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mir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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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nnon, Power To The People The Hits

아들 혼자 숙소에 쉬게해놓고 혼자서 신주쿠 숙소 근처 북오프에서 열심히 중고음반 훑었습니다.
한참을 골랐더니 묵직해졌네요...
음반 고르다가 이런 한국음반도 발견했답니다 미시들의 애창곡 5 ㅋ. BTS 음반도 발견해서 데려왔답니다...

이제부터 한장 한장 데려온 앨범들을 소개해 보려구요. 이 앨범은 존 레논의 70주년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한곡 한곡 정말 주옥같은 곡들로 채워져 있네요.

CD 한장과 DVD 한장으로 구성돼 있더라구요.
오래된 옴니버스 다큐를 보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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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 많이 하셨네요. 신주쿠 가면 가봐야겠어요.
@lara7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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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 스타들의 청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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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로드에 대해
존 레논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비틀스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는 말을 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서양인들이 신으로 여기는 예수를 감히 인간과 같은 급으로 비교한 발언은 신성불가침 영역을 건드린 금기어였다. 예수는 ‘유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찬송가 대신 비틀즈를 흥얼거리게 되었다고 한들, 너의 음악에 영혼을 팔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하듯 욕했을 것이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예수의 흔적을 보기 위해 순례길을 떠나고는 했다. 당시의 순례는 오늘날의 여행처럼 몇 박 몇 일로 예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험한 길을 걷다 보면 여정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이도 많았다. 목적지는 죽은 예수나 성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당이었다. 지친 여행 끝에 도착한 성소에는 예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썩은 나뭇가지나 천 조각이 보관되어 있었다. 낡아빠진 소품 앞에서 그들이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성소 방문이란 동시대 사람들이 단체로 열망하는 집약적인 목표였다는 사실만이 추정 가능한 역사로 남아 있다.     신에 대한 대중적인 열망은 오늘날 ‘셀러브리티’로 불리는 유명인들에게로 옮겨갔다. 경건한 예배당과 비명 소리 가득한 콘서트 장은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이지만, 닿을 수 없는 영역의 대상에 대한 열망에 관해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스타에 대한 추종 심리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식당이나 거리에도 어려 있다.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가 머물렀던 식탁을 유리관에 전시해 놓은 베트남 식당의 의도는 분명하다. 유명인이 강림했던 흔적으로 손님들을 끌어보겠다는 의도가 유난스럽게 전달된다. 같은 인간을 요란하게 떠받드는 방식은 때론 굴욕적이다. 내가 앉은 자리는 일어나자마자 원상복귀 되는데 누군가의 자리는 그대로 보존되다니. 귀족을 모시는 하인 곁에 선 농부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사실 유명세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불행의 조건에 가깝다. 자신을 볼 때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니까. 대신, 죽음이 이르렀을 때. 그동안 괴롭힌 대가를 보상하듯, 만인의 뇌에 그의 이름이 자리할 특실이 마련된다. 이름이 알려진다는 건 그런 일이다. 죽으면 땅 밑에서 사라지는 법인데. 유명한 이름은 누군가의 뇌를 무덤으로 삼는다.     셀러브리티에 대한 부러움은 유치하게도, 유명인이 머물렀던 자리에 앉아 그들이 받았을 시선을 간접 체험해보는 쪽으로 흐른다. 다소 허황된 마음을 벗어나면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선택을 따라해 보고 싶은 계산이 선다. ‘돈 많고 바쁜 사람이 선택한 곳'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삶의 선택권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제 3자’가 주도하는 이 기막힌 심리는 유명인의 ‘영향력’이라고 불리며 온갖 마케팅에 이용되고는 한다.   이 심리는 경매시장에서 살짝 다른 방향으로 틀어 극도로 과열되고는 한다. 몇 만원이면 살 수 있는 화장품이 마릴린 먼로의 것이라는 이유로 몇 천만 원에 팔리는 현상은 그 세계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미스테리다. 경매 시장은 유명인의 손을 닿는 건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동화 속의 왕과 같은 손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틀즈 역시 일찌감치 황금손이 된 케이스다.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야구공은 경매시장에서 1억 원에 팔렸고 조지 해리슨의 기타는 5억 3100만원에 낙찰됐다. 영국의 토마스라는 사람은 앨범 <애비 로드>를 녹음할 당시 비틀즈가 ‘화장지의 질이 억세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이유로 사용을 거부했던 두루마리 화장지를 ‘한 칸에 18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애비로드를 표지로 한 12번째의 앨범 재킷을 찍을 당시, 이미 무명의 신인이 아니었던 멤버들은 금손을 가진 왕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비틀즈가 걷기 전의 ‘애비로드’는 세상에 깔린 횡단보도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도시의 질서를 위해 표시된 획일화된 기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틀즈의 앨범 표지를 장식한 이후, 애비로드는 낭만 어린 역사적 장소로 부상했다. ‘횡단보도를 일렬로 걷는’ 동작은 하나의 문화적인 약호가 되었다. 심슨 패밀리까지 그 패러디 대열에 합류했을 때.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고작’ 횡단보도 위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물론 <애비로드> 표지에는 단순히 비틀즈의 유명세를 입은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예수의 탄생 기점을 중심으로 BC와 AD를 나누는 것처럼, 애비로드를 기준으로 비틀즈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되짚어 보면 <애비로드>를 찍기 한참 전의 데뷔시절이 있다. 데뷔 앨범이자 1집 앨범인 <플리즈 플리즈드 미>에는 세상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진난만한 청년들의 얼굴을 특이하게도 아래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는 순수하고 활기 넘치는 ‘앳된’ 멤버들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반면, <애비로드> 앨범 재킷에는 멤버들의 얼굴을 알리려는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들 카메라 따위는 보지 않고 무심한 시선으로 갈 길을 갈 뿐이다. ‘횡단보도를 일렬로 걷는다.’는 설정 외에는 과한 연출이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심하고 시크 한 표지를 다른 류의 앨범 재킷과 비교해 보면 비로소 우리가 이 사진을 왜 그리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한때 나는 웨스트라이프의 열성팬이었고 그들의 포즈에 미치도록 열광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5초 이상 똑바로 바라보기 있기 힘든 취향이 되었다.(그러나 나는 웨스트라이프를 좋아한다. 문제는 사진이다.) 연출된 각도와 지나친 자의식으로 점철된 이미지는 이들의 앨범에서만 발생하는 재난이 아니다. ‘매력’이란 무기로 승부해야 하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이미지마다 이런 류의 식상한 컨셉은 넘쳐난다. 그들의 내면이 실은 이런 방식을 원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일정한 포즈를 요구하는 사진작가에 의해 억지로 꾸며졌다는 점에서 진실하지도 않다.       <애비로드>가 좋은 점은 멤버들의 자신감이 ‘가짜’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켜세운 어깨와 당당한 보폭. 자신을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자의 의식은 레논의 잔뜩 치켜 올라간 어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차의 질주를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STOP’ 싸인 위에 선 비틀즈는 누구보다 횡단보도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횡단보도는 교통‘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일종의 규칙이다. 기존 질서에 대항하며 문명의 이기를 비판하는 히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비틀즈가 질서와 체계의 상징과도 같은 횡단보도 위를 걷는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다. 아니 어쩌면. 횡단보도는 인간성의 회복을 주장했던 히피 정신에 들어맞는 코드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대량생산체제와 기계화의 대표주자인 자동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재조명한다면, 횡단보도는 초록 신호등 앞에서는 오롯이 인간의 것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위한 방어체계다. 어쩌면 <애비로드>는 휴머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비틀즈의 고도의 인권운동 전략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소문대로. 사이가 틀어진 비틀즈가 오랜 시간 촬영하기에는 피차 껄끄러워 스튜디오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급히 찍은 사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때의 비틀즈는 마치 그들의 실제 관계를 연출에 도입한 듯, 더 이상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다. 한 팀처럼, 동지처럼,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갈 뿐이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뿔뿔이 흩어질 행인들처럼.      어느 날 우리는 서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한 뒤 모두 변했다. 이미 우리는 비틀즈의 삶을 지탱할 수 없었다. 링고스타, 비틀즈 전 멤버  <애비로드> 앨범 발표 후 1년만인 1970년, 4월 9일.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해체를 선언했다. 세월은 흘러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늙었는데 비틀즈의 명성은 그들의 삶과는 별개로 여전하다. 인류의 해마에 들어앉아 아무도 잊어주지 않는 리듬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잡아먹는 포식자가 드문 덕분에 때론 백년을 넘게 사는 거북이처럼. 비틀즈를 집어 삼킬 만 한 건 없다. 최신 곡에 밀려서 사라지는 몇 달 전의 노래 같은 게 아니니까. 최신인기 곡이 비틀즈를 밀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애비로드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애비로드를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중세시대에 마침내 성소에 이르렀던 순례 객처럼,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 평범한 횡단보도에 마침내 다다르게 될 것이다. 
최고의 비틀즈 노래는 무엇?
이제는 정말 지겨울 만큼 이름을 들어온 그룹 비틀즈. 20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니 40대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태어나기 전에 해산을 한 전설적인 밴드로, 단 7년의 기간 동안 13장의 앨범을 발표한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활동을 보인 신화적인 존재, 비틀즈.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알지만 그들의 음악은 예스터데이나 렛잇비 정도만 아는 게 현실이다. 좀 좋아한다는 사람이 베스트 앨범 한 장정도 가지고 있는 정도가 보통인데,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르는 비틀즈의 명곡도 많이 있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짜 비틀즈의 음악만으로 순위를 정한다면 어떤 노래가 최고의 노래일까? 비틀즈의 정규 앨범 13장의 음악을 차트화 해서 저명한 음악잡지 롤링 스톤이 발표 했다. 100위까지 발표 했지만 사정상 Top10만 다뤄보겠다. 10.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라는 투 탑만 생각했던 비틀즈라는 그룹에 조지 해리슨이 각성하면서 만든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은 일대 충격이었다. 비틀즈의 각개전투 앨범 화이트 앨범에 실린 이 곡은 이후 조지 해리슨이라는 인물의 활동에 큰 등불이 되었던 곡이다. 09. Come Together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에 실린 곡. 제목이야 Come Together이고 노래 가사도 같이 하자는 내용 같지만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 08. Let It Be [Abbey Road]보다 먼저 녹음되었지만 그 후에 발매 되어서 비틀즈의 디스코그라피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 [Let It Be]에 실렸던 대표 곡. 국내에서도 비틀즈의 대표곡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07. Hey Jude 68년 발매한 싱글 “Hey Jude”는 당시 발매 되었던 정규 앨범인 화이트 앨범에는 실리지 않은 곡이다. 7분 넘는 대곡이었지만 마지막 인상적인 후렴구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미국에서 무려 9주나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빌보드에서 선정한 올타임 베스트 싱글에서 10위를 차지했다. 폴 메카트니가 작곡한 이 곡은 재미있게도 존 레넌의 아들을 위한 곡이다. 06. Someth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터진 조지 해리슨의 포스는 마지막 앨범 [Abbey Road]에서 유종의 미를 보여주는 곡 “Something”을 만들어냈다. 조지 해리슨 곡 중 최초의 1위 곡이다. 05. In My Life 비틀즈가 아이돌 밴드에서 진정한 음악가로 선언한 앨범 [Rubber Soul]에 실린 곡. 앨범에 실린 곡들 중에 싱글을 발표한 곡이 없지만 한 곡 한 곡 이전 작들에 비해 무게감과 완성도가 높았고 그 중 “In My Life”는 “Norwegian Wood”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트랙이다. 04. Yesterday 설 명 필 요 없 음 03. Strawberry Fields Forever 67년 앨범 [Magical Mystery Tour]에 실렸던 트랙이다. 신은 그들에게 음악을 주고 영화를 빼앗았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OST로 제작된 [Magical Mystery Tour]는 성공했고 영화는 실패했다. 후기 앨범치고는 지명도가 낮은 앨범이지만 곡만큼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02. I Want to Hold Your Hand 63년 발표한 싱글 “ I Want to Hold Your Hand”는 톱10안에 유일하게 들어간 초기 시절의 음악이다. 이건 음악적인 완성도 보다는 비틀즈라는 밴드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라서 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음악적인 무게감면에서는 지금까지 언급된 곡과는 많이 차이를 보인다. 01. A Day in the Life 드디어 나왔다. 비틀즈를 논할 때 그리고 록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최고의 앨범으로 뽑는 1967년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실린 마지막 곡 “A Day in the Life”는 최고의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실리기에는 완벽한 트랙이다. 매우 실험적인 트랙이라 대중성 면에서는 좀 약하지만 음악적인 무게감면에서 지금도 이에 필적할만한 트랙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곡이 다 끝난 다음 맨 안쪽 골에 들어간 효과음의 무한 반복은 CD세대나 디지털 음원 세대는 절대 누릴 수 없는 LP의 영원함이다. [출처] 최고의 비틀즈 노래는 무엇?|작성자 헬로준넷 the source of / Hellojunenet web (KOREA) information web youtube - http://www.youtube.com/hellojunenet blog - http://blog.hellojune.net moremusic - http://www.moremusic.co.kr facebook - http://www.facebook.com/moremusic.co.kr2 HelloJune.Net - http://www.hellojune.net twitter - http://www.twitter.com/hellojunenet
비틀즈가 왜 대중음악계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원탑인지 알아보자
vs글을 좋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국인들에게 '비틀즈 vs ???'는 가끔마다 게시판에 나오는 주제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비틀즈를 넘어서는 대중음악 뮤지션은 그 누구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틀즈라는 이름만 알거나, 비틀즈의 히트곡 몇몇만 알지만, 비틀즈가 왜 그렇게 높은 칭송을 받는지 몰랐던 분들을 위해 조금 알기 쉽게 글을 쓰고자 합니다. 비틀즈가 역대 원탑으로 일컬어지는 세가지 이유입니다. 1. 그 당시 최고의 아이돌 대중음악에서의 의미를 넘어서, 60년대 전체를 대표하는 사건 중에 하나로 비틀즈의 '브리티쉬 인베이젼' 이 있습니다. 1964년 2월 7일, JFK 공항에 나타난 비틀즈의 등장과 함께 대중음악은 대변혁을 겪습니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미국 팝계를 지배하던 로큰롤 스타들은 보수적이던 미국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점점 힘을 잃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목사가 되어버려서 로큰롤을 사탄의 음악이라 하지 않나(리틀 리처드), 미성년자 태우고 주 경계를 넘지 않나(척 베리), 이미지 관리를 위해 군대를 가버리거나(엘비스 프레슬리), 비행기 사고로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등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빅 바퍼) 정상인 상태가 아니였는데, 이 로큰롤의 불씨를 다시 당긴 것이 비틀즈로 시작된 브리티쉬 인베이젼이고, 이는 꺼져가던 록 음악의 불씨를 다시 피운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당시 비틀즈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비틀즈를 보러 수만 명의 미국 팬들이 JFK 공항에 모인 것은 몰론, 그들이 나온 TV 쇼의 전국 시청률은 무려 40%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5위 줄세우기 등 곧 비틀즈는 1964년부터 2년 간 전세계를 투어하며 호령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을 무려 그 비틀즈와 비교하는 것도 그들의 음악 때문이기보다는, 이러한 광적인 인기를 연상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예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탄 노래가 뭐가 좋다고 비틀즈에 비비냐 ㅉㅉㅉ"라는 비판은 핀트가 맞지 않다는 것이죠. 이 당시 비틀즈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더 투어링 이어즈>가 있는데 비틀즈 팬이거나 팝송 팬이면 추천드립니다. 2. 그 당시 최고의 히트곡 메이커 그냥 그 당시 인기만 많았고 지금까지 불러지는 곡들은 적은 케이스의 당대 가수들이 우리나라든 해외에든 몇몇 있지만, 비틀즈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발매된 노래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찾습니다. 지금까지 생명력이 유지되는 곡들은 대부분이 당시 가장 인기를 끌던 로큰롤 스타일보다는 포근하고 조용한 느낌의 팝송입니다. 그래서 비틀즈를 잘 모르는 이들은 비틀즈에게서 발라드 팝 밴드 느낌을 받고는 하죠. 비틀즈 초기의 대표 명곡인 'Yesterday' 후기의 'I will', 'Ob-La-Di, Ob-La-Da', 'All You Need Is Love', 'Hey Jude', 'Let It Be' 등이 비틀즈를 모르는 이들도 아는 명곡이고, 비틀즈를 파다 보면 이 이상의 셀 수 없는 명곡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찾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비틀즈의 명성이죠. 3. 그 당시 최고의 혁신가 (비틀즈가 역대 원탑이며 그 누구와도 비빌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그렇다고 해서 비틀즈가 명곡 몇 개 좀 있고 인기 좀 있던 그 정도 수준의 밴드였냐? 절대 아니올시다입니다. 우리가 비틀즈를 떠올리면 대부분이 먼저 연상하는 모습인 똑같은 머리, 똑같은 정장을 입은 4명은 미국에서 아이돌이 된 비틀즈 초기죠. 그러나 비틀즈가 지금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위처럼 산적같이 머리를 기른 비틀즈 후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가 원탑으로 평가받게 된 이유인 비틀즈 음반의 놀라운 발전 과정을 시대순으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3-1. <Rubber Soul> (1965) 비틀즈의 음악에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건 1965년에 나온 6집 <Rubber Soul>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음반이 그저 2~3분 짜리 곡 여러 개를 묶어 놓기만 한 '곡 모음집'의 개념에 불과했다면, <Rubber Soul>은 이 음반은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작품'으로 진화시킨 최초의 음반으로 평가 받습니다. 미국에서 인기 막 얻고 있던 시기엔 사실 비틀즈의 가사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사랑 노래를 위주로 하던 럭키 씨앤블루(..) 수준의 가사에서 서서히 자전적이거나 문학적인 의미의 다양한 가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Norwegian Wood And when I woke, I was alone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나 혼자뿐이었어 This bird has flown. 귀여운 작은 새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지 So I lit the fire 나는 난로에 불을 지폈어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산 가구, 아주 근사하지 않아요?" (대중음악에 인도 악기(시타르)가 들어간 첫 사례이자, 조지 해리슨을 본격 인도빠로 인도한 곡) Nowhere Man Doesn't have a point of view 그는 이렇다 할 관점도 없고 Knows not where he's going to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지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너와 나와 좀 닮은 것 같지 않아? Nowhere man, please listen 어디에도 없는 자여, 들어봐 You don't know what you're missing 넌 너가 놓치는 게 뭔지 몰라 Nowhere man, The world is at your command 어디에도 없는 자여, 세상은 너의 손에 달렸어 (존 레논이 본인의 심정을 투영해 자아의 성찰을 주제로 작곡한 노래) 이것이 음반 전체의 '주제'로 승화되면서 개별 한 두곡만 찾아서 듣는 것이 아닌, 대중들 사이에서 앨범 전체를 작품으로서 듣게 되는 새로운 경향이 생겼으며, 이 음반에 충격을 받은 많은 뮤지션들이 (대표적인 예로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인데,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 역시 오늘날 최고의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음반의 작품화'에 착수하면서 서양 대중음악은 대변혁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존 레논 인생 최대 어그로인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 발언과 필리핀 가서 독재자 안 빨아줬다고 살해 협박을 받고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 또한 밥 딜런을 만나 서로 약을 졸라 빨면서 (씨잼처럼 가짜는 아니였음) 창작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던 그들은 투어와 앨범 발매로 병행되는 지겨운 일정을 아예 접었고, 인도빠 조지 해리슨은 힌두교로 전향해버립니다. 그리고 4명의 멤버들은 스튜디오에 박혀 온갖 음악적 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3-2. <Revolver> (1966) 그리고 투어를 그만두기 직전 나왔던 7집 <Revolver>부터는 각자 멤버들의 개성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서로 뻗어나갔는데, 존 레논은 사이키델릭과 포크의 결합, 폴 매카트니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 조지 해리슨은 인도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으로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음반으로 어우러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링고 스타는 그냥 드럼을 열심히 쳤... Tomorrow Never Knows Turn off your mind relax and float downstream 몸에 힘을 빼고 마음을 진정 시켜 봐요 It is not dying. It is not dying. 그것은 죽음이 아니에요, 죽음이 아니에요. Lay down all thoughts, surrender to the void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공허함에 몸을 맡겨 봐요. It is shining. It is shining. 그것은 빛나고 있어요, 빛나고 있어요. That you may see the meaning of within 그렇게 하면 그속에 있는 의미를 보게 될지도 몰라요. It is being. It is being. 그것은 존재하고 있어요, 존재하고 있어요. <Revolver>의 대표곡이자 사이키델릭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Tomorrow Never Knows'는 서양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곡으로 뽑히는데, 'Rain', 'I'm Only Sleeping'과 함께 곡을 역방향으로 재생하면 들리는 소리나 메시지를 삽입하는 기술인 백마스킹이 음악 역사상 최초로 쓰인 곡입니다. 그리고 이 기법은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하나의 장르의 탄생을 야기했습니다. 즉, 비틀즈가 이 음반으로 록의 한 장르를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그리고... 3-3.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역대 500대 명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음반. 비틀즈의 이름이 아닌, 앨범과 동명의 밴드가 공연한다는 컨셉의 음반으로,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된 역사상 최초의 '컨셉트 앨범'입니다.  이 음반은 서양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명반인데, 이러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ㄱ. 10대들의 오락에 불과하던 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첫번째 시도이며, 동시에 그러한 시도에 성공했다는 점. ㄴ. 록이 다른 음악들과 만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 ㄷ. 20세기까지의 서양음악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서양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 ㄹ. 비틀즈가 확보했던 대중성에 기초해 위대한 예술이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인 '보편성'을 획득한 첫번째 락 음반이라는 점. A Day In the Life (Lennon) I saw a film today, oh boy 난 오늘 영화 한 편을 봤어, 세상에 The English Army had just won the war 영국 군대가 전쟁에서 이겼고 A crowd of people turned away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지 But I just had to look 그러나 난 그저 지켜보았지 Having read the book 책을 읽으면서 말이야 I'd love to turn you on 당신을 취하게 하고 싶어 (McCartney) Woke up, fell out of bed 잠자리에서 일어나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빗을 찾아 머리를 빗어 Found my way down stairs and drank a cup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을 한 컵 마시고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올려다보니, 내가 늦었다는 걸 깨달았지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외투를 찾고, 모자를 집어들고 나와서 made the bus in seconds flat 빨리 버스에 탔어 Found my way up stairs and had a smoke 위층에 올라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누군가 내게 말을 건냈고 난 꿈에 빠져 들었어 특히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A Day In the Life'은 곡을 완성하지 못하던 존 레논의 멜로디를 폴 매카트니가 아예 다른 멜로디를 붙여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중음악에 40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삽입을 이뤄낸 최초의 시도로, 비틀즈 팬들이 꼽는 최고의 명곡 중 늘 1, 2위를 다툽니다. (아마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분들께서는 퀸의 'Bohemian Rhapsody'에서의 그 전환이 생각날 겁니다.) 3-4. <The Beatles(The White Album)> (1968) 여기서 그 커리어가 끝났어도 이미 원탑 레전드였을텐데, 비틀즈는 1년만에 또 다른 전환을 시도하고, 그것이 맘껏 발현된 음반이 <The Beatles>입니다. 커버부터 화려했던 1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앨범 커버부터가 아무런 바탕도 없이 비틀즈의 영어 표기만 달랑 붙어있는데 화려하고 꽉 찬 느낌과 정반대의 대조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음반은 하나의 주제로 모여있는 <Sgt...>와 달리, 모든 멤버가 제각각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버리는 컨셉이었습니다. 더블 앨범(2CD)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장르를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습니다. 로큰롤, 록, 팝, 하드록, 발라드, 챔버팝, 사이키델릭 록, 블루즈 록, 브라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 포크 록, 재즈, 컨트리, 스카, 펑크, 자장가, 헤비메탈, 아방가르드 등.... 그리고 그 장르들의 대부분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엄청난 가치를 지닙니다. Helter Skelter When I get to the bottom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I go back to the top of the slide 난 정상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 Where I stop and I turn and I go for a ride 떠오르려고 멈추고 돌아서서 가는 거야 Till I get to the bottom and I see you again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널 다시 보겠지 Do you, don't you want me to love you? 너, 넌 내가 널 사랑하길 바라지 않니? I'm coming down fast but I'm miles above you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너보단 훨씬 나아 Tell me, tell me, tell me, come on, tell me the answer 말해줘 말해줘 제발 답을 말해봐 Well, you may be a lover but you ain't no dancer 넌 내 사랑은 받아도 날 즐겁게는 못해주겠지 예를 들어, 이 음반에 들어있는 곡 'Helter Skelter'는 헤비메탈의 시초로 불리고 있으며, 비틀즈를 조용한 팝 음악 곡들로만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록밴드'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곡입니다. Ob-La-Di, Ob-La-Da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되네요. La-la how the life goes on 랄라 인생은 계속된다고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되네요. La-la how the life goes on 랄라 인생은 계속된다고 또한 이 음반에서 가장 분위기가 따로 놀지만 가장 인기를 얻었던 곡 중에 하나인 'Ob-La-Di Ob-La-Da'는 대중음악 최초로 레게 비트와 스카를 차용한 곡입니다. 이렇듯 멤버들이 서로 따로국밥 형식을 한 <The Beatles> 더블 앨범은 멤버 각자의 개성들을 자유롭게 표출해낼 기회가 된 것이고 그 결과로 한계가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사운드와 다양한 정서가 담긴 방대한 더블앨범이 탄생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앨범에는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는 음악색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비틀즈 자신이 전작들에서 선구적으로 정립시켰던 관념을 비틀즈 스스로가 뒤엎는 결과가 된 것이죠. 3-5. <Abbey Road> (1969) 비틀즈 하면 떠오르는 사진 중 하나, 바로 <Abbey Road>의 앨범 커버입니다.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이미 멤버들은 서로 반목에 반목을 거듭해 해체 직전에 있었으며, 저 앨범 커버 역시 본인들 스튜디오 옆에서 촬영한 것으로, 어디 멀리 가기 귀찮고 서로가 싫어지기도 해서 대충 찍은겁니다. 아마 저 횡단 보도를 건너던 순간 멤버들은 아마도 '요코 보고 싶다', '인도 가고 싶다' 같이 딴 생각만 가득했을 겁니다. 그런 최악의 팀워크 아래에서도 비틀즈는 또다시 명반을 만들어냅니다. Come Together He wear no shoeshine he got toe-jam football 빛나는 신발은 신지는 않고, 발가락 묶인(?)축구공을 가지고 있지 He got monkey finger he shoot coca-cola 원숭이 같은 손가락에 코카콜라를 쏘아대 He say "I know you, you know me" 그는 말해 "난 널 알아, 넌 날 알아" One thing I can tell you is you got to be free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Come together right now over me 지금 당장 모여서 내게로 와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해가 떠올라요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해가 떠오르며, 난 좋다고 말하죠 Little darling, It’s  a long cold lonely winter 귀여운 내 사랑, 춥고 외로운 겨울이였어요 Little darling, It feels like years since it’s been here 귀여운 내 사랑, 겨울이 몇 년처럼 느껴져요 1년 후에 나온 마지막 정규 앨범 <Let It Be>보다 더 늦게 녹음된 이 음반은 레논-매카트니에 가려져 있던 조지 해리슨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앨범 후반부에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폴 매카트니의 메들리, 그리고 대중음악 최초의 히든 트랙 삽입까지 이전의 음반에 뒤지지 않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녔던, 비틀즈 최후의 스완송이며 아름다운 마무리였습니다. 이렇게 비틀즈가 무려 13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매년마다 진화해오고 대중음악의 선두에 서있었던 채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8년. 그리고 비틀즈 결성 전과 비틀즈 해체 직후까지의 대중음악 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들의 머리스타일 변화만큼이나 그야말로 땅과 하늘의 차이입니다. 로큰롤에 불과했던 밴드 사운드를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진정한 '록 음악'으로 발전시킨 기여자이며, 그로 인해 팝 음악의 발전에도 엄청난 기여를 한 뮤지션. 그 뜻은 지금의 모든 장르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비틀즈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즈는 다른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긴글 3줄 요약 1. 비틀즈 인기 쩔었음 2. 비틀즈 히트곡도 쩔었음 3. 비틀즈는 매우매우 혁신적이었음 출처ㅣ락싸
15.06.26
어제 먹은 삼겹살 냄새가 아직, 옷에 배었습니다. 돼지 시체의 살점이 기름에 지글지글 타들어간 냄새죠. 군대에 있을 때 살아있는 오리를 직접 잡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장교들이 던져준 오리를 그들에게 요리해 바치기 위해서.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목을 비틀기 위해, 목을 칼로 날리기 위해 그야말로 생난리를 쳤죠. 결국, 차마 산 오리의 목을 비틀진 못하고, 대신 목을 줄로 묶은 채 나무에 한동안 걸어두었습니다. 퍼덕거리던 오리는 한참 후 축 늘어져 있게 됩니다. 어지간해서 손에서 푸드득거리는 짐승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요리한 오리고기를 제가 먹었을까요? 네, 몇 점 먹었습니다. 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습니다. 이제 가끔, 저는 제가 먹을 닭을 직접 잡고 싶습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싶습니다. 식욕이 떨어지는 일인가요? 네. 당연하죠. 전 현재 우리의 식욕이 끔찍할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해요. 좀 줄여야죠. 그렇게 하면 사회에 팽배한, 또 우리가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조금은 천박하다고 할 수 있을 그런 감각들을 덜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타인에게 위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본주의는 어쩌면 타인에게 죽음을 위탁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의 성공이란 자기 손에 묻혀야 했을 피를 남의 손에 떠넘기는 자들의 것이 아닌지. 도축을 하는 이가 따로 있고 고기를 먹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전쟁에서 피 흘리고 죽어가는 이가 따로 있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생명 경시 풍조는 죽음 경시 풍조라는 말로 바꿔도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제대로 배우면 생명의 존엄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겠죠. 혀 끝의 감각을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전쟁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누군가를 고문하는 일이 국가 안보를 위한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야만성을 잃은 인간은 어쩌면 야만인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john lennon imagine https://youtu.be/XLgYAHHkPFs
90년대생들 급식 시절 듣던 락 밴드들.song
작성자 락 입문하게 만든 밴드 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 Green Day 'American Idiot' Linkin Park  'Faint' Muse 'Time Is Running Out' Avril Lavigne 'Sk8er Boi' Sum 41 'The Hell Song' Arctic Monkeys 'I Bet You Look Good On The Dancefloor' Coldplay 'Viva La Vida' Blur 'Song2' Oasis 'Don't Look Back In Anger' Yellowcard 'Ocean Avenue' Radiohead 'Creep' 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Boys Like Girls 'The Great Escape' Hoobastank 'The Reason' Paramore 'Misery Business' Simple Plan 'Take My Hand' 30 Seconds To Mars 'Closer To The Edge' Snow Patrol 'Chasing Cars' Ellegarden 'Make A Wish' L'Arc~en~Ciel 'Driver's High(GTO OST)' Gorillaz 'Feel Good Inc.' All Time Low 'Dear Maria, Count Me In' Nickelback 'How You Remind Me' Daughtry 'It's Not Over' The Red Jumpsuit Apparatus 'Face Down' Good Charlotte 'The Anthem' The Smashing Pumpkins '1979' Marilyn Manson 'Sweet Dreams' Slipknot 'Psychosocial' The Offspring 'The Kids Aren't Alright' Panic! At The Disco 'I Write Sins Not Tragedies' Fall Out Boy 'Sugar We're Goin Down' Keane 'Somewhere Only We Know' Sugar Cult 'Memory' Foo Fighters 'The Pretender' The Killers 'Mr.Brightside' The Calling 'Wherever You Will Go' The Starting Line 'The Best Of Me' 더 쓰라면 더 쓸 수 있는데 굉장히 마이너 해질 수 있어서 유명했던 밴드들이랑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밴드만 써봤습니다 ㅎㅎ 한창 학교 다니던 2000년대 이전에 발매됐던 밴드 노래들도 찾아서 들어보는 맛에 살았던 것 같네요 ㅋㅋ 출처ㅣ도탁스 와 - 아직도 듣는 노래들도 있고, 오랜만에 보는 노래도 많네요 *_* 앨범 커버만 봐도 노래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마법 ! 저는 저 시대의 감성이 너 - 무 - 좋아요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