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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그룹 '퀸'과 1975년 4월 17일의 일본


1975년 4월 17일 하네다 공항 대소동

환영 인파에 놀라..."다른 행성 온 것 같다"


1975년 4월 17일 오후 무렵.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전례 없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이윽고 오후 6시가 되자, 호놀룰루를 경유한 JAL061 편이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트랩을 내려오는 주인공은 데뷔 3년차인 영국 출신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이었다. 섬 나라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멤버들이나, 이들을 맞은 팬들이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더 프레디 머큐리 등 멤버들은 일순간 동양의 작은 소녀들에게 포위당했고,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Harold May)는 당시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브라이언이 행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천문학자(Infrared astronomer)였다.

잠시, 브라이언 메이 얘기다.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라는 책에서 “제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에서라도 브라이언 같은 적외선 천문학자가 기타를 집어들고 로큰롤 가수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썼다.

천문학 잡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는 ‘브라이언 메이, 과학과 음악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분은 그를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지만, 브라이언은 천문학 박사이기도 하다”(You know him best as guitarist,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rock group Queen, but Brian May is also a Ph.D. astronomer”고 전했다.

일본에 도착한 퀸이 공연을 펼친 곳은 선배 그룹 비틀즈가 섰던 부도칸(武道館)이었다. 공항에 이어 공연장 소동도 변함없었다. 통곡하며 실신하는 여성이 속출했고, 팬들은 밀치고 넘어지며 스테이지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모두 침착하자”고 호소했다. 비틀즈 이후 최대의 소동이었다. 퀸의 공연은 2주간 전국에서 열렸다.

퀸은 이후 다섯 차례 더 일본을 방문했고, 마지막 공연을 한 곳은 1985년 5월 15일 오사카성 홀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6년 전이다. 여섯 차례의 일본 공연은 그만큼 퀸이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퀸은 이처럼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다. J-팝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팝음악 잡지 ‘MUSIC LIFE’는 당시 인기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룹 퀸은 ᐅ1975~1978년 1위 ᐅ1979년 2위 ᐅ1980~1982년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1년 11월 24일은 퀸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전하고 24시간 후 사망(당시 45세)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지 4년 뒤 발표됐다. 일본의 열성팬들은 2015년, 퀸의 일본 도착 40년을 기념해 4월 17일을 ‘퀸의 날’(The Queen Day)로 정했다.

일본에서 이런 소동을 벌였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극장가에서도 히트 행진 중이다. 신드롬, 팬텀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스지 스즈키(スージー鈴木)씨는 “헤이세이 최후의 겨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기억될 것"(平成最後の冬は、映画『ボヘミアン・ラプソディ』とともに記憶されるだろう。)이라고 했다. (일본은 내년 헤이세이 연호가 바뀐다)

‘Love Of My Life’, ‘I Want To Break Free’, ‘Spread Your Wing’ 같은 퀸의 노래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도 저물어간다. '에~오~ 에~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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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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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wegian Wood And when I woke, I was alone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나 혼자뿐이었어 This bird has flown. 귀여운 작은 새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지 So I lit the fire 나는 난로에 불을 지폈어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산 가구, 아주 근사하지 않아요?" (대중음악에 인도 악기(시타르)가 들어간 첫 사례이자, 조지 해리슨을 본격 인도빠로 인도한 곡) Nowhere Man Doesn't have a point of view 그는 이렇다 할 관점도 없고 Knows not where he's going to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지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너와 나와 좀 닮은 것 같지 않아? Nowhere man, please listen 어디에도 없는 자여, 들어봐 You don't know what you're missing 넌 너가 놓치는 게 뭔지 몰라 Nowhere man, The world is at your command 어디에도 없는 자여, 세상은 너의 손에 달렸어 (존 레논이 본인의 심정을 투영해 자아의 성찰을 주제로 작곡한 노래) 이것이 음반 전체의 '주제'로 승화되면서 개별 한 두곡만 찾아서 듣는 것이 아닌, 대중들 사이에서 앨범 전체를 작품으로서 듣게 되는 새로운 경향이 생겼으며, 이 음반에 충격을 받은 많은 뮤지션들이 (대표적인 예로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인데,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 역시 오늘날 최고의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음반의 작품화'에 착수하면서 서양 대중음악은 대변혁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존 레논 인생 최대 어그로인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 발언과 필리핀 가서 독재자 안 빨아줬다고 살해 협박을 받고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 또한 밥 딜런을 만나 서로 약을 졸라 빨면서 (씨잼처럼 가짜는 아니였음) 창작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던 그들은 투어와 앨범 발매로 병행되는 지겨운 일정을 아예 접었고, 인도빠 조지 해리슨은 힌두교로 전향해버립니다. 그리고 4명의 멤버들은 스튜디오에 박혀 온갖 음악적 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3-2. <Revolver> (1966) 그리고 투어를 그만두기 직전 나왔던 7집 <Revolver>부터는 각자 멤버들의 개성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서로 뻗어나갔는데, 존 레논은 사이키델릭과 포크의 결합, 폴 매카트니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 조지 해리슨은 인도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으로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음반으로 어우러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링고 스타는 그냥 드럼을 열심히 쳤... Tomorrow Never Knows Turn off your mind relax and float downstream 몸에 힘을 빼고 마음을 진정 시켜 봐요 It is not dying. It is not dying. 그것은 죽음이 아니에요, 죽음이 아니에요. Lay down all thoughts, surrender to the void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공허함에 몸을 맡겨 봐요. It is shining. It is shining. 그것은 빛나고 있어요, 빛나고 있어요. That you may see the meaning of within 그렇게 하면 그속에 있는 의미를 보게 될지도 몰라요. It is being. It is being. 그것은 존재하고 있어요, 존재하고 있어요. <Revolver>의 대표곡이자 사이키델릭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Tomorrow Never Knows'는 서양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곡으로 뽑히는데, 'Rain', 'I'm Only Sleeping'과 함께 곡을 역방향으로 재생하면 들리는 소리나 메시지를 삽입하는 기술인 백마스킹이 음악 역사상 최초로 쓰인 곡입니다. 그리고 이 기법은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하나의 장르의 탄생을 야기했습니다. 즉, 비틀즈가 이 음반으로 록의 한 장르를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그리고... 3-3.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역대 500대 명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음반. 비틀즈의 이름이 아닌, 앨범과 동명의 밴드가 공연한다는 컨셉의 음반으로,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된 역사상 최초의 '컨셉트 앨범'입니다.  이 음반은 서양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명반인데, 이러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ㄱ. 10대들의 오락에 불과하던 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첫번째 시도이며, 동시에 그러한 시도에 성공했다는 점. ㄴ. 록이 다른 음악들과 만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 ㄷ. 20세기까지의 서양음악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서양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 ㄹ. 비틀즈가 확보했던 대중성에 기초해 위대한 예술이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인 '보편성'을 획득한 첫번째 락 음반이라는 점. A Day In the Life (Lennon) I saw a film today, oh boy 난 오늘 영화 한 편을 봤어, 세상에 The English Army had just won the war 영국 군대가 전쟁에서 이겼고 A crowd of people turned away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지 But I just had to look 그러나 난 그저 지켜보았지 Having read the book 책을 읽으면서 말이야 I'd love to turn you on 당신을 취하게 하고 싶어 (McCartney) Woke up, fell out of bed 잠자리에서 일어나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빗을 찾아 머리를 빗어 Found my way down stairs and drank a cup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을 한 컵 마시고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올려다보니, 내가 늦었다는 걸 깨달았지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외투를 찾고, 모자를 집어들고 나와서 made the bus in seconds flat 빨리 버스에 탔어 Found my way up stairs and had a smoke 위층에 올라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누군가 내게 말을 건냈고 난 꿈에 빠져 들었어 특히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A Day In the Life'은 곡을 완성하지 못하던 존 레논의 멜로디를 폴 매카트니가 아예 다른 멜로디를 붙여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중음악에 40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삽입을 이뤄낸 최초의 시도로, 비틀즈 팬들이 꼽는 최고의 명곡 중 늘 1, 2위를 다툽니다. (아마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분들께서는 퀸의 'Bohemian Rhapsody'에서의 그 전환이 생각날 겁니다.) 3-4. <The Beatles(The White Album)> (1968) 여기서 그 커리어가 끝났어도 이미 원탑 레전드였을텐데, 비틀즈는 1년만에 또 다른 전환을 시도하고, 그것이 맘껏 발현된 음반이 <The Beatles>입니다. 커버부터 화려했던 1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앨범 커버부터가 아무런 바탕도 없이 비틀즈의 영어 표기만 달랑 붙어있는데 화려하고 꽉 찬 느낌과 정반대의 대조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음반은 하나의 주제로 모여있는 <Sgt...>와 달리, 모든 멤버가 제각각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버리는 컨셉이었습니다. 더블 앨범(2CD)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장르를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습니다. 로큰롤, 록, 팝, 하드록, 발라드, 챔버팝, 사이키델릭 록, 블루즈 록, 브라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 포크 록, 재즈, 컨트리, 스카, 펑크, 자장가, 헤비메탈, 아방가르드 등.... 그리고 그 장르들의 대부분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Helter Skelter When I get to the bottom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I go back to the top of the slide 난 정상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 Where I stop and I turn and I go for a ride 떠오르려고 멈추고 돌아서서 가는 거야 Till I get to the bottom and I see you again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널 다시 보겠지 Do you, don't you want me to love you? 너, 넌 내가 널 사랑하길 바라지 않니? I'm coming down fast but I'm miles above you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너보단 훨씬 나아 Tell me, tell me, tell me, come on, tell me the answer 말해줘 말해줘 제발 답을 말해봐 Well, you may be a lover but you ain't no dancer 넌 내 사랑은 받아도 날 즐겁게는 못해주겠지 예를 들어, 이 음반에 들어있는 곡 'Helter Skelter'는 헤비메탈의 시초로 불리고 있으며, 비틀즈를 조용한 팝 음악 곡들로만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록밴드'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곡입니다. Ob-La-Di, Ob-La-Da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되네요. La-la how the life goes on 랄라 인생은 계속된다고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되네요. La-la how the life goes on 랄라 인생은 계속된다고 또한 이 음반에서 가장 분위기가 따로 놀지만 가장 인기를 얻었던 곡 중에 하나인 'Ob-La-Di Ob-La-Da'는 대중음악 최초로 레게 비트와 스카를 차용한 곡입니다. 이렇듯 멤버들이 서로 따로국밥 형식을 한 <The Beatles> 더블 앨범은 멤버 각자의 개성들을 자유롭게 표출해낼 기회가 된 것이고 그 결과로 한계가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사운드와 다양한 정서가 담긴 방대한 더블앨범이 탄생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앨범에는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는 음악색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비틀즈 자신이 전작들에서 선구적으로 정립시켰던 관념을 비틀즈 스스로가 뒤엎는 결과가 된 것이죠. 3-5. <Abbey Road> (1969) 비틀즈 하면 떠오르는 사진 중 하나, 바로 <Abbey Road>의 앨범 커버입니다.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이미 멤버들은 서로 반목에 반목을 거듭해 해체 직전에 있었으며, 저 앨범 커버 역시 본인들 스튜디오 옆에서 촬영한 것으로, 어디 멀리 가기 귀찮고 서로가 싫어지기도 해서 대충 찍은겁니다. 아마 저 횡단 보도를 건너던 순간 멤버들은 아마도 '요코 보고 싶다', '인도 가고 싶다' 같이 딴 생각만 가득했을 겁니다. 그런 최악의 팀워크 아래에서도 비틀즈는 또다시 명반을 만들어냅니다. Come Together He wear no shoeshine he got toe-jam football 빛나는 신발은 신지는 않고, 발가락 묶인(?)축구공을 가지고 있지 He got monkey finger he shoot coca-cola 원숭이 같은 손가락에 코카콜라를 쏘아대 He say "I know you, you know me" 그는 말해 "난 널 알아, 넌 날 알아" One thing I can tell you is you got to be free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Come together right now over me 지금 당장 모여서 내게로 와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해가 떠올라요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해가 떠오르며, 난 좋다고 말하죠 Little darling, It’s  a long cold lonely winter 귀여운 내 사랑, 춥고 외로운 겨울이였어요 Little darling, It feels like years since it’s been here 귀여운 내 사랑, 겨울이 몇 년처럼 느껴져요 1년 후에 나온 마지막 정규 앨범 <Let It Be>보다 더 늦게 녹음된 이 음반은 레논-매카트니에 가려져 있던 조지 해리슨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앨범 후반부에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폴 매카트니의 메들리, 그리고 대중음악 최초의 히든 트랙 삽입까지 이전의 음반에 뒤지지 않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녔던, 비틀즈 최후의 스완송이며 아름다운 마무리였습니다. 이렇게 비틀즈가 무려 13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매년마다 진화해오고 대중음악의 선두에 서있었던 채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8년. 그리고 비틀즈 결성 전과 비틀즈 해체 직후까지의 대중음악 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들의 머리스타일 변화만큼이나 그야말로 땅과 하늘의 차이입니다. 로큰롤에 불과했던 밴드 사운드를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진정한 '록 음악'으로 발전시킨 기여자이며, 그로 인해 팝 음악의 발전에도 엄청난 기여를 한 뮤지션. 그 뜻은 지금의 모든 장르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비틀즈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즈는 다른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긴글 3줄 요약 1. 비틀즈 인기 쩔었음 2. 비틀즈 히트곡도 쩔었음 3. 비틀즈는 매우매우 혁신적이었음 출처ㅣ락싸
왕세자 저격 미수 사건과 방탄차
1990년 11월 12일, 도쿄의 궁성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퍼레이드식이 펼쳐졌다. 검정색 오픈카를 탄 일왕 부부는 길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퍼레이드에 사용됐던 오픈카는 그해 영국에서 4000만 엔에 구입한 롤스로이스 코니쉬 차종이었다. 3년 뒤인 1993년 6월 9일,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도 이 오픈카가 사용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내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가을에 역시 즉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롤스로이스 오픈카가 동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입한지 28년 동안 단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 차는 연식이 오래돼 현재 주행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국산차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굳혔다. 현재 외국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왕실의 공식 의전차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다. 즉위 퍼레이드에 사용되는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갖는다. 일본 전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이 퍼레이드용 오픈카로 도요타에 특별 주문을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의 차종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 1대: ‘영일 동맹’ 맺은 영국의 다임러 차종 선택 과거 일본 왕실에서 사용했던 차종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변해왔다. 왕실의 전용 의전차를 ‘어료차’(御料車: 일본어로는 고료샤)라고 한다. 왕실 전용차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大正) 일왕 때부터다. 당시 국가 원수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유럽에 조사단이 파견됐다. 다임러, 벤츠, 피아트 등 회사를 방문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영국의 다임러(독일 다임러와는 별개)였다. 다임러가 선정된 것은 당시 일본과 영국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동아시아 이권을 나눠 갖기 위해 체결한 조약)을 맺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12년 다이쇼 일왕 즉위식엔 다임러 란도레(Landaulet)라는 차가 사용됐다. 당시 영국 왕실도 다임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같은 모델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 차가 일본 왕실의 ‘1대 의전차’다. █ 2대: 왕세자 암살 미수에서 롤스로이스 유리창 뚫려 ‘2대 의전차’가 도입된 건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 차종 2대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롤스 로이스를 수입한 2년 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도라노몬’(虎ノ門) 사건이다. ... (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프레디가 브라이언을 생각하며 만든 곡
어느날 스튜디오에 들어온 프레디가 브리에게 "널 생각하며 만들어봤어." 라며 들려준 노래.  Queen - Soul Brother (Under pessure sigle b-side) God bless my soul here he comes now The man with the most how does he do it? Sure he's got style he's so heavy He's a trip can do anything Anything anything He's my soul brother He's my best friend he's my champion And he will rock you rock you rock you 'Cause he's the saviour of the universe He can make you keep yourself alive Make yourself alive Ooh brother cause he's somebody somebody He can love He's my soul brother Whan you're under pressure feeling under pressure Yeah pressure yeah pressure He won't let you down Whan you're under pressure Oh feeling under pressure yeah pressure So he won't let you down He won't he won't he won't let you down He can do anything anything anything He's my soul brother Yea ah yeah yeah yeah yeah yeah Ooh soul brother anything (soul brother) Anything (soul brother) anything (soul brother) He's my soul brother brother brother brother brother Anything (soul brother) anything (soul brother) He's my soul brother Soul brother he can do anything He can do anything 'Cause he's my soul brother 프레디에게 브라이언은 ...  내 영혼에 내린 신의 축복 그는 스타일이 확고하고 진중한 사람.  그는 내 최고의 친구. 나의 챔피언.  그는 널 흔들어 놓을거야.  그는 우주의 구원자거든. 그는 인생을 즐기게 만들어주지. 그는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압박감에 시달릴 땐 그가 일으켜줄거야.  그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는 내 영혼의 형제니까...  브라이언이 천체물리학자라는 걸 자랑스러워해서 보랩에도 "갈릴레오"를 넣어줬던 프레디는  이 노래에서도 브라이언을 우주의 구원자로 은유하고.  브라이언이 작곡한 keep yourself alive 와 we will rock you 도  인용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어요. 섬세하고 스윗한 사람. 그렇다면 브리에게 프레디는?? 영감을 주는 뮤즈이자 페르소나 그 자체. 브라이언이 만든 노래의 거의 대부분은 프레디를 위해 만든 곡.  작곡을 할 때 브라이언은 습관적으로 프레디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프레디를 위한 곡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프레디가 떠난 후 브라이언은..  프레디와 함께 전세계 콘서트장을 누비던 프레디의 피아노를 자신의 집 거실에 가져다 놓았어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오랜 친구를 추억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항상 프레디를 생각한다. 단 하루도 프레디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 프레디가 떠났을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에 대한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지금도 때론 프레디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대부분 그의 존재는 내게 큰 기쁨이다." (2011, 브라이언 메이)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실화(퀸)에 대한 이야기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영국 락밴드 '퀸' 특히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이야기 프레디 머큐리 합류 직전, 스마일의 초기 멤버였다가 스마일을 나갔던 '팀 스테필 (맨 오른쪽)'은 합류했던 밴드 '험피 봉' 해체 후 디자인 쪽에서 일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토마스와 친구들'이라고(!!) 70세인 현재도 음악 활동 중이다 퀸의 로고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프레디 머큐리가 디자인 했다 (첫번째)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A Night at the Opera 앨범의 자켓도 프레디가 만들었다고. (두번째) 무대 의상들도 직접 디자인 한 게 많았다고 함 퀸은 멤버 전원이 학사 학위를 가진 밴드이다 브라이언 메이는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후에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총장이 되기도 했다 존 디콘은 퀸 2집까지 중학교 교사였다 프레디는 영화처럼 냥집사인데, 키우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길냥이들이었다고. 길냥이들에게 안락한 환경 마련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새긴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줬었다고. 그중 '딜라일라'라는 고양이를 위해 노래 "Delilah"를 쓰기도 했다 프레디 : (((내 고양이))) 고양이 : “이 앨범을 나의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톰과 오스카, 티파니에게도. 그리고 세상에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은 다 꺼져라.” < 딜라일라 > - 1985년 앨범 <Mr. Bad Guy> 감사의 말 중에서 (출처 : http://www.petzzi.com/bbs/board.php?bo_table=ency_culture&wr_id=374 ) '프레디'라는 이름은 학창시절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칭이라고 한다 작곡할 때는 떠올랐던 멜로디가 머리속에 안 남으면 선율이 허접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 주로 피아노로 작곡을 하고 기타 코드는 3개밖에 연주하지 못한다고 말해왔지만 목욕하다가 떠올라서 기타로 뚝딱 만든 노래 =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보헤미안 랩소디'의 코러스는 무려 180번을 오버더빙(녹음한 것 위에 또 녹음) 했고, 마지막에는 테이프의 산화철 부분이 거의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에 10~12시간씩 녹음한 결과였다고. 곡의 다양한 부분들은 면도칼로 잘라 합친 것이라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기타소리와 드럼소리는 실제 퀸의 멤버이자 영화의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라이언, 로저가 연주한 것이라고 둘은 현재도 퀸으로 활동 중 퀸의 기타 음색은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브라이언의 기타가 10대 시절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0년 넘도록 사용 중이며, 100년 된 벽난로의 목재, 자전거 스프링 등을 사용했다. 퀸은 초기 시절 어느 평론가에게  '영화 배우 뺨치게 잘생긴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볼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로저 테일러는 'The Reactions'라는 밴드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했는데 보컬 멤버가 탈퇴하여 직접 보컬을 하기도 했었다. 고향에서 공연했을 때 입장료를 받아도 관객이 2~300명 수준이었다고 함 프레디는 학창 시절 밴드를 했었는데 그때는 보컬이 아닌 키보드 연주자였다 이후 60년대에 아마추어 밴드 '아이벡스'에서 리드 보컬로 활동. 영화 속 프레디의 노래하는 음성은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고. (마크 마텔 = 프레디와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서 화제가 된 퀸의 공식 트리뷰트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는 캐나다 가수) 프레디를 연기한 라미 말렉은 메리를 연기한 루시 보인턴과 데이트 중이라고 함! 존잘존예가 만났네 라미 말렉은 안무가 뿐만 아니라 무브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았는데 덕분에 프레디의 작은 행동, 습관, 시선, 마이크를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고 함 영화 속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길다고 한 음반사 관계자에게 캐릭터들이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언급한 이유 : 그 음반 6분 넘는 곡만 3곡이라서. 게다가 가장 긴 곡은 7분 50초 퀸과 마이클 잭슨은 만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작업도 함께 했다. 2014년에 마이클 잭슨과의 듀엣곡이 발표되었다. (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 1984년에 퀸이 내한할 뻔한 적이 있었다. 적당한 공연장도 못찾은데다 금지곡이 많아서 실패했다고 공연은 안 했지만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내한했었다. 이후 2014년에 내한공연을 했다 프레디만의 관객 소통 방법인 '에~오'는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전광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존 디콘은 프레디가 없으면 퀸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는 듯. 실제로 1997년 은퇴하였다 브라이언 메이는 투병 중이던 프레디를 보러 가던 때,  300야드 (274m)를 남겨두고 '올 필요 없다. 사망했다'는 부고 전화를 받았다 프레디의 어머니 제르 불사라는 2016년에 94세로 별세하였다. 당시 브라이언 메이는 공식 활동을 중지하고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프레디의 어머니와 알고 지낸 시간만 50년이 넘었고 어머님은 프레디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가 가수의 길을 반대할 때에도 아들을 응원했고 마지막까지 모든 활동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모든 활동에 프레디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대단히 기뻐했다'는 내용 (출처 : https://whitequeen.tistory.com/2148) 프레디는 투병하던 때 불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병이 악화될수록 일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브라이언 메이 : 프레디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고 전혀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저녁에 다 같이 나갔는데 다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보고 있는 걸 알고는 "브라이언, 어떤지 한 번 볼래?" 그러고는 보여줬어요. 그리고 제 표정에 대해 오히려 프레디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네가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라고 말하면서요. -  프레디가 말했어요. "곡을 만들어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 가사도 계속 써줘. 계속 일을 줘.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싶어." "나중엔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돼. 나중에 완성하면 돼." - "프레디 머큐리, 인생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른 사람." 저에게는 그게 프레디였어요.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았어요. 그 나머지도 모두 포함해서요. ] ( 출처 : https://blog.naver.com/kngjoo/120152157305 ) 프레디의 생전 마지막 퀸 정규 앨범인 Innuendo는 프레디가 언제쯤 스튜디오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멤버들에게 연락하면 나머지 세 멤버들이 데모 버전을 미리 만들어 놓고,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을 때 스튜디오에 와서 보컬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생전 마지막 싱글인 <The Show Must Go On>는 음이 높아서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가 이 곡을 부를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하는데, 프레디는 "I'll fuckin' do it, darling('씨X, 하지 뭐' 정도의 뉘앙스.)"이라고 내뱉은 후,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한 보드카를 쭉 들이키더니 삑사리 없이 한 큐에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 출처 : https://namu.wiki/w/%ED%94%84%EB%A0%88%EB%94%94%20%EB%A8%B8%ED%81%90%EB%A6%AC ) Q. 퀸 음악 모르는데 랩소디 보러 가도 되나요? 쿵쿵(짝) 쿵쿵(짝) 위윌위윌뢐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새해에 ‘껌 좀 씹어야 하는’ 이유
뇌신경 내과&인지증(치매) 분야 전문의인 하세가와 요시야(長谷川 嘉哉) 박사는 ‘껌 권장론자’다. 그는 “35세부터 껌을 씹어라”(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 기고)고 권한다. 단순한 껌을 씹으라는게 아니다. 충치와 치주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다음과 같은 성분이 들어간 껌이다. ᐅ자작나무로부터 얻은 천연감미료 자일리톨, ᐅ우유에서 추출한 단백질 물질인 CPP-ACP ᐅ감자를 원료로 하는 인산화 올리고당 칼슘(POs-Ca) ᐅ사람 유산균인 루테리(Reuteri)균. 하세가와 박사가 껌 씹기를 권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치주 질환 예방 때문은 아니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박사에 따르면, 치아를 잃는 주원인은 치주 질환으로, 35세를 전후로 발병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때부터 노화에 의해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하세가와 박사는 “(좋은 성분이 들어간) 껌 씹는 과정은 치주 질환을 다스리고, 더 나아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20만 명 이상 인지증(일본은 치매를 이렇게 부른다) 환자를 치료했던 하세가와 박사는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사의 말을 빌리면, 일반적으로 치아 사이에 뭔가를 넣고 한번 물거나, 씹을 때마다 3.5㎖의 피가 뇌로 보내진다고 한다. 보통 초밥 도시락에 들어있는 물고기 모양의 간장 용량이 그 정도다. 한번 물거나 씹을 때마다 ...<김재현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 기자다른기사 보기
극강의 매운맛을 자랑하는 영화들
<로우 (2017)> 소재가 특이해서좋았음 강경한 채식주의자 집안에서 자란 주인공이 고기맛을 본뒤 인육에 눈을뜨는내용 ㅋㅋㅋㅋ 존잼 잔인한거 못보는사람은 볼생각도 하지마라 비위약한데 봐도됨?: ㄴㄴ안돼 돌아가 비위약하면 그냥 이 영화를 머릿속에서 지우셈 넌 이영화 모르는거임 그냥 <트라이앵글 (2009)> 진짜 개뻔한 영화인줄알았는데 중반?쯤에 나오는 특정장면 이후로 자리고쳐앉고 진짜 숨도못쉬면서봄 감독 ㄹㅇ개천재임ㅋㅋㅋㅋㅋㅋ <크랙 (2009)> 심리묘사때문에 머리아픈류임 에바그린의 소름끼치는 연기를 볼수있는영화 <디태치먼트 (2011)> 이건 현실반영 개오져서 멘탈 나가는영화임 ..개우울 <폭스캐처 (2014)> 배우들 연기싸움하는영화임 진짜 연기 개미쳤고 단 1초도 긴장놓고 못보는영화.. 진짜 멘탈 탈탈 털림 <겟아웃 (2017)> 배우들 연기존잘 쫄보붕 초반부터 오줌 쌀뻔함 어흑흑 <어쌔신 걸스 (2018)> 이거 뭔내용이냐면 누가 각잡고 동네남자들 인터넷기록 주고받은 야한사진 이런거 털어서 다 박제했는데 처음엔 사람들이 남자들욕하다가 무뜬금 사진/동영상속 여자들한테 화살돌려서 마녀사냥하는 얘기임!! 현실비판영화 ㅇㅇ 남자감독 영화라 그런지 여자감독이 만든 페미영화 느낌은ㄴㄴ지만 영상미좋고 볼만함.. 근데 ㅈㄴ현실그자체라 보면서 멘탈깨졌음존나 <나비효과 (2004)> 꼭 감독판으로봐라 <퍼니게임 (2007)> 맨정신으로 못보는영화 ㅋㅋㅋㅋㅋ 97년도 원작영화가 있고 미국리멬판이 있는데 다른거라곤 배우밖에없음 걍 아무거나 골라서ㄱㄱ 난 이런거좋아해서 찾아보는편인데 국영중에는 복ㄴㅏ것이랑 김복남살인사건의 전말 이거두개가 제일 매운맛인듯 아직안봤으면 봐봐 재밌음... 출처 : 해연갤
서울 성수동 블루보틀과 도쿄 롯본기 블루보틀
<사진=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그 호들갑스런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그 비싼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갔다.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은 노(NO). 주말과 휴일은 피해 평일로 택했다. 애플 신상품을 ‘득템’하기 위해 밤을 새거나 장시간 기다리는 장면은 종종 들었다. 하지만 기껏 커피 한 잔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니었다. 오픈(3일)이후 그런 광경은 내내 벌어졌다. ‘커피계의 애플’. 스페셜커피 블루보틀 매장으로 찾아간 건, 8일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지하철 뚝섬역에 내렸다. 역에서 불과 50미터. 큰 붉은 벽돌 건물보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50여 명이 4겹 줄을 서서 대기 중.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게 없다. 성수동 특유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 천장. 1층에서 대기하고 계단을 통해 지하1층 매장으로 내려갔다. 커피 데스크에 핸드드립기가 6개. 바리스타가 순서대로 즉석에서 ‘핸드드립’ 중. 아메리카노 기본(블렌드)을 주문했다. 5000원. 스타벅스의 숏사이즈(3600원) 톨사이즈(4100원)와 비교하면 꽤 비싼 편. ‘5’자가 주는 부담감도 크다. 평일임에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정확히 9시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다. ‘득템’. 커피 양은 스타벅스 숏사이즈의 절반. 한 눈에 봐도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는 ‘한약’같다고 했다.) 맛을 잠시 음미하는 사이,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커피 취재를 온 잡지매체의 기자란다. 연배 어린 후배기자에게 인터뷰 당하는 영광을 누렸다. 블루보틀 맛에 대한 평가는 짧은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한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스벅마니아’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한 잔씩.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쌉싸름한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으로 치자면,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같은 적절한 산미가 느껴진다.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줄 서는 일만 없다면 다시 찾을 것 같다.” “(‘블루보틀 커피가 유명한 건 왜일까요’라는 질문에) 성수동에 1호점을 낼 것이라는 입소문을 낸 게 오래됐다. 금방 매장을 열 수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커피팬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켰다. 파란 병 로고에는 굳이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파란 병=블루보틀’이라는 인식이 커피 팬들을 줄 세웠다고 본다.” 30분 동안 매장을 지켜본 후 나왔다. 밖엔 여전히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한 시간 뒤. 블루보틀 잔향이 혀에 그때까지 머물렀다. 오전 11시, 혀를 헹구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편집인> (아래는 도쿄에 거주하는 정희선 객원기자의 롯본기 블루보틀 ‘맛 평가기’입니다. ) <사진=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정희선 객원기자=일본기업 분석 애널리스트>커피 맛은 호불호가 강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에 블루보틀은 더하다. 내 경우, 유학 때문에 몇 년 미국에서 지냈지만 커피를 델리키트하게 느낄 정도의 ‘혀’는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커피 대국’ 일본에 와서 몇 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 혀’는 그대로다. 내 혀보다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을 평가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 친구는 쓴맛과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맛이 너무 강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내 ‘혀’는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블루보틀은 확실히 스타벅스 커피보다 신맛이 강해~” 나만큼 커피 취향이 ‘고급지지 못한’ 내 막내동생은 한 술 더 뜬다. 블루보틀을 마시고 나선 심지어 “한약 먹는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런 ‘한약 같은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오는 한국 커피 마니아들이 많다. 여기서 또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들은 오리지널 블루보틀이 아닌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라떼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당분간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 6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도쿄에 9곳, 교토에 1곳, 고베에 1곳이 있다. 해외진출에 나선 블루보틀이 (한국 제외)오직 일본에만 매장을 낸 이유는 뭘까. 또 유독 도쿄에 몰려있는 건 왜 일까. 일단 ᐅ일본이 ‘커피 대국’이라는 점 ᐅ도쿄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 되어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창업자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다.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맨(James Freeman)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래된 커피 가게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특히 도쿄는 더 그러하다”(I'm very deeply inspired by the old-fashioned coffee shops of Japan, and in Tokyo particularly)고 말한 바 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 뒷 골목에는 아직도 레트로(retro: 복고풍) 느낌이 나는 오래된 커피숍들이 많다. 이들 가게 대부분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방식으로 고객 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제임스 프리맨이 이런 분위기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임스 프리맨은 처음에 어떻게 블루보틀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왜 굳이 블루보틀이란 이름일까. 여기서 커피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683년 유럽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터키군이 빈(비엔나)에 도착했다. 적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인근 폴란드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터키어와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폴란드 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터키군이 물자를 남겨두고 퇴각을 했는데, 그 더미에서 콩 봉지들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낙타의 먹이인줄 알았지만, 아랍에 살던 경험이 있던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는 그게 커피 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원군 요청 포상금으로 그 커피 콩을 매입,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블루보틀’(The Blue Bottle)을 개업했다. 비엔나 커피 문화의 출발이었다. 그 319년 후인 2002년, 클라리넷 연주가 제임스 프리맨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그는 비엔나를 구한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차원에서 가게 이름을 ‘블루보틀’이라고 지었다. 제임스 프리맨은 평소 직접 원두를 구입, 매일매일 로스팅해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블루보틀이 유명하게 된 건, 그가 볶은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커피원두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다. 입소문이 나면서 블루보틀 커피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네슬레가 4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 커피를 흔히 ‘제 3의 물결 커피’ (Third wave coffee)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 1의 물결 커피’(First wave Coffee)는 1990년대 이전의 베이커리에서 빵과 함께 파는 커피, 혹은 개인이 공간을 임대하여 파는 형태를 지칭한다. 커피의 퀄리티에 주목하기 보다는 1~2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하였다. 1990년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제2의 물결 커피’(Second wave coffee) 시장이 열렸다.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퀄리티 높은 커피를 제공했다. 요즘의 가장 흔한 커피 전문점 형태다. 그러다 2010년 이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드디어 ‘제 3의 물결 커피’(Third wave Coffee)가 시작 되었다. 대표적인 가게가 블루보틀(Blue bottle), 필즈 커피(Philz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등 이다. ‘제 3의 물결 커피’의 특징은 스타벅스 보다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며, 차별화된 로스팅 기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다는 것. 대부분의 ‘제 3의 물결 커피’ 전문점들은 1~2분 이내에 커피를 내리기 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니즈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 준다. 핸드드립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맛깔나게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다. 획일화된 커피 맛에 지친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 3의 물결 커피’는 서부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제 3의 물결 커피’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성장보다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 3의 물결 커피’ 중에 해외진출을 한 브랜드는 블루보틀이 유일하다. 이상이 ‘한약 같은 커피’ 블루보틀의 유래와 성장기에 대한 내용이다.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짠한 캐릭터들의 우주적 난장판에서 어른거리는 예수의 얼굴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의 대성공 이후 쉼 없이 극장문을 두드리고 있는 마블 영화들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 2019년 개봉해 국내 약 1,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 흥행 성적 약 28억 달러(!)를 기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정점이었다. 마블을 인수한 디즈니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디즈니플러스에서 챙겨 봐야 할 마블 시리즈가 늘어날수록 MCU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마블 영화의 고유한 매력을 되살렸다. 그렇다면 '마블 영화의 고유한 매력'이란 무엇인가? 탄탄한 세계관, 눈이 즐거운 액션과 비주얼, 과하지 않은 유머, 감동과 페이소스, 영화관을 나오며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스토리... 사실 이것은 '마블 영화의 고유한 매력'이라기보다는 성공한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블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캐릭터와 관계성' 덕분일 것이다. 마블의 캐릭터들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결핍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은 마블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짠하다. 그중에서도 '로켓(브래들리 쿠퍼)'은 가장 큰 아픔이 있는 캐릭터다. 이런 로켓의 과거사와 현재를 오가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을 위기에 처한 로켓을 살리기 위해 친구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다. 친구들은 로켓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로켓이 옛날에 얼마나 불행한 일을 겪었는지 모두 알게 되고 진심으로 공감한다. 결점투성이인 친구들이 종족의 벽까지 허물고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제임스 건 감독의 개성이 묻어나는 난장판 액션 시퀀스도 백미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 썼어야 할 제작비 중 일부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 추가 투입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투와 공중전의 비주얼이 훌륭하다. 크리쳐물의 느낌이 나는 장면도 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결말부에서는 성경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예수의 얼굴이 어른거릴지도 모르겠다. '마블다운 영화'에 안주하지 않고 동물권, 아동권, 대안가족의 메시지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골계미, 비장미, 그리고 숭고미가 느껴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본부 이름은 "Knowhere"다.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마블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깨달은 것 같아 반갑다. 로켓의 명대사 "I'm done running(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끝) #가디언즈오브갤럭시 #제임스건 #마블 #GUARDIANSOFTHEGALAXY #JamesGunn #Marvel
최고의 비틀즈 노래는 무엇?
이제는 정말 지겨울 만큼 이름을 들어온 그룹 비틀즈. 20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니 40대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태어나기 전에 해산을 한 전설적인 밴드로, 단 7년의 기간 동안 13장의 앨범을 발표한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활동을 보인 신화적인 존재, 비틀즈.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알지만 그들의 음악은 예스터데이나 렛잇비 정도만 아는 게 현실이다. 좀 좋아한다는 사람이 베스트 앨범 한 장정도 가지고 있는 정도가 보통인데,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르는 비틀즈의 명곡도 많이 있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짜 비틀즈의 음악만으로 순위를 정한다면 어떤 노래가 최고의 노래일까? 비틀즈의 정규 앨범 13장의 음악을 차트화 해서 저명한 음악잡지 롤링 스톤이 발표 했다. 100위까지 발표 했지만 사정상 Top10만 다뤄보겠다. 10.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라는 투 탑만 생각했던 비틀즈라는 그룹에 조지 해리슨이 각성하면서 만든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은 일대 충격이었다. 비틀즈의 각개전투 앨범 화이트 앨범에 실린 이 곡은 이후 조지 해리슨이라는 인물의 활동에 큰 등불이 되었던 곡이다. 09. Come Together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에 실린 곡. 제목이야 Come Together이고 노래 가사도 같이 하자는 내용 같지만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 08. Let It Be [Abbey Road]보다 먼저 녹음되었지만 그 후에 발매 되어서 비틀즈의 디스코그라피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 [Let It Be]에 실렸던 대표 곡. 국내에서도 비틀즈의 대표곡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07. Hey Jude 68년 발매한 싱글 “Hey Jude”는 당시 발매 되었던 정규 앨범인 화이트 앨범에는 실리지 않은 곡이다. 7분 넘는 대곡이었지만 마지막 인상적인 후렴구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미국에서 무려 9주나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빌보드에서 선정한 올타임 베스트 싱글에서 10위를 차지했다. 폴 메카트니가 작곡한 이 곡은 재미있게도 존 레넌의 아들을 위한 곡이다. 06. Someth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터진 조지 해리슨의 포스는 마지막 앨범 [Abbey Road]에서 유종의 미를 보여주는 곡 “Something”을 만들어냈다. 조지 해리슨 곡 중 최초의 1위 곡이다. 05. In My Life 비틀즈가 아이돌 밴드에서 진정한 음악가로 선언한 앨범 [Rubber Soul]에 실린 곡. 앨범에 실린 곡들 중에 싱글을 발표한 곡이 없지만 한 곡 한 곡 이전 작들에 비해 무게감과 완성도가 높았고 그 중 “In My Life”는 “Norwegian Wood”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트랙이다. 04. Yesterday 설 명 필 요 없 음 03. Strawberry Fields Forever 67년 앨범 [Magical Mystery Tour]에 실렸던 트랙이다. 신은 그들에게 음악을 주고 영화를 빼앗았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OST로 제작된 [Magical Mystery Tour]는 성공했고 영화는 실패했다. 후기 앨범치고는 지명도가 낮은 앨범이지만 곡만큼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02. I Want to Hold Your Hand 63년 발표한 싱글 “ I Want to Hold Your Hand”는 톱10안에 유일하게 들어간 초기 시절의 음악이다. 이건 음악적인 완성도 보다는 비틀즈라는 밴드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라서 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음악적인 무게감면에서는 지금까지 언급된 곡과는 많이 차이를 보인다. 01. A Day in the Life 드디어 나왔다. 비틀즈를 논할 때 그리고 록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최고의 앨범으로 뽑는 1967년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실린 마지막 곡 “A Day in the Life”는 최고의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실리기에는 완벽한 트랙이다. 매우 실험적인 트랙이라 대중성 면에서는 좀 약하지만 음악적인 무게감면에서 지금도 이에 필적할만한 트랙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곡이 다 끝난 다음 맨 안쪽 골에 들어간 효과음의 무한 반복은 CD세대나 디지털 음원 세대는 절대 누릴 수 없는 LP의 영원함이다. [출처] 최고의 비틀즈 노래는 무엇?|작성자 헬로준넷 the source of / Hellojunenet web (KOREA) information web youtube - http://www.youtube.com/hellojunenet blog - http://blog.hellojune.net moremusic - http://www.moremusic.co.kr facebook - http://www.facebook.com/moremusic.co.kr2 HelloJune.Net - http://www.hellojune.net twitter - http://www.twitter.com/helloju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