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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근육 있는 여자들
자신의 목표에 매진했기에 자연스럽게 근육을 갖게 된 여성들. 보그에서 진행한 화보 속 선수들이 진짜 존나 멋있어서 퍼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들도 보이고요. 나도 운동 열심히 해서 몸도 마음도 단단해져야지 JUNG YOU IN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국가 대표 아름다운 몸이란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자신이 만족한다면 아름답다. 요즘 내게 몸에 관해 고민 상담하는 분이 많다. 너무 말라서 언니처럼 근육을 갖고 싶다, 살집이 있는데 다 빼고 싶다 등 다양하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건강하다면 겉모습은 상관없다. 모두 나름의 매력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SON YOUNG HEE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은메달리스트 아름다운 몸이란 내가 만족하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코치님이 무제한급으로 올리자고 권유하셨다. 그때는 왠지 싫었지만, ‘신의 한 수’였다. 무제한급으로 출전해 2015년 전국체전 금메달 3관왕(인상, 용상, 합계)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5kg 이상급 은메달을 땄다. 지금은 내 몸이 만족스럽고, 그렇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SUNG KI RA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주짓수 금메달리스트 몸에 대한 편견 매스미디어에 근육 있는 여성이 자주 등장하지 않으니 대중이 그 아름다움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선수촌에서 그랬듯, 대중도 근육 있고 건강한 여성을 자꾸 보면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OH YEON JI 한국 여자 복싱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근육이 필요한 이유 근육은 몸과 인생에 탄력을 준다. 또한 자신감이 커지면서 보는 이에게 그 에너지를 전달한다.
털 날리는 짐승은 싫다던 아빠, 길냥이랑 숨바꼭질하며 절친된 사연
고양이 입양을 극구 반대하던 아빠가 입양한 길고양이와 결국 '절친'이 된 사연이 공개돼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사진 속에는 아빠 집사와 숨바꼭질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생후 5개월 된 코리안 숏헤어 수컷 설이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설이가 찾지 못하게 몸을 숨긴 아빠 집사. 창문 너머로 몰래 설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허둥지둥 아빠를 찾는 설이의 모습을 본 아빠 집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뒤이어 아빠 집사는 설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런 아빠의 품이 좋은지 얌전히 안겨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 설이의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A 씨는 "아빠가 고양이를 상대로 숨바꼭질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서 찍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올여름 태풍 경보가 발효된 춥고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길에서 생후 3주 정도로 추정되는 설이를 구조했다"는 A 씨. "당시 부모님께서는 갑작스럽게 집에 데려온 설이를 좋아하지 않으셨다"며 "아빠는 털 날리고 냄새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고, 엄마랑 누나는 동물을 무서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구조한 설이를 잠시 다른 곳에 임시 보호를 보낸 후 가족들을 설득했다"며 "결국 설이는 한 달 후 저희 집에 다시 돌아와 반려묘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 노트펫 기사 바로가기 >>> [추천콘텐츠]
집사가 홈트 시작하자 고양이가 지은 표정
최근 집사 희서 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고양이 '재스퍼'는 자신의 전용 의자에 자리를 잡고 엎드려 집사를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유연성과 민첩성하면 빠지지 않는 고양이라 그런지 제법 진지하게 집사를 쳐다보는데요. 그러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재스퍼. 당장이라도 "집사야. 더 유연하게 못 하냥?"이라고 말을 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운동이 끝날 때까지 처음 자세 그대로 지켜보고 있는 재스퍼의 모습에 희서 씨는 웃음이 절로 나왔답니다. 희서 씨는 "재스퍼가 원래 옆에 꼭 붙어 있거나 애교가 많은 고양이는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어도 멀리서 지켜보는 편이에요"라며 "휴학하고 집에만 있던 제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부쩍 따라다니고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더라고요"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어 "이 날도 제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왔더니 운동하는 동안 옆에서 계속 쳐다보며 떠나지 않았어요"라며 "어머니랑 같이 있었는데도 제가 많이 그리웠나봐요. 미안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촬영을 하게 됐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노트펫 기사 바로가기 >>> [추천콘텐츠]
팝의 황제 이야기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 대중음악의 주류는 엘비스에서 비틀즈로 대변되는 소위 '백인' 음악이었습니다. 로큰롤과 팝으로 대표되는 음악들은 악기연주위에 목소리를 얹는 귀를 만족시키는 '듣는 음악' 이었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바뀝니다. 백인과 흑인의 음악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며 인종을 뛰어넘는 음악이 등장했고, 난생처음 보는 움직임까지 더해 대중들의 귀 뿐만 아니라 눈까지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합니다.  1958년 8월 가난한 흑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가정부였던 어머니와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작고 열악한 집에서 학대를 일삼는 아머지가 계셨고, 너무나 많은 형제와 함께 자랐습니다. 특히 아버지 조 잭슨은 앞으로 일어날 마이클의 모든 일생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아머지는 전전긍긍하며 일을 하는데 그 중 밴드생활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죠. 이 밴드활동에는 성과는 없었지만 잭슨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마땅히 놀 장난감이 없었던 아이들은 아버지가 밴드를 하던 당시 사용했던 악기들을 가지고 놀게되죠. 잭슨 형제들, 특히 마이클은 음악에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조 잭슨은 잭슨 브라더스라는 가족밴드를 기획해 거의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아이들에게 시키게 됩니다.  이들 밴드는 마이클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활동하며 스트립 클럽에서까지 공연을 하고, 마이클이 9살되던 해에 <Big boy> 라는 곡이 발매되어 자기 곡을 가진 밴드 잭슨 파이브가 되는데요.  1969년 잭슨 파이브는 지방레코드사를 거쳐  '모타운'이라는 메이저 흑인음악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순식간에 유명세를 탑니다. 마이클은 이 과정속에서 어딜가나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잭슨 파이브 팀내를 넣어 동시에 가수 누구보다 주목을 받았고, '모타운'은 이러한 마이클에게 반하죠.  그래서 데뷔 1년동안 싱글 네 개를 내어주고 잭슨 파이브를 모타운의 간판으로 내세우게 되었죠.  잭슨 파이브는 <I want you back>,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으로 이어지는 네개의 싱글을 모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리며 모타운의 기대에 부흥합니다. <I'll be there>은 차트 1위를 5주동안 기록한 초대박 성과를 이뤄낸 곡이 됩니다. 마이클은 잭슨5와 더불어 솔로 활동도 펼치고 다니게 되죠.  <Got to be there>이라는 앨범으로 솔로 데뷔한 마이클은 <Ben>으로 빌보드 1위에 오르며 고작 12살이라는 나이에 본인 자신만으로도 최고의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그러나 마이클에게는 이런 가족의 성공 가도가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버지로인해 음악하는 기계로 살아야만 했죠.  또한 밴드의 성공은 아버지와 마이클의 형들이 방탕한 삶을 살도록 했고, 어린나이에 그런 것들을 지켜보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을 보냅니다. 또 어린나이부터 시작한 활동과 유명세 때문에도 학교도 다닐 수 없었죠. 동년배들이 학교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유년시절 외로운 기억은 마이클잭슨의 평생 트라우마가 됩니다.  유년기를 지나 마이클의 첫 성인 커리어는 1979년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시작됩니다. 마이클은 첫 성인솔로를 준비하며 그가 출연했던 영화 작업 중 만난 퀸시존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첫번째 홀로서기 앨범이었던 <Off the wall>은 미국에서만 800만장, 전 세계적으로 2천만장이 팔리며 대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만족하지 못하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였고, 평론가들의 찬사도 이어졌지만 그래미에서의 무시, 롤링스톤 표지모델 거절 등 백인 중심의 주류 음악계에서 그는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인종 문제에서 비롯된 이러한 차별은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과는 별개로 음악에 대한 욕심과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마이클에게 독기를 품게 만들었죠. 그는 결국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을 만들어 냅니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의 두번째 앨범 <Thriller>는 인종차별에 독기를 품은 마이클의 의도대로 백인,흑인의 음악경계를 무너뜨리며 전 세계 6500만장 이상 팔리게 되죠.  이는 어느정도였냐하면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재될 정도였습니다. 이 음반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다른앨범까지 구매하면서 그 해의 음악 산업 자체가 성장했을 정도로 큰 획을 그은 앨범이 됩니다.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트랙이 차트 정상 및  상단에 올랐고, 평론가들의 찬사는 물론 본인이 염원했던 그래미와 롤링스톤의 표지까지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키는데요. 1983년 5월 모타운 기념방송 공연무대에서 선보인 그의 무대는 말 그대로 음악의 역사가 바뀌는 현장이됩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중절모와 자켓, 그리고 흰 장갑을 끼고 등장한 마이클잭슨은 화려한 춤과 문워크로 전세계를 뒤흔들게 됩니다.  이 무대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봐도 촌스러움이 없고 완벽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무대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부터 대중 음악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여 춤이라는 요소가 공연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음악은 단지 듣는 것에서 보고 듣는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앨범은 음악계 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을 펼치던 MTV는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골든타임 대에 마이클잭슨의 영상을 틀었고, 흑인 연애인들이 거의 나올 수 없던 Tv채널이나 라디오에서 마이클의 음악과 영상들이 나오면서 흑백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후에도 마이클은 <Bad>, <Dangerous>, <History>등의 앨범을 남깁니다. 앨범의 모든 트랙이 완벽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대로 각각의 앨범은 4-5년이 걸릴 만큼 긴 시간을 두고 발매되었죠. 역대급이었던 <Thriller>만큼의 히트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그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공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연예인 마이클 잭슨의 유명세는 자연인 마이클잭슨의 삶을 점점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그가 움직이는 모든것이 화제가 되고, 등장하는 모든 매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다보니 언론은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루머들을 무차별적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죠.  가장 대표적인 루머는 마이클의 피부색과 외모에 대한 것이었는데 언론은 점점 하얘지는 그의 피부색과 날카로워지는 외모에 대해 '마이클 잭슨이 백인음악을 하는 것을 넘어 백인이 되고 싶어한다'라며 끊임없이 기사화를 시킵니다. 사실 그의 피부는 백반증이라는 질병이었고, 코와 턱의 성형수술은 어린시절 아버지 조잭슨의 얼굴에 대한 폭언과 폭력으로 생긴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이런 무차별적인 루머들은 3류 타블로이드지뿐 아니라 주류 언론에서도 다뤄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게되고 이 밖에도 그가 사는 네버랜드에 관한 근거없는 이야기를 이용해 마이클 잭슨을 미친 마이클잭슨 'Wacko Jacko'로 칭하며 그를 현실과 분리된 존재처럼 만들어내죠. 그를 괴롭힌건 언론뿐만이 아니었죠. 엄청난 부를 이룬 그는 많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는데요. 마이클이 호의로 초대한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그를 소아추행범으로 고소했고, 헐리우드의 악덕 변호사들과 손을 잡고 마이클을 괴롭힙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약물을 사용해 진술을 바꿀만큼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사건은 1500만달러의 합의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죠.  합의라는 명분때문에 아직도 마이클잭슨을 소아성애자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고 LA아동 복지국의 조사 결과도 잭슨의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되죠.  이후에도 그는 또 다른 어린아이의 성추행에 관한 재판을 다시 한번 겪게 됩니다.  두번째 사건도 마찬가지로 마이클의 혐의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는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마이클은 수색과정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고, 타블로이드지의 보도를 기정사실로 가정한 수사당국의 압박을 받기도 하는 등 큰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죠.  특히 유년시절을 통째로 잃어 버려 어린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이클잭슨의 순수한 마음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에 대한 괴로움은 그를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게 하고, 약물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불면증으로 인한 약물 의존은 훗날 그를 사망까지 이끄는데요. 2009년 6월 그가 사망한 자택에서는 매우 많은 양의 프로포폴 병이 발견되었죠.  그리고 그를 괴롭히던 언론과 대중들은 그가 죽고나서야 루머를 멈춥니다.  어린 나이부터 단 한번도 최고의 자리를 벗어난 적 없던 마이클 잭슨,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그가 썼던 왕관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했을 지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아직까지 제 2의 마이클 조던이 나오지 못한것처럼, 여전히 팝의 제왕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이클 잭슨. 언젠가는 그의 아성을 넘어뜨릴 또 하나의 레전드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을까요? 펌) 출처 정말 순수했던 사람... 너무 힘든 삶을 살다 갔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고 있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