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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6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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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쭉~ 읽었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네네, 단숨에 쭉~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아침부터 너무 열심히 읽어 내려갔네요?ㅎ 애새끼들에서 친근감 흠뻑 느끼고 갑니데이~~~
허허허...ㅎ 열심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데이~~~
제가 79년 중2 겨울방학 때 세로판 삼국지를 처음 접하고 신천지속을 헤매다가 (아마 1권을 5번씩 읽었나?) 거의 미쳤지... 방학 숙제를 결국 몸으로 때우고 겨우 겨우... 고딩때 친구 자취방에서 매일 무협지와 뒹굴다가 대학 때 김용때문에 도서관 365일 출첵했는데,
내가 보기엔 김용선생이 재림하셨나봐요
어이구.. 79년생이셔도 형님이신데, 79년에 중학교 2학년이셨으면 한참 형님이시군요..! 그런 형님께 칭찬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고 심지어 그런 큰작가님에 비견까지ㅎㅎㅎ 정말 고맙습니다 😁
오... 이제 빙글 댓글에 이미지첨부도 되는군요
헐!!!! 진짜 오랜만이에요ㅜ.ㅜ 선댓글 후감상 갑니다
헤헤.. 네, 완전 오랜만이죠? 긴 시간 기다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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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1.
이 칼럼은 일단 삼국지를 읽고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싶다만, 분명 모두 삼국지를 읽진 않았을 수도 있고 읽긴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디테일하게 정독한 분도 계실거고, 주욱~ 요점만 훑듯 본 분도 계실거다.. 혹시라도 삼국지를 이제 처음 읽을 예정이거나, 또는 다시 읽어 볼 예정인 분들을 위한 팁을 준비해봤다ㅎ 뭘 하건 먼저 어느 정도 "룰"을 알고 하면 더 재미있고 뭘 보건 먼저 어느 정도 "지식" 갖추고 보면 더 즐겁다 삼국지도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정보를 미리 알면 약간은 더 재미를 느끼고 조금은 더 몰입할 수 있을거 같다. 1. 자. 삼국지를 보면 "자(字)"라는 게 있고, 거의 대부분 이름에 자가 붙는다. (Ex. 조조 "맹덕", 여포 "봉선") 이 자는 현재는 거의 사라진 개념이라 좀 생소한데, 아마 대부분 책 읽으며 별 의문들 안갖고 그러려니~ 하고들 넘겼을듯 싶다.ㅎ 지금보다 훨씬 더 예와 격을 따지던 오래전 옛날의 중국에서는 일정 나이 넘은 성인남성의 이름을 동년배이하 연하자나 아랫 사람이 함부로 부르는건 큰 결례였다.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여겨 아껴아 한다는 개념이 있었기에 되도록 상대의 이름을 부르길 자중했고 그래도 부를 려면 뭔가 명칭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자'였다. 정말 절친하지 않으면 동년배끼리도 본명은 거의 부르지 않았고, 반대로 손윗사람에게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보다는 이름으로 소개하는게 예였다. 자는 성인이 되며 스스로 짓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안 어른, 스승, 기타 마을 어른 등의 손윗사람들이 붙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쓰였던 "호(號)"와 엇비슷한 개념인데, 호는 심지어 편히 부르고자 쓰는 저 자보다 살~짝 더 편한 명칭이고 주로 남이 지어준 자보다 주로 본인이 편히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게 차이라면 차이? 2. 당시 상황. 유구한 중국역사는 스킵하고 그냥 바로 딱 삼국지의 배경이 시작되는 후한말만 보면 한마디로 "개판"... 요즘 시스템에 비하면 지방자치or연방국가와 엇비슷하게 천자(중국의 황제의 명칭)가 있는 당시 수도인 낙양(지금의 허난성 뤄양) 일대를 제외하면 실상 각 영지를 맡아 다스리는 군벌들이 자신의 관할지의 왕이나 진배없었고... 지역 별로 화폐단위, 법제도, 각종 행정 시스템들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다.. 명목상으로는 중앙집권형을 추구했으나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황실은 그 기능을 많이 상실했고, 각 지방 군벌들도 그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영지를 주무르다보니 백성들은 높은 세금에 시달렸으며 설상가상 거듭된 자연재해, 엉망인 치안으로 인한 창궐하는 도적떼들로 인구도 많이 줄어 있고 경제도 몹시 좋지 않았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상태 저하 및 각종 전염병의 영향으로 평균 수명도 40대 초반이 될까 말까였는데, 이는 그때 사람들이 마흔 살까지 살다 다 죽는다는건 아니고, 워낙 영아 사망률이 높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Ex.) 80세 사망 A + 2세 사망 B = 평균수명 41세 (80+2)÷2=41 하여간 저렇게 살기 빡치다보니 자연스레 전국가적 대규모 소요사태인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는 계기가 된다... 3. 위, 촉, 오의 국력 비교. 책을 보며 첨부된 지도, 또는 특히 게임하며 보는 지도에 의하면 위나 오는 거의 면적도 비슷해 보이고 촉도 생각처럼 작지 않다.(위 첫번째 지도 참조) 그러나 그건 당시의 인프라를 전혀 고려치 않은 착시나 진배없고 실제로 그 당시 세 나라의 국력을 따질 때 유효하던 영토는....(두번째 지도 참조) 저렇게 특히 촉과 오가 팍 쪼그라드는 이유는 역시 당시의 "인프라 수준" 탓. 일단 중국은 몹시 넓다. 참고로 위, 촉, 오 세 나라가 숱하게 차지하려 애쓴 대륙의 중심부의 전략요충지인 형주만 해도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넓었다. 그 넓은 면적이 첫 째, 또 당시는 개간기술도, 도로나 교통도 지금과 비교불허인 시절에 통신이란 개념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후한이 그러하듯 저 세 나라도 자신들이 명목상 차지한 영역의 구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오의 남쪽, 촉의 국토 대부분은 거칠고 험한 산악지대였다. 또 지금도 중국은 수 많은 소수민족들이 어울려 살며 아예 한족들과 많은 부분이 달라 자치권을 인정받고 자기네 마음대로 사는 자치구들도 있다. 하물며 저 당시는 말할 것도 없어,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이민족)들은 한족의 통제를 거부했다. 아무튼 저러다 보니 세 나라의 국력차는 극명했다. 당시의 인구는(정확하진 않지만) 위가 대략 450만, 오가 220만, 촉은 90만 가량... 참고로 이 인구는 당시 삼국의 자체적 인구 리서치에 의한 수치이며 역사가들은 대략 저 시기 중국내의 총 인구를 약 1,600여 만 ~ 2,000만 명 가량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해보면 세 나라의 인구, 경제, 군사 등 내셔널파워를 요즘 국가에 비해 본다면 위 = 미국 / 오 = 일본 / 촉 = 한국 정도로 보면 비슷! 4. 단위. 삼국지를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비쥬얼을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Ex.) 여덟 자 키에 범의 머리요, 원숭이같은 팔에 곰같은 상체를 한 장수가 나타났다...(괴물??..) 다른 건 주관적인 묘사니 그렇다쳐도 특히 저, 여덟 "자"의 키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건지 다들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거다. 일단 지금 기준, "한 자 = 30cm" 인데, 이걸 저기에 도입해 버리면 이건 무슨 거의 골리앗을 넘어 진격의 거인이 되어 버린다. 당시 중국 후한의 도량형에서의 한 자(척)는 23.7cm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삼국지연의 내에서 여덟 자로 표현되는 장비, 제갈량, 여포, 허저 등의 키는 189cm 가량, 아홉 자로 표현되는 관우, 화웅, 왕쌍, 정욱 등은 213cm 정도가 된다.(하킴 올라주원ㅋㅋ) 당시 중국 성인남성의 평균 키가 140후반~150초반 이였던 점을 보면 엄청난 장신들인데, 이는 그들이 정말 크기도 컸지만 영양결핍 등으로 당시 사람들이 유난히 작았던 탓도 없지 않으며... 정말 키가 크다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사료에 남은 이들은 제갈량, 관우, 정욱 등등이 있으며 나머지는 아마도 신체검사 통해 정확히 측정된 수치라기보다 어쨌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키가 크다보니 어림잡아 표현했던 걸로 추정된다. 요즘은 잘 안쓰는 "8척 장신"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정확히 키가 8척이라기 보다 그냥 "키가 크다" 라는 감탄조의 대명사같은 격이라 아마 저들도 그런 표현이 붙었다 보여진다. '관우가 여든 두근의 청룡도를 휘둘렀다....'에서도 저 당시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인 600g보다 적어서 대략 200g이 좀 안되었기에 실제 청룡언월도는 대충 18kg가량으로 보지만 일단 청룡언월도는 당시 실존한 무기가 아닌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다루겠음. 일단, 저런 단위 부분에서의 혼선은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저런 단위 관련 묘사들은 정사보다 주로 연의에서 많이 발견되고, 연의의 작가인 나관중은 삼국시대의 거의 1,100여 년 이후 사람이다보니 원이나 명 기준 도량형으로 쓰거나 하기도 했고 또 당시는 지금처럼 깐깐하게 굴지 않으니 고증이 좀 틀린들 딴지거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물들 이야기를 하는 틈틈이 이런 사건 or 이해도 높이는데 도움될 듯한 스토리들도 다루겠으니 많은 관심과 피드백 부탁 드립니다ㅎ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초여름 장마에 읽기를 바라는 시집
제목처럼 초여름 장마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시집 추천글을 들고 왔어요. 기재된 모든 시집은 순수문학이에요. 조금 더 대중적인 글을 찾는다면 맞지 않을 수 있어요. (ㅠㅠ) ** k=keyword 1. 포개놓은 접시처럼 단단하면서도 위태로운 장미의 꽃잎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겨누었는데 폭격이 시작된다 봄은 전방위적으로 와서 무작위로 쓸려내려간다 세계는 피의 정원 권총을 장미로 장식한다고 해서 총구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총구를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심장과 총구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장미 꽃다발에서 권총을 꺼내 누군가의 심장을 겨누는 시절은 갔다 -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널 사랑해 두 손을 모아 장미꽃을 바치며 널 사랑해 우리는 서로의 눈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지 권총과 장미 中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K  그득한 슬픔의 아름다움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속 세계는 무척 파랗고 그만큼 냉혹해요. 아무리 헤엄쳐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무거운 슬픔이 드러난 문장이 많아요.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선 또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에요. 이미지 묘사가 뚜렷해 장면이 절로 눈앞에 그려지곤 했어요. 느낌보단 주로 장면을 묘사해요. 그래선지 대체로 한편당 길이가 길어요. 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K 흐르는 고요함 오늘 추천한 다른 시집들과는 달리 조금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집이에요.  감정의 과잉을 나타낸다기 보단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시인만의 따뜻한 방식으로 포용하는 느낌. [황인찬의 시는 '도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표면적으로는 애초에 그 어떤 감정의 너울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듯 황인찬의 시적 주체는 격양되는 법이 없고 크게 절망하여 한탄하는 일도 없다. 그저 너를 지켜보는 것으로 나의 일을 다하였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상을 바라볼 뿐이다. 작품해설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박상수] 3.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쿰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청혼 中 「조이와의 키스」 , 배수연 K 음울한 동화 시집에선 '조이' 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자주 등장해요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적인 분위기의 표현이 많아요 문장이 파격적이라 입문용으로는 조금 힘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만큼 낭만적이기도 해요. 구체적인 사랑을 묘사한 순간이 많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 에 시를 적었어- , -조이의 굽은 손가락을 작은 지팡이처럼 걸어 잡고 한낮이 지나도록 앉아 있었다- 4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칼, 사춘기3 中 「사춘기」 , 김행숙 K 떠들썩한 미숙함 김행숙 시인의 첫 시집. 처음의 들뜸과 미숙함, 약간의 과도함이 잘 드러난 작품. 마치 처음 맞이한 사춘기처럼. 제목처럼 사춘기思春期 를 써낸 시가 많아요. 발칙하고 미숙한. 간혹 유령이 등장하는 시도 있는데,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고 재치있는 발상이 간혹 있어 흥미로웠어요. 5 열두 시간과 열두 시간이 똑같았다. 사랑은 어둠을 좋아했으므로 사랑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된다. 낮 中 「에코의 초상」 , 김행숙 K 짙은 사색의 흔적, 삼켜버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사랑 / [김행숙은 시쓰기를 “삶의 운동, 사랑의 행위”이라 말하며, “이 말썽 많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써오고 있다”고 한다.] 사춘기와 에코의 초상의 출판 년도 차는 11년 정도인데, 그 시간의 간극에서 작가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에코의 초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요. 그리고 죽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 '사랑'에 관해서도 긴 관찰을 통해 이야기해요. 미숙하고 옛 분위기가 드러난 문체의 시를 읽고 싶다면 사춘기를, 인간과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사색을 원한다면 에코의 초상을 읽어보길 권할게요. :) 출처ㅣ쭉빵, 프리저브드 플라워
정조의 비밀편지에 담긴 내용들.jpg
정조 대왕은 조선의 왕 중에서도 몹시 입이 험한 편이었는데 이 사실은 최근에 발견된 비밀 편지 299통으로 밝혀졌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서영보에게 "호로 새♡야!(胡種子)" 김매순에게 "입에서 젖비린내나고 사람 같지도 않는 놈이 경박하고 어지러워서 주뒹아리를 함부로 놀리는구나!" 황인기와 김이수에게 "이놈들이 어떤 놈들이기에 주뒹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서매수에게 "늙고 힘없는" 김의순에게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하고 졸렬한" 이노춘에게 "약하고 물러터진 X" 심환지에게 "갈수록 입조심을 안하는 생각없는 늙은이 같으니.." 그외에 개에 물린 꿩 신세’ ‘볼기까고 주먹 맞기’ 등의 속담도 마구 구사하였다 오장에 숨이 반도 차지 않았다" "도처에 동전 구린내를 풍겨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는다" 近日僻類爲뒤 쥭박 쥭之時, 有時有此無根之 말하다가 너무 빡쳐서 생각이 마땅한 한자가 생각이 안났는지 한글로 뒤 쥭박 쥭이라 적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편지를 쓰다가 중간에 呵자를 세번 써서 呵呵呵 이 단어의 의미를 찾자면 껄껄껄 요즘 식으로 하면 "ㅋㅋㅋㅋㅋㅋ" 그는 경연 중에 "경들에게는 더 배울것도 없다." 하며 경연을 폐지하기도 하였으며 신하에게 대놓고 "공부 좀 하시오."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담배를 정말 사랑하여 신하들의 빗발치는 금연 상소도 물리치고 끝까지 담배를 피웠으며 심지어 조선의 대학자들을 모여놓고 시험 주제로 담배를 내기도 하였다. 출처 조선의 한지워리어 ㅋㅋㅋㅋㅋ
리터널을 둘러싼 복합적 평가, "멋진 게임이지만, 너무 어려워!"
로그 라이크에 익숙하다면 '갓겜'이지만... 오랜만에 출시된 PS5 독점 타이틀 <리터널>이 유저와 매체로부터 복합적 반응을 얻고 있다.  오늘(4일) 기준, <리터널>은 92개 매체로부터 평균 86점의 점수를 기록하며 메타크리틱이 선정한 '전반적으로 호평받은 타이틀'로 분류됐다. <MLB 더쇼 21>(78점), <아웃라이더스>(74점) 등 비교적 저조한 점수를 받은 신규 콘솔 타이틀에 비하면 괜찮은 성적이다. <리터널>에 만점을 부여한 '디지털 첨프스'(Digital Chumps)는 "게임의 아이템 시스템과 랜덤 게임플레이 디자인은 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PS5 유저라면 반드시 해봐야 할 타이틀"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95점을 매긴 게임 인포머(Game Informer) 역시 "<리터널>의 여정은 공포스럽고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호기심과 놀라움을 불러온다"라고 호평했다. 리터널에 좋은 점수를 매긴 매체들은 '랜덤성'과 '세계관'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출처: 메타크리틱) 반면, 80점대부터는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진다.  비디오게임크로니클(VGC)은 "<리터널>의 구조는 매력적이지만, 난이도가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 취향에 맞다면 충분히 좋은 게임"이라고 평가했으며 워싱턴 포스트는 "어려운 난이도로 인해 게임을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많다. <리터널>의 구조는 다소 애매하게 느껴진다"라고 비판했다. 두 매체 모두 게임의 어려운 난이도를 꼬집은 셈이다. 어려운 난이도가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꼬집은 매체도 적지 않다 (출처: 메타크리틱) 유저 평가 역시 다소 복합적이다. 하얀 그림자 신호를 쫓는 '셀린'과 아트로포스 행성 등 <리터널>의 세계관과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로그라이크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겐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특유의 반복적 구조로 인해 7만 원을 웃도는 게임 가격이 비싸게 느껴진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면, 로그라이크에 익숙한 유저들은 호평 일색이다. 셀린이 죽을 때마다 계속해서 변하는 행성은 다양한 즐길 거리를 선사하며, 탄막 슈팅을 연상케하는 전투를 호평하는 이도 보인다. 이에 더해 PS5의 듀얼 센스를 제대로 활용했다는 평가도 다수 존재한다.  정리하자면 <리터널>은 잘 만든 게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로그라이크 장르에 익숙치 않은 이에겐 다소 버거운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매체는 물론 유저들 사이의 평가가 다소 엇갈리고 있는 이유다. 관련 기사: PS5 독점작 리터널, 이보다 재미있는 반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