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timistic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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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우리 회사 신입 직원이 짐싸서 나갔어요.txt

글쓴놈도 꼰대끼가 있네 이런 회사는 닥치고 바로 도망쳐야지. ㅡㅡ
뭘 90애들은 원래 이래, 이러긴 회사가 ㄷㅅ 같으니까 나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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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고 다니는 내가 한심하고 저런 행동하는 신입보면 부럽고 대단하단 생각듬....더러워도 참자라는 말 서서희 안먹히는 시대 같아요
왜케 꼰대들은 기선제압에 집착하는 걸까요? 안그래도 다 조심스러울 신입 시기에 어떻게든 애 한 번 잡아보겠다고...
그러니까요 개븅신새끼들
ㅎㅎㅎㅎㅎㅎㅎㅎ답글이 차지다 못해 붙네요 짝짝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 과장넘은 저런 행동이 자식이 회사원이 되면 그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회사가 거지같네요. 7080년인줄..
둘다 이해가 가지만 세대 문화의 충돌로 여겨진다. 일만 있으면 하던 시대와 선택의 폭이 넓은 세대의 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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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지ㅎㅎ 다음 편이 또 있었습니다! 아직 회수되지 않은 떡밥이 많았잖아 저승사자와, 주인공과, 그리고 룸메 언니와의 관계는 대체 뭘까? 주섬 주섬 떡밥을 주워 담아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 덤으로 사는 인생 무속인은 실눈을 얇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용하다는 소문 때문인지 그녀에게 압도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자리에서 한번 일어나볼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치마 좀 들어올려봐.” “네?” “치마를 좀 올려보라고. 발이 보이게.” 나는 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렸다. “더… 올릴까요?” 무속인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야. 이제 자리에 앉아도 돼.” 나는 자리에 앉았고, 무속인은 눈을 내리 깔고 짦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한 말인데, 자기는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야.” “네?” “들은 대로야…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미 죽었어야 할 팔자야. 내가 죽은 사람 신수까지 보는 재주는 없어. 그래서 미안하지만 내가 더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그녀는 한사코 복채를 받지 않겠다 거절했다. 나는 신당 문을 나서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뒤로 돌아 무속인에게 물었다. “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까… 치마는 왜 들어보라고 하셨나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산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그랬어. 귀신들은 땅을 딛고 서있지 않거든.” “아… 네…” 문을 열고 신당을 나서는데 뒤에서 무속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힘들어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 ==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속인이 해준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죽었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저승사자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고… 흠… 아니면 누군가 자기를 꼭 살리겠다고 큰 원을 세운 것일 수도 있고…” “그럼… 혹시 제가 언제 죽었어야 하는 건가요?” “하하. 그런 것까지 보이는 신통력이면 내가 다음주 로또 번호까지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하하.” 잠시 후 무속인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말을 이었다.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야. 자기도 뭔가 집히는 일 있을 것 같은데…” 커다란 사거리에서 버스가 멈춰 섰다. 창밖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뛰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하루는 아침부터 몸이 으슬거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겨울 옷을 담아둔 상자를 꺼내려니 오전 수업에 늦을 것 같았다. 급한대로 룸메이트 후배에게 얇은 겉옷을 빌려 입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은 수업이 끝나자 마자 자취방으로 돌아왔고, 씻지도 않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눈을 감았고, 미처 잠이 들기도 전에 가위에 눌린 듯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 속에 나는 학교와 자취방 사이의 커다란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조금 전 자취방으로 오는 길에 막 지나온 도로였다. 커다란 트럭이 나를 덮쳤다. 쿵! 하는 충격음이 온몸을 통해 들려왔다. 허공에 떠 날라가는 나의 몸뚱이가 보였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음을 기억해냈다. 침대 머리맡에 저승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내가 죽었음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두고 홀로 사라졌다. 아마도 그때… 그 트럭이 나를 덮쳤을 때… 그때 내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일이 있기 전 나는 어디에서든 주목 받는 사람이었다.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라 했다.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가까웠던 사람들과 특별한 이유 없이 멀어지게 되었다. 주변인들과의 인연이 끊어지는 느낌.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두어달 시간이 지나고 나는 주변에 같이 밥먹을 사람 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졸업 후 들어간 직장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사람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에 혼자 남은 나를 발견하는 일이 흔했다. 설사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더라도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회식 중에 한번은 일부러 가운데 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다. 나를 기준으로 양쪽 테이블에서 각각 이야기 꽃이 피었고, 나는 그 중간에서 어느쪽에도 끼지 못하고 혼자가 되어 있었다. 왕따나 따돌림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거나 챙겨주지도 않았지만,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역시 없었다. 나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인관계가 힘들다는 나의 말에 그 무속인이 해준 이야기. 사람이 사고나 병에 걸려서 죽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게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과 인연이 다하면 그때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라 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 때문에 겪은 힘든 일들이 조금은 설명이 되는 것 같았다. ==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착하게 살라는 말.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집 근처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적성에도 맞았고 보람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보육원 장기 봉사를 위해서는 따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 정에 굶주린 아이. 피해의식으로 공격적인 아이. 아이들과의 크고 작은 트러블을 겪는 봉사자들이 많았다. 실제 아이들과의 문제로 봉사활동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존재감이 없었던 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나는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나에게 애착을 보이고 따르는 아이도 없었지만, 심술을 부리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 역시 없었다. 비록 존재감은 없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 삶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받는 것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겸손한 척 하느라 하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 10년이 지났다. 나는 같은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가지 신기한 점은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애착이 없었다는 것이다. 장애가 있거나 아픈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은 들었지만, 깊게 관여하거나 필요 이상의 도움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보육원에서 일하는 10년 동안 나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아이 한명 없었지만, 나 역시 마음 속 오래 생각나고 보고 싶은 아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갓난쟁이 아기가 입소했다. 이름도 생일도 없었다. 생후 한달이 채 안돼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분유를 먹이고 트름을 시키기 위해 아기를 세워 안았다. 아기의 짧은 두 팔이 나의 목을 감았다. 분유 냄새가 섞인 아기의 땀 냄새가 느껴졌다.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 은우. 은우는 대학 시절 무척 가깝게 지낸 동아리 후배였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며 연락이 끊겼고, 작년 이맘때 은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꼭 20년 만이었다. 한눈에 봐도 은우는 많이 아파보였다. 하지만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격은 그대로였다. 20년의 시간 때문이었을까? 대학 시절 3년을 한 자취방에서 동고동락했던 은우가 어렵게 느껴졌다. 마치 나를 꺼리는 듯한 느낌… 그때 은우는 도대체 나를 왜 만나자고 했을까? == 분유를 먹은 아기는 금세 잠이 들었다. 보육원에서 일하며 많은 아기를 봐왔지만 세상에 이런 순둥이가 없었다. 잠이 깼다고 또는 배가 고프다고 소리내 우는 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귀나 성대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사 말로는 건강하다 했다. 아기가 잠든 사이 나는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과 함께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우의 이름을 말했고, 잘못 걸었다는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동아리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은우의 소식을 물었고, 은우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죽은지 벌써 일년이 되어간다 했다. 은우는 그때 작별 인사를 하려고 나를 만나자 했구나… 그래서 그때 은우의 눈빛이 많이 힘들게 느껴졌구나… 그때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기라도 할 껄… == 하루는 보육원 원장님이 나를 찾았다. 원장님은 얼마전 입소한 아기를 내가 특별히 아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기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원장님은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아기를 부르는 이름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는 나의 대답에 원장님은 예쁜 이름 하나 지어달라 부탁했다. == 1년이 흘렀다. 은우의 첫 생일날. 정확히 말하면 보육원에 입소하고 1년이 되던 날. 나는 직접 은우의 생일상과 돌잡이를 준비했다. 은우는 오늘이 자기 생일임을 아는 듯 방긋 웃으며 돈을 집었다. 짧은 생일 파티가 끝나고 원장님이 잠시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원장님은 나에게 은우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라 했다. 은우의 입양 생각을 내가 그동안 안해봤을까… 아빠도 없이 내가 혼자서 키워야 하는데 은우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답했다. 원장님은 그래도 한번 더 생각해 보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라는 선물을 받는데 세상에 다른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고… == 은우를 호적에 올리고 신기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이웃들이 나에게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했고,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사적인 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연락이 없던 친척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나와 세상 사이의 끊어졌던 연결 고리들이 하나씩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퇴근 후 어린이집을 찾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은우를 데리고 나오며 말했다. 은우처럼 어른스러운 아이는 처음 본다고. 은우 같은 아이들만 어린이집에 있으면 월급의 절반만 받아도 자기는 만족할 것이라고. 정말 그랬다. 입양을 결정하며 아이 키우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예상했었다. 특히 나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은우를 집에 데려오고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은우에게 애착이 깊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은우는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고 소리 내 우는 일이 역시 없었다. 말썽을 부리거나 사고를 치는 일도 없었다. 대소변 가리는 법도 혼자 터득해서 기저귀를 뗀 것도 이미 오래 전이었다. 말문이 틔이기 전에도 눈치가 좋아 사람들 말귀를 곧잘 알아들었다. 말 배우는 것 역시 빠른 편이였다. 3살이 되어서는 긴 문장을 이용한 대화가 가능한 정도였으니까. 하루는 은우를 데리고 집에서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나왔다. 마실 음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어갔고, 냉장고를 열어 물건을 고르는 사이 은우가 사라졌다. 마트 직원과 함께 가게 내부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은우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혼자서 집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며 은우를 찾았다. 하지만 은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은우의 이름을 부르며 은우가 사라졌던 마트로 되돌아왔다. 다시 마트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은우를 봤는지 물었고, 직원은 미안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두손이 덜덜 떨려왔다. 힘을 주어 양손을 맞잡고 마트를 나왔다. 마트 바로 맞은편 경찰 지구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 아까는 왜 파출소가 보이지 않았을까? 급히 파출소 문을 밀고 들어갔고, 한쪽 구석 의자에 웅크린 채 잠든 아이가 보였다. “은우야!” 경찰 말로는 은우가 혼자서 지구대를 찾아왔다고 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은우가 있었다고. 그리고 은우는 경찰에게 아빠를 찾아달라 말했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아빠요? 엄마를 찾은 게 아니고요?” 나의 물음에 경찰은 은우가 아빠라며 찾아달라던 남성의 이름과 주소를 보여주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혹시 누군가 은우에게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하지?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경찰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가 말을 워낙 잘해서…… 남편 분이 죽은 걸 아이가 아는 줄 알았어요…” 혼란스러웠다. 경찰에게 은우를 입양했다는 설명과 함께 방금 경찰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물었다. 경찰은 은우가 알려준 남성 이름과 주소로 조회를 했을 때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경찰은 은우에게 아빠가 하늘나라에 있다 말을 했고, 그말을 들은 은우는 세상 무너진 듯 애처롭게 울다가 잠이 들었다고. 은우를 집으로 데려왔고, 나는 파출소에서의 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은우는 입을 다물었다. == 시간은 흘렀다. 은우를 키운 것은 나에게 큰 행복이었다. 학교에서 은우는 모범생이었다. 학교를 찾을 때면 선생님들은 침이 마르도록 딸아이를 칭찬했다. 공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쾌활한 성격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다. 집에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딸이었다. 언제나 엄마부터 먼저 챙기는 효녀였고, 시간만 나면 함께 수다를 떠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은우가 있어 행복했다. 은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 진학 후 2년 후. 본과에 들어가며 은우는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다. 은우가 독립해 집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알 수 있었다. 딸이 다 자랐고 이제는 내가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을…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지막 바램이었는데… 딸과 함께한 지난 20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기에 더이상 욕심을 부리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주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했다. == 나의 마지막 순간. 나는 은우에게 낡은 옷을 건냈다. 은우는 옷을 펼쳐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엄마... 이 옷………. 이 옷은 왜…?” “잘 간직해.” 은우는 말이 없었다. “우리 딸 혹시 많이 아프거나 힘든 일 있으면 이 옷을 입어. 널 지켜줄꺼야.” 은우는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 옷이 나를 어떻게 지켜줘…?” “이런 이야기 믿기지 않겠지만… 엄마 젊을 때 신기한 일이 있었어…” 나는 예전 교통사고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았던 일을 딸에게 말해주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 옷 때문에 저승사자가 나를 살려준 이야기. 그후 힘들었던 시간들. 무속인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은우를 입양하고 삶이 바뀐 일까지 이야기 해주었다. 은우는 말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은우는 나의 품에 안겼다. “나로 인해 엄마가 행복했다니 정말 다행이야.” 나는 딸의 얼굴을 보듬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손끝에 딸아이의 눈물이 느껴졌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시작했다. 오래전. 독감으로 고열에 시달리던 어린 은우. 해열제를 먹이기 위해 은우를 깨웠고, 약을 먹은 은우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별로 안아프다며 방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대학 후배였던 은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살이 너무 빠졌다며 어색하게 웃던 은우. 딸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 “사랑해, 엄마. 우리 다음생에 다시 만나.” —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단편] 덤으로 사는 인생 | 다른이의꿈★ ________________________ 은우는 다시 태어나서 룸메 언니를 만났구나. 언니와 - 은우 생각에는 - 어쩌면 언니의 운명이었을 수 있었던 남편을 이어 주려고 경찰서에 찾아 갔던 걸까, 아니면 그저 남편의 삶이 궁금했던 걸까. 세 사람의 인연은 어떤 모습인걸까. 그건 바로 내일 ㅋㅋ 알려 줄게! 이 이야기는 내일 마무리 될거야 ㅎㅎ 남은 하루 마무리 잘 하고 내일 또 보쟈! P.S. 근데 요즘 다들 왜 이렇게 댓글이 박하냐 ㅠㅠ
나혼산 허지웅편 보고 많은 생각 든 염세주의자들.
개인적으로 허지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혈액암 투병을 하다가 완치 되어서 나혼자산다에 돌아온 허지웅의 모습이 굉장히 의외였음. 예전에 뾰족뾰족하던 염세주의자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둥글둥글해지고 많이 밝아지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싶다고 하고. 나도 바뀐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랐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염세주의자들이 허지웅을 보고 놀란 것 같음ㅋㅋㅋㅋ 도움 받을 용기라.. 허지웅 방송분 암으로 투병할 때도 어머니나 동생 그 이외에 다른 친구들도 절대 오지 말라고 하고 거의 모든 과정을 혼자 감내했다고 함. + 허지웅이 2016년에 아버지와 자신에 대해 썼던 글. (스크롤 압박 주의.. 보고싶은 분만 보시길) 나를 '혼자'로 만드는 남자, 아버지 / 허지웅 살다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베리 스위처 감독이 말했듯이 말이다. 아무튼 3루에 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재수가 없어도 내버려둔다. 심지어 3루 말고는 어디도 가본 적이 없는 그를 향해 응원을 한다. 그가 홈으로 무사히 들어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편의와 우선권을 제공한다. 어찌됐든 그는 3루에 있으니 말이다. 마침내 기회가 온다. 평생 삼진 아니면 파울만 쳐대던 무명의 노력파 타자가 2루타를 쳐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인생에 허락된 단 한 번의 완벽한 안타다. 2루타를 쳐낸 무명의 타자는 아깝게 태그 아웃 당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점수만 만들어준다면 상관없다. 모두의 시선이 3루로 모인다. 지금이다! 뛰어! 점수를 내줘! 3루에서 태어나 평생 3루타를 친 것처럼 굴었던 자가 느지막하게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금 뛰는가 싶더니 도로 3루에 돌아와버린다. 다소간의 야유가 있었으나 3루에 주자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냐는 집단 지성에 의해 소동은 금세 잦아든다. 경기가 끝난 후, 평생 단 한 번의 완벽한 2루타를 쳐낸 동료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그가 말한다. “아프니까 이루타죠. 천번을 흔들리면 언젠가 그도 저처럼 삼루타를 칠 수 있지 않을까요.”(엄지 척) 이런 ‘우사인 볼트 기립근 염려해주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왔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그런 사람들과 결과적으로 다른 게 뭔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한번은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똥을 싸다가 문득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락을 했다. 문자를 보냈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중학생 이후로 왕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내가 왜 갑자기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를 만나 대답을 들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도 잘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원주는 추웠다. 아버지는 원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앞에서 만났다. 중학교 시절에 멈춰 있는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차는 언제까지나 하얀색 엑셀이었는데 다른 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만남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둘 다 이런 종류의 만남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이 만남에 대해 내심 꽤 감동하고 있으며, 내게도 같은 종류의 감동이 전해지길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뜨거운 화해를 하러 거기 간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전공분야에 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어색하고 거대한 구멍을 메우기 위한 용도였지만, 놀랍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반강제적 ‘독립심’에 발버둥치다 도움이 필요하다 말할 능력도 호의를 받아들일 능력도 잃었다 독선만 남은 건가, 너무 두렵다 군대를 전역한 뒤 돈이 없어서 복학을 하지 못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다가 탈진을 해서 쓰러진 날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시원 앞에서 소주 두 병을 억지로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정말 피가 났다. 도움을 구걸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백기를 들고 전화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그 와중에 소주는 알코올이니까 이 상처가 소독이 되어서 덧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자녀 학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나중에 전부 갚을 테니까 제발 등록금을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월세와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다, 당장 등록금만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예상되는 상대의 답변이 있을 때 나는 그 답변을 듣기 싫어서 최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등록금도 갚고 효도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등록금과 효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그날 원주의 사무실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식을 부양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왜 등록금마저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후회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후회하고 있다, 는 말은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왜 내가 아버지에게 미움 받아야 하는지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학교에서 공짜로 나오는 학비 지원금마저 주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웠는지 하는 것 따위 말이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반평생 슬프고 창피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의 눈치 보면 지는 거라고 위악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쿨병’이니 뭐니 안 좋은 말이 쌓여갔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남에게 결코, 다시는 꼴사납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버텨 살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후회하고 있다는 말로 내게는 충분했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정말 태아처럼 안도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니가 그렇게 어렵게 산 덕분에 독립심이 강한 어른이 되어서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연락이 몇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친구 같은 부모 자식 사이가 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아, 자신이 원하는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살다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3루에서 태어난 것도 3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허지웅 작가 [출처] 나를 '혼자'로 만드는 남자, 아버지 / 허지웅|작성자 고콩이 (ㅊㅊ -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