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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이후에 성공한 15명의 사람들

☆40세 이후에 성공한 15명의 사람들☆

1.끈기로 성공한 사람들 

[하비토먼]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당신에 꿈에 집중하라.
그 어떤것도 당신의 정신을 흩뜨리게 하지 말라. 

[할랜드 샌드스]
최선의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멈추어서는 안된다.
일을 멈추면 인간은 늙기 전에 녹슬어 버린다. 

[알랫스 해일리]
당신이 근근이 잡고 있던 것에서 과감히 손을 놓고 뛰어내리라.그리고 죽을힘을 다하라. 

[모건프리먼]
너는 포기해서는 안되는 인간이다.
진정 프로가 되려면 당신이 어떤 위치에서 
일을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당신이 원하것을 해내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2.비전을 추구한 사람들 

[샘월튼]
다른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당신의 아이디어를 믿어라.
당신의 능력을 고수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기꺼이 시도해 본다. 

[주다조지]
일이 잘못될때도 그걸 기회로 봤다.
모든 부정정인 사고를 거부해라.
그리고 단지 일에 대한 신념을 갖고 
끝까지 매달려 일에 몰두하라. 

[핸리포드]
스무살이건 여든 살이건 
배우기를 멈추는 사람은 늙은 사람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건 
마음속의 젊을을 유지하는 것이다. 


3.꿈을쫓는 사람들 

[조지포먼]
마흔이라는 나이가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반드시 인생의 챔피언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만류했던 
45세 나이에 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다시 되었다. 

[케이티 오슬린]
마흔이라는 나이가 결코 짐을 쌀 나이가 아니다.
나는 45세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컨트리 뮤직 가수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4.기회를 거머진 사람들 

[킹 캠프 질레트]
때때로 최상의 아이디어들은 가장 단순한 것 들이다.
48세에 일회용 면도기 아이디어를 떠올려 
질레트 면도기를 개발해 최대의 회사를 만들었다 

[마가렛 러드킨]
인생은 마흔부터이다.
40세에 아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빵이 
미 전역에 지점을 둔 유기농 제과점 
'페파리지 팜'의 주인이 되었다. 


5.패배를 극복한 사람들 

[에이브러함 링컨]
성공하리라는 결심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나는 수많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51세의 나이에 드디어 1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존글렌]
실패가 당신을 깔아뭉개게 하지 마라.
그래야 당신이 실패를 깔아뭉갤수 있다.
목표를 정했으면 악착같은 자석이 되라. 


6.내면의 길을 따른 사람들 

[마더존스]
마음속에서 옳은일을 한다고 확신한다면 
그순간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41세의 미앙인이었던 그때가 나의
미국 노동운동의 위대한 초석이 되었다. 

[테레사 수녀]
마음 깊은 곳의 기쁨은 인생에서 
걸어야할 길을 가르키는 자석과 같다.
기적은 우리가 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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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에 1남 3녀가 있는데, 이젠 다 독립했죠. 아내랑 둘이 남아 적적함을 달래려고 데려온 게 이 복숑이에요. 종이 비숑인데, 복을 가져다줄 비숑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복숑이라고 지었어요. 뭐랄까. 제가 바쁜 탓에 아이들에게 시간을 많이 못 쏟았어요. 아쉬움이 많았죠. 더 신경쓰지 못 해준게 마음에 걸리고요. 이제는 저도 은퇴했고, 할 일이 없으니 제 모든 관심과 사랑을 복숑이에게 줄 수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못 해준 걸 복숑이에게 다 해주자는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밖에 데리고 나오면 사람들이 어찌나 쳐다보고 와서 이뻐해주는지. 그럴 때면 제가 다 뿌듯해요. 게다가 어찌나 착한지 말썽을 피는 일도 거의 없어요. 보시다시피 얌전히 짖지도 않고... 이름대로 복을 가져다주고 있어요. ” “I have one son and three daughters; they’ve all moved out on their own now. It’s just me and my wife left, and we were feeling lonely so we got Bokshon. She’s a Bichon, but we named her Bokshon so that she can be a Bichon that brings us bok*. I wasn’t able to spend much time with my kids because I was busy. I have a lot of regrets. And feel like I should have been more attentive. These days, I’ve retired, and don’t have anything to do so I can give all my time and love to Bokshon. I at least want to give Bokshon what I couldn’t give to my kids. When we come out like this, people always stare and say how pretty she is. Those moments make me proud. Besides, she’s so sweet that she never causes any trouble. You can see that she behaves well and doesn’t bark. Just like her name, she’s bringing good fortune.” *Bok is a word for luck. “(오른쪽) 한 번 얘가 다친 적이 있는데, 엉엉 울면서 병원으로 안고 달려갔어요. 어머니가 그런 저를 보고 그게 자식 키우는 마음이라고...너희 키울 때 나도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그냥, 자식같아요. ” “(Right) One time when he got hurt, I gathered him up in my arms and carried him whimpering all the way to the hospital. When my mom saw me doing that, she said, ‘That’s what it feels like to bring up kids… I was like that too when I raised you guys.’ He really is, just like a child to me.” “(왼쪽) 언니랑 2년전에 교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마음이 잘 맞아서 가깝게 지내요.” “서로에게 서운한 일은 없었어요?” “(오른쪽) 다른 질문 해주세요. 아쉬운 일은 굳이 떠올릴 필요 없잖아요!” (Left) “I first met this unni* two years ago, at church. We’re close because we really clicked with one another.” “There’s no instance of you hurting each other’s feelings?” (Right) ”Please ask a different question. There’s no need to bring up what’s passed!” *The term ‘unni’ in Korean can mean both one’s literal sister or a peer-age, but older woman. “남편이 바람나서 여자하고 어디 가버린 다음에는 내가 전적으로 애들 셋을 키웠지. 나는 이혼한 거 후회 없어. 결혼생활이 ‘인형의 집’ 같다고 생각했거든. 맨날 집에서 남편 기다리다가 남편 술 먹고 들어오면 뒤치다꺼리하고. 난 살림이 너무 재미없었어. 내가 기가 좀 세. 남편은 이혼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하자고 했거든. 혼자 키울 자신이 있었으니까. 아주 그냥 굳세게, 야물게 살았지. 근데 IMF 들이닥치니까 여지없이 생활이 확 뒤집히면서 돈이 다 날아간 거야. 뭘 해도 돈 까먹고 되는 게 없었어. 그래서 내 친구 하나를 꼬셔서 ‘비행기값 대줄 테니까 나 좀 미국에 데려다 달라’고 그랬어. 그렇게 미국 워싱턴에 가서 베이비시터를 했는데 그 집이 워싱턴에 뷔페가 12군데 있고 종업원이 한 200명 되는 아주 부유한 집이었어. 근데 내가 뭐 베이비시터 일을 할 줄 알아야지. 처음 딱 그 집에 가서 생각한 게, 다른 것보다 아이를 잘 돌보는 게 제일 중요하겠구나 싶었어. 걔가 6살짜리인데 카드를 좋아해. 그래서 카드를 가져가서 설명해주고 그걸로 놀아주고 등에도 태워주고 그렇게 3일 동안 걔한테 정성을 다했지. 그랬더니 오는 아줌마마다 싫어하고 등 돌리던 차가운 애가 3일 만에 ‘엄마, 나 저 할머니 너무 좋아.’ 이러는 거야. 그래서 일은 못 해도 사람은 좋아 보이니까 나를 고용한 거야. 그렇게 2년간 미국 생활을 잘 누렸지. 한국에서 애들 키우면서 아등바등하다가 미국 갔는데, 오히려 그게 나한테는 찬스였어. 살판났었지.” [1/2] “After my husband cheated and ran off with another woman, I raised our three kids entirely on my own. I don’t regret getting divorced, because married life reminded me of a ‘doll house’. Every day I’d wait for my husband at home while he was out drinking, and then clean up after him once he got home. I really didn’t like house chores. I’m a bit headstrong. My husband didn’t want to get a divorce, but I insisted because I was confident I could raise our kids on my own. I lived really diligently, putting in my all. But as the financial crisis approached, my life undoubtedly turned upside down and I lost all my money. I couldn’t do anything without money. So I convinced a friend to take me to the U.S. by covering their flight ticket. That’s how I became a babysitter in Washington. I worked for a really wealthy family that owned twelve buffets in Washington and employed about two hundred workers. But how would I know what to do as a babysitter? My first thought after going to that house was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would be to look after the kid well. The kid I was watching was six years old and liked to play cards. So I gave him my all for three days straight, bringing cards with me and teaching him how to play, even giving him piggyback rides. After those three days, the unfriendly little boy who hated all of his previous babysitters told his mom, 'I really like that grandma.' Even though I didn't know how to be a babysitter, I got hired because they thought I was a good person. That’s how I came to enjoy two years of life in the U.S. I went to the U.S. while I was struggling to raise my kids in Korea, and that ended up being an opportunity for me. I hit the jackpot.” 출처. HUMANS OF SEOUL 너무 좋은 콘텐츠.. 늘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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