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en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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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11. 다짜고자 질의응답

꼭 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저도 많이 궁금하거든요.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도를 넘는 수준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물어봐주세요.
확인되는대로, 생각하고 답변드릴게요!

댓글로 질문주시면 그 댓글에 답변하겠습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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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길게한 연애 기간? 짧았던 기간??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했을때 연애라고 생각되는 경우에 한해서 답변드릴게요. 가장 길었던 연애는 5년입니다. 중간에 한 번 헤어졌다가 오랜 시간후에 다시 만난 기간을 합치면 5년정도 되더라고요. 가장 짧았던 연애는.. 3개월이네요.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모두 기억에 잘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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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다 : 12. 주절 주절 솔로 라이프
이런 경우에는 솔로라는 말보다는 싱글이라는 말이 옳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솔로라는 단어를 다들 많이 사용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싱글라이프가 된 지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났어요. 사실 연애를 할때와 하지 않는 지금, 저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생활패턴에도 큰 변화는 없었고 단지 더 솔직하고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정신적인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아요. 물론 저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크게 의존하거나 제 마음 속에서 매우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도록 하지는 않아서 공허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상황에서, 종종, 가끔씩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결국 혼잣말이 되어버리는게 아쉬울뿐. 어쩌면 함께 있을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정이나 편안함, 전율에 대한 느낌을 잊어버려서, 지금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감>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요 근래에 들어 마음 속 깊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난번에 좋아한다는 내용의 글에 등장한 사람 맞습니다.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냥 좋아하면서 잘해주면서 말없이 부담주기보다는 좋아한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마음대로 좋아하려고요. 딱히 싫다 좋다 그런 반응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내 마음 편하자고 일방향으로 말을 한거지만 덕분에 마음은 많이 편해졌어요. 당장 사귀거나 더 가깝게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어요. 서로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있고, 하는 일이 너무 달라 실제로 당장 만나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이 관계와 마음이 그대로라면 그땐 만나자고 해야겠어요. 지금은 대학원때문에 핑계는 아니지만 정말 시간이...그렇습니다. 자취를 시작한지도 2달이 꼬박 다 되어가는데 정말 별 일이 없어요. 보통 어플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은 그걸 많이 어필하는데 저는 어필할 수가 없어요. <자취> 혹은 <장소유> <장소o> 이런식으로 많이 하는데.. 딱히 집에 모르는 누군가를 들이고 싶지도 않고 장소가 있다한들 ... 제가 없어서요..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당분간은 혼자 살지만 정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 아마 누군가를 이 타이밍에 만나게 된다면 너무 빡셀 것 같아요. 빡셀거에요
나는 게이다 : 13. 일곱 여덟살의 기억 - 첫 경험?
수위가 너무 높았나봅니다... 신고 누적으로 노출이 안된다는 경고를 받고 수정하여 다시 올려봅니다. 사실 수정도 하긴 했지만 많이 지웠어요... 혹시 동성연애 게이 이런 부분에 혐오감을 느낀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립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7-8살 무렵으로 생각된다. 아마 7살이었을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어느날 집에 아빠의 친한 동생이 놀러왔다. 3일정도 머물렀고 그 사이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생겼다. 요즘 시대였다면 정말 엄청난 사건으로 주목되었으리라. 아빠가 당시 30대 중반이었고 그 사람은 20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M으로 지칭한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그러하듯 외부에서 손님이 집에 오고 며칠을 머무르면 그냥 좋다. 기분이 들뜨고 계속 옆에 있고 싶고 장난도 치고 싶고 그렇다. 손님은 항상 기분 좋은 인물로 다가왔었다. M도 마찬가지였고 집에 있는 동안 내내 옆에서 걸리적거렸던 것 같다. 잠도 옆에 붙어서 자게 되었고 이게 사건으로 이어졌다. 옆에 어쩌다가 M의 이불 위에서 손을 움직이다가 M의 물건을 건드렸는데 처음엔 손인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흥분한 상태였음이리라. 그 나이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인체의 신비였기때문에 신기해서 계속 만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M은 내 머리를 이불 아래쪽으로 밀어넣었고 나는 이내 의도를 잘 파악한 듯이, 아마 그의 바람대로 행동했던 것 같다. 이로 씹기도 했다. 기억의 파편에는 물지는 말라고 했던 말이 남아있으니까. 그냥 어느덧 M은 내 입 안에, 발사를 해버렸지만 나는 그때 내 가래가 갑자기 나왔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가래 나왔어요.." "삼키지 말고 뱉고 와." 짧은 대화가 오가고 나는 다시 그의 옆에 누워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당시 살던 집은 상가건물에 위치한 집이어서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 간 나는 볼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화장실로 들어오는 M을 만났다. M은 자신의 그것을 내밀며 한 번 더 해보겠냐고 나에게 물었고, 낮에 밝은 곳에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칼같이 거절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낸 뒤 M은 돌아갔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나와 M뿐이리라. 몇 년 전 M은 결혼을 했고 지금은 마흔이 넘은걸로 알고 있다. 어릴때라 내가 기억을 못하리라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억한다. 이 사건은 정말 어떻게 해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못은 나의 지분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가도 성인의 판단력에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어쨌거나 이것은 나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호기심 많았던 나의 경험, 어쩌다보니 첫경험에 대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이다 : 4. 나는 너에게 항상 미안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정말 운명같았어. 대한민국 해군 함정에서 누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서로에 끌려 그렇게 시작되었지. 전기에 감전되듯이 짜릿하고 빠르게 서로를 타고 흘렀어. 너의 침실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데 살 냄새가 좋다며 네가 말했어. 그렇게 우리는 전우애를 넘어선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어. 4달 빠른 내가 먼저 전역하게 되었고, 두 달이 지나 나는 타지역에서 잠시 일을 시작했지. 너도 전역하고 나의 부름에 재지 않고 바로 내려와서 함께 일하며 함께 살았어. 군대에서 함께할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었지? 우리 둘 다 이런건 처음이었으니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았었으니까 당연히 우리는 종종 싸웠고 서로를 힘들게 했는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라서 좋았고 잘 견디고 살 수 있었다? 그때의 싸움은 양방향의 싸움이 아니었어. 다툼이라는 게 원래 서로에게 이루어지는 일인데 항상 어느 한 쪽만 화를 냈고, 다른 한 쪽은 듣기만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지극히 일방향의 싸움이었어. 그래서인지 싸움이라고 안 느껴졌지. 어쩌면 고집이 센 나와 또 고집이 센 너에게 적합한 싸움이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큰 충돌이 없었던 관계라고 생각해. 보통 싸움의 원인은 우리 서로의 바이오 리듬이 달라서 발생했지?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면 넌 올빼미형 인간이라 자고 일어나고 하는 생활이 많이 달랐어. 나는 같이 쉬는 날 뭐든 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부지런 떨고 너는 자고 있고. 기다리다가 니가 일어나면 하루는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버리고, 난 그게 아쉬워서 화를 냈던 것 같아. 미안해 나는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많았어 지금도 그렇고. 나는 타지역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어. 물론 너와도 오래전부터 이야기했던 나의 계획이었기에 너도 반대없이 나를 응원해줬지? 나 혼자 해외에 나가는 것이 썩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너무나도 오랫동안 바래왔던 일이라서 즐겁기는 했어. 혹시 몰라서 내가 너한테도 지원해보라고 했었고 너도 정말 선착순에 들어서 비자를 받았지. 하지만 덜컥 오기는 힘들었을거야. 나는 대학교 복학 전에 마지막 휴학이라 생각하고 간 거라면 넌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와중에 기회가 생긴거니까 달랐을거야. 그래도 넌 내가 오라는 말만 믿고 정말 와버렸어. 6개월동안 난 혼자 워홀을 했고, 남은 6개월은 너와 함께 했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같이 산다는 것.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흔한 일이 아니지. 너는 항상 내게 말을 했어. 우리는 정말 특별한 관계라고. 나도 인정했지. 이런 커플 어디 없다고! 6개월간 우리는 수많은 여행지를 다니고 먹고 자고 싸우고 또 먹고 자고 싸우고, 물론 일도 함께했지. 같은 일을 하지만 역시 너와 나의 바이오리듬은 달랐어. 그와중에 그것 때문에 또 다시 우리는 싸우고 다투고 서로에게 서러워했어. 그때까지는 나는 생각했어. 나만 항상 옳고 내가 사는 방식이 정답이고 교과서적이고 따라야한다고. 그래서 나에게 너는 항상 틀렸고 교정이 필요했고 바뀌어야하는 존재가 되었지.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도 후회하고 미안한 마음이 커. 해외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너는 너의 집으로, 나는 나의 집으로.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너에게 결별을 고했어. 맞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살다보니 마음이 멀어졌고, 나는 쉽게 너에게 이별을 말하게 된거지. 너에게는 청천벽력이었고 왜 헤어지는지 이유를 모른다고 내게 말을 했지만 난 추가적인 설명없이 돌아갔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나란 사람 너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 뒤로 우린 연락을 하지 않았어. 아니 내가 답장을 하지 않았어. 너는 카톡도 보냈지만 난 답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완전히 끝이 났지.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부에 집중했지만, 역시 새로운 인연은 찾아오는 법.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연애를 하고 또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생활을 겪었어. 정말 사람들 참 다양하구나 느꼈어.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생각했고 점점 내가 변했어. 그땐 참 좋았는데..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너를 바꾸려고 했을까. 우린 서로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내가 왜 너를 내 방식대로만 바꾸려고 고집했을까 정말 오래 후회하고 나를 미워했어. 너와의 이별 후에 남는건 미안함뿐이더라. 너를 떠올리면 항상 미안한 마음만 남아 나를 미워했어. 문자를 보내볼까? 전화를 걸어볼까? 카톡을 보내볼까? 주변에선 절대로 하면 안되는 일로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하는 것을 제일으로 꼽으니까, 나도 역시 쉽게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너무 미안하고 염치없어서.. 그래도 무시당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으로, 정말 고민하다가 카톡을 보냈어. “잘 지내니?” 시간이 흘러도 숫자는 사라지지 않고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어.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나서 후회하라는 나의 모토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어. 그런데 정확히 10분이 지났을 때 너로부터 답장이 왔어. 나는 잘 지낸다고. 너는 잘 지내냐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일이 손에 안잡히고 정신이 붕 떠버렸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지.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우리는 곧 통화를 했지. 그동안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 요즘은 어떤지. 나는 너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그땐 정말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었고 나만 생각하고 이기적이었다고 고백했어. 너는 그렇지 않다고 너는 좋은 사람이라고 날 위로해주었고 난 할 말을 잃었지. 그냥 요즘 자꾸 너만 생각나는데 미안하기만 하다고 말했어 속이 정말 후련하더라. 그렇게 며칠 대화를 더 나누다가 니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어. 1박 2일동안 내가 사는 도시를 투어하고 놀러다녔는데, 마침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장염에 걸려서 안좋은 모습을 보이게 되었지만 넌 날 걱정해줬어. 아 정말 이 친구는 좋은 사람이구나 느꼈다. 우리는 실제로 이렇게 만나서 다시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어. 3년 연애하고 20개월간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 너를 다시 만나기 전에 전에 만났던 사람 때문에 불면증에 스트레스에 너무 힘들었는데 너를 다시 만나고 다 없었던 듯이 깨끗하게 나았어. 너무 고마웠고 너무 행복했어. 사실 너와 나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장거리 연애로 다시 시작한 것이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어. 나도 더 이상 너를 바꾸려고 너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고, 그냥 연락하고 종종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한 달에 한 두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만나더라고 볼때마다 좋았고, 우린 만나는 동안 서로 함께 가보지 않은 도시로 짧은 여행을 다녔어. 지도를 다 채울때까지 잘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
나는 게이다 : 10. 부담스럽게 하지마시오
작년 12월에, 다시 혼자가 된 지 좀 지났을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대학원 입학전부터 미리 들어가서 연구실 생활을 하기도 했고 당장 내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므로 깊은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그저 가끔 만나 밥먹고 이야기하고 카페가고 영화보고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찾고 싶었다.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항상 있지만 의도치 않게 항상 멀어지고 떠나가고 잊혀지므로 다시 혼자라고 느낄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어플을 다시 깔고 친구 탐색에 나섰다. 번개 쪽지는 가볍게 거절하고 인사엔 인사로 답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내 결국 서로의 목적이 다르면 대화는 순식간에 끊긴다. 예전만큼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 이렇게까지 굳이 어렵게 친구를 찾아야할까 의문이 시작될 무렵이면 신기하게 하나 둘은 연락이 이어진다.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게 하나 있다면 한국사람도 좋지만 외국인도 친구로 참 좋더라. 어차피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면 외국인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다만 관계가 깊어지면 안된다. 깊은 관계일수록 심도있는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의 경우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연애로까지의 발전은 한국인에 국한되는게 나의 특징(?)이다. 12월 말에 연락하고 지내게 된 사람이 바로 미국인이다. 흑인이기도 하고. 흑인 친구는 처음이라 그저 설레긴 했다. 친구로 지내기에 나쁜 사람은 많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만큼 어쩌면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한국어도 꽤나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 더 좋았다. 애초에 나는 연애가 목적이 아니었고(연락을 시작한 목적이 처음에 연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연애 관계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친구가 필요했기에 충분했다. 투썸플레이스에서 처음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사람이 보기에 외국인들은 다 똑같다고 느낄때가 많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구분 못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리라. 나도 그를 처음 보았을때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비주얼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느낀바를 말했다. 영화배우같다고. 그냥 평범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분명한 것은 이 사람도 굳이 한국사람이랑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것.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게 너무 좋았다. 진짜 카페에서 3시간 정도 이야기한 듯 했다.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굳이 저녁을 사겠다고.. 아마 그래서 도미노 피자인지 피자헛인지 미스터피자인지 미스터피자 같다. 미스터 피자에서 피자를 10분만에 먹고 나왔다. 나의 버스 막차 시간이 그랬고.. 가게 영업시간이 그랬다. 급하게 먹고 나와서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 뭐랄까 외국인과 작별하는 인사는 포옹이 좋을까 하여 가볍게 포옹하고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날부터 그와의 카톡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톡 빈도가 높아지고 연구실때문에 내가 답장을 못해도 카톡은 쌓이고 이런 질문했다가 내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던져놓고... 엄청난 관심을 받다보니, 더 가까워지기 전에 꺼리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물론 나는 대전에 살고 솔로여서 크리스마스가 큰 의미는 없었고 그 날도 연구실을 가야했고 특별한 약속이 없어서 그와 만났다. 선물을 줬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만드는 것을 좋아하서 뭘 좀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줘서 기쁘긴 했다. 그 후로도 여러번 만나 식사를 함께했고 영화도 봤다. 어느날 갑작스레 나에게 무슨 말을 했다. 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풍기는 느낌과 뉘앙스에서 바로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보다 알았지만 아니길 바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 한국인이랑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는건지..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자꾸 대답을 강요한다. 한국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느끼는대로 솔직하게 답했다. 나는 그냥 좋은 친구사이면 좋겠다고. 난 아직 어쨌거나 학생이고, 내가 자리잡을때까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돌아온 답변은 날 더 당황하게 했다. 기다리겠다고, 지금처럼 일단 지내자고.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주는 애정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그만큼 되돌려줄 생각도 없기에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본 적도 없긴하다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난 그저 친구가 필요했고 그 이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날아오는 카카오톡 메세지에 답장을 하기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지고 1차원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그럴수록 그도 섭섭해하리란걸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마음이 균형에 맞지 않을만큼 커져버리면 다른 한 쪽은 당황하게 되고 마음이 붕 떠버린다. 내가 지금 그렇게 떠버린 상태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걸.. 친구로 만난 이 만남은 친구로 지낼때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지만 일방향적으로 은근한 부담이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나도 또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정말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며 만난다는게 얼마아 어려운 일인지,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서로 만족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다가온다.
나는 게이다 : 7. 커밍아웃 스토리
요즘엔 확실이 예전에 비해 이쪽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나아졌다. 내가 체감할 수 있을만큼 정말 많이 좋아졌다. 물론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첫 커밍아웃. 고3 수능이 끝난 시점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여사친에게 고백했다. 약속을 잡은 시점부터 말해겠노라 다짐하고 발걸음을 나섰지만, 생각대로 입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파인트인지 쿼터였는지 싱글이었는지 먹었던 아이스크림 종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긴장되던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하려던 말을 잊은건 아니지만 입밖으로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른 이야기만 하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던 무렵,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갈라지기 직전에 이야기했다. "나 게이야." 심장이 터질듯하면서도 발화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저 말을 툭 던지고 빠르게 이동했지만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야기를 듣고 미소짓던 친구. 문자로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친구. 덕분에 학교생활도 재미있게 즐겁게했지만 앞으로도 더 가깝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지금도 연락 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주변 친구 20명정도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모두 잘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거르고 거르고 차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에 말할 수 있게 해준 친구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내 주변에도 호모포비아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며 그런 친구들에게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남달랐던 경험이 있다. 바로 친 형에게 말한 것. 형과 나는 1살 차이로 유일한 형제로 남들이 그러하듯 어릴때부터 많이 싸웠다. 하지만 형이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대화가 엄청 줄어버렸고 사이가 좀 멀어졌다. 이상한건지 당연한건지 형이 군대를 가면서부터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말수도 늘고 장난도 치고, 또 형이라고 무언가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 상태가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다. 드물게 같은 버스를 타면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아는척 하지 말라고 장난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26살 가을 어느날,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저녁에 둘이 같이 술먹자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형이 무언가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왜 술을 먹자고 하는걸까?' 살면서 형이 먼저 같이 술 먹자고 한 것이 애초에 처음이었으니까 별 생각 다 하게 되었다.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알아버린건지. 많은 생각을 품고 긴장하면서 컬투치킨으로 갔다. 형이 먼저와 앉아 있었고, 여기 맛있다며 미리 시켜놨다고 했다. 나의 첫마디는 왜 갑자기 술먹자고 한거냐고. 이러는거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였다. 형이 대답하길 그도 이런 적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처음으로 같이 마셔보고 싶었다는게 전부였다.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했다. 형은 모르지만 아빠엄마 그리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해주면 진짜냐고 충격도 받고..ㅋㅋ (원래 형이 아빠엄마랑 대화가 많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하고, 나는 갑자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다보니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들은 어릴때부터 니네 형제는 여자 안만나냐고 둘이 무슨 게이형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는 얼마전에 이런저런 사유로 만나기 시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지만 난 이미 헤어진 것을 알고는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세지보면 답이 나오므로.. 형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맞아." 형이 놀란 눈으로 "뭐?"  했다가 한 번 더 "뭐??" 그랬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지금은 내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애매하지만 남자 좋아한다"고. 형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어쨌거나 형제니까 날 때리거나 상종을 안한다거나 자리를 뜨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봤다. 형은 "타이밍 좋게 잘 말했네." 라고 말했고ㅠ우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형도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유해지고 생각이 넓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만 아빠 엄마에게는 당장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친가족 중에 비밀을 터놓고나니 정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고 전보다 편해졌다. 아마 적지 않은 이쪽 사람들의 작지 않은 고민이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주변에서 잘 받아들이고 잘 지내주어 생각보다 끝내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는 게이다 : 14. 너에게 보내는 시(1)
종종 생각나는 표현들을 글로, 시로 남기는 편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글이기도 하며 어떤 상황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해요. 갑자기 많은 생각들이 한 번에 생각나기도 하며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기도 해요. 그동안 적어왔던 글들 중에서 사랑의 감정을 진하게 담아두었던 글들을 하나 둘씩 풀어보려고 해요. 대상이 동일인물이 아니더라도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비슷한 모양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너에게 보내는 시(1) 1. 공명 너를 향한 나의 외침이 그대에게까지 미치지 않더라도 이 떨림이 이 진동이 공명이 되어 그대를 강렬하게 흔들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외침이 그대를 흔들 수 있다면 그 흔들리는 손길로 날 어루만져 주길 지금 이 순간, 그래서 난 같은 속도로 같은 힘으로 다시 외친다 이과 감성이 많이 남아있어서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감정의 표현을 자연현상이나 과학적인 현상으로 비유할때 정말 이해가 가기 쉬운 것들이 많아요. 2. 눈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그대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지요?.."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어요. 눈물 흘리게 해줄래요?" "그만 울어요. 눈 붇겠어요." 사랑은 눈물을 타고 흘러 서로의 마음을 마르지 않게 적신다. 중학생 때, 미술시간에 나무작품을 만들며 새겨 넣었던 문구를 본 너는, 꽤 오래된 나의 말에 답변을 해주었어.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지만 너는 답변을 해주었고, 꽤나 인상적이었어.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