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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용법

분노사용법 분노는 정신을 집중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그러나 분노가 정의의 부름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다. 분노가 칼이면 정의는 칼집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를 다스리지 않으면 분노는 자신을 해치고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다. 공허의 늪에 빠진 분노는 우울을 낳고 우울은 상처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그러니 분노는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칼이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꺼낼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는 것이고 분노를 삭이는 것은 잘 다져서 단련하고 제련하는 것이다. 우울과 상실은 존재의 의미를 포기하는 것이오, 그것은 정의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미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부정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인간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는데서 비롯된다. 인간의 정신은 자연에서 비롯되고 자연은 생사의 조화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 희노애락과 애오욕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 인생을 사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아니면 착각이거나. 인간의 도리를 찾지 않으면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자신이 살아갈 이유와 싸워야 할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현실을 부정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편부당한 불의에서 오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와 도의를 저버린 인간에게서 분노가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 분노가 향하는 방향을 잘 찾아보면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를 향해 있으면 정의로운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정당한 것이다. 인간이 부당한 일에 분노하지 않으면 불의는 계속되고 악인은 흥성한다. 자연의 조화가 그런 것이다. 둘 중에 하나가 소멸할 때까지 싸움은 계속된다. 인류는 아직 짐승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러니 분노하지 않는 것은 짐승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불의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은 비겁하다.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감추는 것은 병을 만든다. 정신을 갉아먹고 우울에 지배당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인간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없고 지배해서도 안된다. 그러니 정신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분노하라. 어떠한 속박에도 얽매이지 말라. 자유는 분노할 필요가 없을 때 나오는 것이지 이리재고 저리재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노는 생의 동반자이자 삶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분노하지 않고 우울해지는 것이 더 위험하다. 분노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내가 왜 분노하는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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