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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로 대표되는 장기간의 혼란기가 저물어 가던 기원전 4세기, 당시 유라시아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대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불세출의 정복군주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의 등장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의 군사 강국들을 시작으로 이집트, 페르시아 등 당대의 대국들을 모조리 깨부수며 남아시아까지 진출, 대제국을 건설하고 오늘날 헬레니즘 문화라고 불리는 그리스풍 문화를 전파해 훗날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대이동으로 그리스 문화 뿐만 아니라 역방향의 전파도 이루어지게 되는데, 제국의 관리를 위해 그리스계 이주민들이 제국 각지에 흩어지게 되면서 그리스인들 역시 전세계의 문화를 접하고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세계의 넓음을 깨닫고 새로운 문화에 감명을 받은 그리스 여행자들이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의 여러 절경과 랜드마크가 알려지게 된다. 이를 최초로 모아 정리한 기원전 2세기 시인 안티파트로스는 세계의 명물 중에서도 7개의 건축물을 최고로 소개했다. "나는 전차들이 그 옆을 따라 경주를 할 법한 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과, 알페우스 강변의 제우스를 목도하였다. 공중정원과, 태양의 거상과, 장대한 인공산이라 할 만한 높다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구름에 닿을 만큼 우뚝 서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전당을 보았을 때, 이 모두가 그 그늘에 가려졌으니, 태양마저 올림푸스 밖에서 그와 견줄만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기원전 4000년경 부터 이어져 온 세계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바빌론은 기원전 그야말로 세계의 수도라고 불릴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한 후에도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대도시 중 하나로 손 꼽히던 바빌론은 이후 헬레니즘 제국의 수도로 대접받았다. 당시 압도적인 존재감의 바빌론은 바빌로니아에게 핍박받던 유대인들에게 제대로 찍혀 구약 성경에서 멸망해야 할 죄악의 도시로 온갖 저주와 디스를 당하기도 할 정도였으며 도시의 중심인 에테멘앙키 신전이 후일 야훼의 분노를 사는 바벨탑으로 각색된 바도 있다. 그 위용에 걸맞게 바빌론에는 7대 불가사의가 2개나 존재한다. 그 위에서 전차가 달릴 수 있다고 언급된 바빌론의 성벽은 놀랍도록 거대한 규모로 도시를 감싸고 있었으며 특히 가장 거대한 '이슈타르의 문'과 그 앞 개선로인 '행진의 거리'는 아름다운 외양으로도 유명했다. 청금석으로 화려한 푸른 장식을 두르고 용과 사자, 황소 장식이 늘어서 있었다. 또 하나의 불가사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 앞서 본 바벨탑과 성벽을 모두 건설한 장본인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기원전 7세기 아내를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층 식물원이다. 왕비 아미티스는 초목이 우거진 고원지대였던 메디아에서 정략 결혼을 온 이후 황량한 바빌론에 적응하지 못해 향수병을 앓았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한 선물이었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수차와 유사한 방법으로 고층까지 물을 공급했다고 추정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건물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고. 현재 터키에 위치한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는 정교하고 거대하기로 유명한 무덤으로 오늘날에도 마우솔레움이라는 단어가 영묘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한 변의 길이가 125m에 달하는 정사각형 기단의 무덤이었다. 기원전 4세기 이 지방의 통치자였던 마우솔로스와 부인이 안치되었고 11~14세기 지진으로 파괴되어 이슬람 세력이나 십자군에게 석재를 털렸다고 한다. 무덤의 주인장은 대충 이렇게 생겼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은 기원전 5세기 제우스 신전에 바쳐진 신상으로 상아로 마감한 뒤 금과 흑단으로 치장한 12m 높이의 거상이다. 보는 사람들을 모두 압도하는 위용이 있었다고 하며 신전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했으나 4세기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후 수십년 뒤 화재로 소실되었고 신전 역시 로마가 기독교를 채택하며 파괴되었다. 로도스의 청동 거상은 콜로서스라는 단어를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태양신 헬리오스에게 승전 기념물로 봉해진 30미터가 넘는 동상이다. 기원전 3세기 로도스 섬 항구의 랜드마크였으나 56년만에 지진으로 쓰러지고 800년 후 이슬람 우마이야 제국이 뜯어내 유대 상인들에게 고철로 팔아버렸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안티파트로스가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최고로 뽑은 건물으로 무려 올림푸스에 견줄 정도로 찬양을 한걸 보니 상당한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자그마치 3번이나 다시 지어졌는데 그 중 두번째 건물은 웬 고대 관종이 병신짓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불을 질러 태워먹었다. 청동기 시절부터 존재했고 3세기 경 고트족에게 털리는 등 수난을 겪다가 역시 기독교화 된 로마에 의해 5세기에 폐쇄된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불가사의로 아이러니하게도 불가사의 중 가장 먼저 만들어져 최후까지 살아남았다. 높이 138.5미터에 외부 석회암과 금 도장이 남아있던 시절에는 146m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정말 경이적인 높이로 157m의 쾰른 대성당이 600년 만에 완공되기 전까지 3800년 동안 인류 문명의 가장 높은 건축물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26세기에 지어져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던 당시에도 2000년이 넘은 고대 유적으로서 외화 벌이의 주력 관광 상품이었다. 안티파트로스에 의해 선정된 초대 불가사의 이후 가끔 멤버의 변동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리아 파로스의 등대가 유명하다. 안티파트로스 입장에서는 워낙 자주 보던 건물이라 익숙해서 선정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던데 아무튼 130m의 높이에 300개의 방을 가지고 있었고 43km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밝아 후대에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자주 뽑히고는 한다. 벼락이나 지진으로 자주 고생하다가 마침내 14세기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콜로세움은 서기 1세기에 완공된 건물으로 짬이 딸리는 편이라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부 후대 기록에 선정되는 경우가 있다. 5만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경기장으로 공사를 기념하며 선배 불가사의들을 모조리 디스하는 행사시가 유명하다. 이건 좀 길어서 걍 나무위키 가서 보도록 하자 그 외에도 동 시대에 존재한 거대 건축물로는 마야 엘 미라도르의 라 단타 피라미드나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릉 등이 있었지만 아무리 그리스 여행자들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했기에 불가사의는 지중해와 중동에서만 선정되었다. 싱글벙글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2차대전 당시 광기와 학살에 맞선 10명의 의인들
오스카 쉰들러 이 분야 최고 네임드. 흔히 선한 인간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나 실상은 부패한 기업인이자 외도를 일삼고 나치독일을 위해 간첩질까지 했던 기회주의자였다. 사실 나치독일은 협조적인 기업인, 쉰들러에게 강제노역 자원으로 유대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래 공짜 노동자로 유대인을 이용해먹으려던 쉰들러는 점차 유대인을 보호해주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아예 유대인들을 집단으로 빼돌려 학살로부터 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게슈타포에게 대량의 뇌물을 먹였고, 유대인을 살릴 음식과 물자를 암시장을 통해 몇 배나 비싼 값에 사야했으며 전쟁 말엽에는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유대인 보호에 소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전쟁 이후 사업 실패까지 겹쳐 파산, 설상가상으로 심장병에 걸린다. 이때 그가 살려주었던 1200명의 유대인들이 쉰들러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댔으며 오스카 쉰들러는 1974년 사망 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묻혔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에 묻힌 유일한 나치 당원 출신이다. 소사 멘데스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 주재하고 있던 포르투갈의 외교관. 포르투갈은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유럽최강이 되어가던 독일의 환심을 사고자 했고 독일의 침공을 피해 오는 난민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프랑스 내 유대인, 집시, 반파시즘 지지자 등은 여전히 중립국인 포르투갈로 도주하고자 했다. 이에 본국의 명령인지, 양심인지 고민하던 멘데스는 결국 양심의 손을 들기로 결정. 72시간동안 밤을 새워 미친듯이 비자를 찍어냈고 그 비자를 받아 포르투갈로 도주에 성공, 목숨을 구한 이들이 3만명에 이르렀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멘데스는 책임을 지고 파면조치되었고 명예는 사라지고, 돈도 없는 궁핍한 여생을 살다가 1954년에 죽었다. 그의 명예는 1988년이 되어서야 포르투갈 정부에 의해 회복된다. 하인트 지크프리트 하이드리히(우측) 사진의 두 소년은 우애가 깊었던 하이드리히 형제로, 모두 독일의 군인이었다. 형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무뚝뚝한 성격이었으나 동생과 조카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전쟁 중 체코 망명정부와 영국정부에게 암살당했고 형의 유품을 정리하던 동생 지그프리트는 형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된다. 사실 라인하르트는 게슈타포를 만들어 민간인 사찰 및 학살을 일삼고 힘러와 함께 홀로코스트를 주동한 인물로, 그야말로 인간 백정이었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지그프리트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형의 죄를 속죄하고자 유대인 구출을 시작한다. 그는 유대인둘의 신분증을 위조해 탈출시키거나 수용소에서 빼돌려 중립국에 풀어줬다. 그러나 2년째 이 작업을 하던 1944년, 지그프리트는 게슈타포가 자신을 수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리고 체포와 대한 두려움과, 고문으로 유대인들의 정보를 털어놓게 될 것을 우려해 그는 권총으로 자살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종전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게슈타포의 수사는 단지 사소한 문제로 인한 것이었을 뿐 지그프리트가 유대인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라울 발렌베리 스웨덴의 외교관. 1944년, 히틀러는 나치독일과 동맹은 맺었으나 비협조적이었던 헝가리 정권을 갈아치웠고 이에 헝가리의 유대인들이 그대로 학살 위기에 내몰렸다. 발렌베리는 이때 스웨덴 대사관의 이름으로 2만명의 유대인들에게 가짜 서류와 비자를 발급했고 사비까지 털어가며 1만 3천 명의 유대인들에게 은신처를 마련, 더 나아가서는 독일군을 협박해 7만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추가로 구했다. 이는 발렌베리의 가문이 유럽 제일의 재벌 가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치독일은 발렌베리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헝가리는 소련에게 점령되면서 독일군은 퇴각하게 된다. 하지만 1945년, 유대인 문제를 논의하고자 소련군을 찾아간 발렌베리는 실종됐고 현재까지도 명확한 그의 행방을 알 수 없다. 가장 유력한 설은 그를 스파이 취급한 소련에게 끌려가 감옥에 갇혔다가 1947년에 처형당했다는 설로, 스웨덴 정부도 이 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욘 라베 중일 전쟁 당시 독일의 재벌 기업 지멘스의 중국 담당 간부. 그는 나치당에 가입한 나치 당원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나치의 본격적인 전쟁 및 확장 이전이었고, 더군다나 독일 본토를 떠나 회사의 해외지부 생활 30년 째였던 욘 라베에게 히틀러는 힘들었던 조국의 경제를 살리고 1차대전 패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도자였으리라 추측된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무차별 학살을 시작하자 욘 라베는 자신이 평생동안 모은 재산을 모조리 털어 안전지대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 안전지대는 어떤 울타리도 없이 그냥 도로가 경계였고 욘 라베와 그를 도운 외국인들은 온몸으로 일본군의 안전지대 진입을 막아야 했다. 이조차도 욘 라베가 일본의 동맹국인 독일시민이자 나치당원이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안전지대까지 위태로워지자 그는 히틀러에게 편지를 써 학살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독일은 중일전쟁 이전까지는 중국과 우호적이었으며, 적어도 그에게만큼은 히틀러는 합리적인 지도자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동맹국 지도자의 압력이면 이 미친 학살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데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독일 본국은 그의 편지를 당연히 묵살했다. 종국에는 일부 일본군이 안전지대까지 뚫고 들어와 학살과 강간을 일삼았지만 결국 욘 라베는 20~30만이 죽은 난징 학살의 현장에서 20만에 달하는 목숨을 구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귀국 후 동맹국 군사작전 방해를 이유로 게슈타포에 체포되었고 종전 후에는 나치 당원이었다는 이유로 연합국에 체포, 난징에서의 일과 재판으로 전재산을 날렸다. 욘 라베가 가족 부양마저도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는 소식을 들은 난징 시민들은 2차대전 때 도시가 초토화되고 이어진 국공내전으로 재건도 못하던 1948년, 돈과 물자를 긁어모아 욘 라베에게 전달했지만 당시 중국 경제가 너무도 어려워 큰 지원은 못됐다. 결국 1950년, 욘 라베는 여전히 가난한 생활 속에서 사망하였다. 1997년 그의 묘지는 난징으로 이장되었고, 현재 난징에는 그가 살던 집이 기념관으로 남아있다. 허펑산 오스트라아에 주재하고 있던 중화민국의 외교관.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유대인들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그들을 구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은 내륙국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은 탈출을 위해 반드시 다른 나라를 경유해야 했는데, 어떤 나라도 그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내 32개 대사관이 모조리 유대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있을 무렵 허펑산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 당시 중국 상하이는 국제 조계지라 비자 발급에 어떠한 조건도 필요가 없었다. 이를 간파한 허펑산은 오스트리아 내 유대인들이 상하이를 거칠 수 있는 서류들을 찍어내기 시작한다. 나치 독일은 즉시 중화민국 영사관 건물을 박탈, 허펑산을 탄압하려 했으나 그는 근처 임대아파트에 숨어서 계속해서 서류를 발행했다. 결국 독일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중화민국이 그를 강제 송환하기까지 그는 4천 명의 유대인들이 상하이를 거처 호주나 홍콩 등지로 도망칠 수 있도록 하였다. 본국으로 송환 당한 허펑산은 크게 질책 당했지만 이후 중국과 전쟁 중이던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 하고, 독일도 미국에 선전포고 하면서 어찌됐건 적을 엿먹인 셈이라 계속해서 외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는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밀려난 이후에도 외교관으로 일했고 199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조르조 페를라스카 이 이탈리아인은 인생 자체가 다이나믹했다. 젊은 시절 뼈 속까지 파시스트였던 그는 무솔리니를 맹신하며 따랐다. 심지어 외국, 스페인의 내전에까지 파시스트로 참전했으며 거기서도 미친놈처럼 싸웠다. 얼마나 광신적이었는지 후일 스페인의 독재자가 되는 프랑코를 직접 만나 "귀하는 이태리인이지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스페인 사람으로 대우하겠다."는 서류를 받을 정도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귀국한 이후에는 또 2차대전에 참전, 헝가리에서 이탈리아 군으로 복무했다. 그러나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그의 인생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무솔리니는 거꾸로 메달려 처형당했고, 헝가리는 연합군에 항복한 이탈리아의 군인들을 구금했다. 이에 페를라스카는 탈옥을 감행, 즉시 스페인 대사관으로 뛰어갔고 위에서 언급된, 프랑코에게 받은 서류를 내밀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그에게 스페인 대사는 함께 유대인을 구출하자고 제안했고 학살에는 반대하는 파시스트였던 페를라스카가 이를 승낙한다. 그는 스페인 사람으로 위장, 곳곳에서 유대인을 빼돌린 후 돌봐줬고 심지어 아이히만이 보는 앞에서 유대인을 빼돌린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라울 발렌베리와도 협력했던 그는 소련이 헝가리를 해방시키자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그는 40년 간 지인, 친구, 가족 등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않았다. 1987년이 되어서야 은혜를 갚고자 그를 수소문하던 유대인들에 의해 행적이 알려졌고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이스라엘 등으로부터 훈장을 받으며 세계의 영웅이 됐다. 이후 1992년 82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알베르트 괴링 나치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의 친동생이다. 이 형제는 오늘날에도 대표적인 역사의 아이러니로 꼽힌다. 형은 나치당 창설 초반부터 참여, 나치독일의 기틀을 만들고 이끈 2인자였으나 동생은 처음부터 나치의 폭력성을 혐오하는 반나치주의자였다. 그는 2차대전 이전부터 반나치 운동을 하고 반나치 인사들을 국외로 빼돌렸다. 2차대전 발발 이후엔 형의 배경을 이용, 나치독일의 군수공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이 공장들을 이용해 유대인들을 노동자로 쓴다는 명목으로 빼돌렸다. 심지어 유대인들의 파업을 독려, 생산도 제대로 안했으며 체코의 레지스탕스들을 지원하고 소련군 포로들도 수용소에서 빼내 중립국에 풀어줬다. 너무 대놓고 반나치였던만큼 몇 번씩이나 체포되었지만 그때마다 형의 이름을 팔아 풀려나거나, 심지어 형인 헤르만 괴링이 직접 구해주기도 했다. 헤르만 괴링은 알게 모르게 동생의 이러한 행동을 도우며 동생을 보호했다. 전후 형이 전범으로 체포되자 이번엔 자신이 형을 구하고자 형이 자신을 도왔음을 근거로 필사적으로 구명했지만 결국 헤르만 괴링은 사형을 선고, 면회에서 만난 동생에게 "가족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이때 알베르트 괴링은 굉장히 슬퍼했다고 한다. 전후 '괴링'이라는 이름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음에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지 않았다. 홀몸임에도(혼외 자식이 있었지만 41년 전사) 결혼하지 않고 형의 가족을 돌봐주었다. 또 그는 자신이 전쟁 중 한 행동을 알려 유명세를 타려고 하지도 않았다. 1966년, 남편이 죽으면 아내에게 남편의 연금이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는 힘들었던 자신 곁을 수년 간 지켜준 가정부와 혼인신고를 하고 일주일 뒤 병사했다. 빌헬름 호젠펠트 나치 독일의 군인. 초반에는 나치를 옹호하고 지지했으나 반유대주의, 반가톨릭 정책에 실망했다. 이어 폴란드에 부임한 그는 나치가 폴란드에서 저지르는 학살을 목도하며 경악했고 사상적 전향을 하게 된다. 그는 폴란드어를 배워 폴란드인 포로들과 소통했다. 또 직권으로 포로들이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인간답게 대우했다. 나아가 수감된 폴란드인들을 형기보다 빨리 내보냈으며 자신이 부임하는 곳마다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위조 신분증을 주고 고용해 학살로부터 지켰다. 그는 나치독일 정부에 공식적으로 학살을 멈추라며 반항하기도 했다. 또 호젠펠트는 전쟁 막판 한 폴란드계 유대인을 살려주는데 그 사람이 영화 피아니스트로 각색되는 이야기의 주인공, 불라덱 슈필만이었다. 그러나 호젠펠트의 최후는 오늘 다루는 그 어떤 이들보다 잔혹했다. 그는 폴란드에 들어온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포로수용소장이었으며,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선 온갖 범죄들이 행해졌으니까. 그가 구해준 유대인, 폴란드인들이 떼지어 호젠펠트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탄원했으나 사형을 25년 형으로 감형받는데 그쳤고, 소련은 그를 가두고 고문했다. 너무 심한 고문에 뇌졸증을 여러 번 겪던 그는 종국에는 지능도 7세 수준으로 퇴화, 자신이 왜 고문받는지도 모르는 채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진 호젠펠트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슈필만에 의해 재조명됐고 10년에 걸친 조사 끝에 아무런 죄가 없는 것으로 판명, 2009년 훈장이 추서되고 명예가 회복됐다. 니콜라스 윈턴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은행원이었다. 그는 휴가로 스위스에 갔다가 친구가 보여준 나치독일의 체코의 수용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자신도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친구들과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외국의 유대인 아이들을 입양해 독일로부터 구하는 인도적 운동이 한창이었다. 윈턴은 이를 이용해 체코에서 유대인 아이들을 빼내 영국에 입양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재산을 털어 경비를 마련했고, 나치 장교들에게 뇌물을 먹였다. 결국 그는 여러 번의 위기 끝에 669명의 아이들을 입양보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위태로워 마지막으로 250명을 입양보내기로 하고 모든 절차를 밟은 뒤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그에게 들려온 소식은 기차를 나치독일이 강탈, 250명의 아이들이 실종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전쟁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250명 중 전후 생존한 유대인은 2명 뿐이었다. 이들을 구하지 못한데 엄청난 죄책감에 짖눌린 윈턴은 자신이 한 일들을 발설하지 않았다. 1988년이 되어서야 그의 아내가 창고에서 아이들의 목록을 발견하였고 윈턴은 이것도 태워버리려고 했지만 아내가 설득해 그의 선행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구한 669명의 아이들은 6천명의 가족으로 불어나있었고 감동적인 재회 후 윈턴은 기사작위를 수여받았으며 106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을 자다가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 참 잘된 일이지만, 호젠펠트와 비교하면 뒷맛이 좀 씁쓸하기도 하다. 싱글벙글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독일차 브랜드들은 나치독일 시절 어떠했을지 알아보자
너무도 익숙한 엠블럼들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나치독일 시절 어떠했을지 대략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BMW FW190 전투기의 엔진 제작 바이에른 엔진 제작소로 시작한 기업이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군납이 확 꼬라박자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업까지 늘렸음 벤츠 군용트럭과 군용승용차 그리고 전차까지 만들어 납품 군용트럭은 벤츠LG3000 군용승용차는 벤츠170vk 전차는 3호전차임 또한 마이바흐는 독일전차엔진 거의 전부를 만듦 포르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를 필두로 독일군이 운용한 거의 대부분의 군용차 설계를 했고 전차 또한 납품했는데 짤에 있는 전차는 박사의 이름을 딴 페르디난트 구축전차임 오펠 군용차 납품 짤은 오펠 블리츠 폭스바겐 군용차 납품 짤은 퀴벨바겐 아우디 군용차량 납품 짤은 반더러w11 마지막으로 폭스바겐을 한번 더 언급하겠다 당시 나치 독일은 아우토반을 건설했고 마이카 시대를 열어 전국민에 차를 타고 독일전국을 돌길 희망했다 그러므로 저렴한 차량의 보급이 절실했으며 당시 히틀러는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승용차 디자인초안을 만든다 그게 바로 이것이다 디자인 초안대로 만들어진 소형목업을 관찰하는 히틀러 좌측에 소형목업의 트렁크 부분을 만지며 설명하는분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다 바로 이 차량이 폭스바겐 비틀이다 폭스바겐 자동차공장 기공식을 열어 연설하는 히틀러 비틀 컨버터블에 시승해보는 히틀러 역시 그 옆에는 페르디난트 포르쉐박사가 있다 나치 그 자체 ㅎㄷㄷㄷ 그...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ㄷㄷㄷ 자동차갤러리 니짜님 펌
추악한 진실을 가리고 막느라 악을 쓰는 나라~ 일본이 유일함
사이코패스와 극우정당(국힘,자민당)의 공통점 1. 기본적으로 똑똑함 :범죄숨기고 왜곡 및 가스라이팅하느라 당연히 똑똑해야지 2. 피해자에게 일말의 반성이나 연민이 없음 3. 본인이 잘못한것을 역으로 남에게 뒤집어씌움 :안그러면 자기범죄를 입증하는것이 되므로 필수적임 극우기준으로 -역사공부하라 -시대착오적임 -반일선동하지마 (국민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정신인데도 나쁜것으로 몰아감, 정작 친일선동은 본인주특기아닌가) -이재명은 사이코패스 (누가 누구를 나무라는지 모르겠음) -악을쓰는나라, 한국이 유일함 (마찬가지로 국가가 발전하려면 독종이 되야함,악을 써야함 이런데도 비꼬다니 기가 막힐 따름) 4.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빈틈을 보이면 지독할정도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져서 적을 빈사상태로 만듬 (본인한테 피해입히지않도록 하기위해 관심사를 돌리는건 추악한 자의 장기, 바보가 아니라면 줄줄이 나올텐데?) → 이 정도로 썩어있는데도 일본이 철도깔아줬다고 이지랄하고 있음, 애매한 죽창가,오부치만 계속해서 무한반복중 왜냐? 공산당때려잡아야 하니까~ 뇌속에는 멸공만 가득함 약자의아픔과 민생경제? 그딴거몰라 오직 사회주의만 조진다 이거야 지배하기쉽게 노인들 세뇌시켜서 지역감정 부추겨야지 왜? 돈벌려면 투기해야하거든~ 그래야 자손대대로 먹고살지 혹시 의혹생기면 모르쇠로 일관해야지 룰루랄라~^^ 바보같은 국민들 그걸또 지지하네 ㅋㅋㅋ (국민의힘 정치인 보고있나?) 난 이런 댓글을 보수극우채널에 집중적으로 올린다 모든 극우세력알바가 판을 치는 이 마당에 추악한 세력이 득세하고 있으니 늦었는데도 이런 댓글을 올리는 이유는 내가 안하면 찬란한 조국이 무너질것 같아서 지키려는 마음일것이다 일어나라 뭉쳐 싸웁시다 우리는 중도정파다
3월 21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3/03/21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당대회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가 종료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과 동반 하락하면서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이 우경화가 되긴 한 거지… 저 정도밖에 안 빠지는 거 보면~ 2.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 "임금 및 휴가 등 보상체계에 대한 불안이 없도록 확실한 담보 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최근 ‘주 69시간 노동’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지시로 해석됩니다. 지가 싸놓은 x을 왜 남 탓하듯 저러는지…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야~ 3. 이재명 대표는 "정부가 임기 5년 동안 국익에 피해를 입히는 결정을 함부로 할 권한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국회가 강력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국가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는 바라지도 않아요. 제발 쪽팔리게나 하지 말길~ 4. 주호영 원내대표는 “181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내년 4월 선거에서 폭망 할 것"이라며 민주당과 야권을 겨냥했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국민들이 민주당이 하는 방식을 거부하겠다는 확고한 표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걸 소망하는 양반이 하는 말인 걸 보면 잘하고 있다는 얘기 임. 걱정 말어~ 5. 김재원 최고위원은 "하루빨리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 이하로 개정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맞다”고 밝혔습니다. 헌법에서 200인 이상으로 한단 의미는 200명에서 299명까지 상정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는 주장입니다. 당선만 된다면 조상 묘도 판다는 분이 교회 장로라며? 회개 기도는 했니? 6. 정진석 의원이 “국민이 일본이 좀 더 성의 있는 사과를 하길 바라는 점을 이해하지만 일본도 노력을 한다”면서 일본을 두둔했습니다. 그러면서 “제발 좀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일본을 대하자”고 말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게 당당한 건데? 국민의힘처럼 알아서 기고 막 그러는 거? 7. 유승민 전 의원이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외교가 성공적이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어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황으로 전도시켜 놓고 이것을 외교적 성공이라 자랑하니 어이가 없다는 비판입니다. ‘호텔 직원과 공항 직원이 박수를 쳤다’고 자랑하던데… 그걸 자랑이라고~ 8. 최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전문가들 “윤석열 정부가 대일 외교 ‘레드라인’ 모두 허물어 버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판결을 부정한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매국노 이완용이 웃는다”는 구호가 좋아서 웃는다는 걸로 알지도 몰라~ 9.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이번 주 중 기소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주당의 '당헌 80조' 논란도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을 때 당직을 정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항입니다. ‘선당후사’를 얘기하려면 먼저 당을 위해 단합하는 모습 좀 보여 줘야지~ 10. 전국 역사교사들은 ‘제3자 배상안’의 굴욕적인 배상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내 최대 역사교사 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우리나라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자고로 국민 이기는 정권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꼭 확인하고 싶더냐~ 11.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는 24일로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군으로 돌아온 지 1년을 맞게 됩니다. 박 전 대통령의 잠행이 길어지며 보수의 성지가 될 것으로 점쳐졌던 사저는 찾는 이도 없이 적막함만 감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하던데… 무슨 낯으로 얼굴을 내민다는 건지… 12. '한명숙 사건' 모해위증 혐의로 공수처의 소환조사를 받은 임은정 부장검사가 자신의 저서 '계속 가보겠습니다' 일본어판 출간 사실을 전했습니다. 임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는데”라며 걱정했습니다. 여기서 모자란 지지율 일본 가서 채우려는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13. 술은 암 발생과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공인된 물질이지만, 국민 10명 중 7명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담배가 발암 물질이라고 알고 있다는 88.5%인 반면 술은 33.5%만이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기시다와 폭탄주 말아 먹은 게 발암 물질 먹이려고 한 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14. 2천 원 안팎이던 배달비가 최근 5~6천 원, 심할 경우 1만 원까지 치솟으면서 배달 음식을 아예 끊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배달앱 사용자가 18.5% 줄어들었는데,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입니다. 배달 전문 식당 위생도 문제고, 건강 삼아 살살 걸어 갔다 오는 게 좋아요~ 15. CU가 1+1행사의 매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행사 상품 중 1+1 상품의 매출 비중이 10%p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물가 인상이 본격화된 2022년부터 29.0%까지 올라선 반면 2+1 상품은 감소 추세라고 합니다. 사는 게 얼마나 폭폭 한지, 2+1도 선뜻 손이 안 간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10명 중 8∼9명은 마스크 착용 “아직은 쓰는 게 편해”. 이재명 "일본의 독도 언급, 사실이면 헌법상 책임 지적". 권성동 “나라 망친 문 전 대통령, 민주당 ‘섭정’ 노릇”. 민주, '굴욕외교' 윤 정부 공세 집중, 진상규명도 추진. 윤, 긍정 36.8%·부정 60.4% 영남·고령층·보수층 이탈. 대통령실, 쏟아진 비판에 작심 대응 "큰 판 읽어 달라". 기시다, 위안부 이행 요구 일본 보도에 대통령실, 진화 총력. 기시다, 오는 5월 히로사마 G7에 윤 대통령 정식 초청. 사체유기 산부인과 의사 “면허 재발급해달라” 소송 패소. 쿠팡 고객 개인정보 46만 건 유출, 해킹 누리집에서 거래. 인생은 거울과 같으니, 비친 것을 밖에서 들여다보기보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살펴야 한다. - 월리 페이머스 아모스 - 누구보다 윤석열과 내년 총선에 민주당의 폭망을 걱정해 주던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는 국제 행복의 날로 우리나라 행복 지수가 150여 개국 중 57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행복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쵸? 류효상 올림.
최근 몇년 간 그것이 알고 싶다 인상 깊었던 편들 추천.jpg
1062회 흔적 없는 증발 -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 그것이 알고 싶다를 조금 봤다고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인상깊은 미스테리한 사건.  신혼부부가 실종되었는데 나가는 장면은 찍혀있지 않는 이상한 사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남편의 전 여자친구.  1068회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 최근 영화 <다음 소희>의 모티브가 된 회차. 초반에 어떻게 사망하게 된 지의 추리가 상당히 긴데 지금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게 되면 조금 길다고 느껴질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듯 함.  1076회 열여덟 계단 밑 백골, 덕성 63 - 부평 콘크리트 암매장 사건 :백골 시신이 콘크리트에 암매장 된 채 발견된 사건. 용의자를 찾는 과정이 상당히 인상깊은 사건.  1077회 아침의 살인자 - 배산 여대생 피살 사건 미스터리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 돋았던 편 중에 한 편임. 유명한 회차 중에 한 편. 선입견에 대한 생각을 뒤집었던 회차.  1090회 DNA와 단추의 증언 - 미입주 아파트 살인사건 미스터리 많은 사람들이 교수를 용의자로 추측하고 있는 데 이 회차를 전체적으로 보면 사건 자체가 미스테리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인상깊었던 회차. 1134회 빨간 대문집의 비극 - 고 허은정 양 납치살인사건 : 유일한 목격자인 할아버지가 사건 이후 몇달만에 돌아가셨던게 안타까워서 기억남는 회차. 상당히 잔인했던 내용이라 기억에 남는 회차. 1154회 드레스룸의 마지막 메세지 - 전주 20대 여성 사망 미스터리 : 피해자가 일란성 쌍둥이 중 한명인데 아이가 이모를 보고 울음을 터트린게 너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남. 길게 얘기하긴 그렇지만 남편의 행동에 석연치 않은게 한두가지가 아님. 안타깝게도 무죄 판결.  (시체가 나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 - 나왔다면 정정 부탁할게)  1160회 새벽 4시의 울음소리 - 마지막 목격자는 누구인가? :정나리씨의 실종 사건. 이 사건이 기억 남는 이유가 그알 측에서 제보를 받았는데 피해자가 살던 원룸 근처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측되는 루이비통의 가방을 주웠다는 여성의 제보가 있었음. 진품에다가 싫증 나서 버릴 제품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말에 수사 증거물로 이관됨.  1162회 그 남자의 매니큐어 -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그알이 아니고도 다른 여러 방송에서 많이 다뤘던 사건. 16년만에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 사건 5일 전 납치당할뻔하다가 탈출한 사람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인상깊었던 회차. 유력 용의자가 자살을 함.  1169회 실종 3년의 비밀 - 사라진 신혼부부와 노르웨이의 여인 처음에 소개한 부산 신혼부부 살인사건의 연장선상 방송. 유력 용의자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까지 직접 방문하였으나 재판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용의자는 한국에 오지 않음.  1173회 사라진 손목, 잘려진 손톱 - 영동 여고생 살인사건 경찰의 빡치는 반응 때문에 더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 잊어버리기에 급급하고 덮어버리기에 급급한 모습들에 분노했던 사건. (2014년 방송 연장선상 방송)   1186회 오후 2시의 미스터리 - 양산 여학생 실종 미스터리 오후라는 대낮에 2명이나 실종되어 기억에 남는 사건. 부산에서 앵벌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두 사람이랑 비슷한 제보를 받게 되어 앵벌이 쪽으로 깊게 타고 들었지만 크나큰 소득은 없었음.  1190회 그날의 접촉 - 부산 농수로 살인사건 <아침의 살인자>편 이후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편. '즉시성 시강' 이라는 상태가 피해자한테 왔는데 너무 긴장해서 힘을 강하게 주다가 사망한 현상. 강제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후 공포끝에 강한 힘을 주다가 그 자세 그대로 세상을 떠나신게 안타까웠던 회차. 경찰들이 끝까지 추적할거라는 의지를 나타낸 회차.  1195회 컴퓨터 로그기록의 비밀 - 수의대생 이윤희는 어디로 사라졌나 여러모로 미스테리가 많았던 회차. 사람들이 끔찍한 결론을 추측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 추측이 맞는거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공포스러운 회차.  1212회 사라진 엄마와 마지막 고객 - 자동차 영업사원 윤남희 씨 실종 사건 엄마가 실종되고 나서 이모가 육아를 도맡아했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아주세요' 라는 동화책을 이모에게 자주 읽어달라고 해서 이모(님)이 많이 속상해했던게 기억남는 회차. 성인으로 성장한 아들도 어머니에 대한 모든 흔적을 남기고 싶어 이 편을 DVD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던 회차임. 시신 없는 살인 사건.  1242회 아라뱃길 살인사건 미스터리 - 범인은 무엇을 숨기려 했나 치아치료까지 할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왜 찾는 사람도 없을까. 아니면 범인이 살아있다고 숨기면서 사는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게하고 마지막즈음이었나 아리랑이 나오는데 그렇게 구슬플수가 없음.  1248회 단칸방의 유령들 사건은 아니고 복지제도 등에 대해 너무나 참담함을 많이 느꼈음. 우리나라는 진짜 이런 복지제도 면에서는 아직도 후진국임. 발전이 없음. 그리고 뒷북이야. 그런면에서 너무나도 슬펐던 회차. 그렇다고 복지담당자들만 탓하기는 너무 힘들었던 일.. 결국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인원과 예산을 확충해야 함.  1271회 다락방의 침입자들 -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진실 어머니를 지켜주겠다던 아들인데 옛 아버지에게 참혹하게 살해되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회차임. 범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으로 신변보호를 요청했는데도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 비상호출용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으나 실수로 지급이 늦어졌고 그 스마트워치를 받기 전에 살해 당하고 만 것. 분노할 수밖에 없었음.  1281회 나비약과 뼈말라족 걸그룹 등 여자연예인의 지나친 마름을 동경해 프로아나 등 나비약 등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고발한 회차. 문제는 방송에 나온 병원이 방송 후 더 사람이 많아졌다는(...) 그러라고 한 방송이 아닐텐데.  1293회 악마의 이상한 선택 - 막대기 살인사건 미스터리 내가 알고 있는 살인사건 중 상당히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살해함. 그냥 영상을 보는 것인데도 상당히 고통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주로 어리거나 아랫사람에게 폭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음.  1324회 고발과 증발 - 마지막 통화 미스터리 가스라이팅이 의심되는 실종 사건. 울고 웃다가를 반복해서 그녀의 조울증이 의심되었던 회차. 유력한 용의자가 있지만 물증이 없다고 함.  1325회 공포의 하얀 차 - 연쇄 성폭행범 김근식의 출소 최근 성폭행범 중에 가장 기사화가 많이 됐던 성폭행범. 당시 인천에서 하얀 승합차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게 유명했던 이유가 이 사건 때문. 오직 아동과 청소년만을 노렸던 끔찍한 성폭행범.  1341회 1216호에 갇힌 진실 - 정다금 사망 사건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 회차 중 화제가 된 사건.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고 이 사건은 싸이월드 전성기 시절부터 유명했던 사건이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편. 가해자로 추측되는 4명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정다금씨가 어떻게 사망한 건지 아무도 모를 듯한 사건. 
은근 잘못 알려진 역사 상식들
300명으로 페르시아와 맞다이뜬 스파르타 - 스파트라인 300명 포함 연합군 총병력은 7천명이였음 예수가 태어난 해부터 기원후 1년 - 예수가 태어난 해가 기준은 맞는데 측정 오류로 실제로는 기워전 7~2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 최영 장군의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 최영이 한말이 아니라 최영 아빠가 한말임 당나라 군대 - X밥 아님. 쇠퇴기에 약해지는건 다른나라도 마찬가지 홍길동전의 홍길동 - 허구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임 의자왕 - 삼천궁녀는 실존하지 않았음, 그리고 의자왕의 의자는 시호가 아니라 이름임 한신이 조나라를 상대할때 배수진을 쳐서 죽기살기로 싸워 승리 - 배수진은 미끼였고 별동대로 빈집털이해 승리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 실제로는 도시락이 아닌 물통 폭탄을 던졌음 선조 때 처음 등장한 거북선 - 태종 때 처음 등장함 목숨걸고 한반도에 목화를 처음 들여온 문익점 - 목화 자체는 이전부터 한반도에도 있었고 밀수해온것도 아님 바보 온달 - 바보 아님 고구려 세운 동명왕 - 동명왕은 부여의 시조임 귀주대첩 강감찬 - 무신이 아니고 공부만 존나 한 문신임, 귀주대첩 당시 받은 무관직도 임시로 받은거 대동여지도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화 - 실제로는 김정호가 국가 지시로 만들었고 실측했다는 기록도 없고 감옥 가지도 않았음 주초위왕 -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며 중종실록에도 등장안함 클레오파트라 - 이집트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임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바이킹족의 이미지 - 실제로는 깔끔하게 면도하고 다님 싱글벙글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