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r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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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것만은. 일행 둘이 흡연을 하러 나가버리고,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울어버리고 만다. 마흔을 목전에 둔 유부남인 그가 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족발을 앞에 두고. 마흔이 넘은 사람도 애처럼 울 수 있고, 남자도 충분히 울 수 있지만 이런 식은 조금 곤란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것도 족발 앞에서. 그는 오랜만에 엉망으로 취했고, 내가 얼마 전 모 매체와 했던 인터뷰 기사를 지적했고, 시종일관 나를 염려하며 내가 꼭 자살할까 봐 걱정이 된다는 식의 말을 한다. 한때 시를 썼던 그는,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런 것이 혹시라도 존재한다면, 시심(詩心)이라든가 시흥(詩興) 같은 것에 과하게 취해있다. 그는 내 지난 비극적인 시들에 너무 과하게 몰입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래서 소격 효과라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한다. 나를 오판했다고 진지하게 그에게 말해주자 그는, 알겠다고, 너는 자살할 용기도 없는 새끼라고, 번복한다. 그래서 내가 자살을 한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진다. 나도 그것이 무척 알고 싶어진다. 영업 종료 시각에 맞춰, 우리가 일어섰을 때, 그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한다. 그의 점퍼에 시뻘건 막국수 양념이 잔뜩 묻는다. 나는 그것을 닦아주느라 애를 먹는다. 그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머지 일행들과 한잔을 더 기울인다. 이제 우리가 한가하게 문학 얘기나 하기에는, 각자의 생계가 너무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버거운 한 권의 책이 우리 사이에 놓여 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쩌다 과거로 넘어간 한 남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본다. 그가 젊은 날의 변변찮은 아버지와 조우하여, 애틋해지는 마음을 본다. 그것을 보며 오랜만에 나도 펑펑 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는 어쩌면 눈물을 가득 따라놓은, 그래서 금방이라도 그것이 넘쳐흐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잔들인지도 모르겠다.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다고 한 사람에게 말한다. 누군가 내가 자살할까 봐 염려하더라는 얘기 같은. 그는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너의 사인(死因)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는 닭에 염장을 하지 않아 무척 맛이 없던 닭집에서 내게 욕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사실 전날 새벽에 나는, 그에게 맥락도 없이 너는 사람 새끼도 아니라는 식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그런 문자를 시시때때로 받는 사람이라면, 그런 문자를 보낸 사람을 굳이 죽이고 싶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너의 사인은 타살일 것이라고 저주 정도는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의 당위성을 갖췄다고. 사실 나를 염려하며 울던 사람은 지독히도 장난이 심해서, 그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그건 족발집의 일행들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들은 늘 그에게 ‘당신 사전에 자연사(自然死)란 없다’라고 응수해오던 차였다. 또한 그의 뒤통수에서 선지를 꺼내어, 선짓국을 끓이자는 식의 살벌한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래저래 나와 더불어 당신들의 사인이 궁금해지는 날이다. 눈이 온다. 눈이 펑펑 온다. 누군가는 펑펑 울고, 무언가는 펑펑 온다. 이왕 같은 부사를 쓰는 김에, 돈이나 펑펑 쓰고 싶어진다, 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눈이 펑펑 오는 날, 돈을 펑펑 쓰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펑펑 우는 그런 사람. 그런 이야기. 그런 정황. 그건 그렇고, 좋아하는 배우가 입은 패치 데님 셔츠를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브랜드와 가격을 알아냈지만,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다. 그 데님 셔츠를 입고 거리를 걷는 상상을 한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좋아하는 배우가 입은 멋진 패치 데님 셔츠를 입고, 돈을 펑펑 쓰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펑펑 우는 그런 사람. 그런 이야기. 그런 정황. 너는 한국 여자 운운하는, 모르는 중년의 남자가 무례하게 접근해왔다고 얘기해온다. 특별히 험한 일이 없었다니 다행이지만, 이 문장을 써놓고는 한참을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나의 무력한 언어에 조금 진절머리가 난다. 막국수 양념이 잔뜩 묻은 일상다반사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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