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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증명된 뇌 단련 취미활동 7가지
1. 무작정 읽으세요. 내 주변의 보이는 것은 닥치는대로 읽으세요. 만화책은 안되냐고요? 됩니다. 읽는 행위가 뇌에 주는 자극은 새로운 뉴런통로가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특히나 속독은 뇌가 감각적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듭니다. 2. 악기연주를 배우세요. 신경과학자들은 수년간 음악교육이 아이들의 인지능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악기연주는 지적인 용량을 확장시키고 좌뇌와 우뇌를 연결시켜줍니다. 이런 작용은 수학적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켜줍니다. 3. 규칙적으로 운동하세요. 운동은 혈류에 단백질을 생성하고 혈액을 순환시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강화시킵니다. 실제로 운동을 한 집단, 하지 않은 집단을 두고 사진을 통한 기억력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운동을 한 집단이 훨신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4. 새로운 언어를 배우세요. 뇌는 주로 소리를 듣고, 의미를 부여하고 반응하는데 사용됩니다. 특히나 2개 이상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멀티테스킹이 가능하게 하는 뇌의 회백질이 더 많이 발달합니다. 연령에 상관없이 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뇌를 강력하게 단련시켜줍니다. 5. 누적학습을 하세요. 누적학습이란 이미 알고있는 사실 위에 새로운 유형의 정보를 쌓는 학습과정을 말합니다. 누적학습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학입니다. 수학은 기억력, 순차적 배열, 문제해결능력, 언어능력을 발전시켜줍니다. 6. 퍼즐이나 게임을 즐기세요. 우리의 뇌는 많이 사용한다고 지치거나 퇴화되지 않고 더욱 발전합니다. 때문에 쉬지않고 활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크로스워드 퍼즐, 체크, 비디오게임 등의 모든 두뇌활동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연결짓는 작업을 수원하게 만들어줍니다. 7. 명상 또는 요가를 하세요. 명상을 떠올리면 흥히 수도승이 하는 행위정도로 파악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실제로 명상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명상은 두뇌의 학습능력, 기억력을 활성화시키며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덜어줍니다.
중세 봉건 기사에 대한 오해들
현재까지 합의된 사실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모두 1066년 이전에 '봉건제도'의 기본 요소인 종속적 토지보유권, 영주권, 군사적 봉사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다른 형태의 토지보유권과 군사적 의무들과 함께 공존했다는 것이다. 즉 잉글랜드의 '봉건제'는 12세기 글랜빌의 법률서와 13세기 초 브랙턴의 법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노르만 정복 이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진행된 점진적인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중세의 두 번째 미신인 '봉건 기사'의 미신으로 안내한다. 찰스 오만이 정립한 이 미신은 말을 탄 봉건 기사들과 성채를 중세 전성기의 전쟁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오만에 따르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와 14세기의 '보병 혁명' 사이에, 군사전술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진정한 병법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서부 유럽에서 거의 소멸했다. 요새 축성과 공성 기술은 중세시대에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분야였지만, 동시대의 다른 군사사학자들처럼 그 역시 야전을 전쟁의 핵심 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별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근대적인 의미의 상비군도, 직업군인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전략적인 목표가 없거나 거의 없는 소규모 기병대 사이의 무질서한 교전으로 전락했다. 이 시대는 기사도와 용기와 명예가 규율과 훈련을 대체해버린, 군인이 아닌 전사들의 시대였다. 중세 지휘관들의 아마추어성을 감안하면, 중세 전쟁에서 야전이 드물었던 것은 어떤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리가 없었다. 원인은 지휘관들이 명확한 전략적 목적이 없고 정찰병도 없이 길을 헤매느라 서로의 위치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야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군대의 지휘관이 상대 지휘관에게 공식적으로 도전장을 보내서 전투를 벌일 시간과 장소를 합의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전투가 벌어지면, 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제대로 된 지휘 계통, 제식, 규율의 부재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전술만을 이끌어냈다. 지휘관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직접 혼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군사들을 지휘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매번 똑같은 전술이 반복되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난 양측 기병대는 400야드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보고 섰다. 하나의 기병대는 옆이나 앞뒤로 늘어선 2-3개의 '바타유'로 구성된다. 바타유는 서로 다른 영주들의 깃발 아래에서 복무하며 각자 자신의 영주만을 지휘관으로 인정한 봉건 기사들이 임시로 모여서 만들어진 3-4열 두께의 기병 전열로, 사실상 이 시대의 군대가 가진 유일한 전술체계였다. 도시나 마을에서 징집된 보병 부대도 있었지만, 그들은 기사들보다 무장이 빈약하고, 훈련상태는 더 형편없었다. 이 보병들은 야전에서의 군사적 가치는 거의 없었지만 적지에서의 단순한 파괴행위나 공성전에서 유용했다. 오만이 정립한 이 모델에서 전투의 핵심은 등자를 단단히 딛고 창대를 겨드랑이에 끼운 기사들의 돌격이었다. 돌격과 충돌 이후, 전투는 무질서한 혼전으로 전락하여, 특정한 군사적 임무보다는 개인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사들 간의 개별 결투가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직속 영주에 대한 봉건적 의무에 따라 참전했고, 기사도의 영광과 전리품에 대한 욕망에 강하게 이끌렸다. 봉건 기사들은 무엇보다도 명예를 중시했고, 명예는 용기를 증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예는 또한 부대 내부에서의 경쟁과 질투로 이어졌고, 절제되지 않는 용기는 전투에서의 만용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전투의 결과는 병력수와 전투기술 뿐 아니라 운에도 달려 있었다. 혼전 도중 총지휘관인 왕이나 백작의 죽음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었고, 승리가 갑작스러운 패배로 뒤바뀔 수 있었다. 위의 내용들을 기술하면서 마음속으로 중세 지휘관들의 능력을 나폴레옹 시대의 지휘관들과 비교해본 오만은 그 모든 것이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봉건 기사 시대의 군대의 수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직설적이고 잔인했다: "결집하기 어렵고, 명령을 듣지 않으며,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하고, 짧은 복무 기간이 끝나자마자 부대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봉건 군대는 군인으로서의 자질의 총체적인 결여를 보여준다." 보병은 중세 시대 내내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오만이 봉건 기사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묘사한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는 사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 전투였다. 노르망디의 사생아 공작 윌리엄(훗날 잉글랜드의 정복왕 윌리엄 1세)의 기병대는 잉글랜드군을 강력한 방어 진지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거짓 후퇴 전술을 써야 했다. 롬바르디아 동맹의 시 민병대 보병들은 1176년 레냐노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기병대의 공격에 맞서 동맹을 상징하는 전투 깃발을 단 카로초 수레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중세 시대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보병이 기사보다 훨씬 많았다. 카롤루스 제국 시대부터 14세기 초까지의 전투들에 대한 베르부르겐의 연구는 유능한 중세 군사 지휘관들이 정교한 전술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음을 입증했다. 그들을 또한 군대에 규율을 확립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군대는 살라딘의 궁기병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레반트 해안을 따라 84마일을 행군했다. 보병, 기병, 함대의 협동 작전의 성공적인 사례인 이 전투 행군은 아르수프 전투에서의 승리 이상으로 인상적인 군사적 업적이었다. 리처드는 군대를 직사각형의 행군 대열로 배치했다. 전위와 후위에는 최고의 기병대인 성전기사단과 구호기사단이 배치되었다. 수송대와 말들은 양쪽으로 늘어선 갑옷 입은 보병들로 보호되었다. 이 행군은 휴식일을 가지면서 의도적으로 느리게 진행되었다. 리처드는 함대가 군대에 물과 식량을 전달하고 부상자들을 실어갈 수 있도록 항구들을 장악했다. 아르수프에서 벌어진 전투는 사실 리처드의 명령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 전투는 후위의 구호기사단이 큰 피해를 입고 조급해져서 살라딘의 군대에 돌격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본 리처드는 다른 기사들에게도 돌격을 명령했다. 몇 주 동안 반복된 공격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군대가 갑자기 돌격해오자 살라딘의 궁기병들은 깜짝 놀랐다. 중요한 것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리처드가 군대에게 무슬림들을 추격하는 대신 계속 야파로 행군할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군대가 완전히 '봉건적'이거나 일차원적인 전투 부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 유럽 군대의 다차원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세 전성기의 군대들에는 보병이 기병대보다 많았다. 또한, 기사들은 스스로 기병이라고 생각했지만, 필요할 때 그들은 말에서 내린 다음 보병대 안에서 훈련되고 잘 무장한 등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기사들을 근대적 병과 구분법인 '기병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보 전투 능력뿐만 아니라 중요한 요새 수비 임무까지 무시해야 한다. 중세에 일반적이었던 전투 회피 전략은 오만이 상상한 봉건적 지휘관들과 기사들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불명예스럽고 비겁한 행위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길링엄에 따르면 사자심왕 리처드 같은 중세의 훌륭한 군사 지휘관들은 냉정하게 전투의 비용과 이익을 평가한(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비용이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한) 합리적 행위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한 군사교리는 군사서를 읽어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길링엄은 중세 전성기에 유행한 군사교리가 로마제국 말기의 군사저술가 베게티우스의 조언과 일치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베게티우스식 전략'이라고 불렀다. 오만이 책을 쓴 시기에는 12세기 후반의 서유럽 귀족들이 대부분 문맹이었으며 오직 전투 기술만을 교육받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학자들은 생각을 바꾸었다. 12-13세기의 기사들은 전사로서의 기술뿐 아니라 궁정인으로서의 기술도 배웠다. 그들은 오만이 상상했던 일차원적인 전사들이 아니었다. 세속어를 읽고 쓰는 능력은 12세기 후반경의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다. 'De Re Militari'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Epitoma rei militaris'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가장 많이 필사된 문헌 중 하나다. 또한 라틴어에서 세속어로도 자주 번역되었고, 적어도 몇몇 군사 지휘관들이 필사본을 소유했다는 증거가 있다. 길링엄은 전쟁에 대한 중세 지휘관들의 인식과 접근법이 베게티우스의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사자심왕 리처드는 어느 대주교의 부족한 라틴어 실력을 조롱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학식이 높고 라틴어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심지어 라틴어로 된 베게티우스의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지급된 임금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사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는 보병들보다 훨씬 우월했으며, 중세의 예술과 문학의 전쟁 묘사에서도 기사가 중심이 되고 보병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심지어 야전에서도 말에 탄 기사들이 방어 진형을 이룬 규율 잡힌 보병들을 상대로 반드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세 시대 내내 가장 효과적인 군대는 궁병과 창병의 지원을 받는 기마 돌격대로 구성된 혼합 전술 부대였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오만은 전투부대로서의 기사의 몰락과 보병의 부상이라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반대로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헤이스팅스 전투에 대한 스티븐 모릴로의 세밀한 연구는 이 전투가 이후 300년 동안 지속된 보병에 대한 봉건 기사의 우월성을 확립했다는 오만의 주장을 무너뜨렸다. 반면에 맬컴 베일은 '14세기 보병 혁명'이 기사를 쓸모없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후에, 15세기에 와서 갑옷과 무기와 전술의 발전으로 중기병대가 전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길링엄의 '베게티우스식 전략' 이론은 미국의 사학자 찰스 홀리스터가 처음 제시한 역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다른 지역들보다 봉건적이었던 중세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이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었다는 역설. 앞에서 본 것처럼, 적어도 1086년부터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봉건적 군역을 대가로 왕에게 하사받은 봉토로써 토지를 보유했다. 이전까지는 이를 근거로, 국왕군으로 복무한 기사들의 대부분은 봉건적 의무에 따라 소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홀리스터는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저서 "The Military Organization of Norman England"와 여러 논문들을 통해 그는 일명 '봉토 보유를 대가로 의무 지워진 기사의 군역이 노르만 왕조의 잉글랜드 왕들이 군대를 모집하는 주된 방식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봉건제의 아이러니'를 증명했다. 이후 많은 역사학자들이 11세기부터 15세기 초까지 잉글랜드 국왕군의 주력이 왕실 가신단 기사들이었음을 밝혀내면서, 봉건적 군역이 실제로 중시되었다는 가설은 더욱 약화되었다. 수십 명의 왕실 가신단 기사들은 왕의 야전군이나 요새 수비대에서 정예부대로 활동할 뿐 아니라 소규모 작전에서 독립적인 부대로 운용되기도 한 전문 상비군이었다. 직접수봉자(tenant-in-chief)들이 잉글랜드 왕에게 진 봉건적 군역은 13세기 동안 급격히 축소되었다. 1166년 헨리 2세는 이론상 봉건적 군역에 따라 기사 5000명을 소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72년 그의 증손자인 에드워드 1세는 평신도 귀족들에게서 기사 3-500명, 주교와 수도원장들에게서 기사 132명을 소집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즉, 100년 사이에 봉건적 군역의 90%가 사라졌다. 봉건적 군역으로 소집된 군사들의 질도 하락해서, 기사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무장도 빈약한 기마 서전트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졌다. 1277년 에드워드는 웨일즈 전쟁에서 봉건적 군역으로 기사 228명과 서전트 294명을 소집해서 40일 동안 무보수로 복무시켰다. 1303년 에드워드가 스코틀랜드 원정에 데려간 국왕군 7500명 중에는 봉건적 군역으로 소집된 기사 15명과 서전트 267명이 있었다. 13세기 잉글랜드 왕들은 남작들에게 보낸 소환장에서 '왕에 대한 충성과 사랑으로' 각자 지위에 맞는 숫자의 기사들과 그밖의 병사들을 데리고 왕의 전쟁에 참가할 것을 요청했다. 참전은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것은 왕의 총애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귀족 집안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따라서 13세기 말이 되면 남작들은 봉건적 군역보다 더 많은 수의 맨앳암즈(기사와 기마 서전트)들을 데려왔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봉건적 군역이 유지되었지만,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에 의한 소집은 132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13세기 후반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들은 신하들의 봉건적 군역을 기꺼이 면제해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적어도 13세기초부터,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그 이전부터 이미 봉건적 군역이 국왕군을 위한 중기병의 주요 공급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2세기 초반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이 기사 봉토 제도의 공식적인 명분이었을지 몰라도, 왕의 입장에서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재정적 수입이었다. 1100년경부터 현금 지불로 군역을 대신하는, 방패세(scutage)라고 불리는 제도가 일반화되면서, 국왕군에 합류할 것을 명하는 소환장마저도 수입원이 되었다. 앙주 왕조의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의 아들인 리처드와 존은 봉건 소집군보다는 용병을 더 선호했다. 그들은 직접수봉자들에게 봉건적 군역 대신 방패세를 낼 것을 강요해서 용병들에게 지불할 임금을 마련했다. 12-13세기의 군주들은 봉건적 군역의 중대한 결함과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왕실 가신단 기사와 용병들을 더 선호했다. 우선 봉건적 군역의 의무가 왕국의 방어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외국 원정에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조차 없었다. 의무 복무 기간인 40일이 지나면 임금을 받고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기사들은 모두 떠날 것이다. 남작들이 의무대로 정확한 숫자의 기사들을 데려올 것이라는 보장이나, 그 기사들이 제대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사자심왕 리처드가 1189년 죽어가는 아버지 헨리 2세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이나, 이중봉신들이 포함된 군주들 간의 영토 분쟁 같은 내전 상황에서, 봉건적 군역의 의무를 진 봉신들은 한 대군주에 대한 봉건적 군역의 의무와, 그것을 이행한 대가로 다른 대군주에게 봉토를 압류당할 가능성 사이에서 손익을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왕실 가신단 기사들과 용병들은 이런 문제들을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용병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12-13세기의 용병들은 적어도 고용주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고용주들은 용병들에게 정해진 임금을 제공하는 동안에는 지속적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었다. 상비군에 가장 가까운, 잘 무장하고, 잘 훈련되고, 규율 있는 왕실 가신단 기사들은 국왕군의 단단한 등뼈를 이루었다. 용병 부대의 보병들은 12-14세기의 전쟁의 핵심 요소인 황폐화 전술과 공성전에 매우 적합했다. 방패세로 얻은 수입을 통해 노르만 왕조 잉글랜드의 왕들은 봉건 소집군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융통성 있는 군인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Richard P. Abels, "The Myths of Feudalism and the Feudal Knight", Seven Myths of Military History. 군사갤러리 prevot님 펌
가난한 집안에서 빨리 철 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pann
엄마가 하시는 치킨집에 알바생이 두명 있다. 한명은 평범한 집안, 한명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알바생은 이 좁은 동네의 가게 사장님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아버지가 안계시고 어머니가 작은 가게를 하시고 형편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무리하게 일을 한다는 것 평범한 집안 알바생은 가족끼리 여행 다니고 외식하는게 일상이다. 사장님 ㅇㅇ식당 가보셨어요? 어제 부모님이랑 갔다 왔는데 거기 진짜 맛있어요 아빠가 사주셨는데 어때요? 예쁘죠? 그 평범한 얘기들에 나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얘기들에 나는 웃지 못한다. 사장님 월급 절반 가불 받을 수 있을까요? 동생 학원비가 밀렸어요 어머니가 일하다가 다치셔서 병원에 가셨대요 떨면서 말하는 친구를 데리고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지쳐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고 언제나 씩씩했던 아니 씩씩하려고 했던 그 아이는 내 앞에서 울었다. 병원비는 내가 냈다.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며 꼭 갚겠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드님이 일을 잘해줘서 저희가 더 고맙다고, 항상 도움 받고 있으니 천천히 갚으셔도 된다고 했다. 그 애는 자기가 갚겠다고 했다. 이번달 월급도 가불 받아간 애가 어떻게 갚을건데~ 장난스럽게 묻자 그 애는 일을 더 하겠다고 했다. 학교도 졸업 안한애가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 더 늘리겠다는건지 나는 더이상 웃지 못했다. 중3때 전단지로 첫 알바 시작해서 그 이후로 번 돈은 모두 집에 가져다줬다고 한다.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엄마랑 동생이 힘든게 더 싫다고 했다. 자신이 너무 어릴때부터 엄마가 고생하는걸 봤다고, 빨리 어른이 되서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단다. 신메뉴가 나올때면 그 친구의 여동생을 가게로 불러낸다. 맛 평가를 부탁한다는 핑계로 치킨을 먹인다. 평소에 집에 한마리씩 가져가라고 해도 안가져가니까 이런 핑계로 불러낼 수 밖에 없다. 그 애 동생은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동생은 가게에 올때면 오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뭘 거들겠다고 나선다. 오빠는 그런 동생에게 절대 일 시키지 않는다. 한번은 둘이 수학여행 문제로 싸우기도 했다. 오빠는 돈 걱정말고 수학여행 보내줄테니 가라고 하고, 동생은 재미없다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오빠는 그래도 가야한다고 했고, 동생은 "오빠도 수학여행 안갔잖아!" 라고 했다. 그 애는 멋쩍은 얼굴을 했다. 엄마는 수학여행비를 대신 내주고 싶어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동정으로 비춰질까봐 걱정됐다. 애들이 상처받을까봐. 고민끝에 남자친구랑 큰 오빠를 불렀다. 주말 중 하루 날 잡아서 친구들이랑 우리 가게에서 모임 하면 안돼? 서비스 많이 주겠다며 꼬셨다. 남자친구는 고맙게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회사 사람들까지 데려왔다. 그 친구는 쉬는 날이었지만 단체 손님이 있다고 와달라고 했다. 폭풍같은 5시간이 지나고 돌아가는 그 친구에게 20만원을 주며 오늘 고생한 보너스라고, 너 안왔으면 큰일 날뻔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10만원은 여동생 수학여행가는데 예쁜 옷 한벌 사주라고 따로 챙겨줬다. 안받겠다고 극구사양하길래 안받으면 해고 시키겠다고 협박 했더니 마지못해 받아갔다. 동생이 나에게 항상 챙겨줘서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아이들 나이에 나는 아침마다 밥 한술 먹이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지 않으면 삐지기도 했고 용돈을 올려 달라고 시위하기도 했다. 학원을 몰래 빠지기도 했고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기 위해 알바하겠다고 나서다 병원비가 더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애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또 가끔은 슬퍼진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조금은 철 없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사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는건 아니다. 감히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의 삶을 동정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슬퍼진다.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할게 아니라 태어나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출처 : 네이트판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빨리 커 버리죠.. 무조건적인 동정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애쓰는 배려가 진정 참어른이시네요..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사장님같은 좋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싶군요..
당신이 처음 봤을 수도 있는 희귀동물들 50종.jpg
수염 수리  Bearded Vulture 대형 맹금류. 우리나라에선 최근 95년만에 발견. 여우,너구리,거북이 등을 높은 곳에서 떨궈 잡숫는 양반. 멸종위기 취약근접 상태. 검붉은 코끼리 땃쥐 Black and Rufous Elephant Shrew 코끼리답게 코를 벌렁벌렁 거리는게 귀여움. 2014년엔 새로운 코끼리땃쥐도 발견됨. 멸종위기등급 취약종. 빈투롱  Binturong 곰고양이과.  온순해서 애완으로도 길렀지만 가격은 약 830만원대였다고함..  이슈였던 루왁커피 희생양 중 하나.  멸종위기등급 취약종. 황금털 꼬리 포섬 Golden Brushtail Possum 별개의 종은 아니고 다양한 색깔의 포섬 중 황금털인 녀석들. 이쁜게 죄라 다른 포섬들은 활개치고 다니는데 혼자 핫아이템으로 털가죽 팔리는 중. 그레이터 빌비  Greater Bilby 토끼+캥거루를 연상시키는 호주의 유대류. 친구인 레서빌비는 1950년대 멸종. 얘는 멸종위기 취약 상태. 마게이  Margay 중남미의 나무 기가 맥히게 타는 소형고양이. 별다른 동성애 성향은 보이지 않음. 멸종위기 취약근접종. 북방 유령 박쥐  Northern Ghost Bat 중남미 서식. 몸길이 6~8cm 체중 25g 정도의 미니미들.  쉴때는 저렇게 여럿이서 나뭇잎 뒤에 꼭 붙어서 잠.ㅋ  관심필요 등급.  큰 갈기 영원  Great Crested Newt  아시아~유럽에 걸쳐 사는 도룡뇽의 일종. 유럽에는 얘를 보존하기 위한 매뉴얼이 존재함.  관심필요. 라리앙 안경원숭이  Lariang Tarsier 안경원숭이야 너무 유명하지만 빼면 서운할 것 같아서 2006년 공인된 애로 소개. 무지 큰 눈과 360도 회전하는 목을 지닌 꼬맹이. 모든 안경원숭이들은 불법 애완동물로 유통돼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사막 비 개구리 Desert Rain Frog 남아공의 토종 개구리. 개굴개굴 울지 않고  삐이잉~ 삐잉~ 하고 울어서 졸귀. 영상으로 보는 걸 추천ㅋ 인도 큰 다람쥐 Indian Giant Squirrel 꼬리가 굉장히 길고 두발로 일어서서 먹는다. 서전트 점프 6m. 서식지 파괴로 인한 멸종위기 취약종. 바베이도스 실뱀  Barbados threadsnake 2008년도에 최초 발견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뱀. 최대길이 10.4cm. 한번에 단 한개의 알을 낳는 귀중한 몸. 전문가들은 너무 작아 아직 못찾은 뱀이 지구상에 7백종 이상일 것이라 한다. 마눌  Manul 유명한 페르시아, 터키쉬 앙고라 고양이들의 조상님. 히말라야 산맥에 살아 털이 촘촘하고 두툼해 집고양이보다 크다. 멸종위기 취약근접. 재규어런디 Jaguarundi 얼핏 퓨마를 닮았지만 무게는 10분의 1. 이름은 재규어라는디.. 퓨마와 함께 고양이속이 아닌 퓨마속에 속해있는 동물. 인도 보라색 개구리  Indian Purple Frog 2003년 처음 발견된 기묘한 개구리. 섹스하는 2주동안만 땅위로 올라오고 평생 땅밑에 운둔한다. 이렇게 생긴 애도 하는데. 포사 Fossa 마다가스카르의 대빵. 몸길이 170cm 체중 10kg 정도의 중소형 고양이과 동물이지만 천적이 없는 마다가스카르에선 호없포왕.... 이래봤자 멸종위기 취약종. 올름 Olm 일명 동굴 도룡뇽붙이. 이탈리아의 캄캄한 동굴에서 살며 눈은 퇴화. 첨 발견됐을 때 드래곤의 새끼로 오해 받았다고 함. 수명은 자그마치 100년!!  멸종위기 취약종. 땅돼지 Aardvark 지구상 유일한 관치목 동물. ( 돼지 아니라능! ) 6500년~200만년 전 사라진 원시동물과 흡사한 살아있는 화석. 오랜 세월 아종도 없이 1목 1종으로 살아남은 존재.  브라질 갸냘픈 주머니쥐 Brazilian Gracile Opossum 브라질 밀림에 사는 유대류 주머니쥐. 몸무게가 10~50 그램 정도 밖에 안된다.  관심필요 등급. 남방 붉은 문착  Southern Red Muntjac 1992년 발견된 일명 짖는 사슴. 사슴치고는 굉장히 인상파. 뿔이 두개골 깊숙이 이어져 있고 큰 어금니가 삐져나와 있다. 사탄 나뭇잎 도마뱀  Satanic Leaf Tailed Gecko 일명 사타닉 게코. 나뭇잎 같이 생겼으며 애완용으로 많이들 기르긴 하지만 온도 22도만 넘어도 흐물흐물 녹아버린다고 한다.. 난쥉이 늘보 로리스 Pygmy Slow Loris 늘보 로리스 중에서 가장 작은 놈. 매우 수줍음이 많고 느려터져서 애완으로 많이 기르는데 팔에서 독을 분비하기도 하는 반전남. 약재로도 많이 쓰여 멸종위기 취약종. 검은 비 개구리  Black Rain Frog 남아공 토종 개구리. 맹꽁이와 흡사한 외모. 근엄한 표정.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급속도로 진행 중. 쿨타르 Kultarr 오세아니아의 주머니 뛰는쥐. 몸길이 10cm 체중 20g 정도로 작은 동물. 짝짓기 스트레스로 얼마 못살고 죽음.ㅠ  멸종위기 관심필요. 두건 물범  Hooded Seal 사진은 새끼고 수컷은 성체가 되면 코주머니를 팽팽하게 발기시켜 지 머리통만하게 만들 수 있다. 멸종위기 취약종. 조프레이 마모셋   Geoffreys Marmoset 일명 흰머리 비단원숭이. 색깔조합이 제일 특이한 동물 중 하나 .브라질 남동쪽에만 살고  에버랜드에도 있음. 멸종위기 취약종. 케이프 하이렉스  Cape Rock Hyrax 일명 바위너구리. 인간을 꺼리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먼저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는가 하면 애완용으로도 많이 기른다.  관심필요종. 분홍 요정 아르마딜로  Pink Fairy Aradillo 아르헨에서 발견된 최소형 아르마딜로. 100g 정도밖에 안나가고 다 자라도 손에 쏙 들어온다. 대부분을 땅속에서 생활해서 위기등급은 자료부족 상태.  순다 콜루고 Sunda Colugo 일명 말레이 날원숭이. 나무와 나무사이를 활강해서 날아다니며 잘 때는 마치 해먹에 눕듯이 날개막에 폭 들어가서 잠. 마룬잎 원숭이  Maroon Leaf Monkey 인도네시아,브루나이에 사는 긴꼬리원숭이. 한마리 수컷이 여러마리 암컷과 다니는 일부하렘제.  관심필요 등급. 레서 쿠두  Lesser Kudu  일반적으로 쿠두하면 자이언트 쿠두인데 얘네는 더 작은 애들 (레서가 작다는 뜻). 울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쌤 닮아서 넣어봄.  멸종위기 취약근접. 흑백 지렁이 도마뱀  White Black Worm Lizard 130 여종 있는데 찰옥수수 같은 색깔 때문에 눈에 띈다. 원래 도마뱀인데 땅속에 기어다니다보니 발이 퇴화된 애들.  줄무늬 다이커  Zebra Duiker 조지 웨아의 라이베리아에 살고 있는 나름 소 과. 줄무늬가 이쁘고 고기가 맛나 마구잡이로 포획. 멸종위기 취약종에 놓여있다. 나무타기 캥거루  Tree Kangaroo ㄴㅏ무 타야될 것 같은 이름의 겸댕이. 호주 현지에서도 씹덕터지는 중. 그러나 나무를 이동할 땐 9m도 뛰어내림. 멸종위기 위기등급. 아이 아이 Aye Aye 일명 마다가스카르 손가락원숭이. 못생긴 동물 우승후보. 때문에 저주의 대상으로 믿어 보이는 즉시 죽이는 관습도 있었다.ㅠ  멸종처리 되었다가 50년대에 부활. 현재는  멸종등급 "위기" 상태. 북방 푸두 Northern Pudu 세상에서 제일 작은 사슴 (영양은 딕딕) 작은 놈은 다 자라도 3kg 정도. 멸종위기 위기등급. 얼룩 타마린  Pied Tamarin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만 제한적으로 발견. 가면을 쓴 듯 얼굴털만 까맣다. 멸종위기 위기등급. 데이빗 경 긴코 바늘두더지  Sir David's Long-beaked Echidna 저명한 동물학자의 이름을 딴 이 원시적인 동물은 세 종류의 긴코 바늘두더지 중 하나로 10kg에 육박한다. 멸종위기 위급종. 아닥스  Addax 존나 아닥해야될 것 같은. 일명 나사뿔 영양. 과거 북아프리카 사막 전역에 살았지만 영양 중에서도 이뻐서 현재는 심각한 멸종위기 위급 상태. 옵덴부쉬 망가베이  Opdenbosch's Mangabey 헤어스타일 흑 간지. 중앙아프리카에 넓게 퍼진 망가베이 원숭이들중에서도 깊고 깊은 콩고 밀림에 살아서 잘 보이지 않는 애들.  위기등급 자료부족. 프제발스키 가젤  Przewalski's Gazelle 묘하게 욕같은 이름의 내몽고 가젤. (낙타아님..) 한 때 멸종직전까지 몰려서 팬더보다 훨씬 적게 남았었지만 지속적인 프로그램 때문에 멸종위기 위기등급으로 올라간 사례.  쿠스쿠스  Cuscus 아주 수줍음이 많고 뭉기적거리는 유대류. 파푸아뉴기니같은 섬의 개발로 근 10년간 80% 가까이 줄어듦. 멸종위기 위급종. 사이가  Saiga Antelope 몽골,중앙아시아 서식. 빙하기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중. 그러나 인간들의 무분별한 수렵,생태계 파괴로 현재 위급(멸종직전) 종.  일리 피카 Ili Pika 83년에 발견된 위구르 자치구 토착종. 멸종된 듯 했으나 20년만에 다시 발견. 최근 "팬더보다 더 귀한 중국동물" 로 알려지고 있다. 멸종위기 "위기"등급. 오카피 Okapi 희귀동물의 대명사격인 기린의 친척.  콩고민주공화국에만 살며 1901년 발견 이후 줄곧 멸종위기에 놓여있었다.  인류의 남은 숙제중 하나로 오카피의 생존을 꼽을 정도.  멸종위기 위기상태.  태즈매니아 데빌  Tasmanian Devil 최대의 육식유대류. 워너브라더스 만화의 캐릭터.  스컹크보다 고약한 냄새, 기분나쁜 울음소리로 얻은 이름이며 턱힘이 매우 강력해 늑대와 견줄 정도다. 원인모를 안면암이 발생하는데 아직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멸종위기 위기종.  태즈매니아의 대부분은 유럽인들에 의해 멸종됐거나 멸종위기다. 원주민들은 1876년 절멸.  사불상  Pere David's Deer 본디 중국에서 사슴의 뿔, 말의 머리, 당나귀의 몸, 소의 발굽이라고 여기던 영물. 1900년대 멸종됐으나 황제가 기르던 몇마리가 프랑스에 건너가 있었기에 복원에 성공했다. 야생에선 멸종되었으며 동물원 사육, 국립공원에서 반야생화 되었다. 멸종등급은 "자립지 전멸" 상태. 황금 들창코 원숭이  Golden Snub-nosed Monkey 중국 3대 보호동물로 지정된 귀한 몸. 엄격히 해외반출을 금하고 있으며 오직 한국,일본에만 건너와있다. 손오공의 실제 모델. 멸종위기 위기등급. 수마트라 문착  Sumatran Muntjac 작은 사슴의 일종으로 1930년 마지막으로 발견된 뒤 72년만에 발견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15년 째 행방불명 중.... (사진도 저거 딱 한장임;) 현재도 서식에 대한 정보가 없어 멸종위기 등급도 나누지 못한 채 "자료부족" 상태이다. 사올라  Saola 1992년 최초 발견. 이후 역사상 단 네번(!) 포착됐으며 지구상에 극소수 존재할 것으로 추정. 극도로 예민해 포획하면 이틀 내로 죽기 때문에 동물원 사육도 불가능. 그러나 희귀하면 할수록 밀렵꾼도 늘어나 매년 사올라 대신 7000개가 넘는 사올라덫만 적발중이다. 베트남이 지은 태풍 "사올라"는 바로 이 동물의 이름을 딴 것. ㄹㅇ 다처음봄.. 지구엔 참 다양한 생명체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