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ubon
1,000+ Views

거룩한 도둑질

한반도 지역 출신인으로서 최초의 가톨릭 사제였던 김대건은 1846년 25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천주교회에서 성인은 순교를 할 경우 자동으로 오르게 마련이지만 실제로 성인 지위에 오른 것은 1984년이었는데… 김대건의 유골은 여러 곳에 안치되어 있다. 알려진 곳은 가톨릭대 성신교정(혜화동)과 미리내, 그리고 절두산.


즉, 김대건의 유해는 자잘하게 분해됐다(참조 1). 성인의 유골이라는 것은 일종의 WiFi 라우터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해외로도 운송이 된 셈인데, 참조 기사는 아무래도 유교 전통 국가의 신부다 보니 저런 칼럼을 쓴 모양이다. 서양 기준에서 보면? 당연한 처사다. 바로 앞서 말했듯, 라우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인의 유골이 있다? 그럼 그 지역 내 성령파(!)는 아주 강력할 것이다.


아마 읽어본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하는데, 엘리스 피터스(참조 2)의 “캐드펠 시리즈”이다. “성녀의 유골”이나 “성스러운 도둑”이 바로 성인 유골 도둑질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언급했는데, 나는 처음에 유골이나 유해 도둑질이 왠지 다른 문화권에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이 책에 나오는, 중세 가톨릭 외에는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유독 중세 서유럽에 성유골 도둑 이야기가 많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위의 캐드펠 시리즈도 나오고 했다는 얘기다. 어째서일까?


가톨릭이 불교나 이슬람과는 달리(참조 3), 크리스트가 중심이되, 그 중심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기 때문에, 크리스트교가 농촌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던 카롤링거 왕조 무렵에는 일종의 “프록시 서버”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온갖 성인들이다. 각 지역의 성당과 성직자들이 물리적인 서버 역할을 한다면, 그 안에 놓여 있는 성인의 유해, 혹은 유골의 일부는 지역민들이 가톨릭에 접촉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서버 역할이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물리적이지 않은 “뭔가”의 불법 복제는 성행한다. 그런 맥락으로 바라봐야 범죄로 치부되지 않은 성유물 도둑질의 설명이 가능하다. 게다가 1979년의 애플(갑자기?!)은 아래와 같은 표어로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마케팅 포스터를 만든다(참조 4).


Software Sells Systems(참조 4)


소프트웨어가 시스템을 판다. 비잔틴 제국은 이미 성숙한 문명권인지라 성인(…바실레우스?)의 그림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프랑크 왕국 권역은 성숙한 문명권이 아니었으며, 성인의 유골과 관련된 전설과 설화, 그에 따른 기적담은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시스템(여기서는 가톨릭)을 판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대상이 다르면 마케팅도 달라야 하는 법.


그리고 수요일은 역시 독서지.


--------------

참조

1. [삶의 창] 김대건 신부 유해 보존 유감 / 호인수(2013년 10월 11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606710.html

2. 본명은 Edith Pargeter, 캐드펠 시리즈(The Cadfael Chronicles)로 유명하다

3. 가령 불교에서는 누구나 부처가, 누구나 핵심이 될 수 있다. 이슬람은 알라와 코란, 하디스가 이슬람교의 모든 것이자 핵심이고, 매개를 거치지 않는 직거래를 시도한다. (이맘은 직거래를 도울 뿐)

4. Apple's secret Services sauce sells systems(2018년 8월 10일): https://appleinsider.com/articles/18/08/10/apples-secret-services-sauce-sells-systems
casaubon
4 Likes
1 Share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