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프란체스카 우드먼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전시회, 이번에는 에곤 실레/프란체스카 우드먼이다. 제목 : LIFE IN MOTION: EGON SCHIELE/ FRANCESCA WOODMAN 기간 : 2018년 9월 23일까지 장소 : 영국 리버풀의 테이트 웹사이트 : http://www.tate.org.uk/whats-on/tate-liverpool/exhibition/life-motion-egon-schiele-francesca-woodman 두 사람을 왜 붙였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던 에곤 실레의 부인 이름이 프렌체스카였던가? (아님. Edith였다) 둘의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에곤 실레는 20세기 초반이고, 프란체스카 우드먼은 20세기 후반이다. 그러나 괜히 둘을 붙이지는 않았겠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20대 후반에 사망했고, 죽은 뒤에야 이름을 세상에 떨쳤다. 더 중요한 점은, 둘 다 셀카 세대라는 데에 있다. 1910년에 촬영했던 에곤 실레의 셀카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프란체스카 우드먼 역시 대부분의 사진이 셀카였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있을까? 조숙함과 자기애, 짓궃지만 날카롭게 실험적인 셀카가 그들 작품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작가들이나 찍었던 현대적 개념의 셀카가 이제 대중화됐으니(?) 그 원류를 한 번 되짚어보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장사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다만 에곤 실레는 웨즈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참조 1)”이나 “앗, 이 그림이 클림트/코코슈카가 아니었다니?!”하는 탄식으로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프란체스카 우드먼은 많이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우드먼은 미국 유명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나 재능을... 당대에 인정 못받고 우울증에 뉴욕에서 자살한 슬픈 인생을 살았었다. 여러 사진을 검색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공(?)을 못 했으니) 피사체는 대부분 자신이나 친구들이며, 노출 시간을 늘리거나 일부러 움직임으로써 뭔가 만 레이의 사진스럽게 연출한 작품들이 많다. 게다가 많은 경우 얼굴을 가리거나 흐리게 처리했다. 이게 과연 애로틱한 것일까, 아니면 관객 혹은 관찰자를 드러내는 것일까? 하지만 영원히 자라나지 않았던 어린이로서의 한 켠과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봐버린(참조 2) 성인 여자로서의 다른 한 켠의 갈등은 결코 화해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1980년 10월, 자살 시도 후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1981년 1월, 부모가 잠시 한 눈 판 틈을 타서 투신 자살해버렸다. 물론 에곤 실레의 죽음과는 결이 다르다. 실레는 임신까지 했던 부인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후, 그녀를 따라 자신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례였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들은 부인 스케치였다.) 여러분들 실레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테니 별다른 설명을 하지는 않겠지만, 실레가 했다는 아래 발언은 상당히 되새겨보기 좋은 말이다. “나는 몸 모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립니다.” 우드먼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는 당신들이 안 보는 것, 몸 안의 힘을 보여줄 겁니다.” 이쯤 되면 라이언 맥길리가 상당히 천박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 참조 1. 실레 모작(2014년 4월 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278146354831 2.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적어도 3명의 아트 딜러들이 그녀에게 잠자리를 요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