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enarin
10,000+ Views

나는 게이다 : 7. 커밍아웃 스토리


요즘엔 확실이 예전에 비해 이쪽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나아졌다.
내가 체감할 수 있을만큼 정말 많이 좋아졌다.
물론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첫 커밍아웃.
고3 수능이 끝난 시점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여사친에게 고백했다.
약속을 잡은 시점부터 말해겠노라 다짐하고 발걸음을 나섰지만, 생각대로 입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파인트인지 쿼터였는지 싱글이었는지 먹었던 아이스크림 종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긴장되던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하려던 말을 잊은건 아니지만 입밖으로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른 이야기만 하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던 무렵,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갈라지기 직전에 이야기했다.
"나 게이야."
심장이 터질듯하면서도 발화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저 말을 툭 던지고 빠르게 이동했지만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야기를 듣고 미소짓던 친구.
문자로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친구.
덕분에 학교생활도 재미있게 즐겁게했지만 앞으로도 더 가깝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지금도 연락 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주변 친구 20명정도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모두 잘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거르고 거르고 차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에 말할 수 있게 해준 친구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내 주변에도 호모포비아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며 그런 친구들에게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남달랐던 경험이 있다.
바로 친 형에게 말한 것.
형과 나는 1살 차이로 유일한 형제로 남들이 그러하듯 어릴때부터 많이 싸웠다.
하지만 형이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대화가 엄청 줄어버렸고 사이가 좀 멀어졌다.
이상한건지 당연한건지 형이 군대를 가면서부터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말수도 늘고 장난도 치고, 또 형이라고 무언가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 상태가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다.
드물게 같은 버스를 타면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아는척 하지 말라고 장난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26살 가을 어느날,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저녁에 둘이 같이 술먹자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형이 무언가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왜 술을 먹자고 하는걸까?'
살면서 형이 먼저 같이 술 먹자고 한 것이 애초에 처음이었으니까 별 생각 다 하게 되었다.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알아버린건지.
많은 생각을 품고 긴장하면서 컬투치킨으로 갔다.
형이 먼저와 앉아 있었고, 여기 맛있다며 미리 시켜놨다고 했다.
나의 첫마디는 왜 갑자기 술먹자고 한거냐고. 이러는거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였다.
형이 대답하길 그도 이런 적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처음으로 같이 마셔보고 싶었다는게 전부였다.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했다.
형은 모르지만 아빠엄마 그리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해주면 진짜냐고 충격도 받고..ㅋㅋ
(원래 형이 아빠엄마랑 대화가 많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하고, 나는 갑자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다보니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들은 어릴때부터 니네 형제는 여자 안만나냐고 둘이 무슨 게이형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는 얼마전에 이런저런 사유로 만나기 시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지만 난 이미 헤어진 것을 알고는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세지보면 답이 나오므로..
형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맞아."
형이 놀란 눈으로 "뭐?"  했다가 한 번 더 "뭐??"
그랬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지금은 내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애매하지만 남자 좋아한다"고.
형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어쨌거나 형제니까 날 때리거나 상종을 안한다거나 자리를 뜨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봤다.
형은 "타이밍 좋게 잘 말했네." 라고 말했고ㅠ우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형도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유해지고 생각이 넓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만 아빠 엄마에게는 당장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친가족 중에 비밀을 터놓고나니 정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고 전보다 편해졌다.
아마 적지 않은 이쪽 사람들의 작지 않은 고민이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주변에서 잘 받아들이고 잘 지내주어 생각보다 끝내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6 Comments
Suggested
Recent
항상 눈팅하다가 처음 댓글 써봐요! 제가 알지 못하는 여러 편견과 어려움이 많으시겠지만, 잘 이겨내시고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취향이나 성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 그 자체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 응원할게요!
응원 댓글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네요 허허 사람 사는건 다 똑같지요 고마워요
마지막 문장이 끝내주네요.^^
저도 댓글 처음써보는것 같아요. 저도 응원글 남겨요. 나 좋다고 하는 사람만 옆에두세요 나도 모든사람을 다 좋아할순없잖아요^^힘내시고 파이팅입니다 ^^행복하세요
댓글 고마워요. 저도 다 좋아하는게 아니니까 맞는말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저는 예전에 선생님께 커밍아웃을했었는데 ''그래서뭐?'' 라는 대답이어서 약간 놀랬고 눈물도막낫는데 별거아닌걸러 눈물도 흘리냐면서 장난도쳐주셨던 선생님이 기억나네요. 나는 어렵게 말했는데 별거아닌걸로 생각해주셔서 그런건지 약간 섭섭하면서 허탈한느낌도들었지만 시간지나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익숙하셨던것같네요. 커밍아웃을 할필요없는 세상이오면 좋겠어요 ㅎㅎ 글쓴이님 응원합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나는 게이다 : 1. 자각의 순간 그리고 첫사랑
헤테로 섹슈얼 이성애자가 아닌 이상 다양한 퀴어들은 살아가면서 문득, 혹은 갑자기, 혹은 천천히 스며들 듯이 어떤 고민과 생각에 마주하게 된다. ‘내가 게이일까?’ ‘나 레즈인가?’ 등등 나는 게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나에게만 맞출 수 있다. 나는 어느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천천히 그런 생각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이름도 마음도 이쁜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았지만 결국 친구로서의 감정이 끝이었고 여차저차 헤어지고나서는 단 한 번도 이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교제). 하지만 매번 매년 새로운 학년 새 학기마다 좋아하게 된 친구를 마음에 품었다. 모두 남자였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특별한 사랑을 하는구나.’ 굉장히 긍정적으로 나를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정말 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 소수자로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갈 생각보다는 그저 특별하다는 생각만 자리잡았다. 나는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남자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모두 남자다. 그래서 난 게이다. 이렇게 정의한 게 전부다. 생각보다 퀴어의 세계는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정정체성과 지향성으로 나눠지지만 나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수자 중에서도 흔한 경우에 속한다. 첫사랑도 그 무렵이었다. 중학교 2학년 92년생이었던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한 학년에 500명 이상에 달했던 거대한 학교였고 그래서인지 진짜 많은 유형의 친구들을 겪었다. 실제로 끝까지 친하게 지낸 친구는 몇 없고..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누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그때는 다들 처음보고 친해지려하고 무리를 만들고 그런 때였고, 신기하게도 여자아이들이 나에게 관심을 많이 줬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당시 여자아이들이 하트모양 쪽지를 주면서 혼자 보라고. 내용은 사귀자는 것이었고 나는 결국 거절하고. 또 연습장에 러브액추얼리처럼 고백문구 적어 넘기며 보여주기도 하고.. 거절하면 장난이었다고 넘겼던 그 친구..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집전화로 전화해서 사귀자고 하던 여자아이. 난 너의 얼굴도 모르는걸...정말 그때 5~6명으로부터 귀여운 구애를 받았지만 나는 정말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튼 다시 첫사랑 이야기로 들어가면.. 중학교 2학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 친구 A는 기억에 많이 남는다. 파충류상(?)이었던 그는 취미로 랩을 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 나에게도 많은 시디를 빌려주었다. <지옥소녀>도 그 친구 덕에 알게 되어 많이 보았지. 각설하고. A는 유독 나에게 친절했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소풍갈 때도 버스 옆자리였고 같이 다녔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수학여행 때에도 마찬가지로 옆자리, 같은 조, 같은 방. 그리고 같이 잤다. 나는 보통 어디 누군가와 놀러가면 일찍 잠자러 가는 편이지만 눈감고 오래 누워있다. 쉽게 잠들지 못해서 그냥 자는 듯이 누워만 있지만 자고 있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A가 내 옆으로 와서 누웠고, 나를 더듬었다. 나는 안 잤지만 자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도 그게 좋았나보다. 내 가슴을 만지고 옷을 헤치고 바지와 속옷에 손을 넣고. 잠깐이었지만 내 손을 A의 것으로 가져다댔다. 그리고 내가 A의 셔츠 단추를 푸는 모양으로 A가 했다가 자신을 포옹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잠시 있다가 A는 떠났다. 그런데 학교로 돌아간 후 소문이 퍼졌다. 내가 A를 겁탈하려했다고. 잠자면서 내가 A의 셔츠 단추를 풀었고 껴안았다고.. 순식간에 나는 친구를 겁탈한 게이소년으로 알려졌다. 그 상황에서 나는 맞다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A가 나한테 그랬다고 나는 먼저 자서 모른다고 말할 뿐이었지만 다행히 소문은 우리 반에서 정리가 되었다. 다만 나와 A는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다. 학교에서도 자리 짝궁자리였는데 불편했다. 내가 아무리 나 스스로를 게이라고 깨달아가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아웃팅을 당하는 게 너무 억울했고 A에게 화가 나면서도 왠지 모르게 나를 부정한다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수업시간이 시작되자마자 A는 내 손을 잡고 책상 밑으로 내렸다. 손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나도 잡고 있고 싶었다. A가 미웠지만 좋아하니까.. 다른 친구들은 보지 못하는 각도와 책상 위치여서 우리 둘만 알았다. 수업시간 45분동안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진짜 내 심장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고 그 날 수업시간에 무슨 내용을 배웠는지 전혀 머리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이 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그런데 또 충격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A가 손을 놓으며 “게이맞네.” 한마디 툭 내던지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 사건은 A가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A랑 사이가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말 멀어졌고 남처럼 지내다가 3학년이 되었다. 첫사랑은 A였고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고 미운 정으로 오래 남아있었다. 우연치않게 A는 성인이 되어서야 연락이 닿았는데 이 부분은 다음에 이야기할게. 당시 A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눈에 안보이면 금방 잊혀지고 새로운 남자 아이가 눈에 들어와서 또 다른 마음을 갖게 되어버렸지 허허
나는 게이다 : 12. 주절 주절 솔로 라이프
이런 경우에는 솔로라는 말보다는 싱글이라는 말이 옳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솔로라는 단어를 다들 많이 사용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싱글라이프가 된 지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났어요. 사실 연애를 할때와 하지 않는 지금, 저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생활패턴에도 큰 변화는 없었고 단지 더 솔직하고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정신적인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아요. 물론 저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크게 의존하거나 제 마음 속에서 매우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도록 하지는 않아서 공허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상황에서, 종종, 가끔씩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결국 혼잣말이 되어버리는게 아쉬울뿐. 어쩌면 함께 있을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정이나 편안함, 전율에 대한 느낌을 잊어버려서, 지금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감>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요 근래에 들어 마음 속 깊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난번에 좋아한다는 내용의 글에 등장한 사람 맞습니다.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냥 좋아하면서 잘해주면서 말없이 부담주기보다는 좋아한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마음대로 좋아하려고요. 딱히 싫다 좋다 그런 반응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내 마음 편하자고 일방향으로 말을 한거지만 덕분에 마음은 많이 편해졌어요. 당장 사귀거나 더 가깝게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어요. 서로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있고, 하는 일이 너무 달라 실제로 당장 만나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이 관계와 마음이 그대로라면 그땐 만나자고 해야겠어요. 지금은 대학원때문에 핑계는 아니지만 정말 시간이...그렇습니다. 자취를 시작한지도 2달이 꼬박 다 되어가는데 정말 별 일이 없어요. 보통 어플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은 그걸 많이 어필하는데 저는 어필할 수가 없어요. <자취> 혹은 <장소유> <장소o> 이런식으로 많이 하는데.. 딱히 집에 모르는 누군가를 들이고 싶지도 않고 장소가 있다한들 ... 제가 없어서요..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당분간은 혼자 살지만 정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 아마 누군가를 이 타이밍에 만나게 된다면 너무 빡셀 것 같아요. 빡셀거에요
집요한 돌고래 관찰...
집요하다 집요해.. 지독한 돌고래 관찰... 카메라들이 다 너무 고퀄ㅋㅋㅋㅋ 나도 돌고래 관찰하게 해줘.. 아프리카 동부 모잠비크의 바다 우리가 돌고래 하면 흔히들 떠오르는 병코 돌고래 가다가 대왕 조개 발견 대왕 조개 안에서 뭐가 나옴... 앵무 조개.... 2마리... 돌고래가 흥미를 느끼는지 유심히 본다 사실 이거 둘 다 카메라임 ㅋㅋㅋㅋㅋ 돌고래를 도촬하기 위한 카메라 앵무 조개 카메라가 보는 시점.jpg 이런 위장 카메라의 장점은 태어나지 몇주 되지않아 엄마 뱃속에 있던 자국이 아직 몸에 그대로 남아있는 작은 새끼 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 어린 새끼 있는 엄마 돌고래는 인간 주변에 웬만해서는 가까이 안가니깐.. 그리고 바닥에는 가오리 1마리... 얘도 카메라.... 바닥에서 병코돌고래를 추노하며 도촬함 그리고 물위에는 거북이 한마리.... 가 아니라 사실 이놈도 카메라.. 거북이 카메라가 보는 시점.jpg 한편 중앙 아메리카 부근의 어느 바다 돌고래 한마리가 보임... 이놈도 사실 카메라 시속 25km의 속도를 낼 수 있음 지금 사진에 보이는 돌고래는 병코 돌고래가 아니라 얼룩 돌고래 얼룩 돌고래는 돌고래 중에서도 유일하게 회전 점프를 즐겨하는 돌고래임 물론 다른 돌고래들이 회전 점프를 안한다는건 아니지만 얘들은 회전 점프가 주된 점프 요런 점프 참 ~ 치 이젠 뭐 말 안해도 알겠지? 이놈도 카메라 입 안의 렌즈로 촬영함 돌고래 카메라가 수면 쪽에서 촬영을 담당한다면 이 가짜 참치 카메라는 수중+돌고래 무리 사이에서 촬영을 함 이런 식으로 무리에 끼여서 촬영 저 돌고래들 얼룩 돌고래임 참치 카메라 시점.jpg 산호초 사이에 오징어가.... 이제 말 안해도 알듯 카메라임 ㅇㅇ 오징어 카메라 시점.jpg 저 물고기는 다 크면 크기2미터에 몸무게 100kg이 넘는다는 감자바리 문제는... 오징어가 주된 먹이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상탈출 해서 다행히 잡아 먹히진 않았음ㅋㅋㅋㅋㅋ ..... 참치 카메라가 밝혀 낸게 뭐냐면 일반적으로는 돌고래는 소규모 무리를 이루고 산다고 알려졌는데 깊은 바다에서는 무리가 모이고 모여서 수백마리들이 뭉쳐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 쟤들은 얼룩 돌고래 한 앵글에 다 못담음 다큐 나레이터 말로는 약 3천마리가 뭉쳤다고 함 촬영 중인 거북이 주변에서 사랑을 나누던 거북이 커플이 있었는데 암컷 거북이가 도중에 거북이 카메라한테 관심을 가짐 몇분 동안 거북이 카메라 주변을 서성이다가 돌아갔다는 후문 !!! 동심파괴 주의 !!! 참고로 꽤 유명한 복어로 환각파티 하는 돌고래선배들 찍은 것도 저 카메라 친구들임. ... 돌고래씨 그렇게 안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ㅊㅊ - todayhumor)
나는 게이다 : 10. 부담스럽게 하지마시오
작년 12월에, 다시 혼자가 된 지 좀 지났을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대학원 입학전부터 미리 들어가서 연구실 생활을 하기도 했고 당장 내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므로 깊은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그저 가끔 만나 밥먹고 이야기하고 카페가고 영화보고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찾고 싶었다.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항상 있지만 의도치 않게 항상 멀어지고 떠나가고 잊혀지므로 다시 혼자라고 느낄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어플을 다시 깔고 친구 탐색에 나섰다. 번개 쪽지는 가볍게 거절하고 인사엔 인사로 답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내 결국 서로의 목적이 다르면 대화는 순식간에 끊긴다. 예전만큼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 이렇게까지 굳이 어렵게 친구를 찾아야할까 의문이 시작될 무렵이면 신기하게 하나 둘은 연락이 이어진다.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게 하나 있다면 한국사람도 좋지만 외국인도 친구로 참 좋더라. 어차피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면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다만 관계가 깊어지면 안된다. 깊은 관계일수록 심도있는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의 경우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연애로까지의 발전은 한국인에 국한되는게 나의 특징(?)이다. 12월 말에 연락하고 지내게 된 사람이 바로 미국인이다. 흑인이기도 하고. 흑인 친구는 처음이라 그저 설레긴 했다. 친구로 지내기에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만큼 어쩌면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한국어도 꽤나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 더 좋았다. 애초에 나는 연애가 목적이 아니었고(연락을 시작한 목적이 처음에 연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연애 관계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친구가 필요했기에 충분했다. 투썸플레이스에서 처음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사람이 보기에 외국인들은 다 똑같다고 느낄때가 많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구분 못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리라. 나도 그를 처음 보았을때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비주얼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느낀바를 말했다. 영화배우같다고. 그냥 평범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분명한 것은 이 사람도 굳이 한국사람이랑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것.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게 너무 좋았다. 진짜 카페에서 3시간 정도 이야기한 듯 했다.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굳이 저녁을 사겠다고.. 아마 그래서 도미노 피자인지 피자헛인지 미스터피자인지 미스터피자 같다. 미스터 피자에서 피자를 10분만에 먹고 나왔다. 나의 버스 막차 시간이 그랬고.. 가게 영업시간이 그랬다. 급하게 먹고 나와서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 뭐랄까 외국인과 작별하는 인사는 포옹이 좋을까 하여 가볍게 포옹하고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날부터 그와의 카톡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톡 빈도가 높아지고 연구실때문에 내가 답장을 못해도 카톡은 쌓이고 이런 질문했다가 내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던져놓고... 엄청난 관심을 받다보니, 더 가까워지기 전에 꺼리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물론 나는 대전에 살고 솔로여서 크리스마스가 큰 의미는 없었고 그 날도 연구실을 가야했고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그와 만났다. 선물을 줬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만드는 것을 좋아하서 뭘 좀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줘서 기쁘긴 했다. 그 후로도 여러번 만나 식사를 함께했고 영화도 봤다. 어느날 갑작스레 나에게 무슨 말을 했다. 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풍기는 느낌과 뉘앙스에서 바로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보다 알았지만 아니길 바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 한국인이랑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는건지..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자꾸 대답을 강요한다. 한국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느끼는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나는 그냥 좋은 친구사이면 좋겠다고. 난 아직 어쨌거나 학생이고, 내가 자리잡을때까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돌아온 답변은 날 더 당황하게 했다. 기다리겠다고, 지금처럼 일단 지내자고.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주는 애정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그만큼 되돌려줄 생각도 없기에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본 적도 없긴하다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난 그저 친구가 필요했고 그 이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날아오는 카카오톡 메세지에 답장을 하기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지고 1차원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그럴수록 그도 섭섭해하리란걸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마음이 균형에 맞지 않을만큼 커져버리면 다른 한 쪽은 당황하게 되고 마음이 붕 떠버린다. 내가 지금 그렇게 떠버린 상태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걸.. 친구로 만난 이 만남은 친구로 지낼때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지만 일방향적으로 은근한 부담이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나도 또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정말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며 만난다는게 얼마아 어려운 일인지,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 만족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다가온다.
나는 게이다 : 16. 새로운 친구 혹은 인연 만들기.
한국에서 게이로 살다보면 중고등학교때처럼 친한 게이 친구 혹은 아는 사람이 절실할 때가 있다. 사람이 아주 많은 서울은 당연히 게이도 많으니까 기회가 더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지방에 사는 나는 아마 상대적으로 기회는 적을 것이다. 기회가 적다고 없지는 않다. 보통 주변에 아는 사람도 적고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을 "은둔"이라고 표현하며, 반대로 아는 사람도 많고 친구도 많고 활동도 많이 하는 사람을 "역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은둔도 아니며 그렇다고 역대도 아니다. 두 가지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뿐, 실제로는 저 두 범주 외의 범위에 속하는 사람이 지배적으로 많을 것이다. 재작년의 나는 은둔에 가까웠다가 친구들을 대폭 늘리면서 활동도 많이 했다. 활동이라는 게, 공개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지역의 이쪽 술집 등에 자주 가면서 이쪽 인맥을 넓히고 놀고 하는 그런 일들을 말한다. 활동을 좀 하긴 했지만 역대는 아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항상 훨씬 더 많았고, 정말 어울리는 사람들만 고정적으로 만나서 놀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바쁘게 살며 이리저리 현실에 치이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급기야 연락하는 사람이 2명 정도로 확 줄어버렸다. 한 명은 전에 교제를 했던 친구가 친구소개해주면서 알게 된 동갑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내가 모임을 만들면서 알게 된 1살 형이다. 동갑친구는 현재 타지에서 장교로 복무중이라 자주 보지는 못한다. 물론 대전에 있다한들 자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1살 형은 예전엔 그래도 종종 만나서 놀았지만 최근들어 나도 형도 너무 바쁘게 되어 정말 카톡도 1-2주에 한 번 할까말까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날은 어색한 것 전혀 없는 재미있고 좋은 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시 자주 연락하고 가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발전 가능성을 열어둔 사람도 만나고 싶었다. 애초에 연인으로 발전할 사람을 찾는 것은 물론 아니며,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기만 한다면 어떠하리. 예비군. 6년차 훈련이 있었다. 처음으로 핸드폰을 내지 않았다. 아니 웬일로 훈런소에서 핸드폰 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분대장들에게 가방을 주며 알아서 수거하라고 했기 때문에 내지 않았다. 훈련 중 쉬는 시간에 어플을 살짝 들여다봤는데 2명(?) 정도 근거리에 있었다. 일단 퇴소 전에 연락하면 당황할까봐 끝나고 하기로 했다.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어플을 다시 들어가서 오랜만에 소개 문구도 바꾸고 프로필 사진도 여러장 업로드했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사람들 중 한 명(J)에게 쪽지했다. 프로필에 써놓은 말을 읽었을때 - 당연히 일부분이고 모든게 사실이 아닐수도 있지만 - 그게 상대라고 가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프로필을 읽고 대화가 하고 싶으면 쪽지를 가끔 먼저 하는 편이다. "안녕하세요" 부터 "오늘 예비군 훈련 받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며 대화가 오갔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성이 느껴졌다. 서로 친분을 구한다는 프로필을 가졌고 실제로도 그러한 대화가 오갔다. 성심성의껏 답장하고 질문하고, 질문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이야기나 본인이 가진 사고와 성격, 성향(성관계의 성향 말고)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오갔다. 그래서 J와 만날 날짜를 잡았다. 대화를 시작한 지 며칠만에 잡은 날짜였지만 생각보다 서로 스케줄이 안맞아서 거의 2주뒤의 날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떠한 날 저녁즈음에 서로 시간이 맞아서 일정을 살짝 조정하여 미리 만나버렸다. 처음에는 존댓말로 서로 존칭을 하고, 그럼에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도서관 앞에서 만나 함께 걸어가며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며, 카페로 향했다. 파티션이 있어 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카페였고, 역시 이 곳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끼워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랑 비슷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만났던 친구의 어떤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예전에 만났던 친구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 만이 가지는 독특한 모습은 아니지만 너무 강렬했던 탓에 생각이 나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잊고 이 앞에 있는 사람, J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진지한 이야기 솔직한 대화, 예의가 사라지지 않은 대화. 첫만남에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건 아마 나의 특성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과거에 비해 성격이 변하고, 또 많은 일을 겪다보니 처음에 누굴 만나더라도 3시간, 4시간 상대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 시간을 상대가 좋은 시간이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카페에서 J가 먼저 물었다. 존대하는 게 편한지 반말로 하는 게 편한지. 결국 서로 반말하기로 합의보았고 바로 말을 놨다. 사실 J는 나보다 1살 많은 형이라서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J도 자기보다 나이가 8살 어린 동생과도 말놓고 야야 하며 지낼 정도로 나이차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어서 서로 말 놓는게 나은 것 같았다. 길게 보았을때, 계속 연락하고 지낸다면 언젠가 당연히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어있을테니 그 시기를 당겼다고 생각하자. 카페에서 2시간정도 이야기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먹으면서도 이야기를 했고, 저녁먹고나서 소화시킬 겸 오래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만에 너무 편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만난 J도 오늘 좋은 시간이었다고, 내가 이야기를 많이 이끌어가서 대화 참 많이 했다고 했다. 나는 J가 하는 말을 듣기전까지 내가 대화를 리드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랬나보다. 산책도 끝이 날 무렵 J가 물었다. "우리 번호 교환할래?" 살짝 당황했다. 나에게 먼저 번호교환하자고 묻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고 J가 생각보다 크게 말해서 놀래버렸다. 나의 반응을 본 J는 서둘러 말을 바꿔 "오늘 당장이 너무 빠르면 다음에 만나서 번호 교환할까?" 다시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오늘." "오 늘" "지 금"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하듯이 오늘 해야한다는 의지를 내비췄고 형도 당황했지만 좋았다. 바로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조심히 가라는 카톡을 남기자마자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이렇게 전화를 빨리 건 사람은 또 처음이었지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냥 집가는 길 심심하지 말라고 전화했다고 한다. 나는 집이 가까워서 금방 도착했고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J. 내가 첫눈에 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첫눈에 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나는 J를 적어도 친구로서 놓치고 싶지 않다. 이번에 어플 프로필과 사진을 수정하고나서 처음에는 이전과 똑같이 연락이 오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일주일 새에 거의 2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쪽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대부분이 역시 쪽지 한 두번 오가고 연락을 접거나.. 사진 공개 후 나를 차단하거나ㅜ.. 유일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 건 J다. 어플로 대화를 하지는 않고 전화나 카톡으로. 새로운 사람을 알게되고 친해지는 과정은 정말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분명히 쉬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실화)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7
안녕하세요! 금요일인데 오전에 일 후딱 끝내놓고 몰래 빙글에 들어온 optimic입니다! 어제 글을 올렸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하나 둘씩 글을 올리니까 정말정말 재밌네요!! 물론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 오늘은 제가 어언 8개월.... 전까지 쓰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왔습니다.ㅠㅠ 한참 전의 글들인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댓글로 다음 편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너무 죄송하고 행복했습니당.. 앞으로는 최대한 자주 올려볼게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너무 늦게 와서 제가 그 동안 써왔던 이야기들 링크를 가져왔어요! 제 이야기를 처음 보시거나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으신 분들은 다시 한 번 읽어주시면...감사...드리겠습니당...ㅠㅠ -------------------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1 https://www.vingle.net/posts/251882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2 https://www.vingle.net/posts/2521220 베개 밑의 식칼 1 https://www.vingle.net/posts/2521746 베개 밑의 식칼 2 https://www.vingle.net/posts/252178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3 https://www.vingle.net/posts/252332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4 https://www.vingle.net/posts/2541350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5 https://www.vingle.net/posts/2544908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6 https://www.vingle.net/posts/2569956 내가 신을 믿게 된 이유 https://www.vingle.net/posts/2592522 아 그리고! 제가 저번 '내가 신을 믿게 된 이유'에서 뵈었던 스님이 주셨던 염주 사진도 가져왔어요! 저희 아버지 차에서 찍은 사진입니당. 지금은 많이 손을 타서 조금 매끈해져있지만,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은은하게 향나무 냄새가 나는 신기한 염주에요. 실제로 저희 아버지도 "이 염주 덕분에 내가 안 다치는거다" 라고 말 하실 정도로... 아무튼 긴 시간을 지나서 7편 시작하겠습니당! ----------------- 얼마나 지났을까.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멈추고, 나는 눈을 떴다. 얼마나 힘을 주고 눈을 감고 있었는지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고, 눈 앞에 다 타서 하얀 가루로만 남아있는 향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려고 바닥에 손을 짚자 따끔한 느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바닥엔 선명한 네 개의 손톱자국이 나 있었고, 내 손톱은 피범벅이 되어 붉게 번져 있었다. 입술도 다 터져버려서 입 안에 감도는 비릿한 맛을 느끼며, 나는 온 몸이 땀에 젖은 채 일어나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조금 놀란 듯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윽고 죽비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너... 혹시 누구한테 원한 샀냐? 온 몸이 저릿저릿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과, 입 안에 퍼지는 피 맛을 느끼며, 나는 서서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선생님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아뇨... 원한은 무슨... 나름대로 누구한테 피해주지 않고 살았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너 '여자' 한테 원한 살만한 짓을 했냐? -...여자요? -니한테 붙어있는 걔. 보통 원한이 아니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네... -어지간한 한이 아니라, 원한이 사무쳐서 너 하나만 보고 있다. 너 죽이고 싶다고. -헐... -여자를 울렸다거나, 상처를 줬다거나, 그 여자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짓을 했다거나... 사고쳤다거나... 중요한 거니까 그냥 솔직히 말해라. -...전혀요?? 진짜 전혀 없었다. 남중, 남고를 나와서 대학생이 된 이후로 몰려다니면서 술 마시기 바빴던 나날들이었는데, 여자랑 관계될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과에 친한 여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막차타고 비틀거리면서 집에 가는 날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지나가면서 실수로라도 그런 적이 있나 생각을 해 봐도, 전혀 없습니다... -흠... 그러면...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나는 조용히 앉아 고요한 눈으로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없이 앉은 선생님 맞은편에서 조용히 식어버린 차를 홀짝일 뿐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때면, 왠지 모를 갈증이 느껴지고 불안하곤 했다. 이윽고 선생님이 시선을 거두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이쯤 하자. 일어나서 집으로 가라.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죽비와 목탁을 정리하시면서 내게 등을 돌린 채 이야기하셨다. -너. 집에서 첫째지? 밑에 남동생 하나 있고. -네. 맞습니다. -곧바로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물어봐라. 누나 있냐고. -네? 네... 아리송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때가 되어 어머니와 둘이 저녁을 먹을 때.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혹시 내 위에 누나 있어? -어?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슬픔을 담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캐묻기도 뭐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식탁을 짓눌렀지만, 한 번 더 물어봤다. -오늘 선생님께 다녀왔는데, 선생님이 물어보라던데? 나 누나 있냐고. 어머니께서는 잠시 멈칫하시더니,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야기하셨다. -있었어. 니 위에 누나. -응? 있었다고? 어머니의 입에서,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결혼하시고 난 후, 첫 아이를 가졌다고 하셨다. 첫 아이기에 정말 금이야 옥이야 하며 태교를 하셨고, 점점 불러오는 어머니의 배를 보며 두 분은 너무나도 행복해 하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예쁜 아이라며 분홍색 옷을 준비하라고까지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사고로 인해 아이가 세상의 빛을 못 보고 유산되었고, 슬픔에 잠긴 부모님께서 슬픔을 딛고 우리를 낳으셨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딸을 간절히 원하시고, 여자아이들을 유독 예뻐하시고, 조카딸들을 그렇게 잘 챙겨주시는 이유도 그 때 이해가 됐다. 빛을 못 보고 하늘나라로 간 딸. 나의 누나 때문이었다. 길고도 슬픈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 이전에 태어나 우리 형제와 함께 행복을 누렸어야 할. 얼굴도 모르는 누나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음 주. 나는 선생님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전했다. -그랬구만... 빛을 못 보고 가버려서 원한을 가졌구나... -뭔가 좀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러나 선생님의 반응은 측은함을 가진 나와는 달랐다. -너 뭔가 잘못 생각하는데, 니 누나는 니가 죽길 바라는 거 같다.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너를 괴롭히겠냐. 한을 풀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를 서서히 말려죽이고 있는데. 차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 선생님은, 이내 말을 이어가셨다. -어린 애의 마음이다. 질투와 원한으로 너한테 집착하는거야. 니가 받은 사랑. 친구, 생활이 모두 자기 거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다 누린 너한테 어마어마하게 원한을 품고 있어. -마음 독하게 먹어라. -네... 나는 전보다 뭔가 더 슬프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들이켰다.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염불을 외우고, 죽비로 어깨를 맞아가면서 엄청난 고통을 견딘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내 누나였던, 그러나 지금은 나를 괴롭히는 '그것'에 대해 에서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그렇게 매 주 선생님과 퇴마의식을 진행하며, 점점 머릿속에서 들리던 이상한 소리가 잦아들 무렵, 서서히 고통스러운 감각들도 사라져 가고, 평온한 나날들이 반복될 무렵. 어느 날 저녁. 나는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아마 다음 편이 마지막이 될 거 같아요! 기억을 더듬어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혹시라도 제 글들을 정주행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 (우리는 항상 너를 부른다) 마지막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정성을 다해 쓴 글들이에요! 재밌게 읽어주시고, 다른 편들도 읽어주시면 정말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쓴 군대 이야기들도 재밌으니까, 읽어봐 주세요 헤헤... 좋아요 댓글은 언제나 사랑합니당!
예쁜 문장들을 손글씨로 써보자 ღ'ᴗ'ღ
안녕 여러분!! 빨간날이라 뒹굴뒹굴 심심한건 나뿐인가요? 한글날이라고 하니까 왠지 손글씨가 써보고싶어졌어요 ㅎㅎ 나혼자 쓰고 나혼자 보는건 재미없으니까 같이 하자고 올려봅니당 = 심심하니까 같이 놀자는 뜻 맘에 드는 문장을 손글씨로 써서 보여주세요 ღ˘‿˘ற 글씨 존잘러 펜크래프트님 글씨체에욤 ㅎ 부럽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 어쩌다 내 이름을 불러준 그 목소리를 나는 문득 사랑하였다 - 이남일, 짝사랑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 심보선, 청춘 간구의 첫 번째 사람은 너이고 참회의 첫 번째 이름 또한 너이다 - 나태주, 날마다 기도 아마 그럴지도 몰라 한세상 산다는 건 남몰래 흘린 눈물 자국 지우기 위해 딱 그만큼의 햇볕을 만들어 가는 거 - 손병걸, 새벽비는 그치고 구식이긴 하지만 편지는 역시 연애편지가 제일이다 수동이든 전동이든 편리한 타자기론 한숨이 배지 않아 쓸 수 없는 편지 그래서 꼭 쥔 연필 한자루 - 이형기, 연애편지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전 이형기 작가의 연애편지를 써봤어요 사진은 댓글로! 새삼 오랜만에 글씨를 써보니 손이 떨떠름해 하는군요 아기자기 한글이 있어서 기쁜 오늘입니다 ㅎㅎ 손글씨 자랑 한번 해볼까요? 못써도 돼요 제가 악필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