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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캡틴 마블> 리뷰: 세상에 영웅이 필요한 이유, 새 '어벤져스'를 앞두고

세상에 영웅이 필요한 이유, 새 '어벤져스'을 앞두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개봉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즈 3' 발표가 있던 2014년 당시, 케빈 파이기는 <캡틴 마블>의 제작 확정 소식을 전하며 '캡틴 마블'의 이름이 '캐럴 댄버스'임을 이미 밝혔다.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이나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한 2019년 지금을 염두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준비된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물론 디즈니와 마블의 동향을 주시해온 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캡틴 마블>은 어떤 영화인가. 먼저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브리 라슨)의 주변을 살펴보자. "너무 감정적이면 안 된다", "여자가 조종석에 앉는 건..." 같은 말을 들어야 했던 시기의 여성 파일럿과 과학자, 외계 종족(여기서는 단지 지구 밖을 의미할 뿐 아니라 지구에서의 '소수'임을 동시에 내포한다), 그리고 흑인. 그렇다면 <캡틴 마블>은 소위 '페미니즘 영화'인가? 그렇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여성영화의 계보로는 그렇다고 봐야만 하겠다. (한데, 불매 운운하던 이들 중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보다 덜 페미스럽다'는 식의 반응을 내보이는 이들은 대체 영화에서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그러나 MCU의 첫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임을 지칭하는, 예고편에서의 헤드카피(HER - A HERO)만 가지고도 마치 이 영화가 영화의 만듦새보다 무조건적인 'PC'를 의식한 작품이라며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무엇인들 마음에 들겠는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 <블랙 팬서>(2018)에 대한 온라인 일부 반응 역시도 비슷한 맥락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과연 'PC'가 영화를 망치기만 할까.

'캡틴 마블'이 '캐럴 댄버스'였든 누구였든, <캡틴 마블>은 솔로 히어로 무비의 익숙하고도 친숙한 전형을 따른다. 과거의 숨은/잊힌 기억이 전개의 실마리가 되고 나아가 일종의 반전으로서 기능하는 것 역시 처음 보는 게 아니다. 크리 종족의 일원이면서 지구에서의 기억을 (자신도 모르는 새) 가지고 있다는 외면상의 설정도 후반에 이르면 이질감 없이 MCU의 치밀한 기획의 일환이었음에 수긍하게 된다.

젊은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를 비롯해 '콜슨'(클락 그레그) 요원과, 무엇보다도 고양이 '구스' 등 <캡틴 마블> 속 '캡틴 마블'의 각성과 도약의 과정에는 매력 가득한 조연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유머가 함께한다. '캐럴 댄버스'의 성장은 타자가 정해놓거나 구획해놓은 '전사'(戰士, 前史)에서 벗어나 진짜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조차 모르던 인물이 스스로의 능력과 스스로의 의지를 확고히 하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다.

단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의 보너스 영상에 등장해 '어벤져스'의 새 멤버가 되리라는 것 정도만 짐작했던 '캡틴 마블'이 실은 '어벤져스'라는 명칭의 기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쉴드'가 또 다른 '히어로'들을 찾아 규합해나가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캡틴 마블> 자신이 단독 영화로서 세계관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세계관에 이물감 없이 녹아드는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한 달 후의 개봉작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캡틴 마블'이 등장한다는 점일 텐데, 실질적으로 <퍼스트 어벤저>(2011)와 <어벤져스>(2012)의 프리퀄로서의 역할까지 해낸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순간, 그 누구로부터의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가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모아, 세상과 타인을 능히 움직이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크리 종족과 스크럴 종족의 갈등 역시 표면적으로 보이던 것과는 달리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전쟁이 "Universal Language"라는 말을 '닉 퓨리'가 하는데, 이는 외계 종족이 어디에나 있으리라는 뜻인 동시에 지구든 어디든 전쟁이 없는 곳이 없으리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우주에서 '캡틴 마블'은 정말로 '어벤져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해 <캡틴 마블>은 힘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는 영화다.

'캐럴'이 '마리아'(라샤나 린치)의 딸인 '모니카'(아키라 아크바)를 대하는 모습은 자연히 영화가 동시대의 관객, 특히 어린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블랙 팬서>의 개봉 당시 옥타비아 스펜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와 비슷한 시사점을 주는 말을 한 적 있다. 원문 일부를 그대로 싣는다. "I will buy out a theatre in an underserved community to ensure that all our brown children can see themselves as a superhero."([TIME], 2018년 2월 19일 'A Hero Rises' 호에서 재인용) 이는 인종이나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수퍼히어로'라는 존재이자 명사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 영웅은 힘이 세거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악당이 된다.) <캡틴 마블>이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아닐지라도, 요컨대 이런 것이다. "너도 영웅이 될 수 있어."


<캡틴 마블>은 무난한 '솔로 무비 1편'으로서 충실할 뿐, 정치적 함의를 노골적으로 설파하는 영화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니, 글라스 실링이나 가스라이팅과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199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에서 자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요소로 다가올 뿐, 작품에서 두드러지거나 영화의 톤 앤 매너와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한데, 메시지를 담는다고 한들 그게 조금이라도 문제 될 바가 있는가? 모든 건 관객의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에 달린 것이다. 같은 이야기와 같은 메시지라도 무수한 영화 언어의 교직에 따라 다양한 화법으로 저마다에게 달리 닿는 것이고. 여태껏 수퍼히어로가 대부분, 거의 모두 남성이었다는 건 다시 주지 시킬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DC 진영의 <원더우먼>(2017)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성별이 바뀐다고 하여 영화가 일순간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페미니즘 사상 영화' 같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더 정치적인 건 '캡틴 마블'과 브리 라슨에 대해 특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의 반응이다. (덧: 브리 라슨은 정말로 스탠 리를 '모욕'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는 대중들이 '추모에 바람직하다고 허락한' 사진을 올려야 하고 대중이 '그럴 수 있다'라고 허락한 방식으로 악플에 대응해야 하는가?) 그것도 포털과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그간 보여왔던 아주 익숙하고도 전형적인 방식으로.

나는 오히려 <캡틴 마블>의 러닝타임이 지금보다 15분에서 20분가량은 더 길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블랙 팬서>에서처럼 캐릭터를 넘어 문화를 세밀히 담아내거나, 혹은 '닉 퓨리'나 '마리아'와 '캐럴'과의 관계를 더 밀도 있게 그려낼 수 있었으리라. 지금의 '잘 만든 기획영화'이자 '세계관 내 다음 영화로 향하는 단단한 다리' 역할로도 충분하겠지만.


아, 지금껏 배우들의 연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브리 라슨, 사무엘 L. 잭슨(그가 고양이 '구스'를 상대로 혀짧은 소리를 내며 대화하는 신은 정말 귀하다!), 주드 로, 벤 멘델슨, 아네트 베닝. 말해서 무엇하리. 사적으로는 <어벤져스>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같은 소위 '떼샷' 영화보다는 단독 영화를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디즈니와 마블의 기획력과 그것을 실현하는 치밀함에 대해서는 의심하거나 회의할 여지가 없겠다. 이제는 익숙하고 예상 가능하다고만 생각할 때, 마블의 영화는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선보인다. 그리하여 동시대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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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님 좋은글 잘봤습니다. 제가 본 후기 중에 제일 와닿는 글이네요. 요즘 캡틴마블 관해서 악의적인 리뷰가 굉장히 많더군요. 브리라슨의 추모글을 이유삼지만 그 이면엔 다른 의도가 있는게 뻔히 보이기에 참 씁쓸했습니다. 캡틴마블이 첫 여성 히어로물이기 때문에 더 의미있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코스모스님 말처럼 다른 슈퍼히어로물과 달리 특정 정치적 의의를 말하고자 하는건 아니겠지요. 더불어 슈퍼히어로가 꼭 잘생기거나 예뻐야하는게 아님에도 주인공 외모에 대해 아주 악의적인 품평이 빠지질 않더군요... 자꾸만 다른 이유를 갖다대며 영화 자체를 매도하는게 마음이 아픕니다. 아무튼 코스모스님 공감가는 리뷰 잘보았습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무엇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러려니 하게 되기도 해요. 공감하며 읽으셨다니 기쁘고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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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PC가 뭔가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약어로 쓰이는 말입니다. 본문에 제가 미처 표기를 하지 않았네요,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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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조커'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비도 오는 김에 친구랑 감자탕을 먹었어요. 영화관이 앞이길래 영화도 보러 갔어요.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던 하루였네요. 근데, 결과는 대만족이었어요. 10월달 화제의 영화, '조커'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사실 우리는 히스레저의 조커가 더 익숙합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모르지만 범접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비슷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죠. 처음에 조커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과연 이전의 그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죠. 그런데 직접 보고 온 지금, 저는 2명의 조커를 섬기게 됐습니다. 그도 사람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커는 무자비하고 냉소적이고 살인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 작품은 조커의 탄생비화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탄생의 배경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던지는 야유, 인간에게 던지는 물음과 같은 어둡고 깊은 내면의 주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결국 조커라는 캐릭터도 원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괴물이 된 조커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영화는 설득합니다. 보통은 설득이 안 되고 허무맹랑하나 이번엔 2시간 내내 그의 힘에 매료됐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 쓰고 고담으로 읽는다 배트맨과 조커의 화려한 싸움을 혹시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는 접으시길 바랍니다. 액션은 얼마 나오지 않고 폭력보다 조커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허나 애드 아스트라보다 더 깊고 우울하며 관객이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는 작품입니다. 조커의 배경은 평범한 인간이었을지 모르고 순수한 꿈을 지닌 청년이었을지 모르며 자본주의 사회 속 짓밟힌 아웃사이더일지 모릅니다. 즉, 시작은 자본주의 속 우리들 중 누군가입니다. 고담 시티는 철저하게 잇속으로 더럽혀진 현대사회를 압축적으로 축소한 세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폭동을, 누군가는 선동을 시작합니다. 첫 장면부터 중요하다 조커는 장면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관객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세세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첫 장면부터 자신의 얼굴을 칠하는 '해피'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희한한 장면을 표현합니다. 이는 조커가 아닌 슬프지만 웃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해피'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점점 사건이 심각해지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해피가 '조커'로 각성하게 되죠. 처음은 순수하고 겁쟁이었습니다. 다음은 충동적이고 분노에 차 있었죠. 또 다음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심판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동적이고 무시받던 외톨이가 결정을 내리는 능동적인 처형자가 되는 그림을 2시간에 걸쳐 감상하면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한 때는 인간이었던 '해피'가 어떻게 '조커'로 변화하게 되는지, 어느 순간 '조커'로 됐는지 구분지으면 더 흥미롭습니다. 모든 걸 잃어버렸음에도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있었다면 해피는 조커가 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한 구석도 믿지 못하게 됐을 때, 잃을 게 없어졌을 때 마침내 괴물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도 그저 평범한 인정을 바랬고 평범한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개인밖에 모르는 인간들 틈에서 순수한 인간은 괴물의 탈을 쓰고 변화하게 됩니다. 호아킨의 연기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명품입니다. 조커 그 자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과 전율의 연속이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로 긴박한 장면이 많지 않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빠르게 시간을 녹여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깊이 있는 조커입니다. 히스레저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조커의 모습, 기다렸던 괴물의 탄생, 진정한 안티 히어로의 출현이 이 작품에서 나타났습니다. 스토리도 좋고 연출도 좋고 설득력도 있고 모든 게 좋지만 단순히 호아킨 피닉스 연기 하나만으로 영화를 보는 이유가 충분할 정도입니다. 명대사 천국 조커하면 공감가는 명대사로 유명한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명대사를 많이 남겼습니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어 당신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처럼, 웃기고 안 웃기고도 판단할 수 있는 거야? 코미디는 주관적이야 방금 웃긴 조크가 하나 생각났거든. 이해 못할 거야 조커의 탄생 코미디와 비극, 웃음과 슬픔, 부자와 빈민, 모든 건 반대되지만 동시에 주관적인 것. 하지만 부자와 빈민의 역전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조커는 모든 인간이 같은 상태를 경험하길 원합니다. 돈을 뺏어서 빈민에게 나눠주는 의적이 아니라 돈을 태워서 없애버리는 공정한 심판자입니다. 그리고 부자나 빈민할 거 없이 잘못하거나 예의가 없으면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커가 생각한 예의는 상대를 멋대로 판단거나 무시하는 행동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고 룰이 있는 빌런입니다. 무섭지만 싫지 않고, 난폭하나 설득력이 있는 조커를 우리가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우리도 조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호아킨의 조커, 꼭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청불이라 대박까지는 힘들 수 있습니다만 300만~400만 정도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상 영화 '조커'의 솔직한 리뷰였습니다.
'봄'에 어울리는 말랑말랑한 청춘 영화 BEST 3
ㅎ2. 빙글성님들. 할망 옴^^.. 지난 카드는 별로 반응ㅇ ㅣ 없더라?.. 예쁜영화 추천할때는 반응 좋던디만..댓글도 잘 달아주고.. 빙글러들은 폭력적인 영화 싫어하나벼..?! 데헷 그래도 난 계속 쓸거지롱~~~~~~~~~ 아.. ...마자............ 낼모레 화이트데이임. 느그들 사탕 줄 여자는 있고..? 난 없............................어머니 드려야겠다. :) 그러고보니. .벌써 3월 중순이야...ㅂㄷㅂㄷ 급 우울하네 ㅁ나이ㅓㄹ;ㅣ만어;ㄹ 쩝...........무튼 화이트데이도 다가오기도하고... 지난번에 약속한대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봄에 보면 '딱' 좋은 영화 춫천 간다. 참고로 세 편 모두 일본영화다.ㅋ 니혼색희들이 아기자기한 영호 ㅏ 참 잘 만들어. 물건도 조막만하고 귀엽게 잘 만들지 않냐? ㅋ 1. 스윙걸즈 スウィングガ-ルズ 이 영화 은근 유멩한뎈ㅋㅋㅋ못본 사람들은 꼭 봐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유쾌상쾌해짐!! 유명한 재즈곡 듣는 재미도 있고! 음알못 여고생들이 합주대회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임..생각해보면 이 나이때 애들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거가타. 사춘기를 떠나서 걍 미친거가틈 ㅇㅇ (내가 그랬거든ㅋ) 이거 보고 있으면 학창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나고, 이런저런 핑계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꿈'에 대해 생각나게 하고.. 자연스럽게 열정도 생김 ㅋㅋㅋ (물론 영화 끝나면 다시 원상복구됨 ^^) 이거 유명한 짤인데 이 영화에서 나온거임ㅋㅋㅋ쳐먹는거 보소ㅋㅋㅋㅋㅋㅋㅋㅋ졸귀이고연~ 2. 4월 이야기 四月物語 ; April Story 영화가 겉보기엔 순수, 청초해보여도 까보면 여주인공이 개또라이 스토커임 ㅋㅋㅋㅋㅋㅋ 짝사랑하는 선배때문에 인생 진로를 그 새끼에 맞춰서 설정해놓음. 대학도, 집도, 동아리도 걍 다 ..ㅇㅇㅇ 레알 미저리급 스토커 ㅎ 이사갈 때도 이불 두개 지고감. 왜냐고? 그새끼랑 신혼살림 차릴거여서ㅋㅋ(유심히 관찰해야 볼 수 있는 디테일한 컷임) 걔가 일하는 가게에 수시로 들락날락 거리면서 있나 없나 살펴보고.. 이거 사실상 범죄영환데 멜로거장 이와이슌지빨때문에 알흠다운 청춘 멜로물 됨 ㅋㅋㅋㅋㅋㅋㅋ 키깈기킥킥키킼킼 영화 짧으니까 보셈 ㅋㅋㅋㅋㅋㅋ엔딩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해진다. 어느순간 스토커에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임 ㅋ 빨간우산이 갖고 싶어지는 영화이지..훗 3. 무지개 여신 Rainbow Song 이 영화에 대해선 딱히 할말이 없네. 멜로 영화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건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남주새끼 쳐패고싶을정도로 눈치 겁나 없음..ㅋㅋㅋ여자마음을 너무 몰라주니까.,.새끼...ㅎㅋㅎ 사랑영화임과 동시에 성장영화인데 이 영화 다 보잖아? 막 마음이 ...마음이 괜히 슬퍼지고 그러타 ㅠㅠ..왜 슬픈 영화 추천하냐고? ㅠㅠㅠ 내맘이다 쨔식들아 ㅠㅠㅠㅠ나도 외롭고 불행하니까 느그들도 멜랑꼴리한 영화봐라. 일본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 보면 환장할거다. ㅇㅇ ------------------------------------------------------------------------------------------------------------------ 자, 이렇게 오늘도 명작들만 모아서 추천갔다. ~쨔리짠짠짠~ 이거말고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 있으면 댓글 달아주셈, 같이보자!!!
어느 정신과 의사의 '아이언맨' 리뷰 (필력, 스압주의)
감탄스러울 정도로 잘 쓴 리뷰라 가져와봄ㅇㅇ 아이언맨이나 어벤져스 덕이라면 진짜 제발 한 번만 읽어주세요... 그냥 아이언맨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필독 권장.. 스압이 부담스럽겠지만 읽어보면 후회는 절대 없을듯! 아이언맨 시리즈 및 어벤져스 스포 有 스압주의 <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한 이유 >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히어로를 소재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소아나 청소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성인들 또한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고, 마트에서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값비싼 히어로 관련 상품이 넘쳐납니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로부터 20세기의 슈퍼맨까지 동서고금의 많은 이야기 속 영웅들은 책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인간들을 매혹시켜왔죠. 이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거대한 숙명과 악당에 맞섭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웅들의 인간적 모습에 끌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인간처럼 방황하고, 고뇌하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들이 겪는 시련의 모습에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보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의 중심에는  시리즈의 가장 성공한 히어로 캐릭터인 ‘아이언맨’이 있습니다. 영화 아이언맨 1편에서의 유명한 선언인 ‘내가 바로 아이언맨입니다.(I am Iron Man)’ 라는 대사 이후 우리는 11년간 그의 여정에 함께하였죠. 이 21세기를 대표하는 백만장자 영웅은 최첨단 티타늄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하였지만, 동시에 PTSD와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빨갛고 매끈한 티타늄 슈트는 최고급 슈퍼카가 연상될 만큼 멋지고 화려합니다. 그의 슈트에는 차세대 에너지원인 아크원자로와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를 비롯한 온갖 최첨단 기술들이 집약되어있죠. 그는 자신의 슈트를 호화로운 개인 연구실에서 마치 고급 스포츠카를 튜닝하는 것처럼 직접 만듭니다. 비밀기지에서 자신만의 발명에 몰두하는 소년처럼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경쾌하게 자신의 슈트를 완성해나갑니다. 토니는 아무 초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슈트의 힘으로 하늘을 날기도 하고,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적들과도 대등하게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이 화려하고 강인해 보이는 슈트의 내부에는 불안에 쫓기고 있는 약한 인간이 있습니다. 이름난 무기개발자였던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재능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무기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준다는 나름의 신념 또한 가지고 있었죠. 그러던 그는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쓰는 테러리스트들에게 포로로 잡혀 그들을 위해 무기를 개발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개발한 무기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지를 생생히 지켜보게 되고, 압도적인 폭력에 굴복하고 이를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일인지를 몸서리치게 느끼게 됩니다. <아이언맨1> 이때의 무력감과 죄책감은 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심장에 박힌 파편을 막기 위해 가슴에 장착한 아크 리액터는 아이언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끔찍한 정신적 외상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내가 살아서 돌아온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해야 할 일을 이제야 깨달았지. 그래야 과거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어.” - 아이언맨 1 中 아이언맨은 끊임없이 과거로부터 쫓깁니다. 그의 숙적들의 대부분은 그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거나 그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승리하지만, 거대한 위협과의 대치 상황은 시시각각 그의 불안을 악화시켰고, 연인과 동료 등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트라우마는 최악의 형태로 재경험됩니다. 불안이 끊임없이 재경험되는 사람이 할 일은 두 가지죠. 불안을 회피하려 하거나, 불안을 통제하려고 하거나. 따라서 그는 언제나 불안감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isolation)시키고자 하고 불안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통제(controlling)하고자 합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그의 첨단 갑옷은 아이언맨의 강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립’이라는 그의 방어기제를 나타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연구실에서만 장착할 수 있었던 그의 슈트는 가방에 담겨서 이동할 수 있게 되고 <아이언맨2>, 나중에는 그의 몸에 이식된 센서로 인해 언제든지 날아와서 입을 수 있게 됩니다. <아이언맨3> 무서운 일이 생각날 때마다 침대 밑으로 들어가 틀어박히는 아이처럼 토니는 마음속의 불안이 커져갈 때마다 슈트를 업그레이드합니다.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몸에 두르고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인간이 없어도 지구를 지킬 수 있도록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슈트의 군대를 만들어냅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그가 어벤져스의 리더 격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나타내는 행보들은 그의 통제에 대한 집착을 보여줍니다. 외계의 존재들의 거대함과 사악함, 히어로 활동을 할수록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에 압박받은 그는 아직 어린 피터 파커 등 새로운 히어로들을 모으는 한 편, 히어로들의 활동을 국제기구에서 통제하는 법안을 지지합니다. 그의 통제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히어로들의 활동마저 구속하고 통제하려고 하는데 이릅니다. 이제 히어로들은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지키기 위한 전쟁이 아닌 서로를 상처 입히고 굴복시키기 위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시빌워> 고립과 통제라는 그의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실패합니다. 토니가 지구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창조해낸 스스로 움직이는 갑옷 울트론은 인류를 지켜주기는커녕 인류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토니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되자 이번엔 자신이 통제력을 잃고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친구이자 전우(캡틴 아메리카)에게 살의가 담긴 공격을 날립니다. 그리고 <인피니티워>에서는 마침내 아이언맨의 앞에 자신의 악몽이 구현화된 최악의 존재인 ‘타노스’가 나타납니다. 인피니티 스톤으로 상징되는 알 수 없는 세상의 거대한 원리와 타노스로 상징되는 압도적인 폭력은  그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과 그가 미래를 맡기려고 했던 후계자를 먼지로 되돌려버립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악몽은 현실이 되고, 그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현대인의 불안한 모습이 반영된 히어로답게 그가 끔찍한 과거로부터 일어서려다가 끝내 실패하는 과정은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연약하고 쉽게 상처 입기 때문에 아무리 평소 때 강한 신념과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가죠. 그래서 우리는 돈을 벌거나, 스펙을 쌓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등 우리를 지켜 줄 수많은 갑옷을 만들고,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사회적 기술을 연마하는 등 불안요소들을 통제하는 데 몰두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강해질수록, 우리의 활동반경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맞닿게 되는 세상의 일면들도 그만큼 거대하고 강해지기 때문에, 그 모든 문제를 막아내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리라 생각했던 갑옷은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리고,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짜두었던 완벽한 계획은 엉망으로 어그러져 새로운 문제를 쏟아냅니다. 결국 어느 순간,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과거의 악몽이 현실 속의 불안이 되어 우리를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넣고, 결국 우리를 무릎 꿇립니다. 하지만 통제하지 못한 불안은 우리의 발목을 잡기만 하는 걸까요? 그토록 노력했지만 치유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는 우리의 인생이 실패한 증거일까요?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현재는 무의미하기만 한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를 닮은 상처 입은 영웅들에게 이토록 끌리는 건가요? 아이언맨 일대기의 결말이자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독특하고 멋진 답변입니다. 아이언맨을 비롯한 영웅들은 죽은 동료들과 시민들을 되돌리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과거의 인피니티 스톤을 찾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영웅들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쓴들 우리가 상처를 받은 사실은 바꿀 수 없고 우리가 저지른 실수도 결코 없어지지 않죠. 하지만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에서 과거의 외상적 사건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통째로 잊어버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여전히 잊지는 않되 그것이 과거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대처방법을 실행함을 의미합니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과거의 공포와 무력감을 과거의 나에게 돌려보내주고 지금, 현재에 찾아오는 과거를 닮은 일들에 대하여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할지라도 반복되는 공포와 불안에 맞서서 내가 행한 새로운 저항과 반항들은 조각난 감정의 덩어리에 불과했던 우리의 상처를,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우리의 과거를 하나로 이어 붙여줍니다. 그리고 이어 붙여진 우리의 실패의 과정은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서사와 시간과 장소가 하나로 연결되어 우리의 실패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이상(ideal)을 선명하게 만들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합니다. 토니의 끔찍한 실패의 상징인 가슴의 아크 리액터가 영웅 아이언맨의 심장이 된 것처럼요. 토니의 PTSD의 상징인 티타늄 슈트가 토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날개가 되었던 것처럼요. 과거는 끔찍한 추적자에서 내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간 영웅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옛날의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행동하게 됩니다. 온화해진 헐크는 분노에 찬 과거의 자신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허세에 가득 차 있던 번개의 신 토르는 어머니를 만나 자신이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고지식했던 캡틴은 예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재치로 싸움을 해결하고, 어른스러워진 토니는 자신의 결핍과 죄책감의 근원이기도 한 아버지를 만나 어른과 어른으로써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가 된다는 무게를 공유합니다. 튼튼한 갑옷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의 강함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고, 내일을 통제하려다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은 우리가 미지에 대한 불안함을 가슴 한편에 넣어두고 오늘을 살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었죠. 이 모든 실패가 모여 1400만 가지의 가능성 중 지금(now) 이곳(here)에 변화의 순간을 만듭니다. 그리고 ‘어벤져스’는 과거의 실패에 대한 진정한 ‘복수자’가 되어 그들의 악몽인 타노스에게 두 번째 도전을 합니다. “캡틴 내 말 들려? 캡틴, 나야 샘. 잘 들려? 왼쪽을 보라고.” - 어벤져스 : 엔드게임 中 그 순간, 캡틴의 뒤로 먼지로 사라졌던 그 모든 영웅들이 부활하여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모습 하나하나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들이 무슨 상처를 입었고, 어떻게 실패했고, 어떻게 되돌아오게 되었는지를요. 우리의 상처를 담아 창조된 가상의 인물들이기에 이들은 실패의 이야기 또한 우리를 닮아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닮은 이 상처 받은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들의 이야기에 조각으로만 남아있던 내 인생의 이미지를, 순간 스쳐갔던 감정들을, 나와 닮은 모난 부분들을 이입해 담아둘 수 있었습니다. 영웅들은 상처를 받고, 끊임없이 반항하고, 받아들이고, 극복해내지요.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 속에 동일시의 형태로 담겨있는 우리의 기억의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경험을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남들에게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남들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부를 담아 태어난 영웅들의 이야기는 이제 역으로 우리의 삶을 편집합니다. 우리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과거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경험하고, 그 경험의 이면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뼈대 삼아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과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고, 우리가 당면한 현재에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통제하지 못한 불안은 우리가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그토록 노력하였지만 결국 치유할 수 없었던 과거의 상처는 우리가 이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이의 상처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과거를 지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좌절 또한 무언가를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배웠죠. 의미 없는 실패는 단 한순간도 없었고, 우리는 상처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됩니다. 어벤져스와 타노스의 마지막 대결은 결국, 과거의 실패를 간직하려고 하는 자와 지우려고 하는 자의 전쟁이 됩니다.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이번 작의 타노스와는 달리지금의 어벤져스는 질릴 만큼 실패를 거듭하고 이를 통해 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습니다. 피할 수 없는 존재(inevitable)인 줄 알았던 타노스 앞에 선 아이언맨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세상의 이치인 인피니티 스톤들이 빛나고 있었고, 마침내 아이언맨은 자신의 악몽을 진정 뛰어넘습니다. 11년을 넘어 토니는 다시 한번 자신을 재정의합니다. “나는 아이언맨이다.(And I am Iron Man.)” - 어벤져스 : 엔드게임 中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한 히어로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은퇴합니다. 그동안 그는 우리의 우상이자, 친구이자, 거울이 되어주었죠. 고치에서 벗어나 나비가 된 애벌레처럼 그는 슈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집니다. 그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가족을 이루고, 히어로로서의 토니보다는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토니에 더 공감하게 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은 어쩌면 보기에 따라서는 그냥 아이들이 보는 유치한 판타지 영화로 치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 환상과 상징에 어떠한 의미를 담고 무엇을 읽어내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현실의 일부가 되어 우리 삶의 중요한 기둥이 되기도 하죠. 수없이 많은 상처를 극복해내야 하는 인간에게는 고통과 한계에 대한 우화만큼이나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실패와 상처를 이겨나가는 극복의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이야기에 우리의 경험과 기억들을 담아 우리만의 영웅담을 완성할 수 있도록 말이죠. 칭얼거리는 아들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간 아버지는 진열장 한 구석의 갑옷 입은 영웅을 보며 그 안에 담긴 생생한 자신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봅니다. 우리에게 지금도 히어로가 필요한 이유이죠. 사람들은 토니를 기리며 그의 가슴에 자리 잡았던 아이언맨의 상징을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한때 토니의 트라우마의 상징이었던 가슴의 아크 리액터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집니다. “토니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 상처, 어쩌면 그건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written by 권순재 메디플렉스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아 왜 나 울컥하고 그러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화 <악질경찰>: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성찰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신철규, '유빙' 부분,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 문학동네, 2017) 사람의 삶은 오직 앞으로만 흐른다. 그 말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과거를 어찌할 수 없다면 오늘도 그래야만 할까. 실화 기반의 작품이 아니고 굳이 연대를 특정할 필요가 없는 현대극인 영화 <악질경찰>(2019)이 몇 년 전을 특정한 채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영화가 지난날을 소환해야 할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영화 <악질경찰>의 시작은 2015년이다. 영화의 첫 장면, 어둑한 밤 한 남자는 또 다른 남자의 지시에 따라 은행 ATM 속 현금을 빼낸다. 이 사람에게 도둑질을 시킨 건 다름 아닌 형사 '필호'(이선균)다. "나 경찰 무서워서 경찰 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강력계 형사 먹고 살기 어려워서"라며 살기 위해 스스로 부패하기를 선택한 사람. 직업만 '경찰'일뿐 범죄와 비리에 거리낌 없으며 또다시 목돈이 필요했던 그는 이번에는 경찰의 증거품 압수창고에 몰래 들어가기로 하고 앞서 은행 ATM를 털었던 '기철'(정가람)에게 일을 맡긴다.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좋았겠으나... 창고에서 의문의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필호'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에 연루된다. 창고에는 거대 재벌의 비자금 의혹에 관해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는 물증이 있었다. 검찰은 물론 바로 그 기업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는 실장 '태주'(박해준)도 이를 찾아 나서고, '필호'는 폭발사고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악질경찰>의 초반부는 상술한 사고의 배경만큼이나 '필호'와 또 한 명의 인물, '미나'(전소니)의 접점을 만드는 데에 많은 힘을 쏟는다. '미나'는 '기철'과 어떤 관계에 있고 '필호'와 '미나'는 처음에는 그저 우연히 마주치지만 '미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고 폭발사고의 비밀을 밝혀줄 단서를 손에 넣게 된다. 이 갑작스러운 오늘들, '필호'의 오늘과 '미나'의 오늘은 단지 수많은 우연들 중 하나일까. <우는 남자>나 <아저씨>와 같은 감독의 전작을 토대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달리, <악질경찰>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범죄 드라마로서 (물론 영화에 액션 신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사건을 마주하는 인물들, 주로 '필호'와 '미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최대한 섬세하게 다뤄내려 노력한다. 영화를 이끄는 캐릭터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거치며 반드시 다른 인물이 되어 있어야 하며, 그건 신변의 변화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감정과 태도에 있어서의 성장을 동반한다. 영화의 중반부터 직접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앞선 창고 폭발사고가 단순히 사고가 아닌 것을 넘어, '필호'와 '미나' 모두의 과거에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사건이 깊이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호'의 경우 '미나'보다는 상대적으로 그 접점이 약하기는 한데, <악질경찰>이 주인공 '필호'를 묘사하는 방식은 그가 마치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님을 깨달아가는 모습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데 있다. 또한 '미나'라는 캐릭터는 영화에서 비행 청소년이자 약간은 삐뚤어진 소녀로 등장하는데, '미나'가 왜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바로 그런 캐릭터가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리고 그가 후반에 이르러 '어른'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를 돌이켜본다면, <악질경찰>에서 세월호가 등장하고 다뤄지는 방식은 단순히 그것을 상업 영화의 한 소재로만 그치게 하지 않는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소재를 영화에서 다루는 일은 영화의 규모나 장르 같은 것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된 맥락과 과정에 의해서만 평가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모든 것은 현상 자체보다 과정과 맥락에 있다. 앞서 글의 도입에서 물었다. 과거를 어찌할 수 없다면 오늘도 그래야만 할까.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내일을 향해 달려야만 할까. <악질경찰> 속 어떤 인물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살아낼 수 있다. 생일이 되면 죽은 친구의 파티를 열고, 그가 남긴 소지품을 어루만지며 추억한다. 반면 누군가는, 사람의 삶을 물질로 환산하려 하며 돈이나 소모품처럼 대한다.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미나'의 말은 그래서 아이들의 삶을 헤아리지 않았던 무심한 어른들에게로 가 정확히 꽂힌다. '파멸도 죽음도 작은 실수가 만든다 책 한 줄 안 읽고 죄의식도 없이 살아 있음의 송구함도 없이 정신 못 차리고 가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 진실이 무어며 망각이 무어냐' (신현림, '다리미는 키스 중' 부분, 『반지하 앨리스』에서, 민음사, 2017) 어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우리의 오늘이 내일만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를 단지 기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볼 줄 알고,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말,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나씩 해보고 내일은 오늘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내 삶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 때,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알 때, 그때에만 가능하다. <악질경찰>은 '악질경찰'이었던 인물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를 절대악을 마주하고 난 뒤, 그리고 아무도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났던 사람이 실은 나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인물이, 변화를 결심하고 어떤 행동에 나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단지 내면의 성장만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볼 줄 아는 인물의 영화. 소재나 사건을 그저 소재나 사건으로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영화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영화 밖, 극장 밖의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영화. 아주 섬세하고 탁월한 연출과 각본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악질경찰>의 시도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한편,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오래 생각해볼 작정이다. <악질경찰>(2019), 이정범 감독 2019년 3월 20일 개봉, 127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이선균, 전소니, 박해준, 박병은, 송영창, 임형국, 김민재, 권한솔, 박소은, 남문철, 정가람 등. 제작: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 7/10점.) 원문: http://brunch.co.kr/@cosmos-j/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