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ble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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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생을 산다는 것

앤은  20대에 이미 광고회사에서 성공한 회계 담당자였다. 
29세가 됐을 때 그녀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다른 직장도 다시 얻지 않았다. 
그 후로 10년 동안 그녀는 평소 하고 싶었던 일과 창의적인 작업들을 하면서 삶을 간소화시켰다.

"광고회사 일은 재밌었어요. 보수 역시 좋았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자신에게 내가 정말 인생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었죠. 
대답은 분명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음악도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었거든요. 
다른 악기도 연주해보고 싶고, 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추구하면서요.

조직에서 출세하거나
직장에 가느라 교통 지옥에 시달리며 
상사를 위해일하고
치열한 경쟁가도를 달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집에서 일하면서
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날씨 좋은 날은 나가서 산책도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게 더 좋았죠. 
무엇보다 제 안에 있는 창의적인 재능을 개발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싶었죠.

큰 집을 나와서 천장 채광창있는 방 한 개짜리 
예쁜 스튜디오 아파트를 얻었어요. 
부모님은 무척 화가 나셨죠.
 특히 아버지요. 

부모님께선 제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희생을 많이 하셨고 
제가 이뤄낸 성과나 생활에 매우 뿌듯해하셨거든요. 
저는 그때까지도 왜 내가 이런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 음악이 남겨진 채 부자로 죽고 싶진 않았어요. 

그럼 돈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계속 질문했죠.
필요한 질문이었어요. 
돈을 많이 벌었을 땐 역시 많이 썼죠.
약간의 모아둔 돈은 이 스튜디오 살 때 들어갔어요. 
하지만 금방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일하러 가는 데 경비도 필요없고,
으리으리한 스포츠카도 없어도 되고, 
고객을 만나려고 값비싼 옷도 음식점에 갈 필요도 없었죠. 
직장을 그만두고 첫 해는 겨우 지난 직장에서 벌었던
수입의 3분의 1 정도였어요.
 
그래도 세금은 거의 없었고
개인이나 가족에게 초상화나 조각품을
팔아서 돈 벌이를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중요한 건 제가 정말 원하는 걸 하고 있고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돈을 벌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건 바로 내가 즐길 수 있고 
동시에 나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놀라운 건 자기만의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신중하게 선택한 것만 하는 데도
5년 전부터 수입이 다시 옛날만큼 좋아졌다는 거죠."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삶의 잘못된 인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그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 험난하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그 비결은 빼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더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더 적게 해야 한다. 
미지의 세상에 도달할 필요도 없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가장 좋고 만족스럽게 단순화시키면 된다.

많이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움켜쥐려 애쓰지도 마라. 
그냥 흘려보내고 편안해지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의 본연의 행복이 드러나게 된다.
‘효율적인 습관’들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 습관이 도움이 안 되면 과감히 버려라. 
행복이나 만족이 없는 그 어떤 것에도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에도 또는 우리의 인생에도 불필요한 것들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시키는 또는 부탁하는 일에 늘 “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내가 원하는 삶의 일부인가?’ 
자신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 일이 나의 의도와 맥을 같이하지 않으면 “아니요.”라고 정확히 의사표시하면 된다. 
적게 함으로써 더 많이 즐기게 된다.
정해 놓은 목록에서 아이템들을 빼보자. 
일을 덜 하고, 쇼핑도 덜 하고, 너저분한 옷장도 치우자. 
필요없는 물건들은 정리하거나 재활용하자. 
우울한 기분이나 화나는 일도 털고 일어나자. 
오래된 원망도 떨쳐내고, 미워했던 상대도 용서하고, 어렵지만 친구들도 너그러이 받아주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행복해지는 걸로 만족하라. 
가지고 있는 것에 행복하라. 
자신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하는 어떤 것도 좇으려 하지 마라.
자신의 삶을 손질하라. 
불만족스러운 미팅, 여행, 인간관계들은 끊으라. 
발전이 없는 어떤 일도 멈추라.

현대의 삶은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값비싸고 어려운 훈련을 좋아한다. 
짐작컨대 정신과 상담의, 동기유발 전문가 등이 우리에게 스트레스나 나쁜 행동 습관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이는 마치 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위해서 모든 뱀의 종류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냥 ‘뱀이 나오는 구덩이’에 안 가거나 피해가면 되는데 말이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삶에 스트레스가 되거나 보람없는 일들은 갖다 버리면 된다.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반드시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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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행복론. 많은 사람들이 카네기 '인간 관계론'을 읽지만, '행복론'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지인 중 한분이 최근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연히 카네기 행복론 책을 서점에서 보고 후루룩 넘겼는데 몇개 눈에 밟히는 조언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몇개 장난삼아 실천해보기 연습을 했는데... 조금 과장하면, 진짜 훨씬 삶이 행복해진 것 같긴해. 카네기가 대단한 사람은 맞긴 맞나봐."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 - 데일카네기 행복론에서 얘기하는 핵심 이야기,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였다. 원칙을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한두개만 적용시켜보자. 꾸준히. 기회 될 때 마다. 그러면 그 지인이 말한 것 처럼 조금 더 삶은 밝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칙] #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라. 우리의 중요한 임무는 먼 곳의 희미한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가까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을 실행하는 일이다. '오늘'을 위해서만 충실히 생활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하라. 한번에 한 알의 모래, 한 번에 한가지 일을 하라.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생활이다. # 걱정을 해결하는 마술 공식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라. 그 것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지만.) 그런 뒤에는 침착하게 그 상황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라. # 걱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걱정을 계속하게 되면 건강을 해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걱정과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단명한다.' 그냥 걱정하지 마라. # 고민의 90%는 해결하는 방법 걱정하고 있는 문제를 종이와 펜을 이용해 적어본다. 그 다음, 그 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나열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 결정한다. 그 결단을 즉시 실행에 옮긴다. # 항상 바쁘게 움직여라 온갖 즐거운 행복감이나 깊은 내면적 평화, 행복한 마비상태는 정해진 일에 몰두할 때 찾아온다. 몰두할 때, 신경이 진정되니까 말이다. 몸을 놀리지 말고 언제나 바쁘게 살아라. 이 처방이야말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 중에서 가장 값싸고 가장 효험이 있다. #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말라 기억하라. 인생은 한번 뿐.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살아 있는 기간 동안 인생은 시시하게 살기는 너무 짧고 아깝다. #평균율 법칙을 따르라 내가 걱정해 온 일 가운데 90퍼센트는 끝내 일어나지 않는다. #불가피한 일은 그냥 받아들여라 불가피한 일과 싸우는 것을 그만둘 때 우리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에너지는 우리에게 더 풍부한 인생을 창조하게 만든다. 인간이란, 불가피한 일과 싸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생활을 창조할 수 있는 감정과 활력까지 갖지는 못한다. 유도사범들은 '버드나무처럼 휘어져라. 참나무같이 저항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 나는 이중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글구는 마지막에 나온 '불가피한 일은 그냥 받아들여라'다. 실제로 나도 걱정하고 있을 때는 생산적인 다른 것을 하나도 못한다. 거기에 내 모든 정신이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걱정'은 '창조'에 정확히 반대되는 말 같다. 걱정은 과거에 묶이는 거고 창조는 현재에 집중해 미래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니.. 새로운 일을 추구하거나 창의적인 마인드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거, 좋아하는 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바보처럼 잊어버리는게 생산성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 같다. ※ 데일카네기 행복론 Part 2 '평화롭고 행복한 정신 상태를 기르는 7가지 방법'은 여기에.. http://www.vingle.net/posts/408218
빙글러가 가장 많이 본 114 '맛집' 카드 TOP 5
안녕하세용 빙글러님들~ 언제, 어디서나 번호안내 02-114입니다! 오늘은 빙글러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맛집 소개 카드들이 뭐가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해요~ 비록 댓글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조회수와 클립해 간 것들은 꽤나 많았습니다용(뿌듯) 조회수가 10,000회 이상이면서! 좋아요와 클립수가 많았던 것을 기준으로 TOP 5를 선정해보았는데요! 과연 어떤 맛집 카드들에 빙글러님들이 열광했을까~~~요??? 5위. 서울 오므라이스 맛집 6 ★ 클립 50, 좋아요 26 최근에 올린 카드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놀래써여!!! 서울 외 지역 빙글러님들께 아쉬움을 남겨드려 죄송하기도 했습니당....ㅜ.ㅜ 4위. 믿고 먹는 영자의 맛비게이션 ★ 클립 58, 좋아요 22 먹방계의 신! 영자 언니가 추천한 휴게소 맛집 모음이 4위를 차지했습니당~(짝짝짝) 역시 영자 언니의 클라스에 놀람 O_O 3위. 연예인이 운영하는 식당 모음 ★ 클립 64, 좋아요 38 3위는 바로 '연예인이 운영하는 식당 모음'! 이때만 해도... 승ㄹl 게이트 터지기 전이라.... 아** ramen은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그리구 이국주 국주네 호로록은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ㅠㅡㅠ 어쨌든 연옌이 운영하는 식당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었습니당! 2위. 호텔 뷔폐 추천 BEST 6 ★ 클립 72, 좋아요 39 연말 맞이로 준비했었던 호텔 뷔폐 추천 BEST 6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꺄) 꼭 연말이 아니어도 특별한 기분 내러 호텔 뷔폐 가볼만 하죠~!! (다만 내 지갑 눈물 좀 닦겠습니다...) 1위. 서울 먹자 골목 Best.7 ★ 클립 109, 좋아요 44 클립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해간 먹자 골목 추천 BEST 7!! 대망의 1위를 차지했습니다~~(WOOOOOOW!) 작년 여름이 지나갈 무렵에 진행했던 카드였는데요, 이제 슬슬 날이 따뜻해지니 다들 먹자골목 한 판 어때요? 네? 가요! 가요! 사실 이 외에도 완전 좋은 맛집 카드들이 많았는데용 ~_~ 다른 맛집 카드들이 궁금하면 요기 밑에 링크를 통해 한 번 보시든가요!! (아니 제발 봐주세요..) 빙글러님들 덕에 이렇게 재밌는(?) 랭킹도 해보고 02-114 빙글을 사랑해주시는(사랑까진 아닌가요?) 빙글러님들을 위해 열심히 카드를 만들겠습니당! 랭킹 매기기는 To Be Continued....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못다한 그룹 '퀸Queen)'의 숨겨진 이야기
지난 10월 31일부터 우리나라 극장에 대형 음악영화가 하나 걸렸으니 이름하여 <보헤미안 랩소디>! "그 당시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고 불리우는 세계적 록그룹 퀸(Queen), 특히 20세기 최고의 보컬로 손꼽히는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지요. "아~ 이 노래도 퀸 노래였어?" 라고 할 만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낸 그들의 일대기와 함께 영화 마지막에 1985년 전설의 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도 그야말로 완벽하게 재연했습니다. 영화 내용 중 "아웃사이더들을 위해 노래하는 아웃사이더들" 이라고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들을 소개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그들은 대단한 엘리트들이었습니다! 보통 록 계에선 사회부적응자들이 많았지만 이들 4명은 모두 대학교 졸업자들이었어요. 처음부터 좋은 의미에서 록 계의 이단아들이었지요. 심지어 퀸의 중심이었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세계 5대 공대중 하나로 평가받는다는 런던 임페리얼 대학교 천문학(우주물리학) 박사학위를 따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총장까지 했습니다. 그는 기타도 직접 만들었는데, 200년된 화로통 나무를 뜯어 만든 레드 스페셜(Red Special)은 오직 세상에 한 대만 존재하지요. 초창기 밴드의 얼굴 마담으로 여성 팬을 끌어모은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당시 치과대학생이었는데, 치과공부가 재미없다고 식물학과로 전과한 특이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이자 퀸의 상징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미술학도 출신이라 퀸 앨범의 표지를 직접 디자인하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는 참 복잡한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1946년 아프리카 잔지바르(Zanzibar) 술탄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나라가 있냐구요? 물론, 지금은 사라졌어요. 1964년 옆나라 탕가니카와 연합정부를 수립하면서 탄자니아가 되었으니까요. ^^ 그런데 그의 부모님 국적은 인도.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공무원이 되어 당시 영국 식민지이던 잔지바르에서 근무중이었지요. 하지만 부모님 국적인 인도였지만 민족은 인도인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파르시(parsi)였거든요. '인도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파르시는 원래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었는데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이슬람 제국에 멸망당하자 인도로 도망간 난민들로 1500여년 동안이나 자기들끼리만 결혼하며 민족과 종교를 지켜오고 있고 인도 최대의 기업, 타타그룹을 세우기까지 하지요.  아래도서에 파르시에 대한 놀랍고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지요^^ 즉 프레디 머큐리는 이란 혈통을 가진 인도 국적의 부모님이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낳은 아이였고 이후 영국으로 귀화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이란 핏줄의 인도인에서 귀화한 영국인이 되는 거죠. 이들 4명은 모두 작사,작곡 능력까지 갖춰 4명 모두 영미차트에서 각각 10위권 이내 진입한 노래를 만들어 내어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동시에 오르는 영광을 누립니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도 퀸의 일부 노래를 직접 부르고 솔로 앨범도 냅니다) 초기에 나쁜 매니저를 만나 노예계약을 해 3집까지 고생만 하던 그들은 소속사를 옮긴 후 만든 4집 <A Night At The Opera>에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지만, 평론가들은 라이브 공연이 불가능한 오페라 파트를 넣고 특징없는 잡탕 노래를 부른다고 악평을 해 대지요. 게다가 1977년 영국을 뒤흔든 펑크 록이 등장하면서 신세대 후배 로커들에게는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대형 록그룹들과 함께 "시대를 반항하는 록 정신을 저버리고 돈 많이 벌어 기름이 낀 노땅 그룹" 으로 몰리며 타도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퀸 멤버들은 "그래, 너네는 3개 코드와 3개 악기로만 노래 만든다고 자랑했지? 우리가 본 때를 보여주마!"하고 작정하고 만든 노래가 바로 <We Will Rock You>입니다. 6집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을 만들던 Queen은 7집 <News of the World> (번역하면 '세계의 소식'이겠지만 실은 당시 영국에서 유명했던 찌라시 연예잡지 제호라네요) 에서 손뼉과 발굴림, 목소리만으로 시작하는 이 단순한 노래를 1번 트랙에 배치합니다. 당시 새 앨범을 사 들고 오디오에 앨범을 걸었던 팬들과 건방진 펑크 록 후배들에게 "우리도 단순하면서도 반항적이고 멋진 노래 만들 줄 안다. 짜식들아~"라며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죠. ^^ 이후에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평론가, 기자들에겐 대차게 까여도 팬들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던 퀸은 양성애자이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1991년 사망하면서 사라지는 듯 했지만 지금까지도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꾸준히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하기도 했지요. 퀸의 최대 히트곡이자 영화 제목으로 쓰인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직역 하면 '보헤미아 사람의 광시곡(자유스러운 판타지)'이지만 보헤미안이 서유럽인들 사이에서 집시나 방랑자를 부르는 명칭이었기에 '방랑자의 환상'이라고 의역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보헤미아 왕국은 예전 체코 서부에 있던 왕국인데 여기에 집시들이 많아 살았다고 하지요) 실제 가사도 엄마를 괴롭히던 아버지를 쏘아 죽인 아들이 사형 집행전 엄마에게 쓴 편지 글로 시작해 죽음의 신과 천사들의 재판이 환청으로 들리다가 다시금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에 이어 결국 차분히 자신의 운명을 맞는 노래이지요. 이 노래는 영국에서 9주간 1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뮤직비디오로도 기록을 남깁니다. 그런데 이 가사 앞부분 사람을 쏴 죽였다는 가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1989년에서야 금지곡에서 풀립니다. 그 외에도 퀸의 많은 노래들이 오랫동안 금지곡이었기에 1980년 발매한 히트곡 모음 1집 <Greatest Hits> 앨범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4곡을 다른 노래로 바꿔 나왔기에 현재 해외 매니아층에게는 괴랄한 희귀음반으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 24일에 사망했습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퀸은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존경을 받고 있지요. 레이디 가가는 퀸의 라디오 가가(Radio GaGa)에서 예명을 지었습니다. 메탈리카는 퀸의 <Stone Cold Crazy>를 다시 불렀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 (Guns 'N Roses)의 엑슬 로즈는 "내가 죽을 때 무덤에 <퀸2>앨범을 같이 넣겠다"고 할 정도이지요. 그리고 미국 만화 <심슨 가족>, 일본 애니 <크로마티 고교>에서도 맹활약을 하십니다. 퀸은 활동 당시 스튜디오 앨범 15개를 남겼는데, 라이브 앨범이 아홉 종류나 나왔습니다. 퀸은 오리지널 곡보다 라이브에서 더 멋지게 부르던 그룹이거든요. 공연 도중에 바닥에 누워 푸쉬 업을 하는 가수를 본 적 있습니까? 그게 프레디입니다.  그런데 원래 활동 중에는 라이브 앨범을 2개 밖에 안 냈지만 최근들어 40여년전 초기 라이브까지 앨범이 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초창기 매니저와 아주 사이가 나빴는데 71~74년 사이 공연과 스튜디오 앨범의 수익금 일부가 여전히 그에게 가도록 계약되어 있었는데 수 년전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정식 발매했거든요. 그와 결별하고 만든 4집 앨범 첫 노래가 그 넘을 욕한 <Death On Two Legs>(걸어다니는 시체)였을정도로 살아 생전 그 놈에게 더 돈이 가는 꼴을 못 봐주겠다는 의지였다고나 할까요? 국내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이나 이승환 콘서트가 퀸 라이브 연주 리스트를 많이 참고한 흔적이 나며 싸이, 김경호 등이 자주 언급하지요. 그리고 프레디가 사망한 11월 24일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그를 기리는 퍼포먼스 행사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아직 잘 모르시던 분은 이번 기회에 퀸에 입덕하시길 기원합니다. " I won't be a rock star. I will be a legend" (나는 록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 데뷔 당시 프레디 머큐리가 했다던 명언을 끝으로 알아두면 쓸데 있는 퀸 이야기를 마치며, 극장에 달려가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쌀, 따뜻한 물로 씻지 마세요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쌀을 불리고 씻는 것도 중요한데요. 따뜻한 물에 씻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손이 시려서 따뜻한 물로 쌀을 씻는다는 분도 있죠.  하지만 60도 이상의 물을 사용하면 밥맛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쌀 표면이 어설프게 익어서 수분이 쌀알 내부까지 스며들기 어려워지기 때문인데요. 자칫 밥이 딱딱해질 수 있습니다.  밥맛을 살리려면 찬물을 이용하되, 손이 너무 시리면 거품기를 이용해서 휘휘 저어가며 씻어도 됩니다.  귀찮다고 전기밥솥 내 솥에 생쌀을 담아 씻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렇게 하면 내 솥에 미세한 흠집이 생기면서 밥솥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번거롭더라도 쌀 씻는 용기를 사용하시고요.  이때 쌀 먼저 넣고 물을 나중에 부으면 이물질이 잘 제거되지 않으니까요.  용기에 물을 부은 다음에 쌀을 넣어야 합니다.  쌀은 표면이 상하지 않도록 살살 씻는 게 좋은데요. 예전에는 표면에 이물질이 많아 박박 문질러야 했지만, 이제는 도정기술이 발달해 쌀이 깨끗한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굳이 세게 씻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쌀을 심하게 문지르면 영양분이 빠져나가니까 3번 정도 가볍게 씻으면 충 분하다고 하네요. (60도에서 쌀을 어떻게 씻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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