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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 혼다 소이치로

<재팬올이 ‘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을 연재합니다. ‘헹가래’라는 시사만화로 잘 알려진 유 화백(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은 일본 CEO들의 명언과 어록을 한 컷 삽화로 묘사합니다. 여기에 유 화백이 간단한 개인적인 단상을 더합니다. 첫 회는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입니다.>



혹자들은 말한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고. 그럼 뭔가. 그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실패의 다른 말인 셈이다.

나는 이 말이 혼다자동차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1906~1991)의 어록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チャレンジして失敗することを恐れるより、何もしないことを恐れろ。)라는 문장 말이다.

혼다 소이치로는 수많은 어록을... <글, 그림=유환석(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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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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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브랜드 네이밍’이야기/ 자동차(도요타)
도요타(TOYOTA)자동차도 혼다차와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차는 사정이 좀 다르다. 창업 초기, 브랜드명이 도요타(TOYOTA:トヨタ)가 아닌 도요다(TOYODA:トヨダ)였다는 걸 알고 있는가? 창업 가문의 성(豊田)은 도요다(トヨダ, とよだ)라고 읽는다. 창업의 토대를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とよだ さきち)와 실질적 창업주인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とよだ きいちろう)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 가문의 성을 따서 도요다(トヨダ)라고 했다. 영문명도 TOYODA가 됐다. 창업 당시인 1935년 7월 TOYODA로 상표등록을 했다. 1년 뒤인 1936년 도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엔 알파벳 TOYODA 엠블럼이 장착됐다. 하지만 미국 수출을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TOYODA 발음이 문제였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는 외국인이 영어 회사명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TOYOTA(トヨタ)로 바꾸도록 지시했다.(아사히신문 특별 취재반 저 ‘도요타시 1번지’) 도요타 사사(社史)에 따르면, TOYODA(トヨダ)에서 TOYOTA(トヨタ)로 바꾼 다른 이유 3가지가 더 있다. ①‘상업,미술적으로 봐서 촉음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쾌하고, 말의 음색(소리의 울림)도 좋다(商業美術的に見て、濁点を付けないほうが、さわやかであり、言葉の調子(音の響き)も良い)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록그룹 '퀸'과 1975년 4월 17일의 일본
1975년 4월 17일 하네다 공항 대소동 환영 인파에 놀라..."다른 행성 온 것 같다" 1975년 4월 17일 오후 무렵.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전례 없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이윽고 오후 6시가 되자, 호놀룰루를 경유한 JAL061 편이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트랩을 내려오는 주인공은 데뷔 3년차인 영국 출신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이었다. 섬 나라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멤버들이나, 이들을 맞은 팬들이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더 프레디 머큐리 등 멤버들은 일순간 동양의 작은 소녀들에게 포위당했고,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Harold May)는 당시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브라이언이 행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천문학자(Infrared astronomer)였다. 잠시, 브라이언 메이 얘기다.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라는 책에서 “제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에서라도 브라이언 같은 적외선 천문학자가 기타를 집어들고 로큰롤 가수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썼다. 천문학 잡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는 ‘브라이언 메이, 과학과 음악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분은 그를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지만, 브라이언은 천문학 박사이기도 하다”(You know him best as guitarist,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rock group Queen, but Brian May is also a Ph.D. astronomer”고 전했다. 일본에 도착한 퀸이 공연을 펼친 곳은 선배 그룹 비틀즈가 섰던 부도칸(武道館)이었다. 공항에 이어 공연장 소동도 변함없었다. 통곡하며 실신하는 여성이 속출했고, 팬들은 밀치고 넘어지며 스테이지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모두 침착하자”고 호소했다. 비틀즈 이후 최대의 소동이었다. 퀸의 공연은 2주간 전국에서 열렸다. 퀸은 이후 다섯 차례 더 일본을 방문했고, 마지막 공연을 한 곳은 1985년 5월 15일 오사카성 홀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6년 전이다. 여섯 차례의 일본 공연은 그만큼 퀸이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퀸은 이처럼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다. J-팝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팝음악 잡지 ‘MUSIC LIFE’는 당시 인기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룹 퀸은 ᐅ1975~1978년 1위 ᐅ1979년 2위 ᐅ1980~1982년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1년 11월 24일은 퀸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전하고 24시간 후 사망(당시 45세)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지 4년 뒤 발표됐다. 일본의 열성팬들은 2015년, 퀸의 일본 도착 40년을 기념해 4월 17일을 ‘퀸의 날’(The Queen Day)로 정했다. 일본에서 이런 소동을 벌였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극장가에서도 히트 행진 중이다. 신드롬, 팬텀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스지 스즈키(スージー鈴木)씨는 “헤이세이 최후의 겨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기억될 것"(平成最後の冬は、映画『ボヘミアン・ラプソディ』とともに記憶されるだろう。)이라고 했다. (일본은 내년 헤이세이 연호가 바뀐다) ‘Love Of My Life’, ‘I Want To Break Free’, ‘Spread Your Wing’ 같은 퀸의 노래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도 저물어간다. '에~오~ 에~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엄지 발가락 분리...보스턴 마라톤 우승 신발
... ('일본 브랜드 네이밍' 스포츠브랜드 아식스/미즈노/데상트 관련 기사입니다.) 195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한 시게키 다나카 전범국의 굴레는 혹독했다. 일본 운동선수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런던 하계 올림픽(1948년)에 참여할 수 없었다. 3년 뒤 열린 195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비로소 초대받을 수 있었다. 보스턴 대회에는 일본 선수 4명이 참가했는데, 여기에는 당시 열아홉의 시게키 다나카(田中茂樹: 88)라는 청년도 있었다. 다나카는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 출신 생존자였다. 당시 보스톤 글로브지는 그런 그에게 ‘아토믹 보이’(atomic boy)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런데 다나카는 경기에 좀 별난 신발을 신고 등장했다. 타이거라는 이름의 이 신발은 일본 버선 모양을 본떠 만든, 엄지 발가락을 다른 발가락과 분리시켜 감싼 형태(tabi split-toe shoes)였다. 엄지 발가락 분리한 운동화 신고 우승 고베에 본사를 둔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에서 만든 신발이었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이상하게 생긴 신발을 신고 뛴 다나카는 일본으로는 첫 우승(2시간 27분 45초)을 거머쥐었다. 이후 오니츠카의 러닝슈즈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이 오니츠카는 현재의 아식스(ASICS)다. 하지만 버선 스타일의 운동화는 진화하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이 다나카의 승리를 활용하려고 했지만 이런 디자인은 실제로 시작되지 못했고 대부분의 모델은 중단 되었다(Many Japanese companies sought to capitalize on Tanaka's win by producing more Tabi models, like Onitsuka's own "marathon Tabi", but these designs never really took off and most of the models were discontinued)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인 버선을 가볍고 튼튼한 신발로 재창조 했다. 타이어 회사인 브리지스톤(Bridgestone)의 창립자인 이시바시 쇼지로(石橋 正二郎)는 운동화의 고무 밑창을 만들기도 했다. 2013년 미국 회사가 발가락 분리 운동화 재현 잊혀진 신발이 재현된 건 2013년 무렵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뉴톤에 토포 애슬래틱(Topo Athletic)이라는 회사가 설립됐다. 창업자 토니 포스트(Tony Post)는 오랜 연구 끝에 발가락 분리형 운동화를 개발했다. 보스턴의 매체 ‘보스턴매거진’은 “이 발가락 분리 디자인은 일본의 버선형 신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엄지와 다른 발가락의 분리는 발가락이 자연스럽게 펴지고, 발이 신발 안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한다.”(The split between the big toe and the other digits mean that the toes can spread naturally while preventing the foot from sliding around inside the shoe)고 전했다. 195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 시게키 다나카가 신었던 운동화가 62년 만에 또 다른 스타일로 부활한 것이다. <에디터 김재현>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도토루 커피는 브라질 지명이다.
...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가 제임스 R. 그레고리(James R. Gregory)는 그의 저서 ‘브랜드 혁명’(최원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기업 브랜드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 있다고 했다. <강력한 기업 브랜드는 괄목한 만한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프리미엄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하며, 위기를 견뎌내고 보다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마케팅 활동에 좀 더 힘을 더해주며, 그 결과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강력한 기업 브랜드는 시장 점유율의 침식을 느리게 할 수도 또는 멈출 수도 있다. 그것은 재능 있는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것을 쉽게 하며, 재정 그리고 투자 시장에서 기업을 보다 많이 어필하게 만든다.(같은 책 3페이지 인용)> 기업 브랜드가 이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첫 단계인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 작업부터 잘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네이밍은 해당 상품의 정보와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읽고 부르기 쉬워야 하며, 또한 긍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2편은 1편 카레에 이어 커피다. 일본 커피 체인점들(도토루, 고메다, 사자 커피)과 커피 가공 회사들(키커피, UCC, 이시미츠쇼지) 등 6곳의 브랜드 네이밍 역사를 살펴봤다. 인구 1억2700만 명의 일본은 커피 소비 대국이다. 전일본커피협회에 따르면 한해(2017년) 커피 소비량은 46만 4686톤으로, 국민 1인당 일주일에 11.09잔을 마신다. 커피 수입량은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5위다. 세계 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스타벅스 진출도 빨랐다. 도쿄 긴자에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선 건 1996년.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곤 첫 해외 매장이다. 서울 1호점(이대점)은 그 3년 뒤인 1999년 오픈했다. 일본에서 커피 매장이 가장 많은 체인점은 ᐅ스타벅스, ᐅ도토루(DOUTOR) 커피, ᐅ고메다(コメダ) 커피 순이다. 스타벅스 매장은 1300개에 이르고, 도토루는 1100여 개, 고메다는 76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스타벅스는 뱃사람 이름에서 따왔다.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Moby Dick)에 등장하는 피쿼드(Pequod)호의 일등 항해사 이름이 스타벅스다. 당초 시애틀 인근의 광산에서 일했던 갱의 이름인 스타보(Starbo)도 후보에 올랐다.(하워드 슐츠 저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 결국은 ‘커피의 해상 무역’ 의미를 담은 스타벅스가 스타보를 제치고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1) 도토루 커피: 창업주가 일했던 브라질에서 착안 해외 브랜드인 스타벅스를 빼면, 일본 최대의 커피 체인점은 도토루(DOUTOR)다. 1962년 도쿄에서 커피 로스팅 회사로 출발한 도토루는 무슨 뜻일까? 먼저 창업주 토리바 히로미치(鳥羽博道‧80) 명예회장 이야기부터 해보자. 도쿄의 한 찻집에서 일하던 그는 스무살 때인 1959년, 브라질로 건너가 커피 농장에서 현장감독으로 일했다고 한다. 3년 후 귀국해 1962년, 도쿄에 로스팅 회사를 설립했다. 토리바씨는 1972년 커피 전문점 ‘카페 콜로라도’를, 1980년엔 ‘도토루 커피 숍’을 차례로 오픈했다. 도토루의 브랜드 네이밍엔 토리바씨의 브라질 체험이 담겨 있다. 그의 자서전 ‘도토루 커피, 이기느냐, 죽느냐’의 창업기(ドトールコーヒー「勝つか死ぬか」の創業記)에 따르면, 도토루는 포르투갈어로 ‘의사’, ‘박사’라는 뜻으로, 영어의 닥터(doctor)에 해당한다. 토리바씨가 브라질 커피 농장에서 일할 당시, 하숙했던 곳이 상파울로의 ‘도토루 핀토 페라즈 거리 85번지’(Doutor Pinto Ferraz 85)라고 한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와 회사를 설립할 즈음,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도토루’로 이름을 붙였다. 브라질에서는 사회에 공헌한 인물을 거리 이름에 붙이는데, 핀토 페라즈(Pinto Ferraz)라는 사람을 기리는 거리에 토리바씨가 살았던 것이다. <2편에 계속>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와세다 대학이 의대에 '목 매는' 이유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10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게이오대의 한 해 기부금(2016년 결산)은 87억3900만 엔, 와세다대는 30억9500만 엔이었다. 명문 사립 라이벌인 두 학교의 기부금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왜일까. 이유는 의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게이오대 의대는 일본의 1% 학생들이 들어가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반면 와세다대는 사립 최고 종합대학 자리에 있으면서도 의대가 없다. 기부금이 많은 상위 20개 일본 사립대 중, 의학부를 가진 곳은 13개 학교다. ‘기부금=의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 기부금의 ‘큰 손’은 의대 입학 학생을 둔 부유층 가정이 대부분이다. 문과 중심의 대학에서 거둬들이는 기부금과는 자릿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와세다대가 의대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세다대의 한 졸업생(OB)은 이렇게 말했다.(시사매체 슈칸겐다이 11월 7일자 보도) <“대학 브랜드 제고와 재정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의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틀림없이 와세다의 간절한 소망이다. 의대가 생긴다면, 말 그대로 범에 날개를 단 격으로, 의학부를 가진 게이오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 된다.”> (원문:「大学ブランドの向上と財政基盤強化のためには、のどから手が出るほど作りたい学部。まさに早大の悲願だ。医学部ができれば文字通り鬼に金棒で、医学部を持つ慶應義塾大学に引け目を持たなくて済むようになる」) 그럼, 와세다는 왜 의대를 만들지 않았을까. 슈칸겐다이는 “메이지 시대의 자유민권운동을 이끈 와세다대 설립자 오쿠마 시게노부는 정치인 육성을 중시해 의학에 관심이 없었다고도 전해진다” (明治期の自由民権運動を牽引した早大創設者の大隈重信は政治家育成を重視し医学部には興味がなかったとも伝えられる)고 보도했다. 오쿠마 시게노부(1832~1922년)가 와세다대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를 설립한 건 1882년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당대의 권력자였다. 두 번이나 총리(8대, 17대)를 지낸 그는 1907년 정계를 은퇴하고 와세다대 총장에 취임했다. 슈칸겐다이에 따르면, 1961년 국민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와세다대의 ‘의대 인수설’이 계속 흘러 나왔다고 한다.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었던 사례가 2008년 도쿄여자의대와의 제휴였다. 슈칸겐다이는 “두 대학의 제휴는 ‘와세다의 의학부 설치 포석’이라는 견해도 있었다”며 “그 후에도 ‘의료 사고 발생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도쿄여자의대를 와세다가 합병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관측이 난무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소문이 나돌긴 했지만 성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여자의대측에서 반발이 있었던 것. 현재, 와세다대의 오랜 소망은 좌초된 상태다. 슈칸겐다이는 의대 인수설과 관련 “라이벌도 있다”며 “주오(中央)대학과 도시샤(同志社)대학도 의대를 갖고 싶어한다. ‘좋은 매물’이 나올 경우,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와중에 11월 5일, 와세다대의 새로운 총장이 취임했다. 정치경제학부의 다나카 아이지(田中愛治) 교수다. 와세다의 정치경제학부에서 총장이 탄생한 것은 50년 만이라고 한다. 다나카 총장은 전전(戰前)엔 일본 공산당 중앙위원장으로, 전후(戰後)엔 ‘우익의 해결사’라고 평가받는 다나카 세이겐(田中清玄)의 아들이다. 아사히신문의 자매매체 아에라닷컴(6월 30일자 보도)은 “다나카 교수는 대담한 구상을 안고 있다”(田中教授は大胆な構想を抱いている。)며 “의대를 인수해 와세다 대학 의학부를 만들고 싶은 것”(医科大学を買収し、早稲田大学医学部をつくりたいのだ。) 이라고 했다. 슈칸겐다이는 “다나카 총장이 의대를 보유할 비책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미즈노’의 한자는 미진농(美津濃)이라는데...
... <미래의 브랜드가 성공하는 길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야 하고, 철학뿐만 아니라 태도에서도 차별화 되는 데 있다. 그러한 브랜드는 록스타의 팬처럼 열광적인 팬들을 양산해 낼 것이고, 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의 브랜드를 지키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줄 것이다.> 스웨덴 출신의 브랜드 전략가 토마스 가드(Thomas Gad)는 ‘4D 브랜딩’(정연욱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이라는 책에서 브랜드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그 차별화가 열광적인 ‘충성 팬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열광적인 팬들을 이야기 한다면, 그 대표적인 브랜드는 스포츠용품일 것이다.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전편 아식스에 이어 미즈노와 데상트 스토리가 이어진다. <편집자주> 미즈노: 고향 이름에 목재 도매상하던 집안 내력 합성 일본 넘버2 브랜드 미즈노(ミズノ: 한자 표기는 美津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미즈노는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水野利八:1884~1970)가 동생과 1906년 창업한 회사다. 창업 당시 회사명은 ‘미즈노형제상회’(水野兄弟商会)로, 운동복을 취급했다. 1913년부터는 야구 용품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1923년 회사 이름을 ‘미진농운동용품’(美津濃運動用品)으로, 1942년에는 ‘미진농(美津濃) 주식회사’로 바꿨다. 사명 표기는 카타카나로 ‘미즈노’(ミズノ). 하지만 등기상의 명칭은 ‘미진농주식회사’(美津濃株式会社)로 되어 있다. 그런데 회사 이름은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의 성인 ‘미즈노’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창업자는 그의 이름이 상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 이름인 미농(美濃) 사이에 본가의 내력(목재 도매상)과 관련이 있는 ‘진’(津)자를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B&D 스포츠 프로숍 홈피) 아마도 목재를 나루터를 통해서 운반했던 것 같다. 데상트: 프랑스어로 스키 기술인 ‘활강’을 의미 데상트(Descente:デサント)는 이시모토 타케오(石本他家男:1909~1988)라는 사람이 1935년 창업한 회사다. 츠루야(ツルヤ), 이시모토상점(石本商店)이라는 이름을 거쳐 1961년 현재의 사명인 데상트로 바꿨다. 데상트는 프랑스어로 스키 기술인 ‘활강’(滑降)을 의미한다. 데상트라는 말은 당시 스키웨어 개발 고문이던 니시무라 카즈요시(西村一良:일본 최초의 프로 스키어)가 운영하던 ‘데상트 스키 스쿨’에서 따왔다고 한다. 데상트는 남성 전문 소매점에서 출발, 스키웨어를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스포츠 용품 업체로 성장했다 데상트는 1990년 프랑스 스포츠웨어 ‘르꼬끄 스포르티브’ 상표권(일본과 아시아권)을, 1999년에는 영국 축구 브랜드 ‘엄브로’의 지역 상표권을 취득해 사업을 전개했다. 자, 브랜드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①아식스는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라틴어 구절에서 따왔다. ②미즈노는 고향 이름에 집안 내력(목재 도매상)을 넣었다. ③데상트는 스키를 강조하면서 프랑스어 ‘활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세 브랜드의 공통점은 흔히 붙이는 창업주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