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oll
500+ Views

와세다 대학이 의대에 '목 매는' 이유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10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게이오대의 한 해 기부금(2016년 결산)은 87억3900만 엔, 와세다대는 30억9500만 엔이었다. 명문 사립 라이벌인 두 학교의 기부금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왜일까. 이유는 의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게이오대 의대는 일본의 1% 학생들이 들어가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반면 와세다대는 사립 최고 종합대학 자리에 있으면서도 의대가 없다. 기부금이 많은 상위 20개 일본 사립대 중, 의학부를 가진 곳은 13개 학교다. ‘기부금=의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

기부금의 ‘큰 손’은 의대 입학 학생을 둔 부유층 가정이 대부분이다. 문과 중심의 대학에서 거둬들이는 기부금과는 자릿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와세다대가 의대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세다대의 한 졸업생(OB)은 이렇게 말했다.(시사매체 슈칸겐다이 11월 7일자 보도)

<“대학 브랜드 제고와 재정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의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틀림없이 와세다의 간절한 소망이다. 의대가 생긴다면, 말 그대로 범에 날개를 단 격으로, 의학부를 가진 게이오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 된다.”>

(원문:「大学ブランドの向上と財政基盤強化のためには、のどから手が出るほど作りたい学部。まさに早大の悲願だ。医学部ができれば文字通り鬼に金棒で、医学部を持つ慶應義塾大学に引け目を持たなくて済むようになる」)

그럼, 와세다는 왜 의대를 만들지 않았을까. 슈칸겐다이는 “메이지 시대의 자유민권운동을 이끈 와세다대 설립자 오쿠마 시게노부는 정치인 육성을 중시해 의학에 관심이 없었다고도 전해진다” (明治期の自由民権運動を牽引した早大創設者の大隈重信は政治家育成を重視し医学部には興味がなかったとも伝えられる)고 보도했다.

오쿠마 시게노부(1832~1922년)가 와세다대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를 설립한 건 1882년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당대의 권력자였다. 두 번이나 총리(8대, 17대)를 지낸 그는 1907년 정계를 은퇴하고 와세다대 총장에 취임했다.

슈칸겐다이에 따르면, 1961년 국민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와세다대의 ‘의대 인수설’이 계속 흘러 나왔다고 한다.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었던 사례가 2008년 도쿄여자의대와의 제휴였다. 슈칸겐다이는 “두 대학의 제휴는 ‘와세다의 의학부 설치 포석’이라는 견해도 있었다”며 “그 후에도 ‘의료 사고 발생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도쿄여자의대를 와세다가 합병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관측이 난무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소문이 나돌긴 했지만 성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여자의대측에서 반발이 있었던 것. 현재, 와세다대의 오랜 소망은 좌초된 상태다. 슈칸겐다이는 의대 인수설과 관련 “라이벌도 있다”며 “주오(中央)대학과 도시샤(同志社)대학도 의대를 갖고 싶어한다. ‘좋은 매물’이 나올 경우,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와중에 11월 5일, 와세다대의 새로운 총장이 취임했다. 정치경제학부의 다나카 아이지(田中愛治) 교수다. 와세다의 정치경제학부에서 총장이 탄생한 것은 50년 만이라고 한다. 다나카 총장은 전전(戰前)엔 일본 공산당 중앙위원장으로, 전후(戰後)엔 ‘우익의 해결사’라고 평가받는 다나카 세이겐(田中清玄)의 아들이다.

아사히신문의 자매매체 아에라닷컴(6월 30일자 보도)은 “다나카 교수는 대담한 구상을 안고 있다”(田中教授は大胆な構想を抱いている。)며 “의대를 인수해 와세다 대학 의학부를 만들고 싶은 것”(医科大学を買収し、早稲田大学医学部をつくりたいのだ。) 이라고 했다. 슈칸겐다이는 “다나카 총장이 의대를 보유할 비책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Comment
Suggested
Recent
좋은 글과 사진들이 참 많네요. 소통해요!
Due to user reports, the content has been hidden.See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후쿠오카_마린월드
최근에 일본 후쿠오카를 갔다 왔어요. 다녀오고나니 한일관계가 더 악화되어있어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올립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후쿠오카에서 제일 좋았었던 마린월드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요금 대인 및 고등학생: 2,300엔, 중학생: 1,200엔, 초등학생: 1,000엔, 유아: 600엔, 만4세 미만 무료 이제 내부의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아쿠아리움에 딱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수조에요. 빛에 투영되는 물의 번짐과 색이 이뻐서 보자마자 와 하는 탄성이 나왔어요. 갯벌을 재현해놓은 곳도 있구요. 바다거북이도 자세히 볼 수 있어요. 푸른빛을 배경으로 한정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을 보며 웃고있는 역설 구마모토 산간부의 샘물을 재현한 곳으로 아소물의 숲이라는 공간이에요. 아쿠아리움의 구성이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구성 및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느껴졌어요. 특히 대형수조는 아, 너무 좋았어요. 푸른빛이 몸에 스며드는 것도 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것도 그 모든게 다 말이죠. 파란색이 우울을 상징한다면, 하늘도 바다도 파란색인 이 지구에서 우울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네요. 그렇죠? 아, 그래 우리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은 행성 지구에 살고 있다. -우주의 방 (by 여태현 작가)에서 발췌한 내용 정어리 태풍쇼의 모습 중 일부에요. 먹이통을 흔들어 정어리를 유인한 뒤 그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와 싶었어요. 가오리는 먹이를 달라고 자꾸 오는데 상어는 시크하게 지나가는 일련의 모습들을 보는게 재밌었어요. 이번에는 해파리를 보여 드릴게요.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는 생물체라지만 아쿠아리움에서의 해파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요. 유영하는 해파리 자체발광하는 해파리는 처음 봤어요!!!! 해파리 넌 너무 매력적이야 해파리에 빠져 황홀해있다가 얘네 보고 빵 터졌어요. 모래 속에 몸을 박은 채로 계속 저러고 있는데 귀엽기도 하고 뭐랄까...웃음을 자꾸 유발해요. 해파리 다음으로 좋았던게 말미잘이었어요. 하나하나의 세포들이 각기 다른 움직임으로 공존한다는 것, 물 속에서 자유로이 흔들린다는 것. 니모를 찾아서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빛의 가오리떼 내부 구경을 다하고나서 바다표범과 돌고래쇼를 보러 나왔어요. 아이스크림(400엔)을 먹고나니 쇼가 시작되었어요. 돌고래쇼가 시작하기 전 바다표범의 장기를 볼 수 있어요. 제자리에서 돌기, 박수치기, 고개 돌리기, 무게 중심 잡기 등을 보여줘요. 돌고래 쇼 중 공 던지기도 있었구요. 빠른 속도로 헤엄치던 돌고래들이 동시에 딱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모습도 있었어요. 이렇게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어요. 특히 360도 회전하는건 진짜 신기했어요!!!! 감탄의 감탄을 연발했던 돌고래 쇼였어요. 동물에 대한 자유 억압과 학대에 의해 쇼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아무 생각없이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으시다면 마린월드에 가시는 걸 추천드려요. 오랜만에 편히 웃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아쿠아리움에서의 시간을 기록하며 글을 마칩니다.
올 여름 해외여행 필수 어플리케이션 모음!
1.항공권은 어디가 제일 싸지? 자유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항공권 어플을 꼽으라면 바로 ‘스카이스캐너’ 일 것이다. 저가항공에 대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출발 날짜 전후의 다른 날짜 항공권의 가격추세도 제공하고 있다. 사용하기 편리한 UI와 기능에 충실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인기가 높다. 2.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 ‘에어비엔비’는 숙박의 개념을 바꿔 놓은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다. 숙박은 원래 호텔과 모텔 펜션 등 에서만 이뤄진다는 고정관념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숙박만으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향상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현지인과 관계를 맺고 그 지역만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필수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다. 3.가까이 있는 맛집은 어디? ‘트립어드바이저’는 전세계 여행자들의 리뷰 수가 무려 1억 건이 넘을 정도로 다른 어플의 리뷰와는 그 수를 견줄 수 없을 정도이다. 호텔과 명소 맛집의 정보를 제공한다. 전 세계 유저들이 어떤 호텔과 맛집에서 만족을 느꼈는지 알고 싶다면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간단 검색만으로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작성한 리뷰도 다른 여행자들을 위한 팁이 되어 줄 것이다. 4.여행지도는 무엇을 고르지? ‘구글맵스’는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필수가 된 어플리케이션이다. 물론 국내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국내 포털 서비스의 지도가 더 우수하다. 하지만 해외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중교통 시간표까지 제공되어 단순 지도정보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도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와이파이나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 자유롭지 못한 지역을 다닐 때도 요긴하다. 5.해외에서 꿀잠은 어떻게 청하지? 한국에서 개발한 ‘슬립셋(SLEEP SET)’은 개인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나에게 맞는 수면소리를 추천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다. 매일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기술은 스마트폰의 중력센서와 가속센서를 활용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완성시켰다. 슬립셋에 내장된 약 100여종의 숙면사운드는 모두 적정 주파수 스펙트럼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거친 후 최소 100여 차례 이상의 실제 반복청취 테스트를 마쳤다. 이후 최종단계에서는 일반적인 수면장애 환자들에게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예측을 위해 수면클리닉 전문의의 감수를 받았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ASMR(자율감각쾌락반응)등의 사운드가 내장되었고 바이노럴비트가 탑재되어 있다. 한번의 다운로드로 인터넷 접속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슬립셋은 에어플레이모드로 사용이 가능하다. 장거리 이동 중의 꿀잠을 책임질 것이다.
6차 산업의 선두 주자 '모쿠모쿠 농장'
정희선의 재팬토크/ 6차 산업 현장③ 모쿠모쿠 농장 <일본에서 산업, 기업 애널리스트 일하고 있는 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가 일본의 6차 산업 현장을 찾았습니다. 한국 전문가들과 함께 원정대(12월 17~19일 간사이 지역)를 꾸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3곳을 취재하고 그 사례를 소개합니다. 원정대가 찾아간 곳은 ᐅ와카아먀현의 아키츠노 가르텐(秋津野ガルテン), ᐅ미에현의 모쿠모쿠 농장(モクモク手づくりファーム), ᐅ오사카부의 스기고헤이(杉・五兵衛) 농원입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4편에 나누어 글을 싣습니다.> 1편: 6차 산업의 개념과 정의 2편: 귤로 지역 활성화 '아키츠노 가르텐' 3편: 6차 산업의 선두 주자 '모쿠모쿠 농장' 4편: 6차 산업의 효시 '스기고헤이 농원' (2편에서 계속) #벤치마킹 우리가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농장이다. 닌자로 유명한 이가노사토(伊賀の里)에 위치한 ‘모쿠모쿠 농장’(모쿠모쿠데즈쿠리팜:モクモク手づくりファーム)이다. 일본의 6차 산업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이곳일 정도로,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미 유명하다. 전북 고창에 매일유업이 문을 연 ‘상하농원’이 이 농장을 벤치마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유명세가 더해졌다. #이름 농장 이름에 모쿠모쿠(モクモク)라는 말이 붙은 건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목재로 통나무 하우스를 지었다고 해서 한자 나무목 두 글자(木々)를 붙여 모쿠모쿠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 또 햄이나 소시지를 훈제할 때 연기가 뭉게 뭉게(모쿠모쿠) 피어오르는 데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닌자의 고장과 관련됐다는 말도 있다. 닌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연막탄을 터뜨려 적들의 시야를 흩뜨리는데, 그때 연기가 퍼지는 모양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3가지 중 어느 것을 갖다 붙이더라도 재밌는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정희선 객원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록그룹 '퀸'과 1975년 4월 17일의 일본
1975년 4월 17일 하네다 공항 대소동 환영 인파에 놀라..."다른 행성 온 것 같다" 1975년 4월 17일 오후 무렵.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전례 없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이윽고 오후 6시가 되자, 호놀룰루를 경유한 JAL061 편이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트랩을 내려오는 주인공은 데뷔 3년차인 영국 출신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이었다. 섬 나라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멤버들이나, 이들을 맞은 팬들이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더 프레디 머큐리 등 멤버들은 일순간 동양의 작은 소녀들에게 포위당했고,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Harold May)는 당시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브라이언이 행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천문학자(Infrared astronomer)였다. 잠시, 브라이언 메이 얘기다.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라는 책에서 “제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에서라도 브라이언 같은 적외선 천문학자가 기타를 집어들고 로큰롤 가수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썼다. 천문학 잡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는 ‘브라이언 메이, 과학과 음악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분은 그를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지만, 브라이언은 천문학 박사이기도 하다”(You know him best as guitarist,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rock group Queen, but Brian May is also a Ph.D. astronomer”고 전했다. 일본에 도착한 퀸이 공연을 펼친 곳은 선배 그룹 비틀즈가 섰던 부도칸(武道館)이었다. 공항에 이어 공연장 소동도 변함없었다. 통곡하며 실신하는 여성이 속출했고, 팬들은 밀치고 넘어지며 스테이지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모두 침착하자”고 호소했다. 비틀즈 이후 최대의 소동이었다. 퀸의 공연은 2주간 전국에서 열렸다. 퀸은 이후 다섯 차례 더 일본을 방문했고, 마지막 공연을 한 곳은 1985년 5월 15일 오사카성 홀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6년 전이다. 여섯 차례의 일본 공연은 그만큼 퀸이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퀸은 이처럼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다. J-팝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팝음악 잡지 ‘MUSIC LIFE’는 당시 인기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룹 퀸은 ᐅ1975~1978년 1위 ᐅ1979년 2위 ᐅ1980~1982년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1년 11월 24일은 퀸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전하고 24시간 후 사망(당시 45세)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지 4년 뒤 발표됐다. 일본의 열성팬들은 2015년, 퀸의 일본 도착 40년을 기념해 4월 17일을 ‘퀸의 날’(The Queen Day)로 정했다. 일본에서 이런 소동을 벌였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극장가에서도 히트 행진 중이다. 신드롬, 팬텀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스지 스즈키(スージー鈴木)씨는 “헤이세이 최후의 겨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기억될 것"(平成最後の冬は、映画『ボヘミアン・ラプソディ』とともに記憶されるだろう。)이라고 했다. (일본은 내년 헤이세이 연호가 바뀐다) ‘Love Of My Life’, ‘I Want To Break Free’, ‘Spread Your Wing’ 같은 퀸의 노래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도 저물어간다. '에~오~ 에~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시카고에서 살아남기
2번째... 올해 목표가 생겼다~ 내가 그간 다닌 해외를 정리하는것! (연말에 빙글한테 상품 받기) 난 미국 중부 시카고에서 교환 학생 생활을 했었다 시카고하면 대부분 시카고 피자를 떠올린다 나도 첨엔 그랬고 그래서 친구를 따라서 시카고에서 로컬에게 유명한 시카고 피자집을 갔다 그리곤 두번 다신 안간다 다시는 안가는 이유: 진짜 짜다..느끼하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짜게 먹어도 이거 스몰사이즈 한판은 다 못먹을듯! (만일 드신다면 내가....피자 사고 칭찬해주겠음) 이곳은 시카고의 시그니쳐 공원인 밀레니엄 파크~ 이때가 초가을 날씨여서 쌀쌀하면서 음청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좋았음(이때 공연 많이함) S.Y누나랑 사귈때 이 공원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는데... 보고싶다.... S.Y 누나 잘 살고 있어?ㅠㅠ 참, 시카고의 날씨는 진짜 극단적인 날씨 여름엔 엄청 덥고 겨울은 엄청 춥고 (잘 모르시면 구글링으로 Chicago weather summer, winter 을 해보시길....) 시카고의 중심부에서 찍은 사진들 트럼프 타워도 있고, 옥수수타워도 있다. 시카고는 오대호에 닿아 있는 도시라서 배타고 잠시 나가서 도시를 볼 수도 있지만, 이건 돈 낭비... (차라리 존 핸콕 타워나 윌리스 타워 추천) 여기는 윌리스 타워(시어스 타워)에서 본 도시 전망 여기는 존 핸콕 타워인데 그 안에서 찍은 사진이 폰에 없는듯; 찾으면 올릴게요...ㅠㅠ 그 주변에 유명한 시카고 미술관과 시카고 불스(농구)와 시카고 블랙호크스(아이스하키) 홈으로 유명한 유나이티드 센터 생각 보다 시카고에선 많이 안찍은거 같다 컴터엔 사진 꽤 많던데ㅠㅠ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안 찍은것도 있을 것이고ㅠㅠ 그럼 19999 +1 다음을 기약하며~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최초의 여자 의대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student-life-worlds-first-medical-school-for-women-feminism-health 내가 이따금씩 올리는 연중 캠페인, 여자 애들을 STEM으로!와도 일치하는 주말 특집.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여자 의사들이다. 아직 2017년이라고 날짜를 적는 분들이 적지 않을 텐데, 2017년은 여자 애들의 STEM 진출에 있어서 뜻 깊은 한 해였다. 미국 의대 진학생들 중, 여자가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를 앞질렀기 때문이다(참조 1). 게다가 한국에서는 잘 안 알려졌는데, 트위터에서 #Ilooklikeasurgeon 운동이 있었다. 뉴요커 지 표지(참조 2) 그림을 전세계 (주로 여자) 의사들이 따라한 것이다. 게다가 세 명의 19세기 여자 의사들 사진이 트위터에 돈 적이 있었다. 출처는 드렉셀 대학교의 뉴스 블로그(참조 3), 순서대로 인도, 일본, 시리아이다. 무려 1885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그렇다면 드렉셀 대학교는 어째서 이런 사진을 올렸을까? 세계 최초로 여자 의대생을 받은 학교인 Woman’s Medical College of Pennsylvania (WMCP)를 인수합병하여 자신의 역사로 한 학교가 바로 드렉셀 대학교이기 때문이었다(참조 4). 그럼 하필이면 펜실베니아에서 여자 의대가 생겼을까? 퀘이커교 덕분이라고 해야겠다. 자칭 “친구들(19세기 소년?)”이라 부르는 퀘이커는 노예제 반대는 물론 여자들에게도 평등하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였다. 여자 의대생이 이전에 없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퀘이커 교도로서 대학교를 같이 창립했던 Joseph S. Longshore의 생각은 달랐다. (여동생과 조카가 들어갈 대학교가 필요하기도 하고) 여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작은 험난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의대와 수업을 같이 들을 때는 야유와 종이 뭉치 던지기의 대상도 되고, 쪽지 협박도 받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펜실베니아 지역 언론은 남자 대학생들이 신사적이지 않다고 점잖게 꾸짖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여자도 사람이니 환자는 발생한다. 여자 의사는 필요했다. 그런데 의대만 세워 놓으면 뭐하나? 레지던트 훈련을 받아야지? 당시 병원들은 여자 인턴/레지던트들을 거의 안 받았었다. 그래서 1861년 Woman’s Hospital of Philadelphia도 설립된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을 앞서 언급한 드렉셀 대학이 관리하고 있다. (운영난 때문에 펜실베니아 여자의대는 1970년 남녀 공학으로 바뀐다.) 드렉셀 대학의 의학사 아카이브는 트위터 링크로 보시라(참조 5).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복장을 한 젊은 여자들이 해골을 갖고 논다거나 기숙사에 엎어져있는(예나 지금이나...) 장면 등등의 사진이 아주 재밌다. 게다가 여자 의대가 없다시피 하니 여러 나라 여자 유학생들이 바로 이 학교로 몰려들었다. 사진에 있는 일본 유학생인 오카미 케이코(岡見京子, 참조 6)도 바로 그 사례다. 89학번인 그녀와 90학번인 시리아인 Tabat M. Islambooly 모두 각자 고향 땅 최초의 여자 의사였다. 그렇다면 흑인이나 인디언 여자들도 이 학교에? 맞다. 받아들였다. 오카미 케이코와 같은 학번에 최초의 인디언 여자 의대생 Susan La Flesche Picotte가 있었고, 91학번에는 흑인인 Halle Tanner Dillon Johnson이 있었다. (그 당시는 미국 내 인디언에게 미국 국적이 없었고, 인종과 관계 없이 여자들은 투표를 못 했던 때다.) 그래서 펜실베니아 여자 의대의 명성은 계속 올라갔고, 1920년 마리 퀴리도 여기가 궁금했는지 방문했던 사진이 링크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3 가지 정도 정리를 해 보자. 1. “더 닉(참조 7)”의 시즌 2 마지막편에서 코넬리아가 의사가 되기 위해 호주로 간다고 했는데, 이건 틀린 사실이 되겠다. 아무래도 가족의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미국에 남아 있지 못해서..가 더 정답이지 싶다. 위에 썼듯, 미국은 남북 전쟁 이전부터(!) 여자들이 의사가 될 수 있는 나라였다. 2. 미국 드라마 “닥터 퀸(1993-98)”은 실제로 존재했느냐... 위에 얘기했듯 존재했다. 드라마의 무대는 1867년이니 말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메사추세츠 주에서 서부로 오는 설정이다. 3. 한국 최초의 여자 의사는 박 에스더가 있다. 그녀는 볼티모어 여자의대(현재의 존스홉킨스)에서 공부한 00학번. 위의 다른 외국인 유학생들처럼 그녀도 고국으로 돌아와 헌신했었다. 결론 : 저 선배들 따라 여자 애들도 STEM으로 진출 많이 하시라. 지금부터 USMLE(참조 8)를 준비하려면 일단 의대부터(먼산). 역시 기승전대입인가. ---------- 참조 1. More Women Than Men Enrolled in U.S. Medical Schools in 2017(2017년 12월 18일): https://news.aamc.org/press-releases/article/applicant-enrollment-2017/ 2. The New Yorker Cover That’s Being Replicated by Women Surgeons Across the World(2017년 4월 11일): https://www.newyorker.com/culture/culture-desk/the-new-yorker-cover-thats-being-replicated-by-women-surgeons-across-the-world 3. FROM INDIA, JAPAN AND SYRIA, 19TH CENTURY WOMEN WHO TREKKED TO PHILADELPHIA FOR MEDICAL SCHOOL(2013년 7월 24일): https://newsblog.drexel.edu/2013/07/24/from-india-japan-and-syria-19th-century-women-who-trekked-to-philadelphia-for-medical-school/ 4. 1848년, New England Female Medical College가 처음 세워지긴 했었지만 금세 문을 닫았었다. 5. https://twitter.com/ducomarchives 6. 미나토 시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http://www.lib.city.minato.tokyo.jp/yukari/j/man-detail.cgi?id=17&CGISESSID=0f2330c978c09b897ebd667c7fad2f54 7. The Knick (2015) 시즌 2(2016년 1월 2일): https://medium.com/@minbok/the-knick-2015-시즌-2-3064a20b7bdb 8. 21개 한국 의대 출신도 볼 수 있다(심지어 북한의 평양 의대도 이론상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최종 합격하여 미국에서 일하는 의사는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자동차(혼다)
각 기업의 브랜드에는 저마다의 특별함이 숨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트레이너 겸 컨설턴트인 스캇 데밍(Scott Deming)은 이렇게 말한다. “가치와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브랜드의 역할이다. ‘특별함’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단어다. 특별함은 브랜드를 고객에게 각인시켜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스캇 데밍 저 ‘긍정적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 브랜딩’ 인용) 일본 제조업의 최선봉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기업들의 브랜드는 어떤 ‘특별함’을 담고 있을까.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4회는 자동차다. (1회 카레, 2회 커피, 3회 스포츠용품) 자동차 기업으로 가장 먼저 혼다를 살펴보겠다. 혼다자동차는 글자 그대로 창업자의 이름에서 브랜드명을 땄다. 혼다차를 설립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1906~1991)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초등학교만 나온 그는 자동차 수리 전문점에 이어 동해정기(東海精機)라는 회사를 만들어 피스톤링 제조를 시작했다. 도요타에 물품을 납품하고 자본도 제공 받았다. 소이치로는 전쟁 후 회사를 도요타에 매각하고 45만 엔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 밑천으로 1948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혼다기연공업(本田技研工業)을 설립했다.(혼다 소이치로 저 ‘혼다, 꿈의 이력서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인용, 이수진 옮김, 부표 출판) 자동차 제조로 보면,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재우 기자다른기사 보기
왕세자 저격 미수 사건과 방탄차
1990년 11월 12일, 도쿄의 궁성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퍼레이드식이 펼쳐졌다. 검정색 오픈카를 탄 일왕 부부는 길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퍼레이드에 사용됐던 오픈카는 그해 영국에서 4000만 엔에 구입한 롤스로이스 코니쉬 차종이었다. 3년 뒤인 1993년 6월 9일,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도 이 오픈카가 사용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내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가을에 역시 즉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롤스로이스 오픈카가 동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입한지 28년 동안 단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 차는 연식이 오래돼 현재 주행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국산차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굳혔다. 현재 외국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왕실의 공식 의전차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다. 즉위 퍼레이드에 사용되는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갖는다. 일본 전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이 퍼레이드용 오픈카로 도요타에 특별 주문을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의 차종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 1대: ‘영일 동맹’ 맺은 영국의 다임러 차종 선택 과거 일본 왕실에서 사용했던 차종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변해왔다. 왕실의 전용 의전차를 ‘어료차’(御料車: 일본어로는 고료샤)라고 한다. 왕실 전용차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大正) 일왕 때부터다. 당시 국가 원수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유럽에 조사단이 파견됐다. 다임러, 벤츠, 피아트 등 회사를 방문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영국의 다임러(독일 다임러와는 별개)였다. 다임러가 선정된 것은 당시 일본과 영국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동아시아 이권을 나눠 갖기 위해 체결한 조약)을 맺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12년 다이쇼 일왕 즉위식엔 다임러 란도레(Landaulet)라는 차가 사용됐다. 당시 영국 왕실도 다임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같은 모델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 차가 일본 왕실의 ‘1대 의전차’다. █ 2대: 왕세자 암살 미수에서 롤스로이스 유리창 뚫려 ‘2대 의전차’가 도입된 건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 차종 2대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롤스 로이스를 수입한 2년 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도라노몬’(虎ノ門) 사건이다. ... (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8
1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