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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TikTok)으로 배우는 일본어...하하, 이거 재밌네 ^&^

<재팬올이 ‘경제 일본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연재를 하는 이는 도쿄에 거주하는 일본인 고야나기 노부미치(39)씨입니다.

일본 명문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고야나기씨는 미국 유학 후, 현재는 글로벌 외국계 은행 웰스파고 도쿄 지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고야나기씨는 직업상 경제 뉴스를 자주 접하고, 관련 글을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그런 고야나기씨가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일본 경제 뉴스를 골라 일본어로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한마디로 ‘경제 기사로 배우는 일본어 코너’입니다.

고아냐기씨는 “‘경제 일본어’는 경제 정보 전달 측면도 있지만, 일본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표현 능력을 키워주는 좋은 교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연재 글은 한국어 문장(현지 한국인이 감수) 뒤에 일본어 표현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경제 일본어’는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고야나기씨는 일본 젊은 층에 인기있는 틱톡(TikTok) 현상을 두 번째 이야기로 선택했습니다.>

동영상 앱 틱톡(TikTok)이 일본 젊은층 사이에 인기다(若年層に人気だ). 틱톡은 음악에 맞춰(音楽に合わせて) 립싱크하는 모습 등을 ‘셀카’해 (口パクする様子などを自撮りし) 15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을 제작, 공유하는 앱이다. 동작에 맞춰 특수 효과를 붙이는 등 편집을 손쉽게 할 수 있다(特殊効果をつけるなどの編集が手軽にできる).

틱톡은 중국 미디어 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가 제공하는 앱 서비스로, 일본엔 2017년 여름에 진출해(日本には2017年夏に 参入し), 폭발적인 붐을 이루고 있다(爆発的なブームになっている). 아직 2년 반 남짓(余り). 그런데도 젊은이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인기가 확대된 것은 잘 아는 그대로(ご存知の通り)다... japanoll(재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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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브랜드 네이밍’이야기/ 자동차(도요타)
도요타(TOYOTA)자동차도 혼다차와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차는 사정이 좀 다르다. 창업 초기, 브랜드명이 도요타(TOYOTA:トヨタ)가 아닌 도요다(TOYODA:トヨダ)였다는 걸 알고 있는가? 창업 가문의 성(豊田)은 도요다(トヨダ, とよだ)라고 읽는다. 창업의 토대를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とよだ さきち)와 실질적 창업주인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とよだ きいちろう)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 가문의 성을 따서 도요다(トヨダ)라고 했다. 영문명도 TOYODA가 됐다. 창업 당시인 1935년 7월 TOYODA로 상표등록을 했다. 1년 뒤인 1936년 도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엔 알파벳 TOYODA 엠블럼이 장착됐다. 하지만 미국 수출을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TOYODA 발음이 문제였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는 외국인이 영어 회사명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TOYOTA(トヨタ)로 바꾸도록 지시했다.(아사히신문 특별 취재반 저 ‘도요타시 1번지’) 도요타 사사(社史)에 따르면, TOYODA(トヨダ)에서 TOYOTA(トヨタ)로 바꾼 다른 이유 3가지가 더 있다. ①‘상업,미술적으로 봐서 촉음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쾌하고, 말의 음색(소리의 울림)도 좋다(商業美術的に見て、濁点を付けないほうが、さわやかであり、言葉の調子(音の響き)も良い)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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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자동차의 1대 창업주 스즈키 미치로.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 ... <김재현 기자> (이어지는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왕세자 저격 미수 사건과 방탄차
1990년 11월 12일, 도쿄의 궁성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퍼레이드식이 펼쳐졌다. 검정색 오픈카를 탄 일왕 부부는 길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퍼레이드에 사용됐던 오픈카는 그해 영국에서 4000만 엔에 구입한 롤스로이스 코니쉬 차종이었다. 3년 뒤인 1993년 6월 9일,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도 이 오픈카가 사용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내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가을에 역시 즉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롤스로이스 오픈카가 동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입한지 28년 동안 단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 차는 연식이 오래돼 현재 주행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국산차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굳혔다. 현재 외국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왕실의 공식 의전차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다. 즉위 퍼레이드에 사용되는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갖는다. 일본 전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이 퍼레이드용 오픈카로 도요타에 특별 주문을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의 차종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 1대: ‘영일 동맹’ 맺은 영국의 다임러 차종 선택 과거 일본 왕실에서 사용했던 차종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변해왔다. 왕실의 전용 의전차를 ‘어료차’(御料車: 일본어로는 고료샤)라고 한다. 왕실 전용차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大正) 일왕 때부터다. 당시 국가 원수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유럽에 조사단이 파견됐다. 다임러, 벤츠, 피아트 등 회사를 방문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영국의 다임러(독일 다임러와는 별개)였다. 다임러가 선정된 것은 당시 일본과 영국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동아시아 이권을 나눠 갖기 위해 체결한 조약)을 맺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12년 다이쇼 일왕 즉위식엔 다임러 란도레(Landaulet)라는 차가 사용됐다. 당시 영국 왕실도 다임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같은 모델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 차가 일본 왕실의 ‘1대 의전차’다. █ 2대: 왕세자 암살 미수에서 롤스로이스 유리창 뚫려 ‘2대 의전차’가 도입된 건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 차종 2대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롤스 로이스를 수입한 2년 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도라노몬’(虎ノ門) 사건이다. ... (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이재우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록그룹 '퀸'과 1975년 4월 17일의 일본
1975년 4월 17일 하네다 공항 대소동 환영 인파에 놀라..."다른 행성 온 것 같다" 1975년 4월 17일 오후 무렵.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전례 없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이윽고 오후 6시가 되자, 호놀룰루를 경유한 JAL061 편이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았다. 트랩을 내려오는 주인공은 데뷔 3년차인 영국 출신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이었다. 섬 나라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멤버들이나, 이들을 맞은 팬들이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더 프레디 머큐리 등 멤버들은 일순간 동양의 작은 소녀들에게 포위당했고,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Harold May)는 당시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브라이언이 행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적외선 천문학자(Infrared astronomer)였다. 잠시, 브라이언 메이 얘기다.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라는 책에서 “제아무리 황당무계한 꿈에서라도 브라이언 같은 적외선 천문학자가 기타를 집어들고 로큰롤 가수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썼다. 천문학 잡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는 ‘브라이언 메이, 과학과 음악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러분은 그를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지만, 브라이언은 천문학 박사이기도 하다”(You know him best as guitarist, singer, and songwriter from the rock group Queen, but Brian May is also a Ph.D. astronomer”고 전했다. 일본에 도착한 퀸이 공연을 펼친 곳은 선배 그룹 비틀즈가 섰던 부도칸(武道館)이었다. 공항에 이어 공연장 소동도 변함없었다. 통곡하며 실신하는 여성이 속출했고, 팬들은 밀치고 넘어지며 스테이지까지 몰려들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공연을 잠시 중단하고 “모두 침착하자”고 호소했다. 비틀즈 이후 최대의 소동이었다. 퀸의 공연은 2주간 전국에서 열렸다. 퀸은 이후 다섯 차례 더 일본을 방문했고, 마지막 공연을 한 곳은 1985년 5월 15일 오사카성 홀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6년 전이다. 여섯 차례의 일본 공연은 그만큼 퀸이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퀸은 이처럼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였다. J-팝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팝음악 잡지 ‘MUSIC LIFE’는 당시 인기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룹 퀸은 ᐅ1975~1978년 1위 ᐅ1979년 2위 ᐅ1980~1982년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1년 11월 24일은 퀸의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전하고 24시간 후 사망(당시 45세)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지 4년 뒤 발표됐다. 일본의 열성팬들은 2015년, 퀸의 일본 도착 40년을 기념해 4월 17일을 ‘퀸의 날’(The Queen Day)로 정했다. 일본에서 이런 소동을 벌였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극장가에서도 히트 행진 중이다. 신드롬, 팬텀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평론가 스지 스즈키(スージー鈴木)씨는 “헤이세이 최후의 겨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기억될 것"(平成最後の冬は、映画『ボヘミアン・ラプソディ』とともに記憶されるだろう。)이라고 했다. (일본은 내년 헤이세이 연호가 바뀐다) ‘Love Of My Life’, ‘I Want To Break Free’, ‘Spread Your Wing’ 같은 퀸의 노래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도 저물어간다. '에~오~ 에~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도쿄증시 2부로 떨어진 ‘도시바 구하기’
... “2부 시장에서 1부 시장 승격 기준 완화” “도쿄증권거래소가 내년 2부 시장에서 1부 시장으로의 승격 기준을 완화할 전망”이라고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가 12월 3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거액 손실로 인한 자본 잠식 탓에 2부로 강등된 도시바(東芝)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도시바는 2006년 야심차게 미국 원자력업체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원전 부진의 여파로 경영난에 빠지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채무 초과에 빠진 도시바는 결국 2017년 8월, 도쿄증권거래소 2부 강등이라는 치욕을 맛봤다. 도시바, 2017년 도쿄증시 2부 강등 치욕 도요타자동차를 필두로 약 2000종목이 상장된 1부 증시와 달리, 2부는 시가총액 규모가 적고 유동성도 부족한 중소형주 약 500종목이 상장돼 있다. 2부의 시총 규모는 도쿄증시 전체(1부와 2부, 신흥기업이 중심인 자스닥과 마더스로 구성)에서 1.5%에 불과하다. 도요게이자이는 “1부 상장 지위를 잃은 도시바가 2부에서 ‘영원한 시총 톱’이라는 야유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5년 동안 유가보고서 허위 기재 없어야 복귀 도쿄증권거래소의 현행 규칙에는 2부에서 1부로 복귀하려면 '감사법인의 적정 의견'이 붙은 유가증권보고서 5년치가 필요하다. 5년 동안 허위 기재가 없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이 제안됐다는 것이다. 완화 논의가 나온 것은 10월 23일 금융청 금융심의회의 ‘시장구조전문그룹 4차 회의’라고 한다. 만약 완화 조치가 실현되면, 도시바는 이미 2018년 3분기와 2019년 3월기의 유가증권보고서에서 감사 법인으로부터 적정 의견을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1부 복귀의 길이 열리게 된다. 도시바가 가장 먼저 기준 완화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도요게이자이는 “경제산업성의 제안에 재무성도 이의가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도쿄증권거래소 ‘낙하산’ 횡행하는 자리 도쿄증권거래소가 일본 정부의 입김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많은 것은 ‘낙하산’이 횡행하는 전력 때문이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수장은 과거 일본은행 총재나 재무부 고위 관료들이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13년 도쿄증권거래소와 오사카증권거래소가 합병, ‘일본거래소그룹’이 출범했을 때 ‘이사회 의장’이라는 직책이 신설됐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이가 재무성 차관 출신인 하야기 마사카즈(林 正和)였다. 이런 점을 우려하면서 도요게이자이는 “회계 부정과 분식 회계가 드러나도 상장 폐지되지 않고, 게다가 단 5년 만에 1부로 복귀시킨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도덕을 추궁당하게 될 것”이라며 “그것을 용인하는 아베 정권도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100년 이상 일본 노포기업 3만 5018개(최신판)
... “1458개 기업이 새롭게 100주년 진입” 흔히 100년 이상된 가게나 기업을 노포(老舗)라고 부른다. 100년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전통과 자존심을 의미한다. 일류 명문대를 졸업한 자녀가 부모의 노포에 둥지를 트는 일이 흔한 게 일본이다. 이런 일본에서는 노포기업이 몇 개나 될까. 때마침 도쿄상공리서치가 2020년 최신판 노포기업을 발표했다. 도쿄상공리서치가 12월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창업 100주년을 맞는 일본 노포기업은 이토요카도(유통), 킨테츠 백화점 등 1458개사로 조사됐다. 도쿄상공리서치는 “2020년 새롭게 창업 100주년을 맞는 1458개사가 정식으로 노포기업에 진입, 2020년의 노포기업수는 3만 5018개가 된다”(新たに2020年に創業100年を迎える企業の1,458社が晴れて老舗企業の仲間入りし、2020年の老舗企業数は計3万5,018社になる)고 했다. 2020년에 창업 200주년, 300주년, 400주년을 맞는 대표적인 노포기업과 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20년 창업한 직물회사 이부키(伊吹, 교토), 불단 제조업체 에이라쿠야(永楽屋, 시가현) 등 15곳이 업력(業歴) 200년에 올라섰다. △직물업체 야시로니(矢代仁, 교토)와 사찰의 지붕공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코지마고무덴(児島工務店, 오카아먀현) 등 4곳은 창업 300주년을 맞았다. △화과자점 토라야혼포(虎屋本舗, 히로시마현)는 유일하게 창업 400주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찰 건축업체 곤고구미 ‘업력 1443년’ 최고 100년 단위를 넘어 ‘업력 1000년’이 넘는 노포기업도 상당수 있다. △가장 오래된 노포로는 사찰 건축을 전문적으로 하는 곤고구미(金剛組, 오사카부)가 있다. 578년에 창업, 2020년 업력 1443년을 맞는다. △그 다음으로 587년에 창업한 꽃꽂이법인 이케노보카도카이(池坊華道会, 교토)가 업력 1434년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어서 705년에 설립된 니시야마온천(西山温泉)의 게이운칸(慶雲館, 야마나시현)이 업력 1316년으로 3위에 올라있다. 717년 창업한 료칸 고만(古まん,효고현)도 업력 1304년을 자랑한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