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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을 가게로 끌어들인 ‘167년의 경영 전략’



재팬올 서포터즈인 선설아씨가 일본 방송프로그램(‘캄브리아 궁전’, ‘가이아의 새벽’)을 모니터링 하고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에는 4월 4일 ‘캄브리아 궁전’에서 방송된 만쥬(饅頭) 기업 카시와야(柏屋)의 성공 비결을 전합니다.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일하는 선씨는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편집자주>



후쿠시마의 명물, 일본 3대 만쥬(饅頭), 창업 167년. 일본 음식을 잘 아는 일부 한국 독자라면 “아~ 그 가게”라며 무릎을 칠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독자는 후쿠시마가 주는 ‘기피 이미지’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 만쥬(만두)는 팥앙금 등을 넣은 달콤한 빵 또는 떡을 말한다. ‘캄브리아 궁전’에 소개된 회사는 만쥬(饅頭)를 만들어 파는 카시와야(柏屋)라는 곳이다.

카시와야가 창업한 건 1852년, 올해로 창업 167년을 맞았다. 창업주는 혼나 젠베이(本名善兵衛)라는 사람이다. 지금은 5대 째인 혼나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카시와야는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27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매출은 40억원이라고 한다.

카시와야의 만쥬는 곧 ‘우스카와 만쥬’(薄皮饅頭)다. 얇은 피 안에 적당히 단맛을 내는 팥앙금이 가득차 있다. 식감과 맛이 좋아 지역 주민에게 인기가 높다.

이 가게가 167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혼나 사장은 “지역 주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 카시와야의 ‘행복 경영술’이 숨어있다. 이 회사의 지역 친화 전략 2가지를 든다면, 월1 회 개최하는 차 모임과 시 모임이다.

‘마을의 툇마루’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카시와야는 매월 한 차례 아침 6시부터 차 모임을 연다. 이른 새벽부터 30명 이상의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다. 이 모임에는 우스카와 만쥬와 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참여자는 학생,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이른 아침에 차 모임을 여는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만쥬를 먹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만쥬 먹는 기회를 더 제공하겠다”는 것이 카시와야의 생각이다.

카시와야는 월 1회 시 모임도 열고 있다. 1958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6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시 모임은 아이들을 주대상으로 한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과 점포가 함께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차 모임, 시 모임 외에 매년 만쥬 축제도 개최한다. 점포 내에서 만쥬 만들기 체험을 하고 무료로 나눠준다.

카시와야가 전국에서 유명해진 건 점포 옆에 만쥬신사(萬寿神社)를 만들면서다. 1957년의 일이다. 경내에 20톤이나 되는 큰 만쥬 모양의 바위를 갖다놓았다. 한자 만수(萬寿)는 만두를 뜻하는 만쥬와 서로 통한다.

이해를 돕자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케 구보타 만쥬(久保田 萬寿)를 생각하면 된다. 한자 만수(萬寿)는 장수, 축복, 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민들은 이 신사를 ‘파워 스폿’(power spot: 기운을 받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지역주민들에게 사랑 받았던 카시와야도 몇 번의 폐업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1986년 태풍으로 홍수가 발생해 공장이 전부 침수됐다. 2011년 3월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후쿠시마 음식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영도 치명타를 입었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사업은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카시와야의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 봤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영업을 재개 했을 때, 손님들이 다시 와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가게로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다행이네요’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 겹도록 기뻤습니다.”

카시와야의 이런 모습은 사훈(社訓)과도 일치한다. 초대 사장이 만든 ‘진심으로 감싼다’(まごころで包む)이다. ‘감싼다’는 말에는 회사가 고객을 감싸는 것, 고객이 회사를 감싸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혼나 사장은 사원들에게 히트상품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가 남다르다.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트상품이나 붐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처음에는 히트치지 못해도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재난을 극복해 오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준 카시와야(柏屋)와 지역 주민들. 단언컨대, 카시와야 만쥬의 맛은 ‘달콤함’에 있지 않고 ‘정겨움’에 있지 않을까. <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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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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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보고싶네... 어찌나 예쁘게 만들어놨는지... ^^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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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인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모티브로 한 시가현의 '미호 미술관(MIHO MUSEUM) 전경. 작은 사진은 미술관 설계자 중국계 건축가 이오밍 페이. 일본 최대 호수 비와코 남쪽에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 이 산 기슭에 ‘미호 뮤지엄’(MIHO MUSEUM) 자리 잡아 도연명 ‘무릉도원’ 모티브...미술관 설계 중국계 건축가 별세 교토 인근 시가현(滋賀県)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琵琶湖, 비파호)가 있다. 비와코 호수 남쪽 지방에는 여러 산들이 미니 알프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코난 알프스’(湖南アルプス)라고 부른다. 이 코난 알프스의 산중에 한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최고의 자연 친화적 미술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호 뮤지엄’(MIHO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5월 17일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미호미술관(MIHO MUSEUM)을 설계한 건축가 I.M. 페이씨가 5월 16일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삼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I.M. 페이(I.M. Pei)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를 말한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Louvre Pyramid)’는 알 것이다. 그걸 설계한 이가 이오밍 페이다. 중국 광저우 태생(1917년)인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마지막 모더니즘 건축가’로 불리며 1983년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터널과 다리를 지나면 신사모양의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photo=교토트래블닷컴(kyototravels.com) 그런 이오밍 페이는 일본에서는 미호 미술관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이 미술관은 주변을 둘러싼 자연 경관을 살리기 위해 건축 용적의 80%를 지하에 매설했다. 페이는 여기에 기하학적 무늬가 만들어내는 유리 지붕을 설치, 밝은 자연광이 쏟아지도록 했다. 그는 생전에 “내 작품의 열쇠는 빛(光)”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호 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은 컨셉트에 있다. 다름아닌 무릉도원(桃源郷). 시가현 박물관협회에 따르면,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의 시집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티브로 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터널과 다리에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 미술관이 개관한 건 1997년 11월. 특이한 건 미술관을 만든 주체가 신주슈메이카이(神慈秀明会, 신자수명회)라는 종교단체라는 것. 이 단체를 이끌던 코야마 미호코(小山美秀子)라는 사람이 수집한 전 세계 국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코야마 미호코는 1987년 건축가 페이와 만나 미술관 구상에 착수(1991년), 1997년에 결실(개관)을 맺었다고 한다. 2017년 루이비통이 ‘크루즈 패션쇼’를 여기서 개최하면서 미호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5월 17일, 중국 언론을 인용 “페이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사망했다”며 “그의 죽음은 아들인 건축가 리 청 페이(Li Chung Pei)에 의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상생 인터뷰/ 안녕하세요 재패니스트 민태규입니다
재패니스트와 (주)투어핏을 운영하는 민태규 대표가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photo= 재팬올 재패니스트와 (주)투어핏을 운영하는 민태규 대표 그는 '여행박사'에서 만 12년을 일한 '일본전문가'다 2016년 11월 독립법인을 만든 그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서울 성북구청이 1인 창조기업 지원센터를 만든 건 2011년이다. 말 그대로 1인 창업자들을 위한 자립 기반 공간으로, 어플리케이션, VR AR컨텐츠, 게임, 쇼핑몰 등의 개발자들이 많이 입주해 있다. 공간 제공은 성북구청이, 육성 프로그램의 지원은 서울중소벤처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이 하고 있다. 2016년 중견 여행사 ‘여행박사’에서 중간간부로 잔뼈가 굵은 일본전문가 민태규씨도 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여행사 4곳을 거친 베테랑인 그는 더 이상 월급쟁이로 남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몇 년을 방황했다고 느낀 그의 당시 심정은 비장했다. 그의 여행 사업 아이템을 센터측이 오케이 했고, 그해 11월 법인을 설립하고 둥지를 틀었다. 일본전문가를 뜻하는 재패니스트(japanist) 브랜드를 운영하는 여행사 ㈜투어핏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투어핏은 일본 차량 여행(가이드)&맞춤여행 전문 여행사다. 재팬올 ‘상생 인터뷰’의 이번 주인공은 투어핏의 민태규(44) 대표다. 앞서 인터뷰한 투어베이(Tourbay) 서보택 대표의 추천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사를 찾아가는 재팬올의 ‘상생 인터뷰’는 추천 방식으로 이뤄진다. <편집자주> # 구청 창조기업 지원센터에 입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입구역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투어핏을 찾은 건 5월 2일 오후 2시다. 빌딩 6층에 들어서자 성북구 1인 창조기업 지원센터로 통하는 문이 보였고, 곧장 안으로 향했다. 파티션들이 촘촘하게 구획 정리돼 있고,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센터엔 1인용 공간 이외에 사무실 전용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투어핏은 현재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푸근한 인상의 민태규 대표가 먼저 공간 이야기를 꺼냈다. “입주 심사가 간단치는 않습니다. 사업계획서와 인터뷰가 통과돼야 입주가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여행도 모바일 시대’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해서 입주하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처음엔 저도 1인용 파티션 공간에 입주했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서 지금은 ‘졸업’했지만 성북구청의 배려로 더 넓은 사무실 공간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이곳 센터의 메리트(장점)는 월 사용료가 없다는 거죠. 게다가 각종 편의시설도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독립법인 창업자들에겐 매달 나가는 사무실 임대비용 한 푼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민태규 대표는 그런 비용을 고스란히 줄이고 있는 셈이다. 민 대표는 현재 일본 여행상품 사이트 재패니스트(www.japanist.kr)와 법인인 ㈜투어핏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재패니스트라는 브랜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패니스트와 투어핏 “사실, 법인명은 (주)투어핏인데 ‘일본 전문가’라는 의미로 학창시절부터 사용하던 메일 주소 ‘재패니스트’로 도메인을 사고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재패니스트 홈페이지를 보고 들어오는 고객들은 모두 일본 여행지를 찾는 손님들입니다. 일본 거래처에 명함을 줄 때는 투어핏보다 재패니스트를 강조합니다.” 재패니스트는 일본 고객용이라는 얘기다. 투어핏을 별도로 운영하는 건 아내를 돕는 차원도 있다고 한다. 아내 역시 ‘여행박사’ 출신이다. 2007년 신혼 때 민 대표가 여행박사 오사카 지점장으로 발령 났을 때 아내도 동행하며 퇴사했다. “재패니스트는 ‘일본 한정’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법인명은 투어핏(Tour FIT)으로 별도로 정했습니다. 아내가 지금은 포털사이트에서 맘카페 매니저(운영자)를 하고 있어요. 회원들이 꽤 많은데, 제가 엄마들의 여행 상담이나 답변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일본만 한정하면(재패니스트) 범위가 줄어들기 때문에 폭 넓게 투어핏 차원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여기 사무실에 나온 건 최근입니다. 제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죠.” 재패니스트 홈페이지의 일부. # 첫 직장 여행박사와 퇴사 민태규 대표는 올해로 영업 3년 째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친정인 여행박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여행박사는 12년간 근무한 민 대표에게 일종의 ‘전관예우’를 해주고 있고, 민 대표 역시 판매대리점 자격으로 여행박사의 모객에 힘을 보태고 있다. 투어핏은 여행박사 외에 하나투어, 모두투어의 판매 대리점도 맡고 있다. 대화는 민태규 대표의 본격적인 인생 스토리로 이어졌다. 민 대표는 대학(한국외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졸업 전 일본 배낭여행을 두루 다닌 그야말로 베테랑 일본전문가다. 그가 여행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건 2001년, 졸업을 하고서다. 첫 직장은 한 해 전에 설립된 ‘여행박사’였다. 이 회사 창업주 신창연 대표와는 졸업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신창연 대표는 여행박사가 생기기 전, 한국고속해운 서울사무소장을 지냈다. 당시 졸업 전이던 ‘학생 민태규’는 신창연 대표의 큐슈여행 가이드북 독자로 인연을 맺고,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신 대표의 큐슈여행을 소개하는 등 그를 도왔다고 한다. “2000년 어느 날, 신창연 사장님이 ‘태규씨 나, 한국고속해운 그만두고 여행사 하나 차려’라고 말씀하셨어요. ‘여행사 이름이 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여행박사’라는 겁니다. ‘밥 한번 먹자’고 해서 찾아 갔더니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겁니다. 2001년 1월 대학을 졸업(그는 94학번이다)하면서 여행박사의 5번 째 직원으로 입사했죠. 신기하게도 1년 만에 직원이 50명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당시 여행박사는 업계에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이른바 ‘잘나가는’ 여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민 대표는 그런 여행박사에서 만 12년을 채우고 13년 째인 2012년 이직했다고 한다. 회사를 옮긴 건,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 여행업계를 송두리째 삼킨 동일본대지진이 퇴사의 진앙지였다. “2009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행박사에서 일본 비중(매출)이 70% 이상이었습니다. 일본지역 담당 직원이 200명 가까이 됐죠. 그런데 대지진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당시 일본여행을 가겠다는 고객은 ‘제로’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걸려오는 고객 전화에 환불해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죠. 회사로서도 위기 탈출을 위해 무급 휴가도 실시했었죠. 그러면서 일본 직원이 ‘최소화’됐어요. 그럴 즈음 ‘이 기회에 일본 이외의 지역을 좀 키워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제가 당시 대양주팀을 맡았는데, 일본 담당 후배들을 데리고 해보니 실적이 좋을 리가 없었죠.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더 이상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민 대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12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소개나 추천으로 들어간 회사들에서 근무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당시 상황은 힘들었지만 나름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결정을 했어요. 소개 받아 다른 회사 팀장자리 찾으면 되겠지만 2, 3년 안에 똑같은 ‘도돌이표 인생’이 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내 일을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여행박사를 나온 후 ‘4년 간의 경험’은 새로운 사업의 힌트를 제공했다. 가이드 패키지여행과 개별 자유여행의 틈새에서 렌터카 투어나 고급 료칸 투숙상품 등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차량(렌터카) 가이드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민 대표는 “일본 현지 가이드가 본인의 차량으로 유상운송하는 경우 불법적 소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합법화 모델을 연구해 찾아냈다”며 “큐슈를 넘어 6월부터 홋카이도를 대상으로 소그룹 맞춤 전용차량 가이드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 고객상담&맞춤여행&스토리 기획&성지순례 상품 이외에 민 대표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고객 상담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투어핏에 패키지 문의를 하시는 손님들께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여행박사 세 여행사의 상품을 가격, 질, 가성비 측면에서 비교해 드립니다. ‘비행 좌석 몇 자리가 남았다’는 메뉴얼만 되풀이하는 콜센터 방식 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사실, 맞춤여행은 정말 자신 있습니다. 제 이익과 손님 이익이 배치될 경우엔 반드시 손님쪽으로 맞춰 드립니다. 그걸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여행 상담을 하고 있죠.” 스토리가 있는 기획도 투어핏이 추구하는 파트다. 예를 들면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투어나, 일본의 농업/복지시설 시찰 투어 등이다. 민 대표는 “최근에는 CJ m.net의 마마(MAMA)촬영팀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진 현지방문 등을 기획해 준 적이 있다”며 일반 여행상품과는 다른 차별화 요소를 강조했다. 민태규 대표가 또 신경을 쓰는 것 하나가 성지순례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나가사키 성지순례 상품의 경우엔 직접 가이드로 나서고 있다. 아무리 현지 지식이 뛰어난 가이드라도 달달 외운 정보만으로는 신자들과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민 대표는 “아직 재패니스트와 투어핏의 고정수익이 크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은 ‘곧 고정수익이 커질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는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를 이런 말로 마무리 했다.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 일본 차량가이드와 렌터카 투어를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동남아에서도 쇼핑과 옵션이 없는 진정한 가족투어 프리미엄 상품을 소개해 갈 예정입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여행(투어핏), 일본여행에 대한 전문상담(재패니스트)을 원한다면, 아래 번호를 저장해 둬도 좋을 듯하다. ᐅ재패니스트 일본지역 전문상담(070-4820-0108), ㈜투어핏 (02)3274-0108, 홈페이지: www.japanist.kr (다음 인터뷰 대상은 민태규 대표가 추천합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기사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일본 도시재생’ 강의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 58)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일본의 마을 재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언어학자인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그는 한국에서 13년, 일본에서 13년 살았다 '한일 마을 재생' 강연장에서 그런 그를 만났다 “제가 61년생인데, 그렇게 나이 많은 것 같지 않죠” 순간 강의실에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60을 바라보는 외국인 남자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 그것도 유쾌한 유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5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한국과 일본 마을 재생의 비교 탐구’라는 흥미로운 주제의 강의가 열렸다. 강연자는 언어학자인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 58)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언어학자가 무슨 도시재생을 강의하지’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파우저 교수의 이력을 보면 '아~'하고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 서울 서촌 ‘한옥 지킴이’로 활동 파우저 교수는 이미 한국에서 꽤나 알려진 인물이다. 2008년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울대 최초의 외국인 교수(국어교육과)로 임명되면서 화제가 됐다. 2012년엔 서울 종로 서촌 체부동에 한옥(어락당:語樂堂)을 구입, 한옥 보존 활동을 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언론에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등 대표적인 외국인 진보인사 중의 하나로 평가받았다. 미시간주 앤아버가 고향인 그는 미시간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 전공했다. 일본어와의 인연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1948년까지 교토에서 미군시설 설계 일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GM에서 일을 했고, 그 이후엔 파이프 오르간 제조를 업으로 삼았다. 그런 아버지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건축이라고 한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파우저 교수에게 건물&건축&공간은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그가 살았던 한국 서촌의 한옥은 더 그러하다. 한옥 보존활동 과정을 담은 에세이 ‘서촌홀릭’(2016)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가 얼마나 도시재생에 관심을 뒀는지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파우저 교수는 1995~2006년까지 일본 교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후 2008년까지 3년 간은 규슈 최남단현에 있는 가고시마대학에서 일본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언어적 소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2014년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난 그는 “지금은 보스턴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 생활 “제가 한국에서 13년, 일본에서 13년을 살았습니다.” 파우저 교수의 이어지는 말에 이번엔 ‘와~’하는 소리가 강의실을 메웠다. 센터 2층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지역 주민, 학생, 일반인, 전문가 등 50여 명의 사람들이 강의를 경청했다. 파우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오사카부의 미노시, 히로시마현의 오코노미치, 후쿠야마시의 도모노우라 지역에서 진행됐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사례를 한국과 비교, 소개했다. 일본에서 도시재생 개념이 탄생한 건 1997년 무렵이다. 오사카부의 미노시에서 첫 지자체 단체조례가 만들어지면서다. 2000년경엔 일본 전역으로 확대됐다. 한국과 일본은 도시재생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파우저 교수는 “한국에서는 도시재생이 재개발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관(官)이 주도하고 주민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지 않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주민과 NPO(비영리단체)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 때 NPO법이 법제화됐어요. 4명이 모이면 NPO를 만들 수 있고, 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정부나 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파우저 교수는 “망가트리는 재생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재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의 다음 단계는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것. 파우저 교수는 “시장경제 원리를 이용해 재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일본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서촌 일대 상가는 당시나 지금이나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임차인이 나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문제화 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체부동에 살 때 갑자기 세탁소가 없어지더라. 그러곤 생기는 게 맥주가게였다”고 말했다. 그가 13년 간 살았던 또다른 고향 일본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어느 정도일까. 파우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거품경제 시절에는 빌딩 가격이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고정돼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가 뛰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한국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하지 않는거죠.” 파우저 교수는 강의의 결론으로 “주거와 상업이 공존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사실 일본은 그게 좀 돼 있다”며 “사람이 있어야(와야), 또 장사가 돼야 마을이 재생된다”고 말했다. # 활력 없는 도시는 자기 멸망의 씨앗 2시간에 걸친 파우저 교수의 강의는 흡인력이 있었다. 외국인임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고 공감대도 컸다. 도시재생에 대한 파우저 교수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어 ‘서촌홀릭’이라는 책을 손에 잡았다. 파우저 교수는 도시 평론으로 유명한 제인 제이콥스가 쓴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다음과 같다. <지루하고 활력이 없는 도시는 자기 멸망의 씨앗밖에 될 수 없다. 반면에 활기차고, 다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는 자기 재생의 씨앗이 될뿐만 아니라 사회가 전체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재팬올 기사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소프트뱅크vs 라쿠텐...차량공유 시장의 '돈줄'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우버(Uber)의 최대주주 우버 라이벌 리프트(Lyft)의 최대주주는 라쿠텐 일본 이동통신시장 이어 차량공유 시장 대리전 세계 최대 차량호출 서비스업체 우버(Uber). 그 우버를 쫒아가는 라이벌 리프트(Lyft). 두 회사는 출자 면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다. 회사 형태는 글로벌이지만 중심 돈줄이 ‘일본’이라는 것. 우버의 최대주주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로, 지분 15%을 갖고 있다. 리프트는 우버(2008년) 보다 4년 늦은 2012년 로건 그린(최고경영자,35)과 존 짐머(사장,34)가 공동 창업했다. 대학 캠퍼스를 이동하는 카풀이 모델이다. 당시 로건 그린은 다른 도시의 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차를 얻어 탔던 경험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차량 공유업체 2위 리프트는 그동안 우버에 가려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우버가 소프트뱅크,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리프트는 돈을 끌어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로건 그린과 존 짐머은 2015년 일본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楽天)과 접촉했다. 이와 관련, 닛케이 아시안 리뷰(Nikkei Asian Review)는 “라쿠텐은 2015년 이래 리프트에 7억 달러를 투자했고 지분 13%를 보유하고 있다”(Rakuten invested $700 million in Lyft since 2015 and held a 13% stake)고 했다.(4월 1일자) 미키타니 히로시가 이끄는 라쿠텐이 리프트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지분 5%가 넘는 리프트의 주요 주주로는 ᐅ라쿠텐(13.1%) ᐅ제너럴모터스(7.8%) ᐅ피델리티(미국 자산운용사, 7.7%) ᐅ앤드리센 호로위츠(실리콘밸리 IT 벤처 투자사, 6.3%) ᐅ알파벳(구글 모회사, 5.3%) 등이 있다. 리프트에는 현재 150여 투자자(사)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프트뱅크와 라쿠텐이 우버와 리프트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손정의와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은 우버와 라쿠텐을 앞세워 ‘차량공유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전자상거래 업체로 힘을 키운 라쿠텐은 이동통신업계에도 진출해 소프트뱅크, NTT도코모, KDDI와 함께 '빅4'를 형성하고 있다. 창업은 뒤졌지만, 기업공개는 리프트가 먼저 했다. 리프트는 3월 29일 기업공개(IPO)를 통해 뉴욕증시 나스닥에 상장했다. 첫날 주가는 공모가(주당 72달러)보다 8.74% 뛴 78.2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리프트의 시가총액은 222억 달러(약 25조원)로 추산된다. 상장 3일 뒤인 4월 2일 ‘비즈니스인사이더 재팬’은 “라쿠텐은 리프트의 주식 3140만주(13%)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며 “그 가치는 26억 달러에 달한다”(楽天は3140万株近く、約13%を保有、その価値は26億ドル)고 전했다. 리프트의 성공적 상장으로 라쿠텐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됐다. 일본 영자매체 재팬투데이는 5월 10일 “리프트의 지분 이익이 반영돼 라쿠텐의 1분기 영업이익이 4배 뛰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우버는 주식시장 데뷔에서 주춤했다. 우버는 리프트 상장 40여 일 뒤인 5월 10일, 예상했던 주당 50달러보다 낮은 45달러의 공모가로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리프트와 달리 첫 거래일에 우버는 공모가에서 7.62% 하락한 41.5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상장 시점 기준, 우버의 시가총액은 697억 달러로 평가됐다. 우버와 리프트의 주가 행진에 따라 소프트뱅크와 라쿠텐, 두 경영자의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집밥] 만두 빚기&동그랑땡&순두부
만두 빚기 & 동그랑땡 날이 좋아 빚었다 o(^^o)(o^^)o 날씨 핑계삼아 ㅋ 내.멋대로 만두 빚기 ㅎㅎ 엄마랑 같이 빚음 가득 채워 빚은거 같은데 찌고나니 엉성한거 같은건 느낌 탓이겠지...ㅎㅎ 만두피 한팩만 사서 속 남음 부추(파스타면 삶을때 면 잡기 기준)2번 파 한줄 두부 반모 부침가루 뻑뻑 해질 정도 계란 한개 추가.후 반죽해서.구음 부침가루 추가 해서인지 간이 짭쪼름 함 찌는 중 만두는 다 익어가면 부풀어 오름 잘 쪄짐 모양은 제각각 재료 준비 시작 간.돼지고기 밑간 후 볶음 볶기 전 애정하는 참기름. 한바퀴 두름 판매자분 깨.로스팅 장인 임 마늘 가득 넣어 쉐키쉐키.볶아.줌 숙주 데치고 두부 물기 짜서 으깨.줌 파.볶아서 추가 당근은 짜투리가.좀 있어 다져서.넣음 숙주 부추 잘라서 추가 계란.두개 당면 잘라서.추가 참기름.한바퀴.두루고 쉐키쉐키 섞어.줌 먼가 허전하더니 김치 빠트림 준비 완료 여러 모양으로 빚음 남은 속 동그랑땡 만듬 굽기 테스트 하며 한번 굽고 끝~~~~ 오늘도.잘.먹었습니다ヾ(๑╹◡╹)ノ" 이틀째라 이쁘게 피는 중 그리고 마무리는 하얀.순두부 만두피 사러가서 순두부 팔길래 한팩 구매 세상에나 진짜 나 두부순이 답다 ㅎㅎ 무 넣고 맑게 국물내서 순두부에.부어 양념장.넣어.먹으니 캬~~~~~~몹시 배부름 담백하니 아주 맛닜었다는 얘기 ㅎㅎㅎ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는 일본 전자기업들
일본 전자기업들이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①파이오니아(홍콩펀드) ②샤프(대만 홍하이) ③도시바의 백색가전(중국 메이디) ④도시바의 PC부문(대만 홍하이) ⑤파나소닉 자회사 산요전기 백색가전(중국 하이얼)⑥ 가전양판 라옥스(중국 쇼녕전기) 등이다. ᐅ파이오니아(2018년)/ 홍콩펀드 가장 최근의 사례는 파이오니아다. 일본 음향기기 제조업체 파이오니아는 3월 27일,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상장 폐지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홍콩펀드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으면서다. 파이오니아는 1938년 마츠모토 노조미(松本望:1905~1988)라는 사람이 설립한 회사다. 고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마츠모토 노조미는 1937년 일본 최초로 다이나믹 스피커 Aー8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1938년에는 ‘복음상회전기제작소’(福音商会電機製作所)를 설립했고, 1947년에는 ‘복음전기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다. 1961년에는 회사 이름을 Aー8의 상표였던 ‘파이오니아’로 다시 바꿔 오늘날에 이르렀다. 파이오니아는 세계 최초로 50인치 대형 플라즈마 TV를 만든 회사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NEC(일본전기)에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사업을 인수하면서 사업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그 인수는 소니에 디스플레이 공급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소니는 LCD 액정TV에 집중하고 플라즈마 TV에서 철수해 버렸다. 그러면서 파이오니아는 돌연 공급처를 잃게 됐다. 또한 플라즈마와 LCD액정 싸움에서 액정이 우위를 점하면서 플라즈마에 주력하고 있던 파이오니아의 실적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파이오니아는 샤프, 혼다, 미쓰비시화학의 자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실적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난해(2018년) 12월 홍콩펀드인 ‘베어링 프라이빗 에쿼티 아시아’(BPEA)의 완전 자회사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ᐅ샤프(2016년)/ 대만 홍하이 해외매각 사례 중 샤프의 경우는 일본으로서는 뼈아팠다. 샤프는 텔레비전 사업 부진으로 2012년부터 경영위기에 빠졌다. 샤프 측은 당초 일본 민관합동펀드 운영사인 산업혁신기구(産業革新機構)가 회생을 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대만의 홍하이(鴻海精密工業: 통칭 폭스콘)가 산업혁신기구보다 더 많은 인수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 홍하이는 ᐅ사업체를 팔지 않고 ᐅ직원 고용을 보장하며 ᐅ경영진은 그대로 둔다는 제안을 하면서 샤프 인수에 성공했다. 2016년 3월의 일이다. ᐅ도시바 백색가전(2016년)/ 중국 메이디 비슷한 시기인 2016년 6월, 도시바(東芝)의 백색가전 사업이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美的, Midea)에 넘어갔다. 메이디는 하이얼(海爾)), 하이센스(海信)와 더불어 중국 가전업계 3강이다. 샤프와 도시바의 매각엔 이런 배경도 있다. 당시 산업혁신기구(産業革新機構)는 도시바의 백색사업과 샤프의 백색사업을 통합하는 플랜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 홍하이가 샤프를 인수하면서 도시바의 백색부문은 공중에 뜬 상황이 돼 버렸다. 부랴부랴 급하게 정해진 인수 파트너가 중국 메이디였다. ᐅ도시바 PC 사업(2018년)/ 대만 홍하이 대만 홍하이의 매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홍하이 산하의 샤프는 2018년 6월, 도시바의 PC 사업 인수를 발표했다. 4개월 뒤인 10월에는 절차를 완료했다. ᐅ파나소닉 산요전기 백색가전(2011년)/ 중국 하이얼 중국 최대 백색 가전업체 하이얼(海爾)도 손길을 뻗쳤다. 2011년 10월 파나소닉 자회사의 산요전기(三洋電機)는 하이얼에 백색가전부문을 매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듬해인 2012년 1월 매각이 성사됐다. 현재 하이얼은 ‘아쿠아’라는 브랜드로 일본시장에서 영업 중이다. ᐅ가전양판점 라옥스(2009년)/ 중국 쇼녕전기 10년 전엔 일본 가전양판점도 중국 손에 떨어졌다. 라옥스(LAOX)다. 2000년대 이후 일본 가전양판점업계의 경쟁이 심화됐다. 결국 라옥스는 2009년 중국 전자제품 유통업체 소녕전기(蘇寧電器)에 매각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중국인 사업가 뤄이원(羅怡文)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라옥스는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양판점에서 면세점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때마침 전례없는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 붐이 불면서 ‘바쿠가이’(爆買い: 싹쓸이 쇼핑)가 성행했다. 라옥스가 중국인들의 싹쓸이 쇼핑 원조가 된 셈이다. 업종 변경과 ‘바쿠가이’로 라옥스의 실적은 그 이후 급상승했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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