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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E3] 방관하는 자 | 침묵의 결과

이웃나라에 인류의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저 불구경하듯이 지켜만 보고 침묵을 한다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르완다 대학살 참사를 통해 알아보았어요.

대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은 빠른 시간에 학살을 중단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자료를 원하신다면:

1) UN의 르완다 대학살 방관 기사

2) 르완다 대학살에 대한 기사


4월 7일은 국제사회가 르완다 대학살 방관에 대한 반성의 날입니다.

투치족 주민들은 짐을 싸는 UN평화유지군에게 달려가 빌었습니다.
“우리를 버리고 갈 거면 총으로 쏴 죽이고 가라.”
이들의 절박함을 뿌리치고 UN평화유지군이 떠난 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기지 내 투치족 주민 2,000여명은 후투족에게 모두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르완다에는 UN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었음에도 철수를 한 것은 안전보장 이사회 소속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연합의 캡스톤 원칙(Capstone Doctrine)에 따라 평화유지군은 폭력 사태를 저지하는 데는 재량권이 있지만 강제력을 행사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건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야합니다.)

르완다 대학살 당시 UN 안보리 의장을 맡았던 콜린스 키팅은 르완다 대학살 20주년을 추모하는 회의에서 고개를 숙여 사죄했습니다. UN 사무국은 1994년 1월 르완다 주둔 UN장군이 대학살 가능성을 경고하며 보낸 전문을 감추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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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유정 사건' 펜션운영자 "그후, 말라 죽고 있어요"
고유정 범행으로..5년된 펜션 폐업 제주 마을에선 죄인 아닌 죄인처럼 퇴실 때 고유정 짐 많아, 도움 거절 펜션 주인이 청소했다? "가짜뉴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익명(고유정 범행 펜션 운영자 가족)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 며칠 전 재판에서는 범행 직후 고유정이 아들에게 천연덕스럽게 했던 말과 행동이 드러나면서 더욱더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고유정은 전남편 살해하고 화장실 청소한 뒤에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죠. ‘엄마가 물감 놀이하고 왔다.’ 그리고요. 펜션 주인과도 통화를 했는데 차분하고 태연하게 받았답니다. 결국 남편의 성폭행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지금부터 만날 분은 이 사건의 숨은 피해자입니다. 바로 고유정이 머물렀던 펜션의 운영자 가족인데 이분들 그 사건 이후로 말 못 할 고통을 겪고 있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직접 들어보죠. 펜션을 운영하던 노부부의 아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와 계십니까?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 김현정> 일단 지금 제주도 펜션은 어떤 상태인가요? ◆ 펜션 운영자 가족> 폐업 신고를 했고 현재는 운영을 안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문 닫았어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너무나 큰 사건이 되어버렸고요. 또 여러 가지 언론 방송을 하면서 좀 펜션 업장이 특정이 되면서요. 더 이상 운영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이 돼서 폐업 신고를 하고 운영을 현재는 안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파셨어요? (사진=고상현 기자) ◆ 펜션 운영자 가족> 아니요. 지금 사건이 이렇게 된 마당에 부동산 매매가 사실은 어려운 상태가 됐고요. 현재는 그냥 비어 있습니다. 가끔 가서 관리 좀 하고요. ◇ 김현정> 그래요. 언제부터 운영하셨죠, 이 펜션? ◆ 펜션 운영자 가족> 한 6년 전에 시작을 해서요. 거의 만 5년을 딱 영업했었습니다. ◇ 김현정> 만 5년. 이게 부모님께는 전 재산이었다고 제가 들었어요. ◆ 펜션 운영자 가족> 제가 10년 전쯤에 제주에 먼저 이주를 했고요. 은퇴하시고 고향에 계시던 부모님을 제 권유로 제주에 6년 전쯤에 오셨고요. 은퇴 자금을 가지고 펜션을 운영했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전 재산 털어 넣고 온 힘을 다해서 5년 동안 운영하던 펜션이 이렇게 된 뒤에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 펜션 운영자 가족> 경제적으로도 거기가 유일한 수입처였는데 경제 활동이 중지가 돼버렸고 또 가지고 있던 은퇴 자금은 다 그렇게 부동산에 묶이게 되었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중에 있습니다. ◇ 김현정> 아니,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요. ◆ 펜션 운영자 가족> 지인분들은 걱정을 많이 해 주시고요. 그리고 펜션이 있던 곳이 사실 제주도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거든요. 마을 주민분들한테도 굉장히 큰 피해를 드려서 저희가 이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서 오가는 중에 마주치는 것도 굉장히 부담스럽고요. 그래서 저희 자녀들 입장에서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부모님이 혹시 마음의 병을 얻지 않으실까 걱정이 돼서 굉장히 노심초사하고 있고요. ◇ 김현정> 누워 계세요? 한동안 앓고 누워 계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 펜션 운영자 가족>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고향을 떠났을 때는 정말 큰 결단을 하고 수십 년 사셨던 터전을 떠나서 새로운 일을 제2의 인생을 사셨던 거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생겨버려서 마치 뭔가 인생이 마지막에 가서 망가진 것 같기도 하고 실패한 것 같기도 하고. TV만 틀면 뉴스가 쏟아져 나오니까 그 기억들을 계속 복기를 시켜주는 과정들이 정말 뭐 저도 이렇게 오랫동안 1면을 장식한 뉴스를 처음 봤을 정도로 사실 이게 굉장히 시끄러운 뉴스였잖아요. 그래서 심리 치료를 하러 다니셨고요. ◇ 김현정> 심리 치료까지.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 이 사건에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인 셈이에요.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이 벌어진 장소의 주인이라든지 목격자라든지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피해가 가는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문제인데 이런 피해자가 또 등장하네요. 그럼 고유정 측의 접촉은 전혀 없었어요, 변호사 통해서라도?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없었습니다. ◇ 김현정> 그럼 고유정 측에서 먼저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든지 이런 것도 전혀 없었고요?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럼요. 그런 일은 없었고요. 피의자 고유정이 범행 사흘 전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흉기 등을 구매하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참 말씀 듣고 보니까 어디다가 ‘우리 피해 당했어요. 이런 인생이 망가지는 피해를 당했습니다’라고 하소연할 데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그야말로 그냥 속으로 속앓이 피멍이 드는 거네요. 이번 고유정 사건의 숨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유정이 머무르고 살인을 저지른 그 펜션의 운영자 가족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고유정의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하고 있는데요. 뭐냐 하면 사건 당일에 펜션 주인, 부모님이시죠. 펜션 주인과 고유정이 통화한 내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어요. 고유정하고 그날 밤에 직접 통화하신 건 아버님, 어머님 중에 누구세요? ◆ 펜션 운영자 가족> 아버님이시고요. ◇ 김현정> 아버님. 왜 통화를 하게 되셨죠?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러니까 저희 운영 시스템이 손님과 대면을 하지 않고 입실하고 퇴실하는 방식이거든요. ◇ 김현정> 무인 펜션이라고 하나요, 그런 걸? ◆ 펜션 운영자 가족>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출입문에 도어락을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고요. 입실했다고 전화를 주시면 저희가 안내를 해 드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날 입실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가 계속 오지 않아서요. 전화를 몇 차례 했었는데 계속 받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저녁 늦게 처음 통화가 됐는데요. ◇ 김현정> 그 저녁 늦게가 몇 시쯤으로 기억하세요? ◆ 펜션 운영자 가족> 9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밤 9시가 되어서야 통화가 됐는데. ◆ 펜션 운영자 가족>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잠깐 뭐 하고 있으니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 김현정> 지금 그 시각이 이제 와서 보니 범행 직후 시각인 것으로 지금 검찰이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에 통화가 되신 거예요.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런데 전화를 금방 줄 것처럼 하고 끊었는데요. 전화가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버님 입장에서는 더 늦기 전에 안내를 하고 밤이 늦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 10시경에 아버님께서 다시 전화를 한번 했습니다. 아이가 전화를 받았고요. 그리고 고유정이 전화를 다시 받아서 저희가 안내를 쭉 해 드렸고요. 펜션 이용 방법이나 보일러는 어디서 켜는지. 전화를 그날 다 하고 끊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특이한 점이 하나도 없었고요. ◇ 김현정> 목소리도 그냥 태연하고 밝았대요? 어떤 식으로 기억하세요? ◆ 펜션 운영자 가족> 아버님께서 지나고 나서 말씀하시는데 전혀 그럴 목소리가 아니었고요. 그리고 퇴실하는 월요일에는 아침에 고유정한테 전화가 왔어요. 혹시 늦게 나가면 언제까지 나가면 되는지를 물어왔어요. ◇ 김현정> 그때도 역시 목소리는 평범했나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평범했고요.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12시 안에는 그래도 퇴실해 주셔야 한다. 이렇게 안내를 했고요. 그리고 시간이 돼도 퇴실을 안 하셔서 아버님이 12시가 다 돼서 펜션으로 가셨고요. ◇ 김현정> 직접 가셨어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퇴실하는 고유정하고 마침 마주쳤고요. ◇ 김현정> 그때 모습은 어떻게 기억하세요?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펜션 운영자 가족> 혼자 있어서, 혼자서 큰 짐들을 나르고 있어서 아버님이 큰 짐을 좀 도와줄까 하는 마음에 ‘남편은 없냐?’고 그러니까 고유정이 먼저 아이랑 갔다고 얘기를 했고요. 고유정이 처음 예약 전화를 할 때 제가 아버님 옆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님이 연세가 있으시니까 전화가 오면 보통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세요, 전화를 좀 멀리 두시고. 그런데 그날 특이했던 점은 고유정이 저희 아버님한테 주인이 정말로 와보지 않냐고를 몇 차례 확인을 했어요. ◇ 김현정> 중요한 포인트네요. 진짜로 주인이 펜션에 와보지 않냐. 들르지 않냐고 몇 번 확인을 했어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왜냐하면 저희가 기존에 안내도 되어 있고 주인과 마주치지 않는 시스템입니다라고 이런 광고가 이미 여러 번 돼 있는데요. ◇ 김현정> 돼 있는데도 또 묻던가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물어서 사건이 생겼다고 경찰한테 저희가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먼저 그 전화 통화를 특정을 했습니다. 그 사람인 것 같다고. ◇ 김현정> 그러니까 경찰이 살인 사건 이런 게 일어났다, 그 펜션에서. 이 얘기를 듣자마자 그 여성이 떠오르셨어요. ◆ 펜션 운영자 가족> 왜냐하면 그거 물었던 손님 아니냐고를 떠올릴 정도로 좀 특이한 통화였고요. ◇ 김현정> 그렇군요, 아버님이 찾아가셨을 때 이제 나가야 될 퇴실 시간이 됐는데도 퇴실하지 않아서 찾아가셨을 때 짐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 짐이 지금 생각해 보면 사체가 담긴 봉투였던...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러니까 아버님이 생각하기에 여자 혼자 큰 짐을 나르고 있으니까 비도 오고 해서 차까지라도 옮겨드리려고 들어드리려고 하니까 만지지 말라고 그때 고유정 말이 제가 좀 예민하고 그러니까 짐에 손 안 댔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 김현정> 짐이 사실 무거우면 도와주겠다고 하면 고맙습니다 해야 될 텐데 제가 예민하니까 만지지 말아라.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리고 이제 아버님은 펜션 내부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서요. 평상시처럼 청소를 하셨고 그날 오후에 바로 다른 손님들이 오셔서 지금 지나고 나서 굉장히 그분들한테 죄송한 일이 됐지만 그분들도 아무 일도 있었는지 모르고 3박 4일 동안 다녀가셨고요. ◇ 김현정> 지금 듣고 보니까 정말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행위라고 보기에는 아주 미심쩍은 점이 이 펜션 주인 노부부와의 통화에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증언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여튼 선생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예요. 그야말로 숨은 피해자. 어디다가 하소연할 수도 없었던 숨은 피해자인데 꼭 지금 우리 청취자들께 오늘이 첫 언론 인터뷰시죠..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청취자들께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러니까 사건 초기에요. 펜션 주인이 현장을 말끔히 치웠다, 비밀로. 이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 김현정>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임의로 훼손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그런데 그렇지 않고요. 고유정이 일단 첫 번째 청소를 하고 간 상태에서 저희가 말씀드렸다시피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서 손님을 받을 정도로 깨끗한 상태였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이게 정말 사건이 된 후에 그걸 저희 임의대로 청소를 한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 김현정> 말이 안 되죠. ◆ 펜션 운영자 가족> 저희가 다 경찰의 통제를 받았고요. 경찰이 청소를 해도 된다는 사인을 받고 저희가 청소를 했고요. ◇ 김현정> 그 부분을 바로잡고 싶으신 거군요. ◆ 펜션 운영자 가족> 네. 그리고 저희를 또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방송사에서 특히 자료 화면을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정말 그런 모자이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희미한 모자이크들을 했고요.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하는데 사실 그 펜션 업장을 특정해 주는 게 무슨 알 권리였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아직도. ◇ 김현정> 그런 부분에 있어서 피해가 극심했고. ◆ 펜션 운영자 가족> 그리고 아버님이 세 달 사이에 전화번호를 두 번이나 바꾸셨어요. ◇ 김현정> 왜요? ◆ 펜션 운영자 가족> 기자분들한테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요. 그 부분에 굉장히 시달리셨고요. 그리고 제가 한번은 전화가 왔던 기자님한테 ‘혹시 저희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보셨죠?’ 그러니까 이분이 솔직하게 답하시더라고요. ‘그런 생각 못해봤습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했던 표현이요. 고유정이 안타깝게 전남편을 죽였다고 그러면 저희도 똑같이 말라죽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 김현정> 말라죽고 있다. 우리는 말라죽고 있다. 얼른 좀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르시고 몸과 마음 다 추스르시고 예전처럼 살아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또 정당한 피해 보상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펜션 운영자 가족>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유정 사건의 숨은 피해자네요. 이번 사건을 푸는 데 중요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펜션 운영자 가족, 그 아들을 만나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라이트하우스] ‘현타’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 욕망의 여정으로 보는 원초적 공포 ※ 영화 <라이트하우스>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공포영화에서 공포는 주로 ‘어떻게’ 오는가. 우선 어제와 다른 오늘, 익숙한 시공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괴물 또는 괴이한 무언가가 스며들겠지. 가족과 친구들, 주인공의 미래가 그것들에 갉아 먹혀갈 때 공포영화는 그 상황과 괴물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을 터. 이때 공포감의 운동성은 ‘칼’의 움직임과 닮았다. 평온의 막을 베고 침투해서는 난도질, 그러다 훅, 관객의 영역까지 찌르는 모양새. 물론 이 물리적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들은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라이트하우스>(2019)도 그중 하나. 이 영화에는 침입, 침투, 그 무엇이든 쳐들어와 헤집는 운동성이 없다. 일상과 비일상 간 대조도, 공포의 제작 및 전달자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국내외 영화 소개 페이지들은 이 작품을 ‘호러’로 분류 중. 실제로 제법 무시무시하다. 공포 전달용 일반 회로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무섭다는 말, 이 공포감의 정체는 뭘까? # 욕망과 욕망의 오디세이아 흑백으로 촬영된 <라이트하우스>는 20세기 초반의 두 등대지기, ‘고참’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와 ‘신참’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에 관한 이야기다. 에프라임은 등대 불빛을 교대로 관리하길 바라지만 토마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 채 불빛을 독차지한다. 두 남자, 억누름과 밀어올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영화 중간의 짧은 숏 하나, 거꾸로 보이는 등대가 화면이 뒤집히면서 바로 선다. 이를테면 발기하는 페니스. 실제로 로버트 에거스는 여기다 진짜 페니스를 찍어 붙이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한다. 다시 ‘두’, ‘남자’임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라이트하우스>는 발기된 두 개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 ‘침입’보다는 서로 간 ‘경합’이 어울릴 듯하다. 욕망은 둘인데 탐할 수 있는 실체적 대상, 즉 등대 불빛은 하나인 상황. 영화는 주로 욕구불만인 에프라임의 의식 흐름을 좇는다. 훔쳐보기는 수순일까. 그는 등대 불빛 칸에서 토마스가 인어인지 거대 촉수인지 모를 무언가와 ‘교미’ 비슷한 것을 하는 걸 보고, 자신을 대입시키고, 분출하고, 분노한다. 이런 식이다. 단, 경험 없는 상상은 결핍을 키우기 마련. 욕망은 끝내 해소돼야 한다. 어떻게? 나를 가로막는 토마스를 없애서라도. 애초에 이럴 운명이기는 했다. 이 등대섬은 그러라고 장만된 무대 같다. 폭풍우는 멈출 기미가 없으며 교대팀의 배는 오지 않는다. 고립은, 공간 감각은 물론 시간 경과에 대한 인식마저 도려낸다. 며칠 혹은 몇 주가 흘렀는지 시간적 배경을 그들도 관객도 모를 지경. 게다가 각자 과거의 고백과 의심이 뒤섞여 두 사람의 정체성마저 뭉개졌다. 에프라임의 ‘욕구 불만족’과 토마스의 ‘수호 의지’만이, 이 우주를 통틀어 남은 유이한 키워드인 것 같다. ‘이때 토마스는 누구인가?’ 토마스는 해독 불가한 모종의 구전 신화를 읊는 등 무언가에 홀린 듯하면서도, 일이 느리고 게으르다며 에프라임을 구박하고 말대꾸 시 급여를 안 주겠노라 협박까지 한다. 원시성과 현실성을 두루 갖춘 억압. 말은 안 통하는데 위협은 실재적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폭압적 부모, 스승, 선배, 상사, 또는 그 비슷한 무엇들. 안타깝게도 이 토마스‘들’은 특정한 마법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우리,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그렇듯. 두 욕망의 역학관계상 나중 것에 의한 전복은 필연이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프라임은 마침내 등대 불빛을 오롯이 향유한다. 결과는? 그는 불빛을 보며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으로 산화하듯 절규하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아마도 죽겠지. 불빛의 정체와 그 순간의 감정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죽음’, 언제나 참 결자해지의 의지일까.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여기다 최종 숏을 붙임으로써 이 등대 치정극의 ‘장르’는 규정 지어준다. 바로 눈 하나를 잃은 알몸의 에프라임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죽어 가면, 갈매기가 그의 내장을 뜯어먹는 숏. 이때의 에프라임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한테 전해줬다가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와 노골적으로 닮았다. 이를테면 ‘신화’로 박제된 ‘소멸’의 엔딩. 왜? 에프라임이 욕망했기 때문에. 오르가즘은 태생적으로 증발하는 것 아니던가. 거 ‘현타’ 한번 오지다. 한걸음 더. 욕망의 카테고리 중 가장 큰 것은 ‘숨’의 지속, 즉 생(生)에의 의지다. 이렇게 보면 증발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요 기다리는 건 죽음이 된다. 선점자인 토마스도, 후발주자인 에프라임도 모두 죽었다. 쾌락이든 목숨이든 일단 점유한 자들은 길게 머무를 수 없다. <라이트하우스>에서 공포란, 곧 소멸할 쾌락을 좇도록 디자인된 우리의 방향성,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셈이다. 이 정도로 근원적인 공포감이 기존 호러영화들의 운동성을 짜잔, 두르기란 어렵다. 보다 날-공포인 만큼 그 성질에 대한 힌트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날것, 태초… 그렇게 인류의 출현부터 먼 미래까지를 ‘꿰어’버린 영화로 가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 걸작 SF를 꺼내든 건 이 영화에 인류사를 유인원 시절부터 촉발시켜온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색이 입혀지기 전부터 우리 생을 운용했을, 절대적 배후 같은 물질. ‘증발’과 ‘소멸’, ‘죽음’ 따위의 <라이트하우스>적 공포는 바로 이 영험한 유물에 새겨진 지침처럼 존재한다. 애초에 운동성을 띨 필요가 없었던 것. 가라사대, 침투하지 않아도 그저 기다리면 인간들이 도착하리니. ← 공포계에 짜라투스트라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위)<라이트하우스>의 최종 숏 / (아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 이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로버트 에거스는 장편 데뷔작 <더 위치>(2016)에서 마녀를 공포감의 근원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모종의 출구로 다뤘다. 무서운 건 모든 걸 왜곡하는 렌즈, 즉 인식 불능에 빠진 ‘맹신’의 시대였다. 그리고 <라이트하우스>에서는 비율 1.19:1의 흑백 프레임에다 ‘소멸론’을 인류의 기원신화인 양 보존해놨다. 말로 옮기자면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정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욕망하고 살아가는 우리 앞에, ‘현타’와 ‘죽음’보다 선명한 미래가 또 있을까?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영국 화가의 눈으로 본 그때 그 조선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이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아래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출처
[S1E1] 괴물의 모습을 엿보다 | 킬링필드
나치의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우리나라 제주의 4.3 사건까지, 대학살은 역사 속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 ‘왜 대학살은 반복되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대학살이 일어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있곘죠. 그래서 첫번째 에피소드 ‘괴물의 모습을 엿보다’에선 캄보디아의 가슴 아픈 현대역사, 크메르 루즈 독재 정권시대를 살펴보면서 이 기간 동안 일어났던 대학살 통해 괴물로 변한 인간의 모습을 엿보고자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학살 킬링필드. 2017년 여름, 저는 킬링필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뚜얼 슬랭 박물관"과 "청아익 대량 학살센터"를 방문했어요. 그 당시의 아픔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곳에는 고문 기구, 고문 사진, 교실을 개조해서 만든 감옥 등 생생한 증거들과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천천히 그 당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더듬어가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어요. 그리고 많은 질문이 들었습니다. "왜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었지? 그리고 왜 대학살은 역사에서 계속 되풀이되는가? 대학살의 원인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대학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꼭 이 캄보디아의 슬픔을 그리고 제 생각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시리즈 "왜 대학살이 반복되는가" 여러분과 함께 참혹한 역사를 통해 깊은 고찰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