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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소프트, ‘더 디비전2’ PC버전 스팀 아닌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출시

오는 3월 15일 발매되는 작품, 에픽게임즈 스토어에서 사전예약 가능해
유비소프트가 만드는 3인칭 슈팅(TPS) 게임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 2> PC 버전이 스팀(STEAM)이 아닌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선택했다. 

에픽게임즈는 오늘(10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유비소프트와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 2>(이하 디비전2)를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출시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협약으로 인해 <디비전2>는 유비소프트가 운영하는 게임 배포 플랫폼 '유플레이'와 에픽게임즈 스토어에만 출시되며, 스팀에는 발매되지 않는다.
에픽게임즈 스토어와 홈페이지에 게시된 안내문
이번 발표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먼저 첫 번째는, 유비소프트 게임이 스팀이 아닌 에픽게임즈 스토어에서 판매된다는 사실이다.

유비소프트는 그간 자사 발매 게임을 유플레이나 스팀을 통해서만 판매해왔다. 때문에 <디비전2> 역시 스팀으로 발매될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지만, 협약을 통해 사실상 에픽게임즈 스토어 독점 판매가 확정됨에 따라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협약은 <디비전2>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유비소프트가 발매한 다른 게임들도 스팀이 아닌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선택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번째는 <디비전2>가 에픽게임즈 스토어 출시를 확정하면서 에픽게임즈 스토어 출범 이래 처음으로 이른바 '메이저 게임'의 독점 발매가 확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지난 12월 발표 이래로 다양한 게임의 유치를 천명해왔지만, 지금까지는 에픽게임즈가 직접 개발한 게임 외에는 인디 게임 중심으로 발매 되어왔다. 그렇기에 이번 <디비전 2>의 협업이 다른 대형 게임사들의 작품을 유치하게 되는 포문이 될지 이후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디비전 2>는 오는 3월 15일에 PS4, Xbox One, PC로 발매되는 작품으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TPS와 RPG가 결합된 작품이다. 유저는 워싱턴 D.C를 탐색하며 적과 교전할 수 있으며, 전투를 통해 얻은 경험치를 통해 각종 화기와 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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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덕모 (程普 徳謀) A.D.? ~ ?
나도 안다.. 아무도 안궁금해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도 관심없을 그런 인물이라는거. 심지어 그 인기에 걸맞게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런데 맨날 피자, 치킨, 갈비, 삼겹살, 소세지, 파스타, 회, 스테이크만 먹을 수는 없잖아? 가끔은 그냥 김치하고만 먹거나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먹을 때도 있는거고...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정보". . . .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향은 유주의 북평에 있는 토은현. 손견시절부터 시작해, 손가를 따르던 주요 인물들 중 고향이 최북단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에 대전사람도 있고 인천에 대구사람도 살고, 부산에 삼척사람도 일하고 제주에 광주사람도 놀고 그런게 아무렇지 않지만 저 당시의 중국에서는 대체로 워낙에 넓기도 넓고 거기에 도로나 교통같은 인프라도 저질인데다... 농경사회라 지주건 소작이건 일단 "땅" 이 일터라 그 땅을 벗어나면 먹고 살기가 벅차니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벗어나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비록 정보가 농사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지역이 고향에서 1,000km도 넘는 자동차로 쉼없이 휴게소 한 번 안들리고 가도 반나절을 운전해 가야하는 거리! 손견때부터 손가를 따르긴 했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쩌다 손견을 따른건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손견 만나기 전부터 말단이나마 관직에 있던거 같다. 마냥 칼만 휘두르고 힘만 쓰는 무식쟁이 장수는 아니였고, 책사나 재사 수준이야 당연히 못되겠지만 기본적 학식은 갖춘 사람인데다 이런저런 처세술과 식견도 있는 나름 "배운" 장수였다. . . . 손견 자체가 원술의 휘하 장수다보니 그 휘하 장수의 휘하 장수인 정보는 아무래도 무슨 눈에 띌 대활약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무슨 어마무시한 무예실력이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것도 아니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돌아가신 분께 죄송할 말이지만, "그냥 좀 쓸만한" 장수였지, 어디다 내로라 할만한 그런 급은 솔직히 아니였던거 같다. 삼국지연의 속에서는 "철등사모"라는 자신만의 템을 쓰는것으로 나오는데... 연의가 다 그렇듯, 저 당시에는 저런 무기가 없던터라.. 정보의 철등사모는 픽션이다. 무슨 병장기를 썼는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손견 사후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며 강동 일대에서 양학을 다닐 때는 그래도 좀 나름 쏠쏠히 활약했는데, 이 당시는 손책 휘하에 별 다른 장수도, 병력도, 책사도 없다보니 정보 정도만 되어도 큰 도움이 되었던거다. 혹자는 '뭐? 그때 책사가 없다고?? 주유 있잖아!' 하겠지만, 주유는 손책이 막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책에 합류한게 아니고, 주유 자체가 병법과 책략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인건 맞지만 전형적인 모사 타입이라기보다 전국시대에서 초한쟁패기 무렵의 한신같은 총사령관 타입인지라 마냥 주군 곁에서 꾀를 내기보다 독자적인 군단을 이끌고 직접 움직이는 스타일이였다. 게다가 주유는 이미 꽤 큰 세력의 호족출신이라 손책이나 손권이 쥐어주는 병력만 받아 운용하는게 아니라 자기 휘하의 직속병력들을 적잖이 거느리고 있었고 그 병력에 대해서는 손가들도 마음대로 터치를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위, 촉과 구분되는 오세력들만의 특징이자 핸디캡. . . . 그에 비해 정보는 호족도 아니고, 형남지역이나 그 이하 강동/강남 지역에 무연고자라 그냥 손씨들 하나 보고 따라 다녔던 사람이라 손씨들이 수족부리듯 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거의 셋트로 묶이는 황개, 한당, 조무들도 정보와 비슷한 처지였고 다 저렇게 손견을 따르면서 엮인 동료이자 전우였다. 손책 사후, 손권으로 정권이 급 바뀌던 때는 오의 격변기면서 위기였던 시절이였는데... 이건 손책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손책이 본인의 단명을 예견한건지, 그냥 지 급한 성깔 탓인지 급하게 세력을 다지느라 유화책 그딴거 다 개줘버리고 자기 안따르고 비협조면 죄 개패듯 쓸고 다니며 꿇려놓다보니 손책이 죽자마자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런 애들을 번거롭지만 다시 돌며 매타작을 다녔는데, 이때 정보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연의에는 딱히 이사람의 성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보니 잘들 모를텐데, 저런 반란군 토벌 당시 윗선에서 듣고 놀랄만큼 꽤나 잔혹하게 토벌을 했다고 하며... 끝까지 항거하다 잡히면 그런 놈들 전부 모아다가 산채로 불구덩이에 쳐넣었다고 한다.. 자, 슬슬 정보의 인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ㅋㅋ 위에서 말했듯 마냥 힘만 쓰는 무장은 아니였고 나름 글을 읽은 장수다보니 거기까진 좋은데, 자기와 달리 힘만 쓰는 전형적인 무장들을 알게 모르게 은근 무시하고 까는 경향이 있었다, ;;;; 저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먹고 살기도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보니 날때부터 금수저 물고 나거나, 진짜 혜안있는 부모를 만난게 아니라면 대체로 책은 커녕 글조차 못 읽는 문맹들이 발에 채였는데... 아무래도 무장들 중에 문맹 혹은 그냥 간신히 자기이름이나 쓰거나 간단한 문장들이나 읽고 쓰는 수준의 장수들이 정말 많았다. . . . 예를 들어, 가난한 농민의 집에 태어나 밭갈고 논메는데 자기네 지역의 주자사나 군벌이 병력을 징집한다기에 징집되어 병졸이 되었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공 세워 말단 장수가 되었다가 공적을 인정받아 더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이러다보면 당장 전장에서 싸우고 병사들 관리하기도 바빠 따로 글을 익히거나 책을 볼 틈 같은게 없다. 게다가 한자라는게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도 아니다. . . . 여튼 정보는 저런 소위 무식한 장수들과는 은근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거나해서 당장 자기와 가장 오랜시간 생사고락 함께 한 황개, 한당, 조무와도 막 절친베프가 아니였고 혼자만 살짝 겉돌았다. 저런 정보의 인성이 제대로 터진 계기는 바로 적벽대전 앞두고 군비를 점검하고 전쟁준비 임하며 주유와 함께 좌도독, 우도독을 나눠 맡으면서다. . . . 연의에서도 이 부분이 나오며 처음에는 한참 어린 주유와 동급대우 받는 것에 불쾌해하다 주유의 병력운용과 훈련 등을 시찰 후 주유를 인정하는 걸로 그려진다. 그런데 저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참 안타깝지만. .. 주유와 동일선상 놓이며 불쾌해한게 팩트. 나중에 주유를 인정하는건 픽션이다..-_-;;;; 실제로는 내내 못마땅해했고 그 후로 주유 사망까지 딱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 . . 암만 봐도 학식, 병법, 책략, 용병, 대국안, 전략기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주유근처도 못가는게 명백했고 외부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건만, 정보 혼자 그걸 인정않고 그저 자기보다 한참 나이도 경력도 적고 짧은 주유가 자신과 도독을 나눴다는게 불만이였다. 엄밀히 말해.... 주유에게 도독직을 나눠줬다기보다, 그간 정보의 경력과 나이를 예우해 정보에게 도독직을 나눠준거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적반하장이였던 정보다. 여튼 그래도 공사는 구분하여 적벽대전은 잘 치르고 이후 형주 남군을 맡고있던 조인까지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것이 그의 마지막 레코드. 그러고는 얼마안가 열병을 앓다 석달 가량을 투병 후 다이.. 생몰연대는 없지만 오에서 정보를 부를 때 대개 많은 공을 세운 이를 예우해 부르는 호칭인 "정공"이라 부른걸 볼 때 사망당시 꽤 나이가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 . 성 뒤에 공을 붙이는 자체는 공이 많은 이를 예우하는, 영어로 치면 성 앞에 Sir.을 붙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단순히 젊은이가 공 많다고 붙이진 않았고 대개 공이 많은 원로들에게 붙이는 경어같은 개념이다. 아무래도 공이 많다보면 자연스레 나이도 많으니까~ 정보! 하면 떠오르는 기념비적인 활약 자체는 없어도 오의 창업주의 부친이 젊었던 시절부터 별 기복없이 차근차근 공을 세워오며 적벽대전 앞두고 소수였던 항전파였던데다, 나이 지긋해서도 은퇴않고 야전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비록 인품이 좋은 양반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손가에 대한 깊은 충심 자체는 진심인데다 못 배운 애들을 돌려까고 어린 애들을 무시하긴 했어도 그러다 과욕이나 만용부려 팀킬을 한다거나 얼빠진 짓으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까진 없는, 그냥 요새 사회에도 어딜가나 있는 그냥 흔한 꼰대아재였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였을 그 당시는 오히려 노장이 젊은 장수나 인재들과 오픈마인드로 논의하고 후배의 지시를 고분히 받는 트인 사람이 흔했던 시절은 아니였으니 마냥 정보의 심성이 뒤틀렸다기보다 그냥 결국 정보도 그 시대의 보통사람이였던ㅎ . . . 이번 정보편은 쓰는 나도 노잼이니, 읽는 여러분들도 노잼이였을거다. T-T 인기스타도, 빌런도 아닌데다 임팩트도 없다보니. 그래도 오늘편을 통해 "편식은 좋지 않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ㅋㅋㅋ
노회찬 없는 정의당, 정치개혁 어떻게 밀고 나갈까?
윤소하 의원 원내대표 대행체제 노회찬의 숙원 '정치 개혁' 전열정비 원내교섭단체 복원 필요성...무소속 의원 접촉 가능성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은 빈소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 노회찬 대표의 별세 뒤 정의당이 숨고르기에 나선 가운데, 교섭단체 복원 등을 통한 정치개혁의 활로 모색에 나설 전망이다. 정의당은 이번 주까지 추모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당 안팎을 다독이고, 내주부터 교섭단체 복원을 통해 노 의원의 숙원인 정치개혁 등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우선 이정미 대표는 감사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31일 노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에 내려가 지지자들을 위로하며 숨고르기에 나선다. 이 대표는 장례기간 국민 성원에 대한 감사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1차적으로 노 원내대표님의 지역구인 창원 성산구에 내려가 장례기간 힘써준 시민, 사회단체를 찾아 뵙고 지역주민과 인사를 나누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교섭단체 복원에 대해" 의총서 논의 시작하고, 평화당과 정식으로 얘기 해봐야 한다"면서도 "논의 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노회찬 의원이 주장해온 선거제도 개혁, 특활비 폐지 등의 쟁점들을 이슈화 시키기 위해 교섭단체 재구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같은날 비공개 의총을 열어 윤소하 의원을 노 원내대표의 대행으로 선임하고, 차기 원내대표 선출 등 전열 정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윤 원내대표 대행은 이번 주말 또는 다음주 부터 교섭단체 복원을 위해 무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의와 평화 의원 모임은 과거 국민의당 출신인 무소속 손금주, 이용호 의원 등을 물밑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당 관계자는 "노 대표의 유지를 받들고, 원내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원내교섭단체가 돼야 한다"며 "내주 평화당과 함께 무소속 의원들을 접촉하며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섭단체 복원은 말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무소속 손금주, 이용호 의원의 경우 정의당과 색깔이 맞지 않는데다, 평화당과도 과거 국민의당 이후 사이가 안 좋은 터라 설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계속 무소속으로 남아있을 순 없다"면서도 "아직 결정된 바 없고, 정계개편이 일어나면 그때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 의원이 빠지면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의원 19명으로 교섭단체가 깨진 상태다. 원내 교섭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3당만이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교섭단체 구성을 해야 원내대표단 내에서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개혁에 관한 목소리를 꾸준히 제기 할 수 있다. 또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몫으로 배분된 정치개혁 특위 위원장 자리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현재 원내교섭단체 간 협의로 정의당 몫의 위원장 자리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교섭단체 지위를 못 찾아온다면 특위 내에서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아 질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교섭단체 복원을 한다면 정의당과 평화당은 연동형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정치개혁 과제를 우선 목표로 삼을 예정이다. 심상정 의원이 새로 설치하기로 한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을 맡기로 했고, 특히 정개특위가 입법심사권을 가지기로 해 더 큰 추진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정의당은 보고 있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정개특위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를 진척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당도 의원 선출의 비례성을 담은 개헌안 좌초로 동력을 잃은 상태지만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의 요구가 계속 있는 한 논의를 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지난 23일 협치 내각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정의당의 입각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내각에 입각하게 되면 정책 실현에 있어 존재감이 커질 수 있어 또 다른 활로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입각의 경우 노동계에 친밀한 정의당에게 고용노동부 장관을 주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재로선 '어떤 물밑 조율도 없는 불투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현 정부 노동정책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속도조절론' 등 우클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노동계 중심으로 나오고 있어 정의당이 흔쾌히 내각 참여를 결정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서도 정책 연대를 통해 교감을 이룬 뒤에나 협치 내각을 할 수 있어, 지금으로선 내각 참여도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회찬 없는 정의당이 마주하고 있는 정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버닝썬-경찰관들' 유착 정황 포착…광수대 수사
버닝썬 측으로부터 뒷돈이 흘러간 정황 포착 "역삼지구대원들인지 아닌지는 밝힐 수 없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클럽 '버닝썬' 출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이한형기자 서울 강남구의 클럽 '버닝썬'과 관련된 성폭행·마약·경찰관 유착 의혹 등을 수사하는 경찰이 클럽 측과 일부 경찰관들 사이의 부적절한 유착 정황을 포착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경찰관 여러 명이 버닝썬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은 버닝썬 측으로부터 이 경찰관들에게 뒷돈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고, 유착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여러 명의 경찰관들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4일 버닝썬과 역삼지구대를 압수수색해 회계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CCTV 영상 등을 확보했다. 버닝썬 관계자들과 역삼지구대 근무자들의 통화 내역과 계좌 내역 등도 제출받아 분석해 왔다. 또 20일에는 버닝썬 VIP룸을 포함해 클럽 내부 시설을 수색했다. VIP룸은 '물뽕'으로 알려진 마약 GHB를 여성들에게 먹여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장소다.
[부산IN신문] 쉽고 재미있는 소프트웨어 교육에 주력…교구 및 교육 콘텐츠 개발 기업 ‘I.O.Tech’ [동의대학교 BI ②]
선생님은 칠판에 수업내용을 적고, 아이들은 공책에 내용을 받아쓰는 과거의 수동적인 교육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최근 학교에서는 다양한 교구를 활용,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 교육 등 다채로운 실습 콘텐츠들도 운영 중으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교육을 쉽게 가르쳐주는 동시에 교육에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교구 및 교육 콘텐츠 개발 기업 ‘I.O.Tech’다. I.O.Tech라는 기업 이름에는 It’s ours technology 즉, ‘우리의 기술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돼있으며, ‘어디에서든 자사의 기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포부도 담겨있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교육용 교구는 상당히 많다. 이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과 연계된 강의도 직접 진행해 차별화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에게 지속적인 상담과 강의를 제공해 아이들이 보다 수준 높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제품은 학교를 중심으로 판매된다. 학교에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강의를 진행함으로써 고객들로부터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 기업만의 경쟁력이다. 피드백을 반영해 개선된 새로운 제품을 개발, 공급함으로써 좋은 평을 받고 있다. I.O.Tech 김완우 대표는 “당사는 전자공학과 출신들로 구성돼있으며, 어려운 코딩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구를 개발하려는 취지로 창업했다”며 “직접 강의를 했던 학생들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얻었을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작은 사무실을 운영 중이지만, 향후에는 오프라인 매장을 개설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강의 및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며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서도 체험학습이 가능한 곳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프트웨어교육 #소프트웨어 #교육 #교구 #소프트웨어교구 #강의 #소프트웨어교구체험학습 #체험학습 #소프트웨어강의 #강연
'패스 오브 엑자일', 엑자일들은 왜 유배길에 올랐을까
레이클라스트 유배길에서 시작된 엑자일 스토리 총 정리 <패스 오브 엑자일>의 유배자(Exile, 엑자일)들은 대체 왜 유배길에 올랐을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오리아스'에서 쫓겨나 황폐한 '레이클라스트'로 가게 됐을까? <패스 오브 엑자일> 아이템 파밍에는 단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출시로부터 햇수로 7년이 된 게임답게 <패스 오브 엑자일> 이야기는 탄탄한 편이다. 덕분에 우리의 유배자들은 왕도적인 행보로 영웅이 되었다. 역사 시간이 아니니, 레이클라스트 대륙 역사 전체를 다루지 않겠다. 대신 간단히 우리 엑자일이 어떤 죄를 지어 유배길에 올랐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액트 1부터 액트 10까지 여정을 헤쳐나가며 영웅이 되었는지 살펴봤다. ※ 이 기사에는 <패스 오브 엑자일>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캐릭터 선택창은 오리아스에 위치한 '재판장'이다. 유저가 선택하는 순간, 유배형(刑)이 확정된 셈이다. # 살인, 절도, 이단 ... 엑자일들도 7개의 대죄?  <패스 오브 엑자일>에서 유저가 고를 수 있는 유배자는 7명이다. 머라우더, 듀얼리스트, 레인저, 쉐도우, 위치, 템플러 그리고 사이온이 있다. 하지만, 실제 레이클라스트 유배자 수는 더 많다. 이들 중 일부는 타락하고, 일부는 마을에 정착해 나름(?) 레이클라스트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틀라스에서 가끔 '타락한 유배자'를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7명의 엑자일들은 어떤 사정으로 '유배'라는 중형을 받았을까. 먼저, 사이온은 신혼 첫날 밤 정략 결혼한 남편을 죽인 살인죄와 종교를 거부하여 이단죄로 유배 당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위치는 자신을 쫓아내려 한 마을 주민들을 몰살 시켜 살인죄로, 레인저는 귀족들이 사냥한 동물을 풀어줬다 절도죄로 레이클라스트 유배행 티켓을 받게 됐다. 암살자였던 쉐도우는 살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맞췄지만, 의뢰인 수면제를 몰래 먹인 뒤 레이클라스트행 배에 타게 됐다. 유일하게 정상(?)적인 재판을 받지 않은 캐릭터다.  ▲ 왼쪽부터 쉐도우, 위치, 사이온 오리아스 검투사 출신 듀얼리스트는 무려 파이어티와 과거 연인 관계이기도 하다. 자신을 욕 보인 귀족을 죽인 죄를 물어 유배 당했다. 머라우더는 오리아스 출신이 아닌 칼루이 출신으로 한 동안 노예로 지내다가, 주인을 공격했다고 알려졌다. 템플러는 고위 성직자 '도미누스'가 지배하는 오리아스의 신정(神政)정치를 거부해 이단자로 찍혀 유배 길에 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액트 3의 최종 보스이기도 한 '도미누스'가 형을 집행해 황폐한 레이클라스트로 유배됐다는 것이다. 일곱 명의 엑자일은 각자의 사정으로 유배길에 올랐지만, 그들 자신도 레이클라스트로 가던 배가 난파해 해안가에서 간신히 눈뜬 자신이 오리아스와 세계를 구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 왼쪽부터 머라우더, 듀얼리스트, 템플러, 레인저 # 갑자기 왜 죄인인 유배자가 몬스터를 사냥해?  <패스 오브 엑자일> 이야기는 총 열 개의 액트로 구성됐다. '유배자의 길'이라는 게임 타이틀에 맞게 유배자의 긴 여정이 담겨있다. 어떤 엑자일(유배자)를 선택하든 결국 평범한 유배자가 오리아스를 구한 영웅으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혹자는 <패스 오브 엑자일> 이야기 전달이 불친절하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멋진 컷신 하나 찾아보기 힘들고, <패스 오브 엑자일> 내에서 서사는 오로지 대화로만 풀어나간다. 세계관은 일부 오브젝트에 적힌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게임이라면 파고드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의 개발 철학이 여기에도 적용됐나 싶기도 하다. ▲ 엑자일들은 처음부터 '영웅'적이지 않았다. 불친절하다고 해서 <패스 오브 엑자일> 이야기가 단순하거나 알맹이가 없진 않다. 열 개의 액트는 어떻게 평범한 유배자가 세상을 구했는지 '빌드 업'을 하며, 스토리를 차분히 풀어 나간다. 전체 이야기는 대략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전개된다. 기: 엑자일이 우연하게 자신을 유배보낸 자의 흉계를 알게된다. 승: 배후에 더 큰 어둠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엑자일은 이를 해결하지만, 모든 것을 삼킬 불멸자인 키타바가 깨어나게 된다. 키타바를 막으려던 엑자일은 결국 키타바에게 죽는다. 전: 엑자일을 살린 신(sin)과 함께, 엑자일은 다른 불멸자를 처치하고 힘을 흡수하며 더 강해진다. 결: 엑자일이 키타바를 잡고 오리아스에 평화가 되찾아온다. 하지만, 다른 시공간에 새로운 적이 등장하는데... 엑자일이 해안가에서 눈뜨며 시작하는 액트 1은 엑자일이 '구도자'적인 면모를 보이기 전이다. 유배자들은 태운 배의 유일한 생존자인 엑자일은 우연히 찾아간 마을에서 부탁하는 임무를 하나하나 처리한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오리아스의 검은 근위대와 '파이어티'와 엮이며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오리아스 검은 근위대와 파이어티의 배후에는 유배자를 레이클라스트로 보낸 장본인 '도미누스'가 있었다. 도미누스는 오래 전 레이클라스트 지역에 있던 마법을 부활시키려는 야욕을 가진 오리아스 최고 권력자였고 마법의 힘에 빠졌지만, 엑자일이 가뿐히 처리한다. 여기가 액트 3까지의 이야기다. 출시 당시 <패스 오브 엑자일>은 액트 3까지 포함되었고, 그래서 유배자가 자신을 유배 보낸 자를 제거했다는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갖고 있다. ▲  다르게 보면, 도미누스는 <패스 오브 엑자일> 여정의 시작을 만들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미누스가 끝이 아니었다. <패스 오브 엑자일> 세 번째 확장팩 '어웨이크닝(The Awakening)'에서 액트 4가 업데이트 되며, 도미누스라는 배후에 또 다른 배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짐승(The Beast)'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레이클라스트 전역에 퍼져있는 괴물과 좀비를 만들어낸 짐승은 과거 많은 국가를 멸망시켰다.  액트 4의 배경이 되는 하이게이트 광산 아래 있는 거대한 짐승은 엑자일이 짐승의 내부에서 치열한 사투를 펼친 끝에 처치된다. 수백 년 레이클라스트 대륙에 절망을 가져온 존재를 죽인 엑자일은 당연히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이제 배후의 배후까지 처리했으니 온 누리에 평화가 찾아온 줄 알았으나... # 배후 뒤에, 또 배후 뒤에, 또 배후가?  세상은 영웅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짐승은 처치한 엑자일은 오리아스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간 오리아스에서 짐승이 죽어 '불멸자'라는 신과 같은 존재들이 다시금 힘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짐승이 불멸자의 힘을 빼앗고 있었지만, 그가 제거되며 자유를 되찾은 셈이다.  불멸자 중 욕망의 신이라 불리는 '키타바'는 오리아스 시민 모두를 집어 삼킬 수도 있을 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아이템 파밍 하고 싶었던 책임감을 느낀 엑자일은 키타바와 전투를 벌이게 되고 씬(Sin)이라는 고대의 존재와 힘을 합쳐 말 그대로 쓰러뜨리게 된다. 하지만 키타바는 일어나며 한 순간에 엑자일을 죽인다. 씬은 엑자일을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되살린다. 유저에겐 원소 저항력 30%가 깎이는 순간이지만, 엑자일은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 키타바는 <패스 오브 엑자일>에 등장한 보스 중에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힘을 얻기 위해 씬과 엑자일은 다시 한번 레이클라스트로 가게 되고, 짐승이 없어져 기세 등등해진 '골목대장' 놀이를 하고 있는 불멸자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엑자일은 키타바를 쓰러뜨리기 위해 자신이 여행했던 곳을 다시 찾아가고, 결국 씬과 함께 키타바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물론, 원소 저항력 30%가 더 깎이면서 유저들은 눈에 불을 켜고 '저항력' 아이템을 찾아 나서야 되지만, 오리아스 시민 입장에서는 드디어 키타바로부터 살아남게 됐다. 키타바를 제거한 엑자일은 자신에게 죄를 물었던 오리아스를 자기 손으로 구한 '영웅'이 됐다. 엑자일의 모험은 '아틀라스'로 넘어가 엘더와 쉐이퍼로 이어지고, 추후 확장팩에서 갑자기 키타바의 배후가 있었다거나, 키타바 죽음을 통해 무언가가 힘을 얻어 세상을 파괴하게 되어 엑자일의 또 다른 여행이 이어질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한낱 유배자로 시작해 영웅으로 끝나는 스토리는 액트 10으로 일단락됐다.  엑자일이 오리아스로 돌아가며 시작된 키타바와의 두 번의 전투는 액트 5부터 액트 10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여섯 액트는 약 2년 전 <패스 오브 엑자일> 여섯 번째 확장팩 '오리아스의 몰락(The FALL of ORIATH)'에서 업데이트됐다.  ▲ 불멸자 중에서는 달과 해의 힘을 이용하는 자도 있었다. # 엔드 콘텐츠 전 6개 액트를 대거 업데이트한 이유? "유저의 경험 위해" 정식 출시 이후 두 번의 업데이트를 통해 완성된 <패스 오브 엑자일> 스토리는 총 열 개의 액트로 구성됐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패스 오브 엑자일> 개발사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GGG)는 왜 약 4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엑자일의 이야기를 풀어냈을까? 또, 왜 마지막 업데이트는 여섯 개의 엑트나 추가했을까? 단순히 게임의 볼륨감을 키웠던 것일까? 아니면 작은 회사로 시작했기 때문일까? ▲ 추가되는 신규 '리그'에서도 떡밥이 다수 발견된다. <패스 오브 엑자일>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물론 소규모 회사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GGG의 의도는 약간 달랐다. GGG 대표 크리스 윌슨은 '오리아스의 몰락' 출시 당시 기존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개 액트보다 많은 여섯 개 액트를 업데이트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ARPG(핵 앤 슬래시) 장르는 엔드 콘텐츠를 위해서 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해서 플레이 하는 경우가 많다. 몇몇 플레이어는 이 부분에서 게임을 떠난다. 유저가 떠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문제이며, 해결하고 싶었고,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저에게 반복적인 경험을 최대한 덜 주기 위해 엔드 콘텐츠 전에 6개의 엑트를 더 추가했다. 이런 시도는 전통적인 ARPG(핵 앤 슬래시) 문제점에 대한 GGG만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어려웠던 당시에도 그들은 '페이 투 윈(Pay to Win)'는 ARPG 유저 경험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확실하게 선 그었다. '오리아스의 몰락'을 통해 여섯 개의 액트를 추가하면서도 유저 경험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GDC 2019에서는 유저 커뮤니티에 모든 답이 있다고 밝혔듯이, GGG의 <패스 오브 엑자일> 개발 방향은 항상 유저를 향하고 있다.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감동] 평생 바깥에서 살던 강아지를 집으로 들인 순간
디트로이트에서 구조된 강아지 날라는 한평생을 뒷마당에서 살아왔습니다. 날라의 보호자는 날라를 쓰레기로 가득 찬 뒷마당에 방치한 채 녀석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보호자는 날라에게 밥을 챙겨주거나 관심을 주지도 않았죠. 날라는 보호자의 학대에 점점 앙상해지고 온몸은 오물로 뒤덮인 상태로 지내다 주민의 신고로 구조되었습니다. 한편, 반려견 입양을 고려 중이던 찰리 씨가 우연히 날라의 사연을 듣고 날라와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학대를 받은 아이들 대부분은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크게 반응하며 움츠러들곤 했지만, 날라는 순하고 밝은 성격을 뽐내기만 했습니다.  물론, 찰리 씨도 그런 날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평생 야외에서 살아온 날라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걸 낯설어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날라를 집안으로 들인 찰리 씨는 날라를 위해 준비한 푹신한 침대로 데려갔습니다. 그러자 날라는 침대 위에 앉고 주위를 둘러본 후 찰리 씨를 한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치 '저 정말 여기서 지내도 돼요?'라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찰리 씨가 미소를 지으며 날라를 쓰다듬자 녀석은 부드러운 침대 위에 엎드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평생 시끄러운 야외와 딱딱한 바닥에서 지내왔던 날라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침대에서 휴식을 즐겼습니다. "날라는 말 그대로 행복해 보였어요." 하지만 날라에게 무엇보다 더욱 소중한 건 바로 찰리 씨의 존재였습니다. 그날 밤, 찰리 씨가 침대로 가 잘 준비를 하자 날라는 고개를 들어 찰리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찰리 씨는 날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침대를 가볍게 두 번 내리쳤습니다. "이리 올래?" 날리를 입양한지 몇 달이 지난 지금, 찰리 씨는 매일 밤 녀석의 육중한 무게를 느끼며 아침잠에서 깹니다! "날라는 껴안는 걸 좋아해요. 부드러운 것도 좋아하고요. 날라가 가장 좋아하는 거요? 침대에서 저와 여동생을 껴안고 잠드는 거예요." 꼬리스토리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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