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hyung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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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광고?

좀 논란이 되고 있는 광고입니다.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인권단체에서 한 광고라는데..글쎄요..
좀 길어요~4분32초짜리 ..
관심있는 분들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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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말았는데... 생화학급 무기를 생산하고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부분은 넓게 해석해서 옳지않은 부분 이지만, 분단국가에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은... 나라가 위험해지고 내 가족 지인들이 외세로 부터 곤경에 처했을때 이무런 준비도 하지않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행동을 뿐입니다 정말 강하다라는 것은 나와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에 준비를 한 자에 것입니다 자주국방을 위한 군입대 제도를 무시 하는건 비양심적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남을 때리기 위한게 아니라 나와 내 소중한 사람을 보호하기위한 분단국가에서 의무가 병역 의무 입니다
권리는 의무와 책임을 다했을때 누릴 수 있는것
인권이 우선인가? 국가수호를 위한 병역의무가 우선인가? 설마 저딴 쓰레기광고 만드는데 내 세금이 들어간건 아니겠지? 만일 그렇다면 이런건 세금낭비 명목으로 신고해야 한다
병역거부자들은 외국인 취급해라 국민의 의무를 거부하면 더이상 이나라의 국민이아니다 종교? 국가가없으면 종교도없다 뭔 사이비 종교가 국가를부정하냐 그것들은 더이상 국민으로 대우받지못해야한다 병역을 잘이행하는대다수의 우리국민들은 무슨 호구냐
자기나라 역사도 모르고 인간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심지어 인간의 힘에 대한 논리마저 부족하다. 당장 90년대 연평해전부터 최근의 포격도발까지. 우리는 북한을 정치, 군사적 주적으로 상정하고 살아왔고 실제로 8-90년대에 최루탄 가스 맡아본 사람도 적지않다. 그런데 세상을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으면 우리가 휴전국가인것을 모르고있고 심지어 나라를 되찾은지 아직 백년도 되지않았는데 그 역사마저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서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제 이익들을 챙기고자한다. 무엇이 의무이고 내가 느끼고 있어야할 책임까지 이 광고에선 다 내다버렸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참상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있고 그곳의 생활상이나 불문율따위 이야기해봤다 1도 이해가 안가겠지. 최루탄 판매를 막았다? 당장 최루탄만 막으면 그들이 피해가 없나?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안팔아도 상관없다. 돈과 이권만 주어지면 권력자에게 가져다줄 애들은 줄을섰을테니. 생각이 있다면 차라리 국경없는 의사회를 후원하고 기부해서 그들이 직접 흘리는 피를 닦아주고 질병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겠다. 전쟁없는 세상? 인류의 역사가 곧 전쟁이고 생족의 기록이 곧 전쟁이다. 인류사에 전쟁없는 기간이 얼마나 되나? 이름만 거창할뿐 내가 보기에 저 단체는 그저 어설픈 동정을 가진이들의 주머니를 탐하고 정작 중요한 일을 해결도 못하면서 허울좋은 명분에 권력을 취해보고자하는 이권단체로밖에 보이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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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8.15 광복절
1933년 히틀러 독일 수상 됨 1939년 히틀러 전쟁 시작 유럽권과 러시아까지 정복 1941년 12월 8일 독일 권력이 우세하다 판단하여 독일편에 서서 일본이 진주만에 있는 미군 해군기지를 폭격 이로인해 미국이 전쟁에 참가 하게 되면서 유럽연합국(영국,프랑스) 힘을 얻기 시작 당시 독일 편인 이탈리아 공격 1945년 4월 연합군이 독일 베를린 점령 그 후 히틀러 자살 1945년 7월 17일 베를린 근처 포츠담 궁전 미.영.소 세나라 모여 선언문 만듬 곧 일본 항복 대비 어떻게 마무리 할지에 대한 논의 그.자리 미육군장관 스티븐이 영국 수상 처칠에게 쪽지를.건내.줌 ' 어린 아기 만족스럽게 태어나다 ' 어린 아기는 원자폭탄이다 이로 부터 20일 뒤 일본 히로시마 또 3일 뒤 나가사키 그.후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이어서 대한민국의 이전 역사를 알아야한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사망하여 급작스럽게 임진왜란이 끝나버렸다.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정유재란을 포함하여 임진왜란이라.한다. 7년간의.긴.전쟁으로 국력은 쇄약해졌고 인구.감소와 수많은.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일부는 포루투칼 상인들로 인해 유럽 노예로 팔려갔다고 한다. 문화재가 불타고 소실 되며 여러 중요문화재(활자, 서적, 도자기,그림)를.일본에서 약탈해갔다. 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과 적당히 교류하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부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통교할 것을 여러 차례 청해 왔다. 이에 조선은 승려 유정(사명대사)을 일본에 보내 조선인 포로들을 데려온 뒤에 다시 국교를 맺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 사신이 서울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동래에 있는 왜관에서만 일을 보고 돌아가게 했다. 한편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은 간혹 사절단(통신사)을 일본에 파견하였는데, 19세기 초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어 우리의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해 주었다. {번외.개인적 얘기 사절단(통신사)은 현재 .매년 쓰시마와 부산에서 행사로 진행 되고 있다. 3년 전 크리스마스를 쓰시마에서 보냈었다. 여행 중 쓰시마에 살고있는 우메노상과 친구가 되며 사절단에 대해 듣고 관심 갖게 되어 역사자료를 찾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3차 침입을 염두해.두어야했다 왜냐하면 도요토미 사망으로 급작스레 끝나버린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 사이에도 많은 역사적인.일들은 있었을것이다. 그리고 1900년대 초반 일본이 농업화에서 공업화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조선.빼앗기가 시작 된거 같다. 1900년대 초 일본의 모델링은 영국이다 영국이 공업화가 시작 되면서 부족한 인력 부분을 식민지에서 수급했다. 그걸 본 일본은 1차 농업 산업을 감당할 식민지가 필요했다. 이것이 조선이 낙점 된 이유 중 하나 같다. 그리하여 일본이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얻어 러.일 전쟁을 하였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거부하던 고종을 무시하고 친일파 5인이 외교권을 팔아 을사조약을.강제.체결 하였다. 그.시대에선 어떤.선택이.옳을꺼라는 판단을 할.수.있을때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고 되찾는게 살아가는 이유였을 것이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대한 제국 외교권을 뺏기고 일본의 통치 하에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 내가.살고 있는 시대에선 상상할 수 없다 열사,의사 분들 외 그 시기를 살아 온 모두가.나라를.찾겠다고 무엇이든 했을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의 이토 저격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그리고 35년간의.일제.강점기 길고 구슬픈 시간이 흐르고 1945년 8월 15일 광복 했다
모든 것은 전쟁이 아니지만 전쟁 아닌 것도 없다...
진화하는 자연환경 속에서 수렵채집의 자연적인 생활방식을 진화시키면서 살아가던 인간들도 싸움을 했을까? 싸움은 수백만 년에 걸친 선택 압력이 빚어낸 그들 특유의 적응 양상에 내재한 한 측면이었을까? 달리 말해서 그들이 걸어간 진화의 길이 전쟁을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싸움은 나중에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야 등장한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 가까운 친족 사이의 긴장과 경쟁은 흔한 일이다. 그들 사이에 폭력은 매우 엄격하게 금지되는데, 진화론적으로 그런 폭력은 그 자신에게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진화적 전망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면 근연 친족 내에 적대감이 커질 수도 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그런 경우와 관련된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경쟁 금지를 둘 다 보여준다. 가족 내 폭력(대부분 부부 간의 폭력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심지어 치명적인 폭력은 모든 사회에서 일어난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아무리 내부 긴장이나 경쟁의식이 있더라도 특히 다른 씨족 성원들과의 다툼이나 분쟁이 생기면 씨족 성원들은 서로를 지원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치명적인 공격 사건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 그렇다면 어째서 당시 도시들은 좀처럼 정복당하지 않았을까? 밀집 방진으로 싸웠던 중장보병들은 정면 전투를 수용하고 견디어낸 독특한 용맹성으로 마땅히 찬양받는다. 그러나 평평한 평원에서 조건이 대등할 때는 그렇게 싸웠지만, 주변보다 높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적군을 상대할 때는 공격을 피했다. 대등하지 않은 순전한 시가전은 더욱 피했던 것이 분명하다. (...) 싸움의 잠재적 이익이 사람들을 싸우도록 유인한 것 못지않게 싸움의 잠재적 위험과 손실은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싸우지 않도록 억지했다. 그 결과 싸움은 상충하는 두 가지 감정적 메커니즘(싸움 스위치를 켜는 메커니즘과 끄는 메커니즘)이라는 면에서 인간의 가장 양극화된 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개인과 집단에 닥치기 십상이었던 죽음과 신체 절단, 물질적 손실, 곤궁은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 공포, 비애, 고뇌, 무기력, 절망을 초래했다. 압승을 거둔 곳에서는 거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역사에서 결정적 승리는 예사가 아니라 예외였다. (...) 근대의 전쟁들은 (인구와 부 대비) 사상자와 물리적 파괴의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도,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실은 근대적인 구분)을 허물고 배후의 민간인을 노출시켰다는 점에서도, 인력 동원 수준이 높았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하지 않았다. 양차 대전은 주로 GNP에서 군사비 비율의 현저한 증가와 높은 동원율을 결합했다는 의미에서 유일무이하게 ‘총력적’이었다. 그렇게 늘어난 군사비는 대부분 군사적 하드웨어를 산업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데 투입되었다. (...) 핵무기의 도래는 역사의 전환점을 나타낸다.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든 아니든 핵보유국 간의 무제한전쟁은 쌍방의 자살 시도가 되었다. 그렇긴 해도 핵무기의 귀결인 분쟁의 자제는 군비 경쟁, 억지, 공포의 균형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은밀하고 간접적인 저강도 무력 분쟁이 발생할 여지는 남아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풍족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에 어떤 식으로든 폭력 분쟁이 발생하는 사태는 핵무기가 있든 없든 사실상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 국가들의 관계에서는 전면전의 억지력에 토대를 두는 ‘소극적 평화’보다, 공동 이익과 서로 공유하는 반전 규범에 뿌리박은 ‘적극적’ 평화가 우세하다. 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 중에서 . . . 북티셰의 책방에서는 저자특강, 힐링오디오북, 노안책방을 준비하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팟빵에서 '북티셰'를 검색하시거나 podbbang.com/ch/14621 를 클릭하세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18권의 책 그 2번째, 북티셰의 책 처방은 '마음약국'에서 합니다. podbbang.com/ch/13908 를 클릭하세요. 북티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