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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6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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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쭉~ 읽었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네네, 단숨에 쭉~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아침부터 너무 열심히 읽어 내려갔네요?ㅎ 애새끼들에서 친근감 흠뻑 느끼고 갑니데이~~~
허허허...ㅎ 열심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데이~~~
제가 79년 중2 겨울방학 때 세로판 삼국지를 처음 접하고 신천지속을 헤매다가 (아마 1권을 5번씩 읽었나?) 거의 미쳤지... 방학 숙제를 결국 몸으로 때우고 겨우 겨우... 고딩때 친구 자취방에서 매일 무협지와 뒹굴다가 대학 때 김용때문에 도서관 365일 출첵했는데,
내가 보기엔 김용선생이 재림하셨나봐요
어이구.. 79년생이셔도 형님이신데, 79년에 중학교 2학년이셨으면 한참 형님이시군요..! 그런 형님께 칭찬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고 심지어 그런 큰작가님에 비견까지ㅎㅎㅎ 정말 고맙습니다 😁
오... 이제 빙글 댓글에 이미지첨부도 되는군요
헐!!!! 진짜 오랜만이에요ㅜ.ㅜ 선댓글 후감상 갑니다
헤헤.. 네, 완전 오랜만이죠? 긴 시간 기다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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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게임인데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킨 스토리와 그래픽 그리고 게임성... 정말 굉장한 게임이었다. 리메이크 버젼도 플레이 했지만 원작을 따라가진 못함... 이건 못해봐서 패스... 이건 안해본 사람 찾기가 힘든 게임이려나... 육성 루트에 따라서 멀티 엔딩이라 한두번 하는게 아니라 수십번 엔딩까지 플레이한 사람들이 수두룩 할듯....ㄷㄷ 파랜드 택틱스는 SRPG의 시조격인 게임이다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당시 볼만한 액션 연출, 그리고 흥미로운 스토리 무엇보다 절묘한 밸런스의 게임성이 말이 필요 없는 명작 브랜드다 4인가 5까지는 했었는데 그 후로 너무 변해버려서 손절... 그러나 1편부터 4편까지는 정말 기가 맥힌 게임이다 JRPG의 클래식 취향에 안맞아서 구경만 하고 안해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와 더불어 국산 게임의 부흥을 이끌었던 명작이다 창세기전2는 국산게임에 있어서 전무후무하다고 평해도 아깝지 않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삼국지 시리즈 안해본 사람은 없지. 삼국지 영걸전... 진짜 밤샘을 하게 만드는 미친 게임성 ㄷㄷㄷ 조잡한 그래픽이지만 게임성 하나로 모든걸 씹어먹은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대항해시대2를 최고로 뽑는 사람들이 많다. 뭔지 모를 그 시대의 그래픽에서 풍기는 느낌과 잘 만든 게임성이 어우러져 진짜로 세계를 누비는 환상에 빠지게 해줬던 명작 게임이다. 요즘 같은 양산형, 현질유도, 스토리라곤 1도 없는 게임들이 범람하는 시대 90년대의 낭만이 살아있는 게임들이 그립다 ㅠㅠ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손책 백부 (孫策 伯符) A.D.175 ~ 200
삼국지 좋아하는 이들은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인물들이 저마다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손책". 무수한 인물들 중 하필 단명하여 임팩트 부족한 손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후술키로 하고 일단 썰을 풀어보기로! 삼국을 형성하는 세 나라들 중 손가의 왕국 오(吳)의 대표 군주는 당연 손권. 전성기를 이끈 군주이며 최장기간 집권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좋던 나쁘던 다수의 이슈들을 만들어낸 관계로 임팩트가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오의 초대군주로 잘못 아는 이들도 많다. 허나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국가의 삼대요소를 아시는지? 어릴 때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는데 "국민", "영토", "주권" 바로 이 셋. 허나 저 셋이 있어도 저 셋을 하나로 뭉치게 이끄는 리더나 보스가 없다면 저 셋이 있어도 국가의 개념을 부여하기 모호하다. 어떠한 형태의 국가건 간에 위에서 언급한 저 국가의 삼대요소 외에도 반드시 있고, 없어선 안될 것이 바로 그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 지도자의 급에 따라 국가라는 개념이 형성된다. 아무리 넓은 영토와 그 영토내 거주민들이 있어도 하나의 지도자 하에 결집되지 못하고 각 개인이나 또는 가족, 모여 사는 군락의 이익만 주요하게 되면 이는 국가로 형성되지 않는다. 손가세력이 공식국가의 기능을 발한 것은 손권이 오라는 국호를 정하고 수도를 정한 후 왕위에 오르면서부터이며 그전은 그저 세력이 큰 한 군벌집단 또는 지방호족들 대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오"라는 손가 왕국의 첫 군주는 손권이 맞지만, 그 이전에 손가를 중심으로 뭉쳐 타세력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고 국가의 삼요소를 모두 갖춘 실질국가의 기능을 발한 것은 손책이 시초. 덧붙여, 그럼 그 손권과 손책의 부친 손견이 최초 아니냐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 손견은 생전에 원술의 부하였고 독립세력의 수장인 적은 없다. 어린시절, 아버지인 손견과는 그닥 추억이 없는 가련한 장남이였다. 부친은 원술 휘하의 가장 용맹한 맹장으로서 전투에 바빴고, 비전투시도 원술의 근거지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손견은 가족을 원술세력의 중심지이자 당시 번화한 대도시 중 하나인 수춘에 머물게 했으나 집에는 자주 못 가는 전형적 직업군인 아빠였다. 어린 손책은 뭐 얼마나 잘났던건지는 별도 기록 없지만 훗날 의형제까지 맺는 주유가 손책의 명성을 듣고 교우관계 갖고자 손책을 방문했을 당시 손책은 고작 10살(....) 그러고보니 손책과 주유가 동갑, 10살 어린이의 명성 듣고 그 어린이를 친구추가하러 온 주유도 10살.... 당시 중국 금수저 어린이들의 리얼 SNS에 놀랄 따름. 이후 부친 손견이 원술V유표간 전투에서 전사하자 장례 치르며 본격 소년가장이 되고, 저 때는 직위를 세습하였는데 손견의 직위는 동생 손광에게 넘기고 자신은 가족을 돌보는데 전념한다. 19세에 원술에게 등용 요청하고 손책의 비범함 알던 원술은 그를 등용, 손책같은 아들 있으면 좋겠다 말하며 애정을 줬다. 그러나 말로는 저래놓고 희대의 인간쓰레기답게 원술은 손견이 이끌던 부하들과 병력은 양도 않고 자력으로 충원토록 했으며, 이후에도 성과에 의해 약속된 태수직을 두 번이나 말 바꿔 다른 이에게 하사했다. (구강 태수, 여강 태수) 이때부터 손책은 원술에게 마음이 뜨고 독립을 결심한다. 여러분들 혹시 '특별시민'이라는 영화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곽도원이 분한 심혁수라는 인물이 이런 대사를 한다. "관계가 깨져도 결과를 만들어 내는게 프로야." 뭔가 상당히 쿨내나고 간지뻗는 저 말,... 손책 역시 원술과의 신뢰는 사실상 깨졌으나 그 후 오히려 독 품고 전보다 혼신 다해 주변 일대 평정에 나서고 이때부터 그 유명한 손책의 "양민학살"일대기가 시작된다. 물론 원술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거듭된 전투 통해 이를 구실로 독자적인 세력과 병력을 자연스레 확보하고 전투를 거치며 내공을 쌓기 위함이였다. 연의에서는 이 첫 출정 당시 원술에게 전국옥새를 담보로 병마를 빌린 것으로 나오지만, 손견이 소유한 옥새가 어찌 원술에게 갔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다만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수하이고 자신이 대외적으로 칭찬일색이던 손책임에도 유독 병력양도에 인색했다는 이해 안가던 행태에 비해 양민학살의 시작인 "유요정벌" 당시에는 별 무리없이 병력을 내준 것 보며 큰 거래가 있던게 아니였나 하는 상상이 더해진 듯. 여튼 이리 어렵게 원술에게 양도받은 병력과 부친을 따르던 장수들까지 온전히 이어받은 손책은 사실상 이때부터 독자적인 세력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를 개시하며 수춘인근 군소군벌들이던 유요, 왕랑, 허공, 엄백호 등 용맹함과 저돌성을 드러내준다는 호평과 저런 애들은 나랑 친구들이 가도 평정했을 입에 올리기도 뭣한 세력들이라며 양민학살에 불과하단 혹평이 공존하는 원정들을 차례로 성공! 이렇게 손책은 르브론 제임스가 KBL와서 매경기 50득점씩 해가며 전경기 트리플더블 하는 듯한 원정을 돌 무렵.. 원술은 전국옥새를 빌미로 참칭을 한다. 그러자 이미 원정출발부터 원술에게 마음이 떠 있었고 심지어 부친의 유품을 자기에게 돌려주긴 커녕 그걸 계기로 참칭하니 손책은 원술에게 부당함을 따지는 서찰을 보내고 공식적인 독립을 하게 되며 이때부터의 손책은 이전까지 단지 맹장인 손책과 다른... 한 세력을 이끄는 전략가로서의 면모가 크게 부각된다. 원술에게서 독립한 손책 시즌2의 시작은 순조로웠고 마침 당시의 천자였던 헌제로부터 작위와 함께 대역죄인 원술토벌의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의 조서를 받게 되는데, 이때의 헌제는 이미 조조가 천자 옹립 이후 그냥 바지사장일뿐 실세는 조조였고 원술과 좋지 못하던 감정 갖던 터에 그가 참칭까지 하여 그대로 넘길 수 없음은 물론, 당시 손책이 강동을 휘젓고 다닌다는 소문에 이이제이 하려던 전략적 선택이 담긴 칙서를 내린 것. 허나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손책 역시 이때부터 실리 이상 명분의 중요성을 깨닫고 칙서 가져온 칙사에 온갖 싸바를 쳐 본래 받기로 한 직위 이상의 직위를 받는다. 이후 손책 세력은 급성장 하며 실상 손권이 지니고 있던 강동영토의 대부분은 이때 손책에 의해 형성된다. 당시 강동(강남)은 중원으로 일컫던 양쯔강 이북에 비해 더운 기후로 인한 잦은 풍토병, 수해, 억센 소수민족들 등으로 개발이 늦던 곳이였다. 인구도 많지 않던터라 중원처럼 십수만의 대병력 운용할 인력도, 그 병력 뒷받침할 자원도 부족하여 그때까지 조정에서도 거의 버린 땅에 준했으나 손책은 그 강동일대를 모두 자신의 기치 아래 규합하여 총력 모으는데 성공한다. 이 정도까지 예상치 못하게 손책이 성장하자 조조도 당황한다. 당시 하북을 비롯한 중원일대가 아직 평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강동까지 견제해야 한다면 큰 군사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며, 실제로 손책 역시 조조가 원소와 결전을 벌이게끔 원소와 동맹을 맺고 이를 유도 후 두 세력이 대치하면 병력을 북진시켜 허창을 공격하여 천자를 자신이 옹립하는 것까지 마스터플랜을 세운 상태였다. 놀라운 것은..... 천자를 옹립하는 것의 전략, 명분적 가치를 제대로 판단한 군웅은 당시 이미 진작에 사망한 동탁을 제외하면 조조와 손책 둘뿐이였다는 것. 그 외의 군웅들은 애시당초 천자 근처도 못 갈 세력이거나, 여건이 여의치 않았고 강대한 세력 지녔던 원소조차 천자옹립은 로우리턴 하이리스크로만 생각했고 자신의 야망과 오버랩되어 차라리 자신이 제위에 오르는 쪽으로 변질, 이는 원술도 마찬가지. 하지만 조조는 어찌보면 힘의 차이를 떠나 공적으로는 동등한 군웅들 사이에 우위를 점하는데, 또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있어 유명무실 해졌을지언정 상징성은 아직 유효하던 황실의 정통성을 적극 활용했고 이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눈뜬 또 다른 인물이 바로 손책이였던 것. 이렇듯 질적, 양적으로 손책이 제대로 된 견제자 하나 없는 강동에서 급성장하자 조조도 그와 인척관계를 맺고자 시도하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손책이 과한 욕심 부리며 자신을 무려 "대장군"에 봉해 달라고 청하자, 괘씸함에 분노한 조조는 손책과 우호책 펼칠 것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한 말 당시 인기 역사서이던 "춘추좌씨전"에 능통한 "고대"라는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손책은 그를 초빙해 강연을 청한다. 당시의 춘추좌씨전은 줄여 춘추전, 좌씨전 또는 좌전 등으로 불려진 "공자"가 지은 노나라 역사서에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인 "좌구명"이란 자가 부연설명인 주석을 달아놓은 지금의 삼국지같은 느낌의 서적이였는데 인기가 굉장했다. 그러나 강연 자리에서 고대가 본의 아니게 손책의 심기를 거슬리자 불같은 손책은 고대를 투옥시켰고, 이에 많은 백성들의 고대석방을 요하는 성화를 본 손책은 자신 이상의 민심 얻는 것에 분노해 고대를 죽인다.....;;; 연의에서는 이 이야기가 도사 "우길"을 죽인 것으로 각색 되었는데 애초에 우길 자체가 실존여부 명확치 않은 인물이며 손책과 조우했다는 건 더더욱 분명치 않다. 당시 손책은 영지 내에서 꽤 붐이던 신흥종교 중 하나인 "태평도"를 탄압 중이였는데 우길이 이 태평도에서 비롯된 인물이다보니 태평도측에서 손책을 폄하하고자 그의 죽음과 맞물려 퍼뜨린 루머라는 학설이 있다. 고대 에피소드를 보더라도 손책은 유독 다른 제후들에 비해 자신의 영토내에서 민심이 자신 외 다른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매우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당시 제후들이 군사적 활동을 하려면 징병, 군량차출 등 1차적인 부분은 물론 원정도중 내란에 의해 후방이나 본진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영지내 민심안정은 필수였다. 더구나 손책의 본거지는 긴 시간 본격적 통치자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강동일대는 지역별 일정 규모 이상의 경제력과 생산력을 지닌 지주나 상인같은 호족들이 저마다의 세력을 펼치던 곳이였기에 성미 급하고 갈길 바쁘던 손책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에 의한 민심규합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북에서는 조조, 원소가 결전을 벌이고자 전시체제라는 정보가 입수되자, 손책은 위의 언급대로 조조의 배후를 급습하여 타격을 주고 헌제를 옹립해 자신이 후한의 정통성이라는 명분까지 손에 넣고자 하는 엄청난 플랜을 세운다. 헌데 이 계획을 일전에 손책에게 박살난 후 결국 손책을 모시게 된 "허공"이 조조에 서찰 보내 알린다. 서찰내용은 헌제에게 고하는 내용이였으나 어차피 당시 천자에게 가는 모든 서찰들과 상소는 조조의 컨펌 받고 대개 짤리거나 첨삭되어 갔기에 실상 조조에게 보내는 것이나 진배없는 서찰이였다. 문제는 이게 조조에게 못가고 인터셉트되어 손책에게 간 것....;;; 손책은 허공을 불러 분노의 브레쓰 뿜다 결국 분을 못 이기고 자신의 손으로 허공을 목 졸라 죽이는데 당시 기록에 의하면 손책이 허공의 목을 잡고 들어올려 조여 죽였다고 하니... 영화에서나 나오는, 괴력의 소유자가 성인남성을 그대로 목 잡고 들어올려 목 졸라 죽이는 그런걸 했다는거다. 당시 성인남성 평균신장이 140cm후반에서 150cm초중반 가량, 허공은 그래도 호의호식해서 더 컸다해도 150cm중반이라 치면 적어도 50kg ~ 60kg 가량이라 생각하면 목 졸려진 몸부림 속에서도 결국 교살을 했다는 사실은 손책의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다. 역사서들 속 손책의 사망날짜도 정확히 나와 있고 현대력으로 옮기면 200년 5월 5일에 사망. 관우, 장비같은 슈퍼히어로들조차 어찌보면 개인신상의 기본정보인 생몰연대가 미정인 경우도 많거늘 손책은 정확한 몰연대는 물론 날짜까지 남았음에도 체구 묘사는 없다. 이 말은 손책이 피지컬 자체는 평범했다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괴력에 대한 기록들이 남은 것으로 보면 힘 자체는 진짜인데, 과학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근력과 체력을 지니려면 불가항력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근육량이 필요하며 자연스럽게 체격이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줘야한다. 큰 힘을 내기 위한 크코 강한 근육과 인대가 버티려면 그만큼 크고 강한 골격이 기반되어줘야 하기 때문. 그래서 관우, 장비처럼 여덟 자, 아홉 자 운운할 큰 체구는 아니였어도 최소한 성인남성 평균신장쯤은 즈려밟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튼간에 저튼간에... 저렇게 죽인 허공. 듣보잡 취급받는 잉여쩌리건만 그래도 헛살진 않았는지, 그가 살해 당함에 분노한 허공의 식객 3인방은 목숨 버릴 것을 각오 후 손책을 암살하기로 한다. 이들은 수시로 사냥을 하는 손책이 사냥터에서 혼자가 되는 틈을 노리기로 한다. 예부터 동서양 막론하고 "사냥"은 암살하기 최적의 기회가 되곤 했는데.... 이유는, 일단 사냥이 뭔가? 동물을 잡는 게 사냥이다. 동물은 어디에 있나? 드넓은 벌판이나 도심 한가운데가 아닌 산 속이나 숲이다. 저런 곳은 암살 대상이 경호인원들에게 잘 보이지 않기 십상에, 암살자들도 몸을 숨기거나 도주가 용이하다. 게다가 사냥감 쫓아 정신없이 말 달리다보면 경호인원들과 떨어지기 쉽다. 일단 암살의 대상이 될 정도의 고관대작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말을 타며 사냥이 취미일 정도면 승마실력도 보통 이상이다. 준마 + 평타이상 승마실력 + 집중 달리기 이 삼단콤보가 겹치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경호인력들과 어느 정도 이상의 간극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손책도 어느 날 씐나서 사냥하다 왠 낯선 병사들 보고 누구냐며 물었는데 식객 삼인방이 자신들은 한당의 병사인데 사슴 잡고자 현위치 대기 중이라 뻥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책은 한당 휘하 병사들의 얼굴을 모두 아는데 니들은 한 번도 본적 없다며 대뜸 그중 한 놈을 활로 쏴버린다. 한당의 병사가 손꼽게 적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같으면 그래? ㅅㄱ 하고 갔을 거 같은데 뭔 촉이 그리 좋은지 수상함 느낀 후 바로 킬링에 나선 비범함에 놀랄 따름.... 허나 죽기 각오 후 나선 삼인방은 한 명이 갔지만 둘 중 하나가 활로 헤드샷을 날린다. 이 화살은 손책의 아구창을 꿰뚫었고 그때 마침 뒤쫓아온 경호병력들에 의해 이 식객 둘은 골로 간다. 여기서 일단 "식객"이 무엇이냐? 허영만의 만화에 나오는 그 식객은 아니다. (한자는 같다.) 일종의 프리랜서다. 완전히 종속되어 주종관계를 맺는다기보다 서로 합의하에 일정기간 의탁하며 임시적 상하관계를 맺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계약서를 작성하는건 아닌지라 합이 잘 맞으면 그대로 주종관계가 되기도, 식객인 상태로 쭈욱 가기도 하고 뭐 그랬다. 암살시도는 실패했으나.... 화살은 하필 그냥 화살도 아닌 독화살이였다. 그냥 화살을 얼굴에 맞아도 고통이 상당할텐데 독이 퍼지고 자상을 입은 부위의 피부가 괴사하여 손책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치료를 받았다지만 워낙 민감한 부위였고 이미 크게 손상되어 별 다른 방도도 없었다. 외모에 나름 프라이드 있던 미남자 손책은 흉하게 상한 얼굴에 매우 크게 낙심했고 회복의지를 잃고 만다. 한편으로는 살짝 이해 안가는게..... 물론 얼굴이 심히 손상되는 것은 잘 생기거나 예쁜 이들은 물론, 진짜 좆같이 생긴 이들에게도 적잖은 스트레스임은 맞다. 하지만 나름 한 세력을 이끈 천하를 도모하려는 야심가에 전장을 앞장 서 누비던 맹장이, 얼굴 좀 상했다하여 그 모든 야망과 포부 잃고 낙심하여 회복의지 잃는다는게 나로서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튼 그건 내 생각이고, 당사자는 안그랬는지... 고작 겨우 만 25세. 우리나이로 26세에 숨을 거둔다. . . . 26세... 지금 현시점 한국의 스물 여섯 남자들을 돌아보면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 복학 후 알바와 학업 병행하며 공무원시험이나 편입준비한다며 뻘짓하고 편의점 알바 뛰며 시급받고 밥 대신 삼각김밥 폐기분 먹고 교수님께 싸바치고 쌍콤쌍콤 여후배들이 콧소리로 '쏜배님~~ 밥 싸주쎄용♡' 소리 들으면 가오 잡으며 학식가서 생색내며 털리는 호구의 모습인데... 손책은 굵고 짧게 할 거 다해보고 그 나이에 죽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스타트 끊은 손가세력 단명클럽의 부회장이 된다. 여느 군주의 죽음이 안그러겠냐만.... 손책의 사망은 실로 강동세력에게 치명타였다. 첫번째. 후계의 부재. 다행히 유언은 남겼다. 당시 손책은 후사가 아직 없었다. 그래서 열 한살 연하인 바로 아래 동생 "손권"을 후계로 정하지만 스물 손권의 당시 나이 겨우 열 다섯..... 물론 주유와 장소에게 안팎의 일을 당부했고 심지어 장소에게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남겼던 유언처럼 손권의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직접 세력을 이끌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물론 장소가 정말 그럴 사람이라 판단하진 않았을 듯 싶고 유비의 유언은 제갈량에게 실상 나라를 넘기는 것에 가까운 내용이였고 손책의 유언은 실질적인 권세를 장소에게 넘기는 내용이였다. 여튼 주유와 장소가 잘한들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엉겁결에 보스가 된 열 다섯 소년인 점은 이리저리 벌여놓은 거 많아 갈길 바쁜 손가세력에 큰 핸디캡. 두번째. 호족규합 실패. 손책은 강동지역의 실세였던 여러 수 많은 호족들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규합하던 터였다. 그들을 모두 회유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걸리는 일이였기에 성미 급한 손책은 무력으로 찍어 누르던 중이였는데 이 와중에 손책이 급사하자 호족들은 반발이 거셌고 다시 이들을 달래고 얼러서 뭉치게끔 하는 것이 오 군주의 최대 과업으로 남는다. 이후 오는 국가적 결정시마다 위나 촉은 없는 호족들과의 조율과 타협과정이 필수였고 이 과정은 오가 대외확장은 커녕 현상유지도 벅찬 수성국가가 되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사실 강동은 호족들에 의해 나름 평화롭게 잘 돌아가던 곳이였으나 난데없는 손책의 등장으로 쑥대밭이 되었던터라 호족들은 손가세력에 대해 적대적이였던 터였다.... 장점이 상당히 많은 다방면에 뛰어난 군주요, 장수였다. 무력은 물론, 판을 크고 넓게 볼 줄 아는 전략기재가 있었고 성격도 활달하며 농담도 제법 잘 했던데다 미남이였다고 한다. 카리스마와 리더쉽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어려서부터 부친 잃고 원술 휘하에서 전장을 돌며 수모 겪느라 인성이 제대로 갖춰질 틈이 없어 그런지 성격 자체가 매우 급하고 거칠었다. 그런 성격, 그리고 아마 알게 모르게 자신의 단명에 대한 촉인지는 모르나 꽤 젊었음에도 매사에 매우 서두르는 감이 강했고, 그리 급하게 본거지를 평정하며 대외정벌을 준비하다보니 무력이 앞서는 악순환이 따른 것. 맨주먹 자수성가의 전형답게 고집도 강했고 승부욕이 과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견디지 못 했고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말을 듣지 않고 독단대로 하려 했다. 닉네임 "소패왕"... 이는 패왕이라 불리던 항우의 재림이라며 붙은 별명. 마침 강동에서 그 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도 같았다. 항우같은 힘과 무용을 가졌다는 의미기에 좋은 뜻 같지만 실은 손책의 단점도 담은 별명이였다. 항우는 생전에 상당히 거칠고 난폭하며 독선적에 잔혹한 성격이였는데 손책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항우의 성격마저 닮아 사람들은 좋은쪽이건 나쁜쪽이건 손책을 소패왕이라 불렀다. 여담으로... 놀랍게도 바둑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기보집에 여범과 둔 바둑의 기보가 남아 있다. . . . . 초반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손책이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가 닮았다는 게 아니라.. 여러 기록과 자료를 접하다보니 장점도, 단점도 그 외 이런저런 특성들도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딘가 모를 동질감이 많이 느껴졌었다. 깨달은 부분들도 많았는데, 손책의 일처리와 성격은 빠른 성과를 내기에 최적이나, 안정적 결과 얻기에는 부족했으며 우리네 삶이 긴 레이스인 점을 보면 급진적인 면모는 맞지 않다는 점이였다. 여러분들도 자신과 닮았다 생각드는 삼국지 속의 인물이 있으신지?.. 있다면 누구신지ㅎ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