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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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벌써 30년이 지난 댄스 퍼포먼스

마이클 잭슨 - Smooth Criminal

사람들이 대체 춤을 어떻게 그렇게 추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저절로 되어서 어떻게 추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했던 마이클 잭슨
가수중 유일하게 무용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고
보컬, 작사 작곡까지 어나더레벨인 사기캐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1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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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대를 앞서갔다는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임;;ㅎㄷㄷ
Beat It 뮤비에서도 갱단 멤버들이랑 군무추는데 감탄밖에 안 나옴.
세기에 나올까 말까하는 아티스트 ... 왤케 일찍간거야 ㅠ
그러네요 다시없을 아티스트...ㅜㅜ
봐도봐도 신기한 스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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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지난번 카드에 댓글을 많이 달아주었더구나 (지난카드 : https://www.vingle.net/posts/1244310 - (1) 마이클잭슨을 만든 흑형집안 종특) 그래서 최대한 빨리 새 카드를 써봤단다 (잘했지?) 그럼 바로 수업 하도록 하자꾸나 지난번엔 마이클잭슨이 허수아비 역으로 영화에 출연한 얘기까지 했을게다. 모타운과의 갈등으로 소속사를 옮긴 후에 한동안 음악이 전처럼 잘되진 않았지. '그..래도 허수아비는 좀...'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허수아비는 정말 신의 한 수 였단다. 그 영화를 찍다가 마이클잭슨 음악의 동반자, 최고의 프로듀서, '음악의 신' 퀸시 존스를 만났기 때문이지. 이사람이 대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단다. 그래미 상 후보에 79번 올랐고 그래미 상 수상은 27번이나 했지. 또 1991년에는 '그래미 레전드 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지.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된 배우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무엇보다 굉장한건 딸이 이쁨ㅇㅇ (퀸시존스의 딸은 미국 영화배우 라시다 존스란다.) 이렇게 이쁜 딸을 가지...가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프로듀서를 만났으니 마이클의 성인으로서의 첫 앨범이 대박이 나는 것도 당연하지 싶구나 1979년 발매한 Off The Wall은 100만도 200만도 아닌 2,000만 장이 팔린 대박앨범이 되지. 이 중 마이클 잭슨이 작사작곡한 곡 Don't Stop 'Til You Get Enough로 빌보드 1위를 달성하고 마이클잭슨은 그래미 상도 수상하게 된단다. [영상1] Michael Jackson -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이 노래는 마이클잭슨이 팔세토 창법을 사용하여 가늘고 높은 음으로 노래하는 게 특징이지. 아참!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잘 기억해두렴. 무튼 이 앨범이 이렇게 잘 되자 마이클 잭슨은 이렇게 말한단다. "아오 빡쳐..." 잘됐는데 왜 빡치냐고?? 5곡의 싱글 중 2곡은 빌보드 1위를 달성했고 2곡은 빌보드 Top 10에 들어간 앨범. 총 2,000만장이 팔렸고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명반. 이런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했는데 그래미 상은 딱 1개만 수여됐기 때문이지. 얼마나 서운했는지 자서전에서도 그래미에 실망했었다고 쓴단다. 여기에 마이클 잭슨이 빡친 또하나의 이유가 있지. 그 해에 어마어마한 활약을 했는데도 권위 있는 음악 잡지에서 아무도 마이클잭슨을 커버모델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당시에는 '흑인이 잡지 커버를 하면 잡지가 잘 안팔린다.'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지. 음악적으로 월드클래스급 활약을 했는데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니 너네 같아도 빡이 치겠니 안치겠니? 이때 마이클 잭슨은 "저 사람들이 인터뷰 해달라고, 커버모델로 쓰고싶다고 애원하도록, 아무도 나를 무시할 수 없을만한 앨범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지. 근데.... 그 결심을 너무 강하게 한듯... 지금까지도 기록을 깰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만들고 만단다ㄷㄷ 바로 Thriller를 발표하게 된거지. 1982년 발매한 이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게 된 게지. 그래미랑 잡지사가 빡치게 하길 잘한듯ㅇㅇ (역시 사람은 빡이 좀 쳐야 열심히 한다니까...) Thriller의 싱글곡 모두가 빌보드 Top 10에 진입했고 Billie Jean은 빌보드 1위를 달성한단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뮤직비디오'야 아까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의 뮤직비디오를 봤었지? 아까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니?? "앜ㅋㅋㅋ 완전 촌스럽고 이상함ㅋㅋㅋㅋ" 이라고 생각했니 혹시?????설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ㅇㅇ 저 애매한 배경영상은 뭐임ㅋㅋㅋㅋㅋ 이때까지의 뮤직비디오는 아까 본 뮤비처럼 '그냥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담는 영상'에 불과했어.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영화스태프들과 연계해서 영상미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만든단다. 지금의 뮤직비디오는 여기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지. [영상 1]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뮤직비디오 마이클 잭슨이 위대한 이유는 이처럼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단순히 노래를 잘해서, 춤을 잘춰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방식을 새롭게 바꿔낸 인물이라 할 수 있단다. [영상 2] Michael Jackson - Beat It 뮤직비디오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은 Beat It에서도 나타난단다. 댄스음악에 강렬한 락 사운드를 접목시킨 시도에다가 뮤직비디오에 플롯을 집어넣었고 뮤직비디오에서 여러명이 짜여진 춤을 추는 군무를 선보였지. 지금이야 당연한 '정석'이지만 이건 마이클 잭슨이 실험적으로 만들어낸 '진보'였던 거지. 가장 센세이셔널 했던건 Billie Jean을 통해 선보였던 문워크 1983년 5월에는 모타운 25주년 공연에서 마이클잭슨을 빌리진을 부르며 문워크를 선보인단다. [영상] Michael Jackson Live - Billie Jean (문워크 : 3분 39초, 4분 35초) 이 춤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난리가 나지. 그리고 나온 Thriller의 뮤비. 한편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14분짜리 이 뮤직비디오는 또 한번의 센세이션을 일으킨단다. (센세이션좀 한번에 하나씩만 일으키지... 정신이 없구나...) [영상] - Michael Jackson - Thriller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의 패러다임을 바꾼 Thriller의 뮤직비디오는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뮤직비디오로는 유일하게 미 국회도서관 기록보관소(Library of Congress National Registry)에 보관돼 있단다ㄷㄷ 그래미 때문에 빡쳤던 마이클잭슨! 이정도로 대박을 쳤으니 그래미도 인정 했을까?? 그래미 : 개인정 ㅇㅇ 마이클잭슨은 그래미 상 후보로 12개 부문에 오르고 8개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단다ㄷㄷ 이 기록은 최다 부문 후보 노미네이트, 최다 부문 수상 기록으로 아직도 안깨지고 있는 중이지 그리고는 그 해 백악관에 초청되어 상도 받았어. 백악관을 방문한 마이클잭슨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레이건 대통령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이 없다"며 놀랐다고 한단다. 인류 역대급 히트를 기록하고 그래미 한 회 최다수상 기록에 백악관에 초청까지 ㄷㄷ... 이제 마이클잭슨은 꿀빠는 쎌럽이 됐겠지?? ㄴㄴ하단다. 잘나가는 사람 괴롭히는건 헬조센만 하는게 아니었지. 또 기레기도 헬조센에만 있는게 아니었단다. 언론은 수많은 악의적 보도로 마이클 잭슨을 흠집냈는데 "마이클 잭슨은 여성 호르몬을 복용하면서 높은 톤의 목소리를 낸다" 라든지 "마이클 잭슨은 성전환 수술을 하고 남자랑 결혼할 예정이다"와 같은 별 말 같지도 않은 루머를 밑도 끝도 없이 빵빵 쏜단다. 또 유명한 사건이 있는데, 마이클잭슨이 1984년 펩시광고를 찍다가 사고를 당해 화상을 입는단다. 위에 영상은 촬영당시 사고영상인데 딱히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은 없다만 무서움을 잘 타는 아이들은 보지 말길 바란단다. 이때 화상을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산소 챔버를 보게 된단다. 지금이야 우리한테 익숙한 기계지만 당시에는 매우 신기한 최첨단 기기지. 이 기기에 호기심을 느낀 마이클잭슨은 챔버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봤어. 그리고는 언론이 어떻게 반응하나 보기로 했지. 그 결과로 언론에 나온건 "Wacko Jacko (미친잭슨, 또라이잭슨)" 이라는 별명 지음 마이클 잭슨을 괴짜로 만든 걸로 모잘라서 "마이클 잭슨은 노화를 늦추기위해 고압 산소탱크에서 잠을 잔다"라는 기사를 1면에 올린단다. 미국 기레기 클라스가 어메이징 하구나. 마이클잭슨이 빡쳐서 명곡을 만드니까 더 빡치게 하려는 건지..?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빡친 마이클은 또 명곡을 들고 왔을까? 기레기들은 또 어떤 루머를 만들어서 사람을 괴롭혔을까?? 등등 아직 궁금한게 많을게다. 이런 궁금증은 다음 시간에 해소해보도록 하자꾸나. 지난주에 댓글을 많이 달아줘서 카드도 얼른 썼고 분량도 빠방하게 늘렸단다. 이번에도 댓글 30개 달아줄 거라고 믿는단다!! 딱히.. 이..이 번에도 댓글 기대..하는 건... 맞으니까 댓글 많이 달렴.
레전드중에레전드잭슨
뭐 알다시피 마이클잭슨하면 문워크 입니다. 마이클잭슨의 문워크는 어린아이들이 노는모습을 보고 직접 만든 동작입니다. 그는 가창.소울.댄스.연기면만 뛰어난것이아닌 음악에 대한 열정과생각이 그누구보다뛰어낫는데요. 마이클잭슨의 명언중하나 음악하는도중에죽어도 여한이없다라는 명언이잇을정도로 열정이잇는 사람이엇습니다 또 마이클잭슨은 1980년대 thriller 를 계기로 전세계에서 제일 유명한가수가되엇는데요. 단지 노래가좋다는이유로 세계적인스타가 된것이아닌 그 앨범에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시대 전혀 생각하지못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것이 엄청난데요. 심지어 그시대사람들이 thriller뮤직비디오를 보고 무서워한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앗습니다. 그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아이디어를 냇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잭슨이 최고인이유들은 마이클잭슨의 가수인생은 45년이엿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잭슨의 앨범은 10개가되지못햇습니다.45년이란 생활을 가수의길에잇엇지만 그이유는 마이클의 앨범창작시간은 4~5년정도가 소요된다고합니다. 다른 가수들의 앨범창작시간은 1년이 안걸리는 가수들이많습니다.그이유는 마이클의앨범들을 들어보신분들은 알다시피 최고의노래들이 정말많습니다. 사람이 이런노래를 만들엇다는것이 신기할정도로 말이죠.마이클잭슨의 노래는 대부분 마이클잭슨의 작사작곡인 노래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마이클잭슨의 최고의노래인 billie jean은 시원한 비트로 노래가 시작되는것또한 최고의노래가 되게햇는데요. 마이클잭슨의 노래들을 듣다보면 내용에 맞는 분위기가 정말 잘 그려지는데요. 마이클은 대부분가수들이 앨범을 내기위해 앨범에 한두개곡을 히트곡을 만들어 앨범을 내지만 마이클은 한곡한곡 정말 최선을다해 만드는 것이 왜 최고인지알만한 사례이기도합니다.마이클잭슨의노래는 시대별로 느낌이달라지는데요. 그것이 마이클잭슨의 클래스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합니다. 한번 들어보시면 빠져들수있을정도입니다. 마이클잭슨의 노래는 최고의명곡들이 셀수없이 많지만 굳이꼽자면 man in the mirror.heal the world.beat it.billie jean.the way you make me feel.thriller.you are not alone.gone too soon.say say say.pretty young thing.loving you.love never felt so good등 더좋은 노래들이 많이있습니다. 한번쯤 들어보신 노래들도 있으실것입니다. 마이클잭슨은 세계최고의 스타들이 공연하는 영국 런던의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큰 경기장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만 총8회 투어를 진행햇는데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한투어 8회모두 매진이 된것이 현재까지도 깨지지않는 기네스 기록으로도 남아잇습니다. 마이클잭슨은 총 123회 투어콘서트를 진행햇습니다. 마이클잭슨의 콘서트영상을보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실신하는 모습을볼수잇는데요. 그이유는 팬심도잇겟지만 현장에서 보는 느낌이 엄청나다는것을 느낄수있습니다. 거기서또한 마이클잭슨의 공연완벽도가 최고중의절정수준이라는것을 느낄수잇습니다. 마이클잭슨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수입니다. dangerous투어 콘서트 시작하는 장면에서 가만히 서있는데도 1분동안 사람들은 소리를지르고 열기가 대단한걸보면 존재자체로도 레전드인것을 느낄수있습니다.마이클잭슨의 대해 알고싶다면 노래를 듣는것도 좋지만 공연영상을보시면 왜 레전드인지 알게될것입니다. 그는 정말 레전드중레전드이다. 모든 가수들이 인정하는사례이기도한데요 그것은 마이클잭슨이 춤추는 동작들로인해 오늘날의 댄스들은 거의모두 마이클잭슨의 춤동작에서 나온것들입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아닌 실제로 모든 가수들과전문가들이 직접말한것이기 때문에 인정할수밖에 없습니다. 마이클잭슨이 없엇다면 오늘날의 음악계는 이정도로 발전되지못햇을것입니다. 사실상 마이클잭슨은 pop이란 장르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 뜻은 마이클잭슨 세대1980년대까지는 ROCK AND ROLL이 유행하던 시절입니다. ROCK에서POP으로 유행이 시작된것의 장본인이 마이클잭슨이라는뜻이다.물론 잭슨말고도 다른가수들도있지만 그중에서 비중이 가장 큰 가수이기에 KING OF POP 팝의황제 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게 아닙니다. 마이클잭슨은 10000년의 한번 나올까말까한 가수이기에 그는 KING OF POP중의KING이라는 별명이맞는 사람입니다. 마이클잭슨의 업적을 보자면 세계 기네스기록의 등재된 THRILLER가 무려37주간 1등의자리를 유지햇고 최고의상만무려 400개정도받앗다고합니다. 80년부터2000년대까지 빌보드최고의가수상을 거의 놓친적이없는데다 기네스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로 등재되기도했습니다. 마이클잭슨의 업적은 말할수없을정도로 많은데요. 마이클의 선행또한 넘어갈수없는데요. 마이클은 HEAL THE WORLD 자신이만든 기부단체를 설립하여 무려 8000억이라는돈을 기부하고 어려운사람들과 희귀병에 걸린환자들을 위해 최선을다해 노력한사람이라 최고의 사람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심지어 마이클잭슨은 연예인중에 가장 많은 돈을기부한가수로도 알려져있습니다. 그는 어렵고힘든사람들을 위해 모든일을 최선을다해 도왓다는것이 마이클잭슨의 빠져나올수없는 팬심이되기도한 계기이기도합니다. 마이클잭슨을 힘들게한것들 마이클잭슨은 집밖에나가기만하면 인파가너무모이고 사람이 다치는상황이 생기기도하여 마이클잭슨은 공원.시내 모든곳들을 돌아다니면 그자리에서 몇시간을움직이지못하는상황이발생되 사생활을 즐기지못하여 잭슨은 자신의집 NEVERLAND라는 집을 만듭니다. 이집은 여의도에1.5배큰 저택인데 마이클이 즐길수잇도록 영화관.놀이기구.수영장.공원.동물원등을 만들어 자신과 힘든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즐겻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마이클은 흑인가족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몇년후 마이클잭슨은 백인이되엇는데요. 많은사람들은 마이클잭슨이 백인을 동경해 백인이되기위한 박피수술을햇다는데요. 하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말일뿐입니다. 그시대에는 박피수술을 받는다면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수술입니다. 박피수술이란 수술은 없는 수술이란거죠 마이클잭슨이 백인이된이유는 마이클잭슨은 피부에색소를빨아드리는 희귀병 백반증이라는 병이태어낫을때부터잇었습니다. 하지만 아주천천히 진행되 별다를게없었던정도인데요. 1983년 PEPSI광고도중 마이클잭슨은 불이머리에 붙어 화상을입는 부상을당햇습니다. 마이클잭슨은 이를 계기로 조금씩 앓고있던 백반증이라는병이 급속히 진행되기시작합니다. 네이버에 백반증이라는병을검색하시면 심각성이 얼만한지보실수잇습니다. 마이클잭슨은 어렷을때부터 흑인임을 자랑스러워햇다고 합니다. 또 잭슨은 얼굴이 많은변화를해 성형중독이라는 별명이잇엇는데 마이클잭슨은 어렷을때부터 코에대한 콤플렉스가잇었습니다 그리하여 잭슨은 코수술을합니다.그리고 몇년뒤 잭슨은 무대에서 추락하는 사고를당합니다. 그사고를 통해 잭슨의 코는 완전히망가집니다. 그렇지만 잭슨의 코를 원상태로 되돌릴수잇엇습니다. 근데 원상태로되돌린다면 호흡이힘들어 가수생활이 힘들어진다는진단을받고 코수술을 다시받앗습니다 근데 의사분이 잭슨에게 턱수술을 강요합니다. 턱수술로인해 남성미가 더생기기때문에 잭슨은 수술을합니다. 마이클은 2번의성형수술을하게되고 나이가들면서 화장법이달라졋을뿐 얼굴의형태는 바뀌지않앗다는 사진을 좀잇다가 올려드리겟습니다. 또 잭슨의 명성을떨어뜨린 한사건잇는데 잭슨이 자신의집에 초대한 한 남자아이 게빈이라는 아이는 잭슨이 자신을 성추행햇다고 주장을햇다고합니다. 마이클잭슨은 그당시 최고전성기시절이어서 그사건이터지면 전성기가 끝날수도잇어 일단 기사를 막으려 그가족들에게돈을350억을 줫는데요. 그것을 기자들은 입막음을한거라는 기사를떠뜨려 잭슨을 힘들게햇는데요. 마이클잭슨은 이사건을계기로 불면증에 시달리게됩니다. 잭슨은 법정에서 무죄를받앗지만 성추행자라는 악명을 벗어나진못햇습니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2009년6월25일 잭슨은 세상을떠났습니다. 잭슨이 떠난지 6년뒤2015년 마이클잭슨에게 성추행당햇다는 아이 게빈이 자기SNS에 글을 올리게됩니다. 그글의내용은 1995년 마이클잭슨에게 성추행당햇다고 주장한것들은 사실 자신의아버지가 파산직전이라 돈많은 마이클잭슨을 성추행범으로 만들어 돈을얻기위한 속셈이라는것을 SNS에 올리게되어 드디어 잭슨은 돌아가신뒤에 성추행자라는 악명을 벗어났습니다. 마이클잭슨은 돌아가셔서도 편히 쉬지못하셧습니다. 이제라도 잭슨이 편히 쉬셧으면 좋겟습니다. 편히 쉬소서 마이클잭슨 그는 진정나의 우상이엇습니다.마이클잭슨은 다른가수들과 다른걸항상 느낍니다. 사랑합니다 마이클잭슨 어린이들을 위해 몸받쳐 헌신한 마이클 잭슨 이제라도 편해지시길 나중에 내가하늘에 가면 꼭 반겨주시길부탁드립니다. 마이클잭슨 꼭만나보고싶습니다. i love you 마이클잭슨은 사랑한다고하면 내가더사랑한다고하는사람이기에 더 멋있는 마이클잭슨 왼쪽이2000년대 오른쪽은1988년 다음사진은 왼쪽이1993년대오른쪽이 1970년대
날 미치게 했던 X-Japan
☆ Weekend ☆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여자아이가 알려줘서 고등학교때 듣게 되었던 X-JAPAN입니다. 이 음악을 계기로 일본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더랬죠... 1982년에 결성된 일본의 비주얼계 록밴드로서 일본의 록, 메탈계를 대표하는 밴드들 중 하나로 1997년 해체 이후, 2007년 영화 쏘우 4의 OST인 I.V 를 발표하면서 재결성하였습니다. ☆ 紅 (Kurenai) ☆ 이들에 대한 대중의 평은 실제 이상의 과대평가와 그로 인한 반동에서 비롯한 과소평가의 양극단을 오가지만 LUNA SEA, GLAY, Dir en grey부터 나이트메어 등 수많은 후배 밴드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 점이나 1992년 일본인 아티스트 최초로 3일 연속 도쿄 돔 콘서트를 성사시킨 일화 등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일본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죠. ☆ Endless Rain (The Last Live) ☆ 기본적인 구성은 트윈 기타로 기타 솔로부분을 두 기타가 나누어서 연주하며, 보통 파타가 백킹 부분을 히데가 리딩 부분을 연주하였습니다. 근데 배킹과 리딩이 분명 따로이긴 한데, 딱히 내용상 큰 차이를 가지지는 않는다고하네요. 단, 곡에 따라 차이는 존재한다고 합니다. ☆ SILENT JEALOUSY ☆ 멤버들 간의 사이가 상당히 나쁜 편으로 그의 한 예로서 HIDE의 사망 1주기 트리뷰트 앨범 나올 때도 Yoshiki와 PATA, HEATH가 각자 곡을 따로 하나씩 넣었고 TOSHI는 불참했습니다. ☆ Tears ☆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음악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그리고 표절을 당한 밴드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X의 최고 명곡 중 하나인 ENDLESS RAIN은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과 똑같습니다. 코드 진행은 물론 중간의 나레이션이 나오는 부분까지도 똑같기 때문에 일본노래가 노래방에 들어오기 전에는 X의 팬들이 이 노래를 틀어놓고 ENDLESS RAIN을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 Say Anything ☆ 국내에서는 X JAPAN의 활동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문화 수입을 금하고 있었던 사정도 있고 해서 소수의 팬들에 의해 불법 수입되었습니다. (저도 복사판 CD로 콘서트를 봤으니깐요) 이 때문에 X의 노래를 듣는 것에서 우월감을 느끼곤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에야 일본 문화 개방이 이루어져서 X JAPAN의 음악을 듣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X JAPAN의 인기 자체도 식은 감이 있어서 그런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하지만 한국 X JAPAN 팬덤의 흑역사인것은 분명한듯 하네요.
[음악수업] (1) 마이클잭슨을 만든 흑형집안 종특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지난주에 쓴 카드에 댓글이 30개가 넘었더구나 물론 억지로~~~ 억지로~~~~~~ 받아낸 댓글 같지만 일단 넘긴 넘었으니 다음 음악 수업 진행하도록 하마 이번시간에 이야기해줄 인물은...어디보자 아! 이 사람이구나 음...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란다 오늘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이렇게 한 번 말해보렴 "엄마, 아빠! 나 가수가 될래YO!" 그러면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실게다. 그리고 고된 일에 힘드셨던 몸이지만 너의 말 한마디에 힘을내셔서 힘껏 정신차리기 어택을 시전하실게다 울면서 방에 들어갈 땐 문 쾅 닫지 말거라 괜히 한대 더 맞는 수가 있단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네 집안은 좀 달랐지. 약간 이런식이었단다. 조지프 잭슨 (마이클 잭슨 아버지) : 하 오늘도 막노동을 하느라 하루가 너무 힘들었어... 직업 없이 몸쓰는 일만 하니 집에오니깐 녹초가 되는구만... 오늘도 힘들었으니 오늘은 이제 슬슬 기타치면서 노래해야지 내일은 친구들이랑 밴드만들어야지ㅋㅋㅋ 아! 자식들 중에 몇명은 좀 컸는데 큰 애들 데리고 그룹이나 만들어서 노래할까?ㅋㅋㅋ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하고 있는 마이클 잭슨의 엄마 캐서린. 캐서린은 이런 조지프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것 같니? 남편은 변변찮은 직업도 없이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먹고살고 본인은 어쩔수 없이 가정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상황. 이런 상황에 남편은 애들 데리고 노래를 한다니... 캐서린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게 된단다. 여보!!! 큰애들만 데리고 하지 말고 막내도 데리고 해 막내 노래가 개꿀임ㅇㅇ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얘네란다. 멤버 : 자식들 캐스팅 매니저 : 엄마 기획자 : 아빠 세계 최초 가내 수공업 그룹이 탄생하지 이 가내 수공업 그룹 잭슨5에 제일 늦게 들어온 막내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마이클잭슨이란다. 이때 마이클 잭슨의 나이 7살. 1966년 결성된 잭슨파이브는 결성되자마자 지역 노래 경연대회를 휩쓴단다. (솔직히 흑형 다섯명이 음악한다는데 그걸 어떻게 이기겠니?) 그리고 1969년 걸출한 뮤지션들을 배출한 유명 레코드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을 하기에 이르지. 마이클 잭슨 10살때의 일이란다. 사진은 잭슨5의 첫번째 앨범 레코드 표지란다. 가장 앞에 서있는 마이클잭슨은 10살이고 뒤에 서 있는 아저씨들...이 아니고 아이들은 마이클잭슨의 형들이란다. 모두 10대시절의 모습이지 다시 한번 말해줄테니 잘 들으렴 모두 10.대.시.절.의 모습이란다.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한 뒤 발표한 곡들은 상당히 히트했단다. 노래 1 - Jackson 5 <I Want You Back> 노래 2 - Jackson 5 <ABC> 이런 노래들은 아마 너희들도 들어봤을게다. 꼬마인데도 춤이랑 그루브가 ㄷㄷ하지 않니?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한 이후 냈던 곡들은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연달아 히트에 성공했단다. 특히 저 ABC는 비틀즈의 노래를 밀어내고 1위를 하기도 했지.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메인보컬인 마이클잭슨이 잔망스러운 춤과 노래로 하드캐리를 한단다. 하드캐리 하는 멤버들은 뭘 하게 된다? 솔★로★활★동 마이클잭슨은 지금의 아이돌 솔로활동처럼 잭슨파이브에 속해있으면서 솔로음반을 내게 된단다. 그리고 이런 음반은 잘된다 안된다? 당근 잘된단다. 마이클잭슨이라니깐?? 1972년 발매한 싱글음반인 'Ben'으로 빌보드 1위에 오르고, 15살에 오스카 상 후보에 오르게 된단다. 15살이면 중2지 너희들이 메이플 하면서 "아..님! 스틸 ㄴㄴ요" 하면서 사냥터의 왕의 자리에 오를때 마이클잭슨은 빌보드 1위, 오스카상 후보 ㅇㅇ 이렇게 쭉쭉 잘나가던 마이클잭슨에게 위기가 찾아온단다. 잭슨5의 지난 음악으로 실컷 재미를 본 모타운 레코드가 무조건 똑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찍어내길 요구하지 (이미지는 그냥 쓴거란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공산품 같은 음악만 찍어내길 요구하는 모타운과의 갈등. 다채로운 음악을 할 자유. 작사/작곡을 직접 할 자유를 요구한 잭슨5에게 돌아온 모타운의 대답은 "너희들은 어려서 아무 것도 못 한다." 아니 저렇게 늙어보이는데??가 아니라 아니 저렇게 음악을 잘하는 애들을 맘대로 하려 들다니... 결국 1975년 모타운과의 계약을 깨게 된단다. 모타운을 떠난 잭슨5는 에픽 레코드(현재 소니뮤직)과 계약했지만 이후 낸 곡들은 영 반응이 좋지 않았어.. 이대로 내리막길을 걷나 했던 마이클잭슨에게 기회가 찾아온단다. 허수아비역으로 영화에 출연하다가 (이때 음악이 얼마나 잘 안됐는지 알 것 같구나 쩜쩜...) 촬영장에서 훗날 전설의 레전드가 될 음반을 만들어준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존스를 만나게 된 거지.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마이클잭슨이 어떻게 바닥에서 다시 올라갔는지 썰을 듣고싶지 않니? 응? 문워크니 뭐니 어떻게 나왔는지 듣고싶지 않니??? 응??? 댓글이 30개가 되면 얼른 다음 수업을 준비할테니 댓글 많이 달아 주려무나 흠흠
선수 시절 유럽 사람들의 편견과 의구심을 다 깨고 다닌 박지성
2002년 월드컵 이후 히딩크가 있는 네덜란드의 psv팀으로 이적하게 된 박지성  그러나 입단 후 얼마 되지 않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겪고 복귀 후 부진을 겪음 부진을 겪는 동안 네덜란드 홈팬들에게 각종 야유와 비난을 받은 박지성 공을 잡기 무서웠을 정도였고 심지어 상대팀보다 야유를 더 보냄 그래서 히딩크 감독이 홈경기에서는 안 내보내고 원정경기에만 내보냈을 정도..  일본 팀의 이적 제의도 받았지만 박지성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야유하던 팬들이 응원가를 만들어서 응원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음 (이때 응원가가 바로 그 유명한 위송빠레) 자기 응원가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야유와 비난이 심했지만;; 히딩크가 박지성한테 보내는 편지 中 결국에는 psv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음 그래서 박지성이 선수 생활 막바지에 psv팀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도 팬들이 엄청 환영해 줌 네덜란드 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엄청나게 활약한 박지성은 결국 맨유에 입단하게 됨 박지성은 2~3년 내로 맨유맨이 될 것이다. 그를 믿기에 데리고 왔고 또 그만큼 활약할 수 있는 선수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생각에 의아해했지만 2~3년 내로 분명히 사람들은 나의 결정에 동의할 것이다.  - 알렉스 퍼거슨  지금은 아시아 선수들이 빅클럽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많지만 당시만 해도 성공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박지성이 빅클럽에서 통하겠냐는 의구심이 많았음 박지성의 맨유 이적 소식은 국내에서도 찌라시 취급하거나  박지성이 맨유에서 경쟁력이 있겠냐고 벤치에나 있을 거라고 비아냥거릴 정도 박지성은 챔스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한 선수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반응도 물론 있었지만 티셔츠 팔이다, 마케팅용이다, 아시아 시장을 노린 상업적 영입이다 등의 의견도 많았음 당시 챔스 4강 ac밀란 전에서 카푸-말디니-네스타-스탐이라는 엄청난 수비라인을 뚫고 골을 넣고 05년 챔스 포워드 베스트 5에 들었는데도 이런 소리 들음 (다른 유럽 선수들이 박지성이 psv에서 활약한 만큼 활약하고 이적했으면 마케팅용이다 이런 소리 1도 안 나왔을 텐데ㅋ...) 다른 나라 선수들이 입단하면 같은 언어를 쓰는 선수들이나 스탭들이 도와주거나 하지만  박지성은 그런거 1도 없었음. 그래서 영어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함 초반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무려 7년간 맨유 선수로 뛰었고, 맨유 말년에는 루니와 퍼디난드에 이어 맨유 주급 순위 3위에 들 정도로 인정 받음 티셔츠 팔이를 위해 영입했다는 소리는 당연히 쏙 들어감 선수 생활을 건 일생일대의 무릎 수술을 겪은 후에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복귀함 (빨리 복귀한 게 9개월.. 당시에는 1년 정도의 재활 기간을 예상했었음) 박지성 정도의 큰 수술 이후에는 폼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많은데 수술 후에도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며 맨유에서 롱런함 그리고 박지성이 맨유를 떠난 지금도 여전히 맨유 팬들한테 언급되고  (Herrera는 현재 맨유에서 뛰고 있는 스페인 선수) 언론이나 전 맨유 선수들한테도 꾸준히 언급됨 은퇴 후에는 비유럽 선수 최초로 맨유 앰버서더에 임명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맨유 홍보 중임 앰버서더로서 중국 투어 중 다른 맨유 레전드들과 맨유 선수들 훈련하는거 지켜보는 중 아시아 축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세계에 아시아 축구의 저력을 알린 선수라 베트남 등 축구 좋아하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박지성 인기가 대단했음 박지성은 우리나라 축구를 위해서 힘쓰는 것 외에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아시안 드림컵을 열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발전에도 힘씀 (수익금을 축구 꿈나무들을 위해 기부) 아시안 드림컵에는 우리나라, 일본 등의 유명한 아시아 선수들 말고도  에브라, 퍼디난드, 잠브로타 등 세계적인 선수들도 초청해 같이 뜀 이게 바로 박지성이 한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실화(퀸)에 대한 이야기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영국 락밴드 '퀸' 특히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이야기 프레디 머큐리 합류 직전, 스마일의 초기 멤버였다가 스마일을 나갔던 '팀 스테필 (맨 오른쪽)'은 합류했던 밴드 '험피 봉' 해체 후 디자인 쪽에서 일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토마스와 친구들'이라고(!!) 70세인 현재도 음악 활동 중이다 퀸의 로고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프레디 머큐리가 디자인 했다 (첫번째)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A Night at the Opera 앨범의 자켓도 프레디가 만들었다고. (두번째) 무대 의상들도 직접 디자인 한 게 많았다고 함 퀸은 멤버 전원이 학사 학위를 가진 밴드이다 브라이언 메이는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후에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총장이 되기도 했다 존 디콘은 퀸 2집까지 중학교 교사였다 프레디는 영화처럼 냥집사인데, 키우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길냥이들이었다고. 길냥이들에게 안락한 환경 마련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새긴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줬었다고. 그중 '딜라일라'라는 고양이를 위해 노래 "Delilah"를 쓰기도 했다 프레디 : (((내 고양이))) 고양이 : “이 앨범을 나의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톰과 오스카, 티파니에게도. 그리고 세상에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은 다 꺼져라.” < 딜라일라 > - 1985년 앨범 <Mr. Bad Guy> 감사의 말 중에서 (출처 :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ency_culture&wr_id=374 ) '프레디'라는 이름은 학창시절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칭이라고 한다 작곡할 때는 떠올랐던 멜로디가 머리속에 안 남으면 선율이 허접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 주로 피아노로 작곡을 하고 기타 코드는 3개밖에 연주하지 못한다고 말해왔지만 목욕하다가 떠올라서 기타로 뚝딱 만든 노래 =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보헤미안 랩소디'의 코러스는 무려 180번을 오버더빙(녹음한 것 위에 또 녹음) 했고, 마지막에는 테이프의 산화철 부분이 거의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에 10~12시간씩 녹음한 결과였다고. 곡의 다양한 부분들은 면도칼로 잘라 합친 것이라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기타소리와 드럼소리는 실제 퀸의 멤버이자 영화의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라이언, 로저가 연주한 것이라고 둘은 현재도 퀸으로 활동 중 퀸의 기타 음색은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브라이언의 기타가 10대 시절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0년 넘도록 사용 중이며, 100년 된 벽난로의 목재, 자전거 스프링 등을 사용했다. 퀸은 초기 시절 어느 평론가에게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로저 테일러는 'The Reactions'라는 밴드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했는데 보컬 멤버가 탈퇴하여 직접 보컬을 하기도 했었다. 고향에서 공연했을 때 입장료를 받아도 관객이 2~300명 수준이었다고 함 프레디는 학창 시절 밴드를 했었는데 그때는 보컬이 아닌 키보드 연주자였다 이후 60년대에 아마추어 밴드 '아이벡스'에서 리드 보컬로 활동. 영화 속 프레디의 노래하는 음성은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고. (마크 마텔 = 프레디와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서 화제가 된 퀸의 공식 트리뷰트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는 캐나다 가수) 프레디를 연기한 라미 말렉은 메리를 연기한 루시 보인턴과 데이트 중이라고 함! 존잘존예가 만났네 라미 말렉은 안무가 뿐만 아니라 무브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았는데 덕분에 프레디의 작은 행동, 습관, 시선, 마이크를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고 함 영화 속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길다고 한 음반사 관계자에게 캐릭터들이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언급한 이유 : 그 음반 6분 넘는 곡만 3곡이라서. 게다가 가장 긴 곡은 7분 50초 퀸과 마이클 잭슨은 만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작업도 함께 했다. 2014년에 마이클 잭슨과의 듀엣곡이 발표되었다. (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 1984년에 퀸이 내한할 뻔한 적이 있었다. 적당한 공연장도 못찾은데다 금지곡이 많아서 실패했다고 공연은 안 했지만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내한했었다. 이후 2014년에 내한공연을 했다 프레디만의 관객 소통 방법인 '에~오'는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전광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존 디콘은 프레디가 없으면 퀸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는 듯. 실제로 1997년 은퇴하였다 브라이언 메이는 투병 중이던 프레디를 보러 가던 때,  300야드 (274m)를 남겨두고 '올 필요 없다. 사망했다'는 부고 전화를 받았다 프레디의 어머니 제르 불사라는 2016년에 94세로 별세하였다. 당시 브라이언 메이는 공식 활동을 중지하고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프레디의 어머니와 알고 지낸 시간만 50년이 넘었고 어머님은 프레디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가 가수의 길을 반대할 때에도 아들을 응원했고 마지막까지 모든 활동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모든 활동에 프레디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대단히 기뻐했다'는 내용 (출처 : https://whitequeen.tistory.com/2148) 프레디는 투병하던 때 불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병이 악화될수록 일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브라이언 메이 : 프레디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고 전혀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저녁에 다 같이 나갔는데 다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보고 있는 걸 알고는 "브라이언, 어떤지 한 번 볼래?" 그러고는 보여줬어요. 그리고 제 표정에 대해 오히려 프레디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네가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라고 말하면서요. -  프레디가 말했어요. "곡을 만들어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 가사도 계속 써줘. 계속 일을 줘.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싶어." "나중엔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돼. 나중에 완성하면 돼." - "프레디 머큐리, 인생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른 사람." 저에게는 그게 프레디였어요.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았어요. 그 나머지도 모두 포함해서요. ] ( 출처 : https://blog.naver.com/kngjoo/120152157305 ) 프레디의 생전 마지막 퀸 정규 앨범인 Innuendo는 프레디가 언제쯤 스튜디오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멤버들에게 연락하면 나머지 세 멤버들이 데모 버전을 미리 만들어 놓고,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을 때 스튜디오에 와서 보컬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생전 마지막 싱글인 <The Show Must Go On>는 음이 높아서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가 이 곡을 부를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하는데, 프레디는 "I'll fuckin' do it, darling('씨X, 하지 뭐' 정도의 뉘앙스.)"이라고 내뱉은 후,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한 보드카를 쭉 들이키더니 삑사리 없이 한 큐에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 출처 : https://namu.wiki/w/%ED%94%84%EB%A0%88%EB%94%94%20%EB%A8%B8%ED%81%90%EB%A6%AC ) Q. 퀸 음악 모르는데 랩소디 보러 가도 되나요? 쿵쿵(짝) 쿵쿵(짝) 위윌위윌뢐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