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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인 오키나와에서 맥주를 만든 이야기...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군(극동군 총사령부)은 오키나와에 ‘류큐열도미국민정부’(琉球列島米国民政府)를 설치해 그곳을 통치했다. 1957년 어느 날, 미군의 민정관(民政官) 보나 F. 버거 준장은 오키나와의 상공회의소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앞으로 오키나와 산업의 기둥은 ‘시멘트’와 ‘맥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ITmedia 비즈니스)

시멘트는 건물이나 도로 등을 건설하는 ‘하드’ 측면, 맥주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주는 ‘소프트’ 측면을 의미했다. 당시 이 강연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한 경영인이 있었다. 구시켄 소세이(具志堅宗精:1896~1979)라는 사람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된장, 간장 회사(具志堅味噌醤油)를 경영하고 있었다.

전후(戰後) 복구 차원의 새 사업을 구상중이던 그는 때마침 버거 준장의 말을 듣고 맥주사업을 실현에 옮겼다. 1957년 5월 구시켄을 필두로,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는 세웠지만 곧바로 맥주를 생산해 낼 수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아열대의 오키나와에서 맥주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오키나와의 수질도 문제였다. 오키나와는 산호초가 융기한 섬이어서 토양이 알칼리성으로, 경수(硬水)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 경수가 맥주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구시켄은 오키나와 각지를 현지 조사한 끝에, 산이 있는 나고(名護) 지역에서 맑은 연수(軟水)를 찾아냈다. 그는 그곳에 공장을 세웠다. 2년에 걸친 수질 조사와 공장 건설을 통해 마침내 회사가 설립됐다.

회사 설립 발기 당시, 사명은 ‘오키나와 기린 맥주 주식회사’였다. 본토 맥주 대기업 기린과 기술 제휴를 도모했던 것. 하지만 협상이 무산되면서 기린이라는 이름을 떼고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가 됐다.

기업 브랜드 네이밍의 경우,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에는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다. 회사는 1957년 11월, 신문에 파격적으로 현상 공모 광고를 냈다. 1등 당선 상금은 83달러 40센트로,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액이었다. (이 돈의 가치를 알고 싶은가. 1958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였다.)

공모 결과, 현민들로부터 2500여 건이 접수됐고 그 중에서 별자리(별 3개) ‘오리온’이라는 이름이 선택됐다. 오리온 맥주 홈페이지에는 당시 선정 이유가 올라와 있다.  “첫째, 오리온은 남쪽 별이라는 점에서 (열도의 남쪽인) 오키나와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둘째, 별은 사람들의 희망과 동경을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3번째 이유가 흥미롭다. “당시 오키나와를 통치하고 있던 미군...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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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청힘든하루네요...ㅎㅎㅎ 어찌나 환자가 많이몰리던지. 다들 고생많으셨어요! ㅎㅎㅎ 그럼 오늘도 시작해볼까요? 어제 많이 피곤했던지 정말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쿠스코 산책이나 가볍게하면서 쉬기로해서 일단은 더 누워있기로한다. 가만히있는데도 너무 배가고프다. 어제 만난 일행들과의 약속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남아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한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식당을 찾아보는데 피자를 파는집이많길래 좀더 찾아보니 쿠스코 피자가 유명하단다. 그럼먹어봐야지. 일단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이곳저곳 기웃기웃거리다보니 쿠시파타 광장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향기로운 피자향기가 우릴 유혹하기에 노천카페로 들어간다. 그리고 피자 2판과 치차 한잔식을 시킨다. 시원한게 맛있다! 옥수수로 만들었다는데 의외로 상큼하다. 피자의 도우랑 치즈가 다르다. 진짜 맛있다. 남미에서 거의 몇안되는 맛있는 식사였다. 우린 이 이후에도 이식당에 3번을 더가서 모든피자를 다먹어봤더랬지... 점심을 먹고 일행 한명과 만나기로 한 스타벅스로 이동한다. 만남의 장소답게 수많은 관광객이 자리를잡고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와이파이를 잡고 일행을 기다린다. 잠시 뒤 만난 우리는 마사지집을 찾으러다닌다. 어제 하도 많이걸어서 다들 다리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그런가 쿠스코에 마사지샵이 많다. 그 중에 깔끔한 곳으로 들어가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슬슬 해가지려한다. 2명의 다른 일행이 있다기에 다같이 만나서 예수상을 보러간다. 우버를 타고가니 금방이다. 그렇게 도착한 크리스토 블랑코 예수상 전망대.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해가 진 쿠스코의 야경은 매우 아름답다. 이 높은 지역에 이정도 도시라니 놀라울따름이다. 오늘은 일행이 새로 생긴날이니 좀 좋은 음식을 먹으러간다.(한그릇에 대력 2만원정도. 트립어드바이져에서 가장 톱랭크 식당으로 가격대는 높은편이지만 맛은 확실했다. 이곳 물가를 생각하면 매우매우 비싼 음식. 페루 볼리비아는 대략 동남아시아 정도의 물가라고 보면 된다. 2명이서 적당한 호텔 하나 예약하는게 2만원정도니 말 다했다. 심지어 2인 1실에 만원대도 상당히많다) 음식이름은 기억나지않는데 분위기도 좋았고 맛은 더욱 훌륭했다. 전통음식이라는데 돈쓴 보람이있다. 비싼 식당이라그런가 우리말고는 대부분 깔끔한 옷을 입고왔다. 우리도 챙겨입고올걸그랬나... 내일은 이제 야간버스를 타고 코파카바나로 이동하는 날이다. 두명은 갈라지기로 했고 마추픽추에서 만난 누나만 같이 다니기로해서 내일 다시 보기로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서울 성수동 블루보틀과 도쿄 롯본기 블루보틀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그 호들갑스런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그 비싼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갔다.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은 노(NO). 주말과 휴일은 피해 평일로 택했다. 애플 신상품을 ‘득템’하기 위해 밤을 새거나 장시간 기다리는 장면은 종종 들었다. 하지만 기껏 커피 한 잔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니었다. 오픈(3일)이후 그런 광경은 내내 벌어졌다. ‘커피계의 애플’. 스페셜커피 블루보틀 매장으로 찾아간 건, 8일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지하철 뚝섬역에 내렸다. 역에서 불과 50미터. 큰 붉은 벽돌 건물보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50여 명이 4겹 줄을 서서 대기 중.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게 없다. 성수동 특유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 천장. 1층에서 대기하고 계단을 통해 지하1층 매장으로 내려갔다. 커피 데스크에 핸드드립기가 6개. 바리스타가 순서대로 즉석에서 ‘핸드드립’ 중. 아메리카노 기본(블렌드)을 주문했다. 5000원. 스타벅스의 숏사이즈(3600원) 톨사이즈(4100원)와 비교하면 꽤 비싼 편. ‘5’자가 주는 부담감도 크다. 평일임에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정확히 9시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다. ‘득템’. 커피 양은 스타벅스 숏사이즈의 절반. 한 눈에 봐도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는 ‘한약’같다고 했다.) 맛을 잠시 음미하는 사이,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커피 취재를 온 잡지매체의 기자란다. 연배 어린 후배기자에게 인터뷰 당하는 영광을 누렸다. 블루보틀 맛에 대한 평가는 짧은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한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스벅마니아’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한 잔씩.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쌉싸름한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으로 치자면,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같은 적절한 산미가 느껴진다.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줄 서는 일만 없다면 다시 찾을 것 같다.” “(‘블루보틀 커피가 유명한 건 왜일까요’라는 질문에) 성수동에 1호점을 낼 것이라는 입소문을 낸 게 오래됐다. 금방 매장을 열 수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커피팬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켰다. 파란 병 로고에는 굳이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파란 병=블루보틀’이라는 인식이 커피 팬들을 줄 세웠다고 본다.” 30분 동안 매장을 지켜본 후 나왔다. 밖엔 여전히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한 시간 뒤. 블루보틀 잔향이 혀에 그때까지 머물렀다. 오전 11시, 혀를 헹구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편집인> (아래는 도쿄에 거주하는 정희선 객원기자의 롯본기 블루보틀 ‘맛 평가기’입니다. )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정희선 객원기자=일본기업 분석 애널리스트>커피 맛은 호불호가 강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에 블루보틀은 더하다. 내 경우, 유학 때문에 몇 년 미국에서 지냈지만 커피를 델리키트하게 느낄 정도의 ‘혀’는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커피 대국’ 일본에 와서 몇 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 혀’는 그대로다. 내 혀보다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을 평가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 친구는 쓴맛과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맛이 너무 강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내 ‘혀’는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블루보틀은 확실히 스타벅스 커피보다 신맛이 강해~” 나만큼 커피 취향이 ‘고급지지 못한’ 내 막내동생은 한 술 더 뜬다. 블루보틀을 마시고 나선 심지어 “한약 먹는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런 ‘한약 같은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오는 한국 커피 마니아들이 많다. 여기서 또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들은 오리지널 블루보틀이 아닌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라떼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당분간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 6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도쿄에 9곳, 교토에 1곳, 고베에 1곳이 있다. 해외진출에 나선 블루보틀이 (한국 제외)오직 일본에만 매장을 낸 이유는 뭘까. 또 유독 도쿄에 몰려있는 건 왜 일까. 일단 ᐅ일본이 ‘커피 대국’이라는 점 ᐅ도쿄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 되어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창업자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다.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맨(James Freeman)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래된 커피 가게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특히 도쿄는 더 그러하다”(I'm very deeply inspired by the old-fashioned coffee shops of Japan, and in Tokyo particularly)고 말한 바 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 뒷 골목에는 아직도 레트로(retro: 복고풍) 느낌이 나는 오래된 커피숍들이 많다. 이들 가게 대부분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방식으로 고객 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제임스 프리맨이 이런 분위기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임스 프리맨은 처음에 어떻게 블루보틀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왜 굳이 블루보틀이란 이름일까. 여기서 커피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683년 유럽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터키군이 빈(비엔나)에 도착했다. 적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인근 폴란드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터키어와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폴란드 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터키군이 물자를 남겨두고 퇴각을 했는데, 그 더미에서 콩 봉지들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낙타의 먹이인줄 알았지만, 아랍에 살던 경험이 있던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는 그게 커피 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원군 요청 포상금으로 그 커피 콩을 매입,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블루보틀’(The Blue Bottle)을 개업했다. 비엔나 커피 문화의 출발이었다. 그 319년 후인 2002년, 클라리넷 연주가 제임스 프리맨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그는 비엔나를 구한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차원에서 가게 이름을 ‘블루보틀’이라고 지었다. 제임스 프리맨은 평소 직접 원두를 구입, 매일매일 로스팅해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블루보틀이 유명하게 된 건, 그가 볶은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커피원두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다. 입소문이 나면서 블루보틀 커피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네슬레가 4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 커피를 흔히 ‘제 3의 물결 커피’ (Third wave coffee)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 1의 물결 커피’(First wave Coffee)는 1990년대 이전의 베이커리에서 빵과 함께 파는 커피, 혹은 개인이 공간을 임대하여 파는 형태를 지칭한다. 커피의 퀄리티에 주목하기 보다는 1~2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하였다. 1990년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제2의 물결 커피’(Second wave coffee) 시장이 열렸다.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퀄리티 높은 커피를 제공했다. 요즘의 가장 흔한 커피 전문점 형태다. 그러다 2010년 이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드디어 ‘제 3의 물결 커피’(Third wave Coffee)가 시작 되었다. 대표적인 가게가 블루보틀(Blue bottle), 필즈 커피(Philz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등 이다. ‘제 3의 물결 커피’의 특징은 스타벅스 보다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며, 차별화된 로스팅 기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다는 것. 대부분의 ‘제 3의 물결 커피’ 전문점들은 1~2분 이내에 커피를 내리기 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니즈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 준다. 핸드드립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맛깔나게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다. 획일화된 커피 맛에 지친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 3의 물결 커피’는 서부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제 3의 물결 커피’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성장보다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 3의 물결 커피’ 중에 해외진출을 한 브랜드는 블루보틀이 유일하다. 이상이 ‘한약 같은 커피’ 블루보틀의 유래와 성장기에 대한 내용이다.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산이 움직였다”...일본 선거 최고의 어록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과반 깨지자 전 사회당 당수 도이 다카코 "산이 움직였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자민당은 중고차" 선거에서는 공약 대결이 중요하지만 공약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선거는 ‘입의 전쟁’에 가깝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열기를 띄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당 선거에서 가장 유명했던 어록 2가지를 살펴봤다. 공교롭게 모두 여성 정치인이 했던 말이다. ᐅ도이 다카코 “산이 움직였다” 때는 1989년 7월. 제15회 참의원 선거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집권 자민당은 소비세를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사회당 위원장을 맡고 있던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는 소비세 추진에 맞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ダメなものはダメ)는 구호를 무기로 내세웠다. 선거는 어떻게 됐을까. 리쿠르트 사건, 우노 소스케 총리의 여성 스캔들 문제가 겹치면서 자민당은 참패, 참의원 과반이 깨졌다. 이런 상황을 두고 도이 다카코는 “산이 움직였다”(山が動いた)는 유명한 말을 했다. 자민당이라는 거대한 산을 밀어내고 정치 분위기를 바꿨다는 의미다. 도이 다카코는 대학(도시샤대학)에서 헌법을 강의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969년 사회당 소속으로 출마해 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그는 ‘평화헌법 수호자’로 살았다. 일본 헌정 사상 첫 중의원 의장을 역임했고, 진보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는 5년 전인 2014년 9월 20일, 폐렴으로 사망(당시 85세)했다. ᐅ고이케 유리코 “자민당은 큰 중고차” 다시 때는 그 4년 뒤인 1992년 7월. 제16회 참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혜성 같은 한 여성 정치 신인이 등장했다. 이름은 고이케 유리코(小池 百合子), 현 도쿄도지사다. 방송 캐스터 출신인 그는 당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가 창당한 일본신당에 합류했다. 그는 선거에 임하면서 자민당을 큰 중고차, 일본신당을 작은 신차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를 바꾸는 데는 큰 중고차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신차 쪽이 좋다”(政治を変えるには大きな中古車を修理するのではなく、小さくても新車の方がいい) 고이케는 또 “낡고 커다란 자민당보다, 작지만 새로운 일본신당이 좋다”(古くてでかい自民党より、小さくても新しい日本新党の方がいい)는 말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그는 의원 배지를 달았을까? 비례구에 출마한 고이케는 국회 진출에 성공했고 이듬 해엔 중의원 선거로 옮겨 당선됐다. 하지만 한 당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 자민당, 도민퍼스트 모임 등 여러 당을 옮겨 다녔다. 그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정치권 철새’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용모를 두고 일부에서는 ‘초록 너구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을 자주 바꾼 음흉한 너구리의 이미지에 처진 눈과 눈 주위의 짙은 화장을 빗대 그렇게 부른다. 초록은 고이케 도지사의 이미지 색상이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26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 전시체제2) 문화선전
비록 전시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영화인들의 저항은 매우 수동적이었으며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거나 위장으로 협력 혹은 식민지 각처로 흩어지는 방식으로 그 시기를 맞았는데 개인적인 예술표현이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힘들었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서구영화와 단절되고 일종의 식민지 지배의 용이함이나 문화선전도구로서 영화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펼치고자 하는 영화세계란 묻혀버려야 했기 때문에 차라리 지식인들 가운데서는 서양의 근대문화에 회의를 느끼느니 일본의 미학적 전통으로 회귀하자는 움직임도 일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의 전시체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게 되는데 일본의 ‘숭고한 정신’이야 말로 이미 퇴보한 유럽문화나 물질문명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 신대륙 미국문화에 비하면 우월하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서양문화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풍토가 아니었고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파리가 점령되었다는 보고는 그들에게도 자극제가 되었다. 이들은 식민지배나 통치야 말로 일본의 숭고한 문화와 정신세계를 전파하고 동화시키면서 퇴락한 유럽문화나 미국문화로부터 동양의 사상을 지켜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심지어 1942년에는 교토의 철학자를 중심으로 ‘근대(近代)의 초극(超克)’심포지엄이 개최되어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이른 시기에 포스트 모더니즘이 논의될 정도였다. 일본이 이러한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게 된 계기는 역사적 유래가 깊다. 섬나라라는 특성상 외부 문화의 유입이 컸던 것이 사실이고, 고대 일본의 경우 주로 한반도와 중국 등에서 수용된 문화와 종교가 일본의 기초를 쌓은 반면 중세시대 이후에는 아무리 통치세력들이 ‘쇄국’을 논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교역과 문화교류의 창구를 열어놓았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외부 문화를 수용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이 적용되었는데 ▲종교를 식민지 침투의 수단으로 삼거나 ▲내정간섭 ▲사상의 전파 같은 것들은 철저하게 제약 받았으며 심지어 개항이나 무역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었다 할지라도 이들을 위해 인공섬(데지마, 出島)을 만들어서라도 비록 외국인들을 철저하게 외부와 격려시켰다. 다만 일본은 종교 같은 서양문명을 거부하는 대신 그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발췌하여 이질적인 것이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른바 ‘이화(異化)’정책을 펼쳐나가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생활양식이나 음식, 물건, 의복 등은 도입하지만 정신세계만큼은 일본의 고유적인 것들을 지켜나가는 전략을 썼다. 그러므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경쟁적으로 일본에 선교와 무역을 병행하려 했을 때에도 예수회의 신부들은 스스로 육식을 거두고 의식주를 일본풍으로 바꾸는가 하면 초라한 복장을 선호하지 않는 일본인의 특징을 받아들여 수도회의 원칙에 어긋나는 실크옷을 입어 사제로서의 품위를 지키기도 했다. 때문에 포교원칙도 ‘일본인에게 순응하는 것’이 최우선일 정도였다. 따라서 일본은 포르투갈로 스페인(이들이 가톨릭을 앞세워 남미를 정복한 사실을 안 후)을 먼저 견제한 후 다시 가톨릭을 탄압하면서 포르투갈인을 국외로 추방 한 후 프로테스탄트인 네덜란드를 통해 포르투갈을 견제하는 한편 교역을 포기하기에 앞서 거래처를 바꾸는 치밀함을 보였다. 심지어 1600년에 네덜란드 판델하밴 회사 소속 선박인 리푸데호가 오이타현(大分県) 우스키(臼杵駅) 북부 지역에 표착하자 당시 집권자인 센고쿠 시대 최후의 승리자이며 에도 막부 시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이 배에 타고 있던 영국인 윌리엄 애덤스(William Adams)를 오사카로 소환한 후 외교고문으로 중용한 후 1609년 네덜란드, 1613년에는 영국과도 통상을 개시하였다. 이를 통해 이에야스는 자신이 일본의 외교권을 가지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네덜란드와 일본을 통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견제했는데 이 때에도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남만인(南蠻人)’, 네덜란드와 영국을 ‘홍모인(紅毛人)’으로 구별하여 불렀다. 이때에도 일본 특유의 동화정책이 시행되어 윌리엄 애덤스는 ‘미우라 안진(三浦按針)’이라는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였고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함께 표착한 네덜란드인과 함께 80톤, 120톤의 유럽식 범선을 설계하여 만드는 한편 네덜란드로 하여금 무역허가를 얻게 하여 히라도(平戶)에 외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인 상관(商館)을 설치했다. 이러한 정책은 메이지 유신이 있기 전까지 막부시대에도 외부와 교역을 통해 쇄국만은 막았고 네덜란드를 통해 얻은 지식은 ‘난학(蘭學)’이라는 학문으로 정립되었다. 이중 의학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서양문명 중에 물건에 잡착하였고 이를 일본화 하는 과정에서 ‘남만’이나 ‘홍모’가 아닌 ‘란(蘭)’이라는 새로운 가치기준을 만들어 서양에서 수입한 사상이나 물건에 대한 일본적 해석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했다. 또한 나가사키는 비즈니스센터의 역할 뿐 아니라 서양의 서적, 의학, 식물학, 물리학, 천문학 등 서양의 첨단 과학기술이 들어오는 창구가 되어 주었다. 따라서 입항하는 네덜란드 선박은 반드시 유럽과 아시아의 최신정보 보고서를 에도막부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였는데 이를 ‘네덜란드 풍설서’라고 불렀다. 다만 쇄국과 기독교 금교령은 유효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지식인들은 ‘나가사키’로 유학을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설탕, 별사탕, 카스텔라, 단팥빵, 카레라이스, 돈가스로 이어지는 서양문화의 수용과 일본화, 오랫동안 육류 섭취를 법으로 금지했었고 이 때문에 ‘소고기’를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던 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이 훗날 식민지 지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또한 중국대륙으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문물을 받아들인 것과 별개로 초기 포르투갈인으로 대표되는 일명 ‘별사탕로드’를 통해서 들여 온 비누, 안경, 유리, 망원경, 카르타, 시계, 인쇄기술, 서양의학, 서양음악, 서양회화와 신대륙에서 발견된 새로운 식물들은 일본에 생활혁명을 가져왔던 것이다. 특히 ‘카르타’의 경우 서양의 트럼프에 해당하는 것인데 화려한 색채의 유럽풍으로 그려진 총 48장의 카드를 일본화 하여 카르타(カルタ)가 만들어졌다. 그 중 4계절과 12개월의 꽃을 정하여 4장씩 만든 카드를 ‘꽃 카르타(花カルタ)’라고 불리게 되고 오늘날 화투(花鬪)가 되어 일본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 서민들의 오락수단이 되었다는 것만 해도 그들의 일본화와 식민지 지배전략이 얼마나 치밀한가를 알 수 있다. 신대륙을 발명한 컬럼버스가 후추라고 생각한 ‘고추’ 나 토마토,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가지, 시금치, 호박을 한반도로 유입시킨 것도 알고 보면 ‘별사탕로드’를 통해 일본에 들여 와 다시 식민지로 전파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가 음식, 의복을 비롯 생활을 바꾸고 서양문화의 수용을 통해 이질적 문화를 일본화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듯이 ‘문화통치’를 통해 식민지배를 하고 이를 통해 토착화 한 사례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랜 기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은 여러 형태로 일본이 그 흔적을 남겼고 대만 등은 기본적으로 이 흔적을 부정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일본은 제목 자체만으로도 전의를 고조시키고 하나의 강령(綱領)인 영화들을 제작하는 한편 식민지 곳곳에 일본영화를 이식시키는 작업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병행되었다. 이 흔적은 오래도록 남아 지금까지 유지 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 LA= 이훈구 작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2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고교야구 고시엔과 오키나와 반환 운동
열도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100년 역사의 ‘여름 고시엔 대회’가 막을 내렸다. 효고(兵庫)현 고시엔(甲子園)구장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경기장의 이름을 따 고시엔 대회라고 불린다. 3~4월 열리는 ‘봄 고시엔’(선발고교야구대회)와 8월에 개최되는 ‘여름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이 있지만, 대개 고시엔하면 여름 대회를 말한다. 고시엔 대회는 효고현 나루오 구장에서 열렸다. 대회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객 수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시엔 구장이 1924년 들어섰다. 10회 대회부터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고시엔 구장은 프로구단인 한신의 홈구장이기도 하다. 고시엔 대회가 열리는 동안은 한신 은 구장을 옮겨 경기를 치른다. 그만큼 고시엔의 인기는 프로 못지않다. 그런 고시엔이 일본 고교 야구선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출전 선수들은 시합에 지면 눈물을 머금으며 고시엔 구장 그라운드의 흙을 담아간다. 그해 여름의 뜨거웠던 고교 청춘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선수들에겐 평생 ‘가보’와도 같은 상징물이다. 그럼, 선수들이 매번 가져가는 흙은 어떻게 보충할까. 또 이 흙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일본 스포츠매체들에 따르면, 선수들이 1년 동안 가지고 가는 양은 약 2톤에 달한다고 한다. 가지고 간 양만큼 다시 보충이 된다. 고시엔의 흙은 흑토와 모래를 혼합한 흙이다. 오카야마, 미에, 가고시마, 오이타, 돗토리현 등 전국 각지에서 엄선된 흙만 가져온다. 모래의 경우는 중국 복건성에서 들여온다고 한다. 봄과 여름 대회를 치를 때, 흑토와 모래의 비율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비가 많은 봄에는 배수를 좋게 하기 위해 모래가 많이 사용된다. 빛 반사가 심한 여름에는 공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흑토를 많이 넣는다. 그런데 이 고시엔의 흙과 관련, 일본의 쓰라린 역사가 있다. 바로 오키나와다. 오키나와의 고등학교들은 한때 고시엔에 출전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출전은 했지만, ‘상징물’인 흙을 갖고 갈 수 없었다. 여기엔 이런 사연이 있다. 고시엔 구장의 흙 과 오키나와 슈리고교생들의 눈물. 태평양전쟁이 끝났지만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지 않고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미국령이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고등학교들은 고시엔 대회에 나갈 수 없었다. 마침내 첫 출전이 이뤄졌다. 1958년 8월 40회 대회였다. 첫 출전 영광의 학교는 오키나와의 슈리(首里)고교. 하지만 슈리고는 1회전에서 후쿠이현의 강호 쓰루가(敦賀) 고교에 1대3으로 패하고 말았다. 슈리고 역시 고시엔의 전통대로 흙을 가져가기로 했다. 선수 몇 명이 비닐 봉지에 흙을 담아 갔지만,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본토의 흙을 반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는 미국법을 적용받는 땅이었다. 그런 미국법에 따라 ‘식물 검역법’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선수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소중히 가져온 고시엔의 흙을 고스란히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기적과도 같은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사연을 접한 항공사의 한 여성 승무원이 고시엔 구장의 작은 돌 40개를 오키나와에 전달한 것이다. 당시 검역법에 따르면, 흙은 반입이 금지되지만 돌은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슈리고의 고시엔 출전 기념비에는 지금도 이 ‘고시엔 돌’이 박혀 있다고 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슈리고 사건이 계기가 되면서 오키나와 반환 운동이 한층 달아 올랐다. 1960년 오키나와 조국복귀협의회(縄県祖国復帰協議会)가 결성됐고, 본격적인 대중운동이 힘을 받았다. 운동은 오래 걸렸다. 드디어 12년 뒤인 1972년, 오키나와 반환이 이뤄졌다. 드라마틱한 일은 2010년 봄과 여름에 연이어 일어났다. 2010년 오키나와의 코난(興南)고교가 봄 고시엔과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한 것이다. 오키나와로서는 ‘고시엔 흙 반입 거부 사건’(1958년)에 이어 50년 만에 거둔 최고의 경사였다. <일본 도요(東洋)대 유학생 이모씨>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오사카 맛집 1탄 베스트 1위~10위
오늘 소개할 곳은 오사카 여행의 성지 니뽄바시에 있는 오사카맛집 레스토랑 및 카페에 대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사카의 니뽄바시는 유명한 잡화점과 오래된 점포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지금 보니 빠찡코에 가서 게임했던것이 새록 새록 기억이 나네용 ㅎㅎ 그중에서 20선을 소개하는데 작성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썼네요 ㅎㅎ 그래도 유용한 정보였길 바랍니다 ^^ 보셨다면 댓글정도 남겨주는 센스가 있으신분들이라면 좋겠네용 ㅎㅎ 그럼 소개할 레스토랑의 목차를 적어보겠습니다. 1.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2. 무기보시 니뽄바시다카시마야점 麦星日本橋高島屋店 3. 딘타이펑 니뽄바시점 鼎泰豐日本橋店 4. 레스토랑 로즈 レストランローズ 5. 스끼야바시지로우 니뽄바시점 すきやばし次郎日本橋店 6. 시세이도우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資生堂パーラー日本橋高島屋店 7. 토우쵸우 니뽄바시점 糖朝日本橋店 8. 텐이찌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天一日本橋高島屋店 9. 오케이스시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おけいすし日本橋高島屋店 10. 카야바 萱場 자 그럼 소개를 해볼께요~~ 1.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이탈리아요리계의 마이더스손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카페입니다. 다카시마야의 지하2층에 있으며, 쇼핑후 들릴 수 있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담없이 이탈리아를 즐기는 것이 컨섭이며, 파스타나 젤라또, 와인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아르뽀루또 카페 니뽄바시점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추천하는 메뉴는, 제철인 식자재를 푸짐하게 사용하여 파스타입니다. 안에 성게를 잔뜩넣어 만든 [성게크림소스 스파게티] 단연최고. 올리브오일에 마늘을 넣어 마늘향과 성게의 부드러움은 어떤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치즈 리조또도 꼭 먹어보세요 アルポルトカフェ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52053005 2. 무기보시 니뽄바시다카시마야점 麦星日本橋高島屋店 다카시마야 지하 2층에 있습니다. 천왕의 요리라고 알려진 아키야마도크죠 「秋山徳蔵」로 프랑스요리를 배운 요리장이 있는 고급명소로, 데이트나 모임, 점심에 혼밥을 즐기는 장소로 애용하는 곳입니다. 장시간 오래 푹 인힌 특제 데미그라스 소스를 사용한 하야시라이스 ハヤシライス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요리로 강추. 에스파냐소스에 소고기뼈와 고기, 향미를 돋아줄 야채를 더해 만든 것으로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것입니다. 와인의 산미와 향을 더해 일반인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麦星日本橋高島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32312811 3. 딘타이펑 니뽄바시점 鼎泰豐日本橋店 딘타이펑 니뽄바시점 중화요리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대만에 본점을 두고 있는 딘다이펑입니다. 다카시마야 지하2층에 있습니다. 80석 이상의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멋진 공간이 특징적입니다. 어린이용 메뉴가 있고, 가족행사나 모임에 최적인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런치타임에 특별한 세트가 있습니다. 딘타이펑이라면, 처음에 떠오르는것이 샤오롱바오는 아닐지? 가리비, 대개가 들어있는 조금 비싼 샤오롱바오도 있습니다. 샤우마이와 교자등이 딤섬양이 풍부하여 쉐어하여 먹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런치는 샤오롱바오 4개에 면종류 챠반이 포함된 셋트 메뉴가 인기입니다. 鼎泰豐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32114111 다카시마야의 지하2층에 있는 양식 레스토랑입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가볍게 이용 가능한 캐쥬얼한 분위기로, 메뉴는 일본, 양식, 중식등 버리이어티하게 다양한 것이 매력입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샘플 메뉴가 있어 백화점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딜가나 일본은 친절하지만 이 레스토랑의 점원은 평판이 아주 좋아요 메뉴는 크게, 다양한 채소들이 조금씩 들어간 양식이나 치라시 초밥, 비프스튜, 중화덮밥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맛으로,  어딘지 모르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인기의 비밀일지도 모릅니다. 쇼핑에 지쳤다면 잠깐 들러 커피도 마시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レストランローズ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B2F 0332114111 5. 스끼야바시지로우 니뽄바시점 すきやばし次郎日本橋店 다카시마야에서 맛있는 스시를 찾는다면 이곳을 꼭 방문하세요. 긴자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인기있는 스시집이며, 여기 다카시마야7층에 있으며, 쇼핑후 천천히 점심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다랑어나 성게등, 취향에 맞는 스시는 1080엔으로, 주먹밥, 덮밥 포함하여 3000엔전후로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장인의 손으로 만드는 것으로, 밥알과 재료의 균형이 잘 맞아 정말 엄지척!!! 18석 밖에 없는 자그만한 공간이며, 밤에는 오후 7시까지만 영업을 하기 때문에 이점을 유념해주세요. すきやばし次郎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4F 0332114111 6. 시세이도우파라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資生堂パーラー日本橋高島屋店 넓은 연령층에게 인기가 있으며, 다카시마야 8층에 있는 시세이도우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입니다. 카운터, 테이블석이 있는 시크한 안정된 공간으로, 혼자 또는 친구와 천천히 차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메뉴는 양식이 중심이며, 계절 과일을 사용한 파르페나 케익등 디저트가 가장 인기가 있습니다. 시세이도파라라고 말하면, 딸기 파르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것이라 생각한다. 고급 브랜드의 후쿠오카현 딸기로 유명한 아마오우 딸기를 사용한 파르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보고 싶어지는 디저트랍니다. 스트로베리소스와 크림의 하모니를 맘껏 즐겨보세요. 전통적인 메뉴의 미또 크로켓도 반드시 음미해보세요 7. 토우쵸우 니뽄바시점 糖朝日本橋店 다카시마야 8층에 있으며 홍콩에 본점을 두고 있는 얌차의 인기점입니다. 40석정도의 적당한 크기의 가게로, 가게안에는 브라운의 시크한 인테리어로 통일되어있습니다. 런치타임은 금방 만석이 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는 편이 좋습니다. 죽, 디저트, 면, 딤섬등 메뉴가 풍부하여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 되용 여기서 반드시 먹어야만하는 것이 [망고프딩]입니다. 과즙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으며 의외로 크림이 많은 맛입니다. 糖朝日本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8F 0332114111 8. 텐이찌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天一日本橋高島屋店 다카시마야 8층 레스토랑 부근에 있는 에도식 덴뿌라의 명소인 가게입니다. 긴자에서 1930년에 창립하여 노점으로, 제철 재료로 튀겨내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점내에는, 모던하며 시원스러운 인테리어로, 누구라도 가볍게 들릴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카운터석이 있어 혼자 런치를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이곳의 튀김은 식물기름으로 바삭하게 튀긴것이 특징입니다. 바삭바삭하게 씹는 느낌과 담백함 대문에 여성이나 연령이 높으신 어르신에게 추천할만한 요리랍니다. 테이블석이 한정 요리는, 새우초밥, 야채, 생선, 굴튀김이 따라나와 남성일지라도 배가 엄청 부를것 같습니다. 런치 코스도 있어요   天一日本橋高島屋店 東京都中央区日本橋2-11-1タカシマヤ東京店新館8F 0332465691 9. 오케이스시 니뽄바시 다카시마야점 おけいすし日本橋高島屋店 다카시마야 8층 레스토랑 부근에 있는 에도시대식 초밥의 가게입니다. 야에스에 본점이 있는 인기가 많은 가게로, 백화점내에 있으며 고퀄리티한 스시를 먹을 수 있다는 평가가 많은 곳입니다. 카운트와 테이블 자석 합쳐 40석전후로 청결감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어린이용 의자와 메뉴등이 있어 걱정없이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특별한 런치 메뉴는 7종류 전후 이며 2,500엔부터 있습니다. 제철 재료로 듬뿍 들어간 새우, 성게알과 연어가 들어간 덮밥 鉄火, 아나고가 들어간 덮밥이 인기가 있어요. 무엇보다 양심적인 가격으로 가성비 단연 최고!!! 돈이 아깝지 않은 곳이에요 10. 카야바 萱場 다카시마야 8층 레스토랑 부근에 있는 소바전문 가게입니다. 북해도산의 메밀가루를 사용하여 니하치 소바가 유명합니다. 인기메뉴인 [合鴨なんばん-오리]는, 메밀의 단단한 식감과 오리의 풍미가 기가막힙니다. 큰 새우튀김이 들어간 [큰새우튀김소바 大海老天せいろ]도 빠질수 없는 인기메뉴입니다. 계절 야채튀김을 추가하면 배가 너무 너무 불러용. 담백한 산채나물 메밀소바나 냉소바가 단연인기!! 가게안의 조명은 절제된 차분한 분위기이며, 넓은 연령층에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萱場 東京都中央区日本橋2-4-1日本橋タカシマヤ8F 0332114111 이것으로 1탄은 여기서 마무리 지을께요 2탄은 11~20위 건으로 다시 만나용 쭉쭉 이어질테니 일본여행 기대하세요 ^^ 엔스포츠와 함께하는 일본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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