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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가 보내는 위험신호

신체가 보내는 위험신호 운동을 하기 전에는 자신의 지금 상태를 판단하고 운동강도를 미리 결정해야한다. 신체상태에는 정신상태 또한 포함된다. 편하게 말하면 컨디션이 너무 좋아도 위험하고 너무 나쁘면 당연히 안하는게 좋다.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기분이 업되어있을 때는 아예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때가 큰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항상 운동스케줄을 짤 때는 평상시의 일상패턴과 심리상태도 고려해야한다. 매일 운동하는게 아닌 이상 컨디셔닝 조절 자체는 휴식으로 대체하면 된다. 무슨 말이냐면 일정한 수준의 감정상태를 유지하고 운동에 들어가야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운동효율과 성장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근육은 운동을 할 때마다 손상되고 파괴된다고 보는게 맞다. 문제는 관절이 견딜 수 있는 수준, 관절에 부하가 집중되지 않으면서 힘줄과 근육이 발달하는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골이 반영구적이라 해도 어차피 심한 운동에서는 압착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관절이 강해진다는 말은 연골이 두꺼워지거나 인대가 더 질겨지는 것이 아니라 힘줄조직이 더 탄탄하게 뼈들을 붙잡아서 무게를 잘 전달하는 것이다. 저항이 작을 경우에는 큰 무리가 없는데, 저항이 커지고 동작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경우는 근육이 지치고 늘어나고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가 증가한다. 그런 동작이 반복되면 회전근개 팔꿈치 척추디스크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나마 무릎은 강한 편이다. 물론 애초에 약골인 경우도 있지만. 약골이든 강골이든 신체의 한계치는 본인이 알고 있다. 이거 하면 다친다. 오늘 무리하면 다칠거 같다는 자신의 한계와 경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컨디션과 상관없이 익숙치 않은 동작을 할 때는 심리상태를 확인해야한다. 뭔가 쎄하다 싶으면 절대하면 안된다. 몸이 견딜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피하는 본능이라 볼 수 있다. 운동을 하다가도 과하다 싶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근육은 에너지를 쓰는 몇가지 방식이 있다. 최대근력은 이삼십초밖에 쓸 수 없고 그 다음은 근지구력이라 보면 된다. 그러니까 심호흡이나 휴식없이 정신력이나 의지만으로 최대파워를 낼 수 있다고 믿는 건 근육을 파열시키는 최적의 길이다. 10초 이내에 해결할 수 없으면 다시 쉬었다가 해야한다. 이런 건 사실 극한의 운동일 때의 얘기고 자신의 한계치를 100%라 봤을 때, 운동방식과 단련방법 자체는 최대 90%에서 멈추어야 안전하다. 그러면 능력향상은 어떻게 하느냐? 근육이 피로하고 관절이 피로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육에 더 집중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이 반복횟수의 마지막에 버티기를 추가하는 것이다. 사실상 한계치는 버티는 순간에서 근접할 수 있고 그걸 세트로 돌리면 뒤로 갈수록 점점 한계에 더 가까워진다. 신체의 한계라는건 모든 부하가 근육이 아니라 관절에 집중된다고 느낄 때다. 당연히 그 상태까지 가면 운동이나 훈련이 아니다. 극도의 집중과 긴장상태를 유지하지않는 한 관절의 손상으로 직결된다고 보는게 옳다. 운동을 할 때는 그렇게 한계에 근접해선 안되고 근육과 관절을 분리해서 접근해야한다. 일반인은 물론 관절이 아니라 근육에 더 집중하면서 맨몸으로 관절을 강화하는 버티기 방법을 지속하면된다. 무술가들이 괜히 벌세우듯이 버티기를 반복시킨게 아니다. 그게 기능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면서 안전한 신체단련법이기 때문에 지겨운 버티기와 반복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아무튼 신체의 위험신호는 심리상태와 체력수준, 기분감정까지도 포괄해서 인식해야한다.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면 당연히 해서는 안되고 체력수준이 낮다면 자신의 생각에 따른 그날의 컨디션, 기력을 비율로 대입해야한다. 운동 중에도 감정이 들뜨거나 흥분되면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안정시켜야 한다. 신체의 반응과 느낌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없으면 가벼운 운동만 하고 무리해선 안된다. 안하는게 가장 좋고. 여러면을 고려할 때 운동하기 가장 좋은 상태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약간은 쳐진 상태다. 약간은 긴장되면서 또 약간은 민감한 상태가 집중하기 가장 좋다. 기분에 따라 감정이 달라질 수 있고 집중도에도 영향을 미치니 기분이 주변 환경에 따라 쉽게 좌우되는 사람은 운동의 효율이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체적으로 몇가지 주의할 부분은 관절이 역으로 걸리는 경우로서 이미 중증의 부상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치료와 재활을 해야한다. 무리한 운동과 자극을 오래 반복한 사람은 팔꿈치와 무릎, 또는 손목과 발목에 그런 증상을 받을 수 있다. 무릎은 걷다가도 역으로 걸릴 수 있고 팔꿈치는 폈을 때 아프거나 손목 발목은 뻣뻣해지는것 자체가 이미 부상이다. 운동을 할 때가 아니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할 상태다.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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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좋은정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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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단련의 우선순위
신체단련의 우선순위 운동습관이 잘못되면 지속적인 부상요인이 축적된다. 그것은 신체의 불균형으로 나타나고 불균형은 구조적 문제, 통증, 기능상의 문제를 일으킨다. 다만 그것이 언제 문제로 드러나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과거에 말타기를 하던 사람들은 다리가 벌어지고 소위 안장다리가 된다. 서양인은 양반다리를 하라 그래도 못한다. 동서양의 기후차이는 그 체격과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인류를 모아놓고 가장 체격차이가 큰 사람들을 세워 놓으면 남녀보다 훨씬 큰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날 것이다. 일단 상하지의 길이가 제각각이고 상체와 하체의 비율도 제각각이다. 머리크기부터 손가락, 발가락 길이까지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뼈의 굵기와 살찐 정도까지 포함시키면 같은 인종내에서도 체격을 표준화시키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거기다 사람마다 좌우불균형이 있다. 아예 좌우 뼈의 길이가 다를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사용정도에 따라 좌우비대칭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걸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왼팔과 오른팔을 쓸 때 손가락과 손목, 팔꿈치의 주요 궤적과 빈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근육의 굵기나 수축속도까지 달라질 수 있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다. 골반의 전방경사와 좌우경사 척추의 휘어짐, 어깨불균형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사람마다 3차원 영상분석으로 그 운동궤적을 분석한 후에 전체 통계와 평균을 따져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굳이 다 다른 사람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게 강제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모든 사람에게 최선인 운동방식과 운동궤적이 있을까? 일반적인 운동이라면 바람직한 표준을 정하고 거기에 끼워맞출 수도 있다. 다수의 정규분포를 따를테니까 소수는 무시하고 평균을 정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 사람의 운동능력 향상이나 최적화, 목적성을 띤 기능향상, 전투능력이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재활치료나 기능향상을 나는 같은 관점으로 본다. 필라테스도 죠셉 필라테스가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기능성 운동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 서론이 길다. 아무튼, 신체는 발달하지만 그건 운동보다 단련의 과정이라 보는게 좋다. 운동이란 말은 그냥 동작의 반복이나 기능의 유지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허나 모든 운동과 무술은 기능의 발달과 향상을 목표로 한다. 보라. 운동이란 말 속에도 목표의 차이가 발생한다. 신체단련이 위에서 말한 불균형이나 일반화의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그 우선순위가 명확해야한다. 예를 들어 허리가 아픈 사람한테 윗몸일으키기를 시키는 건 잘못된거다. 마찬가지로 허리와 골반이 뻣뻣한 사람한테 발차기를 연습시키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목과 어깨가 뻣뻣한 사람한테 손기술이나 주먹질을 가르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신체의 기능이 그 동작을 수행할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는 반복된 단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초보자가 헬스장에 가서 벤치프레스부터 시작하는건 잘못된 거다. 효율성과 기능성을 기준으로 보면 쉬는 시간 거의 없이 팔굽혀펴기를 100회까지 할 수 있기 전에는 벤치프레스나 중량운동을 해선 안된다. 스쿼트도 마찬가지다. 쉬지않고 100번을 앉았다 일어날 수 있을만큼의 골반과 무릎과 발목과 근력을 확보한 후에 중량운동을 하는게 순서에 맞다. 나는 중량운동도 중력운동으로 대체하는게 더 안전하다고 보지만, 어쨌든 맨몸운동으로 충분히 단련된 후에 중량운동을 하는게 맞다. 그게 부상을 입지않고 강해지는 길이다. 그리고 신체단련을 위해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할 부위는 어디일까? 이건 답이 쉽다. 심폐가 먼저고 그 다음이 팔다리다. 보디빌딩에서 말하는 근육의 구분은 하지말자. 간단히 말하면 달리기와 매달리기가 기본이다. 달리기를 하면 심폐는 당연하고 다리가 단련이 된다. 매달리기나 당기기, 턱걸이를 하면 팔이 단련이 된다. 그러니까 맨몸운동은 달리기와 턱걸이 딱 두개면 끝난다. 나는 허리가 약해서 허리를 따로 강조해왔지만, 사실은 달리기와 매달리기만 해도 허리와 복근, 척추 역시 단련이 된다. 사실 팔다리보다 복근이나 기립근을 우선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실 허리는 앞뒤를 따로 단련해야되고 그러면 엉덩이도 단련해야된다. 그걸 달리기로 해결하면 된다. 달리기에 스쿼트, 런지만 추가하면 엉덩이도 발달한다. 마찬가지로 매달리기에 버티기와 레그레이즈만 추가하면 허리와 복근강화가 된다. 두 개면 될 일을 세 개로 늘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굳이 신체단련의 우선순위를 단계별로 구분하자면, 1순위, 심폐 2순위, 하체(다리 엉덩이) 3순위, 중체(허리 복근 옆구리) 4순위, 상체(어깨 가슴 팔) 5순위, 손발 6순위, 전완 종아리 7순위, 팔꿈치 무릎 8순위, 상완 허벅지 9순위, 어깨 골반 굳이 단계와 부위를 구분하면 이렇게 된다. 보다시피 아래에서 위로 작은 부위에서 큰 부위로 내려간다. 이렇게 해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단련된다. 허나, 대부분은 이와 반대로 크고 강한 부위부터 위에서 아래로 순서를 짠다. 큰 근육부터 운동하는건 좋은데 가슴 팔 어깨를 주구장창하고 하체는 하나로 묶어버리고 관절은 신경도 안쓴다. 물론 운동선수라면 큰 틀에서 기본 균형은 다 맞춘다. 문제는 기준과 원칙이 없는 일반인과 초보자는 대충 보기좋고 하기쉬운 운동위주로 순서를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가슴 팔은 키우면 세보이고 뿌듯하고 다리는 티도 안나고 잘 크지도 않는다. 그러니 상체운동을 더 하고 하체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그냥 취미수준이면 상관없는데, 기능향상이나 무술 격투기술을 위한 거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하지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데다 손목 발목 무릎 골반 어깨 팔꿈치가 약해지는 방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영 강해지는건 고사하고 언제 다치고 부상을 입을지 카운트를 세어야 한다. 신체단련에 있어서 기본을 무시하고 순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략 3년안에 관절문제가 발생하리라 본다. 열심히하면 1년안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뼈가 잘못되거나 디스크나 연골, 인대의 손상이 발생할 것이다. 운동이든 단련이든 자신이 하는 방식의 우선순위와 선택기준이 무엇인지를 정리해보아야 한다. 그걸 모른다면 이미 약화중일테지만 늦게라도 문제를 확인하면 고칠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한
집중력과 부상의 관계
집중력과 부상의 관계 코치나 감독, 가르치는 사람들은 항상 집중력을 강조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친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해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동작이나 운동에서 집중력은 신경계와 직결된다. 거기다 긴장도는 호르몬 분비와도 연계된다.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초보자가 무리한 상태에서 부상으로 직결되는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정신상태를 강조하는 이유도 부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느슨한 정신상태에서는 동작도 느슨해지고 커진다. 당연히 관절에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다. 군대에서 기합을 많이 주는 이유는 정신상태가 극한상황에서 전력이탈로 곧장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면 바로 신체적 반응들이 나타난다. 쥐가 나거나 어지럽거나 구토를 하고 근육이 경직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일반적인 운동과 훈련의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니 더 자주 빈번하게 발생한다. 발목이 접질리거나 인대가 파열되거나 뼈가 골절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런 부상의 빈도수가 집중력과 관계되어있다. 특히 경미한 부상은 간과되기가 쉬운데 턱걸이를 한다 치자. 손가락을 느슨하게 걸치고 하는 경우와 꽉 잡고 할 경우의 관절이 받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근육의 수축정도에 따라 체중이 관절에 걸리는 하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복시 팔꿈치의 각도변화도 인대에 영향을 미친다. 야구선수와 테니스선수는 팔꿈치에 주로 문제가 발생한다. 어떠한 운동이든 손과 팔을 쓰면 팔꿈치와 어깨에 과도한 부담을 받게 되어있다. 그걸 피할 방법은 운동을 안하는 것뿐이고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정확한 순서와 각도를 찾는 것이다. 어깨와 팔길이에 따라 각도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대신 정확한 순서는 정할 수 있다. 턱걸이라면 손아귀 힘을 꽉주고 날개뼈에 힘을 주고서 등으로 당겨야 한다. 팔과 팔꿈치는 광배근으로 당기는 것을 보조하는거지 그러니까 버텨주는 거지 팔로 당기는게 아니다. 다시 손아귀힘을 꽉주면 전완근이 수축된다. 그러면 봉부터 팔꿈치까지 고정이 되고 상완과 어깨, 등이 남는다. 최종수축점인 광배, 등허리에 힘을 주고 당기는 것이다. 이걸 순차적으로 하면 일종의 지렛대 원리가 된다. 광배근은 등허리 척추뼈에 붙어서 윗팔뼈의 안쪽에 말려서 붙는다. 그러니까 팔을 위로 쫙펴면 광배근육은 180도 회전하게 된다. 그걸 수축시켜서 윗팔뼈를 당기고 이두근은 다시 아랫팔뼈를 당긴다. 간단히 얘기하면 척추로 팔을 당기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가 근육이 되고 그걸 버티는게 힘줄이다. 이걸 천천히 하면 문제가 없는데 빨리 반복하면 근육간의 힘차이가 발생한다. 가장 약한 근육이 힘이 빠지는만큼 힘줄과 관절에 부하가 증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회전이 발생하면 인대가 뒤틀린다. 야구선수가 공을 던질 때는 그 회전속도가 정점에 있어 궤적을 가지고도 논쟁이 된다. 릴리스 시점, 공을 언제 놓느냐에 따라 팔꿈치에 걸리는 부하가 다르다. 공을 놓는 시점의 작은 차이가 팔꿈치에 걸리는 부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치에 도달한 동작이나 운동이 아니라도 장시간의 반복된 동작은 관절과 인대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여기에 중량까지 더해지면 관절의 부하는 증가하고 부상의 악화속도는 더 빨라진다. 이처럼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와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자세와 습관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니까, 관절에 가해지는 작용반작용, 관성의 법칙을 어떻게 운동에너지로 전환할 것이냐가 매우 중요하다. 기본과 기초가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며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팔꿈치나 무릎에 직접 충격이 가해지는 동작을 어깨와 등, 골반과 엉덩이가 흡수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똑같아 보이는 동작이라도 그 힘의 전달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본인만 알 수 있는 수축느낌을 관절이 아닌 대근육으로 옮겨야 하고 그것도 결국 팔다리의 교차운동으로 전환해야한다. 장기적으로 운동시의 집중력은 부상의 가능성을 줄이거나 없애고 안정적인 동역학을 체화할 수 있는 기술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게 반복되면 어디에 무리고 어떻게 하면 다치는지 알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동작에 엄격한 것이 결국은 건강과 성장을 좌우한다. 선수라면 선수생명을 좌우할 것이고... 대한
운동의 주기화, 발달의 기준
운동의 주기화, 발달의 기준 어떤 운동이든 그렇지만 반복된 관절사용은 제각각의 한계치를 자극한다. 운동을 꾸준히 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내는 힘이나 체력의 70 80 90%정도를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초보자는 그런거 모른다. 그래서 잘 다친다. 초보자가 처음 운동을 접하고 근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능력치를 맹신하기 쉽다. 그래서 무리한 동작도 그것이 무리인 줄 모르고 계속 한다. 말그대로 무식하게 운동하는 것이다. 특히 군대나 무술처럼 근성을 강조하는 조직의 경우, 개인의 한계를 무시하고 반복을 강조한다. 그러면 사람마다 한계치가 다르고 회복력이 다르기 때문에 잠재된 부상가능성도 차이를 보인다. 나는 신체를 한계로 내모는 기합, 단련, 반복을 여러차례 꽤나 오래 경험했고 허리, 손등, 어깨, 목 등 골고루 다쳐봤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약골인 관계로 관절의 잦은 부상은 달고 살았다. 또 욕심은 많아서 무식한 방법을 많이 해봤고 그래서 내 신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 덕에 신체를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더 효과적인, 그러니까 안다치고 강해지는 방법들을 찾아나간 것이지만 여전히 그런 방법론으로 개인의 신체발달을 안전하게 보장한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단계적인 기능발달이 개인마다 다른 수준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동의 주기화는 방법이나 기술보다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운동스케줄을 짜는 방법론이다. 수단과 목적보다 계획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계획의 연속성안에 모든 원리와 요소가 녹아들기 때문이다. 먼저 원론적인 수준에서 근력의 발달은 근육이 아니라 관절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보통 이것을 결합조직이라 부른다. 관절의 발달정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더 어렵고 힘든 동작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근력도 아니고 유연성도 아닌 신체능력이 결합된 동작으로 시험해봐야한다. 예를 들어, 턱걸이나 한팔턱걸이 같은 것이다. 달리기도 전력질주나 오르막달리기같은 방식으로 시험해야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방법을 채택해야 자신의 관절과 신체능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현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한 상태에 운동계획을 짜고 그 회복수준을 다시 파악한다. 맨몸운동을 기준으로 하면 이해가 쉬운데 중량운동을 기준으로 하면 내추럴 빌더나 파워리프터, 역도선수를 참고해야한다. 맨몸일 경우, 매일 달리기를 하거나 팔굽혀펴기, 턱걸이, 다리운동을 해도 무리가 없다. 허나 이것은 원론이고 심폐능력이 충분하다는 전제가 달린다. 그러니까 초보자가 달리기, 팔운동, 다리운동, 허리운동을 다하면 당연히 피곤하고 무리다. 피곤하고 피로하다는 것은 심폐에서 혈관을 통한 영양공급이 원할하지 않다는 뜻이고, 이것은 간의 해독능력 또한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심폐능력과 회복능력은 직결되고, 그러니까 하루의 활동량에 운동량을 추가했을 때 다음 날 이튿 날에 어느 정도 회복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근육은 72시간을 잡는데, 관절은 그보다 더 걸린다. 그러면 매일 운동을 하는데 어떻게 관절에 손상이 없을까?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관절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운동능력, 체력, 근력이 향상될수록 관절의 한계치에 근접해간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이런 문제와 직면한다. 아마추어여도 그 운동종목이 한계를 뛰어넘는 수준이면 마찬가지다. 중량운동은 낮은 무게라도 관절에 부하가 집중된다. 축구도 마찬가지고 등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운동의 계획을 세울 때 어떻게 관절을 단련할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단련방법은 버티기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운동방법이든 버티기가 들어가지 않는 방법은 관절의 악화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유연성으로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결합조직을 강화하는데 그걸 다시 늘리면 그건 약화가 아닌가. 근육을 풀어주는 것과 조직을 늘려주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돌아가서 버티기로 조직과 관절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거기다 근육이 느끼는 감각은 고통스럽다. 단번에 힘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참고 버티는 것이기 때문에 재미도 없다. 그러나 버티기를 하지않으면 사실상 관절을 단련할 방법이 없다. 역으로 그것을 운동과 결합하면 기존보다 월등한 효과를 발휘한다. 운동방식을 등척성운동, 아이소메트릭, 버티기 위주로 바꾼다는 것은 관절을 강화하는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상에서 멀어지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그러나 기존의 운동들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않는 이유는, 기합같기도 하고 고문같기도 하고 효과도 바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과 기초를 강조하는 사람은 보이는 성과는 신경도 쓰지않고 똑같은 것만 가르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이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한단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경험자는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와 방식들을 찾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동의 주기화는 신체의 회복속도와 관절의 발달수준으로 결정한다. 결국 이것은 시간보다 강도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낮은 강도로 매일이나 이틀에 한번 또는 부위별로 돌릴 수 있다. 높은 강도라면 관절의 부담을 줄이고 최소화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돌려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달리기를 했으면 팔운동만 하고 달리기를 하지 않을 때는 다리운동을 하고 그리고 회복수준에서 가능한 강도를 결정해야한다. 재밌는 사실은 근육의 관점에서도 고반복보다는 고강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중량운동 자체는 횟수를 줄이고 강도를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지, 애초에 저중량 고반복이란 개념이 성립될 수가 없다. 고강도냐 저강도냐의 차이가 있을 뿐, 저중량이든 고중량이든 고반복은 그냥 관절조지기다. 거기다 회복력은 전혀 신경쓰지않는. 인간은 손오공이나 초사이언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원칙은 운동횟수와 시간을 줄이고 강도위주로 운동방법과 주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근력과 지구력과 컨디셔닝, 유산소 무산소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일주일을 기준으로 널널하게 스케줄을 짜고 운동강도와 회복만 고려하면 된다. 초보자가 명심할 일은 운동횟수보다 운동강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팔굽혀펴기 백번을 하는 것보다 턱걸이 열번을 하는게 낫다. 열번의 횟수보다 버티기 십초가 더 낫다. 그 차이를 알아야 신체의 발달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차이를 두고 해봐야 알겠지만. 대한
신체가 부상에 이르는 과정
신체가 부상에 이르는 과정 태어나서 한번도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심각한 부상은 아니더라도 경미한 부상을 수시로 입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더 강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 약해진다. 지금껏 한국에서는 그 놈의 의지, 정신력을 강조했지만 문제를 알고 노력하는 것과 문제를 모르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아마도 그것이 강자와 약자가 갈리는 이유이리라. 다들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경험이 있고 나름의 방법론이 존재한다. 거기에 보편성과 과학성이 있으면 체계적인 치료와 운동이 되고 그런 것이 없으면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사이비 돌팔이가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효율성의 차이를 불러온다. 효율성이 마이너스면 부상을 입는 것이다. 그러면 왜 부상을 입는지부터 밝혀보자. 근골격계의 부상은 충격의 과부하에서 비롯된다. 충격이 크면 한 순간에 파괴될 것이고 충격이 작으면 조금씩 파괴될 것이다. 결국 신체의 부상은 충격과 파괴의 연속된 과정에서 회복이 그것을 넘어설 수 없을 때 발현된다. 나는 충격 파괴 회복을 신체 성장의 삼요소로 본다. 그러면 충격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것은 고민할 것도 없이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나를 예로 들면 발은 평발에 가깝고 오른발이 왼발보다 약간 더 크다. 발등이 약간 더 내려앉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왼손왼발잡이다. 물론 왼쪽의 힘이 더 세다. 일단 좌우의 불균형한 힘의 차이는 근력발달과 충격흡수의 차이를 불러온다. 어릴 땐 몰랐는데 이 차이를 무시하면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진다. 초등학교 때 계주를 나갔다. 보통 반에서 이삼등의 달리기는 꾸준히 해왔고 그래서 대표로 나갔다. 몇번째 주자였는지는 모르겠다. 첫번째는 아니었다. 한바퀴를 도는거였던가? 보통 작은 운동장에서는 직선주로보다 곡선주로가 더 길다. 처음 바톤을 받고 직선에서는 괜찮았는데 곡선에 접어들자 속도가 줄면서 앞의 주자를 따라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시합이 끝나고 같은 반 친구가 말하길, 직선에서는 빨랐는데 곡선에서 확 느려지더라는 것이다.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다는 말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이제와 깨닫는 것은 왼발잡이가 왼쪽으로 도는 코너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들은 양발에 같은 힘을 싣지 않는다. 자신이 주로 쓰는 발이 힘점이 된다. 과학에서는 딛는 발과 내미는 발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역도나 육상도 그러한 원리를 따른다. 역도선수는 양발의 두께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다. 앞으로 내밀어서 딛는 발에 지속적인 충격이 가해지니 더 강해지고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자, 일반인을 생각해보자. 만일 양발의 차이를 무시하고 근력의 차이를 좁히지 않으면 무릎과 발목에 전해지는 충격량이 달라진다. 그게 심하면 골반도 틀어진다. 그러면 허리근육의 길이도 달라지고 어깨에도 영향을 미친다. 척추측만증은 어린 나이에 시작되는데 이는 운동량이 부족하고 자세가 불균형한데다 척추가 유연해서 서서히 비틀어지는 것이다. 비틀림은 관절과 인대의 손상을 불러온다. 척추의 문제가 뒤늦게 통증을 불러오는 이유는 척추뼈가 분절되서 근육들이 그 뒤틀린 상태의 움직임을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목이나 목 허리 발목은 바로 인대가 늘어난다. 문제는 초기의 부상부터 시작된다. 한쪽 부위의 부상을 입었다고 하자. 그러면 아프지 않은 쪽에 의존하게 되고 부상이 회복되어도 그 기억은 남는다. 예를 들어 넘어지거나 부딪힐 때 의식적으로 더 강하고 익숙한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자연히 불균형은 더 심해진다. 여기서 더해지는 문제는 좌우의 불균형이 힘을 싣는 방식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걷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달리기를 하지 않고 근력운동만 하면 왼발과 오른발이 바닥을 디디는 차이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근력이 발달할 수 있다. 이는 정적인 자세가 아니라 동적인 동작에서 미세한 힘점이동, 그러니까 무릎의 부하 정도로 확인된다. 여기에 좌우크기나 길이까지 차이가 난다면 무릎에 가해지는 자극과 부하도 달라질 것이다. 맨몸일 경우는 부하의 큰 차이가 없지만, 중량을 달 경우에는 좌우불균형이 좌우무릎에 가하는 부하의 차이를 점점 키우게 된다. 차라리 한발씩 따로 쓰면 상관이 없겠지만, 양발을 같이 쓴다면 이러한 차이는 골반과 허리 어깨의 부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물론 다리를 양 옆으로 넓게 벌리고 골반에 힘을 주면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만,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의 회전과 부하의 차이는 여전히 유지된다. 그 부하의 차이가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을만큼 관절을 단련하는게 개인적 노하우이자 관건이다. 지금은 하체만 말했지만, 상체의 불균형은 그 차이가 훨씬 더 크다. 그리고 이것은 척추, 협착증, 거북목, 라운드숄더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수반한다. 상체운동에서 승모근 문제와 두통, 회전근개 파열은 체형과 근력의 차이를 무시한 운동과 동작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따로 다뤄야할 사안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똑같은 각도와 속도로 관절을 움직일 수가 없다. 회전과 그에 따라 걸리는 토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유연성이 전제된다고 해서 이 차이가 해소되거나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부상에 이르는 과정의 확실한 이유는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의 동작과 중량, 속도를 견딜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기초를 무수히 강조하는 이유는 강해지는 방법이 그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상을 입지 않는 요령이나 강해지는 비법같은 건 없다. 그런게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많이 무책임하거나 일부러 다치라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사실은 기초에 충실하면 자기도 모르게 강해진다. 문제는 그 발전속도의 개인차가 다르다는 것이지 온갖 요령찾는 것보다 꾸준히 기초만 하는게 성장이 더 빠를 수밖에 없다. 결국은 부상도 욕심의 문제다. 대한
운동능력의 판단기준
운동능력의 판단기준 왜 운동을 하면서 계속 다칠까? 왜 운동을 하는데도 단련되지않고 부상을 입을까? 무엇이 잘못되어서 강해지는게 아니라 약해지는걸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인간의 신체가 제자리에서 하는 반복된 운동에 적합하지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이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한 행동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몇만년 전의 생존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신체적 진화는 이미 그 때에 결정되었고 우리는 그 때의 환경과 생활에 맞춰 진화해왔다. 혹자는 몸을 쓰지 않는 인류가 뇌만 큰 외계인처럼 진화할거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진화론을 편의적으로 생각한 발상이다. 몇만년동안 지속된 유전자는 다시 몇만년동안 지속될거라 보는게 합리적인 해석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왜 우리는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을 체계화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첫째, 인간이 운동을 돈벌이로 삼았기 때문이고 둘째, 인간이 기초를 무시하고 기본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두가지 이유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 운동의 기본과 기초부터 정리해보자. 인간의 신체는 달리기와 던지기에 적합하다. 사실 매달리기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뿐이지 조상들이 나무에서 내려온 순간부터 악력이 현저하게 약해졌다. 발과 다리는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하게 진화했고 손과 팔은 돌멩이를 던지기에 적합하게 진화했다. 그게 생존에 유리했고 그런 사람들이 번성해 우리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도 그것을 기초로 신체를 이해해야한다. 달리기와 던지기를 기본운동으로 삼는 것이다. 물론 현대인에게 매일 달리기를 하고 돌멩이를 던지라는데는 무리가 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하지않는다고 다른 방법이 없거나 단련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신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맨몸으로 할 수 없는 운동은 절대 중량을 달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초보자나 일반인에게 웨이트 트레이닝, 중량운동을 시키는 것은 조 웨이더가 만든 산업의 소비자가 되라는 것일 뿐, 관절을 약화시키는 길이다. 맨몸이 운동의 90%라면 중량은 10%의 영역도 차지해선 안되고, 그것도 달리기나 동적인 운동과 비교한다면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중량을 사용한 운동은 어디까지나 전문적인 훈련의 영역이지 일반인이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영역이다. 인간의 신체는 직립보행을 하고 손을 사용하는데 유리하다. 가장 정교하게 손이 발달했고 필연적으로 어깨가 약해졌다. 정교함과 직립보행을 선택한 대신 손과 팔, 어깨의 구조적 약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던지기를 잘 하는 인류가 결국 살아남은 것이다. 손이 뇌의 발달에 직결된다면 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생존에 직결됐음을 의미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새기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모든 능력이 모두 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손의 촉각은 대뇌의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중요한 감각인지 작용을 한다. 눈과 더불어 손은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주요 수단이다. 손이 땅에서 떨어진 대신 발은 신체의 모든 압력을 받는 부위가 되었다. 심장에서 가장 먼 발이 심장의 능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체의 건강과 심장의 능력은 발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발은 신체건강과 운동능력의 대전제가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신체의 능력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발은 어떤 역할을 할까? 발은 신체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이동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뼈가 가장 굵고 견고하다. 아킬레스건은 가장 굵은 힘줄이면서 가장 큰 부하와 충격을 견뎌낸다. 발이 약하면 발목과 무릎도 약해진다. 손에 비해 발이 미치는 약화의 영향은 훨씬 더 크다. 발이 단련이 안되면 바로 무릎과 허리 척추 목까지 약해진다. 사실상 신체의 약화나 불균형은 발의 약화에서 비롯된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그러니 반대로 신체를 강화하려면 발을 강화하고 단련해야한다. 그것이 신체단련의 시작이고 운동능력 향상의 출발점이다. 현대인은 덩치에 비해 현저히 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하루종일 앉혀놓고 책만 읽게 하는데 손발, 팔다리허리가 약해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미 척추측만증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곧장 비만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달리기를 하지않으면 구조적으로 약해지게 되어있다. 몸은 성장하는데 그만큼의 활동량이 동반되지 않으면 관절과 힘줄이 제 기능을 할만큼 발달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가 축적되면 목 등 허리 척추의 악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위별로 진단하는 처방이 아니라 신체기능 전반의 향상을 위한 체력단련이다. 케냐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맨발로 산길을 달린다. 하루종일 앉아있는 아이들과 하루종일 뛰어노는 아이들의 신체능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더불어 이것은 정신적인 문제와 질병까지 수반한다. 온갖 질병과 정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달리기를 하면 된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두번 이상은 달리기를 해야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충분한 운동량이 확보되질 않는다. 일주일에 두세번 한두시간 달린다고 잘되던 공부가 안되고 시간이 모자랄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동물원에 가둬놓은 동물이 정형행동을 하고 정신병에 걸리는 것처럼 학교에 가둬놓고 운동도 못 하게 하고 책상에만 앉혀놓는 것은 신체를 악화시키고 고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성향을 봐서는 수십년이 지나도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괴롭히는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교육의 체계에는 반드시 운동과 체육이 필수활동으로 들어가야한다. 그게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다. 짐작하다시피, 운동능력의 판단기준은 새로운게 없다. 달리기 던지기 매달리기같은 원초적인 동작을 지속하고 강화하면 된다. 그걸 기준으로 운동능력을 판단하면 된다. 팔굽혀펴기를 몇 번하고 턱걸이를 몇 번하고 스쿼트로 몇 킬로의 바벨을 들고... 횟수나 무게는 운동이나 건강과 별 상관이 없다. 운동능력이나 신체능력의 일부일진 몰라도 건강에 이롭다는 전제도 나올 수 없고 시간대비로도 달리기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러니까 달리기를 안하는 복싱선수와 달리기를 하는 복싱선수 중 누가 더 건강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엘리트체육과 학원체육으로 재편된 한국의 체육실정이 근본적 운동능력을 망각하고 있다. 육상을 등한시하는 운동은 건강을 담보할 수 없다. 대한
신체의 균형, 근력과 부상
신체의 균형, 근력과 부상 심폐와 장기를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상은 골격에 집중된다. 여기서 말하는 골격은 관절을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운동과 치료법이 있다. 재활도 의학의 한 분야로 스포츠의학의 한 축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소메트릭이 재활치료법의 주류가 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등척성 운동, 그러니까 근육의 길이가 고정된 운동, 쉽게 말해 버티기는 신체의 근력과 관절, 협응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초보자나 부상자, 노약자에게 이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동, 치료, 방법은 없다. 아마도 이것이 강조되지 않은 이유는 그 효과에 비례해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버티기를 하라는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하겠는가. 그런 다른 모든 일들이 그럴듯이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불교적 수양에서는 대근기 중근기 소근기를 나눈다. 이것은 현대말로 인내심과 참을성이 얼마나 강하냐를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자존심과 똥고집이 쓰일 수 있다. 잘 보면 자존심이 센 사람이 인내심도 강하고 참을성도 높고 똥고집도 있다. 그것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기란 어렵다. 그 사람의 목적과 행위가 그것을 결정할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신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끝없는 향상심이나 도전정신, 불굴의 의지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내심도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악화와 불균형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인정과 부정의 심리와 깊게 관계되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나 목표에 집착한다 치자.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기본 실력이나 한계를 아주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늘려나감을 의미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계단식이 아니라 선형으로 그것도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이차방정식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말하는게 아니다. 3차원 도면의 나선형 회전을 말하는 것이다. 굳이 정신과 신체의 성장을 그래프에 비유하자면 그렇다. 2차원으로 보면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이 그려 지겠지만, 실제의 3차원에서는 상승과 하강이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을 그린다. 이런 관점의 확장이 없으면 신체가 균형을 이루고 성장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굳이 근장력과 지구력과 유연성의 삼요소로 성장의 변수를 구분했지만, 이것들은 결국 신체가 실제에 반응하기 위한 대응을 요약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 지성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심리다. 가뜩이나 신체는 두뇌라는 중추신경계의 지배를 받는다. 두뇌라는 것 자체가 신경의 집합이며, 인간은 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것을 정신이라 부르든 영혼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신체 전반이 지성이나 이성과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하나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신체의 기능적 움직임에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지능,그러니까 사고와 편견,과 본능, 감각과 감정,이 그러한 통찰과 이해를 후천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다. 초원의 사자는 태어나기를 강하게 태어났다. 그냥 잘 먹고 성장하면 따로 노력을 안해도 강한 이빨과 다리로 다른 동물을 사냥하고 다닌다. 인간도 물론 타고난게 있다. 달리기와 던지기의 능력이다. 인간만큼 오래달릴 수 있는 동물은 말밖에 없고, 인간만큼 정교하게 던질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신체능력은 전 지구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고,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새로운 개념이나 이해를 적용한 적이 없다. 다 자르고 고대의 원시인과 비교하면, 현대인은 심각하게 게으르고 쓸데없이 집착한다. 오직 건강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달리기만 하고 하루종일 물건을 만들고 놀면 그게 최상이다. 그게 원시인의 일상이다. 그러면 그게 제일 건강한거다. 물론 현대인은 필요이상으로 경쟁하고 필요이상으로 복잡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만큼 일해야 되고 신체도 더 건강해야한다. 정신적 영역에서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대단히 높다. 따라서 신체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정신을 포함한 수련을 해야한다. 정신수양과 단련을 할 수 없는 운동은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안된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도움이 된다는 말은 인간사회의 과열경쟁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이 받쳐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얘기다. 운동을 통한 경쟁이 스트레스 해소나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중독으로 본질을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운동을 해서 자동으로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노력으로 정신력을 강화하고 다시 운동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금메달에 집착하고 순위와 성과, 경쟁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의미는 있지만, 정신이 발달하고 신체가 균형을 이루는 것과 상관이 없다. 내가 수영, 육상, 등산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자연과 조응하는, 그러니까 자신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가장 적합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지능과 본능, 이성과 정신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충분하니까.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반드시 정신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은 두뇌와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신질환을 겪고 신체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신과 신체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뇌로 통합되고 심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마음의 병을 명확히 진단하는 방법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신체의 균형을 통해 정신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예나 종교, 예술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고 정신, 영혼, 심리와 직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체가 부상을 입는 것도 정신과 신체의 불균형, 근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감정조절이 안되면 무리한 동작을 하고 무리한 동작과 자세는 관절의 부하를 극대화한다. 그것이 정적일 경우는 근력으로 어느정도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격렬한 동작에서는 꼼짝없이 근력이 약한 부위의 관절에 부담이 집중된다. 인간이 부상을 입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신체능력의 한계치는 가장 강한 부위기 아니라 가장 약한 부위, 가장 강한 근력이 아니라 가장 약한 근력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는게 문제다. 예를 들어 상체의 근력이 아니라 손가락의 근력, 팔꿈치의 근력, 어깨의 근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으며 하체의 근력이 아니라 발가락의 근력, 무릎의 근력, 골반의 근력이 옳다. 허리의 근력이 아니라 장요근의 근력, 복직근의 근력, 기립근의 근력이 기준이다. 그 중에 가장 약한 근력이 자신이 낼 수 있는 근력의 최대치이며 부상을 입지 않는 한계치인 것이다. 가장 약한 부위보다 높은 근력을 사용하는 것은 부상을 입는 지름길이며 신체를 망가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신체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 건강해지는 것도 부상을 입지 않는 것도 더 강해지는 것도 간단하다. 가장 약한 부위의 근력을 강화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체의 균형을 맞추며 전체가 강해진다. 지극히 당연한 원리다.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본질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원리.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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