최종단계에서는 일반적인 수면장애 환자들에게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예측을 위해 수면클리닉 전문의의 감수를 받았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ASMR(자율감각쾌락반응)등의 사운드가 내장되었고 바이노럴비트가 탑재되어 있다. 한번의 다운로드로 인터넷 접속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슬립셋은 에어플레이모드로 사용이 가능하다. 장거리 이동 중의 꿀잠을 책임질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②/ 그가 경영세습을 안 한 이유
<1편에서 계속> 가고시마 대학에 수백억 원을 기부한(①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86) 명예회장은 세습 경영을 하지 않은 일본의 대표적인 경영자다. 그는 2005년 교세라의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은퇴했다.(2010년 JAL 회생을 위해 경영 일선에 복귀하긴 했다) 그가 2세 세습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10월 18일, 주간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자녀를 딸만 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교세라는 전 종업원의 행복을 추구하는 회사이지, 이나모리가(家)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세습을 하더라도 잘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문: 一つ目の理由は、子どもが娘だけだったからです。二つ目の理由は、京セラは全従業員の幸福を追求するための会社で、稲盛家のものではないからです。三つ目の理由は、世襲してもうまくいくわけがないと思ったからです。) 이나모리 회장은 딸만 셋 뒀다. 물론 딸과 사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종업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그의 말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교세라의 사시와 ‘교세라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자신의 책(‘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에서도 세습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음과 같다. <내 경우에는 애초에 대물림 경영을 생각한 적도 없었고, 지금은 회사 자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경영 세습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면, 가업으로서 세습이 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 165쪽 인용, 김정환 옮김, 서돌출판사 2012) 경영 세습을 하지 않은 이유로 사회적 책임을 꼽은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평소에도 그런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JAL(일본항공) 회생 건이다. 2010년 JAL은 2조 3000억 엔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회생은 불가능해 보였고, 회생을 믿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 등이 삼고초려를 한 끝에 은퇴한 그를 모셔왔다. 이나모리 회장은 제안을 수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항공이 그대로 도산한다면 일본 경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일본 산업의 상징이기도 하고, 직원 수 만 명의 일자리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늙어서 일주일에 3일만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월급은 받지 않겠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사회적 책임을 ‘나 몰라라’ 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1997년 65세가 되던 해, 교토에 있는 사찰 엔후쿠지(円福寺)로 출가하기도 했다. 승적(僧籍)의 법명은 다이와(大和)다. 그가 쓴 많은 경영서에 불교적 가치관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편에 계속>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록그룹 '퀸'과 1975년 4월 17일의 일본
1975년 4월 17일 하네다 공항 대소동 환영 인파에 놀라..."다른 행성 온 것 같다" 1975년 4월 17일 오후 무렵.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전례 없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이윽고 오후 6시가 되자, 호놀룰루를 경유한 JAL061 편이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트랩을 내려오는 주인공은 데뷔 3년차인 영국 출신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이었다. 섬 나라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멤버들이나, 이들을 맞은 팬들이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더 프레디 머큐리 등 멤버들은 일순간 동양의 작은 소녀들에게 포위당했고,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Harold May)는 당시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브라이언이 행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천문학자(Infrared astronomer)였다. 잠시, 브라이언 메이 얘기다.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라는 책에서 “제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에서라도 브라이언 같은 적외선 천문학자가 기타를 집어들고 로큰롤 가수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썼다. 천문학 잡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는 ‘브라이언 메이, 과학과 음악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분은 그를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지만, 브라이언은 천문학 박사이기도 하다”(You know him best as guitarist,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rock group Queen, but Brian May is also a Ph.D. astronomer”고 전했다. 일본에 도착한 퀸이 공연을 펼친 곳은 선배 그룹 비틀즈가 섰던 부도칸(武道館)이었다. 공항에 이어 공연장 소동도 변함없었다. 통곡하며 실신하는 여성이 속출했고, 팬들은 밀치고 넘어지며 스테이지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모두 침착하자”고 호소했다. 비틀즈 이후 최대의 소동이었다. 퀸의 공연은 2주간 전국에서 열렸다. 퀸은 이후 다섯 차례 더 일본을 방문했고, 마지막 공연을 한 곳은 1985년 5월 15일 오사카성 홀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6년 전이다. 여섯 차례의 일본 공연은 그만큼 퀸이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퀸은 이처럼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다. J-팝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팝음악 잡지 ‘MUSIC LIFE’는 당시 인기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룹 퀸은 ᐅ1975~1978년 1위 ᐅ1979년 2위 ᐅ1980~1982년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1년 11월 24일은 퀸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전하고 24시간 후 사망(당시 45세)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지 4년 뒤 발표됐다. 일본의 열성팬들은 2015년, 퀸의 일본 도착 40년을 기념해 4월 17일을 ‘퀸의 날’(The Queen Day)로 정했다. 일본에서 이런 소동을 벌였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극장가에서도 히트 행진 중이다. 신드롬, 팬텀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스지 스즈키(スージー鈴木)씨는 “헤이세이 최후의 겨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기억될 것"(平成最後の冬は、映画『ボヘミアン・ラプソディ』とともに記憶されるだろう。)이라고 했다. (일본은 내년 헤이세이 연호가 바뀐다) ‘Love Of My Life’, ‘I Want To Break Free’, ‘Spread Your Wing’ 같은 퀸의 노래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도 저물어간다. '에~오~ 에~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비행기 명당자리 차지하기!!
안녕하세요! My simcafe 입니다. 미국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면 정말 몸과 마음이 지쳐요.ㅠ.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이코노미석을 선택한 모든 백성들의 고충아닐까요ㅜㅜㅜㅜㅜ 저는 비행기 타면 완전 촌스럽게 약간의 멀미를 하는 관계로 비행기 타기전에 약을 먹고 비행하는 내내 잠만잔답니다. 그리고 기내식 먹고 또자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단거리 구간 (국내선이나 일본. 중국정도) 의 경우2-3시간정도는 화장실을 안가도 견딜만 하기때문에 아래를 내려다 볼수있는 창가쪽을 선호해요. 하지만 장거리의 경우 최소 2번이상 화장실을 가게되고 스트레칭도 중간중간해야하고 몸을 움직을 공간도 있는 복도쪽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저는 약을먹고 기절한듯 자는 타입이라.. 옆사람에게 깨워도 괜찮으니 언제든 필요할때 얘기하라고 하죠.ㅎ.ㅎㅎ 좁은공간에 많이사람들이 있는 만큼 위치가 어디인지. 옆좌석에 어떤사람이 탔는지에 따라서도 여행이 즐거울수도. 힘들수도 있는데요! 옆좌석 사람을 고를순 없어도 비행기 명당자리는 우리가 차지해 보자구요- 어디가 비행기 명당자리 일까요?? 왜 명당일까요??? 어떻게 그자리를 차지할까요???? 사진 출처: http://inside.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5/2013042501977.html?Dep0=twitter 비행기의 최고 명당자리는 당연 비상구 옆 좌석 (Bulk seat) 이라고 해요. 비상구 공간확보를 위해 좌석이 멀리 떨어져 있어 다리를 뻗을수도 있고 창문가에 앉은 승객이 옆사람 눈치안보고 마음대로 왔다갔다가 할수도 있구요. 하지만 비상구 옆 좌석은 "비상시 비상구를 개방하고, 승무원을 도와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 고 건설교통부 고시에 규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 청력. 시력.언어장에가 없어야 하고 비상구를 열거나 장애물을 제가하거나 비상시 승무원과 승객의 탈출을 도울수 있는 신체 건강한 15세 이상의 승객에게만 배정해요. 하지만 꼭 남자만 가능한건 아니고 여자분들도 앉을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규정에 따를건지 물어보고 동의를 해야만 좌석 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화나 인터넷 예약이 불가능 합니다. 외국 항공사에서는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확인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 미리 영어공부를 조금 해놓으시면 좋은 자리 득템에 도움이 될꺼 같네요^^ 영어못하는것도 서러운데... 명당에도 못앉는다니... 내일부터 영어공부???ㅋㅋ 아! 비행기의 모양에 따라 벌크석 창가쪽 안쪽으로 튀어나와 무릎이 닿을만큼 공간이 좁을수도 있고 화장실 앞일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번잡할수 있어요. (자료출처: 한국소비자원) 그 다음은 각 구역별 제일 앞자리 입니다. 화장실이나 승무원들이 기내식이나 다른 준비를 하는 공간인 갤리 (galley) 를 중심으로 3구영 정도로 나누어 지는데 앞사람이 없으니 다리도 뻗고 뒤쪽으로 의자를 젖히는 사람도 없어 편하게 갈수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개개인의 스크린이 있지만 큰 스크린이 앞에 있어서 영화관에 온것처럼 영화를 볼수도 있구요. 하지만 어린 아가들을 위한 요람을 거는 자리라 보통 우선순위는 어린아이와 동반하는 부모님들께 돌아갑니다. 아이들과 그닥 친하지 않으신분들이나 주변이 시끄러우면 잠자기 힘들거나 밝으면 잠을 못자는 분들께는 비추에요. 그리고 같은 비행기라 해도 항공사 마다 기종별로 좌석 위치나 갯수 등이 다르기 때문에 시트구루 (WWW.SEATGURU.COM) 같은 싸이트에서 미리 안내받을수 있어요. 항공사명 (Airline), 항공편명(Flight#),출국일(Date) 를 입력하면 항공기 좌석지도를 볼수있는데 색깔로 좋은좌석/안좋은 좌석들을 구분하여 알려줘요. ↓참고하세요^^ (출처:WWW.SEATGURU.COM) 그럼 좋은 자리를 찾아봤으니 안좋은 자리도 찾아볼까요?? -승객들이 오고가는 화장실 주변은 밤이고 낮이고 시끄럽고 번잡해요. -항공기 엔진의 뒤에 위치한 좌석의 경우 엔진소음이 앞쪽보다 더 크구요. -5열중 가운데 자리는 창가쪽과 복도의 중간이라 풍경도 없고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 비행기에 따라 중간이 4-5좌석정도가 될때가 있는데 성수기에 5열 중간.... 버스라면 그냥 서서가라고 권할정도로 비추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리들도 명당중의 최고명당이 될수도 있으니! 이름하야... 비수기!!!!!!!!!!!!!!!!!!!!!!!!!!!!! 비수기 장거리 비행시 좌석이 통재로 비어있을 경우 3-4자리를 혼자 독차지 할수있어서 누워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항공기내에 자리가 많이 비어있을경우 눈치 샤샤샥 보시고 빨리 자리를 차지하는것도 도움이 될꺼에요.. ㅎㅎㅎ (자료출처: 주부생활) 자~ 대망의 명당자리 차지하는 방법을 공개합니다. ㅎㅎㅎㅎ 우선! 부지런한 새가 애벌레도 많이 먹는법! 비상구 옆자리를 제외한 자리들은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할 수 있도록 온라인 좌석 예약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으니 미리미리 들어가서 예약을 하는게 좋아요. 항공사 홈페이지 혹은 앱 - 사전 좌석배정 서비스 - 예약번호 혹은 회원번호 - 좌석 선택 (대한항공 이코노미석은 출발일 기준 90일 전부터 출발시각 48시간 전까지 좌석 얘약 가능하며 일등석. 비지니스 석은 90일 전부터 24시간 전까지 예약 가능하며 출발 1시간 30분 전가지 탑승수속 못하면 취소된다고 하니 주의 하시고 아시아나는 354일 전부터 국내선은 출발 2시간 전까지 국제선은 3시간 전까지 가능하고 국제선은 항공기 출발 70분, 국내선은 20분 전까지 공항 카운터에서 수속 완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미리 예약 했어도 출발 당일 너무 늦게 탑승수속을 하시면 다른 승객에게 그 자리가 돌아갈 수 있으니 당일에도 시간을 넉넉하고 잡고 가시는게 좋겠죠??^^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 하지 못했다면 출발당일 일찍 공항에 나가 남아있는 자리중 제일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를수 있어요- 그리고 최고 명당인 비상구 옆자리는 일찍오는 사람들에게만 내어준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국도심공항 체크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남들보다 일찍 체크인을 할수있는데 당일 새벽 부터 탐승 3시간 전까지 체크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요. - 열심히 부지런 떨어 좋은자리 얻어셔서 장거리 비행에 지쳐 쓰러지지 마세요^^
[펌] 냉혹한 일본 채식주의의 역사 썰.txt
요즘 트위터 비건들 공통점이 있는데 공감능력 없냐고 하는 주제에 본인들이 공감능력이 개바닥났단 것이다 동물 고통이 안 느껴지냐면서 고기 처먹지 말라고 지랄질을 하는데 왜 고기를 안 처먹었을 때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근데 지금이야 비건들이 트위터에서 지들끼리만 저러니 다행이지만 비건들이 실제 권력을 잡아버리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냐 국가에서 고기를 통제한다고 생각해봐 나 같으면 차라리 딸딸이를 포기하지 고기는 포기 못한다 그리 먼 곳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생긴 일이다. 일본놈들은 윗대가리 비건들이 맘대로 내린 명령 때문에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몇년 동안이나 그랬을까? 무려 1200년이다! 1675년도 아니고 675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킹 오브 킹이었던 텐무텐노라는 비건이 있었다. 이 새끼는 그야말로 트위터 비건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내로남불이 개쩔었단 소리다. 텐무텐노는 즉위할 때부터 미친놈이었는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조카 통수를 후려쳐서 덴노에 올라간 개새끼다. 불쌍한 조카는 어떻게 됐냐고? 억지로 할복시켜서 죽여버렸다. 뭐 여기까지야 개새끼긴 해도 옛날 정치인들이 다 하던 일이었으니 봐줄만한 일이긴하지만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흑흑 너무 슬퍼 조카는 니가 죽여놓고 이제와서 왜 우냐 처음부터 죽이질 말든가 아니 조카는 조까고ㅋㅋ;; 내가 슬픈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럼 니들 저기 소 보이지? 흑흑 음머 흑흑 저 소를 봐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아마 농사일이 너무 힘들거나 바람막이가 너무 비싸서 그런가봐 근데 너희 농민 새끼들아 니들은 소의 눈물이 안 보여? 공감능력 없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소를 잡아먹기까지 할 수 있어?? 그게 다 육식 때문 아닐까?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공감능력이 휘발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들도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비건이 되면 어떨까? 니 새끼는 공감능력을 우리한테는 왜 발휘를 안 하는데 그 힘든 농삿일을 고기도 안 처먹고 어떻게 하냐 미친 새끼야 고기 처먹으면 니들도 고기로 만들어버릴 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미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조카한테 사시미 쑤셔넣은 놈이 살생은 나쁘다고 고기를 처먹지 말라니 근데 문제는 이 비건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비건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내로남불 비건 새끼가 친 지랄질은 일본에 1000년이 넘는 육식금지시대를 만들어내고 만다. 소, 닭, 돼지, 개, 원숭이, 말을 먹는 놈은 그날로 인생 종치는 거다. 이게 육식금지령도 아니고 살생금지령이라서 사냥도 마음대로 못했다. 뒤에 3개는 그렇다치고 소랑 닭이랑 돼지를 못 먹는다니 개같은 것도 정도가 있다. 처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굶어죽으라고 바위밖에 없는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사실 말은 군사용도니까 못 처먹고 소는 농사지어야하니까 못 처먹으니 이 두 개 정도면 옛날 이라는 거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는데 돼지랑 닭을 못 처먹는건 그냥 개같은 비건 심보다. 돼지랑 닭은 까마득한 고대시대부터 인간들한테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필수가축이었는데 이걸 억지로 단절해버린 거다. 당연히 영양상태가 바닥날 수 밖에 없지 당시 일본이 왜 왜소할 왜자 써서 왜놈이라고 불렸겠음? 영양보급이 박살나서 키가 크고 싶어도 못 컸던 거다. 어딜가나 윗대가리가 지랄하면 아랫놈들만 고생을 한다. 이리하여 세계역사에서도 기형적인 일본의 식사문화가 시작되는데, 고기를 못 처먹으니 도축문화가 실전되어버려서 막상 동물이 죽어있어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혹시 예전에 유행하던 엘프들 나오는 이세계 요리만화 기억하냐 그게 진짜로 일어나버린 거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밥만 처먹는 이세계인들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이라는 만화. 주인공이 미개한 식문화를 가진 엘프들에게 음식을 전파해준다는 내용인데 유목민이 치즈도 못 만드는 등 인류학적으로도 너무 말이 안되는 전개 탓에 작가의 무식이 매번 비판받는 작품.) 이 이세계물을 처음으로 체험한건 다름 아닌 조선 사람들이었다 국사 정도는 들었을 테니 일본에 정기적으로 놀러가던 조선의 통신사란걸 기억할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조선은 아시아,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난히 밥을 많이 먹는 파오후들의 나라였다. 당연히 고기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개 좋아했다. 이런 사람들이 강제비건화된 일본에 놀러갔으니 그야말로 이세계물을 찍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아아 이것은 [배고프다]라는 것이다. 밥을 내놓으란 뜻이지 오옷! 근데 배고픈게 뭔진 나도 알아 ㅄ아 맨날 그렇거든 아무튼 처먹으샘 뭐임 이건? ㅅㅂ 니들 우리 싫어하냐? 이게 뭔 밥이야 살무사 양식장이지 밑에서 뱀 나오겠다 개새끼들아 고기 없어? 먼 곳에서 온 사람들한테 이따구로 개같이 굴기임? [고기]...? [고기]란 것이 너희 세계에 있는 건가? 그렇다 지금부터 이세계 전개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하아니 진짜 미친놈들인가 저기 닭도 있잖아 니들 닭 안 먹음? 안 먹을 건데 치킨 왜 키움? 닭...? 아아 저건 [시계]라는 거다 아침 시간을 알려주는 거지 너희들의 세계에선 [시계]를 먹는 건가...? 그렇다. 일본에게 닭은 먹는 용도가 아니라 자명종이었다! 하 ㅅㅂ 닭은 됐고 그럼 저기 있는 소나 한 마리 잡아서 구워와 님 어디 아픔? ? 아픈건 니들 미각 아님? 아니 소는 아플 때 먹는 거잖아 아프니까 약 찾는 거 아니냐고 아니 소를 왜 아플 때 처먹어 니들 농사 짓다 뒤진 소 안 먹었어? 스테이크 모름? [스테이크]...? 우린 소 뒤지면 그냥 태우는데 아 기름 많이 나와서 촛불 켤 때 개꿀임 ㅋㅋㅋ 이거 진짜 아픈 놈들이네 심지어 소가 그냥 죽어도 아무도 안 먹었다. 애초에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소가 뒤지면 일본 사람들은 배고파서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한점 떼어먹을 생각은 못하고 그대로 태워서 기름만 가져다가 썼다. 고기 타고 남아있는 뼈도 고아먹긴 커녕 땅바닥에 그대로 묻어버렸다. 소를 아예 전혀 안 처먹은건 아니고 약재로 쓰긴 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약이라서 맛 같은 거엔 1도 신경을 안 썼다. 그냥 고기 가루내서 뭉친 미트볼을 약이랍시고 팔았던 거다. 이 약을 얻는 과정도 가관인데 고기를 안 처먹으니 소를 어떻게 죽여야 할 지도 몰라서 도축기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약이 필요하면 소를 낭떠러지에 세워놓고 떨어뜨려 죽인 다음에 살점을 주먹만큼만 때어가는 식으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만하자. 돼지는 있지? 삼겹살 정도로 타협하자 우리 돼지 안 키우는데 니들은 대체 왜 사냐? 소도 안 처먹고 닭은 시계로 쓰는데 돼지는 기르겠냐. 당연히 돼지고기 같은 것도 꿈도 못꿨다. 아 근데 돼지 먹을 방법은 있음 오 뭔데 멧돼지 산 채로 잡아옴 우리 어떻게 죽이는지 모르니 죽이는건 니들이 알아서 하샘 아니 미친놈아 어어억 하도 고기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니 일본은 통신사들한테 멧돼지를 생포해서 가져다준다. 솔직히 이건 엿먹어보라는 의도도 좀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조선 통신사들은 이런 기괴한 식습관이 하도 기억에 남았는지 이 새끼들 처먹는거 존나 이상하다고 기록을 존나 남겼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세계 기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뇌가 있고 혀가 있는데 천년 동안이나 강제 비건질을 철저하게 지킨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원하는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절부터 내려온 인류의 본능인데 그걸 어떻게 뿌리뽑냐 일본 서민들은 어떻게든 비건 파시스트들의 눈을 피해 고기를 처먹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그중 대표적인게 위에도 나온 멧돼지다. 집에서 대놓고 돼지를 기를 수는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몬스터 헌팅을 해서 멧돼지를 얻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멧돼지를 '산고래'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바다고기는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흙수저 새끼들이 고기 처먹고 ㅈㄹ이냐 뒤질래? 아니 이거 고래고긴데 이게 뭔 고래고기야 누구 눈깔을 ㅄ으로 암? 님 고기 종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음? 님 혹시? 일본 흙수저들이 이렇게 몰래몰래 고기를 먹는걸 '야쿠세키야'라 불렀다. 해석하면 약식이란 뜻이다. 즉 병 걸려서 약 처먹는다고 핑계대곤 마약거래하는 것마냥 어두운 곳에 숨어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야쿠세키야를 하는 가게에는 주로 고래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속 나왔을 때 걸리면 고래라고 구라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야쿠세키야에서 밀매한 고기들은 소, 돼지 같은 맛좋은 정석 고기가 아니라 여우, 늑대, 곰 등의 육식동물이나 산양이나 물소 같은 생소한 동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법도 모르니 닥치고 굽거나 삶아버리는게 전부였는데 그걸 또 맛있다고 숨어서 먹어대니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 이련 연유로 생선요리는 엄청 발전한 주제에 일본 고기 요리는 개박살이다. 뭐 천년만년 비건으로 살 순 없다. 텐무텐노가 비건 지랄을 친지 120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도 더 이상 비건질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쓰마' 같은 밀매랑 깡패짓으로 유명한 동네에선 공공연하게 돼지고기를 처먹기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하나 제대로 터진다 배틀크루저 오뻐레이셔널 1800년대 초기까지 일본은 흥선대원군 시절 조선마냥 쇄국정치를 하면서 여전히 풀만 뜯어처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배틀크루저를 끌고 일본에 처들어와서 대포를 쏴갈기면서 개항하라고 지랄을 한 것이다 난생 처음보는 시꺼먼 배틀크루저에서 존나 큰 대포를 빵빵 쏴갈기면서 야마토포의 위용을 보여주자 일본 친구들은 개쫄아버린 나머지 바닥을 뒹굴면서 항복항복을 외쳤다. 이게 그 유명한 '흑선사건'이다. 배틀크루저의 위용을 보고 우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개ㅈ밥이었구나 이러면서 테크차이를 실감하게 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인을 모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그동안 개같이 굴었던 비건 파쇼들까지 개박살낸다. 가장 먼저 비건 파쇼들의 싸대기를 후려치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메이지 덴노였다 왜 우린 양키들한테 발렸을까 헤어스타일이 ㅄ같아서? 스크롤 늘리는덴 도움이 됨 아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냐 양키들 앞에만 가면 우리 키가 땅딸만한게 실감되서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우린 왤케 키가 작냐 진짜 진짜 이유 모름? 진짜? 알았어 ㅅㅂ 이제부터 고기 처먹자 1872년 1200년을 이어왔던 육식금지령이 드디어 취소된다. 일본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게 150년도 안 됐단 거지. 근데 1000년이 넘도록 채식주의자들한테 조교당하다보니 처음에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거에 존나 거부감을 느꼈다. 심지어 밀교에 심취한 비건들이 고기 먹지 말라며 황궁에 처들어가는 황당한 일까지 생겼다. 비건파쇼들이 지랄을 하건 말건 일본 윗대가리들은 이전까지와 180도 태세를 바꿔서 국민들한테 고기를 먹이려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오죽 열성이었으면 그 당시 쇼군 별명이 '돈이치상', 즉 돼지씨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마다 돼지고기를 츄라이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효과는 그다지 좋질 않았다 아니 먹으라고 하니까 또 지랄이네 도대체 왜들 그럼 먹는 방법도 모르고 익숙하지도 않은거 어떡함;; 아니 그동안 고기 몰래 존나 처먹은거 나도 다 안다 것도 돈 있는 새끼들이나 그랬거든 익숙하지않고 나발이고 일단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애들 덩치 키운다고 육식을 장려하면 뭐하냐 서민들은 돈이 없는데...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기 안 먹던 놈들한테 익숙함을 주거나 적은 고기로 양 많은 음식들이 발명되게 되는데 고기의 비린내를 일본에 익숙한 된장으로 가리고 값도 싼 '규나베'나(당시 서양 스테이크의 5분의 1 정도의 가격) 우리 지갑처럼 얇아터진 고기에 튀김을 두껍게 둘러 양을 늘린 '돈까스'가 탄생하게 된다 행-복 뭐 그렇게 비건 파쇼들의 천년이 넘게 이어진 지랄은 끝나게 된다. [출처-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진짜 역대급 분량에 역대급 욕설... 필터링을 거치긴했으나 여전히 욕이 많읍디다...
오사카 맛집 1탄 베스트 1위~10위
오늘 소개할 곳은 오사카 여행의 성지 니뽄바시에 있는 오사카맛집 레스토랑 및 카페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사카의 니뽄바시는 유명한 잡화점과 오래된 점포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지금 보니 빠찡코에 가서 게임했던것이 새록 새록 기억이 나네용 ㅎㅎ 그중에서 20선을 소개하는데 작성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썼네요 ㅎㅎ 그래도 유용한 정보였길 바랍니다 ^^ 보셨다면 댓글정도 남겨주는 센스가 있으신분들이라면 좋겠네용 ㅎㅎ 그럼 소개할 레스토랑의 목차를 적어보겠습니다. 1.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2. 무기보시 니뽄바시다카시마야점 麦星日本橋高島屋店 3. 딘타이펑 니뽄바시점 鼎泰豐日本橋店 4. 레스토랑 로즈 レストランローズ 5. 스끼야바시지로우 니뽄바시점 すきやばし次郎日本橋店 6. 시세이도우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資生堂パーラー日本橋高島屋店 7. 토우쵸우 니뽄바시점 糖朝日本橋店 8. 텐이찌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天一日本橋高島屋店 9. 오케이스시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おけいすし日本橋高島屋店 10. 카야바 萱場 자 그럼 소개를 해볼께요~~ 1.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이탈리아요리계의 마이더스손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카페입니다. 다카시마야의 지하2층에 있으며, 쇼핑후 들릴 수 있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담없이 이탈리아를 즐기는 것이 컨섭이며, 파스타나 젤라또, 와인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추천하는 메뉴는, 제철인 식자재를 푸짐하게 사용하여 파스타입니다. 안에 성게를 잔뜩넣어 만든 [성게크림소스 스파게티] 단연최고. 올리브오일에 마늘을 넣어 마늘향과 성게의 부드러움은 어떤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치즈 리조또도 꼭 먹어보세요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52053005 2. 무기보시 니뽄바시다카시마야점 麦星日本橋高島屋店 다카시마야 지하 2층에 있습니다. 천왕의 요리라고 알려진 아키야마도크죠 「秋山徳蔵」로 프랑스요리를 배운 요리장이 있는 고급명소로, 데이트나 모임, 점심에 혼밥을 즐기는 장소로 애용하는 곳입니다. 장시간 오래 푹 인힌 특제 데미그라스 소스를 사용한 하야시라이스 ハヤシライス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요리로 강추. 에스파냐소스에 소고기뼈와 고기, 향미를 돋아줄 야채를 더해 만든 것으로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것입니다. 와인의 산미와 향을 더해 일반인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麦星日本橋高島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32312811 3. 딘타이펑 니뽄바시점 鼎泰豐日本橋店 딘타이펑 니뽄바시점 중화요리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대만에 본점을 두고 있는 딘다이펑입니다. 다카시마야 지하2층에 있습니다. 80석 이상의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멋진 공간이 특징적입니다. 어린이용 메뉴가 있고, 가족행사나 모임에 최적인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런치타임에 특별한 세트가 있습니다. 딘타이펑이라면, 처음에 떠오르는것이 샤오롱바오는 아닐지? 가리비, 대개가 들어있는 조금 비싼 샤오롱바오도 있습니다. 샤우마이와 교자등이 딤섬양이 풍부하여 쉐어하여 먹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런치는 샤오롱바오 4개에 면종류 챠반이 포함된 셋트 메뉴가 인기입니다. 鼎泰豐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32114111 다카시마야의 지하2층에 있는 양식 레스토랑입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가볍게 이용 가능한 캐쥬얼한 분위기로, 메뉴는 일본, 양식, 중식등 버리이어티하게 다양한 것이 매력입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샘플 메뉴가 있어 백화점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딜가나 일본은 친절하지만 이 레스토랑의 점원은 평판이 아주 좋아요 메뉴는 크게, 다양한 채소들이 조금씩 들어간 양식이나 치라시 초밥, 비프스튜, 중화덮밥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맛으로,  어딘지 모르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인기의 비밀일지도 모릅니다. 쇼핑에 지쳤다면 잠깐 들러 커피도 마시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レストランローズ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32114111 5. 스끼야바시지로우 니뽄바시점 すきやばし次郎日本橋店 다카시마야에서 맛있는 스시를 찾는다면 이곳을 꼭 방문하세요. 긴자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인기있는 스시집이며, 여기 다카시마야7층에 있으며, 쇼핑후 천천히 점심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다랑어나 성게등, 취향에 맞는 스시는 1080엔으로, 주먹밥, 덮밥 포함하여 3000엔전후로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장인의 손으로 만드는 것으로, 밥알과 재료의 균형이 잘 맞아 정말 엄지척!!! 18석 밖에 없는 자그만한 공간이며, 밤에는 오후 7시까지만 영업을 하기 때문에 이점을 유념해주세요. すきやばし次郎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4F 0332114111 6. 시세이도우파라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資生堂パーラー日本橋高島屋店 넓은 연령층에게 인기가 있으며, 다카시마야 8층에 있는 시세이도우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입니다. 카운터, 테이블석이 있는 시크한 안정된 공간으로, 혼자 또는 친구와 천천히 차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메뉴는 양식이 중심이며, 계절 과일을 사용한 파르페나 케익등 디저트가 가장 인기가 있습니다. 시세이도파라라고 말하면, 딸기 파르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것이라 생각한다. 고급 브랜드의 후쿠오카현 딸기로 유명한 아마오우 딸기를 사용한 파르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보고 싶어지는 디저트랍니다. 스트로베리소스와 크림의 하모니를 맘껏 즐겨보세요. 전통적인 메뉴의 미또 크로켓도 반드시 음미해보세요 7. 토우쵸우 니뽄바시점 糖朝日本橋店 다카시마야 8층에 있으며 홍콩에 본점을 두고 있는 얌차의 인기점입니다. 40석정도의 적당한 크기의 가게로, 가게안에는 브라운의 시크한 인테리어로 통일되어있습니다. 런치타임은 금방 만석이 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는 편이 좋습니다. 죽, 디저트, 면, 딤섬등 메뉴가 풍부하여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 되용 여기서 반드시 먹어야만하는 것이 [망고프딩]입니다. 과즙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으며 의외로 크림이 많은 맛입니다. 糖朝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8F 0332114111 8. 텐이찌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天一日本橋高島屋店 다카시마야 8층 레스토랑 부근에 있는 에도식 덴뿌라의 명소인 가게입니다. 긴자에서 1930년에 창립하여 노점으로, 제철 재료로 튀겨내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점내에는, 모던하며 시원스러운 인테리어로, 누구라도 가볍게 들릴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카운터석이 있어 혼자 런치를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이곳의 튀김은 식물기름으로 바삭하게 튀긴것이 특징입니다. 바삭바삭하게 씹는 느낌과 담백함 대문에 여성이나 연령이 높으신 어르신에게 추천할만한 요리랍니다. 테이블석이 한정 요리는, 새우초밥, 야채, 생선, 굴튀김이 따라나와 남성일지라도 배가 엄청 부를것 같습니다. 런치 코스도 있어요   天一日本橋高島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11-1タカシマヤ東京店新館8F 0332465691 9. 오케이스시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おけいすし日本橋高島屋店 다카시마야 8층 레스토랑 부근에 있는 에도시대식 초밥의 가게입니다. 야에스에 본점이 있는 인기가 많은 가게로, 백화점내에 있으며 고퀄리티한 스시를 먹을 수 있다는 평가가 많은 곳입니다. 카운트와 테이블 자석 합쳐 40석전후로 청결감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어린이용 의자와 메뉴등이 있어 걱정없이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특별한 런치 메뉴는 7종류 전후 이며 2,500엔부터 있습니다. 제철 재료로 듬뿍 들어간 새우, 성게알과 연어가 들어간 덮밥 鉄火, 아나고가 들어간 덮밥이 인기가 있어요. 무엇보다 양심적인 가격으로 가성비 단연 최고!!! 돈이 아깝지 않은 곳이에요 10. 카야바 萱場 다카시마야 8층 레스토랑 부근에 있는 소바전문 가게입니다. 북해도산의 메밀가루를 사용하여 니하치 소바가 유명합니다. 인기메뉴인 [合鴨なんばん-오리]는, 메밀의 단단한 식감과 오리의 풍미가 기가막힙니다. 큰 새우튀김이 들어간 [큰새우튀김소바 大海老天せいろ]도 빠질수 없는 인기메뉴입니다. 계절 야채튀김을 추가하면 배가 너무 너무 불러용. 담백한 산채나물 메밀소바나 냉소바가 단연인기!! 가게안의 조명은 절제된 차분한 분위기이며, 넓은 연령층에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萱場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8F 0332114111 이것으로 1탄은 여기서 마무리 지을께요 2탄은 11~20위 건으로 다시 만나용 쭉쭉 이어질테니 일본여행 기대하세요 ^^ 엔스포츠와 함께하는 일본여행이었습니다.
아열대인 오키나와에서 맥주를 만든 이야기...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군(극동군 총사령부)은 오키나와에 ‘류큐열도미국민정부’(琉球列島米国民政府)를 설치해 그곳을 통치했다. 1957년 어느 날, 미군의 민정관(民政官) 보나 F. 버거 준장은 오키나와의 상공회의소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앞으로 오키나와 산업의 기둥은 ‘시멘트’와 ‘맥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ITmedia 비즈니스) 시멘트는 건물이나 도로 등을 건설하는 ‘하드’ 측면, 맥주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주는 ‘소프트’ 측면을 의미했다. 당시 이 강연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한 경영인이 있었다. 구시켄 소세이(具志堅宗精:1896~1979)라는 사람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된장, 간장 회사(具志堅味噌醤油)를 경영하고 있었다. 전후(戰後) 복구 차원의 새 사업을 구상중이던 그는 때마침 버거 준장의 말을 듣고 맥주사업을 실현에 옮겼다. 1957년 5월 구시켄을 필두로,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는 세웠지만 곧바로 맥주를 생산해 낼 수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아열대의 오키나와에서 맥주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오키나와의 수질도 문제였다. 오키나와는 산호초가 융기한 섬이어서 토양이 알칼리성으로, 경수(硬水)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 경수가 맥주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구시켄은 오키나와 각지를 현지 조사한 끝에, 산이 있는 나고(名護) 지역에서 맑은 연수(軟水)를 찾아냈다. 그는 그곳에 공장을 세웠다. 2년에 걸친 수질 조사와 공장 건설을 통해 마침내 회사가 설립됐다. 회사 설립 발기 당시, 사명은 ‘오키나와 기린 맥주 주식회사’였다. 본토 맥주 대기업 기린과 기술 제휴를 도모했던 것. 하지만 협상이 무산되면서 기린이라는 이름을 떼고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가 됐다. 기업 브랜드 네이밍의 경우,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에는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다. 회사는 1957년 11월, 신문에 파격적으로 현상 공모 광고를 냈다. 1등 당선 상금은 83달러 40센트로,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액이었다. (이 돈의 가치를 알고 싶은가. 1958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였다.) 공모 결과, 현민들로부터 2500여 건이 접수됐고 그 중에서 별자리(별 3개) ‘오리온’이라는 이름이 선택됐다. 오리온 맥주 홈페이지에는 당시 선정 이유가 올라와 있다.  “첫째, 오리온은 남쪽 별이라는 점에서 (열도의 남쪽인) 오키나와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둘째, 별은 사람들의 희망과 동경을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3번째 이유가 흥미롭다. “당시 오키나와를 통치하고 있던 미군...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7 )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요타 베스트셀링카 렉서스도 안 팔린다
> 일본 자동차 8월 한국 판매 전년 대비 57% 하락 > 도요타 렉서스도 7월과 비교하면 39% 떨어져 > 수입차 판매량과 더불어 신규등록대수도 감소세 맥주, 의류, 자동차 등 일본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보이콧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영자 매체 재팬투데이(japantoday)는 4일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8월 한 달 한국에서 급격한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Japanese automakers posted sharper sales falls in South Korea in Augus)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외교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차량에 대한 소비자 불매 운동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재팬투데이에 따르면,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제조업체들은 지난 8월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무려 57% 하락했다. 판매대수는 1398대로, 7월 감소세(17%)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도요타의 8월 판매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9% 감소한 542대, 혼다는 81% 급감한 238대를 기록했다. 도요타의 베스트셀링카 렉서스도 8월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재팬투데이는 “렉서스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브랜드로, 8월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7.7% 증가했지만, 한 달 전인 7월과 비교하면 39% 감소한 603대에 그쳤다”고 했다. 수입차 판매와 더불어 신규등록대수도 감소세에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4일 보도자료를 내고 “8월 수입승용차 신규등록대수가 7월(1만9453대) 보다 6.8% 감소했으며, 2018년 8월의 1만9206대 보다 5.6% 감소한 1만8122대로 집계됐다”고 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부회장은 “8월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은 일부 브랜드의 물량부족 및 감소세로 전월보다 감소했다”라고 말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6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CEO 열전/ 닛산의 쿠데타?...곤의 몰락①
20년에 가까운 장기 집권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일본 닛산자동차를 부활시켜 ‘기업회생 예술가’(Turnaround Artist)라는 별명이 붙었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63) 회장. 그는 소득 허위 신고 등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긴급 체포됐다. "닛산 자동차가 조세회피처 회사에 투자 자금을 옮기고, 곤 회장의 자택용 물품을 구매했다"는 말도 흘러 나온다. "닛산 내부에서 특수부의 칼을 빌려 쿠데타를 일으켰고, 특수부도 이에 가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1999년 닛산 개혁의 해결사로 일본 땅을 밟았던 그는 현재 닛산, 르노, 미쓰비시(三菱)자동차 3사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 체포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곤 사마(樣)’로 불렸던 곤 회장은 이제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재팬올이 그의 일본 진출기를 되돌아본다. 아래 기사는 국내에 번역 출간된 ᐃ‘카를로스 곤, 변화와 개혁으로 이끄는 성공 경영’(오토미 히로야스 저, 은미경 옮김, 삼호 미디어, 2002년) ᐃ‘기적을 만드는 카를로스 곤의 파워 리더십’(이타가키 에켄 저, 강선중 옮김, 더난출판, 2002년) ᐃ‘카를로스 곤 효과’ (미구엘 리바스 마이카으므 저, 김현모 옮김, 일신서적, 2008년) 등 서적과 일본 언론들 보도를 참고로 작성했다. 1. 왜 체포됐나?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이 500억 원의 소득 신고를 누락한 혐의로 ...<김재현 기자> <기사 더보기 ...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 >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 브랜드 네이밍’이야기/ 자동차(도요타)
도요타(TOYOTA)자동차도 혼다차와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차는 사정이 좀 다르다. 창업 초기, 브랜드명이 도요타(TOYOTA:トヨタ)가 아닌 도요다(TOYODA:トヨダ)였다는 걸 알고 있는가? 창업 가문의 성(豊田)은 도요다(トヨダ, とよだ)라고 읽는다. 창업의 토대를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とよだ さきち)와 실질적 창업주인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とよだ きいちろう)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 가문의 성을 따서 도요다(トヨダ)라고 했다. 영문명도 TOYODA가 됐다. 창업 당시인 1935년 7월 TOYODA로 상표등록을 했다. 1년 뒤인 1936년 도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엔 알파벳 TOYODA 엠블럼이 장착됐다. 하지만 미국 수출을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TOYODA 발음이 문제였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는 외국인이 영어 회사명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TOYOTA(トヨタ)로 바꾸도록 지시했다.(아사히신문 특별 취재반 저 ‘도요타시 1번지’) 도요타 사사(社史)에 따르면, TOYODA(トヨダ)에서 TOYOTA(トヨタ)로 바꾼 다른 이유 3가지가 더 있다. ①‘상업,미술적으로 봐서 촉음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쾌하고, 말의 음색(소리의 울림)도 좋다(商業美術的に見て、濁点を付けないほうが、さわやかであり、言葉の調子(音の響き)も良い)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의 선구자들⑨/ 철도의 아버지
... 1872년 10월 14일 일본 첫 철도 개통 10월 14일은 일본 철도의 날이다. 도쿄 신바시(新橋)와 요코하마(横浜)를 잇는 일본 최초의 철도 개통(1872년 10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1825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이래 일본에 철도가 들어서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맛봬기’였지만 그 이전에 일본인들은 철도를 이미 구경했다. 1865년 글로버 저택(Glover's house)으로 유명한 영국 무역상 토마스 글로버(Thomas Blake Glover)가 나가사키 외국인 거류지 해안가에 약 600미터의 선로를 깔고 영국제 증기 기관차와 객차 2량을 선보였다. 영업을 위한 운전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최초로 철도가 달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인근에는 철도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일본 철도의 탄생은 한 남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JR도쿄역 광장에는 일본 최초의 철도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인공은 ‘일본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 1843~1910)다. 원래 동상은 2007년 건립됐다가 도쿄 역사(驛舍) 복원 공사로 철거됐다. 그러다 10년 만인 2017년 그의 고향(야마구치현 하기시) 사람들의 끈질긴 청원으로 재건립 됐다. 그에 앞서 2016년 10월 14일 야마구치현 하기(萩)시 역 광장에도 이노우에 마사루의 동상이 들어섰다. 도쿄역과 하기시역 동상의 차이점은 도쿄는 노년 시절, 하기시는 젊은 시절을 형상화 했다는 것. 일본의 선구자들 시리즈 9회는 이노우에 마사루 편이다. 막부 말기 영국 밀항 ‘조슈 파이브’ 중 한 명 막부 말기인 1863년, 조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번의 다섯 사내가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영국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일본 역사는 그들을 ‘조슈 파이브’라고 부른다. 다섯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훗날 일본근대의 정치와 산업을 바꾸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면면은 이렇다. ①우리가 잘 아는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②초대 외무대신이 되는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③조폐 국장에 기용되면서 ‘조폐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엔도 긴스케(遠藤謹助) ④ 공부경(工部卿)자리에 오르면서 ‘일본 공학의 아버지’로 지칭되는 야마오 요우조(山尾庸三). ⑤ 마지막으로 ‘일본 철도의 아버지’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다. 이중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는 다음 해 죠수번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곧바로 귀국했다. 엔도 긴스케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중도 귀국했다. 반면, 이노우에 마사루와 야마오 요우조는 끝까지 남아 유학 생활을 마무리 했다. 영국 유학 후 철도국장으로 철도 개통 총지휘 이노우에 마사루에 좀 더 집중해 보자. 그는 런던 대학의 윌리엄슨 교수 집에 하숙하면서 공부했다. 광산과 철도 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운 후, 밀항 5년 만인 1868년 귀국했다. 이노우에 마사루는 이듬해 메이지 신정부에 등용, 철도 사업과 관련된 영일 회견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철도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철도 간부로 지명, 1872년엔 일본 최초의 신바시~요코하마 철도 개통을 총지휘했다. 당시 일본 철도는 외국 초빙 기술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877년 철도국장에 기용된 이노우에 마사루는 오사카에 일본인기술자양성소를 세웠다. 이후 일본의 독자적인 힘으로 교토(京都)~오쓰(大津) 구간이 개통됐다. 1889년 신바시~고베 구간이 개통됐고, 그 이듬해인 1890년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청 장관으로 승진했다. 그 무렵 자본가들이 앞다퉈 사철(사설철도) 건설에 눈독을 들였다. 그걸 본 이노우에 마사루는 “자본가들은 이익에만 목적이 있다. 철도는 국가가 경영해야 한다”며 자본가들과 격하게 대립했다. 이런 일이 화근이 되어 그는 1893년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퇴직 후 유럽 철도 시찰하며 옛 은인 다시 찾아 퇴직 7년 후인 1910년.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원 총재로부터 유럽 철도시찰 의뢰를 받았다. 남만주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유럽에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옛 은인을 찾는 일. 영국 유학 시절 몸을 의탁했던 윌리엄슨 교수의 집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난 윌리엄슨 대신 그 아내와 40년 만에 재회했다. 그 기쁨도 잠시였다. 시찰을 하고 귀국하던 도중, 이노우에 마사루는 병으로 쓰러졌다. 살아서는 일본 땅을 밟지 못했다. 1910년 8월 2일의 일이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3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