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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의 선택

메이가 보수당 내 불신임 투표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최소한 당내 리더십 도전을 막았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안 바뀌었는데, EU 정상회의체(EC)랑 만날 때도 마찬가지, 바뀐 게 없다. EC 입장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메이에게 커다란 의문을 안고 있다.
네가 국회 통과시키는 것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지?
김성모 화백의 명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EC는 백스톱을 1년만 하자(참조 1)는 메이의 제안을 깔끔하게 거부했다. 그렇다면 이제 메이는 무엇을 택할 수 있을까? 영국 의회 예산국 사람과 직접 대화했을 때가 생각나는데, 그의 예상은 “낸들 알겠수? 글쎄, 아마… 영원한 탈퇴 연기?”이었다. 즉, 상당히 극단적인 조치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The Times에서는 원래 레이철 실베스터 정도가 두 번째 국민투표의 치어리더 역할을 했었는데, 이 칼럼의 필립 콜린스도 두 번째 국민투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억해 두시라. 이 The Times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친 보수당 계열의 온건한(?) 언론임을 말이다. 보수당 내 치고받기를 알기 위해서는 텔레그라프와 타임스가 제일 적당하겠다(가끔 스펙테이터도 괜찮고 말이다). 그래서 무슨 말이냐. 노동당과 과감하게 손을 잡으라는 얘기다. 전에도 얘기했지만(참조 2) 노동당은 오로지 재선거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에게 두 번째 국민투표의 떡밥을 던져 주자. 노동당은 불신임투표 추진 대신, 국민투표에 관심을 가질 것이며, 이는 SNP도 마찬가지다. 즉, 노동당은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로 바뀐다. 국민투표(안)이 국회를 통과 못 하면? 시간은 1월을 지날 테고 그때 와서 노동당 온건파들은 메이의 협상안 외에는 길이 없다는 점을 자각할 것이다. 국민투표(안)이 국회 통과를 한다면? 메이의 협상안 vs. EU 잔류로 투표를 하면 된다(참조 3). 누가 이기든 승자이고, 메이가 이긴다면 메이는 자신과 EU 간의 협상안을 깨끗이 국회 통과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국민투표가 대략 두 달 안에 개최될 수 있다는 가상적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당연히 그 가능성이 좀 낮기는 하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를 이유로 영국은 EU에게 “기간 연장”을 요청할 것이며, 국민투표 명분이라면 EU도 OK할 가능성이 좀 있다.) …그렇지만 나는 국민투표라는 도박을 정말로 할지 확신이 안 선다. 노동당 만큼이나 이미 분열될대로 된 보수당도 다시금 분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 입장에서는 내년 2월 정도까지 계속 버티기하면서 국민투표나 재총선을 위협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당이 다수당이 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메이가 이끌어내는 총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 3월 29일 저녁에 모두가 다 합의한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만 마감이 쓰는 줄 아시는가? EU 일처리도 항상 마감이 해 왔다. ---------- 참조 1. 현재 탈퇴 협의(WA)안에 따르면 아일랜드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해 일시적인 관세동맹 편입을 포함시켰으며, 이를 백스톱이라고 한다. 잠깐, 그러면 아일랜드와 영국(아일랜드 해)에 국경이 생기잖나? 그걸 막기위해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간, 백스톱 오브 백스톱(…)을 설치하기로 했다. 기한은 명시돼 있지 않기에 순수하게 이론상(이 말도 이제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영원히 작동 가능하다. 즉, 백스톱이라는 룰에 갇힌 이상 영국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다른 국가와 FTA를 맺기 대단히 힘들어진다. 더 끔찍스러울 수 있을 WTO 품목별 양허 일정/쿼타 재협상 정도는 대체로 피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피할 수 없을 품목들이 있을 테지만). 2. Brexit 협상안 도출(2018년 11월 15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710819914831 3. 여기에 대해서 나는 좀 회의적이다. 실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면 적어도 (1) 메이(안) (2) EU 잔류 (3) 노딜, 이렇게 3가지로 하는 편이 제일 합리적인데, 국민투표는 전통적으로 2지선다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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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의 조카, 캐서린 바튼
또 하나 추가해버린 주말 특집이다. 아이작 뉴튼(1643-1727)의 조카 캐서린 바튼(Catherine Barton, 1679-1739)이다. 이 캐서린 바튼은 뉴튼의 배다른 여동생(참조 1)이었던 해나 스미스가 낳은 딸이다. 다만 뉴튼의 지능을 물려받았는지(만유인력을 발견한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뉴튼은 결혼을 안 했고 자식도 없었다) 아름답고 재치만점에 똑똑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너선 스위프트나 볼떼르의 칭찬을 많이 받았고, 뉴튼 자신도 캐서린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조너선 스위프트나 볼떼르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당시 볼테르가 영국에 망명 중이었기 때문이다. 볼테르가 원래 사사건건 로앙 공작(Guy Auguste de Rohan-Chabot)과 키배가 붙었었는데, 필명(볼테르) 때문에 또 한 번 싸움이 났었다. 볼테르는 그에게 결투를 청했고, 로앙 공작은 수하를 시켜 그를 흠씬 두둘겨 팬 다음, 바스티유에 밀어넣어버린다(아직 왕정 시절이다). 그래서 볼테르는 차라리 자신의 잉글랜드 망명을 청했고, 당국은 그의 청을 들어줬다. 그런 볼테르를 잉글랜드에서 거둬준 인물 중 하나가 조너선 스위프트였다. 혹시 볼테르의 소설, 미크로메가스(Micromégas, 참조 2)가 걸리버 여행기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이들은 뉴튼의 조카와 자주 어울렸는데, 캐서린 바튼이 이들에게 얘기한 것이 바로 뉴튼과 사과나무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 얘기가 유명해진 계기는 1726-1729년 동안 체류했던 영국에 대한 볼테르의 책(Lettres philosophiques, 1734년 출간)의 15번째 서한 항목에 들어있어서였다. 1666년 캄브릿지 근처에 머무르던 뉴튼이 어느날 정원을 거닐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는 고민을 하더라는 내용이다. 사과가 왜 아래로만 떨어지는가? 흔히들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사과가 뉴튼 머리 위로 떨어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대한 기록은 캐서린 바튼의 남편인 존 콘뒷(John Conduitt, 1688-1737)도 거의 동일하게 적고 있다. 어라, 9년 연하의 남편? 존 콘뒷도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뉴튼을 좇아 조폐국에 들어온 것이다. 결혼할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 캐서린의 나이는 38세. 아마 그들은 행복한 부부로 지낸 것(딸도 하나 낳았다) 같은데… 캐서린이 좀 전력이 있는 분이시다. 결혼하기 전에는 할리팍스 백작(Earl of Halifax), 찰스 몬태규(Charles Montagu, 1661-1715)와 “자주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몬태규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당시 영국에서 대장성장(First lord of the Treasury, 지금은 영국 총리가 맡고 있다)을 지낸 귀족 중의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부인과 사별한 후, 1698년 캐서린 바튼이 그의 가정부가 됐었다. 몬태규가 1715년 사망했을 때, 그는 심지어 캐서린 바튼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시킨다. 몬태규도 역시 자식이 없었는데, 유언장에다가 “그녀와의 대화 안에서 가졌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 적었었다. 그래서 당시 여론은 역시 그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파다했다. 왕실 천문학자 존 폴램스티드(John Flamstee, 참조 3)는 “그들은 정말 훌륭한 대화를 나눴나 봅니다” 하고 빈정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뉴튼을 문학적 의미로 때린 사과나무의 행방은? 세 군데 정도(King's School, Grantham, Woolsthorpe Manor, Trinity College)가 서로 진짜 사과나무가 자기네 정원에 있다고 키배를 벌이고 있는 듯 하다. 짤방은 캐서린 바튼에 대한 책의 표지다. 실제 그녀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 참조 1. 뉴튼의 어머니가 새로 결혼해서(그래서그런지 뉴튼은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낳은 아이들 중 하나다. 그래서 성이 뉴튼이 아니라 바튼이다. 2. 볼테르가 1752년에 쓴 SF 소설이다. 출간된지 300년이 지났으니 스포일러 해도 되지 싶다. 시리우스 출신의 거대한 외계인 미크로메가스와 토성 출신의 한 서기관이 지구를 구경하려 했지만 자기들 몸집에 비해 혹성이 너무 작아서 구경을 포기하려던 찰나…! 고래를 발견하고, 학자 무리가 탄 배를 발견한다. 손으로 배를 집어 올리자 웬 곤충들이 모여있나 싶었지만 그 곤충들은 학자들 7명이었다. 미크로메가스는 그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1) 대머리 물리학자 : 미크로메가스가 좋아했다! (2)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학자(고대 그리스어를 몰랐다는 것이 함정) (3) 데카르트를 따르는 학자 (4) 니콜라 말브랑슈를 따르는 학자 : 결국은 범신론자다. (5) 라이프니츠를 따르는 학자 : 영혼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6) 로크를 따르는 학자 : 미크로메가스에 따르면 지혜를 갖춘 영혼을 거론하는 유일한 학자 (7) 소르본의 한 박사 :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을 부르짖는다. 볼테르의 묘사에 따르면 “원생동물(…)” 미크로메가스가 보기에는 로크를 따르는 학자만이 그나마 제정신이었다. 그래서그런지 그는 모든 존재의 원인과 종말을 담은 지혜서를 하나 지구인들에게 남기기로 한다. 나중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그 책을 펼쳐보니… 백지였다. 3. 런던탑의 까마귀(2020년 3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801362
란디드노(Llandudno)의 염소들
영국 웨일스의 해안 도시, 봉쇄/격리로 인적이 사라진 란디드노(Llandudno) 도시 내를 관광 중이신 염소들의 사진이다. 이왕이면 클릭해서 더 큰 사진으로 보시기 바란다. https://www.theatlantic.com/photo/2020/03/photos-llandudno-goats/609160/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텐데, 기사는 이들이 캐시미어(Kashmiri) 염소라 표현했다. 카시미르라면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그 지역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잉글랜드도 아닌 웨일스에 이런 야생 염소들이 있을까? 사실 이 염소님들이 웨일스 땅에 이주하신지는 꽤 오래됐다. 19세기 초부터이기 때문에 영국의 인도 식민지화하고는 별 관계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그들의 조상은 북인도에서 온 것이 맞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영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염소들 또한 프랑스를 거쳐서 영국에 들어온다. 영국 에식스 출신의 기사(squire), Christopher Tower라는 인물이 있었다. 프랑스가 인도로부터 들여온 거대한 염소 떼를 보고는, 이 염소들을 영국에 데려와서 모직 산업을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는 염소 두 마리를 구매하여 돌아온다. 기대대로 에식스의 Weald Park에 풀어놓은 염소들은 새끼도 낳고 번성한다. 심지어 캐시미어 숄도 이 염소들로부터 얻었었다. 여기에 대단히 흡족해 한 국왕 조지 4세는 타워로부터 염소들을 선물로 받기도 했었다. 이때부터 윈저 염소들이라 불리우는 염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페르시아로부터 캐시미어를 선물 받았다고 하는데, 아마 이 염소들도 여왕을 위해 캐시미어를 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 19세기 말, 이 윈저 염소들을 웨일스에 데려온 장군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그는 염소들을 그냥 풀어 놓았다. 캐시미어를 얻으려는 게 아니고, 그냥 웨일스 란디드노의 뜰에 풀어놓았는데, 이 때부터 100년이 넘게 염소들이 이 지역에서 자유롭게 살아왔었다. 게다가 염소들은 뭐든 잘 먹는다. 그래서 농부들도 염소들을 환영, 염소가 있으면 소들이 유산을 하지 않고 말들이 행복해 하며, 양의 병이 사라진다. 게다가 뱀도 잡아 먹는다. 날씨 예측도 하신다. 좋은 날씨일 듯 하면 언덕 위로 올라가고 나빠질 것 같으면 내려온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염소의 이동 방향을 보고 날씨를 예측한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평화였다. 90년대 초, 개체수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가 모두의 반발로 무산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무사히 살아남았다. 게다가 조상님들하고는 좀 달라지기도 했다. 뿔이 더 커지고 몸집도 무거워졌으며 털도 덜 복실복실해졌다. 역시 염소도 사람처럼 선진국에서 자라나야… 아, 아닙니다. 염소들이 계속 시골에서 행복하게 거닐 수 있기를 바란다. 가끔 도시도 유람 와 주시면서 말이다. --------- 참조 : http://www.llandudno.com/the-great-orme-kashmiri-goats/
Brexit 협상안 도출
https://www.thetimes.co.uk/article/may-accused-of-betrayal-as-she-unveils-brexit-deal-ks9frvbwz#_=_ 오늘 드디어 EU와 영국의 협상단들 간에 브렉시트 협상안 드래프트가 나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걸로 브렉시트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간단하게 절차를 말씀드리겠다. EU 입장에서는 그냥 기다리면 된다. 내각에서 합의 도출 -> 웨스트민스터(하원) 표결 -> 고고씽 -> … 쉽죠? 일단 언론 보도에 나온 내용부터 봅시다. 브렉시트 관련해서 제일 화제가 됐던 북아일랜드 백스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긴다. trade nerd 용어로 말씀 드리자면 북아일랜드 백스톱(CU)가 생기고, 물리적인 국경이 아일랜드 해에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백스톱을 위한 백스톱(영국 전체에 대한 CU)가 생긴다. 이렇게 보면 영국은 관세동맹에 남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겠다. 기한이 있다. 이행기간(transitoin period)이 지난 후, 영국과 EU의 새로운 협정(제일 가능성 높은 것은 아무래도 EU-Canada FTA+일 것이다)이 생기기 전까지다. 게다가 북아일랜드의 백스톱 규정과 영국 본토(+스코틀랜드)의 백스톱 규정이 약간 다를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수영장(swimming pool)”이다. 수영장 안에서 북아일랜드는 깊고 깊은 관세동맹에 묶이고, 영국 본토는 수영장 수면 쪽에 떠 있어서, 일부만 관세동맹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이다. 다만 영국은 EU의 규정(국가 보조금 및 환경 규제, 노동권 보호, 경쟁법(!!) 등)을 따라야 한다. 언제까지? 2030년까지. 물론 500 페이지에 달하는 전체 드래프트가 공개돼야(즉, 내각 협의에서 통과돼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테지만, 위에 말한 것만 보시라. 누가 분노할지 뻔히 보인다. 기사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연히 하드 브렉시터들은 반대이고, 연정을 꾸리고 있는 북아일랜드 DUP도 반대이고, 노동당도 반대이다. 그렇다면 의회 통과 못 한다는 얘기이고, 이 협상 역시 체커스 플랜처럼 죽는다는 이야기? 꼭 그렇지는 않다. Remainer들은 EU가 인정한 협상안에 NO를 던지기 망설일 것이며, 보수당 의원들은 당장 다시 이뤄질 수 있을 총선을 하기 싫어한다(노동당 때문이다). 노동당의 해법은 이렇다. 메이에게 반대하고 총선을 치른다음(내년 2월쯤?), 코빈 동지, 아니 코빈 총리께서 멋지게 원래의 메이 드래프트를 갖고 협상에 타결한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꼭 그렇지는 않을” 가능성이 낮기는 낮다. 그만큼 의회 통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이 불신임에 재총선(왜냐, 제이콥 리즈 모그/보죠는 메이의 실각만을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라 하더라도 EU가 재협상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경우는 그냥 노-딜이 되든가 아니면 완전한 관세협정 편입의 형태가 될 것이다. 두 번째 국민투표는? 잊어라. 노동당에게는 집권이 최우선이다. 이 경우라면 “정치적인 선언”이 몇 페이지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메이는 도박을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운명이 걸려있을 텐데, 처음에는 no deal이 bad deal보다 낫다며? 지금의 메이는 bad deal이 no deal보다 낫다는 입장이다. ---------- 1. 한국과 FTA는 언제 체결할 수 있나요? …모른다. 최소한 백스톱이 가동할 때 이후이다. 관세동맹이라는 것이 통상협정 체결을 강요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EU랑 FTA한 다음 관세동맹인 터키랑 바로 협상에 들어갔던 것처럼, 영국과도 그 이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모든 FTA는 기본적으로 WTO+(WTO보다 더 서로 양보한다는 의미다)이기 때문에 영국의 WTO 양허협상을 봐가면서 협상을 진행시켜야 한다. 게다가 EU가 transition period를 1년 더 연장시켜줄 의향은 있다고 하니, 2020년대 중반에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너무 긍정적인 예상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꽤 있다. 2. 북아일랜드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요? 임시적인 해결일 뿐이다. 백스톱이 가동되는 건 “임시적(temporary)”이지, “일시적(time-limited)”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서 새로운 무역 협상이 체결돼야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위에 적은 “수영장” 모델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3. 무역만 말씀하시는데 금융은 어떻게 됐나요? 아직 드래프트 공개가 안 됐으니 잘 모르지만 다른 기자들 트위터(…)나 언론 기사들을 볼 때, 영국은 EU로부터 동등성 대우(equivalence)를 받기로 했다는 정도가 알려졌다. 말인즉슨 패스포팅은 사라진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며, MIFID II와 EMIR을 계속 준수해야 할 것이다. 왠지 지금 그대로 이어질 것 같다는 느낌도 들 테지만, 위의 MIFID II나 EMIR은 이미 우리나라금융기관의 유럽 지점들도 다 따르는 규정들이다. 영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제3국처럼 EU의 규정에 참여하지 못 한 채, 복종만 해야 한다는 얘기다. 4. 메이 언니의 운명은…? 더 이상 내각에서 장관급 사퇴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쩌면 수명이 연장될 수 있겠지만 국회 통과가 힘들 테니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5. 스코틀랜드는 독립 가즈아…? 당연히 스터전 스코틀랜드 총리는 최악의 협상이라 비난하고 나섰다. “사정변경”에 해당되어 독립투표를 재추진할 발판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내의 SNP 의원들도 모두 메이의 드래프트를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아예 지브롤터도 다시 스페인으로 가고, 아일랜드는 통일하즈아!
이끌든가, 나가든가
내가 이 Spectator를 인용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보리스 존슨이 한 때 편집장이었던 유서 깊은 보수당 매체다. 좋게 말하면 보수 오브 보수의 기관지 역할, 나쁘게 말하면 꼰대들의 집합...인데, 보수당 민심이 어떤지 알기 위해서는 매우 훌륭한 주간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The Times도 빼놓을 수는 없을 텐데, 이 The Spectator도 그렇고 The Times도 그렇고 1日1메이때리기를 실천하는 중(FT도 마찬가지랄 수 있을 텐데 빈도 수가 좀 덜하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메이는 물러나라고 한다는 얘기다. 이 칼럼도 마찬가지다. 아예 다른 은하계를 살고 있는(참조 1) 터리사 메이는 이끌든가, 아니면 나가야 한다. 일단 Brexit 이후 무역 협정은 어때야 하는지, Brexit 이후 EU와의 관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국 총리라면 마땅히 청사진을 내야 할 텐데 아무런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제일 큰 잘못이다. 게다가 기회도 많았다. 올해만 하더라도 다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 말로는 2월 뮌헨 안보회의 때 뭐라도 말하겠다...인데, 과연 1922 위원회(1922 Committee)가 그 전까지 소집되지 않을까(참조 2)? 오히려 벨기에가 "캐나다++"(여담이지만 내 예상이 바로 요것)을 거론하고, 이탈리아가 "금융 서비스는 꼭 탈퇴 협상에 포함되어야 함"이라 주장하는데, 정작 영국은 아무런 말이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필립 해먼드가 관세 동맹 유지를 거론하고, 브렉시터들은 여기에 반발하고 등등, 내각 내에서 상당히 엉망진창이라고 한다. 메이가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순전히, 지금 메이가 물러날 경우 보수당이 쪼개지면서 새 총선이 열리고, 거기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물론 JRM question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하드-브렉시트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Jacob Rees-Mogg가 신예 스타로 떠오르면서 해먼드를 경질하라는 등, 당내 질서가 안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내각 사이에서, "내가 지금 홧김에 사임하면, 내각이 무너진다"라고 안 느낄 수 없다. 말그대로 하우스 오브 카드. 물론 보리스 존슨과 마이클 고브는 언제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칼을 찌르는 영국 정치가 지금 만큼 재미날 때도 드물 듯 하다. 좀 있으면 영국 지방선거 시즌이다. ---------- 참조 1. 메이, 융커와 식사를 하다(2017년 10월 2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705033939831 2. 메이에게 남은 열흘(2017년 6월 18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322543844831
여왕님의 전화기
사진 출처는 영국 왕실 트위터(참조 1),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 총리가 전화통화를 통해 국왕에게 보고를 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다만 내 눈길을 끈 것은 여왕님이 들고 계신 전화기였다. 세상에 저 옛날 명품을 지금도 쓰고 있다니. 말인즉슨 저 하얀 전화기는 나무로 만든 전화기에서 철로 만든 전화기의 시대 패러다임을 뛰어 넘었던, 1930년대의 베이클라이트(Bakelite) 전화기였다. 그런데 이 전화기는 영국 디자인이 아니다. 스웨덴 디자인이다. 20세기 초반의 전화기는 철제가 많아서 무거웠었다. 이때 대안으로 등장했던 재료가 바로 플라스틱, 그 중에서 벨기에의 화학자 Leo Baekland가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결합하는 방식을 고안한다. 적절한 온도와 산식을 발견한 그는 자기 이름을 딴 플라스틱을 만들어냈고, 1907년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한다. 가벼운 물건에 쓸만한 플라스틱을 만들었으니, 유럽 각국의 회사들도 눈독을 들였는데... 그는 특허를 유럽 각국에 낸다거나 법정 투쟁으로 가지 않았었다. 오히려 유럽 기업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여서 베이클라이트 컨소시엄을 만들고 자기가 회장에 오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는데 이는 다른 얘기이다. 우선 옛날 전화기를 기억하시면 아무래도 검정색이 많이 떠오를 것이다. 검정색이 시크해서...는 아니고, 당시 플라스틱 사출을 할 때 검정색 플라스틱이 가장 강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회사들은 검정색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1931년, 에릭슨(에릭슨 전자의 그 에릭슨 맞다)은 노르웨이 엔지니어와 노르웨이 디자이너들을 데리고 여왕님이 쓰시는 이 전화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버전은 역시 검정색이었지만 보시다시피 하얀색, 멜라민(Melamine)이다. 마치 아이폰 4를 검정색으로만 내놓았다가 나중에 렌즈 초점 문제를 해결하여 흰색 버전을 내놓았듯이 에릭슨은 하얀색 전화기를 만들어냈다. 자세히 보시려면 아무래도 Ericsson 웹사이트를 가보시는 편이 낫겠다(참조 2). 그동안의 세월 동안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쳤을까? p.s. 물론 정확한 모델 명까지는 모르겠다. 에릭슨이 유럽 시장에 저 전화기를 유행시킨 건 맞는데 영국 기업이 만든 짝퉁(...)일 수도 있다. ----————- 참조 1. 2020년 3월 26일 목요일: https://twitter.com/royalfamily/status/1242896672100954115?s=21 2. https://www.ericsson.com/en/about-us/history/products/the-telephones/the-bakelite-telephone-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