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스압] 전쟁 덕에 대박난 음식 몇 가지
스팸 요즘 한국에서야 스팸을 공짜로 뿌린다면 유토피아가 됐다며 좋아하겠지만 공짜 스팸이라고 꼭 좋지만은 않았다. 2차대전을 보면 특히 그렇다. 1940년 영국의 식량사정은 개박살난 상태였는데 왜냐면 나치새끼들이 잠수함을 때려박아서 온 바다에서 분탕질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량 상당수를 해외에 의존하는 영국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당시 영국이 얼마나 굶고 살았냐면 배급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영국 성인 남자가 받을 수 있는 식량은 고기 550g과 달걀 반 개가 전부였다 고기 550g이면 삼겹살 3인분 정도 된다. 충분히 많지 않냐는 생각이 들 텐데 이걸로 1주일 버티라고 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하루에 고기 0.5인분 이하니까 그런데 갓조국 미국이 전쟁에 참가하고 동맹국한테 식량을 무자비하게 뿌리기 시작하면서 식량의 양적인 상황은 많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갓조국이 뿌린 음식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팸이었는데 말 그대로 수억 개씩 뿌려댄 덕분에 영국 사람들은 처음 몇 달 정도는 환호했다 물론 아침에 스팸 수프먹고 점식으로 스팸 바베큐먹고 저녁으로 스팸 스튜 먹는 걸 6달 정도 반복한 뒤에는 앵간히 인성 좋아도 욕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근데 스팸 안 먹으면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거든 굶어 뒤지는건 별로 유쾌한 선택지가 아니다보니 다들 꾸역꾸역 스팸을 먹게되고 결국 스팸은 공전의 대박을 치는 초히트상품이 된다 영국인들은 조금이라도 스팸을 덜 물리게 먹어보려고 온갖 음식을 개발했는데 그래봤자 유전자 단위로 요리재능에 파멸을 선고받은 영국인들인지라 결과물은 신통치않다 당장 저 유명한 스팸튀김부터 시작해서 스팸 팬케이크라든지 딸기잼에 찍어먹는 스팸도넛이라던지 파멸적인 음식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걸 먹고도 전쟁에서 싸운 영국군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스팸메일이란 표현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스팸 이미지가 개똥일만도 하다 스팸 비싸서 명절 선물로 교환하는 한국은 서양권에서 보면 상당히 특이한 이미지겠지 딱히 영국에만 스팸이 뿌려진 것은 아닌고로 다른 장소에서도 남아도는 스팸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는데, 하와이에서 발달한 스팸 무스비처럼 그럴싸한 요리도 있다. 왜 뜬금없이 하와이에서 일본음식에 들어가는 무스비와 스팸이 퓨전합체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하와이 음식임 넓게 보면 부대찌개도 이 부류에 들어간다 물론 개중에는 영국만큼이나 끔찍한 피조물이 탄생하기도 하는데 홍콩의 스팸 라멘이 그것이다 누가 영국식민지 아니랄까봐 진짜 굉장한 비쥬얼이다 장어 스팸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비싼데 영국에선 개싸구려 이미지인 케이스다 원래 영국에서 장어 하면 가난뱅이 새끼들이나 먹는 생존식품이라는 이미지였다 고슴도치 고기나 비둘기 구이쯤 되는 이미지였던거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영국은 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라는데서 장어 이미지가 박살난다 장어가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며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은 아니고, 산업혁명으로 우후죽순 세워진 공장들에서 나온 폐수가 다 어디로 갔을 거 같음? 템스강으로 전부 흘러갔다. 곧 템스강은 참피 수영장만도 못한 끔찍한 꼬라지로 바뀌었고 템스강에 살던 물고기 새끼들은 전부 용궁으로 사출당했다 장어만 빼고. 장어는 그 지랄이 난 템스강에서도 오히려 활개치면서 활발히 번식했다 다들 알다시피 장어는 진짜 엄청나게 생명력이 강한 생선인데 이 놈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도 그 생명력에서 비롯된거다. 대갈통 잘라서 냄비에 넣고 끓여도 도무지 뒤지질 않는 존나 킹기도라같은 놈이다. 장어가 안 뒤지면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생각해봐라 폐수 오염물질 둥둥 떠다니는 곳에서 살아가는 생선 건져먹을 생각이 드냐 당연히 멀쩡한 사람이면 안 건드리지. 내일 설사로 뒤지더라도 오늘 고기맛은 봐야겠다는 흙수저들이나 건져먹는게 장어였다 근데 2차대전이 터졌다. 그리고 잔혹한 소금돼지시체뭉침 스팸이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인들은 절규하며 강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빈민들이나 먹던 장어는 전영국인이 즐기는 대중식품으로 격상하게 된다 아 차라리 격상하지 않는게 좋지 않았을까 쓰레기물에서 살아서 그렇지 비쥬얼도 그야말로 쓰레기 그 자체다 어떻게 소스까지 초록색이지 색깔이 참피색인 이유는 전쟁 중에도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파슬리로 소스를 만들어서 그런데 암만 봐도 참피 갈아서 만든 것처럼 생겼다 장어를 그냥 굽고 젤리 될 때까지 만든 장어 젤리와 장어 토막친 것과 파이에 초록 소스를 끼얹어 내는 파이 앤 매시는 스팸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육류였기 때문에 또 대박을 친다 다만 이런 튀김+국물 조합은 재료의 품질을 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해서 썩어가는 장어로 만든 파이 앤 매시 떄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식중독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었다 팝콘 영화관 하면 팝콘을 빼놓을 수 없다 X스맨 X크 X닉스 같은 X같은 영화를 보면 내 손 안에 팝콘이 들려있다는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진 그레이가 개소리 떠는 걸 보느니 입안에서 팝콘 부서지는 소리 감상하는게 몇 배는 더 박진감 넘친다 그런데 의외로 팝콘=영화관 이미지가 잡힌것도 2차대전 때의 일이다 2차 대전에도 미국 영화 산업은 존나게 활발했는데, 이 당시에는 오히려 영화관에 팝콘 들고가는게 금지였다 왜 금지인지 이유가 안 떠오르면 최근 영화관 갔다가 영화 끝났을 때 영화관 바닥의 참상을 생각해보자 바닥에 끝없이 널려있는 팝콘쪼가리를 영화관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욕지거리가 터질 것이다 그래서 2차머전까지 영화관에서 인기있는 식품은 달달한 초콜릿이나 사탕 계통의 음식이었고 팝콘은 길거리에서 가끔 사먹는 싸구려 음식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2차머전이 터지고 나서 이 잘나가던 영화관 초콜릿이 전멸해버리는데, 왜냐면 초콜릿 생산량이 전부 군바리들에게로 몰렸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전쟁터에서 단 거 만큼 절박한게 없다 아무리 갓조국이라도 군인한테 설탕 몰빵해주면서 민간에까지 뿌릴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곧 미국 전역은 당분 부족에 시달리게 되는데 영화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보면서 혓바닥이 심심하신 관객들을 위해서 등장한 것이 싸구려 식품의 대명사 팝콘이었다 팝콘은 원가가 진짜 싸도 너무 싸서 전쟁 중의 박살난 경제 상황 중에서도 충분히 저가로 공급될 수 있었다 결국 팝콘이 영화관 식품의 대명사가 될 때까지는 채 5년도 걸리지 않았다 근데 분명 싸서 경쟁력 가졌던 새끼들인데 요즘 가격은 왤케 창렬인지 모르겠다 X발 옥수수 덩어리에 꿀 존나 얇게 처발랐더니 국밥 두 그릇 가격이 나오네 개새끼들 결론은 영화관에 국밥을 들고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개드립] 놀랍게도 심한 욕은 필터링한 상태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0년대 서울대 물리학과 리즈시절 썰.txt
아는 사람은 아는 80년대 S 대 물리학과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그 학과는 학력고사 평균 성적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그 중에서도 진짜 공부를 좋아하는 괴짜들만 모여 있었던 전설의 학과 였습니다. 졸업 후 진로를 우선시 하는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이제는 다시는 그런 친구들이 모인 학과가 생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났을 때 여기 그 당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 보려고 해요. 1. 처음 입학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경시대회 (지금의 수학올림피아드)전국 대회에서 입상한 친구들이 모두 우리 과에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승자가 두 명이었다. 알고 보니 한 친구의 학교 교장이 입상자 수를 늘리려 이과인 친구를 문과로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 시합을 했다.) 2. 신입생으로 아직 서로 서먹할 때 과방(당시에는 과라운지라 했다)에 친구들이 모여 떠들다 아이큐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아이큐가 높다고 나름 자신하고 있었는데 대화 중 한 마디도 못했다. 모여 있던 10명 정도 친구들이 바로 위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 아이큐 150 안되는 사람이 있어?" 150은 당시 만점이었는데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한 학년 900명의 나름 유서 깊은 고등학교였지만 아이큐 140 이상은 두 명 뿐이었다. 한 명이 나였고 다른 친구는 같은 대학 화학과에 입학했다. 900 명중 150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 모인 10명이 나만 빼고 모두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 중 두 명은 전문 기관에 불려가 정밀 검사를 다시 받아 자신의 아이큐를 알고 있었다. 한 친구는 168이었고, 다른 여자 동기는 167이었다. 168인 친구는 우리 과 꼴지로 학점 미달로 퇴학했다. 여자 동기는 성적이 중 상 정도였다. 3.  한 학년 후배가 있었는데 실제 나이는 우리와 같았다. 같은 대학 법대 합격했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바로 자퇴하고 다시 우리 과에 합격한 친구다. 그 친구 4학년때 내가 조교를 했는데 시험을 너무 못 봐서 불러 물어보니 자기는 수학과 대학원으로 합격했고 D+ 만 받아도 졸업은 가능해서 괜찮다고 여유를 부렸다. 교수님 성향상 너는 무조건 D- 라고 말해 주니 그제서야 사색이 되어 교수님 찾아가 사정했지만 결국 졸업을 못했다. 그 친구 졸업 기수가 44회였는데 졸업 예정자가 4445명이었으나 그 친구가 졸업 못하는 바람에 4444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4. 후배 중에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 대학원에 합격장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병역문제가 걸려 재검을 기다리느라 유학을 가지 못했다. 몇 달 후 도서관에서 그 후배를 마주쳤는데 유학이 미뤄지자 시간 나는 김에 다른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 후배는 그 다음 해 사시에 수석을 했다. 그 친구 때문에 사시는 1년만 공부하면 수석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과에 퍼졌었다. 5. 당시만 해도 우리 과에서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모두 대학으로 갔다. 교수가 되어 연구를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고나 할까. 성적이 중위권서부터 L 전자나 S 전자로 갔었다. 그 친구들이 당시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S 전자 사장이 매년 물리과 대학원 신입생들을 용인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에 초청해 회식을 했었다. 우리도 거기 불려가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 자리에서 사장이 연설을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S 대 공대생들은 병역특례가 끝나도 대부분 회사에 남습니다. 하지만 물리과 졸업생들은 대부분 병역특례(당시 5년) 끝나면 떠나버립니다. 아마 여러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얘기에 우리는 조금 당황했었다. 그 뒤에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물리과 졸업생들이 5년간 회사에 한 기여가 다른 사람들이 평생 근무하면서 한 일보다 더 많습니다. 5년후에 떠나도 상관 없으니까 부디 우리 S 전자로 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진짜 레전드네... 저 때 저 사람들은 지금 다 뭐하고 있을까...
(no title)
빨간날엔 역시 핑크빛 사랑썰을 보는게 제맛 아니겠나여? 가을엔 역시 사랑썰이라구욧 ㅎㅎ 오늘껀 마치 영화 한편을 본것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글이에여 평생 한사람만 사랑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무래도 저는 못할것같아여 헿 하지만 썰로 보니 넘나 설레고 그르네여 출처는 고대숲입니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야, 걔 결혼한다며?” “진짜? 생각보다 엄청 빨리 하네.” “축의금 얼마 내야 되냐? 일단 우리는 다 가는거지?” “난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3만원은 좀 그런가?” 드디어 너의 사랑이 결실을 맺나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억지로 시간을 내 참석했던 고등학교 동창회가 아깝지 않았다. 너가 결혼을 하는구나. 웨딩드레스를 입겠구나.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싶다던 너가 몇 년뒤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겠구나. 기다림 끝에, 우리 연애가 그랬던 것처럼, 너가 결혼을 하는구나. 14살, 막 중학교에 입학했던 때였을거다. 그 때는 소개팅이나 맞선이라는 이름 대신 남소, 여소라는 말을 쓸 때였다. 그닥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우리반을 찾아와 소개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었다. 네 이름와 얼굴만 알았었는데 갑자기 왜 그러냐 물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냥 여자애가 한 번 물어나 봐달라는 식으로 했다고, 문자나 해보라 그러길래 별 생각 없이 네 번호를 받아 연락을 주고 받았다. 두 달정도였나? 도서관도 같이 다니고, 방과 후 교실도 같이 신청해 다니다보니 주위에선 도대체 언제 사귀냐고 안달이었다. 너도 아마 내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을거다. 같이 도서관 주변을 산책할 때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너였으니까. 엄청 더웠던 여름 날이었는데, 수학학원이 끝나고 그늘진 정자 아래에서 너랑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진지한 목소리로 네가 나에게 물었었지. 나한테 할 말 없어? 아무리 바보에 쑥맥이어도 그 때만큼은 내가 할 말을 알았다. 나랑 사귈래? 그리고 이어지는 10초간의 침묵. 넌 내 팔뚝을 꼬집으며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웠냐고 투덜댔다. 14살,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어색한 그 감정이 커지기 시작한 때였다. 손을 잡는 데에는 100일이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집을 바래다 주다가 자꾸 네 손등과 내 손등이 스치길래, 너의 엄지를 먼저 감싸고 살짝 떨리기에 나머지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그 땐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집 앞에서 손만 5분은 넘게 잡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우리는 동네 공식 커플이 되어있었다. 1000일이 넘게 사귄 커플은 그 또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1지망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학교를 적어냈고 운 좋게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받았었다. 야자가 끝나고 가로등 밑에서 살짝 입을 맞춘 것, 쉬는 시간이면 네 교실로 가 엎드려 자는 너를 바라본 것, 손 잡고 매점 주위를 돌던 것, 수학여행 날 방에서 빠져나와 너가 내 어깨에 기대 제주도 하늘을 바라본 것. 모의고사날 야자가 없으면 카페에 가 오답노트를 만든다면서 결국엔 네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얘기만 한 것. 나는 내 고등학생 시절을 몽땅 너로 채웠다. 수능을 볼 때쯤 우리는 6년차 커플이 됐다. 부모님끼리 안부도 주고 받고 명절이면 서로의 집에 가 명절음식을 먹고 세벳돈도 받았었다. 난 어느 순간부터 너의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두세달에 한 번은 자고 오기도 했다. 그 때부터 난 너와 결혼하면 어떨까란 상상을 한 것 같다. 수능날 아침을 먹고 체했던 나는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반면 너는 생에 최고 점수를 받아 그토록 원하던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다. 난 원서를 쓰지 않았다. 꼼짝없이 재수를 할 판이었다. 너가 합격증을 받고 난 학원에 등록하고 나자 네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넌 내 손을 꼭 잡아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정말 넌 일주일에 세 번은 학원 앞에서 날 기다리고 모의고사 날이면 간식을 잔뜩 싸오고, 내가 답장이 없어도 그날 뭘 먹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너 덕분인지는 몰라도 난 이 학교에 오게 됐다. 합격소식을 들은 난 가장 먼저 너에게 전화를 했다. 난 울지 않았는데 넌 전화 너머로 펑펑 울었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나도 답했다. 내가 더 사랑하고 더 고맙다고. 새내기인 나, 2학년이었던 너. 미팅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한 번 나가보라던 너. 내가 장난으로 진짜 나간다? 라고 말하자 잔뜩 삐져 실컷 나가라던 너. 내가 어떻게 미팅을 나갔겠었어. 동기들에게 나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떠들고 다녔었는데말야. 남들은 새내기 때 술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지만 난 너에게 사랑을 배웠다. 사실 7년전부터 가르쳐줬던 너지만 2000일을 채우고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설렘이, 다정함이, 뜨거움이 나는 늘 신기했다. 사랑이란 단어는 흔하지만 난 그 단어를 생각하면 그냥 너가 떠올랐다. 1학년을 마치고 그 다음 해 2월 난 입대했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넌 대수롭지 않게 ‘그냥 여행간 셈 치지 뭐.’ 라며 호국요람 글자 밑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네 부모님께 들은 말이지만 넌 일주일 넘게 밥도 못 먹고 펑펑 울기만 했다면서. 나도 똑같았어. 10시에 누우면 울며 뒤척이다가 12시가 넘어 잤고 처음으로 포상전화를 한 날은 5분동안 너가 한 말을 한 단어도 빠짐없이 되새김질했어. 수료식날은 무슨 상견례도 아니고 너의 부모님과 너, 우리 부모님이 모두 와서 마치 약혼식이라도 하는 듯 했지. 왜 이렇게 탔냐며 네 화장품을 꺼내 나에게 발라주던 손길, 하나라도 더 먹고 들어가라며 음식을 떠먹여주던 너의 어머니, 너가 그냥 내 아들해라 라던 너의 아버지, 질세라 너에게 그냥 내 딸 하라던 우리 아버지. 난 그 날 나에게 다른 가족이 있을수도 있단 걸 알았어. 휴가 때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며 얼굴만 비춘 뒤 너에게로 달려갔지. 신병위로휴가, 1차정기, 포상, 2차정기.. 휴가 때 너 얼굴을 보지 않은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군인일 때 받은 편지는 200통이 꼬박 넘어갔다. 선임들은 진짜 결혼하라며 자기들을 꼭 불러 달라 했었다. 넌 우리 부대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제대하는 날 넌 말없이 날 꽉 안아주고, 조용히 울며 수고했다고 토닥였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펑펑 울면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엄청 많았는데 막상 네 얼굴을 보니 딱 그 말밖에 나오지 않더라. 10년이란 시간은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확인의 시간이었다. 10년동안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아직도 손을 잡을 때면 난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걸까. 너의 집에 찾아가 큰 절을 올리고 넌 또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한 달 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으로 칠지 말지 다퉜었다. 나는 찬성, 너는 반대. 나와 신혼여행은 무조건 유럽으로 가야된다고 우겼던 너. 왜냐고 물으니 일본은 너무 가깝단다. 재수 1년, 군대 2년을 기다렸는데 일본은 너무 가깝다고 우겼던 너.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래, 너가 가고 싶던 프랑스도 가고 영국도 가자라며 열심히 돈을 벌겠노라 약속했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한다. 너에게도 묻곤 한다. 한 사람이랑만 연애한게 아깝지 않냐고. 그럼 우린 미리 말을 맞춘 것도 아닌데 똑같은 대답을 한다. 아까운데, 솔직히 아까운데, 너무 확실하다고. 3000일, 또 10년을 훌쩍 넘겨 20년은 챙길까 말까 고민하는 지금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게 확실하다고. 다른 사람이랑 있는 걸 상상하면 도저히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 같다고. 난 네가 없는 나를, 아니 내 삶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너와 보낸 봄부터 겨울까지, 10번이 넘어가는데 어떻게 내가 너 없는 봄의 벚꽃을, 여름의 햇살을, 가을의 단풍을, 겨울의 눈을 생각할 수 있겠어. 이제 너와 안 해본 건 결혼 하나가 전부인데. “야, 너 결혼 한다며?” ㅡㅡㅡㅡㅡㅡ 크... 마지막 소소한 반전까지 귀엽다 ㅠㅠㅠ 그나저나 저도 요런 사랑썰 한번 맛깔나게 써보고싶은데 아니 얘기할 썰이 있어야 풀지 참내... 풀만한 이야기 있는분덜 없어여? 내미친 사랑은 여기까지였다!!! 하는 분덜 없으신가여?ㅋㅋㅋㅋㅋㅋㅋ @wens @adlin 혹시...?ㅎ 내 비록 나나연이지만 사랑썰은 좋아한다구여 ㅎㅎ
[소소한 탐구생활] 이번주에 뭐먹었찌?! (๑╹ω╹๑ )
저는여 먹는거에 돈을 제일 많이 쓰거든여 사실 그렇잖아여 먹고 자고 싸는게 사람 사는데 젤 중요하다고!! 근데 그중에서도 젤 나한테 큰 행복을 주는게 멀까? 하면 역시 먹는거였어여 그래서 지난주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이번주에 뭐먹었찌?!! 일기는 안쓰지만 오늘 뭘먹었는지는 기록하고 자랑하고 싶어서 음식 커뮤에 써봤는데여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글써봅니다 ㅎㅎㅎ 제가 기록한거 👇 그냥 돋보기에 음식 관심사 검색해서 들어가서 썼어여 카드로 쓰면 너무 도배하는것 같아서 머쓱해서... ㅎ 요렇게!! 근데 혼자하니까 여기 나 혼자 있는것 같구.. 좀 심심하고 그르네여 그래서!! 이거 기록하고 일주일마다 모아볼라고 해여 내가 뭘 먹었나... 내가 이번주에는 멀또 그렇게 많이 먹었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돼지력이나 자랑해보자!!! 하는 맴입니다 저혼자 너무 머쓱해여 지금 헤헿 우리 뭐먹었는지 기록하면서 같이 달려봐여!!! 일주일마다 정리해서 올릴라고여 ㅎㅎ 아아 그리고 ㅋㅋㅋㅋㅋㅋ 여기 기록하려고 들어갔다가 끝말잇기 하는뎈ㅋㅋㅋㅋ 아니 지로 시작하는 음식 뭐있어여??? 진심 기억안나서 지상렬 적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식단기록 하실분은 돋보기에 음식 관심사 검색해서 들어오면 됩니다용 + 아 혹시모르니까 링크도 추가합니다! 맛집 공유도 할거에요 (소근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