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um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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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을 보내는 M모씨의 하루


아침에 눈비비고 일어난 대학생 m모씨..
모처럼 대보름을 보내보도록 한다.


대보름엔 역시

오곡밥이지!!

어젯밤 미리 지어둔 오곡밥을 밥그릇에 푼다.

찹쌀, 찰수수, 기장, 검은콩, 붉은팥

이 들어갔다.

그리고 마트에서 사온

묵은 나물

을 꺼낸다.


*묵은 나물이란?!

도라지, 호박, 시래기, 고사리 등 말려서 저장해둔 나물을 물에 불린 뒤 무쳐 먹는 것.


한상 차려두니 매우 맛깔스런 비쥬얼이 탄생했다.
M모씨는 콩을 싫어하지만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이기에

몇개만 먹어보도록 한다.

육식주의자인 M모씨..
먹다보니 풀떼기들이 입에 물린다.
엇이거,, 비빔밥각..?!

얼른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는 고추장을 꺼내려는데,
전화벨이 따르르를응ㅇㅇ 울린다.

"대보름엔 비벼먹으면 안된다~!!!!"


엄마의 전화다.
보름밥을 비벼먹으면
논밭에 잡초가 무성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비벼먹는건 안된다고 한다.

솔직히 참기름 솔솔 뿌리고
계란후라이 딱 올려먹고 싶지만
참아보도록 한다.


밥을 다먹은 M모씨. 친구들을 만나러 나왔다.
각자 손에는 깡통이 하나씩 들려있다.

쥐불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기다란 줄에 불을 달고 빙빙 돌리면서 논둑에 불을 놓는다.
m모씨는 도시 사람이기에
학교운동장에 모였다.
깡통에 불을 붙여 빙빙돌리며

해충이나 잡초, 쥐구멍을 태운다.

오곡밥 먹고 힘이 솟은 m모씨.
비쥐엠에 맞춰서 열정적으로 쥐불을 돌린다.

꿀팁: 비쥐엠으로는 '뱅뱅뱅'이 적당하다.



마무리는 역시 술이다.
맥주? 소주? 와인?
NO.
대보름엔

귀밝이술을 마셔줘야 한다.

한해의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통은 아침 식사 전에 맑게 마셔야 하지만
요즘같이 밤이긴 현대에는 밤에 마셔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m모씨 피셜)
보통 막걸리같은 탁주보단 맑은 청주를 차갑게 마셔준다.


술이 달아오른 m모씨와 친구들..
술자리엔 술게임이 빠질 수 없다.
게다가 오늘은 특별한 정월대.보.름.
대보름엔 술게임도 특별하다.
그거슨 바로

부럼깨기

(뚝배기랑 헷갈리지 말자)

호두, 잣, 밤, 땅콩 같은 딱딱한 열매를
어금니로 깨먹는 것이다.
단, 어금니가 깨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를 튼튼히 하고

부스럼 없는 한해를 보내라는 기원이 담긴 게임이기 때문이다.




흥청망청 취한 대보름...
집가는길 보름달이 휘영청하다.
헤어지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건낸다.

"내 더위 사라~~!!!"

여름 더위가 싫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내 더위를 파는것이다.
이자체로 양심없기 때문에 너무 비싸게 팔면 안된다.
더위를 무사히 판다면

이번 여름은 더위를 먹지 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



여러모로 좋은 풍속이 많은 대보름이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M모씨..
기분 좋게 잠이 든다

대보름일기 끝~~!!!!!


빙글 여러분 모두 건강한 정월대보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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