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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시간을 파는 상점' / 김선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제목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 제목 하나에서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갈까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모르고 읽기 시작했지만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었는데 필자가 항상 청소년 문학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왠지 모르게 청소년 문학에는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이 소설도 필자가 처음 상상했던 방향과는 달랐지만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에는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주인공 백온조는 소방관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둘이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생인 온조는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시급에 대해 생각하던 온조는 아예 자신의 시간을 파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게 된다. 온조 자신의 시간을 이용해 의뢰자가 원하는 부탁을 들어주는 상점이다. 거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1. 자신의 능력 이상은 거절할 것.
2. 옳지 않은 일은 절대 접수하지 않을 것.
3. 의뢰인에게 마음이든 뭐든 조금의 위로라도 줄 수 있는 일을 선택할 것.
4. 무엇보다 시간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것.

이상의 네가지 원칙을 가지고 시간을 파는 상점은 운영하게 된 온조는 여러 의뢰자들의 부탁을 받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며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점점 깊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악플, 주변인의 시선, 이것이 도덕적으로 맞는 일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 등 여러 가지가 겹치며 상점의 운영에 위기를 겪게 되는 온조가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사실 필자가 처음 생각했던 소설의 내용은 실제로 시간을 파는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내용이었다. 누군가가 바꾸고 싶은 과거의 시간을 다시 팔거나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이들에게 추가적인 시간을 팔거나 하는 상점의 이야기를 생각했다.(물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를 테고 그 대가가 소설의 주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바탕을 둔 소설이었다. 주인공 온조가 직접 자신의 시간을 팔아 의뢰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기도 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 소설은 시간이라는 심오한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이란 건 누구에게나 한정되어 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하루에 24시간 밖에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시간의 가치는 같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닌 사람이 있고 24시간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24시간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혜지라는 아이를 보면 엄마와 아빠의 실에 묶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동화를 쓰고 싶지만 결사 반대하는 부모님 밑에서 하기 싫은 공부를 하루 종일 해야하는 그 아이는 부모님의 감시 아래 친구도 본인 마음대로 만들지 못한다. 그런 아이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쓰지 못하는 아이에게 시간이란 그저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현대의 청소년들 중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본인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시간을 올바로 쓰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부모님과 어른들의 의무가 아닐까.

강토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가진 치유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혼자 쓸쓸하게 돌아가신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찾아뵙지도 않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유학 비용을 돌려내라는 소송을 청구한 할아버지. 그 사이에서 어린 강토는 씻지 못할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끼리 서로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란 끔찍할 테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쓰라릴 것만 같던 상처도 아물어 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간의 날 선 감정도 서서히 무뎌져 간다. 결국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다시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서는.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간을 통한 치유를 겪어보았을 것이다. 정말 다시는 얼굴도 보고싶지 않던 가족이나 친구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이 옅어지듯이 시간이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따뜻한 소설이다. 인물들 하나하나가 통통 튀고 시간에 대해 인물들의 입을 통해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시간이란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특히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만큼 독자들의 학창시절을 생각나게 하고 이는 저절로 독자들의 시간을 과거로 되감아 마음이 따뜻해지도록 만든다. 삶이 조금 버거울 때 읽어보면 좋은 소설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게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강토에게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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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소설의 제목이 매우 감각적이다. 그에 끌려 열어본 책 속에는 생각보다 훨씬 철학적인 질문들이 문학의 틀 속에 담겨 있었다. 스위스 베른의 김나지움에서 고전 문헌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 그는 몇십년 동안 변함없이 8시 15분전에 출근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8시 15분 전에 출근하던 그의 앞에 처음 보는 여자가 나타난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가 자살을 하려는 듯한 모습에 몸을 던져 이를 막은 그레고리우스. 그 여성은 갑자기 사인펜을 꺼내 그의 이마에 전화번호를 적는다."죄송해요. 이 번호를 잊어버리면 안되는데 종이가 없어요." 뭔지모를 묘한 느낌에 휩싸인 그가 여자에게 모국어를 묻자 그녀가 말했다. "포르투게스." 그 단어의 울림에 잠긴 그는 수업을 하다 말고 책을 놓고 교실에서 나온다. 갑자기 찾아온 단조로운 삶에 대한 혼란. 그는 고서점에서 포르투갈어로 된 책,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사람이 쓴 '언어의 연금술사'를 손에 넣게 되고 그 책에 매료된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흔적을 찾기 위해 무턱대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은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도 결국 리스본으로 향한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족적을 찾기 위해.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난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와 함께 저항운동을 하던 주앙 에사, 그의 여동생들인 아드리아나와 멜로디, 그의 어릴 적 친구였던 조르지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대인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 마지막으로 그의 어릴적부터의 여인 마리아 주앙까지. 그 삶의 흔적을 쫓던 그는 여러 가지 철학적 질문과 마주한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 남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과연 같은가? 다르다면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한 타인의 행동과 삶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면, 그 이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다른가. 이 수많은 질문들에 그레고리우스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의사이자 저항운동가이자 작가이자 불운한 천재였던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생을 추적해나간다. 필자가 이 소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질문은 남이 보는 자신과 내가 보는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 그 중 진실에 가까운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이 나도 모르는 진짜 나의 모습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봤을 때 느끼는 괴리감이 바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인간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자신을 파악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그 또한 인간다운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분명히 진정한 나는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내기 위해 사유하고 행동하고 분석하는 것은 수많은 동물들 중 오로지 인간이란 존재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리스본에서의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변한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몇 십년 동안의 단조로운 삶을 버리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 그는 다시 한 번 베른을 떠나 철학적인 여행을 하게 될까 아니면 이전과 같은 베른에서의 단조로운 삶을 이어가게 될까.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간에 그의 삶은 이미 달라졌다. 리스본으로의 여행이 가져온 그의 생각의 변화는 이미 그레고리우스라는 사람을 변화시켰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살더라도 생각이 달라진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결말이었다. 솔직히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많이 어려운 책이었다. 작가가 어떤 것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반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많았다. 현대의 대중 소설들에 비하면 흡입력이나 재미도 약간은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문장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겨있는 평소에 해보지 못한 묵직한 철학적 질문들이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문장이 예술적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은유와 상징들이 담겨있다.) 한 번쯤 삶의 의미와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주관적인 별점 : 4.0개 (개인적으로는 소설은 일단 흡입력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리 높진 않지만, 이 소설이 묻는 철학적 질문들의 무게와 문장의 아름다움은 도저히 이보다 낮은 별점을 줄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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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개인적으로 김영하 작가님을 알쓸신잡에서 보고 알게 된 후 그 분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이 소설은 최근에 영화로도 나와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번 주말에 시간이 나서 집어들고는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짤막한 문단들이 툭툭 떨어져 내리는 듯한 소설이라 호흡이 짧고 문장이 명료해 금방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담겨있는 의미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김병수는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45살이 되던 해 사고를 당해 뇌에 손상이 가면서 살인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죽인 여자의 딸 은희를 자신의 딸처럼 여기며 그저 평범한 수의사로 살아간다. 그러다 70세가 되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 주인공의 동네에서 갑작스럽게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동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던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박주태의 눈을 보고 김병수는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임을 직감한다. 그 이후 김병수의 주변에 부자연스럽게 계속 출몰하던 박주태. 설상가상으로 김병수의 딸 은희가 자신이 만나고 있는 남자라며 박주태를 김병수에게 소개시킨다. 김병수는 박주태가 자신의 딸 은희를 다음 타겟으로 삼았다고 생각하며 은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박주태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하지만 알츠하이머의 벽에 가로막혀 번번히 실패하며 불안감만이 계속해서 커져간다. 은희를 지키기 위해 25년만에 다시 살인을 저지르려는 과거의 연쇄살인마 김병수와 은희를 노리는 현재의 연쇄살인마 박주태 간의 대결이 주된 내용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 마지막 부분에서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고 말았다. 김영하 작가님의 손이 꽤 매웠다. 어느 정도의 반전이 있을 거라는 상상은 했지만 그걸 뛰어넘는 결말을 접하고는 멍해 있다가 처음부터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비로소 놓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단순한 두 연쇄살인범의 대결이 아니라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의 자세한 해석에 대해서는 더 다루지 않겠다. 이미 많은 해석들이 나와있고 책의 뒷부분에 권희철 문학평론가님이 써주신 해설만 보아도 충분히 자세하고 세심하게 설명이 되어있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책 속에 계속해서 인용되는 반야심경의 한 부분인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라는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김영하 작가님의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김영하 작가님을 알게 된 게 비교적 최근이라 '살인자의 기억법'과 '오직 두 사람' 이라는 소설집, 이렇게 두 권 밖에 못 읽긴 했지만 이 두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두 소설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는데 이야기의 문단 사이사이에 의도적 공백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사이사이에 비어있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나 연결이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는데 그 부분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공백임에도 글이 써있는 것 같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느낌? '살인자의 기억법'의 경우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만큼 문단 사이사이 이야기의 도약이 큰 이유가 설명이 되지만 필자의 경우 '오직 두 사람'에서도 비슷한 문단간의 이야기의 갑작스런 도약이 느껴졌다. 그렇게 이야기 사이사이에 설명되지 않은 공백이 있음에도 그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문맥상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읽힌다는 것은 김영하 작가님의 뛰어난 문장력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로 쓰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마치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독자를 자연스럽게 이해시킬 수 있다니. 소설을 쓰고 싶지만 매번 부족한 문장력과 서사력에 무릎을 꿇고 마는 필자에게는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다시 한 번 김영하 작가님의 생각의 그릇과 뛰어난 문장력, 이야기 전개 능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생각보다 더 깊고 중요한 철학적 물음을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소설 자체가 흡입력이 있고 술술 읽힌다.(사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철학적 의미 같은 것을 모르고 읽더라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한다. 소설을 잘 읽고 잘못 읽는 게 어디 있겠는가. 독자 한명한명마다 감상이 다르고 해석이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다. 철학적 해석이 궁금하면 그냥 해설 찾아보는게 빠르다. 이 책은 책 뒤에도 친절히 실려있고 말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두 연쇄살인범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감상한다고 생각하고 읽어보길 권한다. 읽어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차고 넘치는 소설이니. 주관적인 별점 : 4.8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을 들으면서 읽었는데 묘하게 잘 어울린다. 성악가들의 합창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움과 두 개의 악, 연쇄살인범들의 대결이 어우러지면서 기묘하게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하나.)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같은 시간에 올리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더 편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GongdaeBR/
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
'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 / 임선경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필자는 이 소설을 밤의 고속버스 안에서 읽었다. 마지막에 연이 엄마, 정순, 숙이 엄마 셋이 문방구집 아줌마와 드잡이질을 하는 걸 보고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아, 연이는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럭무럭 사랑을 배우며 자라나겠구나. 그래서 연이 엄마가 마음 놓고 연이의 곁을 떠날 때, 나도 마음 놓고 책을 덮을 수 있었다.(사실 후반부에는 눈물이 나서 훌쩍대며 읽었다.) 이 소설은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연이의 엄마의 눈으로 1970년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그 뒷세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지만 그때의 정서는 아직 1970년대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필자의 경험에 빗대어 이 소설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집 앞에 나가면 언제나 같이 깡통차기를 할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 옆의 정자에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항상 할머니가 비닐 위에 말려놓은 빨간 고추가 있었다. 그 고추는 무슨 맛일까 궁금했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잘 산다는 아이의 집 책장에는 소년소녀 세계명작이나 위인전집이 1번부터 순서대로 쭉 꽂혀있었고 가끔 책 방문 판매원이 오면 엄마는 항상 주스를 한 잔씩 드렸었다. 소설 속에서 언뜻언뜻 필자의 어린 시절을 찾을 때마다 점점 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좋았던 점은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어린 시절 필자의 주변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숙이 엄마처럼 목소리 크고 드센 아줌마도 있었고 희철이처럼 괜히 주변 사람에게 짓궂게 굴고, 문방구에서 도둑질하다 걸리던 아이도 있었다. 숙이 아빠처럼 물건을 척척 고쳐주는 아저씨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저씨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책을 방문 판매하는 기석이나 딸 낳았다고 며느리를 타박하는 미호댁, 반에서 잘 사는 공주님 같은 소영이와 사별한 남자와 재혼한 정순,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다가 아빠가 재혼하면서 다시 아빠와 새엄마와 살게 된 연이까지.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필자의 어린 시절 어디선가 보았고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에 빠져들지 않고 버틸까.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인데. 연이 엄마는 연이에게 못해준 것, 엄마로서 부족했던 것만 기억에 남아 죽고도 연이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귀신인 연이 엄마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피 흘리는 기괴한 모습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귀신들이 너는 그다지 대단한 원한도 없고 이유도 없으면서 뭔데 이 이승에 붙어있느냐고 따질까 봐 그렇다. 연이 엄마가 마음 놓고 이승을 떠나기에는 연이 주변에 온통 연이를 못살게 구는 사람뿐이다. 연이의 새엄마 정순은 물론이고 주인집 숙이 엄마도 왠지 연이를 못마땅해하며 희철이는 연이를 무시한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연이의 아빠, 사람 좋은 기석에게 연이를 맡기고 떠나기에는 기석도 그다지 미덥지 않다. 그래서 연이 엄마는 연이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도 연이는 혼자 씩씩하게 살아간다. 어느새 글도 혼자 깨우쳐 읽을 줄 알게 되었고 혼자서 잠도 잘 자며 자신의 엄마는 죽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희철이가 무시해도 혼자 마당에서 사방치기를 하며 놀고 학교 입학식 날에도 일어서서 선생님 이름 석 자를 읽었다. 그런 씩씩한 연이를 보면서도 연이 엄마는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연이가 길을 잃고 만다. 오후반 학교를 땡땡이치고 뒷산에 올라가 놀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산에서 내려오니 처음 보는 동네였다. 영영 집을 못 찾을 뻔한 연이를 연이 엄마가 물 없는 우물에 사는 노파 귀신에게 애원해 큰 길가로 데려가자 마법처럼 희철이가 나타났다. "야, 홍연!" 내내 연이를 찾아다녔는지 먼지 투성이다. 그 뒤를 이어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웃옷 자락을 펄럭이며 숙이 아빠가 나타나 연이를 업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는 숙이 엄마도, 찬이를 업은 정순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가 연이가 들어오자마자 정순이 달려들어 연이를 껴안고 숙이 엄마는 아이고, 관세음보살을 외친다. 기석은 넥타이가 풀어헤쳐진 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들어와 연이를 감싸 안은 찬이를 업은 정순을 감싸 안고 희철이와 희철이의 엄마, 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연이를 무시하던 희철이도, 연이와는 이야기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숙이 아빠도, 연이를 못마땅해하던 숙이 엄마도, 아직 연이에게 진짜 엄마 노릇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만 같던 정순도, 정순과 연이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있던 기석도 연이가 사라진 순간 정신없이 모두 함께 연이를 찾는다. 그 시절에는 그런 어디서 생겨난 건지 알 수 없는 연대가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서로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일이 해결되면 마치 자기 일이 해결된 듯 기뻐하곤 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연대가 그때에는 있었다.  그제야 연이 엄마는 마음을 놓는다. 사라진 연이를 애타게 찾아주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연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깨달은 연이 엄마는 드디어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떠나는 연이 엄마와 함께 독자도 연이에 대한 걱정을 놓고 책을 덮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말은 투박하고 따뜻했다. 참 좋은 소설이다. 이렇게 빠져들어서 읽었던 소설이 얼마만이고 또 읽으면서 눈물이 나왔던 소설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자신 안의 어린아이를 찾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픈 소설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진심으로 울고 진심으로 화내는 이 엄마들에게 고마웠다. 희숙이 엄마, 찬이 엄마가 그냥 나처럼 느껴졌다.
선을 넘었다, '기생충'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됐네요. 곧 종강이니까 방학하고 나면 바로바로 후기를 쓰겠죠? 제가? 본 영화는 꽤 있는데도 많이 밀려있네요 포스팅이,바쁘더라도 분발하겠습니다. 오늘의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 '기생충'입니다. 이미 개봉 전부터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죠. 그런데 칸 영화제에서 최고수상의 영예까지 얻었으니 인기는 날개를 달은 격입니다. 비록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포스팅을 미루고 있던 저지만 이번만큼은 영화 보자마자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후기를 씁니다. 본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어마무시한 여운을 가진 작품입니다.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영화를 묘사하자면 양극화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는 양극화라는 사회문제를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표현했는데요. 문제는 이러한 묘사가 과연 어디까지 허구일까 가늠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중간층을 제외하고 상하위 소수의 입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확실히 정도를 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블랙코미디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소름 돋게 영화 자체가 사실일 수 있겠다 싶더군요. 그 정도로 작품은 평범한 소재를 전혀 평범하지 않게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신의 분수에 대하여 영화는 잔혹합니다. 미장센적으로도 치명적이나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잔혹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목 '기생충'에서도 느껴지지만 숙주에게 몰래 붙어 기를 빨아먹고 사는 벌레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하지만 기생충에 입장에서 이러한 행동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숙주의 입장에서는 굳이 누군가에게 기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생충이 굳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들을 벌레라고 치부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가지자고 말하는 걸까요? 영화를 보고 온 저라도 확실히 단정짓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선을 넘을 필요가 없는 인간들 반대로 기생충으로 묘사되는 인간과 달리 사실과는 멀리 떨어져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언제나 양극은 존재하기에 극빈곤의 삶이 있다면 부유한 상류의 삶도 존재하겠죠. 충분히 부유한 사람들은 기생충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영화에서는 '선을 넘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이는 공사를 구분하는 선도 맞지만 이면적으로는 자신의 분수와 주제의 선을 말하기도 합니다. 기생충이 숙주가 되려고 마음먹지만 선을 넘는 순간 스스로를 갉아먹고 다른 기생충들과 충돌하여 전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잔인하게도 이 선에 대해 단호합니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부유한 사람들이 멍청할 정도로 순수한 모습으로 묘사되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생충은 숙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사는 세상이 달랐습니다. 모든 사건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언뜻 명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또한 생존을 위한 법칙일 뿐입니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오히려 실망과 좌절의 반복을 맛 보게 됩니다. 이미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패배의식은 그들의 선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입니다. 언제나 실패하지 않고 제대로 흘러가는 계획이란 사실 무계획에서 출발한다는 엉뚱한 발상은 피식 웃음 짓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스스로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무결점의 무계획으로 인해 더 큰 사고로 번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무계획이 당연히 정답은 아니지만 그들의 선택지는 무계획이라는 하나의 선지 밖에 없었고 선을 넘으면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멈추지 않는 악순환에,그들은 그저 갇혀있는 기생충이었습니다. 돌이나 기생충이나 작품은 그들을 묘사하는 대상을 기생충에 한정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선물용 돌에 신경이 쓰였는데요. 후반부에 강에 다른 돌들과 선물용 돌이 함께 있게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선물용 돌도 그저 평범한 돌일 뿐인데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평범한 돌일 뿐인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말 특별한 힘을 갖고 있게끔 착각하게 만들죠. 하지만 그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돌은 돌이고 기생충은 기생충일 뿐 다른 존재를 흉내내고 쫓으려 한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냄새로, 또 누군가는 용도로, 다른 누군가는 생김새로 그 본질을 제자리에 돌려놓게 만듭니다. 영화는 사필귀정의 원칙에 따라 모든 것들은 각자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들만의 모스부호 영화는 철저히 그들은 인간과 다른 어떠한 다른 존재로 인식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기생충, 다르게는 돌이나 여하 다른 존재들로 말입니다. 그 증거로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모스부호입니다. 자세히 보면 상류층들은 모스부호를 인지하지도 않으며 관심도 없습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살짝 넣습니다만, 그렇다고 내용이나 결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말이 아닌 부호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상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발악을 하지만 결국 살기 위해 인간이기를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며 그들은 무엇이 되어가고 있나 혼란스럽게 합니다. 존경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 같은 부류지만 서로가 서로의 포식자인 셈임을 교묘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영화를 자세히 보시고 해설을 보신다면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을 피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의 생각일 뿐이고 다른 분들과 의견이 다를지 모릅니다만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 됐습니다. 결말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결말에 대해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열렸는지 닫혔는지 애매하거든요. 저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전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죠. 과연 그는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점이 논란의 대상입니다. 꿈을 이룬 후의 회상일 수도 있지만, 망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현실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하겠죠. 저는 후자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영화의 성격상 그들의 선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올라오기에는 너무 깊이 내려갔습니다. 후반부는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입니다. 곡성에서의 소름을 또 한 번 겪었습니다. 쿠키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시간 동안 긴 여운에 빨리 일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어딜봐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정말 현실이라면 너무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르를 총 망라해 평범한 소재를 얘기한 봉준호 감독은 정말 보면 볼 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감히 말하기를 올해의 영화입니다. 기준이 후한 편이지만 혼자나마 호들갑 좀 떨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도 언제든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기생충'이었습니다.
데드 하트
'데드 하트' / 더글라스 케네디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빅픽쳐는 물론이고 템테이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파리5구의 여인, 비트레이얼까지 늘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에 읽은 데드 하트도 흥미진진했다.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의 특징은 술술 읽히는 가독성과 빠른 스토리 진행, 그로 인해 지루할 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인데(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특징이다.) 데드 하트도 고스란히 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개성의 주인공들과 스토리 전개가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서 늘 재미있는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데드 하트의 주인공인 닉은 지방 신문사를 전전하며 먹고사는 기자다. 특이한 점은 10년이 넘는 기자 경력에도 대형 신문사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고 소규모 지역 신문사들, 그것도 한 신문사당 2~3년 간격으로 옮겨가며 취직을 한다는 것이다. 보스턴의 신문사로 직장을 옮기려던 닉은 우연히 호주의 지도를 보고 아무것도 없는 야생의 땅, 호주로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호주의 최북단 다윈에서부터 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닉은 앤지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살던 마을로 납치당한다. 앤지가 약을 투여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강제 결혼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감금생활을 하게 되는 닉. 앤지가 사는 울라누프라는 마을은 호주 지도에도 없는, 네 가족이 마을 구성원의 전부인 마을이고 그곳에서 앤지의 아빠인 대디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황무지 한가운데, 마을을 가장한 감옥에 갇힌 닉은 그 구성원 안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크리스탈과 함께 마을을 탈출하기로 한다. 처음 황무지를 횡단하는 닉의 모습은 힘들고 피곤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롭다. 그런 스토리는 앤지를 만나 납치당해 울라누프라는 마을에 당도하게 되면서 스릴러로 바뀐다. 그때부터 급격하게 진행되는 닉의 탈출을 위한 처절한 노력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항상 느끼지만 이 작가는 빠른 서사 진행으로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이 그리 얇지도 않은데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고, 되는대로, 자신이 편한 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었던 닉은 울라누프에서 탈출을 시도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낭비해왔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하루하루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이 감시당하며 사는 울라누프에서의 시간이 닉에게 탈출과 삶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불태우도록 만든 것이다. 인간이란 참 미련하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모든 자유와 의지를 박탈당한 그때에야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카뮈의 이방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뫼르소가 죽기 직전에서야 삶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한껏 터트린 가까스로 울라누프를 탈출해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닉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드 하트를 한 줄로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빠져 정신없이 읽고 나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마침내 나는 나의 고독, 나의 뿌리가 없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동네책방 | 남산이 보이는 해방촌 골목의 책방, 별책부록
뜻밖의 별책부록을 발견할 것 같은 곳 남산이 보이는 해방촌 골목에서 발견한 동네책방 | 별책부록 남산이 보이는 골목에서 발견한 작고 하얗던 서점을 발견했다. 겨울에 유난히 하얗게 보이던 서점, 별책부록 서점을 처음 봤을 때부터 눈길이 갔던 것은 별책부록 간판이다. 깨끗하고 소박한 느낌마저 주는 심플함이다. "별책부록은 책을 파는 곳이에요. 대형 서점과는 다르게 소규모 출판 책, 문화 예술과 관련된 책과 단행본 위주의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 별책부록 매니저 차승현님 별책부록 차승현 대표는 별책부록을 시작하기 전, 작은 서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1세대 독립 출판 업계에서 몸담았던 경험이 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문화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곳 같은 ‘독립 서점’의 모습이 기존의 ‘책’에서 기능과 폭을 넓힌 곳이라고 생각해요. 독립 서점을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대형 서점같은 브랜드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차이들이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별책부록 대표 차승현님 책 뿐 아니라 곳곳의 손때 묻은 LP판까지 더해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이 공간은 책방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별책부록’처럼 우연히 발견한 기분 좋음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별책부록이 되었다고 한다. “책방을 열기 전, 이름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단어지만 예전엔 패션, 음악 잡지를 구매하면 사은품이 아닌 작은 별책부록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는데, 잡지나 책보다도 별책부록 때문에 구입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별책부록은 많은 책을 수용할 수 없는 작은 책방이기에, 책을 고를 때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무엇에 대해 오랜 시간 탐구한 경험이 담긴 책,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콘텐츠가 있는 책을 위주로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좋고 독자들도 재미를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또 독립 출판물이라는 것도 ‘독립’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편집, 디자인, 교정 등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는 비슷하기 때문에 별책부록에서는 독립/일반을 나누고 있지는 않습니다.” - 별책부록 대표 차승현님 책장에 꽂힌 책들 사이사이에는 일러스트가 담긴 엽서와 포스터, 이곳저곳에 붙이고 싶은 마스킹 테이프, 에코백 같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별책부록의 모든 상품에는 차승현 대표를 비롯한 별책부록 직원들의 취향이 깃들어있다. 이런 아기자기한 취향 덕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2-30대 여성분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차승현 대표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손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하더라도, 특별히 별책부록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적극적으로 소통한다고 한다. “별책부록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 대부분은 저희의 관심사나 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고려해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궁금할 수 있겠다’하는 것들요. 간혹 먼저 커리큘럼을 제안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 별책부록 대표 차승현님 별책부록의 워크샵이 다양한 주제를 담고있는 것 만큼,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차승현 대표는 그 중에서도 유독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별)‘모양이 들어간 별책부록의 로고 디자인이나 잡지에서 튀어나온 정말 별책부록같은 간판 디자인에서도 그의 관심이 묻어난다. “평소에도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는데, 일을 하다보니 점점 더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책부록 디자이너 만큼은 좋은 대우를 해주고 싶어요. 책방에서 진행한 워크숍의 디자인 관련 기획들도 평소에 이런 생각들이 있다보니 무의식 중에 드러난 것 같아요. 인테리어 디자인도 기본적인 공사 외에는 직접 진행했어요. 간결하고 심플한 서점이 되길 원했습니다. 이 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편안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바닥에는 하얀 타일을 깔고,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큰 창을 선택했습니다.” - 별책부록 대표 차승현님 튀지 않는, 도드라지지 않는, 자세히 보면 내실 있는, 별책부록이 바라는 모습이다. “욕심이나 계획은 딱히 없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서점 일이라는 게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많이 바빠요. 그동안에는 하루하루 닥치는 일들을 했다면, 요즘은 생각하는 시간을 꼭 우선순위에 두려고 해요.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 1차적 목표예요. 지금은 별책부록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생각하지만, 멀리서 이 곳에 오시는 분들도 영감을 얻어갈 수 있도록 큐레이션에 더 관심을 쏟을 거 같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고요.” - 별책부록 대표 차승현님 앞으로 별책부록은 큐레이션과 더불어 출판에 에너지를 쓰겠다고 한다. “더 많을 책을 소개할 수 있는 확장형 서점보다 별책부록이 소개하고 판매했을 때 어울리는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또 컴팩트한 영화 실용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별책부록에서 직접 출간한 독립 출판물 ‘CAST’가 11월에 5번째 호가 나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공포영화인데, 앞으로는 출판 쪽으로도 더 신경을 쓰려고요.” - 별책부록 대표 차승현님 조용히 걷고 싶은 어느 날, 기분 좋은 바람이 그립다면 해방촌의 길목에서 당신에게 즐거움이 될 별책부록을 만나길 바란다. 해방촌의 신선한 바람이 어쩌면 건조해진 당신의 공기를 촉촉하게 적셔줄테니까. <별책부록 차승현 대표가 추천하는 책> 책 바로가기 > http://bit.ly/2T2mQbE “저는 글을 믿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더라도 행동과 글이 다를 수 있거든요. 글 자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연기자가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은 역할을 연기할 수 있잖아요. 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그 글을 읽는 누군가에 영향을 미치고, 잘못하면 누군가는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내가 잘 모르는 작가가 쓴 글을 좋아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별책부록에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작가는 별책부록 차승현 대표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책 추천의 기준에 작가의 인성과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한 만큼, 그가 인정하는 괜찮은 작가의 괜찮은 에세이. 차승현 대표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인 것은 확실하다. 별책부록 위치 | 서울 용산구 신흥로16길 7 홈페이지 | @byeolcheck 영업시간 | 화~일요일 : 오후1시30분 ~ 저녁7시30분 / 일요일 : 휴무 글, 사진 | 플라이북 에디터 이윤진 yjlee@flybook.kr 플라이북 App에서 더 보기 > http://bit.ly/2HBrxEj
'국가부도의 날' 관전포인트, 영화 솔직후기/리뷰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오늘부로 모든 시험이 종료됐습니다ㅎㅎ 당분 간은 영화 많이 보고 후기 남길 수 있겠어요~~어예 시험끝나자마자 바로 영화관 뛰어가서 혼영한 후기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당 오늘의 영화는 '국가부도의 날'입니다. 사실 제가 태어난 후 3년 후에 있었던 일이기에 저는 자세한 사건을 모르기에 항상 궁금하기만 했었는데요. 자세하고 정확하진 않을 수 있으나 영화로나마 그때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품은 개봉하고나서 사실왜곡이라는 비판도 받았죠. 저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기에 뭐라 말씀도 못 드리고 어디가 잘못됐다 정확히 알지도 못합니다만 문학적 허용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보긴 했습니다. 영화이기에 어느 정도의 허구와 소설은 감안을 해야겠어요ㅠ 영화 자체의 관전포인트를 위주로 리뷰를 쓰려해요! 저는 작품을 볼 때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 장면마다의 의미를 해석하려 노력하는 성격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부분은 국가가 부도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는 고위관리자들의 '무능력'입니다. 이건 뭐 블랙코미디도 아니고 노골적이고도 해학적으로 그들의 무능력을 그려냈습니다. 실소가 터져나올 정도의 부족한 실무능력은 사실도 저러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합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실제모습은 차이가 있으니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피해야겠죠? 두 번째 관전포인트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입니다. 요즘 이슈를 신경쓰는 영화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능력과 여성들이 받은 무시를 작품에 넣는 추세입니다. 이 작품도 그러한데요. 특히나 여성의 대표로서 이번엔 김혜수 씨가 활약했습니다. 연기도 너무 잘하고 너무 멋있더군요. 영화 내내 집중해서 봤습니다. 정말 보는 내내 화가 났던 것은 여성을 20세기 후반이었음에도 여성을 사회적 참여자로 인지를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실제는 더 심각했었을 수도 있겠는데요, 남성의 과도한 비하와 편파적인 시선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분통을 사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관전포인트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한 가장의 책임감입니다. 가장이 누구든 그 때의 빚을 감당하기에는 누구나 버거운 현실이었죠. 자살률이 그 당시 전년도 대비 42%의 상승은 그때의 국가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수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착하고 착실하게 살아도 벌을 받아야 하는 비탄스러운 현실에 난간에 몸을 맡기려는 충동은 무거움을 견뎌야 하는 가장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푼돈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돈이 한 순간에 종잇조각이 됐다면, 가족을 부양할 전재산이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사라진다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나요? 영화는 이러한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관객들에게 설득을 잘 시켰습니다. 유독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 누군가는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며 미소를 지을 때 누군가는 아무 잘못도 없이 맞이한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극 중 한 가족의 가장은 가족들을 신경쓰며 자살을 고민한 그 순간까지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ㅠㅠ 지금은 평범했던 일상도 그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의심'의 덕목을 강조합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평범한 지금 이 순간마저도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순간은 또 오고 있으며 위기란 항상 우리 곁에 상주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극 중 김헤수 씨의 명언처럼 말입니다. 두번의 같은 패배는 없어야겠죠? 같은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같은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강해져야 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때와 다름을, 이제는 순진하게 당하지 않음을 보여줄 단계입니다. 영화에 비해 아쉬운 흥행이 안타깝네요ㅠㅠ엉엉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었습니다.
#10 필사모임 <쓸모있씀!> 열 번째 카드 (+ 글씨 잘쓰는 꿀팁)
안녕하세요 :) 필사모임 쓸모있씀이 벌써 열번째 카드를 맞았습니다!!! 👏 무사히 열 번째 카드까지 오게되어 뿌듯해요. 처음 시작할 땐 그냥 호기롭게 시작했었는데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네요 ㅎㅎ 이번 카드도 잘 부탁드려요! 그동안 참여 못하신 분들도 이번 카드에는 댓글 한번 남겨주고 가세요 😊 오늘은 좋은 문장 대신에, 글씨를 잘 쓰는 법을 소개해볼까 해요. 저도 어디서 꿀리지않는 악필인지라 ㅎㅎ 악필 교정에 관심이 많은데요. 글씨 교정하는 꿀팁을 찾아보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많은 유튜버분들의 강의를 찾아봤는데요. 모두 공통된 팁을 알려주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정리를 잘해주신 유튜버 두분의 영상을 소개해드릴게요. 우리 같이 예쁜 글씨로 필사 해봐요 ~! 첫번째로 유튜버 '샒의 삶' 님 1. 모눈연습장 활용 글씨의 여백과 간격을 맞추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그걸 맞추는데에 모눈연습장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칸에 맞춰서 일정한 간격으로 쓰는 것을 추천했어요! 2. 자음, 모음 통일감 있게 쓰기. 사람마다 글씨체 스타일이 있는데, 어떤 글씨체건 중요한건 통일감 이라고 해요. 정자체면 자음 모음 모두 정자로, 흘림체면 모두 흘리게 쓰는 게 나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상황에 따라 여러 굵기, 색 활용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면? 제목, 내용에 따라 굵기와 색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추천해주셨어요! 이건 다이어리를 쓸 때 기준이긴 하지만, 필사를 할 때도 중요한 단어는 더 굵게 쓴다던가 제목은 다른 색으로 쓴다든가 한다면 보기에는 더 좋겠죠?!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영상도 첨부할게요! 두번째는 '나인'이라는 글씨체로 유명하신 유튜버의 영상이에요! 마찬가지로 원본 영상 함께 첨부할게요 :) 너무 좋은 강의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1. 모눈연습장 활용 이 분도 마찬가지로 모눈연습장을 추천해주셨어요. 글씨크기, 간격 맞추기 어려운 분들에게 추천! 2. 핵심은 글씨의 높이 / 크기 / 간격 이 세가지만 일정하게 하면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아주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자세한 설명은 바로 아래로! 1. 높이 글씨의 높이를 일정하게 해야해요! 그러니까 세로 길이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죠. 글씨를 평행선에 가둘 수 있도록! 2. 크기 글자 하나하나의 크기를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해요. 11pt 로 쓰던 글씨는 그대로 11pt로 써야지, 한글자는 11pt, 그 다음 글자는 12pt 이런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말! 3. 간격 마지막은 간격인데요! 간격에도 여러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해주셨습니다. 3-1. 띄어쓰기 간격 글자 간격이 일정하듯, 띄어쓰기 간격도 일정하게 쓰도록 주의! 3-2. 자음, 모음 간격 이거 보면 정말 글씨 잘쓰시는 분들은 여러 부분을 신경써서 정성들여 쓴다는게 느껴져요 😭 음절 하나하나의 간격을 일정하게 해야하듯, 음소 하나하나의 간격도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로 이렇게말이죠! 어렵네요 😂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3-3. 글자 간격 자간이라고도 하죠! 넓은 것 <<< 좁은 것 이 더 정갈해보인다고 해요. 그리고 이 역시 일정해야 하고요! 4. 이것만은 절대금지! 마지막으로 설명해주신 절대 하면 안되는 세가지입니다. 1. 겹쳐서 쓰기 2. 끊어서 쓰기 3. 연속해서 쓰기 인데요! 놀랍게도 저는 세가지를 모두 하고 있었어요 하하 예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제 글씨라서요 푸하하 이거 완전 제 글씨체 같은걸요? 이렇게 보니 제가 왜 악필이었는지, 제 글씨가 왜 못나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영상으로 보고싶으신 분들을 위해! 영상으로 보면 더 이해가 쏙쏙된답니다.ㅎㅎ 이 자료는 오로지 두분의 내용을 가져온 것이랍니다! 좋은 영상 올려주신 샒님과 나인님 감사합니다!!! : ) 오늘의 문장은 간단하게 윤동주의 <서시>를 놓고갈게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이 카드의 댓글로 필사사진 달아주세요!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참여하지 못하신분들도 오늘은 꼬옥~! 댓글 기다릴게요!!! 고럼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 신규 참여신청👇
데미안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사실 필자는 고전 문학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물론 유명한 고전 몇 권 쯤은(돈키호테, 레미제라블, 구운몽 등) 읽어봤지만 사실 지금 시대의 소설을 읽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 오랜만에 고전 문학을 한 번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까 하는 겉멋으로 집어든 게 바로 이 '데미안' 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아빠 미소를 지으며 읽게 될 줄이야. 데미안의 처음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중상류층 집안의 독실한 크리스찬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싱클레어는 어느 날 집이 잘 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 아이들이 서로 자신이 한 나쁜 짓거리를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데 그에 지고 싶지 않았던 싱클레어는 자신이 과수원에서 자루 가득 사과를 훔쳐냈다는 거짓말을 한다.(어릴 적에 한 나쁜 짓은 그 당시에는 마치 영웅적인 행동으로 또래에게 비춰지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런데 공립학교 학생들 중 우두머리 격이던 프란츠 크로머가 그 과수원 주인 아주머니가 과일을 훔친 사람을 알려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면서 싱클레어를 이르겠다고 하자 싱클레어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키고 가족들에게 알려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자신이 대신 돈을 줄테니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돈이 부족했던 싱클레어는 결국 자신이 한 거짓말에 묶여 크로머에게 돈이 부족하단 명목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자신이 한 거짓말로 인해 이제 영원히 자신은 이전의 착한 부모님의 아들로 돌아갈 수 없다면서 괴로워한다. 귀엽지 않은가? 요즘 시대로 바꿔보면 거짓말을 친구에게 들켜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거짓말을 하기 이전의 착한 부모님의 아들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고 후회하고 걱정하는 초등학생 이야기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물론 괴롭히는 친구 녀석은 머리를 쥐어박아주고 싶다.) 거짓말 한 번에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착한 아들이 될 수 없다며 고뇌하는 어린 초등학생이라니. 읽으면서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생각보다 재밌는 소설의 시작은 고전 문학에 대한 거리감을 좀 줄여주었고 빠르게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전체적인 소설의 줄거리는 앞에서 말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똑같은 고뇌를 계속해나가며 성장하는 싱클레어의 이야기이다. 싱클레어는 점점 커가면서도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 나쁜 면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고민한다. 학교에서는 평화와 행복을 노래하는 선만이 올바르고 제대로 된 길이라고 가르치는데 자신 안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 질투, 나태, 반항심과 같은 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러한 자신은 영원히 선한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고민하는 싱클레어 앞에 어느날 나타난 데미안은 말한다. 선과 악은 원래 하나이고 뗄 수 없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있는 악한 면을 받아들이고 선과 악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라고. 그러한 데미안의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압락사스라는 신이다. 소설 속에서 압락사스는 이렇게 묘사된다. "압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인 신이었다." 즉 인간 안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가 선을 대표하는 신을 섬긴다면 악을 대표하는 악마도 섬기거나 혹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신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야 저러한 사상이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소설이 나온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절대 선이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그 가치관을 뒤흔드는 메시지를 가진 소설이 바로 '데미안'이었기에 이 소설은 위대한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전혀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예술은 언제나 가장 위대한 것으로 추앙받거나 가장 더러운 것으로 핍박받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읽은 고전 문학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고전이 왜 고전이라 불리는지, 그것이 가지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한 번쯤 그 시대의 시대상을 생각하며 읽어본다면 '데미안'이 왜 아직도 젊은이들의 필독서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재미는 덤이다.) 주관적인 별점 : 4.8개 (재미 있는 고전 문학. 이 말로 충분할 듯 하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같은 시간에 올리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더 편하신 분들은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어주세요! https://www.facebook.com/Gongdae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