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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박수복 작가 해외에서 재조명되다.

사단법인 #SNS기자연합회 에서 2018 #아시아대표 인물에 #서양화가 #박수복 #작가가 선정되었다.
그는 국내 및 해외에서 130여회의 #전시회 를 개최와 다수 수상 경력을 갖고 있으며 많은 고난의 시간들을 이겨내고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끊임 없는 도전을 통해 보는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철학과 화폭에 담기는 그 에너지는 그야말로 왜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소망은 “지구촌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내게 주어진 붓의 힘으로 이어져, 그 존귀한 생명들이 전 세계의 평화와 사랑으로 하나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고 밝혔다.
그는 한번 그린 작품은 30점 이상 그리지 않는다. #박수복작가 는 예술가로서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창작열을 불태우고 싶어한다. 위대한 선배들이 그러하듯 예술가는 끊임없이 창작을 해야한다는 삶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깨달음의 표현에 다가서려 하는 그 성품이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박수복작가 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건 시간과 기법만 갖추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건 시대 변화를 깨달아 화폭에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진정한 예술가는 뜨거운 열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붓놀림은 자유롭고 대담하다. 때론 무겁고 거칠다가도, 부드럽고 느긋하며, 색의 확산은 예리하거나 완만하다. 다양한 터치에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세계가 담겨있다.
놓치고 흘려버리는 것들과, 삶을 살면서 깨달아야 하는 많은 부분들을 고민하며 화폭에 표현하는 #박수복화백 은 “우리가 인생의 깨달음에 대한 열정이 목마르다”며 “항상 변화를 언제나 추구하는 예술가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성찰을 통해 세상을 말하고, 화폭을 통해 인간이 생각해야 할 많은 부분을 질문하고 있다. #박수복화백 은 영감을 통한 순간적이고 빠른 스케치로 음악과 함께 감상하는 예술적 #퍼포먼스 가 강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퍼해밍 #액션퍼포먼스 라 했다.
빠른 시간안에 작품을 완성시키고, 순간적 깨달음을 화폭에 옮기는 그의 능력은 전 세계의 언론들과 갤러리의 이목을 끌고 있다.
#박수복화백 은 곧 #이베이 25개국 아티스트로 디지털전시 및 아트상품으로 그의 실력을 또 전세계에 재입증한다. 미술계에도 새로운 시선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베이 는 몇 년전부터 유명작가들의 #작품 을 전세계 #디지털전시 와 #경매 를 통해 전 세계에 문화성장과 산업과의 융합을 시도해가고 있다. 국내작가로는 #배동신화백 의 작품이 150만달러에 낙찰이 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수복작가 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적 기법을 시도하며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채우고, 쌓고, 긁어내던 기존의 #서양화법 에 #동양화법 을 접목하여 동서양의 미학을 하나의 캔버스에 담아내는 그는 저명한 예술가로서 유럽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일필로 그려내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화법이 서양화에 적합한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박수복 화백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수복작가 는 이 시대가 잊고 놓치고 사는 많은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새롭게 인식시키고, #퍼해밍액션퍼포먼스 의 많은 흔적으로 앞으로 미술과 산업 전 세계의 시대흐름의 선구자로서 기억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100주년 3.1절을 맞아 #대한민국, 일본, 미국 국회 3개국 초대전을 통해 선열들의 나라사랑과 그 뜻을 기리며, 평화를 기원하는 #초대전 을 진행중이다. #대한민국 #국회초대전 은 4월18일~4월19일 #국회의원회관 2층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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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커플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전시회 소개를 하겠다. 제목 : Couples modernes / 현대적인 커플 날짜 : 2018.4.28-8.20 장소 : 프랑스 메츠의 퐁피두 (파리 아님에 주의) 홈페이지 : https://www.centrepompidou-metz.fr/couples-modernes 예고편 : https://youtu.be/IOFdDCLS5-U 왜 이런 생각들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전시회란 무릇, 주제에 따른 기획전보다는 스타의 ‘서사’에 의존한 전시회가 장사가 되는 법(참조 1)이다. 당연히 그에 따라 스타 커플들만 모은 전시회다. 어차피 요새 예능의 대세는 다 스타 가족들 아니던가. 우선 짤방이 강려크할 텐데,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도로시어 태닝(Dorothea Tanning) 커플의 1947년 사진이다. 이 전시회는 1900년부터 1950년까지의 커플 예술가들만을 다루고 있다. 둘이 따로 작업을 했든, 같이 했든 상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수평적인 영향력의 방향이 어땠을지를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하면 너무 마케팅스럽다. 그냥 1+1=3이라는 점만 아시면 되겠다. 가령 마르셀 뒤샹은 마리아 마르틴스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뒤샹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Étant donné(참조 2)에 나오는 여인이 아마 마르틴스였을 것이다(참조 3). 하지만 어째서 1900년부터 잡았을까? 여자 화가들이 두각을 타나내기 시작한 시기가 그때여서일 것이다. 18세기 시절 마리 앙뚜아넷이 권력을 휘둘러서 여자 화가를 왕립미술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에 집어 넣기는 했어도(참조 4), 당장 까미유 끌로델을 보시라. 까미유 끌로델(이번 전시회 카탈로그에는 없다. 있을만 한데 말이다)만 하더라도로뎅의 폭력도 있었겠지만 버팀목이 됐어야 할 자기 가족들(특히 남동생이자 “시인”이셨던 폴 끌로델)이 까미유를 정신병원으로 끌고간 주역이었다(참조 5). 아직 여자 예술가들의 버팀목이 배우자 혹은 남자 애인인 시절이 바로 이때다(혹시 지금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앞서 말한대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건 맞는데, 이 기사와는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며칠 전에 봤던 아마 살아있는 독일 화가 중 제일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일 네오 라우흐(Neo Rauch)와 그의 부인, 로자 로이(Rosa Loy)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이 부부도 카탈로그에는 없다. 참조 6) 이 둘은 일부러 스튜디오를 갈라서 따로 사용하고 있다. 잠깐만, 예술가 커플이 백년해로할 이유가 딱히... 그렇다. 한 사람이 다양한 배우자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과정도 전시회에 나오는 모양이다(가령 André Breton은 3명의 배우자, Vanessa Bell은 2명의 배우자 등등). 물론 전시회 대상의 예술가들에 대해 좀 알아야 재미있을 일이기는 하다. ---------- 참조 1. 전시회의 성공(2013년 10월 1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1889236249831 2. 여담이지만 에땅 도네에 영향을 준 그림이 꾸르베의 “하얀 스타킹을 신은 여자(La Femme aux bas blancs, 1864)”이다. 다만 나는 발튀스(Balthus)의 “꿈꾸는 테레즈(Thérèse rêvant, 1938)” 또한 뒤샹의 작품에 영향을 주잖았을까 싶다. 그럼, 에땅 도네의 분위기를 대충 아실 것이다. 3. Michael Taylor tells all–a talk on Etant Donnes(2009년 9월 3일): https://www.theartblog.org/2009/09/michael-taylor-tells-all-a-talk-on-etant-donnes/ 4. 르브룅 전시회(2015년 8월 1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464646009831 5. A Metz, le travail d’artistes en couple, trio ou quatuor(2018년 5월 4일): http://www.lemonde.fr/arts/article/2018/05/04/en-couple-en-trio-ou-en-quatuor-l-acte-artistique-en-partage_5294123_1655012.html#YvIH7ummDuvKrUZI.99 6. „Das ist die Talibanisierung unserer Lebenswirklichkeit“(2018년 4월 19일): http://www.handelsblatt.com/my/panorama/kultur-kunstmarkt/kuenstlerpaar-rosa-loy-und-neo-rauch-das-ist-die-talibanisierung-unserer-lebenswirklichkeit/21189370.html?ticket=ST-9061050-bxbYYdq2PrYTifrlZ6vD-ap2 라우흐는 스튜디오를 공유할 경우, “더 혼란만 자극해요(Das würde chaotische Zustände heraufbeschwören)”라 말했다.
에이핑크 나은이도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남긴 핫한 전시회는 어디?
지난 주말 에이핑크 손나은의 개인 인스타그램에는 노란색 팸플릿을 들고 편안한 차림으로 미술작품 앞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손나은의 모습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저곳은 어디일까요? 오늘 RedFriday에서는 그녀가 작품 감상을 즐긴 장소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1. 스프링브레이크 아트쇼 손나은이 참석하여 인증샷을 남긴 전시회는 바로 LA에서 열린 Spring Break Art Show였습니다. 2019년 2월 15일에서 17일까지 열린 이 전시회는 LA 1925 East 8th Street에서 열렸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이 전시회는 원래 뉴욕에서 시작되었으나 올해 처음으로 뉴욕을 벗어나 LA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40개 이상의 전시가 열렸으며 지역의 아티스트, 비영리단체, 독립큐레이터, 미술수집가, 갤러리 등이 참석했습니다. 2. 손나은 사진 배경에 등장한 작품은? 손나은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요? 바로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이자 영화제작자인 그렉 해버니(Greg Haberny)의 작품입니다. 손나은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의자는 그렉 해버니의 인스타그램에서도 1000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은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낙서한 듯한 추상작품, 오브제 등을 전시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고하세요.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286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
발튀스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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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고 읽으면 좋은 책 5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올봄, 현존 작가 중 최고 작품가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가 열리며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 전시를 관람하기 전후 작가의 예술관을 이해하면 작품에 대한 공감이 깊어지고 여운도 더 오래 남는데요. 여기,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플라이북이 추천합니다. 01.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 | 디자인하우스 저명한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여 년에 걸쳐 데이비드 호크니와 나눈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회화에 대한 철학관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02. 그림의 역사 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 미진사 드로잉부터 회화, 사진, 영화까지 수천 년간 그림이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 고찰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적 탐구를 담은 책입니다. 03. 데이비드 호크니 마르코 리빙스턴 | 시공아트 유화, 수채화, 판화, 무대 디자인, 사진 콜라주까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방대한 40여년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플라이북 앱 바로가기 > http://me2.do/xOFTiTre
베이컨-쟈코메티 전시회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을 전시회 소식. 이번에는 베이컨-쟈코메티 전시회다. 전시회 이름: BACON - GIACOMETTI 기간 : 2018.4.29-9.2 장소 : 스위스 바젤, Fondation Beyeler 웹사이트 : https://www.fondationbeyeler.ch/fr/expositions/bacon-giacometti/ 새삼 우리가 알던 위인들(!)이 생각보다 오래 살았음을 느끼건데, 쟈코메티와 베이컨 모두 서로 친했고, 영향을 또 주고 받으면서 잘 살았다는 건 미처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참조 1). 이 기사의 짤방부터 보시라. 1965년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환담 중인 쟈코메티와 베이컨의 모습이다. 즉, 둘의 작품들 전시회를 같이 할 요인이 충분히 있다는 결과다. 물론 쟈코메티가 8년 형님이어서 그런지, 베이컨은 자신이 쟈코메티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하긴 했다. 둘 다 주량도 엄청났고(응?), 추상주의가 득세하던 전쟁 직후, 그 둘 모두 인간의 형태에 주목했었다. 쟈코메티의 조각, Le Nez와 베이컨의 그림, 인노첸시오 10세를 나란히 보여주는 미술관 웹사이트를 보시라. 하지만 뭣보다 둘을 이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여자다. 당연히 프랜시스 베이컨은 게이인데? 하고 의문을 표할 수 있겠지만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듯, 베이컨을 파계(?)시킨 이 여인은 쟈코메티의 여인이기도 했었다. 이자벨 니콜라스(Isabel Nicholas, 1912-1992), 혹은 이자벨 델머, 혹은 이자벨 램버트, 혹은 이자벨 로손(참조 2).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주된 무대는 파리였다. 그녀는 제이콥 엡스타인(Jacob Epstein)의 모델이자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의 모델, 파블로 피카소의 모델이기도 했었다. (드랭과는 같이 살면서 그유명한 발튀스(!) 부부와 함께 여행했었다.) 그 외에도 에두아르도 파올로찌(Eduardo Paolozzi, 팝아트의 선구자다.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영국의 조각가임)의 묘사에 따르면 아래와 같았다. "... 그녀가 식당에 들어서면 의자에 앉을 때까지, 모든 포크가 허공에 잠시 멈췄었죠.(참조 3)" 1937년 어느 날 한밤 중의 생미셸 거리(뤽상부르 공원과 소르본 사이), 고압적으로 서 있는 이자벨을 본 쟈코메티는 앞으로 조각을 어떻게 해야할지를(참조 4), 이자벨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 둘은 같이 살았고 전쟁으로 인해(과연?) 헤어졌다. 전후 그녀가 거주지를 영국으로 옮긴 다음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등장. 위에서 얘기했듯 동성애자인 베이컨을 파계시킨 그녀는 원래 베이컨의 술친구였고, 결혼 후에는 베이컨이 그녀 옆집으로 이사왔었다. 베이컨에게 있어서 그녀는 인노첸시오 10세와 동급이다. 그녀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는 1967년 그가 그린 그림을 보시라(참조 5). 이 르몽드 기사에 따르면 이자벨과 쟈코메티, 베이컨은 1955년 깐에서, 그리고 (짤방을 촬영한) 1962년 런던에서도 같이 만났었다. 쟈코메티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여담이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자벨이 사망한 후, 몇 달 뒤 세상을 떴다. ---------- 참조 1.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우 내가 다룬 적이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2015년 4월 27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198137574831 2. 결혼을 세 번 했었다. 쟈코메티와도, 베이컨과도 결혼을 하지는 않았었다.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두 번째 남편과 세 번째 남편은 친구 사이(...) 3. Isabel Rawsthorne: The woman who was a walking work of art(2008년 8월 15일): https://www.yorkshirepost.co.uk/news/isabel-rawsthorne-the-woman-who-was-a-walking-work-of-art-1-2512181 4. FEMME AU CHARIOT(2018년 4월 6일): https://www.fondation-giacometti.fr/fr/database/161068/femme-au-chariot 제이콥 엡스타인의 이자벨 조각상과 비교해 보시라. https://roundhillrob.wordpress.com/2011/08/30/isabel-by-jacob-epstein-1933/ 물론(!!) 제이콥 엡스타인도 그녀의 연인/스승이었다. 5. Portrait of Isabel Rawsthorne Standing in a Street in Soho: https://en.wikipedia.org/wiki/Portrait_of_Isabel_Rawsthorne_Standing_in_a_Street_in_Soho
엄마야, 가을이 다 여기 있었네! - 뮤지엄 산
기분 좋게 서늘한 날들에 방심하던 사이 시린 바람이 갑작스레 옷깃을 파고들었던 지난 주말,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museum SAN)을 방문했더랬어요. 원래 안도다다오를 좋아하기도 하고, 일행 중 한명이 이전에 다녀왔다가 반해 버린 바람에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하여 주말 아침부터 출발하여 다 같이 신나게 다녀왔더랬죠. 하늘만 보고 가을을 느꼈던 서울에서의 날들이 무색하리 만치 온갖 가을이 다 모여 있던 뮤지엄 산의 풍경에 칼바람에도 꿋꿋이 바깥을 지켰더랬어요. 운명처럼 이렇게, 프레임 속에 낙엽이 뛰어들기도 했고요. 히. 긴 말 말고,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아- 가을이다-' 느껴졌던, 정말 온갖 가을이 다 모여있던 뮤지엄 산의 풍경... 한번 같이 보실래요? 주차장 마저 너무 예뻤지만 주차장 풍경을 미처 찍지 못 해 너무 아쉽네요 ㅜ.ㅜ 정말이지 빨강, 노랑, 초록, 주황, 모든 가을의 빛깔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달까. 사실 뮤지엄산이 일반인들(?)에게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었어요. 우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갈 수 없는 곳인지라 근처 골프장을 찾는 어르신들이나 찾는 곳이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이 물과 함께 하는 카페의 뷰가 유명해 진 이후로 북적대게 된거죠. 제 사진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실은 정말 엄청 많았단 말이죠, 사람들이. 사실 뮤지엄 티켓도 그렇게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주차장이 가득 차서 주차장에 차를 대지도 못했더랬어요. 뮤지엄에 이렇게 사람 많은거 처음 봤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이 모든 가을 속에 폭 파묻혀 있으니 정말 갈만한 곳 아니겠습니까. 건축 뿐만 아니라 물소리, 바람소리, 우수수 나뭇잎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 걸음 걸음 떨어지던 낙엽들, 뮤지엄 정원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 모든 것이 아름답던 곳. 반사되는 물빛마저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ㅠㅠ 그저 두기만 해도 아름다운 곳이니 당연히 어디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포토 스팟이죠.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인생샷들이 탄생하기도 한답니다 *_* 트랜치 코트 입고 바들바들 떨었지만 넘나 맘에 드는 사진을 건졌고요... 억새도 여기저기 심어져 있어서 가을가을한 샷들을 마구마구 얻을 수 있답니다 후후 전시도 다 너무 맘에 들었고요. 정말 맘에 들었던 터렐의 전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없지만... 종이 전시들은 촬영이 가능해서 몇장 보여 드릴게요.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던 해질녘까지 *_* 그리고 원주시내로 나와서 겁나 맛있는 고기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_* 아름다운 하루였어... 지금, 가을의 끝물에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해요. 평일에 시간이 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찾기 좋은 곳이겠지만 주말이어도, 사람이 많다 해도 정말 가볼 만한 곳이에요. 시간이 된다면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을을 배웅하러!
조제프와 마리 아깡, 고고학자이자 자유프랑스의 동지
http://www.lefigaro.fr/arts-expositions/2018/08/26/03015-20180826ARTFIG00100-joseph-et-marie-hackin-des-compagnons-de-la-liberation-tres-genereux.php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전시회 시리즈. 오늘은 미술이 아니라 고고학이다. 제목 : DE L’ASIE A LA FRANCE LIBRE. / 아시아에서 자유 프랑스로. / JOSEPH ET MARIE HACKIN, ARCHEOLOGUES ET COMPAGNONS DE LA LIBERATION / 조제프와 마리 아깡, 고고학자이자 자유 프랑스의 동지 시기 : 2018년 6월 15일 - 9월 16일 장소 : 파리 7구 Musée de l’Ordre de la Libération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드골 및 레지스탕스 전문 박물관이다. 포스터에도 로렌의 십자가가 떡 하니 박혀 있다.) 사이트 : https://www.ordredelaliberation.fr/fr/actualites/49/exposition 우선 피가로지의 이 사진부터 상당히 강렬함을 말해야겠다. 날짜는 미상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마리 아깡, 속칭 "리아"의 모습이다. 롤라이 카메라와 식민주의자다운 모자를 쓰고 뭔가 고민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 쿠샨 왕조(베르세르크 얘기가 아니다)의 중심부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지역이었고 개중에서도 베그람(쿠샨 왕조의 수도로 추정된다)에서 나온 유물들은, 동서 문화교류의 핵심이자 원천적인 증거다. 바로 그것을 1937년 발견했던 장본인이 바로 그녀였다. 중국과 인도, 그리스, 로마 사이의 교류를 증명해낸 인물이다. 물론 남편인 조제프 아깡도 고고학자였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둘 다 룩셈부르크와 관련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거의 납치에 가까운(...) 결혼이었다. 실제로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서, 남편과의 나이 차이가 29살이나 되기 때문이다. 조제프 아깡은 결혼 당시, 아시아 유물 전문 박물관으로 현재까지 명성이 드높은 기메(Guimet)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였다. 그 스스로가 실존 인물 에밀 기메의 비서이기도 했었다. 조제프 아깡은 참전 용사다. 마른과 베르됭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레종도뇌르까지 받은(참조 1) 그는 2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으로 출동한다(결혼은 1928년에 했다, 참조 2). 탈리반이 2001년 폭파시킨 것으로 유명한 바미얀 석굴을 조사한 것도 그들 부부이고, 위에 언급한 베그람도 마찬가지. 특히 베그람의 발굴단은 마리 아깡이 직접 지휘했었다. 우리 모두 문화교류사에서 그녀에게 빚졌다는 의미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외의 지역을 삽질하고(!) 다녔던 시기가 1929년부터 1940년 사이다. 네 번의 대규모 탐사를 이끌었고,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조제프를 프랑스의 아프가니스탄 고고학 발굴단(참조 3) 단장으로 임명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특히 마리 아깡은 사진은 물론 영상으로(!) 촬영을 하여 문서화시켜 놓았다. 그런데 애국자였던 남편은 물론 부인도 나라에 충성하는 인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조제프는 바로 입대했고, 비시 정부의 자리 제안도 거절했으며, 부인과 함께 드골의 자유프랑스 저항군에 들어간다. 드골처럼 그도 런던에서 라디오 방송도 했고 마리 아깡은 자유프랑스 여성연대로 편입됐다. 그러나 이동 중 1941년 독일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사망. 하지만 부부가 발견한 유물들은 우리의 공백을 상당히 많이 채워줬다(참조 4). ---------- 참조 1. 미술관 사이트의 정보에 따르면, 그는 부상으로 휴양하던 중에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모르고 싶다(...). 2. 사실 마리 아깡은 1905년 독일 치하의 모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룩셈부르크 가정이기는 했다), 프랑스 국적이 학생일 시절에는 없었다. (당시는 여권이라는 개념도 아직 나타나기 전이었음을 알고 계시라.) 따라서... 내 추측은 사랑(?)은 물론 프랑스 국적을 위해서 교수와 결혼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둘의 사랑이 가짜라는 얘기는 아니다. 3. Délégation archéologique française en Afghanistan(DAFA)로서, 아프가니스탄 아마눌라(Amanullah) 국왕의 요청으로 프랑스 정부가 만든 조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에게 점령당한 1982년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2002년! 프랑스 외교부의 주도로 다시금 재개된다. 확실히 식민제국의 움직임은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 4. 가령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가장 좋은 견본이 있겠다. 유리컵들도 마찬가지. Exposition : Ria et Joseph Hackin, découvreurs de l’Alexandrie du Caucase(2018년 8월 28일): https://www.lemonde.fr/arts/article/2018/08/28/exposition-ria-et-joseph-hackin-decouvreurs-de-l-alexandrie-du-caucase_5347047_1655012.html
에곤 실레, 프란체스카 우드먼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전시회, 이번에는 에곤 실레/프란체스카 우드먼이다. 제목 : LIFE IN MOTION: EGON SCHIELE/ FRANCESCA WOODMAN 기간 : 2018년 9월 23일까지 장소 : 영국 리버풀의 테이트 웹사이트 : http://www.tate.org.uk/whats-on/tate-liverpool/exhibition/life-motion-egon-schiele-francesca-woodman 두 사람을 왜 붙였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던 에곤 실레의 부인 이름이 프렌체스카였던가? (아님. Edith였다) 둘의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에곤 실레는 20세기 초반이고, 프란체스카 우드먼은 20세기 후반이다. 그러나 괜히 둘을 붙이지는 않았겠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20대 후반에 사망했고, 죽은 뒤에야 이름을 세상에 떨쳤다. 더 중요한 점은, 둘 다 셀카 세대라는 데에 있다. 1910년에 촬영했던 에곤 실레의 셀카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프란체스카 우드먼 역시 대부분의 사진이 셀카였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있을까? 조숙함과 자기애, 짓궃지만 날카롭게 실험적인 셀카가 그들 작품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작가들이나 찍었던 현대적 개념의 셀카가 이제 대중화됐으니(?) 그 원류를 한 번 되짚어보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장사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다만 에곤 실레는 웨즈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참조 1)”이나 “앗, 이 그림이 클림트/코코슈카가 아니었다니?!”하는 탄식으로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프란체스카 우드먼은 많이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우드먼은 미국 유명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나 재능을... 당대에 인정 못받고 우울증에 뉴욕에서 자살한 슬픈 인생을 살았었다. 여러 사진을 검색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공(?)을 못 했으니) 피사체는 대부분 자신이나 친구들이며, 노출 시간을 늘리거나 일부러 움직임으로써 뭔가 만 레이의 사진스럽게 연출한 작품들이 많다. 게다가 많은 경우 얼굴을 가리거나 흐리게 처리했다. 이게 과연 애로틱한 것일까, 아니면 관객 혹은 관찰자를 드러내는 것일까? 하지만 영원히 자라나지 않았던 어린이로서의 한 켠과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봐버린(참조 2) 성인 여자로서의 다른 한 켠의 갈등은 결코 화해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1980년 10월, 자살 시도 후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1981년 1월, 부모가 잠시 한 눈 판 틈을 타서 투신 자살해버렸다. 물론 에곤 실레의 죽음과는 결이 다르다. 실레는 임신까지 했던 부인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후, 그녀를 따라 자신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례였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들은 부인 스케치였다.) 여러분들 실레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테니 별다른 설명을 하지는 않겠지만, 실레가 했다는 아래 발언은 상당히 되새겨보기 좋은 말이다. “나는 몸 모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립니다.” 우드먼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는 당신들이 안 보는 것, 몸 안의 힘을 보여줄 겁니다.” 이쯤 되면 라이언 맥길리가 상당히 천박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 참조 1. 실레 모작(2014년 4월 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278146354831 2.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적어도 3명의 아트 딜러들이 그녀에게 잠자리를 요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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