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l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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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영화 퀴이즈이옵니다 즈언하 <사극특집>

요호 설연휴가 바로 코앞!!!
진짜 코앞!!!!! 으로 왔군요
이 연휴가 끝나지 않길 바라면서...
퀴이즈를 들고와봤슴다

설이니까 특별히
<사극 특집>을 준비했사옵니다 후후훟
무슨 맥락인진 모르겠지만
암튼 사극으루..
왜냐면 난 사극 조아하니까...
ㅎㅎㅎㅎㅎ

댓글로 정답을 달아주시면
답글로 정답 여부를 알랴드랴용 ㅎ

고럼 호다닥 시작해볼게요
오늘도 많이 맞춰주세여
(댓글보는게 내 낙이란 말야... ㅠ,ㅜ)

1
(제 최애영화니까 1번)


2


3


4


5

고럼 설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맛있는거 많이 드세요~~~
돼지돼서 만나욥!!🐽
9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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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의남자 2 임금님의 사건수첩 3 봉이 김선달 4 상의원 5 최종병기 활
오호 오늘도 역시 💯점 찍어주시는 분이!! 모두 정답입니다 👏👏 즐거운 설 보내세요😁
✌😄
퀴즈 잘보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제대로 1빠로 맞춰봐야지 했는데, 제가 잘 안보는 사극 종류였네요 ㅠㅠ 흑흑 이걸 바로 맞추실 사극덕후분들이 계시겠죠..?ㅋㅋㅋ 그거 보고 영화를 한 번 봐야겠어요
후후 잘보고 계신다니 뿌듯하군요!! 퀴즈낼때 넘 무지막지한가.. 하다가도 항상 맞추는 분이 계시니 저도 놀라요 ㅋㅋㅋㅋㅋ 담엔 힌트를 넣어보려고요🤔
왕의남자랑 최종병기활만 알겠네요 ㅠㅠ 나머진 못봄
1. 부장님과등산 2. 회식 3. 칼퇴 4. 김영란법 5. 퇴사 999999999점 9999
2.임금님의 사건수첩 5.최종병기 활. 2개밖에 모르겠네여 ㅎ 암튼 즐거운 명절 되세요^^
오호 오늘도 역시 와주셨네요 ㅎㅎㅎ 두개 모두 정답이에요👏👏 드림님도 즐거운 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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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낭자, 이름이 무엇이오. (1)
“참으로 어여쁘다.” 다음 날, 채랑이 손수 준비해 놓았던 옷을 곱게 차려입은 채희가 경대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썩 분칠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 “내가 한 번 해주어 볼게.” 채랑은 자신이 더 들떠, 뽀얀 채희의 얼굴에 분을 톡톡 두드렸다. 채희는 양 볼이 발그레 상기된 채, 낯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샛노란 저고리에, 자줏빛 치마. 고운 색감의 배씨댕기 까지. 한 번도 치장해본 적 없던 채희라, 영 낯설기만 했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와…너무도 곱다. 양귀비가 따로 없어.” “언니두 참…” “이리 꾸며놓고 보니…나와 조금, 다른 것 같기두 하구?” 채랑은 그리 말하며 호호호, 웃었다. 밖에선 좌상과 정경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듣고 있었다. “얘, 채랑아. 들어가도 되겠느냐.” “예? 예, 어머님.” 좌상과 정경이 채랑의 방으로 들었다. 곱게 옷을 입고 한껏 꾸민 채 경대 앞에 앉아 있던 채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좌상과 정경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쩜…이리도 고울 수가 있느냐.” 좌상과 정경 역시 처음 보는 채희의 어여쁜 모습에 감탄해 마지않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쑥스러운 듯 채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냥 장옷을 뒤집어쓰고 책방만 서둘러 다녀오면 되는데…언니가 이리 아침부터 꾸며 놓아서…” “그래두 이리 입혀 놓으니 참으로 곱지 않아요? 나랑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그렇죠, 어머님 아버님?” “그러게? 우리 채희가 채랑이보다 훨씬 더 어여뻤구나? 하하하!” 모처럼 만에 핀 웃음꽃이었다. 언제나 채희를 산 속 깊은 곳에 홀로 지내게 해두어 마음 편한 날 없던 정경과 좌상이었다. 채희는 곧 고운 비단 장옷을 채랑에게 건네받곤 방을 나섰다. 채랑은 채희가 저잣거리를 다녀올 때까지 이 방에서 꼼짝 않고 자수나 놓고 있겠다 했다. 혹여, 채랑이 방 밖을 나서 돌아다니다 노비들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채랑 아가씨가 둘이라는 소문이 날 게 뻔 하였으니. “그럼…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모처럼, 아니 처음으로. 채희는 장옷을 뒤집어쓰지 않고서 방 밖으로 나섰다. 마루 아래서 채희를 기다리고 있던 휘영은 처음 보는 채희의 어여쁜 모습에, 눈이 동그래져 흠칫 놀랐다. 채희는 그런 휘영의 놀라는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게…많이 어색한가.” “…아, 아닙니다, 아가씨.” 꼭,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 했다. 휘영은 괜히 자기가 쑥스러워져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한 손에 비단 장옷을 꼭 쥔 채, 사뿐사뿐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는 채희. 그리고 마당에서 옹기종기 비질을 하고 있던 노비들은 채희의 모습에 저들끼리 모여 숙덕댔다. “채랑 아가씨, 간밤에 좋은 꿈이라도 꾸었나 보오.” “그러게. 안색이 훨씬 더 좋아지셨다?” “오랜 벗이라는 그 무녀가 와서 그런가?” “아, 어제 그 허름한 차림의 여인이 무녀인가?” “그런 소문이 있던데. 확실치는 않어. 무녀란 말도 있고, 오랜 벗이란 말도 있고.” 채희의 정체를 두고 노비들은 왈가왈부하다, 이내 꾸민 채희의 모습이 너무 곱다며, 채랑 아가씨가 혼례를 치룰 때가 다되어 미모에 물이 오른 것이라 저들끼리 감탄했다. * * * “내 모습이…언니와 흡사하지 않은가…?” 채희는 연신 길을 지나며 자신을 보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였다. 휘영은 그런 채희의 뒤를 따르다 숙덕대는 사람들을 보곤 옅게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채랑 아가씨와 같사옵니다.” “그런데…어찌 사람들이 저리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것인지.” “이상한 눈초리가 아니라, 아가씨가 고와서 그러는 것일 겁니다.” 휘영의 말에 채희는 걷던 걸음을 멈추곤 휘영을 돌아보았다. 휘영의 곱다는 말에 양 볼이, 그만 발그레해졌다. 채희는 흠흠, 헛기침을 하곤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늘 숨어 지내는 것이 익숙한 터라 사람들의 평범한 시선들도 불편하신가 봅니다.” “…그런 것인가. 그냥 장옷을 뒤집어써야겠다.” 채희는 곧 비단 장옷을 뒤집어썼다. 한결, 편안해졌다. 채희는 처음으로 편안한 걸음걸이로 여유 있게 주위의 풍경들을 둘러보며 저잣거리로 향했다. 언제나 꽁꽁 싸맨 채, 행여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든 채 바삐 걸음을 움직여야만 했다. 이리도 바람도 부드럽고, 햇살도 따사롭고, 꽃 냄새도 향기로운 지 채희는 그간 알지 못했다. “아름다운…봄날이구나.” 채희는 그렇게 읊조리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뒤에서 그런 채희를 바라보던 휘영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와 달리 조금 들떠 보이기까지 하는 채희. 그러던 그때, “하하하! 술이라도 한 잔 따르라니까!” “이거 놓아주셔요!”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야” 웬 으리으리한 기방 앞에서 삿갓을 비뚤어지게 쓴 도령이 가채를 높게 올린 기생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고 있었다. 채희는 걷던 걸음을 멈추곤 둘의 실랑이를 바라보았다. “보는 눈이 많사옵니다. 도련님. 제발, 제발 놓아주셔요.” “네깟 년이 술을 따르라면 따를 것이지! 웬 말이 많아!” “그러니 안으로 드시라니까 왜 쇤네의 손을 잡아끌고 나오신답니까!” “집으로 가자! 내 오늘 네 년이 말만 잘 들으면 내 첩이라도 삼아 줄 터이니, 하하하!” 그러곤 재미있다는 듯, 삿갓을 비뚤어지게 쓴 도령 무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도령의 손에 질질 이끌려 기방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곱게 생긴 기생.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저벅저벅 그들을 향해 걸었다. 그러자 그런 채희의 앞을 휘영이 가로막고 섰다. “그냥 모른 체 하고 가시지요, 아가씨.” “비켜라.” “그러다 곤혹이라도 치루시면…” “치러도 내가 치른다. 너에게도, 그리고 언니에게도, 아버님에게도 누가 될 행동은 하지 않을 터이니 비켜라.” “하지만. 채랑 아가씨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차라리 관아에 가서 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런 무례한 짓거리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버님께 누가 되는 행동이다. 비키라 하지 않았느냐.” 그때, 그런 휘영과 채희 뒤로 우의정 장자인 민혁과 부인, 유정이 지나다 이내 걸음을 멈추곤 채희와 휘영을 바라보았다. 일전의 면이 있던 휘영을 유정은 빤히 바라보곤 이내 장옷을 뒤집어 쓴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혁 역시, 유정을 따라 민혁과 채희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관아에 간들 달라질 것이 무엇 있느냐.” “…….” “관아에서 저 도령에게 곤장이라도 칠 것이냐?” 당돌한 채희의 말에 유정은 눈이 동그래져 채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민혁 역시 그런 채희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 저 여인을 지켜줄 이는 관아엔 없다. 그러니 비키거라.” 하고 채희는 휘적휘적 휘영을 지나쳐 무례하게 기생을 질질 끌고 가는 도령 앞에 우두커니 섰다. 도령의 가까이에 가니 술내가 진동을 했다. 채희는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미 창피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기생은 갑작스런 채희의 등장에 흠칫 놀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손 놓아주시지요.” 채희는 장옷을 뒤집어쓴 채, 도령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도령은 피식, 웃으며 채희를 한 손으로 거뜬히 밀어재꼈다. “상관할 바 아니잖아? 비켜!” 두어 걸음 물러난 채희는 다시금 도령 앞에 멈추어 서서는 도령과 그의 무리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 당돌한 채희의 모습에 유정은 눈이 동그래져 고개를 갸우뚱했다. “좌상대감 여식 채랑 규수가 아니더냐?” “……” “일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듯한데.” 늘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조곤조곤 말하던 얌전한 채랑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채희의 모습에 유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옆에서 그런 채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민혁은, 낯익은 목소리에, 그리고 장옷 새로 보이는 낯익은 모습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 했다. “어…혹시…그때…?” 채희는 뒤집어썼던 장옷을 벗으며 무례하게 구는 도령들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자 채희의 얼굴을 보곤 흠칫 했다. “좌상댁…채랑…아가씨 아닌가?” “그러한 듯한데.” 기생은 좌상댁의 채랑 아가씨라며 수군대는 무리들의 말을 듣곤 눈물을 훔치며 채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같은 여자가 보아도 한 눈에 반할만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 손. 놓아 주시라 했습니다.” “아가씨가 참견할 일이 아니오. 가던 길이나 가시오!” 이번에도 채희를 손으로 밀치려 그 도령이 오른 손을 뻗었는데, 채희는 그 손을 잡아 채 아프게 홱, 꺾었다. “아! 아아! 아아아!” “놓으라, 했습니다.” 화가 많이 난 듯, 채희는 그 말을 딱딱하게 내뱉으며 술에 취한 도령의 오른 손을 아프게 꺾었다. 그러자 도령은 팔짝팔짝 뛰며 기생을 쥐었던 손을 잽싸게 놓곤 채희에게 놓아 달라 사정했다. “이거, 이거 놓아 주시지요! 놓았소! 놓았소!” 기생의 손을 놓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채희는 꺾었던 도령의 손을 놓았다. 당돌한 채희의 행동에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기생은 물론이거니와, 그걸 바라보고 서 있던 유정은 물론, 옆에 있던 민혁까지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이내 민혁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코끝을 매만졌다. 유정은 그런 채희의 행동에 입을 떡하니 벌린 채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어디 반가의 규수가 사내의 손을 저리 함부로 꺾어. 채랑 규수에게 저런 면이 다 있었나 봅니다.” “왜요, 어머님. 씩씩하고 정의로운 모습이 보기 좋은데요.” “아드님! 그런 말은 함부로 마세요! 이 어미는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하며 유정은 이마를 짚으며 슬쩍 민혁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어찌! 이런단 말이오!”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도령은 채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채희는 피식, 차갑게 미소 짓더니 이내 기생의 빨갛게 부운 손목을 쥐어 도령 앞에 보여 주었다. “그러는 도련님은 어찌, 연약한 여인네에게 이러신단 말입니까?” “흠…흠흠! 그것은 내 술이라도 한 잔!” “술을 기방에서 드실 것이지 어찌 기방에 있는 여인을 무례하게 잡아끌고 나와 이런 행패를 부리신단 말입니까?” “행, 행패…? 행패라니?!” “학문을 배우고 행하시는 공자님들이 이런 추악스런 행동을 하는 것이 행패지, 행패가 달리 행패겠습니까.” “…뭐?” “더는 부친의 존함에 누를 끼치지 말고 공자님답게 행동들 하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채희는 생긋,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이리도 고운 여인이 이리도 고운 미소를 지으니, 도령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흠, 흠 마른기침만 내뱉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하나같이 옳은 말이었기에 채희에게 더 말대꾸도 못한 채, 서로 눈치만 보던 도령들은 이내 헐레벌떡 도망치듯 사라졌다. 채희는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는 도령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까?” “괜, 괜찮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아가씨. 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기생은 채희에게 고개를 푹 숙여 보이며 수치의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채희는 자신의 소매 폭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채희에게 건넸다. “은혜는 무슨. 괜찮다면 되었습니다. 창피해서라도 앞으론 그대를 저들이 찾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요.” 하며 채희는 미련도 두지 않고 휙, 돌아섰다. 휘영은 그런 채희의 뒤를 따랐다. 기생은 시원스레 돌아서는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채희를 황급히 불렀다. “아가씨! 아가씨!” “……?” “이 수건은…” “가지세요. 나보단” “…….” “그대가 더 필요할 것 같으니.” “…….” “저깟 놈들 때문에 눈물 보이지 마세요. 고운 얼굴 버립니다.” 하고 채희는 뒤돌아서서 갔다. 여인이었지만 참으로 멋있단, 생각이 들었다. 기생은 한참을 채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채희를 바라보고 있던 민혁은 서둘러 채희를 뒤따랐다. “아드님! 아드님 어딜 가십니까!” “어머님, 잠시만요! 잠시만 지체하겠습니다!” 채희는 다시금 장옷을 뒤집어쓴 채 책방으로 향하려 모퉁이를 돌았는데, 어디선가 급히 나타난 민혁이 그런 채희의 팔을 쥐었다. “……?” 자신의 팔을 갑작스레 쥐는 민혁에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장옷을 떨어뜨려 버렸다. 채랑과 꼭 닮은 얼굴.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일전에 채랑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있는 민혁은 채랑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채랑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 채희는 경계의 눈초리로 민혁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가까이에서 본, 채랑의 아니 채희의 얼굴은 참으로 고왔다. 민혁은 가만히 채희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섰다. 그때, 휘영이 황급히 채희의 앞을 가로막고 서며 민혁을 제지했다. “무례하십니다.” 채희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민혁을 덩달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서둘러 떨어뜨린 장옷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는데, “낭자.” “…….” “우리…안면…있지 않소?” “……?” 채희는 안면이 있지 않냔 민혁의 말에 다시금 민혁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그저 지나치는 바람이라 여겨, 내 다시 낭자를 마주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 “그것이 한낱 지나치는 바람이 아니었나봅니다. 이리 다시 만나, 한 눈에 알아보는 것이.” “……!” 채희는 민혁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장옷을 황급히 주어 뒤집어썼다. 심장이 쿵쾅 거렸다. 혹여 자신의 정체가 노출된 것은 아닐까 채희는 장옷을 뒤집어 쓰고도 모자라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모, 모릅니다, 나는.” 하고서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데, “낭자. 이름이 무엇이오.” 어찌…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서…, 저잣거리의 아니 한양 사람이라면 채랑의 얼굴을 모를 이 없을 텐데…어찌,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서 이름을 묻는 것인지. 채희는 순간 숨이 멎을 듯 했다. * * *
제 9 장. 채희의 그림자, 무사 휘영(輝影)
“그런데 아깐 어찌 그리 늦게 나타난 것이야?” 다시 장옷을 여민 채, 좌상 집으로 향하던 채희는 걷던 걸음의 속도를 늦추곤 자신의 뒤를 따르는 휘영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휘형은 채희의 물음에 가만 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예? 아, 분명 아가씨를 호위하고 있다 생각하였는데 돌아보니…아가씨가 사라지셔서. 지체해 송구하옵니다.” 휘영은 채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장옷을 거두어, 휘영을 돌아보았다. 휘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채희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사라져? 내가 잠시 너에게 다녀온다 이르고 사라지지 않았느냐?” “무언갈 아가씨가 착각을 하신 듯합니다. 돌아보니 아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라, 아가씨를 찾느라 한참 애 먹었습니다.” 휘영의 말에 채희는 가만히 장옷을 쥔 채, 이상하다…, 내 분명 너의 옷깃을 쥐곤 다녀온다 일렀는데, 중얼거렸다. 그런 채희를 가만, 휘영은 바라보았다. 늘 곁에서 채희를 호위하는 휘영이었지만 이리 가까이서 채희의 낯을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휘영은 채희의 봉긋 솟은 이마와 콧날, 도톰한 입술, 하얗고 발그스레한 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럼…너가 아니었단 말이야? 어머! 그럼 내가 누구를…”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휘영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휘영은 채희와 눈이 마주치자 채희보다 더 놀라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내가 착각하여 다른 이를 붙잡고 끌었나보다. 어쩜 좋지. 혹여 내 얼굴을 보기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 채희는 울상을 지으며 땅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워낙 도성에 알려진 ‘채랑’, 자신의 언니 얼굴이라 그런 채랑과 꼭 닮은 자신의 얼굴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애쓴 채희였다. 휘영은 그런 채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채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채희. 휘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채희를 바라보며 설핏, 미소를 지었다. “어.” 채희는 그리고 그런 휘영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가…웃을 줄도 아는 구나.” “…….” “이제야 사람과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휘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보인 적 없는 채희였다. 늘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였기에 휘영 역시, 그녀를 곁에서 호위하고 있었지만 꼭 보통 사람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휘영은 알았다. 채희가 부로 무표정을 한 채 지낸다는 것을. 일부러 차가워 보이고,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 슬픔도 기쁨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휘영은 알고 있었다. 그때, 채희 뒤로 우상의 부인인 ‘유정’이 가마에 올라선 채, 이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좌상과 상극인 우상의 부인에게 ‘채희’의 얼굴을 들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것도 모른 채 채희는 장옷을 거둔 채, 휘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유정이 좌상의 호위무사인 ‘휘영’의 얼굴을 알아보곤 채희 곁까지 성큼, 다가왔다. “……!” “송구합니다, 아가씨.” 곧, 휘영은 채희에게 송구한다하며 채희를 자신 쪽으로 바짝 잡아 당겼다. 그러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채희의 장옷을 씌워 재빨리 채희의 얼굴을 가렸다. 동시에 유정이 탄 가마가 채희의 곁을 스쳤다. “…앗.” 그제야 자신의 옆으로 우의정의 부인인 유정이 지나갔음을 깨닫곤 황급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는 채희였다. “저 무사는 좌상 댁 호위무사인 듯한데.” 유정은 휘영과 채희를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유정을 따르던 몸종이 힐끔, 휘영을 돌아보곤 황홀한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참…잘생긴 사내지 않습니까?” “잘생기긴 뭣. 우리 아드님이 훨-씬 더 잘생기셨지.” “에이, 민혁 도련님은 두 말하면 입 아프지요. 그래두 저 무사는 사내인데도 어찌 얼굴에서 색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지…, 묘-하게 여인을 끌어드리는 멋이 있지 않습니까? 저 탄탄한 가슴에 폭, 안겨보기라도 했으면…” “나이든 여편네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뭐, 젊고 잘생긴 사내 품에 꼭 젊은 여인네들만 안기고 싶답니까? 이 늙은 여인네들두 젊고, 잘-생기고 사내 품에 안겨보고 싶습니다, 마님?” 입에 침이 마르도록 무사를 칭찬하는 몸종의 말에 유정은 다시금 고갤 돌려 무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무사하긴 아까운 인물이긴 하네.” “그렇지요? 어쩜 좌상댁엔 호위 무사까지 인물이 훤하니…앗, 흠. 흠.” 몸종의 말 실수에, 유정은 심기가 불편한 듯, 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더니 이내 흥, 하고 무사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래봤자 딱, 기방 기생들 기둥서방하기 좋을 외모다. 어디 우리 아드님에 비할까? 우리 아드님은 딱, 위장부시지!” 채희는 멀어져가는 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 날 뻔 하였구나. 하마터면 우상의 부인께 얼굴을 보일 뻔 하였어.” “…….” “가자. 어머님,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시겠다.” 그리고 채희는 다시금 발걸음을 돌렸다. 휘영은 그런 채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채희 뒤를 성큼성큼 따랐다. “너는. 무술도 뛰어나고, 검도 잘 다루는데 어찌 한낱 양반댁 여식이나 지키는 호위 무사가 되었느냐? 네 정도의 검술이면 궁에 들어가 군주를 뫼시어도 될 법한데.” “…….” “뭐…내가 무술이니 검술이니…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저 이리 나만 지키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그런다.” “…….” “지금이라도 내가 아버님께 일러 너를 다른 곳으로…” “되었습니다.” 휘영은 자신을 생각해주어 말하는 채희에게 되었다, 단칼에 거절을 했다. “궁이 싫으면 어디 무사들을 길러내는 곳의 스승으로 들어가 제자들을 키워도…” “…….” “그것도 싫겠지?” 채희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따르는 휘영을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땅바닥만 응시하고 있는 휘영이었다. 그런 휘영을 가만 바라보던 채희는 다시금 앞장서서 걸으며 입술을 떼었다. “언제든 말 하거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 떠나야 하거든.” “…….” “주저 말고 말하도록 해. 언제든 널 보내줄 것이니.” 휘영은 채희의 말에 가만히 미소 지으며 부지런히도 걸어가는 채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이름은 빛날 휘에 그림자 영.’ ‘…….’ ‘휘영이다. 네가 그림자처럼 아가씨를 호위하여야 할 것이다.’ ‘…예, 형님.’ ‘그 때가, 네가 가장 빛이 나는 때일 것이다. 알겠느냐.’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치며 늘 아가씨를 잘 보필하여야 한다 일렀던 주한이었다. 주한과 휘영의 집은 꽤 한양에서 잘나가던 무사의 집안이었지만 몇 해 전, 역모라는 누명으로 패가망신 하여, 길바닥을 떠도는 꼴이 되었다. 친척,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목숨 부지하기 급급해 생사조차 알 길 없던 그때, 주한의 손을 잡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좌의정, ‘이한열’이었다. 때문에 어린 주한과 주한의 어머니, 그리고 부모를 모두 잃었던 갓난 아이었던 사촌 아우, 휘영은 지금껏 좌상 집에서 역모 죄로 패가망신 했단 가문을 숨긴 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가씨를 모시는 것이, 제가 하여야 할 일이고” “…….” “제가…하고 싶은 일입니다.” 휘영은 멀어져가는 채희를 우두커니 바라보다 이내 휘적휘적, 긴 걸음으로 채희의 뒤를 따랐다. * * * “어머님, 아버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좌상댁의 노비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안채로 들어온 채희는 좌상과 부인, 채화를 마주하자마자 절부터 올렸다. 좌상 ‘이한열’은 언제 채희가 이리 예쁘게 자랐나, 흐뭇한 얼굴로 채희를 바라보았다. 옆에 함께 앉아있던 정경부인은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머님, 어찌 그리 눈물바람이어요. 오랜만에 보는 채희가 어리둥절하겠어요!” 곁에 서 있던 채랑이 눈물을 보이는 정경을 향해 입술을 씰룩이더니, 이내 절을 마치고 덩그러니 서 있는 채희를 와락 껴안았다. “언…니.” “채희야, 어째 안색이 더 좋지 않아.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야?” 살뜰히 채희를 살피는 채랑이었다. 둘이 이렇게 나란히 서니, 꼭 똑같은 사람이 둘이 서 있는 듯하였다. 채랑은 자신을 닮은 채희의 손을 맞잡은 채 가만히 채희를 바라보았다. “아프기는, 없어. 그저 이틀을 꼬박 예까지 오느라 진이 빠져 그렇게 보이나 봐.” “나 너에게 줄 것이 있어! 내 방으로 가자.” 하며 채랑은 채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채희는 아이처럼 들뜬 언니를 보곤 피식, 웃으며 좌상과 부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채랑을 따라 나섰다. “아, 잠시 내 장옷.” 안채를 나서자마자 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몇몇의 노비를 발견하곤, 채희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채랑은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채희를 보곤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곧, 무사 휘영이 채희에게 들고 있던 장옷을 건넸고, 채희는 황급히 장옷을 뒤집어썼다. “이제, 되었어. 가자 언니.” “미안…해, 채희야. 나 때문에.” “무슨 말이 그래. 나 때문에 언니가 곤욕만 치루지.” “왜 너 때문에 내가 곤욕을 치루어?” “언니는 장차 세자빈이 될 사람인데…내가 있어 걸림돌만 되잖아.” “얘, 세자빈은 무슨! 나는…궁에서 살기 싫어.” “…언니.” “세자빈은 가당치도 않어. 그리구, 나는 그래도 여기서 어머님과 아버님과 함께 지내잖아. 너는 그 험한 산 속에서…나 때문에…” “자꾸 그런 말 하면. 나 다음부턴 집에 오지 않을 거야, 언니 시집갈 때까지.” 채희의 말에 채랑은 울상을 짓다, 이내 피식 웃으며 채희의 손을 꼭 잡았다. “나 시집가면. 너랑 꼭 한 집에서 살 거야.” * * * “이걸…나 준다고?” “응. 너무 예쁘지?”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 옷과 꽃신이었다. 연분홍의 연꽃이 수놓인 샛노란 개나리색 저고리에 고운 보라색의 풍성한 비단 치마. 그리고 파란색의 어여쁜 노리개까지. 무명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채희는 채랑이 건넨 옷을 가만히 만지작였다. “너무 예쁘지! 내가 아버님을 졸라, 청국에서 사와 달라고 했어.” “…언니 입어. 나는 이런 것은…” “너 주려고 내가 아버님께 직접 청을 드린 것이야. 나는 이런 쨍한 색깔은 안 어울려.” “…….” “너와 내가 외모가 꼭, 닮았다고 하지만.” “…….” “내 눈엔 나보다 너가 몇 곱절 더 고와. 그래서 이런 쨍하구 고운 색깔은 나보다 너가 더 잘 어울려.” 채랑의 말에 채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곤 화려한 비단 옷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였다. 채랑은 곧 채희에게 저고리를 대어보곤 너무 잘 어울린다며, 환히 웃었다. “입고 나와 봐! 너가 이걸 입구 저잣거리에 나가면 나라고 생각하지, 널 다른 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야. 물론 좌상 댁 여식 ‘채랑’이가 무얼 먹고 저리 더 고와졌나?, 수군대겠지? 호호호.” “언니…하지만.” “너도 한양 구경하고 싶어 했잖어. 꽃놀이도 가고 싶어 했구, 연등회에도 가보고 싶다며.” “그건…” 망설였다. 이리도 화려한 옷은 입어본 적이 없었기에. 매번 집에서 비단 옷이며 장신구들을 보내왔지만 채희는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펼쳐 쓸어보기만 하고 다시 보따리에 싸, 서랍에 곱게 넣어 두기만 했었다. 꼭, 자신과는 맞지 않은 옷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여기 연 하늘빛 저고리와 분홍색 치마는 연등회 때 입구. 우선 이 옷부터 입고 나와 봐! 너랑 손 꼭 붙들구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고 싶지만.” “…….” “그것은 아버님이 추호도 허락지 않으실 것이니.” “…….” “매번 다 낡은 장옷 뒤집어 쓰구, 누구에게 들킬까 연연하면서 그리 좋아하는 책방에도 쉬이 못 들려보았잖아. 이 옷으로 갈아 입구 내일 해 뜨면 휘영이랑 저잣거리나 다녀와. 언니 소원이야. 너, 내 소원 하나 못 들어줘?” 채랑의 말에 채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참으로 고운 옷이었다. 채랑이 채희가 며칠 예서 머무는 동안 외출복으로 입을 옷들과 장신구들을 손수 챙겨 놓았다. 채희는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응? 응? 하며 어린 아이처럼 칭얼대는 채랑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니 때문에…못살아, 정말.” “정말 입을 것이지? 그치?” “들켜서 곤혹을 치루어도 나는 몰라. 다-, 언니가 책임져. 알았지?” “그럼! 이 언니만 믿어! 호호호.” “하하하하.” 모처럼 채 자매는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호호호,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 * *
제 5 장. 달(月)의 기운이 흩어지다!
“아악-.” 잠자리에 누웠던 윤화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에 흥건히 젖은 채였다. 윤화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달…달의 기운이…흩어지려해. …이를 어쩐담.” 윤화는 더듬더듬 초를 찾았다. 윤화의 비명에 마루에 누워있던 노인은 황급히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 게야?” “악몽을 꾸었어.” “…….” “안…좋아. 기운이…좋지 않아.” 오늘이 좌상댁과 약조한 꼭 열흘이 되기 이틀 전 날이었다. 이미 두 아가씨의 운명을 본 윤화는 오늘 무화산을 떠나기 위해 미리 짐을 꾸려놓은 상태였다. 약조한 날까지 좌상 댁에 답을 드리려면 적어도 오늘 출발해야 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윤화는 마루로 뛰쳐나왔다. “아가씨들의 운명을…가로 막고 있는 게 더 있었어.” “…뭐?” “그 날. 그 저잣거리에서 마님을 뵈었을 때 국모의 기운을 지닌 분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쌍생아라는 것. 달의 기운이 두 개였다는 것.” “…….” “그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 “아니었어, 할아버지.” “…….”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검은 기운이 있었어.” 윤화는 맨발로 뛰쳐나와 아직 검푸른 새벽녘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좌상댁에 답을 드리러 사람을 보낸다 했지.” “…….” “내가 가마.” “할아버지.” 윤화는 노인의 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인을 돌아보았다. 뒷짐을 진 채, 윤화 곁에 선 노인은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중헌 일 아니냐.” “할아버지, 그치만.” “서찰만 그 댁에 무사히 전해주면 된다하지 않았느냐.” “…그렇지만.” “네 어미의 처녀시절의 연서도 네 아비에게 내가 은밀히 전해주고 했었지. 걱정 붙들어 매.” 노인은 가벼운 농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윤화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윤화는 슬픔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혹여나 그 서찰이 다른 이의 손아귀에 넘어간다거나 전해주지 못하게 되면 큰일 아니냐.” “아냐. 내가 직접 가야겠어.” “그러다 네가 변이라도 당한다면.” “…….” “그것은 니가 그리 귀히 여기는 그 분들 모두에게 해가 되는 일 아닐 게냐.” “할아버지….” 노인의 고집을 꺾기는 어려워 보였다. 불길한 기운이 자꾸만 엄습해 와 윤화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떨기만 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흑(黑)의 기운에, 윤화는 떨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윤화가 겪고 있는 무녀로서의 이 고초를 이미 자신의 처였던, 윤화의 외조모에게서 종종 보았기에 낯설지 않았다. “흑의 기운이든, 정의 기운이든. 그 모든 기운을 받아내고 견뎌내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 무녀인 너의 몫, 아니더냐.” “할아버지.” “나도…네가 네 할미처럼 무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의 손녀에게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던 속내를 오늘에서야 드러냈다. 윤화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주름이 깊게 팬 얼굴이 윤화의 속을 더욱 아프게 내려치는 듯했다. “하지만 네 말대로, 네 할미의 말대로 다 연유가 있겠지.” “…….” “그리고 내가 그 서찰을 그 댁에 전해주려고 마음먹은 데에도 다…연유가 있지 않겠느냐.” 노인의 말에 윤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날이 밝는 대로 서찰을 써서 줄게, 할아버지.” “…….” “정말…무사히…아무 탈 없이 좌상 댁에 전해드리고…와야 해.” “예끼, 이 놈! 네 할배를 그리 만만히 보는 것이냐? 이래봬도 소싯적에 산 속 도적놈들은 내가 다 때려잡았다, 이눔아!” “할아버지….” 노인은 껄껄껄 웃으며 윤화의 등을 어루만졌다. 어느덧 무화산 저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 * * “예상이 빗나갔어.” “…….” “달의 기운을 받으신 분은 채랑 아가씨가 아니라.” “…….” “채희 아가씨였어.” 윤화는 정수를 떠 놓은 상 앞에 예를 갖추고 앉아 치성을 드리다, 입을 열었다. 그러곤 붓과 노란 화선지 한 장을 꺼내 좌상 댁에 전할 서찰을 써내려갔다. ‘마님, 예측이 빗나갔사옵니다. 둘 째 아기씨인 채희 아가씨가 국모가 되실 운입니다. 이 서찰을 받는 즉, 채랑 아가씨를 이 곳 무화산, 제 처소에 머물게 하소서. 세자빈 간택이 있고 난 후, 초하룻 보름달이 환히 뜨는 밤이, 세자저하와 세자빈의 합궁일이 될 것이옵니다. 그 날의 보름달의 충만한 기운을 채희 아가씨와 채랑 아가씨가 각자의 자리에서 맞으신다면 두 분의 운명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옵니다. 이 서찰은 즉시 태워 없애주셔요. 저는 무화산을 떠나 치화산으로 거처를 옮길 생각입니다. 부디, 다시 마님을 뵙는 그날 까지 안녕, 또 안녕하시옵소서.’ 그렇게 서찰을 쓰고 난 후, 윤화는 다시금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께 절을 했다. 노인은 그런 윤화의 뒤에서 모든 걸 체념한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고 섰다. “할아버지. 다 되었어.” “먼저 치화산으로 떠나 있거라.” “싫어. 할아버지가 예 당도하면 같이 떠날 것이야.” “만일을 대비하자는 것이다. 만일 내가 변을 당한다면 그것은 필시 이 서찰의 존재나 너와 나의 행보를 꿰뚫고 있는 이가 있다는 말일 텐데.” “…….” “그자들이 너를 가만히 살려 둘 것 같으냐?” “할아버지 왜 자꾸 그런 재수 없는 소리만 하는 거야! 누가 우리 목숨 줄을 노리기라도 한 단 말이야?” “네 할머니는 항상 그래왔다. 이런 위험한 일을 풀고자 할 땐, 항상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행했다. 알고서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지만….” “곧 뒤따라 갈 터이니 딴 곳으로 새지 말고 곧장 치화산으로 향하기나 해.” 노인은 윤화가 건넨 서찰을 받아 낡은 도폭 소맷자락에 푹, 넣곤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자꾸만, 연신, 윤화의 마음이 불안하기만 했다. “할아버지! 꼭 바로 뒤따라야 해! 알았지?!” “알겠다고 이눔아! 얼른 짐이나 싸!”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산을 내려가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윤화는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 * * “약조한 날이 오늘이지요.” 좌상 댁, 정경 채화는 마른 침만 꼴깍 꼴깍 삼키며 마당을 왔다, 갔다 불안에 떨었다. “부인.” “왜이리 불안한 것일까요.” “믿어봅시다, 운명을.” 좌상은 채화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방에선 이미 채비를 끝낸 두 아기가 누워있었다. 둘 중 하나는 오늘 이 집을 떠나 기약 없는 그 날까지 무화산에서 지내야만 했다. 정경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안채로 들어와 두 아기를 보듬었다. “미안하구나. 따뜻한 밥 지어 맥이고, 예쁜 옷 지어 입혀서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살고 싶었는데…” “…….” “부족한 어미라…, 이리도 못난 어미라…미안하구나, 내 새끼들.” 채화는 두 아기를 보듬고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찌하였든, 둘 중 하나와는 이별인 날이었으니. 곱게 싸놓은 보따리를 먹먹한 눈동자로 내려 보던 채화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약조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신시가 되었는데, 아직 아무 소식도 없으니…” 좌상은 안채로 들어서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둘 째, 아기인 채희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이 곳에 아무도 당도하지 않는다면 윤화가 예언한대로 첫 째인 채랑이 국모의 운을 타고난 아이고, 둘 째 아기인 채희가 이곳을 떠나야 했다. 이미 예견된 운명이었지만…, 좌상은 심란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 “채희가…떠나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좌상은 담담한 척, 그 말을 내뱉었지만 마음이 착잡해져오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좌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는 채희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하염없이 채희를 내려다보았다. “아가…참으로 기구한 운명이구나.” 어느덧 좌상의 눈동자에도 뿌연 눈물이 드리웠다. * * * 무화산을 떠난 지 이틀 째 되는 날, 노인은 부지런히도 걷고 걸었다. 끼니조차 거른 채, 제 시간 안에 좌상 댁에 당도하기 위해 묵묵히 걸었다. “이 서찰을 무사히…전해드려야 할 텐데.” 어느덧 날이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시간은 신시를 지나 유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 해가 짧았다. 이제 도성까지 한 고개만 넘으면 되었다. 노인은 도포 소맷자락 속에 담긴 서찰을 다시금 더듬으며 깊은 산 속으로 들어섰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내일 눈이라도 한바탕 내릴 참인지, 달빛을 밤 구름이 뿌옇게 에워싼 듯 했다. 옷깃을 여미며 노인은 오로지 구름이 쌓인 뿌연 달빛에 의존한 채, 어두운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 때,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걷던 걸음을 멈추어 섰다. 등 뒤로 식은 땀 한 줄기가 슥, 흘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몰려왔다. 노인은 그대로 멈춘 채, 뒤를 돌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노인은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아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그리고 그런 노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는 분주한 발 소리 하나.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서찰이 든 도포 소맷자락을 꾹 쥔 채, 내달리기 시작했다. 낙엽과 빈가지가 노인의 다급한 발자락에 스쳐 바스락 바스락 다급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맹렬히 따르는 검은 그림자! 노인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내달리고 또 내달렸다. 이 고개만 넘으면, 이 고개만 넘어 저잣거리에만 당도한다면 몸을 숨길 방도가 있을 테였지만. “허억-허억-허억-” 이 어둠이 내린 숲에서 노인은 그저 독 안에 든 쥐일 뿐이었다. 노인의 거친 숨소리가 숲을 가득 매웠다. 그리고 순간, 노인이 있는 힘껏 내달리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으윽-!” 그리고 노인이 예상한대로 노인이 넘어져 숲속을 뒹굴자 그런 노인의 목에 서늘한 칼이 겨누어졌다. 노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자를 올려다보았다. 주위에 불빛 한 점 없는 탓에 얼굴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건장한 사내인 듯 했다. “누구냐! 원하는 게 무엇이냐!” 노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쳤다. “내 놓거라, 그 서찰을.” “…무, 무슨 서찰을 말이냐, 이놈아!” 노인이 발뺌하자, 자객은 더욱 노인의 목에 칼을 깊숙이 들이밀었다. 노인은 마른 침을 살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렀다. “그 무당 년이 준 서찰을 내놓으란 말이다. 그 서찰을 들고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던 게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러는지 모르겠으나! 짚어도 한참을 잘 못 짚었소이다! 내겐 서찰 따위는…!” “너는 어차피 죽게 되어있다. 끝까지 발뺌하고 그 서찰을 내놓지 않는다면 너는 내 손에 죽을 것이고, 그 서찰을 내놓지 않고 도망을 간다 해도,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 “니가 살 길은 오직 하나. 그 서찰을 내게 넘겨주는 것 뿐.” “…….” “그 서찰을 내게 넘긴다면 니가 그 서찰을 들고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 지는 궁금해 않겠다. 목숨 또한 살려줄 것이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복면을 쓴 자객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더듬더듬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에 기댔다. 마른 침을 삼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윤…화야….” 노인은 비통한 표정으로 손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이것을 내어줄테니…그럼…약조하시오. 내 손녀만큼은…손녀만큼은 꼭 살려주시오.” “약조하지.” 그리고 노인은 벌벌 떨며 소맷자락 속 서찰을 꾹, 쥐었다. * * *
제 4 장. 궁궐에 드리운 검은 구름.
“이렇게까지 하려는 연유가 무엇이냐.” 노인은 막 당도하여 장의를 벗는 윤화를 향해 물었다. 윤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냥. 하고 싶어서.” “그래서 이 무화산을 고집한 것이냐.” “…….” “무녀로 살지 않겠다, 지난 날 그리도 발버둥 치더니. 무녀였던 니 할머니가 평생 지낸 이곳을 다신 발도 들이지 않겠다, 그리 호언장담하고 가출까지 마다하지 않던 니가.” “…….” “고작 그 분을 돕기 위해 그리 꼴도 보기 싫어하던 이 무화산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냐.” “고작 이라니.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게 해주신 귀하신 분이야.” “…….” “그때, 마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난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 배웅도 못 해드렸을 거야. 그리고 난 아마 그날 그 우상댁 부인에게 곤장만 맞고 내팽개쳐졌을 테지.” 윤화는 무덤덤하게 그 말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엄마는…쓸쓸히 죽어갔을 거야. 저잣거리 왈짜패들에게 쫓겨 달아나고 있었으니…난 마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왈짜패들에게 잡혔거나, 우상댁 부인에게 잡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해줬겠지….” “니 할머니도 그런 위험한 일은 마다하셨다. 니가 지금 하려는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기는 아는 것이야?” 노인은 한숨을 쉬며 털썩, 마당에 주저앉았다. “할매가 그랬어.” “…….” “모든 것엔 다 연유가 있다고. 까닭 없는 것들은 없어.” “…….” “처음엔 무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겠다, 몸부림 쳤었지. 그래서 운명을 거스르는 위험한 내 행동에 결국 엄마가…죽고 말았지.” “네 탓이 아니다, 연화야. 네 어미는 오래 앓던 병 때문에…” “그래. 그 오래 앓던 병 때문에 그 해, 갑자기 돌아가신 건. 나의 위험한 행동에 엄마의 명줄을 재촉한 것이겠지. 나에게 무녀가 되라고 하늘이 점지해주신 까닭은 분명 있을 거야.” “…….” “그리고 그 연유를 난 그 날 찾았을 뿐이고. 그 날 나는 무녀로 살아야겠다, 마음먹었어. 처음으로 내 스스로를 무녀라 칭한 날이야.” “…….” “내게 무녀라는 운을 헛되이 내려주시진 않았을 거라, 할매가 맨날 얘기했었어. 그리고 난 이제야 그 말을 알 것 같고.” “윤화야.” “그 운명을 거스르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그 분들의 운명을 바로잡아 주지 않고 외면하는 것.” “…….” “그것만큼 위험한 일이 어디 있겠어.” 윤화는 허탈해하는 노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곤 괜찮다는 의미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열흘 뒤에 떠날 거야.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무사히 있으면 돼.” 그 말을 남기고 윤화는 방으로 들어섰다. 노인은 그런 윤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부녀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열흘…뒤에 떠난다라.” * * * “세자가 이리 어린데 벌써 빈 얘기라니요, 대비마마.” 중전과 후궁 최씨가 대비 전에 나란히 앉아 다과를 들고 있었다. 희끗희끗 머리가 센 대비가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으며 중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이가 지긋했지만 곧추 선 허리에서나, 힘 있는 목소리에서나, 날 선 눈빛에서나 권력의 힘이 그대로 묻어났다. “세자가 책봉된 지 꽤 되었습니다. 미리 세자빈을 물색해놓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리 이른 것은 아닙니다, 중전.” “하지만…” 최숙원은 중전과 대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생각해두신 규수는 있으십니까, 대비마마?” “세자빈은.” “…….” “예로부터 하늘이 점지해준다 하였습니다. 이 뒷방 늙은이가 생각해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비는 무언가 속내를 감춘 듯한 얼굴로 찻잔을 다시금 쥐었다. 중전은 그런 대비의 속내를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최숙원도 이번 세자빈 간택 때 한 유세 펼치셔야지요?” “예, 예…대, 대비마마?” 대비의 갑작스런 말에 최숙원은 화들짝 놀라며 중전의 눈치를 살폈다. 중전은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안 그렇소, 중전? 최숙원이 세자의 친모이니.” “…대, 대비마마.” “어찌 보면 모후 아니오? 그러니 아들 낳은 유세, 이럴 때 아님 언제 부려보겠습니까.” 도발이었다. 그것은 중전에 대한 대비의 도발이었다. 대비는 그 말을 그렇게 내뱉고 나선 농이라는 듯 허심탄회하게 웃어버렸다. 중전 역시, 대비의 말에 화를 낼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쓴 웃음을 지으며 최숙원을 돌아보았다. 대비와 중전의 기 싸움에서 최숙원만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렇지요. 최숙원이 세자의 친모이니…, 세자빈 간택 때는 중전인 나보다 더 발 벗고 나서야지요.” “황, 황공하옵니다…중, 중전마마.” “무얼 그리 떱니까, 최숙원. 가볍게 웃어넘기자 하는 소리들 아닙니까, 허허허.” 대비는 여전히 호탕하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중전은 치맛자락을 꾹 쥐었다. 대비는 애써 화를 억누르고 있는 중전의 표정을 살피며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자빈은 하늘이 정해준다고는 하지만.” “…….” “내 눈여겨 두고 있는 규수가 있기는 한데.” 이제야 속내를 드러내는 구나, 중전은 속으로 생각하며 덤덤하게 찻잔을 쥐었다. “대비마마께서 점해두신 규수가 있다면 아마 세자빈으로 꼭 맞는 아이일 테지요. 어느댁 규수를 눈여겨 두고 계시옵니까.” 중전의 물음에 대비는 묘한 웃음기마저 거두고 대비는 진지한 낯빛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번에 좌상이 딸아이를 낳았다지요.” “좌상댁…여식말입니까?” “좌상의 성품이나 정경부인의 인품은 말해 무엇합니까. 입만 아프지. 안 그렇소?” “예. 그렇지요.” “가문도 가문이거니와 좌상과 정경부인 사이에서의 아이는 분명 세자빈으로 손색없을 아이일 겝니다. 세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에요.” 대비의 본심을 들은 중전은 다시금 치맛자락을 꾹 쥐었다. 최숙원은 좌상이라는 말에 가만히 차를 들이켰다. 남몰래 우상댁의 여식을 세자빈으로 점지해두고 있던 중전은 이렇게 또 한 번 대비와 맞서게 되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런 중전의 마음을 읽은 듯 대비는 한 수 굽히고 들어갔다. “하지만 뭐 이건 어디까지나 이 늙은이의 생각인 게지요.” “…….” “중전이 며느리를 보는 것이니, 중전이 생각해두고 있던 규수가 있으시면 이 늙은이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중전 뜻대로 하세요.” 그러고 대비는 흐음, 헛기침을 하며 몸을 살짝 비틀어 앉았다. 중전은 미묘한 미소만 띤 채, 말없이 차만 들이켰다. 둘 사이에 낀 최숙원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가만히 찻잔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자빈은. 늘 그래왔듯이.” “…….” “세자빈 간택령이 내려지고 금혼령이 떨어지는 것은 백성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관례일 뿐이지.” “…….” “다, 미리 점지해두고 간택령을 내립니다.” “…….” “잘, 아시지요 중전? 중전 역시 그리 간택되신 것이니.” “그렇지요, 대비마마.” “세자빈은 이미 정해져있습니다. 최숙원과 주상과 잘 논의하여 세자빈을 간택토록 하세요. 그것이 곧. 하늘의 뜻일 터이니.” * * * 대비 전을 나오며 중전은 붉은 치맛자락을 꾸욱 쥐었다. “이 번만큼은 내 대비전과 맞서고 싶지 않았거늘.” “…….” “어쩔 수 없지. 해보시자는 게지.” “중전마마.” 중전은 대비 전을 한껏 노려보았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대비와 중전이었다. 슬하의 자식 하나 없는 중전이 왕가의 혈통을 중시 여기는 대비에겐 늘 눈엣가시였다. 결국 최숙원의 몸을 빌려 낳은 수안을 원자로 봉하였고 곧 수안은 세자로 책봉되었다. 자신의 배로 낳은 아들이 세자로 책봉되지 않은 중전에게 곧 남은 궁 생활은 시한부와도 같았다. 자신을 이 넓은 궁에서 지켜줄 이는 하나 없었다. 중전은 그래서 세자빈만큼은, 자신의 세력에서 간택하고자 했다. 그래도 자신을 지켜줄, 지금의 왕이 죽고 최숙원의 몸에서 나온 수안이 임금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 넓은 궁에서 쫓겨나지 않고 버틸 힘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의 모후가 아닌 자신이 대왕대비 전에 앉아 그래도 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후에 자신의 자리에 앉게 될 세자빈이 자신이 세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중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이상궁을 불렀다. “우의정을 들라하라.”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세력이자, 폭주하는 야망과 검은 속내를 지닌 어쩌면 지금의 중전과 꼭 닮은 우의정, ‘조민환’을 중전은 늘 가까이 했으며 믿고 따랐다. 그리고 그의 여식인 ‘민선’을 중전은 꼭 세자빈으로 세워야만 했다. “대비마마와 결국 또 척을 지려 하십니까.” “나를. 이 넓은 대궐에서 나를 지켜줄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지금의 전하가 승하하시고 나면 내 목숨 줄은 썩은 동아줄과 다름없겠지. 지금의 좌상은 그 세력이 대단하다고 하나, 언젠간 그 곧고 바른 성품 때문에 좌상의 날개가 꺾일 날이 있을 게야.” “…….” “지금의 전하는 좌상을 가까이 하시겠지만. 후에 세자가 임금의 자리에 앉게 되면.” “…….” “내가 그 세력을 바꾸어 놓아야지. 그때쯤이면 대비도…죽고 없어지겠지.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세자빈만큼은…우의정 여식이 되어야 해. 나도 지금부터 내 목숨 줄 하나는 부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중전마마…듣는 귀가 많사옵니다.” 중전은 붉은 치맛자락을 꾹 쥔 채, 성큼성큼 중궁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중전을 뒤에서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던 최숙원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김상궁.” “예 숙원마마.” “궁궐에 검은 구름이 드리우려 하는 구나. 아무래도 중전마마께서는 우의정댁 규수를 세자빈으로 점지해 두셨나 보다. 은밀히 우의정의 뒤를 살피게.” “예.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나도…다음 보위에 오를 왕세자…내 아들을, 내 방식대로 지켜야 겠습니다, 중전마마.” 최숙원의 푸른 치맛자락이 봄바람에 사뿐 사뿐 흩날렸다. 분홍빛으로 옅게 물든 최숙원의 양 볼이 햇빛을 받아 복숭아처럼 탐스럽게 빛났다. * * *
10월 1일 영화의 일기 - '와일드 로즈'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피하기만 하려 했던 주인공이 스스로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진짜 노래는 시작된다. 영화 <와일드 로즈>는 슬픔을 붙들 손이 있고 아픔을 삭일 눈물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다시 노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B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준우승으로 활동을 시작해 노래와 연기 양면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시 버클리는 노래하지 않는 순간에도 쌓인 이야기를 언제든 내놓을 것처럼 극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봐도 된다"는 응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발판은 누군가의 조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다짐이다. 뮤지션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의 흔한 도식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와일드 로즈>는 전하려는 이야기를 (사운드트랙에만 기대지 않으면서도) 명확히 담을 줄 아는 영화다. 그러니까, 컨트리 싱어라고 해서 꼭 내쉬빌에 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방향이자 과정의 중심지이므로. (2019.10.01.) (작년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런던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국내 개봉은 오는 10월 17일.)
제 7 장. 불량 세자, 수안과 꽃 도령, 민혁 (1)
“오늘 채희가 오는 날이지요?” 채랑은 환히 웃으며 안채로 달려갔다. 곱게 땋은 머리가 찰랑, 찰랑 고운 비단 저고리 위로 사부작이었다. 너무도 곱고 다정한 여인으로 자란 채랑이었다. 자신의 몸종에게까지 쉽사리 말을 놓지 못하여 꽤 오래도록 곤혹을 치룰 만큼,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들에게까지 다정히 대하는, 꼭 자신의 어머니인 채화의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을 고대로 닮았다. “그리도 좋으냐? 채희가 오는 것이.” 채랑과 달리 정경의 낯이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좋지 않으셔요? 꼭 그믐 만에 보는 채희어요. 그동안 잘 지냈을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 지, 걱정 되어요.” 채랑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대문을 왔다 갔다, 하며 채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채랑을 바라보는 정경의 낯이 좋지 않았다. 그런 정경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듯, 좌상은 정경 곁에 나란히 서서는 한껏 들뜬 모습의 채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꼭 십 년하고도 칠 년 입니다. 이렇게 채희를 산 속에 숨겨두고 지내게 하는 것도, 맘 편하지 않습니다, 대감.” “그건 나도 그렇소. 채희와 채랑이와 함께 이 집에서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그럴 수가 없으니….” “혹여나 산 속에서 예 까지 오다, 저잣거리 왈패에게 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산을 나와 한양에 닿는 그 날이면 걱정이 되어 밥 한 톨도 넘길 수가 없습니다.” “부인….” “게다가 혹여, 채희와 채랑이 쌍생아란 말이 새어나가진 않았을까, 그래서 채희의 신변을 노리는 자가 있진 않을까. 하루도 편히 잠드는 날이 없어요.” 정경은 눈물을 훔쳤다. 좌상은 그런 정경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웬 호들갑이야, 채랑아. 조용히 기다려야지. 그러다 소문이라도 돌면 어쩌려고.” “오라버니도 참. 언젠간 그럼 같이 살 채희인데. 쉬쉬한다고 될 일 이어요? 나는 꼭 채희랑 같이 살 테야. 쌍생아로 태어났다고 해서 채랑이만 산 속에 숨어 지내는 건, 너무 싫어.” “쉿, 채랑아….”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된 ‘한이’는 철없이 어리기만 한 채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마당 한 가운데에서 하염없이 대문 밖만 바라보고 있는 좌상과 정경을 발견하곤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그래. 채희는 어디까지 오고 있다더냐. 보낸 이도 어찌 이리 함흥차사인 게야.” “이제 막 한양에 닿았다고 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당도할 수 있겠지?” “그럼요. 아버지가 아끼는 휘영이 직접 호위하지 않사옵니까. 걱정 마십시오.” 좌상 곁에 서 있던 주한 역시, 덩달아 긴장했다. 17년 전, 채희가 이 집을 떠나 산 속으로 몸을 숨기러 들어갔을 때 채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무사로 주한이 따랐었다. 그러고 두 해 년 전부터 주한의 사촌 아우인 ‘휘영’이 주한을 대신해 채희의 호위무사로 채희를 보필했다. “휘영을…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대감마님.” 주한은 좌상을 향해 말했다. 좌상 역시 주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대문 밖을 응시했다. “그럼. 휘영이라면…내가 믿지. 믿고말고.” * * * “아가씨.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가마를.” 휘영은 저 멀리서 또박또박 걷고 있는 채희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채희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장의를 뒤집어 쓴 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가씨.” 이틀 째, 좌상 댁에서 내어준 가마도 마다 한 채 투정 없이 걷기만 하는 채희가 걱정된 휘영은 다시금 채희를 불렀다. 그제야 채희는 걷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서곤 장옷을 걷었다. “내가 무슨 큰 효를 다하였다고 가마까지 타고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곳을 간단 말이냐.” 차가움과 냉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였다. 장옷을 걷고서 드러난 채희의 검은 머리칼이 햇빛 아래에 반짝였다. 까맣고 반듯한 채희의 머리칼. 그리고 그 옆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얀 목선이 참 고왔다. “아가씨. 그런 말씀은…” “부지런히 가자. 오늘 안에 당도하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다시금 장옷을 뒤집어쓰는 채희였다. 채랑과 달리 차가움과 냉정함이 몸에 밴 채희였다. 꼭 좌상인 이한열의 곧고 냉정함을 닮은 듯 했다. 아니 어쩌면 채희의 삶이, 삶의 환경이 그녀를 그리 만든 걸지도 몰랐다. 채희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곱게 자랐더라면 채랑이처럼 다정하고 어여쁜, 살가운 여인으로 자랐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번 좌상 댁에서 보내는 화려한 비단 옷은 마다한 채, 그저 무명실로 지은 옷만 고수하는 채희였다. 곱게 땋아 내린 비단결 같은 머리 밑엔 다 낡아 빠진 댕기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채희의 미모는 채랑보다 몇 곱절이나 더 고왔다. 채랑과 똑 닮은 이목구비였지만 채랑과는 달리 채희의 얼굴에선 차가운, 그러나 찬란한 빛이 나는 듯했다. 봉긋이 솟은 이마와 끝매가 살짝 올라간 검고 짙은 눈초리는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도톰하고 맑은 빨간 빛이 도는 입술은 탐스럽기만 했다. “휘영아.” “네.” “너도…그렇게 생각하느냐?” “…….” “내가…언니의, 그리고 아버님의 위상을, 앞길을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아가씨.” “…요즘엔 자꾸 내가 칼에 베여 죽는 꿈을 꾼다.” “…….” “나의 가슴을 황금빛의 용이 그려진 검으로 누군가가 내려쳐.” “아가씨.” “그러곤 꿈속에서 죽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꿈을 꾸고 나면…무섭거나 슬프지 않아.” “…….” “오히려 속이 후련하고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것들이 잠시나마 벗겨져 나가는 기분이다.” “아가씨.” 채희의 장옷을 쥔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휘영은 그런 채희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곤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도 그 꿈만 반복해서 꾸니, 이젠 그것이 꿈인지…생시인지…분간조차 되지 않는구나.”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채희와 휘영은 한양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휘황찬란한 한양의 저잣거리 모습에 채희는 잠시 부지런히 걷던 걸음을 멈추곤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장사꾼들, 곱게 단장한 채 채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반가의 규수들, 부채로 낯을 가린 채 한껏 분내를 내며 지나쳐가는 기생들. 그리고 그 속에 우두커니 선 채희는 자신은 이 땅 어디에도 동화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채희의 마음을 읽은 듯 휘영은 채희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아가씨, 제 옆에 꼭 붙으십시오. 지체하시다 길을 잃습니다.” 채희는 휘영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휘영에게 곁을 내주었다. 휘영은 채희를 아까보다 더 삼엄하게 호위하며 발걸음을 분주히 움직였다. “한양은 언제와도 적응이 되질 않는구나. 정신이 하나도 없…” 그때,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웬 사내의 허리춤에 놓인 검이 눈에 들어왔다. 금빛이 화려한 용이 그려져 있는 검. 채희의 시선이 곧 그 검에게 빼앗겼다. 동시에 채희의 등골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저것…저 검이야. 똑같아.” 채희는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곁을 스쳐 저 멀리 사라져가는 사내의 검을 고개가 돌아가게 바라보았다. 꿈에서 자신을 연신 베었던 그 검. 그 검이었다. 채희는 오싹해졌다. “정말…꿈이 아니었던 것일까?”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있는 휘영의 옷깃을 꾹 쥐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그자들을 향해 돌렸다. 웬일로, 휘영이 채희의 걸음을 끊지 않고 따라 나섰다. 채희 역시 이리 한 눈 판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쩌면 휘영이 자신의 뜻대로 내버려 두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보통 무사들이 쓰는 검은 아닌 듯 보였다. 몇 번이고…내 꿈에 나와 나를 베는 것이…우연한 꿈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 “어찌…이리도 똑같은 검이 나타날 수가…” 평소답지 않게 말수도 많아졌다. 조금은 상기된 듯 보였다. 채희는 한 손을 장옷을 꾹 쥔 채, 또 한 손은 행여나 휘영을 놓쳐 길을 잃을까 휘영의 옷깃을 꾹 쥔 채 자신의 시선을 뺏은 검을 찬 사내의 뒤를 따랐다. “어? 어디 갔지?” 그러다 그만, 채희의 시야에서 벗어나고만 사내. 채희는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모퉁이를 지나쳐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휘영의 옷깃을 놓았다. “나 잠시만, 저 검을 어디서 구했는 지만 물어보고 올게!”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사내가 돌아선 모퉁이를 향해 잰 걸음으로 걸었다. 채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더듬더듬 모퉁이를 돌아섰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서자, “어…?” 막다른 골목이었다. 사내는…그 검을 찬 사내는 어디로 사라졌다 말이지. 채희는 붉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앗…!” “웬 년이냐!” 채희의 목에 날카로운 칼 하나가 겨눠졌다. * * *
같은 전투 다른 느낌,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이제 곧 대학생분들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덕분에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거 다 미루고책을 잡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아 물론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안 해요. 오늘의 영화는 국뽕 한 그릇 더 추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입니다. 봉오동 전투가 내려가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바톤을 이어받은 작품입니다. 예고편만 봐도 다 본거 같은 느낌은 영화를 보고 난 후 더 확실해지는데요. 처음부터 안 좋은 얘기로 시작하지만, 원래 국산전쟁 영화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전 봉오동에서의 전투와 이번 장사리에서의 전투는 분명히 다른 점을 가집니다. 흥행참패 일단 흥행에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요즘 배급사나 영화관은 일찍부터 싹이 안 좋으면 단칼로 자릅니다. 인기가 상승하는 영화는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오는 현실입니다. 그런 실정에 이제 겨우 100만을 넘은 장사리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흥행은 상대적입니다.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에게 100만은 대박입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우리집이 100만을 넘겼다면 제가 더 좋아했을 겁니다. 그런데 장사리의 손익분기점은 500만에 워너브라더스라는 세계적인 영화사가 참여했죠. 당연히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력은 참...) 작품이 작품인만큼 종합해보면 대규모 배급사의 참여, 전쟁영화라는 무거움는 흥행에 반드시 성공했어야만 하는 부담감이 어느 작품보다 무거웠다는 소리입니다. 이와 비교될 작품은 앞서 말한 '봉오동전투'입니다. 봉오동전투는 500만 가까운 관람객을 동원하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민감한 이슈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핸디캡을 가지고도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왜 이 두 작품은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렸을까요? 가장 첫 번째의 배우의 존재감입니다. 주연에 '김명민'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주연급 역할에 '최민호'는 의문입니다. 단지 아이돌이라서? 그건 아닙니다. 아이돌이나 가수가 연기자로 성공하는 경우도 꽤 많아졌습니다. 단순히 인기가 많거나 잘생기고 예뻐서가 아니라 배우인만큼 연기를 잘했습니다. 도경수, 임시완 등은 이제는 연기자로 더 익숙할 지경입니다. 이하 배우들은 영화에서 주연급을 맡아도 어색하지 않고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최민호는 불안함이 앞섭니다. 지금까지 가수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그에 비례한 노력을 알기에 연기자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면 차근차근 조연부터 시작해 연기력을 다져가야 하는 게 맞습니다. 별 이력 없이 주연부터 시작한다면 연기력 갖춘 무명배우들의 기회는 그만큼 사라질 뿐더러 영화 자체의 성공도 위험해집니다. 소속 회사가 크기 때문에, 아이돌로서의 인기를 병품 삼아 연기를 주연으로 도전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절주절 얘기했지만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이번 작품에서도 최민호의 연기는 합격점을 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빛나는 원석 긍정적인 부분은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 공로자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김성철'이라는 배우는 상황에 정말 잘 녹아들었고 현실적인 학도병을 연기해줬습니다. 작품에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오롯이 간직한 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을 맡았습니다. 장사리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눈물은 어쩌면 이 배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선이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김성철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조연을 연기한 배우들 역시 풋풋하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경이로운 섭외력, 안타까운 결과물 저번 '인천상륙작전'과 세계관을 같이하는 시리즈인가 싶을 정도로 워너 브라더스가 참여한 국산전쟁 영화는 섭외력이 남다릅니다. 리암 니슨, 조지 이즈, 메간 폭스까지면 이들만 합쳐도 미드가 나올 지경입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매번 참담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인기와는 별개로 작품에서 그들의 활용도가 부족합니다. 배우들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억지로 역할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역으로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본래 목적과 멀어지게 영화를 만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세계적인 배우들을 캐스팅했으니까 자동적으로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배우를 찾아 넣는 길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더욱 슬프 건 작품에서 해외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는 점입니다. 잊지 말아달라 한국영화는 늘 이런식이고 전쟁영화는 늘 같은 패턴을 그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감동적이고 분노합니다. 그만큼 한국인의 감정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방법이 통한다는 증거입니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저도 마지막에는 울컥했습니다. 이런 소재로 이렇게 그려내는데 묵묵히 감상하기란 저는 아직 힘듭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현실적인 전투씬에 놀랐습니다. 물론 12세 관람가이기에 묘사에 무리는 있지만 봉오동 전투 때만큼 신화를 연상시키는 비현실적 활약들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죽을만큼 죽고 죽을 상황에서는 죽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영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습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에 희생 당한 청춘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영화나 그렇지만 장사리는 노골적으로 대사나 크레딧을 통해 표현합니다. 영화의 목적이 분명하고 솔직할수록 감상하는 자세는 경건해지기 마련입니다. 그저 그런 전쟁영화 의미가 있다고 좋은 작품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덩케르크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정체성이 강한 전쟁영화라고 보기에도 어렵습니다. 작품성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으니까요. 봉오동 전투에서 국뽕을 다 마셔버린 탓에 후발주자인 장사리는 애초에 흥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덩달아 뻔하디 뻔한 클리셰로 도배된 작품에 이제 관객들은 선택을 보류합니다. 이제는 한국전쟁이나 일제강점을 배경으로 했다고 무조건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커의 흥행력이 보여주듯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눈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기, 자신만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더이상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막대한 제작비와 많은 노력을 들인만큼 제작과정에 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후기라기 보단 넋두리에 가까웠지만 이상으로 '장사리'에 대한 솔직리뷰였습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고 영화 끝난 후 자료화면이 몇개 나갑니다. 관객수는 150만을 넘기긴 힘들어 보이네요.
말 그대로, '가장 보통의 연애'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요즘 조커때문에 영화관이 난리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연속 근무한 소감으론 조커는 악당이고 죽어야해요... 배트맨 도와줘! 오늘의 영화는 말 그대로 평범한? 연애 드라마인 '가장 보통의 연애'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사랑에 대한 진지한 자세도 드러났습니다. 많이 웃었고 울컥했던 현실적인 로맨스코미디였네요. 본격적인 솔직리뷰는 아래에서 더 다뤄보겠습니다. 김래원의 힘 최근들어 김래원의 작품 들이 등장해 괜히 뿌듯한데요. 김래원의 힘이란 선하고 신뢰감이 넘칩니다. 그래서 일상의 삶을 그리는 영화에서는 김래원만의 특징이 더욱 잘 삽니다. 이번 작품에서 저는 김기영과 김래원의 하드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80%이상의 웃음은 이 둘로부터 나옵니다. 김래원 정말 한심한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를 그려내면서도 그만큼 진정성있는 말을 뱉을 수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습니다. 겉멋만 잔뜩 들어간 힘찬 위로가 아닌 다소 거칠더라도 울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런 힘으로요. 이 영화의 연애관 작품은 정말 현실적인 연애관을 그려냅니다. 누군가는 만남과 이별에 연연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또 이별에 과하게 몰입하죠. 얼핏보면 재훈과 선영이라는 인물로 양립된 두 연애관이 격돌한다는 느낌이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영화는 오히려 이 둘조차 사실은 똑같은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단지 단계가 서로 다르며 현재 상황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차이는 다시 영화의 전반적인 전개에 적용돼 서로 모르던 간극이 좁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말에 도달해서는 결국 우리 모두 똑같이 사랑에 약하다는 말로 끝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고 아픔은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해 2명의 좋은 사람이 만남을 가지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못된 만남이나 갈 수록 운명의 상대임을 직감해가는 영화입니다. 재미요소 사실 뻔하고 평범한 보통의 로맨틱고미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인기를 얻는 이유는 장르의 재미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일단 정말 웃기고 재밌습니다. 배우들의 살아 숨쉬는 연기력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습니다. 사회 풍자적 요소와 플러팅은 익살스럽고도 날카롭습니다.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는 비현실적이거나 판타지가 아닙니다. 당장 야심한 밤거리 싸우고 있는 몇몇 커플들만 찾아서 봐도 나올 수 있는 플롯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대사가 공감이 됩니다. 방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속 상처를 드러내 서툴게 만져주는 느낌입니다. 그거 다 기분 탓이야.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도 나중가면 또 억울해.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는 같잖은 위로해준답시고 속으로는 다 너 한심하게 본다고. 그러니까 애쓰지말라고. -재훈(김래원)- 자신의 연애경험에 비추어 봐도 좋고, 연애경험이 없다면 상상해봐도 좋을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주인공들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보기는 2가지가 있습니다. 재훈과 선영이라는 2지선다가요. 하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어차피 사랑으로 아파하고 사랑때문에 다시 행복해지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단지 용기를 내고 극복할 수 있느냐, 정신 차리고 앞을 볼 준비가 되어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조커로 정신이 혼돈으로 가득차신 분들은 오랜만에 가벼운 멜로영화보면서 기분전환하면 됩니다. 재밌는 영화가 그리운 분들에게 또한 추천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직접 느끼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오늘 리뷰는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상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였습니다.*쿠키영상은 없습니다. 관객수는 200만 정도 예상합니다. (조커가 예상보다 더 큰 흥행을 할 수도 있기에...)
제8장. 불량세자 수안과, 꽃 도령 민혁(2)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칼, 꿈속에서 보았던 그 금빛용이 그려져 있던 검. 순간 채희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수차례 꿈속에서 자신을 내려쳤던 그 검이, 지금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까닭에 금방이라도 이 검이 자신의 가슴을 베고 스칠 것 같단 생각에 숨통이 죄어 오는 듯했다. “흐읍….” “정체를 밝혀라!” 채희가 겁에 질려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하고 가쁜 숨만 내뱉으며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때, 그런 사내 뒤로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 한 도령. “놔두거라.” “…하지만.” 부채를 활짝 펴, 얼굴을 가린 채 채희 앞에 우뚝 선 도령.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갑작스레 등장한 도령을 올려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고운 비단 도포를 입은, 코와 입을 가린 채였지만 한 눈에 봐도 수려한 외모가 돋보이는 듯한, 사대부가의 자제인 듯 했다. 채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붉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하오. 내 잠시 그쪽에게 볼일이 있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에게 볼일이 있어, 본의 아니게 뒤를 따르게 된 채희였기에 채희는 정중히 도령의 호위무사 쯤으로 되어 보이는 사내에게 미안하다, 말을 건넸다. 그런데, “허허허허.” “……?” “그리 미안할 것은 없소. 한 두 번 겪는 일은 아니니.” 왜 그 옆의 도령이 대신 채희의 말에 대꾸를 하는 것인지, 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도령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령은 펼쳤던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더니 이내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채희를 응시했다. 억, 소리 나게 경탄스런 미공자였다. 뽀얀 피부며, 날카로운 턱선, 매섭지만 길고 시원스레 뻗은 눈. 게다가 사내인대도 풍성한 속눈썹까지. 사내이지만 요염한 색까지 지닌 듯 했다. 채희는 가만히 도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도 저자에 내 외모를 두고 옥골선풍이라 칭하여 반가의 규수들이 그저 내게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볼까, 이리 졸졸 따라오는 것이.” “…….”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더냐.” 도령의 말에 채희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도령을 바라보았다. 자아도취 해, 자기 칭찬도 마다않고 하는 도령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령은 가만히 채희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차가운 미소마저 거둔, 싸늘한 얼굴로 채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서, 누구에게서 그런 소문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 “내 성격은 불량스럽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단, 그런 소문은 듣지 못하였소?” “네?” 채희는 갑작스런 도령의 질문에 흠칫 놀라며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은 놀란 기색의 채희를 바라보던 도령은 피식, 차가운 그러나 속된 말로 ‘네 가지’없는 실소를 흘렸다. 채희의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다. “뭐 나와 어찌 해보려 내 뒤를 밟은 것이면. 헛짓을 한 것이지.” “헛…짓.”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것들을 헛수작이라고들 하지.” “…….” “그래보았자 내 눈엔 다…돌덩이에 불과하거늘.” 그 말에 채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풉….” “……?” “그러하군요. 예. 자기도취하실 만한 인물이십니다.” “뭐…라?” “그런데 송구하게도 제가 볼일이 있어 따라온 것은 도령이 아니라 이쪽 무사인데. 어쩌지요.” 채희는 딱딱한 어투로 그리 말하며 용의 검을 지닌 무사를 바라보았다. 도령은 뜻밖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듯, 물끄러미 채희만 바라보고 섰다. 그때, 저 멀리서 휘영이 번개처럼 날아와 채희를 겨누고 있던 칼을 매섭게 처냈다. 덕분에 용의 검은 저 멀리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감히 뉘 안전이라고!”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가씨란 말에 도령은 채희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허름한 무명 치마저고리에, 다 낡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이런 호위무사의 호위를 받을 만한 반가의 규수라니. 도령은 채희를 위아래 훑었다. 그런 도령의 시선을 느낀 채희는 더더욱 장옷을 여미며 무사와 도령을 바라보았다. “되었다, 휘영아. 미안하게 되었소. 내 경솔한 행동거지에 일이 시끄럽게 되었습니다.” “…….” “내 이 무사가 든 검이 낯이 익어, 출처를 묻고자 이리 뒤를 쫓게 되었습니다. 무례하였다면 사과하겠소이다.” 한없이 차갑고 딱딱한 어투였다. 다정함이라곤 티끌도 찾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도령은 정말 채희가 자신에게 말을 붙이고자 뒤쫓아 왔음이 아니란 것을 알고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무, 무…례까지야. 흠, 흠.” “그런데. 무례는 그쪽 도련님도 만만찮으신 것 같은데.” “무엇…이라?” 한 ‘네가지’없기로 소문난 도령이었다면 채희 역시 소문만 나지 않았다 뿐이지 만만찮은 성깔을 지닌 인물이었으니. 채희는 지지 않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도령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미색이 뛰어난 것은 알겠사오나.” “…….” “그렇다고…아무 여인네에게나…그리 오해를 하시고…섣불리 언행을 행하신다니요.” “…….” “그런 소문은 내 듣지 못했으나, 소문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미색은 뛰어나나 성격이 불량스럽다.” “뭐라?!” “도련님의 미색만 보고 뒤쫓은 여인네들의 행실이 참으로 헛수고이겠습니다. 한양의 규수들은 사내보는 눈이 그리 없다니, 자처해서 돌덩이들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군요.” “……?” “그럼, 이만. 가자, 휘영아.” “예. 아가씨.” “저…저!” 그러곤 도령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곤 여지도 두지 않고 홱, 돌아서서 가버리는 채희였다. “저렇게…보내도…되겠습니까, 저하. 저하를 헤아려는 무리에서 보낸 자일 수도 있습니다.” 도령은, 아니 세자 ‘수안’은 민망함에 얼굴마저 발그레 해진 채, 멀어져가는 채희의 뒷모습을 보았다. “허참! 어느 댁 규수이기에…나를 보고도 저리 쌀쌀맞게 구는 것일까.” “…….” “나를 노린 것이 아니고 참으로 너의 검 때문에 뒤를 따른 것 같으니. 그냥 두어도 되지 싶다만 이것 참…웃을 수도…울 수도 없는 상황이구나.” 그리고 그런 모퉁이에서 세자 ‘수안’과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다른 도령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는 채희를 말없이 응시했다. 곁눈도 주지 않고 곧장 앞만 보고 걷는 채희. 그런 채희를 바라며 또 다른 도령은 자신의 옷깃을 만지작였다. 여전히 자신의 옷깃에서 채희의 온기가 묻어 있는 듯했다. “저…”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려 했지만 너무도 재빠르게 지나치는 탓에 도령은 채희를 미처 잡지 못했다. 도령은 가만히 멀어지는 채희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좀 전의 상황을 다시금 상기하며 도령은 팔짱을 꼈다. ‘정말…꿈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웬 여인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쥐었다. 도령, 민혁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았는데 웬 허름한 차림의 여인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쥐고 있었다. 민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여인의 손을 빼내기 위해 팔을 올렸는데, 하도 도포를 당기는 힘이 세, 민혁은 이리저리 여인에게 끌려 다니고 말았다. ‘보통 무사들이 쓰는 검은 아닌 듯 보였다. 몇 번이고…내 꿈에 나와 나를 베는 것이…우연한 꿈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 ‘어찌…이리도 똑같은 검이 나타날 수가…’ 여인이 왜 검에 관심을 가지나, 민혁은 까치발을 들고 서서는 이리저리 살피는 여인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그리 보고 있는 것인지…. “…….” 민혁은 가만히 장옷 사이로 보이는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장옷에 절반 넘게 가려져 그 얼굴이 확실히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언뜻언뜻 보이는 여인의 외모는 보통 미모는 아닌 듯하였다. 봉긋 솟은 이마와 오똑선 콧날, 그리고 굳게 다문 앵두 같은 입술이 장옷에 채 가려지지 않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혁은 넋을 놓고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 나 잠시만, 저 검을 어디서 구했는 지 만 물어보고 올게!’ 그러더니 곧, 여인은 자신의 도포자락을 휙 놓더니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민혁은 바람처럼 자신에게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그 여인이 못내 궁금했다. 누구와 착각을 해, 자신을 이리 끌고 온 것인지, 정신을 놓을 만한 해이한 여인은 아닌 듯 했는데. 민혁은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여인이 사라진 곳으로 따라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 곳엔! “하…” 세자 수안과 그 여인이 맞닥뜨리고 있었다! 민혁은 흠칫 놀라며 수안의 호위무사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그 여인을 곤경에서 도와주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그 여인의 호위 무사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여인을 감쌌다. 도대체…정체가 무엇일까, 민혁은 허름한 차림이었지만 목소리에서나 자태에서나 뿜어져 나오는 당당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느꼈다. “그런데. 무례는 그쪽 도련님도 만만찮으신 것 같은데.” 한 성질 한다는 세자에게도 지지 않고 할 말을 다 내뱉고서야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에, 괜히 민혁은 피식 웃음이 났다. 세자에게 한바탕 면을 주고 매몰차게 돌아서서 지나치는 여인이 연신 궁금한 민혁이었다. 달려가 여인을 붙잡고 이름이나 물어볼까 했지만, “…어, 민혁.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수안이 어느덧 민혁 곁에 와 섰다. 민혁은 멀어져가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수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잠깐 길을 잃어서…그러는 저하께선 잠행 중이십니까.” “나야 뭐, 늘 그런 것 아니겠나. 그런데 길을…잃어?” 수안과 민혁은 어릴 때부터 절친하던 벗이었다. 동갑내기이자 함께 무예와 도술, 그리고 학문을 익히며 자라온 학술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수안도 수안이었지만 민혁 역시 수려하고 훤칠한 풍채였기에 도성의 반가 규수들은 죄다 수안과 민혁의 얼굴 한 번 보고자 줄을 섰더랬다. 민혁의 가문 역시, 세자에 견줄 것은 못되었지만 그 기상은 대단하였다. 민혁의 친부는 한양 최고 실세인 우의정이었고 그의 누이는 세자빈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최고의 가문이었기에. 두 도령이 나란히 서서 한양을 걷는 날엔, 혼기 찬 규수들은 물론이거니와 규수들을 모시는 여종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둘의 자태를 감상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안은 길을 잃었단 민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민혁의 눈길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았다. “네.” “……?” “무언가에 홀린 듯, 예까지 왔습니다.” “…홀리다니? 자네가 무엇에 홀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것이 꼭 바람과도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 “온기조차 남지 않았는데.” “…….” “마음 한편이 연신 울렁입니다.” “허허, 자네. 연심을 품은 여인네라도 있는 것인가?” 연심이란 세자의 말에 민혁은 피식 웃으며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연심이라뇨. 한양에서 눈 높기로 소문난 제가 연심은…가당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는 말 아닌가. 마음 한편인 연신 울렁이고, 홀리듯 예까지 당도했다는 것이 꼭 연심을 품은 여인네 뒤를 쫓다 길을 잃은 모습과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세자의 말에 민혁은 어느덧 흔적조차 없어진 채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곤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봄 날에, 스쳐지나간 바람이라 일러두지요. 훗, 다시 내 곁을 스친다 해도 알아보지도 못할 바람이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