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ilen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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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름다운 드레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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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생엔 꼭 여자로 태어나 이옷들 다 입어봐야지‥ (불편러들 죽자고 달려들겠는데‥😔)
@evilen82 @assgor900 다만 보는 눈이 썩을뿐
@assgor900 여자로 태어나도 못 입을거야~~~😜😜😜😜😜
@Eolaha 😭😭😭
진짜 넘 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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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택배, 버스기사 하며 만난 이런저런 사람들.
택배기사랑 버스기사 해봤다. 버스기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버스기사는 하루일하고 하루쉰다. 오늘 쉬는날인데 문득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글을 갈겨본다. 1. 버스내 흡연하는 할배 -> 요즘 노인복지회관을 지날때면 꼭 점심을 거기서 해결한 후 버스에 타는 할배가 하나 있다. 문제는 그 할배가 다리가 안좋은지 타는것도 내리는것도 느리지만 꼭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태운다는것이다. 우리 버스 노선은 그 지역에서도 족같기로 유명한데 배차시간이 짧아서 빨리 빨리 가지 않으면 뒷차가 금방 붙어서 전화를 해댄다. "아니, 언제 출발했는데 아직도 여기 있어요? 한신호 잡아요?" 한신호 잡으면 3분이 지연되고, 뒤에오던 버스들도 다 한신호를 잡아야한다. 차고지에 들어가면 쉬는시간이래봐야 5분 7분인데 나땜에 한신호를 잡으면 쉬는시간 3분이 날아가니 욕이 안나올수가 없는것... 이 볼멘소리를 듣기 싫어서 왠만하면 그냥 가는데 버스안에서 담배라니.... 버스를 세우고 파란불이 빨강으로 바뀌는걸 쓰린 마음으로 보면서 할아버지한테 가서 "할아버지! 아니 왜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세요?! 내리세요!" 이러면 "아니 사람도 없고 창문도 열어놨는데 뭐 어때!" 하면서 소리를 빽!! 하고 지른다. "요즘에 버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이 어디잇어요!" 하면서 내리라고 해도 기필코 안내린다. 속이타고 시간은 가고 두신호를 잡히면 6분이 지연되고 그러면 버스 두대가 나를 넘어가야 하기에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운행을 한다. 그럼 할아버지는 거봐라는듯이 '아니 바쁜데 운전이나 혀~' 하며 담배를 뻑뻑뻑 피운다. 우리 노선에서 유명한 양반이다. 하루는 같은 노인복지회관에서 나온듯한 다른 할아버지가 "아니? 어디서 불냄새가 나?" 이러며 두리번거리시더니 뒤에서 담배 피우는 할배를 발견하곤 소스라치듯 놀라시더니 "아니! 뭐하는거야! 이사람이! 뭔가했더니!!" 하며 뒤로 가셔서 한참을 싸우셨다. 나도 신이나서 "아! 그냥 내리세요! 버스에서 담배피우면 안되는거 모릅니까?" 하며 맞장구를 쳤고 뒤에 탄 아주머니도 코를 쥐어막으며 "아니 요즘 시상에...버스에서 담배푸는 사람이 워딧어요?" 하며 거들자 담배할배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아직 장초인데..." 하며 창밖으로 손을 내밀더니 버스 외부에 비벼끄곤 침을 탁 뱉고 내린다. 세번 정도 이런일을 겪고 난 이후론 그 할배가 버스타려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아예 태우지 않는다. 다른 기사님들께 물어보니 "아~ 그양반~" 하며 다들 알고있는 유명한 양반이었다. 2. 카드 페이커 항상 시장에서 버스를 타는 할배중 하나가 항상 카드를 가라로 찍고 탄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사람이 몰려 우르르 타면 그 틈에 섞여 카드를 찍는척 슬쩍 대기만하고 들어가는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워낙 바쁜 노선이고 사람이 많이 타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어 얼른 신호를 넘어야 앞뒤 배차간격이 맞아지기 때문에 '저사람 또 또 저거 안찍고 타네..' 하며 다 알고 있었지만 뭐라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던 하루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할배가 카드를 슬쩍 찍는척하며 또 탔다. 몇번해도 내가 별말 안하니 내 얼굴보고 또 봐주겠지. 하면서 타는것 같아서 이번엔 사이드 브레이크를 아예 걸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손님! 카드 안찍혔으니 다시한번 찍어주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시하며 말하니 할아버지가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할아버지 기색에 내가 다시한번 크게 "손님! 카드 안찍혔으니 카드 찍어주세요."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라 카드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고 앉아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카드 안찍혔다고 카드 찍으시래요~"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할아버지가 귀가 멀어서 못듣는줄 알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어쩔수 없이 할아버지가 비척비척 거리며 다가와 카드를 찍는데 가라 카드라서 삑소리도, 다시찍으란 소리도 아무소리도 안난다. "할아버지. 다음에 또 이러시다가 걸리면 요금 20배 징수합니다. 내가 여러번 봐드렸는데 자꾸 이러셔서 경고하는거에요. 내리세요." 그 말에 할아버지는 축 쳐진 어깨를 하곤 버스를 내린다.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그도 그럴께 저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요즘 너무 많고 봐주다보면 소문이나서 내버스에만 저런 사람이 계속 타기 때문이다. 하루에 승객을 1200명정도 태우는데 그중 최소 20명은 가짜로 카드를 찍고탄다. 안보는것 같아도 다~보고있다. 3. 피자메이커 항상 밤 11시 30분경에 버스를 타는 취객이 있다. 문제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만 지나면 버스 바닥에 구토를 한다는 점이다. 그 모양새가 꼭 피자같아서 피자 메이커라고 불렀었는데 이짓을 세번 당하고 난뒤로는 안태우려고 승차거부를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 나 시청 직원인데 아저씨 지금 승차거부하는거야?" 라며 말을 하는게 아닌가... 그 자세가 자못 위압적이어서 나는 결국 꼬리를 깨갱하고 내리게되었다. '그래.. 꼭 탄다고 토를 하는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며 태웠는데 그날도 차 바닥에 토를해서 차가 브레이크를 잡을때마다 토사물이 기사석까지 흘러내려왔다. 그 냄새와 건더기에 다른 승객들이 기겁을 하였고 몇몇 아가씨들은 평소 내리던 목적지가 아닌 정거장에서 얼른 내려버리기도 했다. 토사물을 나중에 밀대로 닦는데 오는중에 말라붙어 떨어지지도 않고 뭘먹었는지 냄새가 역해서 나도 토를 할뻔했고 냄새가 버스에 베어서 3일간은 떨어지질 않았다. 너무너무 열이 받아서 다음날 그 아저씨가 근무하는 행정복지센터에 정식으로 민원을 넣으러 찾아가서 민원을 넣었고 그담날부터 그 아저씨는 보이지 않게되었다. 4. 매일 반품하는 아가씨 택배할때 하루에 하나 두개꼴로 물건을 반품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원룸에 사는데 옷이나 신발류를 자주 구매했고 하루에 한번꼴로 가다보니 아예 현관 비밀번호를 나에게 알려주어 현관에 두고 가게할 정도였다. 반품도 가지러가서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연뒤 신발장위에 올려둔 옷을 수거해 갈정도로 자주 들렀는데, 문제는 반품을 너무 자주..아니 하루에 하나꼴로 시킨다는점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다른 택배기사와 마주쳤을때 물어보았더니 "아! 그여자 반품러에요 반품러!" 라면서 설명을 해주길 의류사이트에서 옷을 주문한뒤 하루이틀입고 반품. 그런식으로 매일 새옷을 돌려가며 입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새옷이 택배로 오고 반품하는 옷이 나간다는 말. 쿠팡, 롯데, 한진, 옐로우, 대한통운 할거없이 옷이 매일 현관에 쌓여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옷을 주문하고 반품하는지 알길이 없었다. 참 별 희안한 사람도 다 있구나 싶었다. 5. 매일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 택배를 할때 항상 대문앞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자주 보였다. 날이 밝고 햇볕이 들기 시작하면 대문앞에 소파나 의자를 두고 앉아 지나가는 차를 하루종일 바라보는것이 할머니들의 하루 일과였다. 하루는 도대체 뭘 하시는건가? 궁금해서 할머니들께 이분저분 말을걸어보았는데 "할배가 먼저 죽고... 나만 남았는데 할게없어서.. 죽을날 기다리는거지" 라는 대답이 제일 많았고 그중 기억에 남는분은 "아들 기다려! 아들!" 이라고 대답한분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였는데 집에서 밥먹고 나면 하루종일 대문앞에 앉아서 아들을 기다리시는것. 할머니 말로는 군인들이 아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갔는데 얼마있음 온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중에 주변 가게 아저씨께 더 들어보니 할매가 치매에 걸렸는데 그거 때문에 전쟁나가서 죽은 아들이 얼마있음 돌아올거라 생각하는지 밥만 먹고나면 대문앞에 나와서 아들기다린다며 뙤약볕아래에서도 하루종일 기다린다는것. 심지어 할머니가 과거 살던집은 수원이고 지금은 대구에 사는데도 그저 대문앞에서 죽은 아들을 기다리신다는 모양이었다. 안타까워서 종종 지나가는길에 초코파이나 요구르트를 드리고 가기도 했다. 6. 생수폭탄녀 엘레베이터도 없는 원룸의 4층 5층이 배달하기 제일 힘들고 짜증나는곳인데, 그래도 일이니 어쩌겠는가? 불평불만없이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5층의 오래된 전세에 살면서 한달에 한번 몰아서 생수를 시키는 여자가 있었다. 76년에 완공된 오래되고 허름한 아파트였는데 때문에 입구도 좁고 주차장도 없었다. 거주자는 많은데 주차장이 없다보니 불법주차가 빽빽하여 택배차가 들어갈 수 없고, 때문에 생수 5~6박스를 매번 몸으로 날라야했다. 그냥 5층까지 걸어 올라가는것도 힘든데 생수를 두박스씩 메고 200미터를 걸어온뒤 한숨돌리고 다시 박스를 메고 5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제발 시키지 말라고 돈을 주고 부탁을 하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하루는 너무너무 힘이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 싶은 생각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경비실에 맡기고 갔는데 저녁에 부리나케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여자가 그걸 어케 옮기냐며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나도 미안하다면서도 상황설명을 하며 하소연을 했더니 여자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결국엔 알겠다며 앞으론 쿠팡에서 시켜먹겠다고 했고 그뒤론 그집에는 책이나 옷가지만 배달하게되었다. 쿠팡 기사에겐 참 미안하다..! 7. 지폐증식남 버스기사를 할때 종종 위조지폐를 돈통에 넣거나 지폐를 찢어 넣는 경우가 있었다. 천원짜리 지폐를 반으로 찢어 갈때한번 올때한번 넣는것이다. 이게 돈통에서 나오면 기사가 대신 돈을 충당해야하고 시말서도 써야한다. 제대로 돈통을 관리감독 하지 않아서 위폐가 들어가거나 훼손지폐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아무튼 그걸 몇번 당하고 나니 눈에 불을켜고 돈통을 지켜보게 되었다. 하루는 학생들이 학원을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10시좀 넘어서였는데 돈통에 접은 지폐를 넣는게 보여 돈통 전원케이블을 바로 뽑고 "학생 잠깐만. 방금 접은 지폐 넣었지?" 하며 앞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오갈수 없게된 학생이 "아..네..." 하며 당황해하길래 "학생 혹시 돈 찢어 넣은건 아니지?" 하며 돈통을 열고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찢어서 접은 돈이었다. 학생이 봐달라며 사정을 하는데 나도 당한게 있어 도저히 봐줄수 없었고 무전으로 뒷차들에게 넘어가라고 한뒤 근처 파출소로 버스를 몰고가 학생을 인수인계하였다. 속이 다 시원했다. 또 한번은 찢은 지폐를 넣기도 전에 잡은 일도 있었다. 지폐를 넣으려는 손을 보니 지폐가 뭔가 이상해서 바로 앞문을 닫고 내놓으라고 해서 보니 이번엔 반도 아니고 1/4로 찢은 지폐가 나왔다. 천원짜리 하나로 버스를 네번타려고 했던것이다. 참으로 기가막힌 일이었다. 곧장 노선 중간에 있는 파출소로 가서 학생을 인수인계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 그런지 온갖일이 다 있엇다. 8. 알몸녀 택배를 하다보면 고객의 과반수가 여성이란걸 알 수 있었다. 택배를 뭐 남자가 많이시키느냐 여자가 많이시키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희안하게도 택배를 돌리다보면 우리구역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70%가 여성고객이었다. 그러다보니 다들 얼굴을 안마주치고 앞에 두고 가라거나 경비실에 맡겨달라는 식으로 신변에 주의를 하는 편이었는데 반대로 너무나 개방된 자세로, 아무 거리낌없이 문도 열고 사람을 대하는 여성고객도 다수 있었다. 특히 루머로만들은 알몸녀가 있었는데, 처음 봣을땐 "어? 택배기사님 바뀌엇어요?" 하고 며칠간 경계를 하더니 내가 꾸준히 3개월 넘게 다니자 경계심을 풀었는지 서스름없이 문도 열어주고, 고맙다며 레츠비를 건내주기도 했는데 문제는 항상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나왔다는것이었다. 심할때는 팬티만 입고 나오기도 했는데 처음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런 일이 소문이 나지 않을리가 없어서 택배기사들 사이에선 알몸녀라 불렸는데 비하의 의미는 없고 단순히 알몸으로 자주 나와서 그렇게 불렸다. 실제로 택배기사들한테 과일이나 음료를 곧잘 건내주곤해서 평판이 좋았고 때문에 그집으로 가는 물건이 있으면 혹시 파손이라도 되었는지 한번도 살펴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몸매가 아주 좋아서 항상 감사했다. 9. 동료의식 강한 배달대행 택배를 하다보면 맨날 같은동네만 돌다보니 마주치는 사람은 또 마주치게된다. 하루는 택배차에 앉아 창문을 열고 송장정리를 하는데 첨보는 사람이 오더니 옥수수 수염차를 건내는게 아닌가? "아 고맙습니다. 근데 왠거에여?" 하고 물으니 웃으면서 "같은 운송업계 종사자 아닙니까? 서로 고생하는데 힘내시라고!" 하면서 웃으며 떠나갔다. 그뒤로도 자주 만났는데 볼때마다 사탕이니 음료수를 건내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하루는 인터넷에서 음료수를 한박스 사다가 택배차에 두었다가 그 아저씨가 보이면 쪼르르 달려가서 "음료수 하나 드세요" 하고 건내주곤 했다. 이러다보니 배달대행뿐만 아니라 우체국 아저씨, 쿠팡아저씨등 좀 친한 경비아저씨나 기사들에겐 한번씩 다 주게되었는데 이게 이러다보니 다들 친해져서 일하기가 참 수월해지고 정보도 많이 들어오게되었다. '아~ 이래서 그 아저씨가 그랬구나.' 하고 깨달은건 뒤의 일이었다. 10. 치이면 죽지 할매 시장앞을 지날때면 항상 무단횡단하는 노인들이 많아 긴장해야했다. 버스는 승객들이 타고있고, 안전벨트도 하지 않기 때문에 급정거가 불가능하다. 급정거를 하면 공기압식이라 금방설수는 있는데 승객들이 다 날아가기 때문이다.. 암튼 그렇게 조심해서 시장통을 지나다보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보란듯이 4차선을 가로지르는 할머니가 있다. 큰차에 막혀 못보고 그 할매를 밟을뻔한게 한두번이 아니라 하루는 내려서 왜 도대체 그렇게 무단횡단을 자주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도 죽구....영감도 죽구.... 나만 살아서 뭘해... 죽고싶어.." 라며 "칠래믄 쳐" 라며 갈길을 가셨다. 그제서야 영감 할매들이 왜 명줄 내놓고 무단횡단을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되었다.
[스압] 전쟁 덕에 대박난 음식 몇 가지
스팸 요즘 한국에서야 스팸을 공짜로 뿌린다면 유토피아가 됐다며 좋아하겠지만 공짜 스팸이라고 꼭 좋지만은 않았다. 2차대전을 보면 특히 그렇다. 1940년 영국의 식량사정은 개박살난 상태였는데 왜냐면 나치새끼들이 잠수함을 때려박아서 온 바다에서 분탕질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량 상당수를 해외에 의존하는 영국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당시 영국이 얼마나 굶고 살았냐면 배급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영국 성인 남자가 받을 수 있는 식량은 고기 550g과 달걀 반 개가 전부였다 고기 550g이면 삼겹살 3인분 정도 된다. 충분히 많지 않냐는 생각이 들 텐데 이걸로 1주일 버티라고 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하루에 고기 0.5인분 이하니까 그런데 갓조국 미국이 전쟁에 참가하고 동맹국한테 식량을 무자비하게 뿌리기 시작하면서 식량의 양적인 상황은 많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갓조국이 뿌린 음식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팸이었는데 말 그대로 수억 개씩 뿌려댄 덕분에 영국 사람들은 처음 몇 달 정도는 환호했다 물론 아침에 스팸 수프먹고 점식으로 스팸 바베큐먹고 저녁으로 스팸 스튜 먹는 걸 6달 정도 반복한 뒤에는 앵간히 인성 좋아도 욕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근데 스팸 안 먹으면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거든 굶어 뒤지는건 별로 유쾌한 선택지가 아니다보니 다들 꾸역꾸역 스팸을 먹게되고 결국 스팸은 공전의 대박을 치는 초히트상품이 된다 영국인들은 조금이라도 스팸을 덜 물리게 먹어보려고 온갖 음식을 개발했는데 그래봤자 유전자 단위로 요리재능에 파멸을 선고받은 영국인들인지라 결과물은 신통치않다 당장 저 유명한 스팸튀김부터 시작해서 스팸 팬케이크라든지 딸기잼에 찍어먹는 스팸도넛이라던지 파멸적인 음식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걸 먹고도 전쟁에서 싸운 영국군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스팸메일이란 표현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스팸 이미지가 개똥일만도 하다 스팸 비싸서 명절 선물로 교환하는 한국은 서양권에서 보면 상당히 특이한 이미지겠지 딱히 영국에만 스팸이 뿌려진 것은 아닌고로 다른 장소에서도 남아도는 스팸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는데, 하와이에서 발달한 스팸 무스비처럼 그럴싸한 요리도 있다. 왜 뜬금없이 하와이에서 일본음식에 들어가는 무스비와 스팸이 퓨전합체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하와이 음식임 넓게 보면 부대찌개도 이 부류에 들어간다 물론 개중에는 영국만큼이나 끔찍한 피조물이 탄생하기도 하는데 홍콩의 스팸 라멘이 그것이다 누가 영국식민지 아니랄까봐 진짜 굉장한 비쥬얼이다 장어 스팸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비싼데 영국에선 개싸구려 이미지인 케이스다 원래 영국에서 장어 하면 가난뱅이 새끼들이나 먹는 생존식품이라는 이미지였다 고슴도치 고기나 비둘기 구이쯤 되는 이미지였던거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영국은 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라는데서 장어 이미지가 박살난다 장어가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며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은 아니고, 산업혁명으로 우후죽순 세워진 공장들에서 나온 폐수가 다 어디로 갔을 거 같음? 템스강으로 전부 흘러갔다. 곧 템스강은 참피 수영장만도 못한 끔찍한 꼬라지로 바뀌었고 템스강에 살던 물고기 새끼들은 전부 용궁으로 사출당했다 장어만 빼고. 장어는 그 지랄이 난 템스강에서도 오히려 활개치면서 활발히 번식했다 다들 알다시피 장어는 진짜 엄청나게 생명력이 강한 생선인데 이 놈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도 그 생명력에서 비롯된거다. 대갈통 잘라서 냄비에 넣고 끓여도 도무지 뒤지질 않는 존나 킹기도라같은 놈이다. 장어가 안 뒤지면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생각해봐라 폐수 오염물질 둥둥 떠다니는 곳에서 살아가는 생선 건져먹을 생각이 드냐 당연히 멀쩡한 사람이면 안 건드리지. 내일 설사로 뒤지더라도 오늘 고기맛은 봐야겠다는 흙수저들이나 건져먹는게 장어였다 근데 2차대전이 터졌다. 그리고 잔혹한 소금돼지시체뭉침 스팸이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인들은 절규하며 강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빈민들이나 먹던 장어는 전영국인이 즐기는 대중식품으로 격상하게 된다 아 차라리 격상하지 않는게 좋지 않았을까 쓰레기물에서 살아서 그렇지 비쥬얼도 그야말로 쓰레기 그 자체다 어떻게 소스까지 초록색이지 색깔이 참피색인 이유는 전쟁 중에도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파슬리로 소스를 만들어서 그런데 암만 봐도 참피 갈아서 만든 것처럼 생겼다 장어를 그냥 굽고 젤리 될 때까지 만든 장어 젤리와 장어 토막친 것과 파이에 초록 소스를 끼얹어 내는 파이 앤 매시는 스팸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육류였기 때문에 또 대박을 친다 다만 이런 튀김+국물 조합은 재료의 품질을 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해서 썩어가는 장어로 만든 파이 앤 매시 떄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식중독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었다 팝콘 영화관 하면 팝콘을 빼놓을 수 없다 X스맨 X크 X닉스 같은 X같은 영화를 보면 내 손 안에 팝콘이 들려있다는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진 그레이가 개소리 떠는 걸 보느니 입안에서 팝콘 부서지는 소리 감상하는게 몇 배는 더 박진감 넘친다 그런데 의외로 팝콘=영화관 이미지가 잡힌것도 2차대전 때의 일이다 2차 대전에도 미국 영화 산업은 존나게 활발했는데, 이 당시에는 오히려 영화관에 팝콘 들고가는게 금지였다 왜 금지인지 이유가 안 떠오르면 최근 영화관 갔다가 영화 끝났을 때 영화관 바닥의 참상을 생각해보자 바닥에 끝없이 널려있는 팝콘쪼가리를 영화관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욕지거리가 터질 것이다 그래서 2차머전까지 영화관에서 인기있는 식품은 달달한 초콜릿이나 사탕 계통의 음식이었고 팝콘은 길거리에서 가끔 사먹는 싸구려 음식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2차머전이 터지고 나서 이 잘나가던 영화관 초콜릿이 전멸해버리는데, 왜냐면 초콜릿 생산량이 전부 군바리들에게로 몰렸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전쟁터에서 단 거 만큼 절박한게 없다 아무리 갓조국이라도 군인한테 설탕 몰빵해주면서 민간에까지 뿌릴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곧 미국 전역은 당분 부족에 시달리게 되는데 영화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보면서 혓바닥이 심심하신 관객들을 위해서 등장한 것이 싸구려 식품의 대명사 팝콘이었다 팝콘은 원가가 진짜 싸도 너무 싸서 전쟁 중의 박살난 경제 상황 중에서도 충분히 저가로 공급될 수 있었다 결국 팝콘이 영화관 식품의 대명사가 될 때까지는 채 5년도 걸리지 않았다 근데 분명 싸서 경쟁력 가졌던 새끼들인데 요즘 가격은 왤케 창렬인지 모르겠다 X발 옥수수 덩어리에 꿀 존나 얇게 처발랐더니 국밥 두 그릇 가격이 나오네 개새끼들 결론은 영화관에 국밥을 들고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개드립] 놀랍게도 심한 욕은 필터링한 상태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샤넬 뿌리치고 한국으로...조아라의 '빅 스케치'
...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크(ARCH) 공방을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매체 재팬올에 공개했다. 조 디자이너 뒤로 아크(ARCH)의 특이한 CI가 보인다. ARCH라는 글자를 상하로 데칼코마니처럼 붙여서 각도를 90도 틀었다. 마치 상형문자를 보는 듯하다. 조아라 디자이너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뛰 부 트하바이에 아벡 무와?”(프랑스어: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2014년, 샤넬(Chanel)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서른 초반의 동양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패션업계에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샤넬이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샤넬의 선택을 받은 이 동양 디자이너는 패션 명문 '파리의상조합학교' 출신의 조아라. 샤넬은 파리 패션계의 걸출한 스타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와 8년간 같이 일한 조아라의 실력과 평판을 익히 듣고 있었던 터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출신으로, 샤넬 공방 르마리에(Mason Lemarie)를 맡고 있는 크리스텔 코셰의 눈은 정확했다. 조아라와의 협업 결과는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프라이즈 올해의 디자이너' 수상으로 이어졌다. 수상 당사자는 코셰지만, 패션 작업은 개인의 산물이 아니기에 팀 파워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후 프랑스 패션업계는 “조아라와 코셰의 '시너지 효과'가 파리에서 주목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15년 간 활동한 조아라(37, 프랑스 영주권자) 디자이너는 지난해 완전 귀국, 아크(ARCH)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 조아라. 하지만 파리에서는 이미 실력파로 인정받았던 그다. 그런 그는 지금 서울에서 ‘빅 스케치’를 구상 중이다. '작은 옷감'이 아닌 ‘한국패션의 미래’라는 큰 그림이다. 우리가 조아라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아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그를 글로벌 매체 재팬올이 만나 3색(블루, 블랙, 레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샤넬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현재 중국, 일본 등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딴 ‘코셰’라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조 디자이너는 코셰에 대해 “미래성이 탁월하고 함께 일 하면서 내 역량도 펼칠 수 있는 동료”라고 소개했다. 패션 잡지 엘르 중국판에 소개된 코셰의 특집 기사.> # 공방에서 만난 스톡맨(stockman)과 주키(JUKI) 재봉틀 서울 양재역에 있는 아크(ARCH)의 공방. 조아라 디자이너가 명함을 건넸다. 잠시 당황스러웠다. 앞뒤 모두 블랙. 특이한 명함이었다. "블랙이 제 컬러이자 컨셉트입니다." 옷도 블랙을 즐겨입는다고 했다. 공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아담했다. “조만간 개인 컬렉션을 계획하고 있다”는 조아라 디자이너는 손가락 10뼘 되는 크기의 긴 테이블에서 작업 중이었다. 조각조각난 크고 작은 천들, 다양한 작업도구들, 유명 디자이너들의 책들이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명품 마네킹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에서 갖고 온 스톡맨(stockman)이라는 인체모형 보디에요. 디자이너들에겐 최고의 작업 도구죠.” 스톡맨엔 세련된 블랙 드레스가 입혀져 있었다. “네오플랜이라는 소재로 만든 작품인데, 스톡맨으로 입체재단 작업을 하면 이 드레스처럼 핏(fit)이 잘 살아납니다.” 스톡맨 외에 다른 2개의 마네킹도 옷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기억(ㄱ)자로 배치된 두 개의 행거에는 그동안 작업한 여성복과 아동복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곧 세상에 빛을 보게 될 조아라 디자이너의 ‘프렌치적 아이템들’이다. 눈을 잠시 돌렸다. 조 디자이너의 손때가 묻은 공업용 주키(JUKI) 미싱기가 눈에 들어왔다. 15년 패션유학의 경험을 말해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사진= 지난 5월 말 ‘전 세계 패션계의 셀럽’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화장품 런칭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패리스 힐튼 스킨케어 어번 나이트 파티’(Paris Hilton Skincare Urban Night Party) 행사장에 패리스 힐튼과 조아라 디자이너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힐튼은 조 디자이너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고, 조 디자이너는 힐튼의 허리를 살짝 감쌌다.> #칼 라거펠트-이브생 로랑을 배출한 파리의상조합학교 파리 유학 시절이 궁금했다. 예비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강원도 강릉 출신인 조 디자이너는 고등학교(계원예고)만 졸업한 채 파리로 떠났다고 한다. 2002년의 일이다. 당돌한 사실 한 가지. 중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일본 기술 전수학교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기가 찼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지 않겠니." “일본이든, 프랑스든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는 조 디자이너는 자신의 꿈을 키워 줄 학교로 ‘파리의상조합학교’(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를 선택했다. 1927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전통있는 패션 스쿨의 하나로 꼽힌다. 4년 과정으로 철저하게 오뜨 쿠띄르(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 기법을 전수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패션계의 카이저’(황제) 칼 라거펠트, ‘패션의 전설’ 이브 생 로랑, 일본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이 학교 출신들이다. 이 가운데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브랜드는 한국팬층이 두껍다. 히로시마 출신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1938~)가 런칭한 이 브랜드는 ‘삼성그룹의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작은 삼각형을 서로 연결해 만든 바오바오(BAOBAO)백과 주름옷으로 불리는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라인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조아라 디자이너의 학교 대선배인 이세이 미야케다. 조 디자이너는 “파리의상조합학교가 가지고 있는 전통성과 기술력 그리고 세 선배 등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의 행보가 나한테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커리큘럼 중에서 우리 학교가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치는 기법은 ‘입체재단’입니다. 평평한 종이나 천에 자를 대고 옷본을 그리는 평면 재단과 달리, 입체재단은 보디(인체모형)에 직접 얇은 천을 대고 모양을 잘라내서 옷본을 만드는 기법이죠.”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한국 패션계에선 아직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프랑스 패션계의 자존심’ 샤넬 하우스와 인연을 맺는 등 현지에서는 실력파로 인정 받았던 그다.> 학교를 졸업한 조 디자이너의 주된 무대는 '파리 패션 위크'. 겐조(Kenzo), 프랑크 소르비에(Frank Sorbier),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 등의 테크니션 브랜드들을 거치면서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와 오뜨 쿠띄르(고급 맞춤복)를 섭렵했다. 이중 안 발레리 아쉬의 키즈 라인(브랜드명: 안 발레리 아쉬 마드모아젤)의 프레타 포르테 총괄 디렉터를 맡는 등 안 발레리 아쉬와는 8년간 같이 작업했다. 그런 안 발레리 아쉬는 파리의상조합학교 후배인 조아라에게 “너를 통해 아동복의 미래를 보았다”고까지 높게 평가했다. 조 디자이너는 2004년 '디암 프라이즈 콩쿨' 파이널 리스트와 2005년 '국제 신인 디자이너 콩쿨' 파이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시엔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크게 상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이제는 개인 브랜드를 런칭했으니 코셰처럼 'LVMH 프라이즈' 같은 상을 노려볼 만하지 않겠느냐 (웃음)”고 했다. <사진= 조 디자이너는 여성복, 아동복 패턴을 두루 섭렵했다. 그동안 작업해 온 여성복과 아동복이 행거에 걸려 있다.> <사진= 조 디자이너가 인체모형 마네킹인 스톡맨(stockman)에 작업을 하고 있다.> # 15년 파리 활동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조 디자이너는 한국으로 오기 전 샤넬 디렉터인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와 작업했다. 코셰는 201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코셰’(Koché)를 론칭하면서 전 세계 패션 스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샤넬보다 코셰 브랜드의 약진이 무섭다고 한다. “코셰와 같이 했던 작업은 그동안 샤넬이 해온 모든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돼, 그것을 어떻게 재조합하느냐는 것이었어요. 코셰는 옷에 어떤 포인트를 넣었을 때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지를 잘 아는 디자이너였어요.” 당시 파리엔 “코셰에게는 조아라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코셰에게 조아라 디자이너의 존재감은 컸다. 그런 코셰는 조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아라 디자이너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안정된 자리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한국패션의 미래 같은 걸 구상해 보고 싶었어요. 많이 아쉬웠던지 코셰가 저한테 샤넬 디렉터 자리를 제안했어요. 샤넬 스튜디오에서도 콜을 받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어요. 코셰는 올해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와 협업하면서 중국, 일본 등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코셰의 나이키 작품을 봤더니 제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있었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최근에 연락이 왔는데, 다시 협업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나이키와 협업에서 코셰가 중점을 둔 건 뭐냐”는 질문에 조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코셰는 이게 나이키 브랜드인지 디자이너 브랜드 인지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만들었죠. 나이키라는 상업적 이미지에 자신의 프렌치라는 고급스러운 장점을 잘 녹아들게 한 거죠.” <사진= 작업대에서 스케치 작업을 하는 조 디자이너.> # 자신의 영어 이름 따서 아크(ARCH) 브랜드 런칭 대화는 브랜드로 이어졌다. 조 디자이너는 귀국 후 자신의 영어 이름(ARA CHO) 이니셜을 따서 아크(ARCH)라는 브랜드를 런칭했다. 아크에는 건축을 뜻하는 영어 아키텍쳐(ARCHitecture)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패션디자이너에게는 옷감 소재 선택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거기에 뭘 담느냐 하는거죠. 저는 ‘기품 있으면서도 편안한, 그리고 여성성’을 추구합니다. 건축이 건물을 쌓아 올리듯, 아크는 ᐃ기품 ᐃ편안함 ᐃ여성성을 패션예술에 입히는 것이죠.” 조 디자이너는 ‘프랑스 정통 오뜨 쿠띄르’를 지향한다. 15년 파리 유학의 결정체. 그렇다고 마냥 프랑스 스타일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작품에서 프렌치적 소스를 내세우겠지만, 거기에 코리아 브랜드라는 걸 어떻게 살려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브랜드를 제 능력선에서 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큰 숙제 중의 하나죠.” <사진= 15년 파리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 디자이너가 거울 앞에 섰다.> <사진= 조 디자아너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공방의 모습.> # 와인과 고양이 '러버'(lover)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줬다. 조아라 디자이너는 프랑스에서 작업하면서 2가지로부터 '작은 힘'을 받곤 했다고 한다. "와인과 고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가 와인의 나라인 만큼, 물보다 더 많이 마신게 와인입니다. 혀가 절여지는 느낌까지 받았죠. 자주 들른 가게에서 와인을 사와서 '입에 머금고' 작업하곤 했어요." 실제로 그의 공방에는 와인 행거에 와인이 여러 병 꽂혀 있다. 와인 이름들이 흔하지 않았다. 그럼, 고양이는 왜일까. 조 디자이너는 12살짜리 ‘레아’라는 이름의 프랑스산 고양이와 함께 산다. 덩치가 엄청나다. “제 유학생활을 온전히 함께 했죠. 귀국 하려는데 12년 키운 이 녀석을 도저히 두고 오지 못하겠더군요. 다행히 한국에서도 적응 잘하고 있고 제게도 여전히 힘이 되고 있죠.” 긴 대화지만, 한 마디만 더 물었다. 조 디자이너의 꿈은 옷을 만드는데 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패션을 통한 기부 활동이 제가 꿈꾸고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디어가 달릴 때는 ‘검색’보다는 ‘사색’을 통해 답을 찾는다는 조아라 디자이너. 그와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린 결론. “그의 브랜드 아크(ARCH)가 불꽃을 튀기며 솟아 오를 날이 머지 않았구나.”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