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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카페(1화 시끄러운종소리)

짤랑 짤랑 시끄러운 종소리가 울린다 동네에 흔해보이는 카페 하지만 딱히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꽤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카페인듯하다 시끄러운 종소리가 끝날때쯤에 문이 열린다 나쁘지 않은 인상의 남자가 문을연다

시언:와 오늘 날씨 정말 화창하네 이런날 나가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 한강가서 자전거도 타고 돗자리 깔고 치킨도 시켜먹고 하아...

시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서 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유하:사장님 무슨소리 하는거에요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더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안하시고 그러니까 매출이 몇달째 그대로인거에요!
시언:미안한데 오늘만 나랑 하루 놀러가면 안될까 오늘 진짜 날씨가 너무 화창한데 이런날 놀러가지않으면 후회할거같은 느낌이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시언의 뒤통수를 때리는듯하다

유하:뭐라는 거에요 일해야 된다니까! 사장님 빨리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원두나 로스팅해주세요 오늘 볶아놓은 원두가 다떨어졌으니까 놀고만있지 말고요 가게사장은 사장님이지 제가 아니라고요
시언:그래 내가 사장인데 알바생이 날 부려먹네 젠장
알았어 알았다고 일하자 일!

시언은 한숨을 쉬며 오늘 놀기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많이 아쉬운 기분이었지만 저번달 매출 상황을 생각하면 유하의 잔소리가 충분히 납득이 갔다

유하:하아... 오늘도 손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구나
사장님이 조금만 정신차리고 일하면 손님이 조금씩은 올텐데... 실력좋은 바리스타면 뭐해 맨날 띵가띵가 놀궁리만 하는데 아휴...
시언:다들린다 임마 너내가 사장이 아니라 그냥 백수로만 보이냐 그래도 내가 월급은 안밀리고 꼬박 꼬박 주잖아

유하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시언에게 물어봤다

유하:그러게요 어떻게 가게 매출도 바닥인데 제월급은 안밀리고 꼬박꼬박 주시는걸까요? 궁금하네요 정말 미스테리야 미스테리 어디 은행에 빚이라도 내서 월급주시는거는 아니시죠?
시언:내가 아무리 무능력하다해도 빚내서 너 월급줄 정도는 아니거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원두 지금 로스팅 해놓을테니까 핸드드립 커피 한잔 추출준비해봐 에스프레소 내리기전에 먼저 마셔볼거니까
유하:알았어요 사장님 그래도 혹시 빚내실생각 하시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제가 조금은 빌려드릴게요
시언:그러면 3000만원만 땡겨줄래 이번에 정말 사고싶은차가 나와서 말이야
유하:사장님! 쓸데없는소리좀 하지마세요!

유하는 매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시언을 쳐다봤다
시언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유하에게 말했다

시언:농담이다 농담 내가 돈빌릴사람이없어서 너한테 손벌리겠냐?
유하:사장님은 언뜻보면 정말 속편하게 사시는분 같아요 존경스럽네요 아~~주
시언:그거 비꼬는거 아니지?
유하:어머... 들켰네?
시언:너 감봉이야 이번주

유하가 시언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유하:월급줄돈이 없으면 말씀을 하세요!! 이렇게 찌질하게 얘기하시지말고!
시언:아..아! 아파~~ 알았어 알았어 농담이야 내가 어떻게 하늘같은 우리 알바생님 월급을 떼먹냐...

시언은 말이끝나자 가게문을열면서 말했다

시언:그런의미에서 난 한강좀 다녀올게 유하씨 다녀올동안 핸드드립 추출 꼭하는거 잊지말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유하:아~~~! 사장님!!!


다음화에 계속

나도 팔로워 많아지고싶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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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안녕하세요...ㅎ
다들 건강무탈히 잘들 지내셨나요...ㅎ 너무나 간만에 인사 올립니다. 직전글 게시일로부터 거의 딱 만 1년 후네요 많은 분들께 별 다른 고지않고 기약없이 기다리게 해드린 부분, 깊이 사과 드립니다.. 그리고 그 기약없는 1년간 별 재미도 없이 지루한 제 글에 댓글 남겨주시며 복귀를 요청 주셨던 여러 분들께도 진심 담아 고마움을 표합니다. . . . 연재 중단의 별 이유는 사실 없었어요. 하루하루 살이가 너무 바쁘고 힘들다보니 생각이상의 시간과 정성이 투여되는 글쓰기에서 자연스레 멀어지더군요. 무슨 돈이 되거나 한것도 아니고 시작부터 순전히 가벼운 취미로 시작했던지라.. 다만 연재가 지속되며 전혀 예측도 못 하게 많은 분들이 호응과 응원을 주신 덕에 좀 부담과 책임이 실리게 되어 나름 열심히 성의껏 하긴 했지만, 역시 여유가 없으니 멈추게 되고 또 한 번 멈추니 재시작이 더욱 어려웠어요. 그리고 빙글의 불안정한 인터페이스탓도 있었어요. 제 컨텐츠 특성상 상당히 텍스트가 많고 또 영상이나 이미지보다 텍스트 위주인데, 빙글은 일단 텍스트제한이 걸려있어서 일정 수 이상 글자를 쓰면 업로드가 안되고(지금은 안그런지 모르겠네요) 또 텍스팅을 하다보면 모바일 상에서 나타나는 편집화면의 폰트크기도 오락가락 하는 등.. 여타 커뮤니티나 SNS에서는 상상못할 오류들이 제 사기를 꺾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매체를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볼까 싶은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 빙글로 되돌아온 이유는 하나! . . . 제가 업로드 할 때마다 오로지 칭찬과 격려와 응원 일색인 독자분들 때문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온통 좋은댓글뿐이라 의아했어요ㅋㅋ 보통 다른 커뮤니티 가보면 비방, 비판, 반말, 욕설, 본문과 전혀 무관한 댓글도 많은데 이곳은 인절 그런 분들이 안계시니까..ㅎㅎ 그래서 다시 한 번 해보려구요. 저 글은 안올리지만 알림이 뜨다보니 종종 댓글 주시는 분들 계시면 댓글은 바로 체크 후 답글도 드리긴 했거든요. 조용히 기다릴테니 언제고 준비되면 돌아와달라. 빙글을 지우지않고 있을테니 시간되면 글써달라. 빨리 새글 올려달라, 현기증 날 거 같다. 등등등등 제 복귀를 원하는 분들이 남겨주시는 댓글이 제 복귀는 물론, 힘든 제 일상에서까지 엔돌핀이 되어 주더라구요. 빙글이 글쓰기 불편한 서비스여도, 빙글이 비인기 SNS여서 조회수가 적어도, 제가 삶의 무게에 눌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도, 아무것도 아닌 제가 쓰는 길고 지루한 글을 좋다며 1년간 손놓고 있는데도 기다림의 댓글을 주시는 저런 분들을 외면하면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다시 열심히 해볼테니 많은 응원과 격려 및 주변전파와 좋아요, 댓글, 스크랩 등등 원활한 피드백 간청 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책추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고 읽으면 좋은 책 5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올봄, 현존 작가 중 최고 작품가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가 열리며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 전시를 관람하기 전후 작가의 예술관을 이해하면 작품에 대한 공감이 깊어지고 여운도 더 오래 남는데요. 여기,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플라이북이 추천합니다. 01.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 | 디자인하우스 저명한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여 년에 걸쳐 데이비드 호크니와 나눈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회화에 대한 철학관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02. 그림의 역사 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 미진사 드로잉부터 회화, 사진, 영화까지 수천 년간 그림이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 고찰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적 탐구를 담은 책입니다. 03. 데이비드 호크니 마르코 리빙스턴 | 시공아트 유화, 수채화, 판화, 무대 디자인, 사진 콜라주까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방대한 40여년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플라이북 앱 바로가기 > http://me2.do/xOFTiTre
이력서
연봉을 더 높게 적었어야 했다고, 진영은 생각했다. 전화는 화요일에 걸려왔다. 3년 전의 진영이었다면, 연락이 온 당일이라도 당장 가능하다고 했을 것이었다. 진영은 이번 주 내내 별다른 일정이 없을 예정이었지만, 금요일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출판사는 진영의 집에서 지하철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한 달 전 그만둔 회사가 출근 시간만 넉넉히 한 시간 반을 넘게 잡아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장점이었다. 출판사는 지하철역 입구에서도 거의 바로 보일 만큼 가까웠고, 4층짜리 건물을 단독으로 쓸 만큼 규모가 큰 편이었다. 면접 장소는 3층이었는데, 벽면에는 계단을 따라 이곳에서 펴낸 무수한 책들이 훈장처럼 전시돼있었다. 3층 입구에 들어서, 진영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직원에게 물어 인사담당자를 찾았고, 회의실인 듯한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안녕하세요. 진영이 인사를 건네자, 담당자는 진영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이쪽에 앉으시라며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진영의 복장은 불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딱히 격식을 차렸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맨투맨 티셔츠에 면바지, 그리고 캐주얼한 점퍼 하나를 걸쳤는데, 진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이전 경력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물었고, 혹시 술을 마시는지를 물었다. 진영은 잠시 생각했다. 영업부서가 아닌 편집부서에서의 음주 여부에 대한 질문이라면, 두 가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성실성과 친화력.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면 출근에 지장이 있을 가능성 하나는 없는 셈이므로 나쁘지는 않지만, 담당자의 성향이 어떤가의 가능성을 다시 따져볼 때, 모범 답안은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크게 즐기지는 않고, 절제하며 마시는 수준입니다.’ 정도일 것이었다. 그러나 진영은 어떤 여과도 없이 대답했다. 네, 마십니다. 좋아합니다. 담당자는 음, 그렇군요, 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담당자는 ‘아시겠지만’ 하고 운을 떼고는, 자주는 아니지만 출판사의 특성상 간혹 야근을 해야 한다며,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물론 야근 수당은 지급된다는 말도 덧붙이며. 진영은 야근 수당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나, 싶었다. 이전 회사는 야근 수당은커녕, 정상적인 회사보다 근무시간이 30분이나 길었고, 그것도 부족해 야근은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당함에 입도 뻥긋 못하던 게 현실이었다. 진영은 망설이는 척하며, 너무 자주만 아니라면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담당자는 서둘러 면접을 끝내려는 표정이었고, 예의상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복지체계가 궁금합니다. 이전 회사는 복지라고는 없었거든요. 담당자는 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복지를 말해주었다. 당장이라도 마음을 돌려 입사할까 하는 마음이 잠시나마 생길 정도로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담당자가 설명하는 복지 목록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담당자는 혹시나 연락이 안가도 양해를 바란다며, 불합격 시에는 따로 연락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진영은 부디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진영은 성취감이라고는 없는 이전 회사에서 겨우 3년을 버텼고, 더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퇴사를 결심했다. 퇴직금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올 요량이었다. 엄밀히 말해 퇴직금은 회사가 그동안의 진영의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만든 꼼수에 불과했다. 연봉을 13분의 1로 나눠 월급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퇴직금으로 모아서 생색을 내는 엉터리 회사들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한데, 그곳이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영에게 그곳은 첫 직장이었고, 노동법에 무지했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한 퇴사 일까지 한 달여가 남았을 때, 진영은 환멸에 가까운 매너리즘에 빠졌지만, 야근이며 궂은일을 자처하며 상사들의 비위를 맞췄다. 물론 ‘권고사직’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믿었던 인사과 선배는 자발적으로 퇴사했으니 권고사직 처리는 힘들다며 잘라 말했고, 진영은 편집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정사정하며, 권고사직을 부탁했다. 으응, 그래. 실업급여 받아야지. 간신히 얻어낸 ‘권고사직’이었다. 진영은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뒀지만, 공식적으로는 회사의 경영 부진으로 인해 사실상 회사에서 ‘잘리는’ 특권을 얻어낸 것이다. 실업 인정 담당자는 퇴사 사유를 물었다. 진영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능숙하게 대답했지만, 혹시라도 문제 될 만한 질문을 받을까 봐 내내 조마조마하였다. 실업급여 신청 후 2주 뒤에 고용센터를 다시 찾았을 때 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예정 시각보다 늦었나 싶었지만, 정해진 실업급여 설명회 시간은 10분이 넘게 남아있었다. 3년 이상 근무, 30세 이상, 150일. 진영은 정확히 조건에 맞는 사람이었고, 소정급여 일수 150일을 진단받았다. 최대치의 수급 일수였다. 그러니까, 5개월 동안 달마다 130여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정해진 기간마다 구직활동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진영은 수급을 받는 동안 당연히 취직할 의사가 없었고, 허위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력서는 진짜였지만, 성의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입사 의지를 담고 있지 않은 이력서였다.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곤란하므로, 이력서에는 납득범위의 희망 연봉보다 조금 높은 연봉을 기재해놓았다. 엄밀히 이것은 부정수급이었지만, 어차피 본인이 낸 세금이라며 진영은 자신을 설득했다. 진영은 면접에서 돌아와 이력서부터 수정했다. 마침 3차 구직증명서 제출 기간이기도 했다. 희망 연봉 란에 기재한 연봉을 조금 더 올렸다. 그러나 귀찮게도, 저녁 즈음에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정 교열 관련 일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이렇게 높은 연봉을 불러도 연락이 오다니. 진영은 첫 직장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가급적 소기업들에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연봉은 회사 내규에 무조건 따르겠다던 지난날의 자신이 생각나 헛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교정 교열 일에 이렇게 많은 연봉을 주는 회사가 있나요? 담당자의 질문이었다. 아, 그게……. 전에 다니던 회사가 업무량이 좀 많긴 했습니다. 진영이 대답하자, 담당자는 아, 그런가요, 하더니 저희는 지금 사실 정규직보다는 계약직을 구하고 있어요, 했다. 진영은 잘 됐다 싶어, 저는 지금 정규직을 구하고 있어서요. 계약직이라면 좀 곤란하네요. 죄송합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진영은 다시 이력서를 열었고, 희망 연봉 란에 시선을 두었다. 이번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금액을 적어 넣었고, 그제야 진영은 만족했다. 4차 구직증명서 제출 기간이 지나도록, 면접을 봤던 출판사를 포함해 연락을 해오는 회사는 다행히 없었고, 실업급여는 제날짜에 무사히 진영의 계좌에 입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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