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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보다 셀럽같은 흔예슬

셀럽 보다 더 셀럽 같은 ‘超럭셔리 편집장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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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로망 웨딩 드레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웨딩 드레스 TOP 10
결혼식 준비의 하이라이트는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핏, 소재, 베일의 종류, 디자인 등이 너무나 다양하여 자신의 체형과 이미지에 맞는 드레스 스타일과 액세서리를 고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유명인들에게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오늘 RedFriday에서는 그들이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웨딩드레스 중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드레스 10벌을 소개합니다. 1. 케이트 미들턴 2011년 당시 윌리엄 왕자와 결혼한 케이트 미들턴은 알렉산더 맥퀸의 수석디자이너인 '이너 사라 버튼'의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브이자 네크라인이 좁고 길게 파여있으며 고풍스러운 레이스 디테일이 더해져 고급스러운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2. 그레이스 켈리 1950년대의 디자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세련되고 우아한 이 웨딩드레스는 영화 의상 전문 디자이너인 헬렌 로즈가 디자인했습니다. 이 드레스는 가슴 노출이 없고 긴 소매가 달려있으며 레이스로 우아함을 더하고 있어 재벌가의 신부들이 주로 입는 스타일입니다. 두산가의 박서원 대표와 결혼한 조수애 아나운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신세계 오너가로 시집을 갔던 고현정, 현대가의 노현정이 모두 이러한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3. 메건 마클 2018년 5월 19일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그녀의 웨딩드레스도 주목을 받았지요. 왕실의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을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보트넥 디자인, 7부 소매인 심플한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이 드레스는 지방시의 최초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디자인 제품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고하세요.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236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
패션계의 전설, 칼 라거펠트 영원히 잠들다
Editor Comment 지난 19일 패션계의 큰 별,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타계했다. 향년 85세, 그는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다. 샤넬(CHANEL)과 펜디(Fendi)는 물론 패션의 역사를 뒤흔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 브랜드와 셀러브리티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고 전세계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1965년 펜디 디렉터와 1983년 샤넬에 합류한 그는 무려 36년 동안 이끌며 지금의 샤넬을 만든 장본인이다. 실버 포니테일과 선글라스, 장갑, 액세서리 등 아이코닉한 스타일로 패션의 역사를 상징했던 거장, 칼 라거펠트를 추모하며 그 화려했던 일대기를 감상해보자. 독일 출신의 칼 라거펠트는 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채 불과 21세의 나이에 파리 울마크 프라이즈(Woolmark Prize) 코트 부문을 수상하며 패션계에 입문했다. 이어 프랑스 디자이너 장 파투(Jean Patou)의 예술 감독과 1964년 끌로에(Chloe) 디자이너로 부임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의 칼은 넥타이와 핀, 수염, 브로치 등으로 점차 그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모습. 이후 1983년 샤넬 디렉터로 발탁되고 ‘죽은 샤넬이 환생했다.’는 말이 등장할 만큼 샤넬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 해 1월 첫 오트 쿠튀르 쇼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칼은 설립자 코코 샤넬이 1920~30년대에 선보인 혁명적인 실루엣에 일관된 경의를 표하고, 서로 맞물린 형태의 ‘CC’ 로고를 탄생시키며 격변의 전초를 알렸다. 이어 1984년 프레타 포르테(Ready-to-wear)를 감독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명실상부한 샤넬 하우스의 기둥이 되었다. 단정한 트위드 슈트를 재해석해 혁신적인 감각으로 현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어느덧 ‘파리 패션의 귀족’,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시대의 아이콘. 그의 저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펜디를 대표하는 더블 F 로고를 창조하고 언제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패션계를 평정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전개하며, 2004년 H&M과의 협업을 선보이며 하이-로우 디자이너 합작을 첫 실행했다. 더불어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과 마돈나(Madonna) 등 무대 의상을 제작하고 포토그래퍼로서 활발한 활동으로 디자인은 물론 사진, 광고까지 천재임을 입증했다. 한국과의 인연 또한 깊었던 칼 라거펠트. 2012년 슈퍼주니어 최시원이 미국 매거진 화보 모델로 발탁됐을 때 그는 직접 포토그래퍼로 참여하며 우리나라와 첫 연고를 맺었다. 그 후 샤넬 재킷을 입은 유명 인사들을 담은 ‘리틀 블랙 재킷: 칼 라거펠트와 카린 로이펠드가 다시 찾은 샤넬의 클래식’에 유일한 배우 송혜교가 등장했다. 15 봄, 여름 컬렉션 당시 아시아 스타 최초로 지드래곤을 초청해 스페셜 에디션을 선물하며 재차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가 하면, 2013년부터 줄곧 샤넬 뮤즈인 모델 수주와 CL은 칼 라거펠트와 입맞춤 인사를 나누는 사진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이어 동대문 DDP에서 개최된 16 샤넬 크루즈 패션쇼를 통해 전통 한복에서 영감받은 옷을 대거 선보이고 지난해 10월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프랑스에서 한국’, ‘서울’, ‘코코’, ‘샤넬’ 등의 한글이 새겨진 재킷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럭셔리다.”  “나는 살아 있는 상표다. 내 이름은 라벨펠트(LABELFELD). 라거펠트가 아니다.”  “패션이란 음악 같은 것이다. 수많은 음표가 있는. 이 음표로 우리들 각자가 자기만의 선율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지난 일을 되돌아보지 않는 것. 내가 하는 일-이미 한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내가 한 일-무엇을 했는가 잊는 것. 이미 끝난 일은 끝이다.” 칼 라거펠트는 마지막까지 쇼를 준비하며 패션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표출했다. 때론, 모피를 찬성하고 아델(Adele), 하이디 클룸(Heidi Klum) 등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며 악명 높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최고의 디자이너이면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이 되어주는 뮤즈 그 자체였다. 더 이상 칼 라거펠트가 진두지휘하는 샤넬은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늘 가슴속에 새겨질 것이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오는 목요일 밀라노에서 진행될 그의 마지막 펜디 컬렉션을 기다리며 아래 게시물을 통해 슈프림, 버질 아블로, 수주를 비롯한 다양한 거물들이 남긴 애도의 글을 확인해보자.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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