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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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모델 야엘 셀비아

야엘 셀비야 Yael Shelbia
출생 이스라엘
175cm
2000.08.31
인스타그램에 본인의 사진들을 올리다
에이전시에 캐스팅되어 모델 활동중
최근에는 킴 카다시안의 광고 모델로 등장해서 화제가 됨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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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녀로군요~^^
요정인가
사람인가?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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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빅 픽처
기사 링크 11월 6일 수요일 저녁... 무함마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통치기구 의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로 리야드로 들어간다. 이미 파타와 하마스 간(참조 1)의 투쟁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던 그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MbS 왕세자님(참조 2)의 초대였다. MbS 왕자님과 압바스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공식 기록은 없다. 다만... 다만? 관계자(!)들의 루머에 따르면 MbS 왕세자는 압바스에게 이른바 “평화 계획peace plan”을 제안했고, 압바스는 거절했다고 한다. 평화 계획에 어떤 내용이 있길래(참조 3)? 1. 요르단 강 서안 정착촌은 대부분 그대로 존속 2.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 옆동네인 Abu Dis(أبو ديس)로 지정) 3. OK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대량 자금 지원 어떠신가? MbS 왕세자는 압바스 제1의 적이자 유력한 계승자인 무함마드 다흘란(참조 4)도 같이 초대했다고 압바스에게 살짝 흘렀다.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곧바로 다흘란에게 팔레스타인을 줘버리겠다는 위협이다. 그리고 압바스에게는 두 달의 시간이 부여됐다(참조 5). 안 받아들이면 퇴갤. 당연히 당사자들 모두 위와 같은 내용은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저 “평화 계획”이 과연 MbS 왕세자님의 구상일까?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쉬너의 작품(참조 5)일 것이다(물론 백악관도 이 “평화 계획”의 존재를 부인했다). 압바스가 리야드를 방문하기 2주 전, 쿠쉬너가 리야드에서 MbS 왕세자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도 이미 11월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워싱턴 DC 내 팔레스타인 대표부의 승인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에 다시 승인해주기는 했지만 모종의 대화가 계속 있었다는 의미다. (여러분 트럼프 행정부가 뭐든 기분 내키는대로 말한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위 평화 계획을 다시 보자. 저 내용대로라면 새로 창설될(?) 팔레스타인 국가는 가자 지구 외에 요르단 강 서안을 듬성듬성(!) 갖게 된다. 기사에 나온대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의 반투스탄과 비슷해진다는 얘기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도 허용이 안 된다(전혀 언급이 없다). 하지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평화계획을 강행할 이유는 충분하다. 현재 이란-이라크-시리아(어쩌면 레바논도?)의 시아 벨트가 형성됐기 때문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공동전선 형성이 매우 시급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육군 장성이 군사 정보를 사우디와 공유하겠다는 인터뷰(참조 6)도 나오고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다. 뭔가 “타결”만 되면 그만이다. 그만큼 팔레스타인에게는 2000년대 초 이후 없었던 협상을 어서 이스라엘과 시작하라는 압박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중동 내 여러 아랍 국가들 역시 시아-순니 싸움, 혹은 내부 문제에 정신 팔려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에게 노관심하고 있으니, 팔레스타인에게는 여러가지로 불리한 상황이다. (미국이 1995년 매번 갱신을 통해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및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지연해왔다는 점은 상식에 가까우니(...) 넘어가겠다.) 이 모두가 클린턴의 업보다. 2000년대 초 이후로 전혀 이렇다 할 뭔가가 없으며(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평화 협상을 깨뜨렸다는 표현은 잘못, 진행 중인 게 없으니 말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역시 미국 대통령들이 그동안 실패해 온 의제 중 하나다. 최종 보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동맹 수준으로 묶어 두려면, 어쩌면 이스라엘 수도로서 예루살렘의 인정(및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정리해 보자. 트럼프의 이스라엘 수도로서 예루살렘 인정은 대-이란 전선 형성을 위해 필요한 1단계 조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압바스 vs. 다흘란이 상징하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 아무도 관심 없어진 팔레스타인 문제, 보다 더 친밀해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쿠쉬너 (하트) MbS. 물론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은 섣불리 미국을 따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시간 나면(...) ---------- 참조 1. 하마스와 히즈불라(2015년 3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091158259831 2. 함정에 빠진 하리리(2017년 11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766799769831 3. Jérusalem: le coup de force de Donald Trump(2017년 11월 6일): https://www.mediapart.fr/journal/international/061217/jerusalem-le-coup-de-force-de-donald-trump?onglet=full 4. 무함마드 다흘란(محمد دحلان)은 특이하게시리 하마스의 점령지(!)인 가자지구에서 파타를 위해 뛰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내에서 상당히 특이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로 통하고 있다. (물론 반대파는 그가 예전부터 이스라엘 첩자였다고 주장한다.) 5. Talk of a Peace Plan That Snubs Palestinians Roils Middle East(2017년 12월 3일): https://www.nytimes.com/2017/12/03/world/middleeast/palestinian-saudi-peace-plan.html 여기서는 재러드 쿠쉬너와 제이슨 그린블랫트(트럼프의 부동산 전문 변호사였다), 그리고 디나 파월 이 세 명이 핵심이다. 이들의 얘기를 할 날이 올련지는… 6. Israeli army chief says ready to share information with Saudi Arabia(2017년 11월 17일): https://www.reuters.com/article/us-saudi-israel-iran/israeli-army-chief-says-ready-to-share-information-with-saudi-arabia-idUSKBN1DG29N
2국가 해법은 죽었다
국제기구나 어지간한 나라들(우리나라도 포함된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법으로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지지해왔다.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자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해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 기나긴 칼럼의 내용이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참조 1). 어차피 옛 이스라엘은 끝났다(참조 2). 2-국가 해법은 불가능할 듯 하며, 어쩌면 페레스가 예전에 선호했던 요르단 해법(Jordanian option)이 낫잖을까 싶다고 썼었다. 요르단 해법은 별 거 아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취소, 요르단이 관할토록 하자는 얘기다. 사실 이 글의 알렙 벳 예호슈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결국은 요르단 해법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 팔레스타인 통치기구를 해체, 이스라엘이 다 흡수한다. (2) 가자 지구는... 저자가 거론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집트에게 넘기는 식이 될 것이다. (3) 역시 저자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요르단과는 더더욱 친해져야 할 일이다. 잠깐 어지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나도 직접 팔레스타인 사람(그는 라말라 거주민이었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에게 서로 다른 결핍이 있으며, 예호슈아도 그점을 꿰뚫어보고 있다. 어째서 이런 해법이 나오는지 잠깐 보자. 유대인들은 고향이 없는 민족이다(일부러 현재형 술어를 사용했다). 어차피 유대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처음부터 유대인의 땅은 아니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민족의 정체성만 유지했었다. 이거 잘 이해해야 한다. 현대 이스라엘을 처음 세웠을 때 우후죽순 진입해 온 유대인들은 멋대로 살았고(주변 아랍인들과 같이 반-영국 투쟁을 벌였었다), 후에 각 전쟁을 통해 정착촌을 이스라엘 정부가 옮기거나 없애거나 할 때도 군말 없이 옮겨 가 살았다. “고향”의 개념이 비-유대인들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돌아갈,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베트남의 미국인, 혹은 알제리의 프랑스인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자. 이들에게는 나라가 처음부터 없었다. 오로지 가족과 씨족, 같은 마을 사람들만이 정체성의 전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다(참조 3).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 정체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실제로 2국가 해법을 논의하려고 압바스와 대화하려 했을 때, 압바스가 계속 대화를 사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기들 의견이 통일이 안 되니 말이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은 하나가 아니다. 크게 파타와 하마스로 갈려 있지만, 그들 자신도 씨족마다, 지역마다 모조리 다 갈라져 있다. 스스로를 단일한 국민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며, 크리스트교를 믿는 이들도 꽤 있고, (자기들은 아랍인이 아니라 하지만) 드루즈도 상당수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씨족과 출신지만 따지는 사람들이 그들이며, “난민”의 개념과 들어맞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정착촌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갔을 뿐. 중간 정리하자. 유대인들에게 고향은 부차적인 존재이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향은 곧 나라가 아니다. 대화의 접점이 없다. ---------- 하지만 말이다. 70년 동안 이스라엘 안에서는 그런대로, 그럭저럭 어울려 살아왔다. 직장과 고용 상의 이유겠지만, 히브리어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매우 많으며 이들은 상당한 비중의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결국은 차라리 이스라엘 국적을 주는 편이 낫다(참조 4). 다만, 이스라엘 국체를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변경을 고려해야 할 일이다. 크네셋으로부터 행정부를 독립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며, 일종의 유대-팔레스타인 연방국처럼 만드는 일이다. 선거 또한 현재의 비례대표제가 아닌 지역구를 도입하는 편이 낫다.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세속 국가로서 “정상화”를 위한 제안으로서, 예호슈아의 글은 사안을 피상적으로만 접하는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하다. 만약 이 해법대로 간다면야 수도 예루살렘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요르단이 좀 수고로울 것이다. 어차피 팔레스타인들 때문에 왕가가 무너질 뻔 한 경험이 있는 요르단은 웨스트뱅크를 안 받으려 할지 모르며, 향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를 중재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2국가 해법이 이제 효력을 다했음을 어떻게든 선언하는 편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매우 좋은 타이밍에,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얘기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일단은 모두들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2국가 해법은, 죽었다고 봐야 한다. ---------- 참조 1. 시몬 페레스의 여러 얼굴(2016년 9월 30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4487468754831 2. 옛 이스라엘의 종말(2016년 6월 1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4183746089831 3. 중앙의 통제에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고스란히, 전투 없이 점령지를 넘겨버린 사례가 많았다. 자기 마을만 지키면 됐지, 왜 남의 가문/마을을 지켜주냐는 인식 때문이다. 4. 어차피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전부, 그리고 유대아와 사마리아 거주 팔레스타인인 상당수가 통행권을 갖고 있다.
시오니즘과 나치의 협력?
https://orientxxi.info/magazine/un-accord-douteux-entre-le-mouvement-sioniste-et-l-allemagne-nazie,2916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서 공유한다. 이른바 나치 정권과 유대인이 협력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시오니즘 운동(이런 이름을 멋대로 갖다 써서 제가 건담 시리즈를 안...읍읍)이 활발해졌을 때의 얘기다. 시오니즘 운동은 당연히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정작 시오니즘 운동가들이 가장 우려하던 상황은 유럽 내 유대인들의 유럽화였다. 게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나라를 세우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당시 별다른 결실을 못 얻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에서는 자꾸 유대인들이 크리스트교로 개종을 하는데(프랑스 지역 유대인들보다 독일 지역 유대인들의 동화가 심했다고 한다), 정작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이 기대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1). 생각해 보시라. 만주로 돌아가서 부여(...)를 세우자는 주장에 현대 한반도 거주민들이 어느 정도나 동의할까?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황이 닥쳤었다. 그러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히틀러의 반 유대인 정책은 3월부터 시작됐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 내 유대인 단체와 좌파 지식인들, 노조는 독일의 반 유대인 정책에 반발하여 대대적인 독일 제품 보이코트에 들어간다. 그런데 정작 독일 내 유대인들은...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독일 보이코트가 독일 내 유대인 상황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현재의 압박이 포그롬(참조 2)은 아니며 그래도 독일이 법치국가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반-유대 압박이 시오니즘에게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동화보다 차라리 박해가 더 나았다. 독일 내 유대인들의 진단은 맞았다. 나치는 독일 제품 보이코트를, 독일에 반대하는 전세계 유대인들의 음모론으로, 독일에 대한 전세계의 장벽으로 선전한다. 게다가 대공황 때문에 미국은 달러를 상당폭으로 평가절하시켰고, 미국에 대한 채무 및 수출에 의존하는 독일은 위기를 맞이했었다. 실제로 1933년 독일의 외환보유고는 딱 1달치 수입량 정도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은 바이마르 인플레이션의 기억 때문인지 섣불리 마르크 평가절하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이때 대담한 제안이 하나 나온다. 유대인 이주 정책이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려는 유대인이 있다면, 재산을 처분한 뒤, "독일 물건들"을 갖고 가는(즉, 수출하는) 것이다. 이른바 나치 정권과 독일 내 시오니스트들 간의 Haavara(이주, העברה) 협정이다. 당시 영국 지배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은 일종의 "투자 이민"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천 파운드(지금으로 치면 5천 달러 정도라고 한다)만 있으면 이민이 가능했다. 당연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나치 정권은 유대인들을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고, 시오니스트들은 영국(!)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황으로 안 좋은 시기, 장부 상(!) 독일 제품 수출도 되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더 좋다. 이 프로그램은 1939년 폴란드 침공때까지 시행되고 약 53,000명의 독일 내 유대인들(대부분 청년층이었다고 한다)이 이때 팔레스타인으로 이민간다. 그렇다고 해서 시오니즘 운동이 당시 나치와 협력했느냐 하면 그것은 또... ---------- 참조 1. 1920년부터 1932년까지 독일에서 42,000명의 유대인이 이민을 나갔다. 이중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이들은 불과 3,000명이었다고 한다. 2. 포그롬(погром, 실제 발음은 /빠그롬/에 가깝다)은 보통 러시아어권 지역 내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 혹은 유대인 박해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서 다른 언어권에서도 쓰인다.
[절찬 상영중] 소울 - 내일은 내일의 음악이 연주될 것이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는 인사말의 무게도 바꾼 것 같다. 본론을 시작하기 전의 숨고르기 같았던 '안녕하십니까?'라는 형식적 질문이 팬데믹 이후에는 '당신의 삶, 정말 안녕하십니까?'라는 진중한 물음으로 읽히는 날들이 이어지는 중이다. 완전한 종식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언젠가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면 예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또 하루가 지나간다. '지금 나의 삶은 안녕한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문득 되묻는다. '코로나19가 끝나고 평범한 나날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안녕을 되찾고, 충만해질까요?'    픽사의 신작 <소울>을 보고 나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평범하다 못해 때로는 지루한 일상에 이토록 목말랐던 적이 있었던가? 모든 지구인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염원하는 이때, 픽사의 신작 <소울>은 가벼이 흘려보내기 일쑤인 하루하루에 담긴 아름다움을 느껴 볼 것을 권한다. 픽사의 방식으로. 영화 <소울> 속 미국 뉴욕(!)에서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3밀(밀집, 밀폐, 밀접)'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재즈 클럽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공연을 즐긴다. 지금 현실의 우리에겐 부럽기만 한 풍경이지만 활짝 웃는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를 제외한 길거리의 다른 뉴요커들은 왠지 심드렁해 보인다. 무심함은 대도시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심리적 무기인 것일까.    음악 선생님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잃지 않는 불굴의 조. 운명은 조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가 그토록 선망하던 'The Dorothea Williams Quartet'의 피아노 연주자로 공연을 하기로 한 바로 그 날, 불의의 사고를 일으켜 조를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린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저 세상', 즉 '태어나기 전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피트 닥터 감독의 가이드를 안심하고 따라가게 된다.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에서 탈피한 주제, 소재, 설정을 능수능란하게 저글링 하며 시각화하는 픽사의 저력은  <소울>에서 만개한 듯하다. 보통 '소울(영혼)'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기 쉬운 귀신과 사후 세계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 세상'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둥글둥글한 영혼들은 여느 공포영화의 귀신처럼 무서워서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귀여워서 심장을 직격한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태어나기 전 영혼 돌보미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된 2차원의 존재이지만 이질감 없이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움직이며 생경하고 신선한 비주얼을 완성한다.     <소울> 속 '태어나기 전 세상'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귀여움의 허용치를 초과한 세계다. 또한 <소울>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꿈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좋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어른들의 황량한 마음을 물조리개로 부드럽게 적셔 준다. 특히나 조가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The Dorothea Williams Quartet' 공연을 마친 후에 밀려오는 허무함을 도로테아에게 토로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꼭 실현하고 싶었던 목표일수록 달성한 후의 공허함이 크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무엇을 좇으며 살아야 할까? 도로테아는 말한다. "바다를 찾아가려고 하지 마라. 여기가 바다다"    <소울>은 조가 이 세상과 '태어나기 전 세상'을 오가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 '22(티나 페이)'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것을 보여 준다. 조와 22의 모험에 동참하다 보면, 삶의 목적에 매달리는 것이 오히려 온전한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지보다도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우주다. 이 우주적 삶은 악보를 주시하며 엄격하게 연주해야 하는 클래식보다는 즉흥성을 폭넓게 활용하는 재즈나 길거리 공연의 모습과 더 닮은 것이 아닐까?    내일은 내일의 음악이 연주될 것이다. 악보는 봐도 좋고, 안 봐도 좋다.   
이스라엘의 아랍어 지위
http://www.slate.fr/story/165353/israel-langue-arabe-hebreu 팔레스타인에서 똘똘한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 집안에 여유가 좀 있다면 당연히(?)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로 유학 보내기를 택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말이다. 실제로 아랍 저널리스트들 만나면서 그들이 팔레스타인 출신이라고 할 때 놀랐던 기억이 좀 있다. 그런 이들 십중 팔구는 히브리어도 능숙했다(학교를 다 이스라엘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국적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최근 “유대인 국가” 조항의 기본법 개정을 통과시키면서 아랍어의 지위를 공식언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 언어로 전환시켰다. 이게 무슨 의미이냐,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곳에서 아랍어 병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인구의 1/5을 차지하는 아랍계(드루즈 포함, 반드시 이슬람만 있지는 않으며, 크리스트교를 믿는 아랍계도 많다)는 이제 좋든 싫든 히브리어로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맨 위 단락에 언급했듯, 이미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도 자제들을 이스라엘 학교로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은 2011년부터 초등학교에서만 아랍어를 의무교육 시켜왔다(즉, 초등에서 교육해봤자 수준이...). 중등 이상은? 선택 과목이고 대체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영어를 택하지. 다른 수업은 물론 히브리어로 하고 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학교를 다니는 경우, 일과 시간 동안에는 히브리어와 (어쩌면) 러시아어(참조 1), 혹은 이디시어나 영어를 해야 한다. 아랍어는 이제 미국에서 자녀들을 학교 보내는 한국인 가정처럼, 가정 내 언어로 국한되어버렸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그냥 기본법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아랍어 해봤자 취직할 곳은 ... 대체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아랍어는 기술의, 학문의 언어가 아니다. 안 그래도 이스라엘이 스타트업으로 성하는 나라이니, 아랍계 엘리트라면 당연히 히브리어와 영어를 잘 해야 한다(참조 2). 근처 나라들 중에 기술 스타트업이 성하는 나라는 이스라엘 외에 없다. 이스라엘이 (어떻든지 간에) 세속 사회라는 것도 한 몫 한다.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니 여자들의 경우 히잡을 쓰고 다녀도 공식적으로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출세를 위해 이스라엘 학교로 들어온 아랍계라면, 개념필수적으로 세속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현상이 테러를 더 막아줄 수도 있는 일. 역시 일자리는 어지간한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결책이다. ---------- 참조 1. 러시아의 침묵(2018년 5월 1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261771999831 2. 내가 M국에 살 때도 똑같은 광경을 목격했었다.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이리라 싶은데 국어가 아랍어인 그 나라의 학교 교과서는 “국어”를 빼고 모조리 다 프랑스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이공계를 전공한다면 당연히 능숙한 프랑코폰이 될 수밖에 없다. 아랍어는 미래의 언어가 아니다.
네타냐후의 위험한 도박
https://orientxxi.info/magazine/benyamin-netanyahou-au-secours-de-l-arabie-saoudite,2802?fbclid=IwAR3C3VtjfbmVwy_gUZP_mYKABGRLcOTFhyea0haasnFU_uJ-Pg8NXxGKTvo 현재 중동은 이스라엘이 순니파 아랍 국가들과 친목을 다지고 다함께 반 이란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은 2국가 해법이 죽어가는 방향(참조 1)으로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중에 요르단과의 국가연합 형태로서의 2국가 해법 아이디어(참조 2)도 나왔고 말이다. 또 한 가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왜그리 MbS 왕세자님을 살리려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네타냐후 자신이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때는 1997년, 당시에도 총리였던 그는 칼리드 므샤알(خالد مشعل, 참조 3)을 암살하기 위해 요르단에 요원들을 급파한다. 다만 독침을 쑤셔 넣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이들은 요르단 당국에 현장에서 잡히고 말았고, 사전에 동 작전에 대해 요르단측에 알리지 않았던 관계로 요르단은 이스라엘에 대노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는 당시 해독제(!?)를 요르단 측에 제공할 수밖에 없었고, 하마스의 정신적인 지도자, 셰이크 야신(참조 4)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몇 년 후, 야신을 헬리콥터로 사살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이고, 이런 경험을 네타냐후는 잘 기억하고 있다. 까슈끄지 암살로 궁지에 몰린 MbS를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그래서 네타냐후는 우선 미국 설득에 주력했고(이틀 걸렸다고 한다, 참조 5),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정권을 공개리에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성공일까? 그렇지만 개인적인 경험 외에도 당연히 이유가 있으니 이스라엘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돕는 것이다. 위에 적었던 대-이란 전선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MbS야 권력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MbS는 여자들 운전 허락해준 것 외에 외교 면에 있어서 대체로 실패만 거뒀을 뿐이다(예멘 전쟁, 카타르 문제, 터키 관계 등등). 게다가 까쇼끄지 사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보다는 더 낫다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말았다(그런 게 있긴 있었나?). 과연 MbS가 팔레스타인에게 트럼프의 "평화 계획"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러시아 정찰기를 떨어뜨린 이후(참조 6), 이스라엘은 전혀 비행기를 못 띄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며칠 후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직접, "러시아는 시리아 내 이란군을 좌지우지할 형편이 못 된다"고 인정하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시리아 내 이란은 커녕 히즈불라도 이제 이스라엘이 못 치게 됐다는 의미로서, 이건 어느 각도에서 봐도 이스라엘의 외교 실패다. 게다가 푸틴은 이란이 시리아가 아닌 레바논을 통해 군수물자를 지원토록 조종한다. 이란 미사일들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보유한 "민간 항공기"를 통해 레바논으로 간다는 얘기다. 이걸 이스라엘이 못 막고 있는데, 그렇다고 레바논을 칠 수도 없다. 민간 항공기는 과연 칠 수 있을까? 히즈불라의 성장을 바라만 봐야 하나? MbS도 이제 못 도울 형편인데 말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과연 하나?), 트럼프가 재선 못 되면? ---------- 참조 1. 2국가 해법은 죽었다(2018년 4월 2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207271704831 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70년의 교착(2018년 12월 14일):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371 3. 칼리드 므샤알에 대해서는 두 개 정도가 좀 자세히 적어 놓았다. (1) 하마스와 히즈불라(2015년 3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091158259831 (2) 칼리드 므샤알의 도박(2012년 12월 1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478170775568390 4. 정식 이름은 셰이크 아흐마드 이스마일 하산 야신(الشيخ أحمد إسماعيل حسن ياسين‎), 하마스를 만든 장본인이다. 5. 심각한 사안이었다. 친-트럼프 중에서도 친-트인 린지 그레이엄(북한 때문에 자주 영상에 나오시는 분이다)과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6. Russia expects to continue cooperation with Israel on Syria — Lavrov(2018년 12월 18일): http://tass.com/politics/1036405 이 사건이 많이 흥미로운데, 시리아에서 작전 중이던 이스라엘 F-16기들이 시리아의 방공 미사일(S-200)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정찰기 뒤로 숨은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대노한 것.
할아버지 모델만 있다? 할머니 모델도 있음!
최근 활발하게 활동 중인 김칠두 할아버지를 보고 문득 든 생각 우리나라에 여성 시니어 모델은 없나? 그래서 구글링을 한 결과 맵시짱 지존 까리한 모델을 만나게 되었다. 모델 최순화 올해 78세로 모델 일을 시작한지 6년차가 되시는 최순화 모델 170cm의 훤~칠한 기럭지로 런웨이와 화보에서 저세상 멋짐을 뿜뿜하심 수트핏 진짜 오지시네요.. 저보다 자세도 좋으시고.. 부럽..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두 자녀를 혼자 키운 최순화 모델은 우연히 티비에서 모델학원 광고를 보고 직접 찾아가 수업을 듣기 시작하셨다고 함 72세의 나이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녀는 에이전시에 합격한 뒤 지난 해 서울 패션위크에서 활약하심 YES 맵시 쌍따봉 드립니다. 크 레이어드 컷과 찐!보!라!도 찰떡같이 소화하심 처음에는 너무 나이들어 보이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은발도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음 어쩜 머리숱도 쏘 풍성... 찰떡쓰 최근에는 안다르의 브랜드 캠페인 모델로 발탁되심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인 '모두의 레깅스' 안다르에서 공개한 영상과 사진 속 최순화 모델님은 패션 페스티벌 런웨이에 도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 '하고 싶은 일을 만나는 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다' 카피랑 모델님이랑 진짜 너무 잘 어울리지 않음? 앞으로 모델활동을 계속 할 예정이지만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세계무대에 한국 시니어 최초로 나가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그녀 뭔가 최순화 모델님을 보면서 꿈을 이루기에 늦은 시기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음 계속해서 도전하는 용기가 진짜 멋짐 ㅠ "외국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한국 시니어 처음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한국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다. 당신네만 있는 게 아니다." 일상도 고냥 모델포스 작살나시는 최순화 모델님의 인스타 픽-챠-를 보면서 마무리 하겠음 응원합니데이^^7 충성! 충성!
드루즈, 분노하다
http://www.faz.net/-gq5-9d4es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참조 1), 드루즈는 중동 지방에서 상당히 기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주, 아주 옛날에 시아파에서 갈라져나와 현재는 당당한 하나의 종파를 이루고 있으면서(혹자는 이들이 무슬림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국어는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자기가 살고있는 나라에 충성을 바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이들은 정통(?) 무슬림 계 아랍인들로부터 핍박과 탄압을 받아왔기 때문에(참조 2), 일반적인 주변의 순니파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들이 몰려와서 이스라엘을 세우려 할 때부터 이들은 이스라엘과 협력해왔었다. 당연히 이스라엘이 참여한 모든 전쟁에 같이 참여했으며,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고 이스라엘을 지켰다. 당연히 이스라엘이 다른 아랍계는 몰라도 드루즈는 믿었고, 크네셋 의원 자리도 특별히 배정해 놓았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네타냐후가 "유대인 국가"를 기본법에 집어 넣으면서 사단이 발생한다. 기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말 아사드도 마찬가지, 심지어 그는 전직 IDF 장성이었다. 갑자기 유대인들 밑으로 지위가 격화됐기 때문에 그는 시위에 나섰다. 같이 팔레스타인과 싸웠던 상당수 이스라엘인들도 여기에 동조. 막 통과된 기본법을 다시 되돌리지 않으면 혹시 1990년 이전의 남아공처럼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드루즈들은 대부분 리쿠드 당에 투표해 왔었는데도 불구,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은 드루즈 수가 적으니(인구의 1.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네타냐후의 한 측근은, "12만 명 정도의 소수가 어째서 특권을 가져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물론 드루즈라고 하더라도 이미 유대인들과 차별되는 대접을 받고 있기는 하다. 가령 이스라엘에서 제일 위험한(?) 지역인 웨스트뱅크 쪽의 군경은 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루즈나 그 외 소수계 이스라엘 병사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참조 1)과도 같이 시위에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전직 장성답게 기사의 주인공 아말 아사드는, "그들(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든다면야 같이 시위를 할 수 있소."라 말한다. ---------- 참조 1. 시리아의 드루즈(2015년 8월 2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490958114831 조지클루니(2014년 7월 8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497371174831 , 아랍계 이스라엘인(2014년 7월 26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534562374831 2. 그래서 이들은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의 탄압을 받았던 쿠르드처럼 산악 지방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드루즈 거주지는 이스라엘 내 다른 지방보다 인건비가 매우 저렴하다. (유대인 사업가들이 종종 이들 지역에 투자한다는 의미다.)
미란다 커가 4위? 모델들의 로망 역대 빅토리아 시크릿 엔젤 TOP 10
매년 열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은 미국 란제리 시장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은 브랜드입니다. 섹시 란제리를 표방하는 이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는 것은 모든 모델의 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오늘 RedFriday에서는 역대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들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모델 10명을 소개합니다. 10위 베하티 프린슬루 (Behati Prinsloo) 베하티 프린슬루는 나미비아 출신의 모델입니다. 2008년 빅토리아 시크릿의 하위 브랜드인 Pink의 모델로 발탁된 후 2009년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이 되었습니다. 9위 린제이 엘링슨 (Linsay Ellingson) 린제이 엘링슨은 5시즌 연속으로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로 활약했습니다. 2011년 이 브랜드의 시그니쳐 엔젤이 되었으며 빅토리아 시크릿의 향수 라인인 VS Attractions의 모델, 그리고 새로운 브라인 Gorgeous의 모델이었습니다. 8위 안나 비트리즈 바로스 (Anna Beatriz Barroz) 브라질에서 1982년에 태어난 안나 비트리즈 바로스는 전형적인 브라질 스타일의 글래머러스한 모델입니다. 게스, 샤넬 코스메틱스, JLO 패션 라인의 모델로도 유명한 그녀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런웨이에도 6번 섰으며 타 란제리 브랜드의 모델로도 활약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고하세요.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263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