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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1도’ 관심 없는 일본 젊은이들


도요타가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면 자동차를 자유롭게 골라 탈 수 있는 정액제를 실시한다고 1일 발표했다. 서비스의 이름은 ‘긴토(KINTO)’. 예를 들면, ‘오늘은 렉서스, 내일은 SUV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런 서비스를 일부 시행하고는 있지만, 일본 기업이 도입하기는 도요타가 처음이다. 도요타는 정액제와 더불어 ‘카쉐어링’(차량 공유)도 함께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30분에 OO엔으로 예약’한다는 식이다. 도요타는 전국 판매점에 전시된 약 4만대의 시승용 차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소유’에서 ‘공유’로 전략 변화를 꾀한 도요타의 발표는 축소되는 자동차 판매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90년 777만대였던 일본 자동차시장의 신차 판매 수는 2017년 523만대까지 떨어졌다. 특히 젊은 층의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일본자동차공업회 조사에 의하면 ‘자동차 구입 의사가 있다’고 밝힌 독신 젊은이들은 12%에 불과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월 2일 “젊은 층의 차에 대한 관심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며‘구루마 바나레’(クルマ離れ)를 지적했다. 이는 젊은이들의 ‘자동차 이탈 현상’을 말한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00년대 전후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통해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여다 봤다.


일본 50~60대들에게 자동차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애지중지한다는 뜻에서 애마(愛馬)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2008년의 리먼 쇼크(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의 영향으로 소비자 마인드에 급격한 위축이 생겼다는 분석이 많다. 거기다 휘발유 가격 급등과 소비세 증가가 더해졌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젊은 층에게 자동차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자동차공업회가 201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10~20대 젊은이 중 50% 이상이 “차를 사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

자동차 구입을 꺼리는 주된 이유는 돈이다. ‘돈을 쓰는게 아깝다’(お金を使うのがもったいない), ‘취미도 없고, 없어도 곤란하지 않은 자동차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趣味でもないし、なくても困らないクルマにお金を使うのがもったいない)는 의견이 많다. ‘면허취득에 30만 엔 등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고, 쓸데없는 세금이 너무 많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제 그들에게 자동차는 ‘사치품’으로 여겨진다. ‘사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살 수 없는 사람도 많다’(買いたくないじゃなくて買えないって人も多い)는 것이다.


젊은 층의 취미가 다변화 한 것도 한 원인이다. 옛날과 달리 취미의 폭이 다양해졌는데, 그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다. ‘자동차에서 스마트 폰으로(クルマからスマホへ)으로, 도구가 세대교체(ツールにおける、世代交代)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새로운 ‘욕망 충족 도구’(欲求充足ツール)로 자리를 잡으면서 자동차가 그 자리를 회복하기는 어렵게 됐다.


‘대출을 끼고 자동차를 사고, 아웃 도어를 즐기자’(ローンを組んで自動車を買い、アウトドアを楽しもう)라는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집에서 적당히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家の中でそこそこの満足感が得られるし) 안전하고, 안심하고, 또 금전적 위험이 낮은 도구(安全で安心で金銭的リスクも低いツール)인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이다.


가치관도 변했다. 자동차의 편리성은 인정하지만, 굳이 차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렌터카 나 카쉐어링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마스’(MaaS)다. 마스는 Mobility as a Service의 약자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돈을 주고 이용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러니 ‘데이트 드라이브도 렌터카로 충분하다’고 한다. 요컨대, 자동차가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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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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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고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가 와인의 나라인 만큼, 물보다 더 많이 마신게 와인입니다. 혀가 절여지는 느낌까지 받았죠. 자주 들른 가게에서 와인을 사와서 '입에 머금고' 작업하곤 했어요." 실제로 그의 공방에는 와인 행거에 와인이 여러 병 꽂혀 있다. 와인 이름들이 흔하지 않았다. 그럼, 고양이는 왜일까. 조 디자이너는 12살짜리 ‘레아’라는 이름의 프랑스산 고양이와 함께 산다. 덩치가 엄청나다. “제 유학생활을 온전히 함께 했죠. 귀국 하려는데 12년 키운 이 녀석을 도저히 두고 오지 못하겠더군요. 다행히 한국에서도 적응 잘하고 있고 제게도 여전히 힘이 되고 있죠.” 긴 대화지만, 한 마디만 더 물었다. 조 디자이너의 꿈은 옷을 만드는데 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패션을 통한 기부 활동이 제가 꿈꾸고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디어가 달릴 때는 ‘검색’보다는 ‘사색’을 통해 답을 찾는다는 조아라 디자이너. 그와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린 결론. “그의 브랜드 아크(ARCH)가 불꽃을 튀기며 솟아 오를 날이 머지 않았구나.”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창업자 데릴사위가 키운 스즈키 자동차
스즈키 자동차의 1대 창업주 스즈키 미치로.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 ... <김재현 기자> (이어지는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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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도쿄올림픽 방사능 위험 경고하는 서적 출판 도쿄올림픽 개최 중지 요구 온라인 서명운동 벌이기도 SNS에서는 도쿄올림픽 풍자한 '상상도' 10만 공감 육박 (사진=change.org, 세븐넷 캡처) 논란투성이인 2020 도쿄올림픽에 일본 시민들의 내부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13일 일본의 한 시민단체는 '도쿄올림픽이 가져올 위험'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은 통제 가능하고 도쿄에는 어떤 영향도 없었고 없을 것"이라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다. 일본 내 전문가들과 피난민들의 인터뷰를 실어 도쿄올림픽의 방사능 피폭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해당 서적은 17일 현재 일본 유명 온라인 음반·서적 구매사이트인 세븐넷의 '사회 문제 기타' 분야에서 판매량 6위를 차지했다. 그런가하면 SNS 상에서는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개최 중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등장했다. 이 서명운동을 제의한 네티즌은 개최 중지 이유로 황당한 폭염 대책, 지나치게 높은 올림픽 예산, 뇌물 의혹,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문제 등을 꼽았다. 특히 방사능 문제의 경우 "오히려 부흥을 방해하는 올림픽이다. 아베 총리의 새빨간 거짓말에 유치한 올림픽인데 피난민들은 현재 다른 지역 방사선량의 몇십 배에 달하는 후쿠시마로 귀환해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SNS 캡처) 자신을 정신과 의사라고 밝힌 한 일본 네티즌은 '도쿄올림픽 상상도'를 트위터에 올려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도쿄올림픽을 풍자한 이 그림은 4만6천번 공유됐고, 9만2천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도쿄올림픽의 각종 문제점을 압축시킨 내용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공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4개 섹션으로 구분된 그림에는 '똥물' 논란을 빚은 오다이바 수영장, 땡볕에 지친 선수들, 관중석에서 휘날리는 욱일기, 뇌물을 손에 쥔 도쿄올림픽 관계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깃발까지 등장해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가 일맥상통한다는 의미를 전했다. 이 그림을 올린 네티즌은 "어느 정도의 개연성으로 현실이 될 이 지옥도를 회피할 간단한 해결법이 있다. 중지 혹은 2개월 정도의 연기"라고 조언했다. 반발하는 네티즌들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정확한 표현력에 감탄했다. 설마 21세기 일본이 여기까지 추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상이나 소설이 아니라 현실적인 미래의 광경" 등의 동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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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TOYOTA)자동차도 혼다차와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차는 사정이 좀 다르다. 창업 초기, 브랜드명이 도요타(TOYOTA:トヨタ)가 아닌 도요다(TOYODA:トヨダ)였다는 걸 알고 있는가? 창업 가문의 성(豊田)은 도요다(トヨダ, とよだ)라고 읽는다. 창업의 토대를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とよだ さきち)와 실질적 창업주인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とよだ きいちろう)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 가문의 성을 따서 도요다(トヨダ)라고 했다. 영문명도 TOYODA가 됐다. 창업 당시인 1935년 7월 TOYODA로 상표등록을 했다. 1년 뒤인 1936년 도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엔 알파벳 TOYODA 엠블럼이 장착됐다. 하지만 미국 수출을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TOYODA 발음이 문제였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는 외국인이 영어 회사명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TOYOTA(トヨタ)로 바꾸도록 지시했다.(아사히신문 특별 취재반 저 ‘도요타시 1번지’) 도요타 사사(社史)에 따르면, TOYODA(トヨダ)에서 TOYOTA(トヨタ)로 바꾼 다른 이유 3가지가 더 있다. ①‘상업,미술적으로 봐서 촉음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쾌하고, 말의 음색(소리의 울림)도 좋다(商業美術的に見て、濁点を付けないほうが、さわやかであり、言葉の調子(音の響き)も良い)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야쿠시마 방문기③/ 이끼로 도배된 초록숲
<2편에서 계속> 야쿠시마 여행의 묘미는 ‘숲 트레킹’이다. 그 숲을 제대로 보려면 야쿠스기랜드, 시라타니운스이계곡, 조몬스기 코스 등 세 가지를 다 보는 게 좋다. 야쿠스기랜드에서는 천천히 걸으면서 여유를,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히메)의 배경지인 시라타니운스이계곡에서는 신비함을, 야쿠시마의 상징 조몬스기가 있는 코스에서는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야쿠시마를 두 번 방문하고서야 알았다. 세 코스가 제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걸. 역시 비를 피해갈 순 없었다. 시라타니운스이계곡과 조몬스기 코스에선 비옷을 입은 채 우산을 들고 산을 올랐다. 물 먹은 나뭇뿌리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끝장. 단단히 발 아래를 주시하며 걸었다. 시라타니운스이계곡은 녹색 숲을 즐기기엔 그만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끼가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야쿠시마를 찾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조몬스기. 예전에는 7200살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과학적 방법으로 실제 측정 해보니 이 할아버지 삼나무의 나이는 2700살 정도란다. 조몬스기를 찾았던 그날도 전망대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신령스러운 삼나무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몬스기 코스는 과거 벌채한 삼나무를 실어 나르던 철길을 2시간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왕복 4시간을 꼬박 걸어야 하는 셈. 야쿠스기랜드를 찾은 날은 비 대신 안개를 만났다. 몸은 희뿌연 안개에 젖고, 마음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었다. 그것도 충분히 흠뻑. 세 코스를 돌다보면 야쿠시마 원숭이, 사슴과 자주 마주친다. 이 섬에는 ‘사람 2만, 원숭이 2만, 사슴 2만’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모두가 어울려 사는 섬이다. 지인이 민박집에 부탁해 여사장님의 소형차를 빌렸다. 그 차를 타고 이틀 동안 섬을 일주했다. 야쿠시마에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라는 농부시인의 집도 방문했다. 그는 오래전 고인이 됐다. 지금은 그의 아내가 집을 지키고 있지만, 찾아간 날은 70세가 넘은 산세이의 남동생분이 안내를 해줬다. 야쿠시마, 철학, 자연 등에 대해 많은 책을 쓴 산세이의 서재에 들어서자 책 냄새가 코 끝으로 스며들었다. 오래된 흔적들의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주인 없는 서재를 둘러보며 한 개인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 책상 위에 방명록이 있었다. 산세이의 남동생분이 기록을 남겨도 좋다고 했다. 짧게 몇 줄 적었다. 다음 방명록을 쓰는 한국인이 있다면 누군가 내 이름을 볼 것이다. 이 또한 보이지 않는 인연이 아닐까. 산세이 남동생분의 배웅을 받으며 골짜기를 내려왔다. 한 가지 물음을 안고. ‘우리는 어떤 삶을, 우리는 어떤 인연을 맺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4편에 계속>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의 선구자들⑥/ 인스턴트 컵라면 개발자
... 인스턴트 컵라면을 만든 안도 모모후쿠 일본 닛신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1910~2007). 그는 일본 식민지 시대 대만에서 출생한 대만인이다. 중국식 이름은 오백복(呉百福). 1966년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안도 모모후쿠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건 1958년 8월 25일이다. 패전 이후 먹거리 부족으로 허덕이던 시절에 ‘치킨라면’이라는 이름으로 첫 상품이 일본에 출시됐다. 일본의 선구자 6편은 인스턴트 컵라면 개발자 안도 모모후쿠다. 한 단계 진일보한 컵라면이 개발된 건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71년 9월 18일,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일이다. 컵라면의 이름은 ‘컵누들’이었다. 세상에 없던 컵라면은 처음부터 잘 팔렸을까. 그렇지 않다. 안도 모모후쿠는 컵라면 개발 40년 후인 2001년 9월, 니혼게이자이에 ‘나의 이력서’라는 글을 연재한 바 있다.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971년 9월, 자신감을 갖고 컵누들을 내놓았지만, 슈퍼마켓이나 소매점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젊은 영업 사원들을 중심으로 팀을 짜서 음식 관련 장소가 아닌 백화점, 놀이공원, 철도가판대, 관공서, 경찰, 소방서, 자위대, 마작 가게, 오락실, 여관까지 돌게 했다. “팔렸습니다”라는 첫 번째 낭보가 날아든 것은 사이타마현의 육상 자위대를 돌고 있던 사원으로부터다. 연습장 온수차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대원들에게 보급됐다.> <사진= 컵라면 개발 당시의 안도 모모후쿠(왼쪽). 컵라면은 인질극 사건이 계기가 돼 대박을 터트렸다. 기동대원들이 컵라면을 먹는 모습(오른쪽) 사진=닛신식품 인질극 사건이 가져다 준 뜻밖의 대박 모모후쿠씨는 “그런데 단번에 수요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며 “1972년 2월 연합적군에 의한 아사마산장 사건이었다”고 했다. 모모후쿠씨가 언급한 아사마산장 사건은 도대체 뭘까. 이는 1972년 2월 19일, 일본의 신좌익 조직 연합적군(連合赤軍) 멤버 5명이 나가노현의 산악 지역에 있는 아사마산장(浅間山荘)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말한다. 산장을 포위한 경시청 기동대와 나가노현의 경찰 기동대는 열흘 동안 범인들과 대치하며 구출작전을 시도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급기야 기동대는 사건 열흘 째인 2월 28일 돌입 작전을 감행했다. 범인 5명 전원을 체포하긴 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명을 포함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열흘 간의 대치전에서 기동대가 가장 애를 먹은 것은 날씨였다. 영하 15도의 강추위가 계속됐다. 그런 탓에 기동대원들에게 배급된 도시락은 얼어 버려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급된 것이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닛신식품의 컵라면이었다. 안도 모모후쿠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눈 속에서 산장을 포위한 기동대원들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컵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그게 TV 화면에 반복적으로 클로즈업됐다. 당시 컵누들이 납입 된 것은 경시청 기동대 뿐이었다. 사건이 나면서 다른 경찰들과 보도진으로부터 즉시 보내 달라는 전화가 직접 본사에 걸려왔다. 그런 사실도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진압 작전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일인 2월 28일 NHK는 연속적으로 10시간 20분에 걸쳐 현장을 생중계했다. 안도 모모후쿠씨는 “오후 6시부터 7시까지의 체포 장면 시청률은 66.5%에 달했다”(犯人逮捕を挟む午後6時から7時の視聴率は66.5%に達した)고 했다. 당시 NHK의 특별 프로그램 시청률(50.8%)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보도 특별 프로그램의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컵라면 출시 1년 만에 매출 34배 뛰어 경이적인 시청률은 닛신식품에겐 엄청난 호재가 됐다. 그 생중계 장면을 지며본 시청자들은 “저 사람들(기동대원들)이 뭘 먹고 있는거야?”(彼らは何を食べているの?)라며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모모후쿠씨는 “TV 생중계 장면은 해당 상품의 지명도를 한꺼번에 높였다”고 했다. 그런 홍보 효과는 곧바로 매출로 이어졌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후 컵누들은 불이 붙은 듯 팔려 나갔고 생산이 따라 가지 못했다. 컵라면 매출은 출시 때인 1971년에는 2억 엔이었지만 사건 후인 1972년에는 전년 대비 33.5배인 무려 67억 엔이나 되었다”>(カップヌードルは火がついたように売れ出し、生産が追いつかなくなった。カップヌードルの売上は発売開始時の1971年には2億円だったのに対して、事件後の1972年には前年比33.5倍の67億円になっている。)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 기차여행을 위한 유용한 툴과 참고도서
일본 기차여행에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일본 기차여행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툴과 정보가 될 만한 책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시각표(時刻表) 일본에서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시각표(時刻表)’라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각표’에는 일본의 모든 기차들의 시간표가 작은 글씨로 빼곡히 씌어 있는데, 성경책보다도 많이 팔린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시각표를 들고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은 ‘고수’ (혹은 오타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미리 기차여행의 코스와 시간을 다 조사해서 가기 때문에 시각표를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어떤 분은 수년전에 “인터넷이 편한 건 알지만, 시각표를 넘겨가며 줄을 긋고 행선지를 상상하는 기분을 결코 대체할 순 없다. 초속 5센티미터의 주인공처럼.”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언젠가는 아무런 사전 계획 없이 시각표만 들고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2. HyperDia HyperDia는 인터넷 환경에서 PC나 모바일로 검색하는 일본 열차 시각표입니다. 출발역, 도착역, 날짜와 시간을 기입한 후에 검색하면 추천하는 경로들을 시간 순으로 나타내줍니다. 각 경로의 출발과 도착 시간, 환승역, 열차 종류, 소요 시간, 요금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어와 영어 버전이 있고, PC는 무료인데 모바일은 유료입니다. 모바일 HyperDia 1년 사용료는 21,000원입니다. 3. 전국철도여행(全国鉄道旅行) 일본 전국의 JR과 사철이 다 나와 있는 철도 노선도입니다.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의 전국 철도 노선도가 1장의 자바라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행 갈 곳에 어떤 철도와 역이 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4. 에키벤 ~철도 도시락 여행기~ (하야세 준. AK. 원제 駅弁ひとり旅)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인데, 한국어 번역판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일본 기차여행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고 있는 책입니다. 일본 열도는 물론 오키나와, 대만, 사할린까지 철도, 역, 에키벤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이고도 풍부하게 나와 있습니다. 각권의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권 : 규슈(九州) 2권 : 시코쿠(四国)/추고쿠(中国) 3권 : 간사이(関西) 4권 : 홋카이도(北海道)1 (남부 및 중앙부) 5권 : 홋카이도(北海道)2 (동부) 6권 : 홋카이도(北海道)3 (북부) 7권 : 도호쿠(東北)1 (아오모리, 아키타) 8권 : 도호쿠(東北)2 (이와테, 미야기) 9권 : 도호쿠(東北)3 (야마가타, 후쿠시마) 10권 : 기타칸토(北関東) 11권 : 추부(中部)1 (나가노) 12권 : 추부(中部)2 (기후) 13권 : 도카이(東海)1 (나고야) 14권 : 도카이(東海)2 (시즈오카, 야마나시) 15권 : 간토(関東) 별권 : 대만+오키나와편 5. 저스트고 낭만의 일본 기차 여행 (박정배. 시공사) 출판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방대한 정보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책입니다. 비록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중고로 구할 수 있습니다. 6. 기차홀릭 테츠코의 일본철도여행 (문정실. 즐거운상상) 이 책도 출판된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많은 아기자기한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책 제목의 테츠코(鉄子)는 여성 철도 매니아를 일컫는 말입니다. 남성 철도 매니아는 텟짱(鉄ちゃん)이라고 부릅니다. 7. 일본 철도 명물 여행(이토 미키. 에디션더블유) 여성 감성의 기차여행 코스에 대한 정보를 예쁜 그림과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8. 홋카이도 보통열차 (오지은. 북노마드) 기차를 좋아하는 가수 오지은 씨가 보통열차를 타고 홋카이도의 구석구석을 2,400km의 거리를 달린 여행기입니다. 그녀는 29살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하였고, 여행하면서 느낀 청춘과 기차에 대한 생각을 일기처럼 썼습니다. 9.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김혜원. 씨네21북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한 달간 일본 전국 기차여행을 하면서 스케치한 그림을 중심으로 한 여행기입니다. 10. 일본기차여행 (인페인터글로벌. 꿈의지도)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기차여행하기 좋은 일본의 38개 도시와 기차역과 역 주변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일본의 지역 구분
올 여름 해외여행 필수 어플리케이션 모음!
1.항공권은 어디가 제일 싸지? 자유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항공권 어플을 꼽으라면 바로 ‘스카이스캐너’ 일 것이다. 저가항공에 대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출발 날짜 전후의 다른 날짜 항공권의 가격추세도 제공하고 있다. 사용하기 편리한 UI와 기능에 충실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인기가 높다. 2.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 ‘에어비엔비’는 숙박의 개념을 바꿔 놓은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다. 숙박은 원래 호텔과 모텔 펜션 등 에서만 이뤄진다는 고정관념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숙박만으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향상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현지인과 관계를 맺고 그 지역만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필수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다. 3.가까이 있는 맛집은 어디? ‘트립어드바이저’는 전세계 여행자들의 리뷰 수가 무려 1억 건이 넘을 정도로 다른 어플의 리뷰와는 그 수를 견줄 수 없을 정도이다. 호텔과 명소 맛집의 정보를 제공한다. 전 세계 유저들이 어떤 호텔과 맛집에서 만족을 느꼈는지 알고 싶다면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간단 검색만으로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작성한 리뷰도 다른 여행자들을 위한 팁이 되어 줄 것이다. 4.여행지도는 무엇을 고르지? ‘구글맵스’는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필수가 된 어플리케이션이다. 물론 국내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국내 포털 서비스의 지도가 더 우수하다. 하지만 해외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중교통 시간표까지 제공되어 단순 지도정보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도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와이파이나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 자유롭지 못한 지역을 다닐 때도 요긴하다. 5.해외에서 꿀잠은 어떻게 청하지? 한국에서 개발한 ‘슬립셋(SLEEP SET)’은 개인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나에게 맞는 수면소리를 추천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다. 매일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기술은 스마트폰의 중력센서와 가속센서를 활용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완성시켰다. 슬립셋에 내장된 약 100여종의 숙면사운드는 모두 적정 주파수 스펙트럼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거친 후 최소 100여 차례 이상의 실제 반복청취 테스트를 마쳤다. 이후 최종단계에서는 일반적인 수면장애 환자들에게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예측을 위해 수면클리닉 전문의의 감수를 받았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ASMR(자율감각쾌락반응)등의 사운드가 내장되었고 바이노럴비트가 탑재되어 있다. 한번의 다운로드로 인터넷 접속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슬립셋은 에어플레이모드로 사용이 가능하다. 장거리 이동 중의 꿀잠을 책임질 것이다.
왕세자 저격 미수 사건과 방탄차
1990년 11월 12일, 도쿄의 궁성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퍼레이드식이 펼쳐졌다. 검정색 오픈카를 탄 일왕 부부는 길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퍼레이드에 사용됐던 오픈카는 그해 영국에서 4000만 엔에 구입한 롤스로이스 코니쉬 차종이었다. 3년 뒤인 1993년 6월 9일,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도 이 오픈카가 사용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내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가을에 역시 즉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롤스로이스 오픈카가 동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입한지 28년 동안 단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 차는 연식이 오래돼 현재 주행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국산차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굳혔다. 현재 외국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왕실의 공식 의전차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다. 즉위 퍼레이드에 사용되는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갖는다. 일본 전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이 퍼레이드용 오픈카로 도요타에 특별 주문을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의 차종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 1대: ‘영일 동맹’ 맺은 영국의 다임러 차종 선택 과거 일본 왕실에서 사용했던 차종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변해왔다. 왕실의 전용 의전차를 ‘어료차’(御料車: 일본어로는 고료샤)라고 한다. 왕실 전용차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大正) 일왕 때부터다. 당시 국가 원수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유럽에 조사단이 파견됐다. 다임러, 벤츠, 피아트 등 회사를 방문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영국의 다임러(독일 다임러와는 별개)였다. 다임러가 선정된 것은 당시 일본과 영국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동아시아 이권을 나눠 갖기 위해 체결한 조약)을 맺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12년 다이쇼 일왕 즉위식엔 다임러 란도레(Landaulet)라는 차가 사용됐다. 당시 영국 왕실도 다임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같은 모델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 차가 일본 왕실의 ‘1대 의전차’다. █ 2대: 왕세자 암살 미수에서 롤스로이스 유리창 뚫려 ‘2대 의전차’가 도입된 건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 차종 2대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롤스 로이스를 수입한 2년 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도라노몬’(虎ノ門) 사건이다. ... (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서울 성수동 블루보틀과 도쿄 롯본기 블루보틀
<사진=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그 호들갑스런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그 비싼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갔다.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은 노(NO). 주말과 휴일은 피해 평일로 택했다. 애플 신상품을 ‘득템’하기 위해 밤을 새거나 장시간 기다리는 장면은 종종 들었다. 하지만 기껏 커피 한 잔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니었다. 오픈(3일)이후 그런 광경은 내내 벌어졌다. ‘커피계의 애플’. 스페셜커피 블루보틀 매장으로 찾아간 건, 8일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지하철 뚝섬역에 내렸다. 역에서 불과 50미터. 큰 붉은 벽돌 건물보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50여 명이 4겹 줄을 서서 대기 중.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게 없다. 성수동 특유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 천장. 1층에서 대기하고 계단을 통해 지하1층 매장으로 내려갔다. 커피 데스크에 핸드드립기가 6개. 바리스타가 순서대로 즉석에서 ‘핸드드립’ 중. 아메리카노 기본(블렌드)을 주문했다. 5000원. 스타벅스의 숏사이즈(3600원) 톨사이즈(4100원)와 비교하면 꽤 비싼 편. ‘5’자가 주는 부담감도 크다. 평일임에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정확히 9시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다. ‘득템’. 커피 양은 스타벅스 숏사이즈의 절반. 한 눈에 봐도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는 ‘한약’같다고 했다.) 맛을 잠시 음미하는 사이,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커피 취재를 온 잡지매체의 기자란다. 연배 어린 후배기자에게 인터뷰 당하는 영광을 누렸다. 블루보틀 맛에 대한 평가는 짧은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한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스벅마니아’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한 잔씩.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쌉싸름한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으로 치자면,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같은 적절한 산미가 느껴진다.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줄 서는 일만 없다면 다시 찾을 것 같다.” “(‘블루보틀 커피가 유명한 건 왜일까요’라는 질문에) 성수동에 1호점을 낼 것이라는 입소문을 낸 게 오래됐다. 금방 매장을 열 수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커피팬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켰다. 파란 병 로고에는 굳이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파란 병=블루보틀’이라는 인식이 커피 팬들을 줄 세웠다고 본다.” 30분 동안 매장을 지켜본 후 나왔다. 밖엔 여전히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한 시간 뒤. 블루보틀 잔향이 혀에 그때까지 머물렀다. 오전 11시, 혀를 헹구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편집인> (아래는 도쿄에 거주하는 정희선 객원기자의 롯본기 블루보틀 ‘맛 평가기’입니다. ) <사진=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정희선 객원기자=일본기업 분석 애널리스트>커피 맛은 호불호가 강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에 블루보틀은 더하다. 내 경우, 유학 때문에 몇 년 미국에서 지냈지만 커피를 델리키트하게 느낄 정도의 ‘혀’는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커피 대국’ 일본에 와서 몇 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 혀’는 그대로다. 내 혀보다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을 평가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 친구는 쓴맛과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맛이 너무 강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내 ‘혀’는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블루보틀은 확실히 스타벅스 커피보다 신맛이 강해~” 나만큼 커피 취향이 ‘고급지지 못한’ 내 막내동생은 한 술 더 뜬다. 블루보틀을 마시고 나선 심지어 “한약 먹는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런 ‘한약 같은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오는 한국 커피 마니아들이 많다. 여기서 또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들은 오리지널 블루보틀이 아닌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라떼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당분간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 6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도쿄에 9곳, 교토에 1곳, 고베에 1곳이 있다. 해외진출에 나선 블루보틀이 (한국 제외)오직 일본에만 매장을 낸 이유는 뭘까. 또 유독 도쿄에 몰려있는 건 왜 일까. 일단 ᐅ일본이 ‘커피 대국’이라는 점 ᐅ도쿄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 되어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창업자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다.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맨(James Freeman)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래된 커피 가게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특히 도쿄는 더 그러하다”(I'm very deeply inspired by the old-fashioned coffee shops of Japan, and in Tokyo particularly)고 말한 바 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 뒷 골목에는 아직도 레트로(retro: 복고풍) 느낌이 나는 오래된 커피숍들이 많다. 이들 가게 대부분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방식으로 고객 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제임스 프리맨이 이런 분위기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임스 프리맨은 처음에 어떻게 블루보틀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왜 굳이 블루보틀이란 이름일까. 여기서 커피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683년 유럽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터키군이 빈(비엔나)에 도착했다. 적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인근 폴란드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터키어와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폴란드 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터키군이 물자를 남겨두고 퇴각을 했는데, 그 더미에서 콩 봉지들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낙타의 먹이인줄 알았지만, 아랍에 살던 경험이 있던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는 그게 커피 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원군 요청 포상금으로 그 커피 콩을 매입,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블루보틀’(The Blue Bottle)을 개업했다. 비엔나 커피 문화의 출발이었다. 그 319년 후인 2002년, 클라리넷 연주가 제임스 프리맨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그는 비엔나를 구한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차원에서 가게 이름을 ‘블루보틀’이라고 지었다. 제임스 프리맨은 평소 직접 원두를 구입, 매일매일 로스팅해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블루보틀이 유명하게 된 건, 그가 볶은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커피원두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다. 입소문이 나면서 블루보틀 커피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네슬레가 4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 커피를 흔히 ‘제 3의 물결 커피’ (Third wave coffee)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 1의 물결 커피’(First wave Coffee)는 1990년대 이전의 베이커리에서 빵과 함께 파는 커피, 혹은 개인이 공간을 임대하여 파는 형태를 지칭한다. 커피의 퀄리티에 주목하기 보다는 1~2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하였다. 1990년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제2의 물결 커피’(Second wave coffee) 시장이 열렸다.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퀄리티 높은 커피를 제공했다. 요즘의 가장 흔한 커피 전문점 형태다. 그러다 2010년 이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드디어 ‘제 3의 물결 커피’(Third wave Coffee)가 시작 되었다. 대표적인 가게가 블루보틀(Blue bottle), 필즈 커피(Philz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등 이다. ‘제 3의 물결 커피’의 특징은 스타벅스 보다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며, 차별화된 로스팅 기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다는 것. 대부분의 ‘제 3의 물결 커피’ 전문점들은 1~2분 이내에 커피를 내리기 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니즈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 준다. 핸드드립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맛깔나게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다. 획일화된 커피 맛에 지친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 3의 물결 커피’는 서부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제 3의 물결 커피’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성장보다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 3의 물결 커피’ 중에 해외진출을 한 브랜드는 블루보틀이 유일하다. 이상이 ‘한약 같은 커피’ 블루보틀의 유래와 성장기에 대한 내용이다.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