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go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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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줍 0303 #sensory #healing

일요일,
한주동안 날카로워진 감각과
마음을 안정 시킬만한 움짤을 모아봤어요.
기쁘고 행복한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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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차분해 졌네요.ㅎ
다행입니다.. 일요일 마무리 잘하셔요
@goalgoru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ㅎ ㅎ
네넵 미세미세도 조심이요
기분이 좋아지는 움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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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당시 사진들.jpg
일왕 히로히토가 8월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미영중소 연합군에게 항복을 발표하자 광화문 사거리에 나와서 환호하는 서울시민들 뒤에 태극기가 펄럭이고있다 광복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옥된 독립투사들과 함께 환호하는 서울시민들 (1945년 8월 15일) 조국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 (1945년 8월 15일) 여담으로는 광복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어떤 정체불명의 사내가 서울역에 소련군이 도착했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렸고 이 허위사실(?)에 속은 많은 서울시민들이 정말 소련군이 서울역에 나타났는지 확인하기위해 서울역으로 시민들이 매어졌다고 물론 이는 말도안되는 거짓말이였다 플랜카드를 들고 광복을 기뻐하는 학생들  서울 남산에 태극기를 계양하고있는 가슴 벅찬 순간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 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 (1945년 8월15일) 전남 광주에서의 8.15해방 경축 퍼레이드. 광복직후 중경에서 귀국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전에 사진을 찍는 백범 김구 선생 임시 정부 귀국 환영 꽃전차. 임시정부의 귀국을 환영하는 시가행진 조국으로 돌아온 임정요인들 - 왼쪽 세번째가 법무위원이었던 이시영,  다음이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외무부장 조소앙, 내무부장 미군에 의해 내려지는 조선 총독부 광장의 일장기 (1945년 9월 9일) 미군이 보는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있는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 (1945년 9월9일) 항복서명 직후 서울을 떠나는 일본군, 아직 무장해제되지 않은 상태이다 (1945년 9월 9일)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하는 한반도 주둔 일본군들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되는 일본군2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되는 일본군3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하는 일본군들4  마을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있다 해방후 국민학교 첫개교 - 해방 약 한달 뒤인 1945년 9월24일 전국에서 국민학교 교육이 일제히 시작되어 빼앗겼던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는 감격을 맛보았다. 사진은 첫수업 해방 직후의 시골 국민학교 교실 - 진흙 화로 둘레에 배치한 간이 책상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진지한 얼굴로 되찾은 우리 글을 익히고 있다. 사진은 강원도의 한 산골. 해방경축 종합경기대회 - 1945년 10월27일에 열린 이 대회는 해방후의 첫 전국체전으로 태극기를 든 손기정씨가 감격에 벅차 눈물을 닦고 있다. 출처
우리가 도망쳐 온 것들.txt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칼럼) 중세 독일의 전설에 이런 게 있지요. 독일 바덴 지방의 어느 젊은 백작이 덴마크를 여행하다가 아름다운 성의 정원에서 놀고 있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는 그 성에 머물며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던 오라뮨데 백작 부인과 깊은 사랑을 나눕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그는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수개월 뒤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자 기쁨에 들떠 덴마크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뒤 죄의식에 몸져 누운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백작 부인은 ‘네 개의 눈’이 새로운 사랑에 방해가 되는 아이들인 걸로 오해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거지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독일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처참한 사랑으로부터 말입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대학생 츠네오가 다리를 쓰지 못해 집에만 틀어박힌 조제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조제와 사랑을 나누다가 서로 다른 처지 때문에 헤어지게 된 츠네오는 조제의 할머니가 죽자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 함께 삽니다.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소개시키기 위해 조제와 자동차를 타고 떠난 츠네오는 도중에 마음을 바꿔 갈 수 없게 됐다고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받던 동생은 “형, 지쳤어?”라고 되묻지요. 그 여행 후 결국 츠네오는 조제와 헤어집니다. 영화 속 이별의 순간은 의외로 너무나 깔끔합니다. 조제는 담담히 떠나보내고, 츠네오는 별다른 위로의 말 없이 그냥 일상적인 출근이라도 하는 듯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섭니다.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옛 여자친구는 그를 만나자마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합니다. 묵묵히 들으며 함께 걷던 츠네오는 갑자기 무릎을 꺾고 길가의 가드 레일을 잡은 채 통곡합니다. 그 순간 츠네오의 독백이 낮게 깔립니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 댈 수 있지만, 사실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결국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도망쳐 떠나온 모든 것에 바치는 영화입니다. 한 때는 삶을 바쳐 지켜내리라 결심했지만 결국은 허겁지겁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처참한 결말을 논외로 두고 사랑 자체의 강렬함만으로 따지면 오라뮨데 백작 부인 만큼 온 몸을 던지는 사람도 없겠지요.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조제만큼 절박하게 사랑이 필요한 경우도 드물 거고요. 공포 때문일 수도 있고 권태나 이기심 탓일 수도 있겠지요. 동생이 되물었듯, 츠네오는 그저 지쳤던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떠나갑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홀로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은 조제의 뒷모습처럼,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기를.  출처ㅣ이동진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칼럼입니다 :)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 .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
피닉스님께서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차이가 무엇인지 저의 생각을 물어오셨어요 예전에 잠깐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지금은 사랑을 안하고 있으니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좋아하다 1.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감정이란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그 대상에게 마음이 간다는 것은 분명하고 생각이 아닌 감정이 담긴 마음이 반응한다는데서는 같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를 두자면 차이의 핵심은 감정의 깊이와 대상에 대한 태도에 있는 거 같아요 보통 사랑에 중독된다라고 하죠 대상을 좋아하면,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은 없는 것이지만 사랑을 하면 그 대상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가슴앓이는 사랑을 시작할 때만 하게 되죠 보통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질투하거나 집착하지 않지만 사랑은 다르죠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질투나 집착은 사랑하는 감정으로 인해 생기는 소유욕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사랑하는 그 감정의  깊이에 따라 대상에 대한 태도 또한 달라지죠 그 태도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극명하게 보여집니다 너무 사랑해서 소유하려 하거나 또는 너무 사랑해서 너무 조심스럽다거나 하는 것이죠 사랑할 때나 좋아할 때, 감정의 흔들림은 비슷하게 보여지지만 안보면 더 보고 싶어지는 사랑하는 감정의 지속성이 그 둘을 구분짓는 또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감정의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익숙함 때문에  그 감정의 지속성은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마음이 끌리는 하나의 감정이라고 볼 때 좋아하는 것은 호감에 가깝고 그 감정이 깊어지게 되면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을 어려워 하는 것은 아무리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있다고 해도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느껴도 다른 것을 생각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기에 그런 것 같아요 그 어려운 사랑이지만 사랑을 하려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스스로 채울 수 없는, 사랑함으로써 생기는 감정의 한 부분 때문이겠죠 이 글이 답이 충분히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 타이핑 영상 https://youtu.be/J9fkEcqgy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