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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신문/와세다 출신 금융맨이 말하는 ‘경제 일본어’를 소개 할께요...

재팬올이 ‘경제 일본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연재를 하는 이는 도쿄에 거주하는 일본인 고야나기 노부미치(40)씨입니다. 고야나기씨는 경제 기사도 전해주고, 일본어 표현도 함께 가르쳐 줍니다.

일본 명문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고야나기씨는 미국 유학 후, 현재는 글로벌 외국계 은행 웰스파고 도쿄 지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제 일본어’ 4회는 일본 신문 발행 부수 감소에 대한 내용입니다. 고야나기씨는 “4000만부 선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일본은 아직 여력이 있어 보입니다. 정작 위기는 한국 신문업계 아닐까요.<편집자주>


신문이 위기를 맞고 있다.(新聞が危機を迎えている) 예전에는 “세계에서 일본인만큼 신문을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世界で日本人ほど新聞を読む人たちはいません)라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선 “신문이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新聞が消滅の危機に直面している)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산케이의 5개지가 전국지(발행부수 순)로 지칭되며, 5대 종이신문이라고 불린다.(5紙が全国紙と称され, 五大紙とも呼ばれる)

하지만, 요미우리의 1000만부 시대는 막을 내렸고(読売1000万部の時代は幕を閉じ), 일본인의 ‘신문 이탈’도 멈추지 않고 있다.(日本人の‘新聞離れ’も止まらない) ‘신문 광고는 효과가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 것도 오래다.(新聞広告は効果ないという声を聞くようになって久しい)

따라서 향후 10년, 신문사가 도산에 빠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そのため今後10年、新聞社が倒産に追い込まれる可能性が、どんどん高まっているという) 그 배경에는 인터넷 보급, 신문에 대한 신뢰감 상실, 인구 감소 등이 있는 것 같다.

매년 1월 일본신문협회가 신문 총 발행 부수를 발표한다. 2018년(10월 기준) 드디어 4000만부 선이 무너졌다.(遂に4000万部の大台を割り込んだ). 2017년에 비해 222만 6000여 부가 감소해 3990만 부에 이른 것이다. 신문 발행 부수 피크는 1997년의 5376만 5000부였으니, 21년 사이에 비율로 25.8% 감소해 4분의 3이 된 셈이다.(率にして25.8%減、4分の3になったわけだ)

심각한 것은 부수 감소에 전혀 제동 걸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まったく歯止めがかかる様子が見えないこと) 신문 쇠퇴에 제동을 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新聞紙の衰退に歯止めをかけることはほとんど不可能に近く) 되었다.

이대로 가면(このままでいくと), 정말 종이 신문이 소멸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신문사도 기획광고 등 다양하게 생각을 짜내고 있지만(工夫を凝らすが), 광고를 얻는데 고생하고 있는(広告を取るのに四苦八苦している) 신문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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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서 얼굴에 젖살도 빠지지 않은 여자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빨래는 아주 힘든 노동입니다. 하지만 답답한 날씨에 시원한 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별 대단치도 않은 일에 까르륵 웃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일본인들이 여자아이들을 강제로 데려갔고,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환하게 웃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부산과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끌려다니며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은 소녀들의 삶을 모두 무너뜨렸고, 새하얗던 소녀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일본군에게 다시 잡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소녀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빨래터에서 친구들과 끌려간 이효순 할머니. 21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미치도록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그리고 2015년 5월 27일, 91세의 이효순 할머니는 마음속 한을 풀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 =====================================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말합니다. ‘어떤 강제도 없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스스로 자원한 것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했다. 지금 이러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 앞에 당당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것에도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연한 진실을, 분명한 역사를, 당당한 사과를 그들에게 원할 뿐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어린 소녀는 어느덧 주름과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소년은 자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8월 15일 74주년 광복절입니다. 잘못된 역사는 잊히는 순간 또다시 반복됩니다. 다시는 짓밟힌 할머니와 착취당한 할아버지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김학순 할머니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역사왜곡 #다시일본패망 #일본망언 #진실 #8월15일 #광복절
삼성 갤럭시노트8 vs LG V30...당신의 선택은?
두 스마트폰 모두 듀얼 카메카 적용, 카메라 기능 강화...S펜·오디오 등 각 시리즈 특징 살려 LG전자의 새 전략 패블릿(폰+태블릿) V30이 지난달 31일 공개되면서 갤럭시노트8의 대전에 서막이 올랐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8이나 LG전자의 V30모두 6인치 이상의 디스플레이를 가진 태블릿인데다가 오는 21일 국내시장에 정식 출시된다. 두 스마트폰 모두 퀄컴의 최신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835를 적용했고(갤럭시노트8의 국내 모델은 엑시노스 8895), 베젤리스를 통한 디스플레이 확대, 18:9 이상의 디스플레이 비율, 듀얼 카메라 적용 등 비슷한 기능을 갖췄다. 출고가의 경우 확정되지 않았지만 갤럭시노트8(64GB)의 경우 100만원대 후반, V30(64GB)의 경우 90만원대 후반이 유력하다. V20, V10 등 전작에 비춰볼 때 V30이 갤럭시노트8보다 10만원 선에서 저렴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신 패블릿이 필요한 이용자를 위해 갤럭시노트8과 V30의 특징과 장단점을 비교·분석했다. 최신 AP를 적용한 갤럭시노트8·V30, 램은 갤노트8이 높아 갤럭시노트8이나 V30의 경우 최신 AP를 적용했다. 갤럭시노트8은 삼성의 엑시노스 8895 프로세서나 퀄컴의 스냅드래곤 835 프로세서를 지역에 따라 교차 적용하고, LG V30은 스냅드래곤 835를 사용한다. 국내 갤럭시노트8 모델의 경우 엑시노스 8895를 사용한다. 두 칩셋 모두 10나노 공정으로 만들어진 모델로 삼성과 퀄컴의 최신 프로세서다. 단, 갤럭시노트8에 사용하는 엑시노스 8895 프로세서는 5CA(5개 주파수 대역 묶음 기술)이 지원되지만 스냅드래곤 835의 경우 4CA만 가능하다. LG V30의 경우 램이 4GB인 것은 아쉽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의 경우 램이 6GB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8플러스 128GB모델에 한해 6GB 램을 적용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조준호 LG전자 MC사업본부장은 고객가치에 대비해서 원가를 보는 건데 우리가 판단할 때는 80~90% 소비자한테는 램 4GB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술에 집중해 새로운 것을 시도 하는 쪽으로 갔다면 심각하게 고려를 했을 텐데, 주류 고객을 생각하고 기획했다. LG전자의 경우 V30을 64GB와 128GB(V30플러스)를 내고,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8을 64GB와 256GB로 출시한다. 두 모델 다 듀얼카메라 등 카메라 성능에 집중, 조리개값은 V30 우위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8에 처음으로 듀얼카메라를 적용했다. LG전자의 경우 이미 V10때부터 듀얼카메라를 담아왔다. 두 스마트폰 모두 후면에 듀얼 카메라를 적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갤럭시노트8의 경우 하나의 카메라는 광각, 다른 하나의 카메라는 망원 렌즈이다. 두 카메라 모두에 OIS(손떨림방지기능)이 적용돼 안정감 있게 촬영이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인물 사진 촬영 시 배경의 흐림 정도를 화면에서 확인하면서 조정할 수 있는 라이브 포커스(Live Focus) 기능,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해 다양한 분장을 해주는 스티커 기능, 원경 사진과 인물 사진을 동시에 찍을 수 있는 듀얼 캡처 기능도 담았다. 전면에는 800만 화소로 오토포커스 기능이 들어가고 후면 2개의 카메라는 각각 1200만 화소다. 후면 광각렌즈에는 듀얼 픽셀이 담겼다. LG전자 V30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에 확실히 앞서는 것은 조리개다. 갤럭시노트8도 f1.7 값의 밝은 조리개를 담았지만 LG V30은 f1.6이다. 조리개의 경우 숫자가 적을수록 더 많은 빛을 받아들여 어두운 상황에서 촬영이 더 용이하다. V30의 후면 듀얼 카메라는 1600만 화소의 일반각과 1300만 화소의 광각 렌즈로 구성됐다. 또한, 초소형 카메라 모듈을 적용해 전작보다 카메라 크기를 크게 줄였다. LG전자는 f1.6의 조리개값을 위해 후면 표준렌즈를 구성하는 6장의 렌즈 중 빛을 직접 받아들이는 첫 번째 렌즈에 글라스 소재인 ‘크리스탈 클리어 렌즈’를 스마트폰 최초로 적용했다. 이 렌즈는 기존 플라스틱 렌즈보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높아 정확한 색감과 질감 표현이 가능하다. LG전자는 V30에서 전문가 모드를 통해 더 깊이 있는 사진을 이용자가 쉽게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 모드를 통해 이미 내장돼 있는 전문가의 사진 중 하나를 고르면 조리갯값, 화이트밸런스, 셔터스피드 등 카메라 설정을 선택한 사진과 똑같이 할 수 있다. 갤럭시노트8 S펜 vs V30 오디오 무엇보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시리즈의 상징은 S펜이고, LG V시리즈의 강점은 B&O와의 협력을 통한 오디오다. 삼성과 LG 모두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과 각 시리즈의 장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갤럭시노트8에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GIF(움직이는 이미지 파일, 움짤)을 직접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했다. 갤럭시노트8은 사용자가 직접 S펜으로 GIF를 제작하고 다른 이용자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라이브 메시지’ 기능을 제공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S펜으로 직접 그린 글자와 도형이 최대 15초 분량 정도 GIF 파일로 만들 수 있다. GIF 파일은 갤러리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V30에서는 잡음을 줄이는 하이파이 쿼드 DAC(Digital To Analog)을 적용했고 오디오 전문업체 B&O 플레이의 기술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점은 전작 V20과 같다. V30은 터치 한 번으로 선호하는 음색만을 골라 들을 수 있도록 한 ‘사운드 프리셋’ 기능이 새롭게 더해졌다. ‘디지털 필터’ 기능을 이용하면 소리의 울림인 잔향을 조정해 음악의 장르에 최적화된 사운드를 3가지로 나눠 즐길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 최초로 대용량 하이파이 고음질 음원을 저용량으로 압축해 스트리밍으로 즐길 수 있는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 규격을 새롭게 지원한다.
[팩트체크]터키방송 文대통령 흉악범 이미지는 일베 짓?
이방카와 찍은 사진 확인… 키워드 및 이미지 검색결과 일베 연관성 못 찾아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보도한 터키의 한 방송사가 공식 사과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터키 쇼티브이(ShowTV)는 11일 밤(현지시간) 뉴스 프로그램 말미에 한국 대통령과 국민에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방송의 고의성을 두고 국내에선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13일 온라인 커뮤니티엔 '문 대통령 터키 방송국 해프닝 내부자가 있는 듯'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2014년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의 페이스북 '좋아요’가 대부분 터키에서 눌러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당시 시도지사 후보 중 좋아요 수치가 가장 높은 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9만 3천이었고, 남 지사는 1만 3929였다. 이를 좋아요 클릭 출처를 분석해 주는 '팬페이지 카르마' 사이트로 분석했을 때 박 시장의 좋아요는 94.7%가 한국, 남 지사는 92.3%가 터키였다. 터키에 있는 사람들이 남 지사를 지지한다는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남 지사 외에도 홍준표 당시 지사도 좋아요의 대부분이 터키에서 클릭된 것으로 나타났다. 홍 대표에 좋아요를 누른 전체 9556명 중 7658명이 터키에서 누른 것으로, 약 80%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를 두고 터키에서 '좋아요'를 사온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남 지사와 홍 대표는 모두 모르는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이들과 정 반대의 정치성향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을 욕 보이기위해 일부 편향된 성향을 가진 터키인이 이번에도 고의로 일을 꾸민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일베를 의심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방송사의 직원 중 일베회원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는 글을 적기도 했고, 다른 누리꾼은 "정말 뒤에서 이상한 짓을 다 했다”고도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이방카와 만난 사진을 피살된 여성 사진과 나란히 편집했다. (사진=청와대, 연합뉴스) 과연 그럴까? 문제의 방송 이미지는 터키의 유명 오락채널인 '아나 하베르’가 필리핀 국적의 가사도우미가 쿠웨이트에서 살해된 뒤 냉동고에 유기됐던 사건을 25일 저녁(현지시간)에 보도하면서 사용됐다. 시신 발견 소식이 전해진지 하루가 지난 다음이었다. 문 대통령과 피살된 여성의 사진을 나란히 편집해 놓은 것이다. 문제의 이미지를 문재인 대통령의 그 동안의 사진과 대조해 보니 해당 사진은 2월 23일 청와대 만찬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방카 트럼프와 만나서 찍은 사진의 일부분으로 확인됐다. 터키 방송사가 포털사이트에서 용의자 이미지를 찾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사이트인 구글과 터키 대표 포털사이트 얀덱스(yandex.com) 등을 뒤져봤다. 기간은 시신 발견 직전인 2월 22일부터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된 25일로 한정해 백만장자, 살인, 가사도우미 등 살인 사건과 연관된 20여 개의 키워드를 넣어 해당 사진(문재인-이방카)이 검색되는 지 확인해 봤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검색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해당 이미지를 가지고 검색해봤다. 혹시라도 해당 이미지와 일치하는 이미지에 누군가 고의로 엉뚱한 설명을 달아놨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미지 검색 결과물에서 이방카나 문재인 같은 올바른 키워드를 빼고 결과물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문제 될 만한 설명 글을 13일 오후까지는 찾기 어려웠다. ▶ 노컷뉴스 추천기사
지역민을 가게로 끌어들인 ‘167년의 경영 전략’
재팬올 서포터즈인 선설아씨가 일본 방송프로그램(‘캄브리아 궁전’, ‘가이아의 새벽’)을 모니터링 하고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에는 4월 4일 ‘캄브리아 궁전’에서 방송된 만쥬(饅頭) 기업 카시와야(柏屋)의 성공 비결을 전합니다.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일하는 선씨는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편집자주> 후쿠시마의 명물, 일본 3대 만쥬(饅頭), 창업 167년. 일본 음식을 잘 아는 일부 한국 독자라면 “아~ 그 가게”라며 무릎을 칠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독자는 후쿠시마가 주는 ‘기피 이미지’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 만쥬(만두)는 팥앙금 등을 넣은 달콤한 빵 또는 떡을 말한다. ‘캄브리아 궁전’에 소개된 회사는 만쥬(饅頭)를 만들어 파는 카시와야(柏屋)라는 곳이다. 카시와야가 창업한 건 1852년, 올해로 창업 167년을 맞았다. 창업주는 혼나 젠베이(本名善兵衛)라는 사람이다. 지금은 5대 째인 혼나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카시와야는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27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매출은 40억원이라고 한다. 카시와야의 만쥬는 곧 ‘우스카와 만쥬’(薄皮饅頭)다. 얇은 피 안에 적당히 단맛을 내는 팥앙금이 가득차 있다. 식감과 맛이 좋아 지역 주민에게 인기가 높다. 이 가게가 167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혼나 사장은 “지역 주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 카시와야의 ‘행복 경영술’이 숨어있다. 이 회사의 지역 친화 전략 2가지를 든다면, 월1 회 개최하는 차 모임과 시 모임이다. ‘마을의 툇마루’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카시와야는 매월 한 차례 아침 6시부터 차 모임을 연다. 이른 새벽부터 30명 이상의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다. 이 모임에는 우스카와 만쥬와 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참여자는 학생,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이른 아침에 차 모임을 여는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만쥬를 먹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만쥬 먹는 기회를 더 제공하겠다”는 것이 카시와야의 생각이다. 카시와야는 월 1회 시 모임도 열고 있다. 1958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6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시 모임은 아이들을 주대상으로 한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과 점포가 함께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차 모임, 시 모임 외에 매년 만쥬 축제도 개최한다. 점포 내에서 만쥬 만들기 체험을 하고 무료로 나눠준다. 카시와야가 전국에서 유명해진 건 점포 옆에 만쥬신사(萬寿神社)를 만들면서다. 1957년의 일이다. 경내에 20톤이나 되는 큰 만쥬 모양의 바위를 갖다놓았다. 한자 만수(萬寿)는 만두를 뜻하는 만쥬와 서로 통한다. 이해를 돕자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케 구보타 만쥬(久保田 萬寿)를 생각하면 된다. 한자 만수(萬寿)는 장수, 축복, 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민들은 이 신사를 ‘파워 스폿’(power spot: 기운을 받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지역주민들에게 사랑 받았던 카시와야도 몇 번의 폐업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1986년 태풍으로 홍수가 발생해 공장이 전부 침수됐다. 2011년 3월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후쿠시마 음식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영도 치명타를 입었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사업은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카시와야의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 봤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영업을 재개 했을 때, 손님들이 다시 와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가게로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다행이네요’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 겹도록 기뻤습니다.” 카시와야의 이런 모습은 사훈(社訓)과도 일치한다. 초대 사장이 만든 ‘진심으로 감싼다’(まごころで包む)이다. ‘감싼다’는 말에는 회사가 고객을 감싸는 것, 고객이 회사를 감싸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혼나 사장은 사원들에게 히트상품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가 남다르다.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트상품이나 붐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처음에는 히트치지 못해도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재난을 극복해 오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준 카시와야(柏屋)와 지역 주민들. 단언컨대, 카시와야 만쥬의 맛은 ‘달콤함’에 있지 않고 ‘정겨움’에 있지 않을까. <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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