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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일째 진행되지 않는 엑박 배그 컨트롤러 이벤트, 과연 진행은 되는걸까?

한국 MS, 7개월 가까이 상황 미공유, 묵묵부답으로 일관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이하 한국 MS)가 작년 9월 6일 보도자료로 밝힌 <배틀그라운드> 한정판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 이벤트가 오늘로써 205일째 열리지 않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이 10월 31일 관련 내용에 대해 최초 보도한 이후, 그리고 작년 12월 두 번째 보도 이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한국 MS는 작년 12월, 3개월째 진행되지 않고 있는 이벤트 진행 여부에 대해 디스이즈게임이 다시 묻자 “이벤트 용인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 2대는 확실하게 보유하고 있다. 사전에 밝힌 대로 조율 단계에 있어 아직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곧 진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치 12월 안에 진행될 것만 같았던 이벤트는 해를 넘기고 세 달이 지나도록 진행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보도자료를 포함해 공식 페이스북 등 어떤 채널로도 이와 관련된 상황 공유를 찾아볼 수 없다. 이쯤 되면 이 사안은 이벤트 진행 차원이 아니라, 한국 MS와 유저들 간의 신뢰 문제다. 물론, 과거 여러 사례를 통해 이미 한국 MS의 신뢰도는 거의 ‘바닥’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 별다른 상황 공유, 유저 대응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온 205일

시작하기 앞서, 작년에 벌어진 상황 과정에 대해 간략히 짚어보자. 7개월 가까이 끌어온 사안이다 보니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관련 내용은 하단 관련 기사를 통해 참고하자.



해를 넘기고 나서, 3개월이 다 지나가지만 그 사이에도 한국 MS는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컨트롤러 이벤트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 외의 행동만 하고 있다. Xbox 한국 공식 페이스북을 보면, 작년 9월 6일 이후 수 많은 포스팅이 올라왔지만 컨트롤러 이벤트에 대한 상황 공유는 단 한건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유저는 커뮤니티, Xbox 한국 공식 페이스북에 문의를 남기기도 했다. 이벤트와 상관 없는 포스팅이지만 그들이 응대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덧글을 남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국 MS 담당자의 덧글이 아닌 해당 내용에 공감하는 타 유저의 ‘좋아요’ 뿐이었다.

심지어 수개월이 지나도 이벤트가 지연된 것에 대해 아무런 해명이 없어, 2명의 유튜버가 컨트롤러를 리뷰했다는 이유로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유투버 2명에게 컨트롤러를 지급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관련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디스이즈게임과 통화한 유튜버 중 1명은 본인이 리뷰용으로 제품을 받았으며, 리뷰 후 해당 제품을 반납했다고 밝혔다.

당시 Xbox 국내 PR을 맡고 있는 대행사에게 “유튜버에게 지급된 것이 아니라면, 이벤트를 위한 제품 2대는 보유 중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대행사는 “그렇다. 2개의 제품은 박스 상태로 보유 중이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관계자는 “한국 MS가 곧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 전했다”고 밝혔다.
한국MS는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 관련 어떠한 덧글에도 지금까지응답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벤트 연기에 대한 별도의 포스팅도 하지 않고 있다.

# 과연, 이벤트용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는 있는 것일까?

디스이즈게임은 관련 내용에 대해 다시 파악해보기로 했다. 3월 28일, 대행사에게 당시 보유 중인 제품 박스라도 보내줄 수 있냐고 요청했고, 관계자는 디스이즈게임을 비롯해 여러 유저가 문의를 했고, 이에 대해 국내 활동을 담당하는 APEC 쪽에 문의 해보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29일 오후, 다시 문의를 해보자 “APEC 쪽에서 전달해도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디스이즈게임은 오후 5시경 대행사로부터 이미지를 받았다. 대행사는 APEC 쪽으로부터 총 4개의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중 2개는 위에서 언급한, 유튜버 리뷰용으로 사용된 것이며, 사진으로 보내준 것은 이벤트 용으로 사용될 컨트롤러다.
대행사가 디스이즈게임에 전달한, 보유 중인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 박스 사진. 시리얼 넘버는 일부 모자이크 처리했다.
관계자는 디스이즈게임에 박스 외형과 시리얼 넘버가 부착된 아랫면 등 총 2장의 사진을 전달했다. 박스 외형이 일반 Xbox 컨트롤러인 것에 대해서는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가 정식 발매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 전세계 200대 한정으로 제작된 컨트롤러이므로 별도의 박스가 없다. 따라서, 본사에서 이벤트를 위해 국내로 전달해줄 때 일반 Xbox 컨트롤러 박스로 포장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시리얼 넘버가 노출된 사진에 대해서는 최초 이벤트 상품을 유튜버에게 지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디스이즈게임이 대행사로부터 전달 받은 제품의 사진 외형, 시리얼 넘버와 리뷰용 제품을 촬영한 영상의 외관, 시리얼 넘버를 비교해 본 결과, 이들의 말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두 유튜버 모두 전달 받은 리뷰용 제품 박스가 일반 Xbox 컨트롤러 제품이었으며, 개봉하자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리얼 넘버 모두 대행사가 보내준 시리얼 넘버와 달랐다. 이벤트 목적으로 쓰일 컨트롤러 2대는 일단 보유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진행 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뿐이다.


# 단순 이벤트를 넘어, 한국 MS가 유저를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

대행사 관계자는 APEC 쪽에서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 이벤트 승인을, 그리고 컨트롤러 이벤트는 별도 이벤트 회사가 맡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전화 통화를 통해 1개월 전인 2월 경 APEC 쪽으로부터 최종 승인이 돼서 이벤트가 곧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현재 기존 영문으로 전달된 이벤트 관련 문서들에 대해 번역작업과 더불어 Xbox 한국 공식 페이스북에 어떤 워딩을 올릴 지 조율하는 과정이라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이벤트 일정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곧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발매 당일 한글화 취소 발표부터 출시 1주일 된 신작을 무료 배포, 그리고 유저들 사이에서 잘 알려졌던 ‘석고칠을 한 Xbox One’을 유저에게 이벤트 경품으로 지급한 사례까지. 한국 MS는 미비한 사전 공지, 그리고 위에서 짚은 그리즈프루프 컨트롤러 이벤트까지 유저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인식으로 각인돼 있다.

사소한 이벤트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미비한 사전 공지부터 묵묵부답 대응까지, 한국 MS가 유저들에게 대응하는 태도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떠올랐다. 제품도 확인됐고, 답변에 따르면 이벤트 진행이 정말 오래 남지 않은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벤트 개최부터 종료, 상품 지급까지 무탈히 진행될지, 또 이후 한국 MS가 한국 시장과 한국 Xbox 유저들에게 어떤 태도로 임할지. 과거 사례, 그리고 이벤트 하나로 무너진 한국 MS의 태도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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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켄넬에 갇혀 익사한 270마리의 동물들, 책임논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기며 바하마를 휩쓸고 지나간 허리케인 도리안. 건물이나 재산피해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생명까지 앗아간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허리케인 도리안과 함께 바하마에 들이닥친 홍수로 인해 유기동물보호소에 있는 고양이 50마리와 개 220마리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끔찍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고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하마에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의 이사 엘리자베스 씨는 건물 안에 있으면 허리케인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바하마에는 수년에 걸쳐 허리케인이 여러 차례 지나갔지만, 그때마다 동물들은 보호소 안에서 안전하게 대피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긴 도리안은 다른 허리케인과는 달랐습니다. 도리안은 지금껏 본적 없었던 강력한 비바람을 몰고 왔고, 도시는 성인의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보호소 직원들은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케이지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물은 보호소로 빠르게 밀려 들어오며 가득 메우기 시작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을 포기하고 대피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지옥이 펼쳐진 건 이때부터입니다. 물이 차오르자 공포에 질린 개와 고양이들의 비명이 보호소 안을 가득 메웠고, 몇 분이 지나자 쥐 죽은 듯 잠잠해졌습니다. 50마리의 고양이와 220마리의 개가 고통스럽게 익사했습니다. 보호소에서 270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보호소의 아쉬운 위기 대처를 탓하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전 세계 네티즌들은 "동물들이 갇혀있는 케이지를 하나하나 옮겨 구하는 게 힘들었다면, 케이지 문을 개방해 동물들이 스스로 탈출하게 해야 했다"는 의견을 보이며, 많은 동물들이 비참하게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 이들을 비난하는 건 적절치 않다" "패닉이 와서 그들도 어찌하지 못했을 것" 등의 반응을 보이며 보호소 관계자들을 섣불리 비난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보이기도 했습니다. 보호소 직원들이 비난받아 마땅한가 아닌가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악의 사태'에 대한 매뉴얼 대비하고 다음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꼬리스토리  ggori.story@gmail.com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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