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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에피소드] 명동에 미용실이 많나요?

114는 대한민국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는 국민 서비스입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보급화 되기 전에는
114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었어요~
전화번호 안내를 해주는 중 생기는 에피소드들도 정말 많이 있었죠.
오늘은 그 많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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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안에 소설 쓰는 법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할때마다 썼따면 벌써 출판을 하고도 남았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찾아본 짤이에여 좋은 글도 있어서 덧붙입니다! 글쓰기를 고민하는 분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글을 쓰는 것이 정 어렵다면,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충 쓰자!  품질을 떨어뜨려도 된다. 써서는 안 된다고 했던 상투적인 표현이나 수십 번도 더 봤던 거들떠보기도 싫은 이야기도 어쩔 수 없다면 눈 딱 감고 갖다써도 좋다. 그렇게 해서 넝마 같은 글일지언정 하여간 써나가는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나' 하는 후회라든가. '이렇게 볼품없게 쓰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들지라도 우선 대강대상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쓰는 것이다. 양심이 있고 본능이 있다면 그런 중에도 조금씩은 덜 썩은 글을 쓰게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면서 일단 이글만 후딱 써서 마치고 그 다음에 축하 파티를 하기 위해 클럽에 가든, 뷔페식당에 가서 배터지게 먹든, 스무 시간 동안 잠을 자든, 뭐든 하자는 결심으로 하여간 계획대로, 목표한 대로 밀고 나간다.  역시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워드 프로세서라는 현대 기술의 산물이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썩 괜찮다. 일단 개떡같이 글을 써놓고 나중에 다시 뒤돌아보면서 찰떡같이 다듬으면 된다. 컴퓨터에 저장되는 글은 나중에 고쳐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개떡같은 내용이라도 뭔가가 있는 상태에서 고치고 뺴고 더해가는것이 더 쉽다. 뭐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있으면 대체로 쉬워져도 훨씬 쉬워진다. 구체적인 것이 눈앞에 이미 펼쳐쳐 있으니 목표를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고 의욕을 갖기도 더 쉽다. 개떡 같더라도 좀 쓰다 보면 서서히 리듬을 타게 되고 흥이 오르면서 점점 애착이 생기고 다시 좋은 글을 열심히 쓰게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래도 일단 써라' 방책을 쓰기 위해 잠시 글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쉽게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얼마든지 나중에 다시 고치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차피 항상 최고로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충 때워나간 뒤에, 나중에 고치고 또 고쳐서 수습한 정도의 글이라면 일단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거창한 글을 쓰겠다고 시작했다가 무슨 글을 쓸지 계획을 세우며 이런저런 개요나 줄거리를 짜거나, 앞부분을 조금 쓰다가 떄려치우고 마는 일은 아주 흔하다. 나 역시 아직까지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컴퓨터에도 앞부분 몇 페이지만 쓰다가 그만둔 소설이 몇 편이나 버려져 있는지 모른다. 땅속에 심은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저 언젠가 미래에 피어날 지도 모른다는 기대만 하면서 계속 캄캄하고 차가운 흙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쓰는 실력은 글 하나를 마무리 지을 때 늘어난다고 본다. 4분의 1만 쓰다가 때려치운 글 열 편을 쓰는 것보다 제대로 결말을 지은 글 한 편을 쓰는 것이 더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낄 정도다.  글 한 편을 마무리 짓는 일을 몇 차례 하다 보면 그러지 못하면 깨달을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지, 글의 앞부분, 중간부분, 끝부분을 쓰는 일 중에서 어느 대목에서 가장 힘겨워하는 지, 마감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지, 글을 쓰는 중에 어떤 일이 생기면 가장 방해받는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해서 얼마 정도 지나면 시들해지는지, 어쩌다가 의욕이 사그라지는지, 사그라진 의욕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반성하며 돌아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고, 알 수 없으니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  거기에다 마무리된 글에는 운이 좋으면 어디에 팔아먹을 수 있다는 장점 한 가지가 있다. 미완성인 글을 팔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마무리된 글이라면 누군가 새로운 글을 찾고있다고 할 때, 어딘가에 공모전이 있다고 할 때 보낼 수 있다. 좀 못 쓴 글일수도 있고, 좀 잘 쓴 글일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마무리된 글이라면 보내서 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있다. 글이 미완성이라서 아예 보내지도 못하는 것에 비해, 마무리된 글이라면 가능성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마무리괸 글을 여러 편 쌓아놓으면 듬직하고 뿌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그 뿌듯함은 참 좋은 감정이다. 그 뿌듯함이 있으면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면서 잘했던 점과 잘못했던 점을 되새기는 일도 좀 더 즐거워진다.  한참을 입으로만 무슨 글을 쓸지 떠들고, 그렇게 하면 어디가 재밌을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다 보면, 그러다 김이 빠져 실제로 그 글을 쓰는 자체는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겪었다. 그보다는 '이런 거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지금 누구한테 말 할수는 없고, 얼른 써서 보여주고 싶다. 얼른 쓰면 보여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당장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채로, 조바심과 애타는 마음을 이용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열성을 불태워 글을 실제로 쓰는 것이 더 좋다. -곽재식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 ㅡㅡㅡㅡㅡㅡㅡㅡ 첫글자 떼기가 제일 어렵다....ㅇㅈ...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9가지 방법
가장 오래된 스토리텔링 중 하나인 천일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놀라운 힘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로 더 친숙한 천일야화에서 왕은 매일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지만 다음날 죽여 버린다. 날마다 새로운 신부를 찾아내야 하는 신하에게는 고달픈 일이었다. 그가 왕의 부인감을 찾아오지 못하면 그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하의 용감한 딸 셰헤라자드는 왕의 다음 부인이 되기를 자청한다. 혼인을 올린 날 밤, 셰헤라자드는 왕에게 길고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고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결말 직전에 멈춘다. 왕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그 다음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셰헤라자드는 피곤하다며 왕에게 다음날 얘기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날이 되자 셰헤리자드는 얘기를 끝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그녀는 결말 직전에 이야기를 멈추고 왕에게 내일 이야기를 끝내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과는 1,001일 밤 동안 계속 되었고, 그러는 동안 왕은 셰헤라자드를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나에게 놀라운 스토리가 있어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것이다. 팩트보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전파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들을 내것으로 만들어보자. 1. 스토리를 읽지 마라 절대로 스토리를 읽지 마라. 스토리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적어야 하지만 이것은 발표할 때 읽듯이 해서는 안된다. 청중에게는 읽어주는 스토리를 듣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스토리는 자신의 것임으로 기억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찾아내 연습한다면 스토리 전달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스토리를 읽지 말아야 한다. 설령 약간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2. 자신의 스토리를 믿어라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의 스토리가 주는 힘을 믿어야 한다. 과정을 신뢰하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3. 평소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라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스토리용 목소리’를 쓰려고 하지 마라. 꽤 많은 지적이고 세련된 사람들이 ‘스토리용 목소리’를 쓴다는 걸 알면 무척 놀랄 것이다. 마치 노래하듯이 간드러지게 하는 목소리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한테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던 후유증일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하듯이 말하라. 평소 말하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라. 4. 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이야기하라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는 마치 오직 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라. 청중이 10명이고, 100명이고 상관없이 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는 것이 청중을 한 개개인으로 보고 교감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단순하지만 막강한 기술이 된다. 5. 속도를 조절하라 스토리 말하기가 생소한 사람들은 그들의 스토리를 급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들이 아직도 스토리의 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성급하게 끝내려고 하는 이유다. 스토리를 연습하는 동안 잘 훈련했다면 1~2분가량으로 스토리의 분량을 조정해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속도를 조절하라. 그러면 스토리가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이것으로 모두에게 더욱 기억되고 즐거운 경험이 되게 해줄 것이다. 스토리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몇몇의 스토리는 처음은 느리게 시작하지만 갈수록 빨라진다. 또 일부는 처음부터 빠르게 진행한다. 당신은 이것을 가늠해보고 어떤 것이 당신의 목적, 청중 그리고 자신에게 잘 맞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6. 중간 중간 한숨 돌려라 비즈니스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적을 불편해 해서 급하게 정적을 깨려 한다. 그러나 스토리의 중간이나 뒤에 있는 정적은 강력한 수단이 된다. 스토리 중간의 일시정지는 타이밍이 적절하다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 일시정지는 2~3초 정도나 더 길게 하여 길이의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정지한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고 서스펜스를 주기도 하고 요점이 드러나게도 만든다. 7. 효과적으로 반복하라 스토리에서 문장을 반복해보는 것이 청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누구나 당신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이 타고난 재능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수 있어야 한다. “내 최고의 애드립 스토리는 거울 앞에서 몇 시간씩 연습하여 나온 것이다.” 이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마음속에 각인되게 해준다. 그러나 반복은 적절하게 사용해야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8. 눈맞춤 하라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시선을 마주치라는 의미는, ‘청중에게 눈을 부릅뜬다’라든지 ‘눈싸움을 하라’와 같은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교감한다’라는 인간적인 방법을 말한다. 대규모의 청중과 당신의 스토리를 나눈다면 공간의 여러 부분과 시선이 교차하도록 노력하라. 100명의 청중이 있다면 각각의 사람들 모두 다와 눈맞춤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공간의 다른 여러 부분에 눈길을 주도록 해야 한다. 당신에게 미소 짓고 있다고 해서, 또는 이미 당신과 통하고 있다고 해서 한 사람만을 응시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들과 교감했으니, 다른 이들과도 교감하라. 9. 스토리 얘기해주는 것을 즐겨라 스토리를 말하면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청중 모두는 치과 치료를 받는 것처럼 유쾌하지 못할것이다. 가장 유용한 것은,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즐기라는 것이다. 당신의 온정, 열정 그리고 에너지가 한 데 모여 스토리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게 되면 계속해서 스토리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연습이란 본인이 잘하고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더 잘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못다한 그룹 '퀸Queen)'의 숨겨진 이야기
지난 10월 31일부터 우리나라 극장에 대형 음악영화가 하나 걸렸으니 이름하여 <보헤미안 랩소디>! "그 당시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고 불리우는 세계적 록그룹 퀸(Queen), 특히 20세기 최고의 보컬로 손꼽히는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지요. "아~ 이 노래도 퀸 노래였어?" 라고 할 만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낸 그들의 일대기와 함께 영화 마지막에 1985년 전설의 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도 그야말로 완벽하게 재연했습니다. 영화 내용 중 "아웃사이더들을 위해 노래하는 아웃사이더들" 이라고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들을 소개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그들은 대단한 엘리트들이었습니다! 보통 록 계에선 사회부적응자들이 많았지만 이들 4명은 모두 대학교 졸업자들이었어요. 처음부터 좋은 의미에서 록 계의 이단아들이었지요. 심지어 퀸의 중심이었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세계 5대 공대중 하나로 평가받는다는 런던 임페리얼 대학교 천문학(우주물리학) 박사학위를 따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총장까지 했습니다. 그는 기타도 직접 만들었는데, 200년된 화로통 나무를 뜯어 만든 레드 스페셜(Red Special)은 오직 세상에 한 대만 존재하지요. 초창기 밴드의 얼굴 마담으로 여성 팬을 끌어모은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당시 치과대학생이었는데, 치과공부가 재미없다고 식물학과로 전과한 특이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이자 퀸의 상징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미술학도 출신이라 퀸 앨범의 표지를 직접 디자인하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는 참 복잡한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1946년 아프리카 잔지바르(Zanzibar) 술탄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나라가 있냐구요? 물론, 지금은 사라졌어요. 1964년 옆나라 탕가니카와 연합정부를 수립하면서 탄자니아가 되었으니까요. ^^ 그런데 그의 부모님 국적은 인도.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공무원이 되어 당시 영국 식민지이던 잔지바르에서 근무중이었지요. 하지만 부모님 국적인 인도였지만 민족은 인도인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파르시(parsi)였거든요. '인도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파르시는 원래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었는데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이슬람 제국에 멸망당하자 인도로 도망간 난민들로 1500여년 동안이나 자기들끼리만 결혼하며 민족과 종교를 지켜오고 있고 인도 최대의 기업, 타타그룹을 세우기까지 하지요.  아래도서에 파르시에 대한 놀랍고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지요^^ 즉 프레디 머큐리는 이란 혈통을 가진 인도 국적의 부모님이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낳은 아이였고 이후 영국으로 귀화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이란 핏줄의 인도인에서 귀화한 영국인이 되는 거죠. 이들 4명은 모두 작사,작곡 능력까지 갖춰 4명 모두 영미차트에서 각각 10위권 이내 진입한 노래를 만들어 내어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동시에 오르는 영광을 누립니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도 퀸의 일부 노래를 직접 부르고 솔로 앨범도 냅니다) 초기에 나쁜 매니저를 만나 노예계약을 해 3집까지 고생만 하던 그들은 소속사를 옮긴 후 만든 4집 <A Night At The Opera>에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지만, 평론가들은 라이브 공연이 불가능한 오페라 파트를 넣고 특징없는 잡탕 노래를 부른다고 악평을 해 대지요. 게다가 1977년 영국을 뒤흔든 펑크 록이 등장하면서 신세대 후배 로커들에게는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대형 록그룹들과 함께 "시대를 반항하는 록 정신을 저버리고 돈 많이 벌어 기름이 낀 노땅 그룹" 으로 몰리며 타도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퀸 멤버들은 "그래, 너네는 3개 코드와 3개 악기로만 노래 만든다고 자랑했지? 우리가 본 때를 보여주마!"하고 작정하고 만든 노래가 바로 <We Will Rock You>입니다. 6집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을 만들던 Queen은 7집 <News of the World> (번역하면 '세계의 소식'이겠지만 실은 당시 영국에서 유명했던 찌라시 연예잡지 제호라네요) 에서 손뼉과 발굴림, 목소리만으로 시작하는 이 단순한 노래를 1번 트랙에 배치합니다. 당시 새 앨범을 사 들고 오디오에 앨범을 걸었던 팬들과 건방진 펑크 록 후배들에게 "우리도 단순하면서도 반항적이고 멋진 노래 만들 줄 안다. 짜식들아~"라며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죠. ^^ 이후에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평론가, 기자들에겐 대차게 까여도 팬들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던 퀸은 양성애자이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1991년 사망하면서 사라지는 듯 했지만 지금까지도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꾸준히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하기도 했지요. 퀸의 최대 히트곡이자 영화 제목으로 쓰인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직역 하면 '보헤미아 사람의 광시곡(자유스러운 판타지)'이지만 보헤미안이 서유럽인들 사이에서 집시나 방랑자를 부르는 명칭이었기에 '방랑자의 환상'이라고 의역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보헤미아 왕국은 예전 체코 서부에 있던 왕국인데 여기에 집시들이 많아 살았다고 하지요) 실제 가사도 엄마를 괴롭히던 아버지를 쏘아 죽인 아들이 사형 집행전 엄마에게 쓴 편지 글로 시작해 죽음의 신과 천사들의 재판이 환청으로 들리다가 다시금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에 이어 결국 차분히 자신의 운명을 맞는 노래이지요. 이 노래는 영국에서 9주간 1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뮤직비디오로도 기록을 남깁니다. 그런데 이 가사 앞부분 사람을 쏴 죽였다는 가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1989년에서야 금지곡에서 풀립니다. 그 외에도 퀸의 많은 노래들이 오랫동안 금지곡이었기에 1980년 발매한 히트곡 모음 1집 <Greatest Hits> 앨범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4곡을 다른 노래로 바꿔 나왔기에 현재 해외 매니아층에게는 괴랄한 희귀음반으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 24일에 사망했습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퀸은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존경을 받고 있지요. 레이디 가가는 퀸의 라디오 가가(Radio GaGa)에서 예명을 지었습니다. 메탈리카는 퀸의 <Stone Cold Crazy>를 다시 불렀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 (Guns 'N Roses)의 엑슬 로즈는 "내가 죽을 때 무덤에 <퀸2>앨범을 같이 넣겠다"고 할 정도이지요. 그리고 미국 만화 <심슨 가족>, 일본 애니 <크로마티 고교>에서도 맹활약을 하십니다. 퀸은 활동 당시 스튜디오 앨범 15개를 남겼는데, 라이브 앨범이 아홉 종류나 나왔습니다. 퀸은 오리지널 곡보다 라이브에서 더 멋지게 부르던 그룹이거든요. 공연 도중에 바닥에 누워 푸쉬 업을 하는 가수를 본 적 있습니까? 그게 프레디입니다.  그런데 원래 활동 중에는 라이브 앨범을 2개 밖에 안 냈지만 최근들어 40여년전 초기 라이브까지 앨범이 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초창기 매니저와 아주 사이가 나빴는데 71~74년 사이 공연과 스튜디오 앨범의 수익금 일부가 여전히 그에게 가도록 계약되어 있었는데 수 년전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정식 발매했거든요. 그와 결별하고 만든 4집 앨범 첫 노래가 그 넘을 욕한 <Death On Two Legs>(걸어다니는 시체)였을정도로 살아 생전 그 놈에게 더 돈이 가는 꼴을 못 봐주겠다는 의지였다고나 할까요? 국내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이나 이승환 콘서트가 퀸 라이브 연주 리스트를 많이 참고한 흔적이 나며 싸이, 김경호 등이 자주 언급하지요. 그리고 프레디가 사망한 11월 24일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그를 기리는 퍼포먼스 행사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아직 잘 모르시던 분은 이번 기회에 퀸에 입덕하시길 기원합니다. " I won't be a rock star. I will be a legend" (나는 록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 데뷔 당시 프레디 머큐리가 했다던 명언을 끝으로 알아두면 쓸데 있는 퀸 이야기를 마치며, 극장에 달려가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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