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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②/ 그가 경영세습을 안 한 이유


<1편에서 계속>

가고시마 대학에 수백억 원을 기부한(①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86) 명예회장은 세습 경영을 하지 않은 일본의 대표적인 경영자다. 그는 2005년 교세라의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은퇴했다.(2010년 JAL 회생을 위해 경영 일선에 복귀하긴 했다) 그가 2세 세습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10월 18일, 주간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자녀를 딸만 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교세라는 전 종업원의 행복을 추구하는 회사이지, 이나모리가(家)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세습을 하더라도 잘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문: 一つ目の理由は、子どもが娘だけだったからです。二つ目の理由は、京セラは全従業員の幸福を追求するための会社で、稲盛家のものではないからです。三つ目の理由は、世襲してもうまくいくわけがないと思ったからです。)


이나모리 회장은 딸만 셋 뒀다. 물론 딸과 사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종업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그의 말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교세라의 사시와 ‘교세라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자신의 책(‘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에서도 세습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음과 같다.


<내 경우에는 애초에 대물림 경영을 생각한 적도 없었고, 지금은 회사 자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경영 세습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면, 가업으로서 세습이 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 165쪽 인용, 김정환 옮김, 서돌출판사 2012)


경영 세습을 하지 않은 이유로 사회적 책임을 꼽은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평소에도 그런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JAL(일본항공) 회생 건이다.


2010년 JAL은 2조 3000억 엔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회생은 불가능해 보였고, 회생을 믿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 등이 삼고초려를 한 끝에 은퇴한 그를 모셔왔다. 이나모리 회장은 제안을 수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항공이 그대로 도산한다면 일본 경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일본 산업의 상징이기도 하고, 직원 수 만 명의 일자리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늙어서 일주일에 3일만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월급은 받지 않겠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사회적 책임을 ‘나 몰라라’ 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1997년 65세가 되던 해, 교토에 있는 사찰 엔후쿠지(円福寺)로 출가하기도 했다. 승적(僧籍)의 법명은 다이와(大和)다. 그가 쓴 많은 경영서에 불교적 가치관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편에 계속>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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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자동차의 1대 창업주 스즈키 미치로.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 ... <김재현 기자> (이어지는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 산에 중국시인 '도연명 미술관'이 왜?
중국 시인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모티브로 한 시가현의 '미호 미술관(MIHO MUSEUM) 전경. 작은 사진은 미술관 설계자 중국계 건축가 이오밍 페이. 일본 최대 호수 비와코 남쪽에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 이 산 기슭에 ‘미호 뮤지엄’(MIHO MUSEUM) 자리 잡아 도연명 ‘무릉도원’ 모티브...미술관 설계 중국계 건축가 별세 교토 인근 시가현(滋賀県)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琵琶湖, 비파호)가 있다. 비와코 호수 남쪽 지방에는 여러 산들이 미니 알프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라고 부른다. 이 코난 알프스의 산중에 한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최고의 자연 친화적 미술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호 뮤지엄’(MIHO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5월 17일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미호미술관(MIHO MUSEUM)을 설계한 건축가 I.M. 페이씨가 5월 16일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삼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I.M. 페이(I.M. Pei)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를 말한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Louvre Pyramid)’는 알 것이다. 그걸 설계한 이가 이오밍 페이다. 중국 광저우 태생(1917년)인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마지막 모더니즘 건축가’로 불리며 1983년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터널과 다리를 지나면 신사모양의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photo=교토트래블닷컴(kyototravels.com) 그런 이오밍 페이는 일본에서는 미호 미술관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이 미술관은 주변을 둘러싼 자연 경관을 살리기 위해 건축 용적의 80%를 지하에 매설했다. 페이는 여기에 기하학적 무늬가 만들어내는 유리 지붕을 설치, 밝은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했다. 그는 생전에 “내 작품의 열쇠는 빛(光)”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호 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은 컨셉트에 있다. 다름아닌 무릉도원(桃源郷). 시가현 박물관협회에 따르면,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의 시집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티브로 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터널과 다리에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 미술관이 개관한 건 1997년 11월. 특이한 건 미술관을 만든 주체가 신주슈메이카이(神慈秀明会, 신자수명회)라는 종교단체라는 것. 이 단체를 이끌던 코야마 미호코(小山美秀子)라는 사람이 수집한 전 세계 국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코야마 미호코는 1987년 건축가 페이와 만나 미술관 구상에 착수(1991년), 1997년에 결실(개관)을 맺었다고 한다. 2017년 루이비통이 ‘크루즈 패션쇼’를 여기서 개최하면서 미호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5월 17일, 중국 언론을 인용 “페이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사망했다”며 “그의 죽음은 아들인 건축가 리 청 페이(Li Chung Pei)에 의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3장. 오하요 일본
오늘하루도 고생많으셨어요 ㅎㅎ 내일은 현충일이군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을 위해 묵념한번 하고갈게요. 오늘은 본격적인 교토 이야기를 해보려해요 ㅎㅎ 그럼 잘부탁드려요~ 이른 아침. 한인민박답게 조식은 한식이다. 아침을 먹고 감사인사를 드린 후 오사카성으로 출발한다. 역에서 내려 오사카성으로 걸어가는 길. 몇년전에도 있었던 전통 가옥이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곳이라 살짝 거부감이 드는곳이다. 그의 동상도 있다. 과거 몇번 소실되었지만 콘크리드토 다시 지은 건물이다. 내부에는 전망대도 있다고 한다. 오사카성 주변에는 가판대가 많았다. 그중 빙수를 먹기로한다. 얼음가루에 시럽을 뿌려준다. 달달하고 시원한게 더워 지쳐가던 우리에게 청량감을 준다. 오사카성의 해자는 넓고 깊다. 산책하는사람, 운동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공원으로 꾸며두어 걷기 참 좋은 길이다. 이제 교토로 갈 시간이다. 우리는 교토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간다. 일본의 지하철은 노선마다 다른 기업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환승이 매우 까다롭다. 처음 일본에 왔을때 얼마나 길을 잃었던지... 꼭 노선의 색을 기억하도록 하자. 교토역에 도착했다. 벌써 점심때가 조금 넘은 시간. 배가 매우 고프다. 오늘 점심은 규카츠! 역 근처에 맛집이 있다고 한다. 맛집이니 놓칠수없지. 교토라 그런가 기모노나 유카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자주 보였다. 서울에서 한복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렇지않아도 요즘 서울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보인다. 정말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전통과 너무 다르다고 싫어하는데 나는 오히려 전통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통이라고 하는 한복도 사실 조선 시대 이전의 옷에서 당시의 상황에 맞게 대선한 것인만큼 특징적인 부분은 살리되 지금에 맞게 바꾼 개량한복은 정말 잘한 일인듯하다. 간편하게 입을수있게함으로써 접근성도 높여주어 오히려 인식이 더 좋아지지않았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식당에 도착했다. 주문과 함께 잠시후에 식사가 나온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정말 맛있는 규카츠다. 소스도 딱 내입맛에 맞다. 이래서 일본은 식도락여행이라고 하나보다. 우리는 식사후 숙소로 이동한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집을 하나 빌렸다. 우선 체크인을 하고 장을 좀보고나니 해가 지려한다. 교토의 첫날인 만큼 이대로 보내기 아까워 기온거리로 나간다. 기온에서 저녁을 먹기로한다. 밥먹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다 사람이 가득가득하다. 결국 일본식 중국집에 들어간다. 라멘과 챠한이라는 볶음밥위주로 파는 곳인데 우리가 선택한곳은 그냥 그런맛이었다. 식사 후 기온거리 산책을 나선다. 기온거리에서 조금 골목길을 들어가면 이런 냇가 주볌으로 술집들이 많이 늘어서있다. 분위기가 매우 좋다. 기온거리를 돌아다니며 간식거리를 샀다. 아쉽게도 늦은시간에 왔다보니 연 가게가 거의없거나 있더라도 다팔렸단다. 다음에는 좀더 일찍와야겠다 생각하며 근처 스벅에서 커피와 아까 샀던 간식을 맛본다. 교토 첫날인데 그냥 자기 아쉬워 맥주하나와 편의점 과자랑 빵을 사왔다. 내일은 본격적인 투어의 시작이니 가볍게 분위기만 즐겨본다.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⑦ 도쿄와 교토
“일본이라는 복잡미묘한 나라의 사회와 경제를 이해하는데 영화만한 도구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에 일본 영화 자료가 너무 없습니다. 일본 영화의 ‘깊은 숲'을 이루는 거대한 나무들 즉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라 쇼헤이 같은 감독들을 알려야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재팬올이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입니다. 이훈구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영화사 (주)라인앤지인 대표입니다. 홍콩킹라이언필름(KING LION HONGKONG FILM)을 설립해 중화권 콘텐츠 수입과 제작도 하는 작가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영화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훈구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의 특징인 ‘즉시 일본화’(신문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이는 것)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일본을 올바로 보자는 취지입니다. 또 최근 100년간 일본 문화의 격변기에서 그들은 어떻게 독자적인 문화코드를 만들어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영화는 어떻게 서구세계를 매료시켰는지,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이 7회로 이어집니다. 7회는 일본 영화의 양대 산맥인 도쿄와 교토의 유쾌한 경쟁, 그리고 초창기 일본 영화계를 이끈 닛카쓰와 쇼치쿠에 대한 내용입니다. <편집자주> 일본 영화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도쿄(東京)와 교토(京都)다. 교토는 헤이안 시대가 열린 794년부터 도쿄로 천도한 1869년까지 1000년이 넘게 일본의 수도였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승리로 막부시대(幕府時代)에 접어 들면서 자연스럽게 덴노(天皇)가 머무는 교토와 쇼군(將軍)이 머무는 도쿄(에도)는 서로 라이벌 관계에 놓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수도를 옮기기는 했지만 덴노가 머무는 교토의 상징성 때문에 정신적 수도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도쿄로 수도가 천도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토의 오랜 건물들과 유적들은 정신적 재산으로 남았다. 오늘날까지도 헤이안 시대~가마쿠라 시대의 문화유산들은 수많은 시대극(時代劇, 지다이게키)의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후루카와마치(東古川町)의 경우, 시대극 뿐만 아니라 현대극(現代劇, 겐다이게키)에도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보존성이라는 가치 때문에 교토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영화 촬영 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게다가 1923년의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도쿄의 영화 관련 시설과 필름 등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작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교토에 치중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2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와세다 대학이 의대에 '목 매는' 이유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10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게이오대의 한 해 기부금(2016년 결산)은 87억3900만 엔, 와세다대는 30억9500만 엔이었다. 명문 사립 라이벌인 두 학교의 기부금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왜일까. 이유는 의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게이오대 의대는 일본의 1% 학생들이 들어가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반면 와세다대는 사립 최고 종합대학 자리에 있으면서도 의대가 없다. 기부금이 많은 상위 20개 일본 사립대 중, 의학부를 가진 곳은 13개 학교다. ‘기부금=의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 기부금의 ‘큰 손’은 의대 입학 학생을 둔 부유층 가정이 대부분이다. 문과 중심의 대학에서 거둬들이는 기부금과는 자릿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와세다대가 의대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세다대의 한 졸업생(OB)은 이렇게 말했다.(시사매체 슈칸겐다이 11월 7일자 보도) <“대학 브랜드 제고와 재정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의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틀림없이 와세다의 간절한 소망이다. 의대가 생긴다면, 말 그대로 범에 날개를 단 격으로, 의학부를 가진 게이오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 된다.”> (원문:「大学ブランドの向上と財政基盤強化のためには、のどから手が出るほど作りたい学部。まさに早大の悲願だ。医学部ができれば文字通り鬼に金棒で、医学部を持つ慶應義塾大学に引け目を持たなくて済むようになる」) 그럼, 와세다는 왜 의대를 만들지 않았을까. 슈칸겐다이는 “메이지 시대의 자유민권운동을 이끈 와세다대 설립자 오쿠마 시게노부는 정치인 육성을 중시해 의학에 관심이 없었다고도 전해진다” (明治期の自由民権運動を牽引した早大創設者の大隈重信は政治家育成を重視し医学部には興味がなかったとも伝えられる)고 보도했다. 오쿠마 시게노부(1832~1922년)가 와세다대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를 설립한 건 1882년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당대의 권력자였다. 두 번이나 총리(8대, 17대)를 지낸 그는 1907년 정계를 은퇴하고 와세다대 총장에 취임했다. 슈칸겐다이에 따르면, 1961년 국민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와세다대의 ‘의대 인수설’이 계속 흘러 나왔다고 한다.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었던 사례가 2008년 도쿄여자의대와의 제휴였다. 슈칸겐다이는 “두 대학의 제휴는 ‘와세다의 의학부 설치 포석’이라는 견해도 있었다”며 “그 후에도 ‘의료 사고 발생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도쿄여자의대를 와세다가 합병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관측이 난무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소문이 나돌긴 했지만 성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여자의대측에서 반발이 있었던 것. 현재, 와세다대의 오랜 소망은 좌초된 상태다. 슈칸겐다이는 의대 인수설과 관련 “라이벌도 있다”며 “주오(中央)대학과 도시샤(同志社)대학도 의대를 갖고 싶어한다. ‘좋은 매물’이 나올 경우,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와중에 11월 5일, 와세다대의 새로운 총장이 취임했다. 정치경제학부의 다나카 아이지(田中愛治) 교수다. 와세다의 정치경제학부에서 총장이 탄생한 것은 50년 만이라고 한다. 다나카 총장은 전전(戰前)엔 일본 공산당 중앙위원장으로, 전후(戰後)엔 ‘우익의 해결사’라고 평가받는 다나카 세이겐(田中清玄)의 아들이다. 아사히신문의 자매매체 아에라닷컴(6월 30일자 보도)은 “다나카 교수는 대담한 구상을 안고 있다”(田中教授は大胆な構想を抱いている。)며 “의대를 인수해 와세다 대학 의학부를 만들고 싶은 것”(医科大学を買収し、早稲田大学医学部をつくりたいのだ。) 이라고 했다. 슈칸겐다이는 “다나카 총장이 의대를 보유할 비책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고교야구 고시엔과 오키나와 반환 운동
열도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100년 역사의 ‘여름 고시엔 대회’가 막을 내렸다. 효고(兵庫)현 고시엔(甲子園)구장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경기장의 이름을 따 고시엔 대회라고 불린다. 3~4월 열리는 ‘봄 고시엔’(선발고교야구대회)와 8월에 개최되는 ‘여름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이 있지만, 대개 고시엔하면 여름 대회를 말한다. 고시엔 대회는 효고현 나루오 구장에서 열렸다. 대회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객 수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시엔 구장이 1924년 들어섰다. 10회 대회부터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고시엔 구장은 프로구단인 한신의 홈구장이기도 하다. 고시엔 대회가 열리는 동안은 한신 은 구장을 옮겨 경기를 치른다. 그만큼 고시엔의 인기는 프로 못지않다. 그런 고시엔이 일본 고교 야구선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출전 선수들은 시합에 지면 눈물을 머금으며 고시엔 구장 그라운드의 흙을 담아간다. 그해 여름의 뜨거웠던 고교 청춘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선수들에겐 평생 ‘가보’와도 같은 상징물이다. 그럼, 선수들이 매번 가져가는 흙은 어떻게 보충할까. 또 이 흙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일본 스포츠매체들에 따르면, 선수들이 1년 동안 가지고 가는 양은 약 2톤에 달한다고 한다. 가지고 간 양만큼 다시 보충이 된다. 고시엔의 흙은 흑토와 모래를 혼합한 흙이다. 오카야마, 미에, 가고시마, 오이타, 돗토리현 등 전국 각지에서 엄선된 흙만 가져온다. 모래의 경우는 중국 복건성에서 들여온다고 한다. 봄과 여름 대회를 치를 때, 흑토와 모래의 비율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비가 많은 봄에는 배수를 좋게 하기 위해 모래가 많이 사용된다. 빛 반사가 심한 여름에는 공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흑토를 많이 넣는다. 그런데 이 고시엔의 흙과 관련, 일본의 쓰라린 역사가 있다. 바로 오키나와다. 오키나와의 고등학교들은 한때 고시엔에 출전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출전은 했지만, ‘상징물’인 흙을 갖고 갈 수 없었다. 여기엔 이런 사연이 있다. 고시엔 구장의 흙 과 오키나와 슈리고교생들의 눈물. 태평양전쟁이 끝났지만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지 않고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미국령이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고등학교들은 고시엔 대회에 나갈 수 없었다. 마침내 첫 출전이 이뤄졌다. 1958년 8월 40회 대회였다. 첫 출전 영광의 학교는 오키나와의 슈리(首里)고교. 하지만 슈리고는 1회전에서 후쿠이현의 강호 쓰루가(敦賀) 고교에 1대3으로 패하고 말았다. 슈리고 역시 고시엔의 전통대로 흙을 가져가기로 했다. 선수 몇 명이 비닐 봉지에 흙을 담아 갔지만,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본토의 흙을 반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는 미국법을 적용받는 땅이었다. 그런 미국법에 따라 ‘식물 검역법’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선수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소중히 가져온 고시엔의 흙을 고스란히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기적과도 같은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사연을 접한 항공사의 한 여성 승무원이 고시엔 구장의 작은 돌 40개를 오키나와에 전달한 것이다. 당시 검역법에 따르면, 흙은 반입이 금지되지만 돌은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슈리고의 고시엔 출전 기념비에는 지금도 이 ‘고시엔 돌’이 박혀 있다고 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슈리고 사건이 계기가 되면서 오키나와 반환 운동이 한층 달아 올랐다. 1960년 오키나와 조국복귀협의회(縄県祖国復帰協議会)가 결성됐고, 본격적인 대중운동이 힘을 받았다. 운동은 오래 걸렸다. 드디어 12년 뒤인 1972년, 오키나와 반환이 이뤄졌다. 드라마틱한 일은 2010년 봄과 여름에 연이어 일어났다. 2010년 오키나와의 코난(興南)고교가 봄 고시엔과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한 것이다. 오키나와로서는 ‘고시엔 흙 반입 거부 사건’(1958년)에 이어 50년 만에 거둔 최고의 경사였다. <일본 도요(東洋)대 유학생 이모씨>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후쿠오카_마린월드
최근에 일본 후쿠오카를 갔다 왔어요. 다녀오고나니 한일관계가 더 악화되어있어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올립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후쿠오카에서 제일 좋았었던 마린월드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요금 대인 및 고등학생: 2,300엔, 중학생: 1,200엔, 초등학생: 1,000엔, 유아: 600엔, 만4세 미만 무료 이제 내부의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아쿠아리움에 딱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수조에요. 빛에 투영되는 물의 번짐과 색이 이뻐서 보자마자 와 하는 탄성이 나왔어요. 갯벌을 재현해놓은 곳도 있구요. 바다거북이도 자세히 볼 수 있어요. 푸른빛을 배경으로 한정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을 보며 웃고있는 역설 구마모토 산간부의 샘물을 재현한 곳으로 아소물의 숲이라는 공간이에요. 아쿠아리움의 구성이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구성 및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느껴졌어요. 특히 대형수조는 아, 너무 좋았어요. 푸른빛이 몸에 스며드는 것도 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것도 그 모든게 다 말이죠. 파란색이 우울을 상징한다면, 하늘도 바다도 파란색인 이 지구에서 우울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네요. 그렇죠? 아, 그래 우리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은 행성 지구에 살고 있다. -우주의 방 (by 여태현 작가)에서 발췌한 내용 정어리 태풍쇼의 모습 중 일부에요. 먹이통을 흔들어 정어리를 유인한 뒤 그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와 싶었어요. 가오리는 먹이를 달라고 자꾸 오는데 상어는 시크하게 지나가는 일련의 모습들을 보는게 재밌었어요. 이번에는 해파리를 보여 드릴게요.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는 생물체라지만 아쿠아리움에서의 해파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요. 유영하는 해파리 자체발광하는 해파리는 처음 봤어요!!!! 해파리 넌 너무 매력적이야 해파리에 빠져 황홀해있다가 얘네 보고 빵 터졌어요. 모래 속에 몸을 박은 채로 계속 저러고 있는데 귀엽기도 하고 뭐랄까...웃음을 자꾸 유발해요. 해파리 다음으로 좋았던게 말미잘이었어요. 하나하나의 세포들이 각기 다른 움직임으로 공존한다는 것, 물 속에서 자유로이 흔들린다는 것. 니모를 찾아서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빛의 가오리떼 내부 구경을 다하고나서 바다표범과 돌고래쇼를 보러 나왔어요. 아이스크림(400엔)을 먹고나니 쇼가 시작되었어요. 돌고래쇼가 시작하기 전 바다표범의 장기를 볼 수 있어요. 제자리에서 돌기, 박수치기, 고개 돌리기, 무게 중심 잡기 등을 보여줘요. 돌고래 쇼 중 공 던지기도 있었구요. 빠른 속도로 헤엄치던 돌고래들이 동시에 딱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모습도 있었어요. 이렇게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어요. 특히 360도 회전하는건 진짜 신기했어요!!!! 감탄의 감탄을 연발했던 돌고래 쇼였어요. 동물에 대한 자유 억압과 학대에 의해 쇼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아무 생각없이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으시다면 마린월드에 가시는 걸 추천드려요. 오랜만에 편히 웃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아쿠아리움에서의 시간을 기록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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