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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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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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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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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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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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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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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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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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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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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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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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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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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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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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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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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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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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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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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5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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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문의 글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쓰셨다니 ㄷㄷ...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도 선 댓글 후 감상 갑니다!
잠깐 울었다가 다시 썼어요ㅎㅎ 선댓글도 고맙고 좋지만 읽으신 후 감상이 담긴 후댓글도 좋습니다ㅋ
덕분에 수퍼 메가톤급 카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최고!!
@nuklse 잠깐 울었다 썻다라는말투나 글 첫머리에 시부랄 말투나 해외실습간 울집 아들이 겹쳐지네요. 해서 더 보고싶어졌다는..ㅠ 이리 유머러스한데 왜 아직 총각?? 😆
어딘가에 조운이 되게 하얀 피부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엇던거 같은데... 근데 진짜 코에이는 삼국지 장수를 죄다 보그 모델처럼 만들어놓네여ㅋㅋㅋㅋㅋㅋ
대부분 상상에 의지할 수 밖에 없거니와 너무 진짜 그 당시 중국사람들처럼 그려놨다면... 저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게임이였을거 같아요ㅋㅋ
ㅋㅋㅋ 조운이 삼국지 인기 멤버라고? 조운이 누군데? ㅋㅋㅋ 그러다가 조자룡!!! 넘 반가운 이름 !!! 네 저 삼국지를 발로 보고 만화로만 봤어요 ㅋ 이제 본격적으로 주연급들이 등장하는군요 그러니 님의 필력도 폭발하는가봅니다 ㅎ 저도 님의 원글이 날라간게 아쉽습니다 원급의 감정적 파워는 더 했지 싶어요 ㅎ 조운에 대한 님의 애정을 듬뿍 담아서 ㅎ 정말 조운 넘 멋지네요!!! 실제 이런 사람 곁에서 보면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작아지는 것 같고 내 개인적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감히 못꺼내겠고 그저 나라와 대의를 위해 나도 그저 묵묵히 할일만 해야할것 같고 ㅎㅎㅎ 제가 아주 존경하는 은사님이 계신데 이분 같을까 하다가 이분은 적이 많아요 ㅠ 시기 질투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하는 질시가 많아서 음해도 많이 받으시고 ㅠ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났어요 역시나 이분도 공적인 삶은 아름답고 모범적이지만 내가 가까이서 이냥반 만나게되믄 그렇게 친근감 느끼고 편하지는 않을것 같아요 ㅋ 아 이분도 적이 많구나 ㅠ 그러니까 조운 참 대단하네요 아마 조운의 사료가 적은 것은 그만큼 나대지 않으면서 거슬리게 군것 없으니까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게 적어서일듯해요 사람들은 좋은 쪽으로보다 나쁜쪽으로 임펙트가 있는것을 더 잘 기억하잖아요 오늘도 수고 많이 하셨어요 참고로 전 조조 팬이에요 ㅎ 옛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조조를 마성의 카리스마초로 그려놨어요 ㅎㅎ 님의 글을 읽고 보면 삼국지 .. 끊임없이 덕후들을 양산할 만한 넘 매력적인 콘탠츠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오우.. 제가 연재를 시작한 이래 받아보는 가장 장문의 댓글을ㅋㅋ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데 이런 정성어린 댓글까지 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ㅎㅎ 원글이 날아가긴 했지만 차근차근 다시 거의 비슷하게 써서 괜찮아요 😔 그리고 삼국지덕후들이 은근 많다라는 생각을 저도 해보게 됩니다..ㅋ
육아무예 ㅋㅋㅋㅋㅋ 이 잼나는 표현을 아무도 지적안하네‥섭하구로‥ㅋ 잘 읽었십니다^^
글이 워낙 길다보니 그 네글자가 눈에 꽂히진 않았나봐요ㅋㅋ 뭐 이렇게 한 분이라도 보셨으면 된거죠
요즘 SNS는 좋아요만 받는다던데 싫은소리하면 차단하고 처단된다고 해서 무서워. 쎈소리하기가 그렇지만 큰 아량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먼저 글 잘쓰는 방법에 대해 김영하작가는 백업이라더군요. 다 날라가면(글이 새인가 날개가 있나봐) 꽝이니까 그리고 요즘 핫한 강원국작가는 고쳐쓰기라던데 뭐시 중헌디. 이분들은 돈벌이로 하는 거고 우리 작가님은 무상이라 시간도 없는데 칭찬에 목메여 우매한 독자를 살피는데 싸이되면 안되잖아 각설하고 음... 전(모두)편을 몇번 공들여 읽어보고 조운편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뭔지 모르게 내용이 없는 걸 쓰려해서인지 중언부언이요 횡설수살(?) 한듯 노심초사했으나 자중지란이랄까 마른 걸레를 짜내는 사채업자의 심정은 알겠는데 이럴 때 풍성한 잎보단 가지치기의 개운함도 있었으면... 글을 쓰는 목적이 전달이라면 상상력과 뛰어난 논리력보다 복잡한것을 단순화 하는 것 Simple is beautiful. 빠진 것이 없는 것보다 뺄 것이 없는지 삶은 즐겁고 세상은 아릅답게 새봄 단비같은 존재인 작가님 계속 부탁해요~~~
글에도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고 읽는 사람들의 성향 또한 다양하죠 저는 이 분 글 큰 장점이 소재의 풍성함이라 생각해요 내용이 형식미를 압도하는거죠 다듬고 정돈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풍성하고 멋진 밥상 옛날 조선일보의 이규태씨나 이어령 씨도 이런 식이셔지도 물론 그 분들은 공식 책과 신문에 기고하는 글이라 양을 조절하고 공적인 문체도 사용했겠지만... 여기서까지 이런 태클이시면^^;;; 그런데 앞에 항시백업의 태도 지적은 정말 맞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빙글서 장문의 글은 수정도 참 힘들어요 ㅠ
어익후 긴긴 정성과 마음 담아주신 댓글 고맙습니다. 싫은소리나 쎈소리도 나름이겠죠ㅎㅎ 그리고 글이 좀 길어지며 두서없는 탓에 보시기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원래 나름 짜임새있게 쓴다고 쓰긴 했는데 업로드 와중에 오류로 몽땅 날아가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다보니 짜증도 나고 허탈함도 섞이면서 좀 구성이 초고때보다 엉성해진거 같아요 T-T 앞으로도 지금같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ㅎㅎ
@sin6erela 오오ㅋㅋㅋㅋ저를 두둔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헌데 저런 젊잖은 비평이나 토론은 저도 환영이예요! 저런 글도 있어야 반성과 발전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ㅎㅎ 백업의 중요성은 이번에 절실히 체감했고... 여튼 두 분 의견 모두 제가 좀 두서없이 형식없이 쓴 글이라는 요지는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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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찰떡같이 말해줘도 개떡처럼 알아듣는 대일본제국
성형작약탄이라는 신통한 물건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루하니까 생략하고 폭발력을 사방으로 분출시키는게 아니라 한점으로 모아서 엄청난 관통력을 얻은 탄이라고 생각하면 됨 독일군이 발견하고 독일군이 제일 쏠쏠하게 써먹었다 가끔 2차머전 영화에 보면 뜬금없이 나치들이 존나 큰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게 성형작약탄임. 이렇게 멀리서 발사하는 형태도 있었지만 좀 더 구식인 형태로는 그냥 땡크 옆구리에 철썩 붙여서 터뜨리는 흡착지뢰도 있었다. 자석이 들어있어서 전차 옆구리에 갖다 붙이면 알아서 찰싹 붙는다. 이 상태에서 터뜨리면 아무리 두꺼운 양키나 쏘련 전차라도 구멍이 뚫리는 물건이다. 물론 개 위험하다. 전차말고 이거 들고 있는 불쌍한 나치 가 미친듯이 굴러다니는 탱크에 이거 붙이려고 개다리스텝으로 뛰어당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드물다. 뭐 그래도 독일은 이거라도 있어서 제법 괜찮게 버틴 편임. 태평양에서 미국 땅크들에게 고통받는 일본은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일본 친구들로 말할 거 같으면 미국 땅크는 지옥에서 올라온 디아블로 같은 존재였음. 땅크가 뒤지질 않아 일본은 양키 땅크를 잡으려고 폭탄 껴안고 궤도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관측창에다 총검을 쑤셔넣으려고 시도하고 심지어는 청산가리 유리병을 해치에 넣어서 안에 있는 양키를 독살하려고도 시도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얘네는 왜 탱크도 근딜로 잡으려고 지랄할까. 물론 기술력이 똥이라 그렇다.  이 꼴을 보다 못한 독일군이 저 모자란 놈들이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친구니까 도와주겠다며 흡착지뢰의 설계도를 보내준다 성형작약탄에 자석 붙이고 땅기면 되니 설마 아무리 멍청이들이라도 이걸 못 만들진 않겠지 싶었을 것이다 물론 못 만듬 2차머전 최대미개국 대일본제국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은 아닌가? 어케어케해서 성형작약탄 부분까진 만들었는데 자석을 못 만들었다. 보통 폭탄보다 자석이 더 만들기 쉬울 거 같지만 아무튼 그런 고로 폭탄을 들고 있어봐야 땅크한테 붙일 수가 없었음.  그래서 일본은 포기...하지는 않고 참으로 일본스러운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자석의 용도가 터질 때까지 땅크에 달라붙어 있는 용도가 전부라면 그걸 굳이 자석으로 할 필요가 없잖엉 인간한테 들고 꼬라박으라고하면 되지 그리하여 성형작약탄을 죽창 끝에다 달아서 탱크한테 찔러넣는 대전차죽창 자돌폭뢰가 개발된다. 사용법은 존나게 간단했는데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하고 지나가는 탱크에 달려들어 꼬라박으면 된다. 성형작약탄이라 관통력은 개확실하니 전차는 확실히 죽고 이거 들고 있는 새끼는 더 확실하게 야스쿠니로 즉시사출된다. 정말 일본스런 병기다. 뭐 여기까진 자돌폭뢰가 존나 유명하기도 하고 나무위키에만도 쳐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근데 잘 안 알려진, 존나 스케일이 큰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자돌폭뢰가 가끔 가다 로또샷 터져서 무적으로 보였던 양키 탱크를 잡는 모습을 보자 눈이 돌아간 윗대가리들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내놨다. 탱크도 잡는데 항공모함이라고 못 잡겠냐? 이 미친 놈들이 존나 큰 성형작약탄을 만들어서 항모에 꼬라박기로 한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일본은 열심히 카미카제로 양키 항공모함에 꼬라박고 있었지만 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온몸을 떡장으로 두른 항공모함에 쥐톨만한 비행기로 꼬라박아봤자 항공모함이 입는 피해는 페인트칠을 다시해야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음 왜냐면 비행기는 가볍고 가벼운 놈이 전속력으로 꼬라박아봐야 관통력엔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나치들이 보내준 신통방통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성형작약탄을 보고 이거라면 항모에 빵꾸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병신들의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근데 육지에서라면야 불쌍한 일본인 하나 골라서 성형작약탄 들고 꼬라박으라고 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어떻게 할 거 같음 당연히 카미카제죠 시바 보통 비행기도 아니고 존나 큰 폭격기를 통째로 개조해서 비행기 자체를 성형작약탄으로 만들어버렸다. 저기 등짝에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 보이냐? 저게 통째로 성형작약탄임. 이게 자랑스런 대일본제국의 일격필살항모격침병기 '벗꽃탄'이었다 물론 무인비행기는 당연히 아니다. 안에는 이 존나 큰 빅-성형작약탄을 항공모함까지 배달하는 불쌍한 파일럿이 들어있다. 이 새끼들 자폭 집착은 진짜 답이 없다. 이거 몇 대만 있으면 양키 함대는 모조리 용궁행 게이바로 보낼 수 있다며 득의양양하기 시작한 일본이었지만 이따위 곱추 비행기로 항모를 격침시킬 수 있는게 말이되냐며 상식적인 딴지를 건 사람도 있었음. 그래서 이 굉장하신 자폭무기가 항모를 한 방에 격침할 수 있다면서 쇼를 보여주기로 한다. 물론 실험목적이니까 미군이 아니라 지들 물건을 상대로 쇼를 해야 했음. 그래서 이 븅신들은 안 그래도 배 부족해서 난리인 주제에 항모 한 척을 통째로 벚꽃탄 실험용도로 날려버린다. 진짜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자폭무기 실험한답시고 지들 항모를 날려버렸다고. 뭐 일단 저렇게 존나 크게 만든 폭탄을 꼬라박았으니 일단 침몰하긴 했고, 일본 친구들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이 물건의 양산에 들어갔음. 그리하여 1945년, 항복이 임박한 일본인들의 절박한 기원을 담아 제작된 벚꽃탄들이 일제히 양키 항공모함을 목표로 날아오름 그리고 전부 가던 도중에 추락해서 행방불명됨 이 새끼 생긴 꼬라지 봐라 등짝에 저런 종양을 달고 멀쩡히 비행할 수 있겠냐 결국 항모 한 척을 꽁으로 날려먹고 수십대의 폭격기를 자폭무기로 개장해서 얻은 전과는 0였다 참으로 일본스런 결과였다. 찰떡같은 기술력을 전해줘도 개떡같이 알아먹는 놈들한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나 웃긴 반전이 있는데 이거 일본 육군에서 개발한 무기다. 해군이 아니라.  [출처 - 소녀전선2 마이너갤러리 고질라맛스키틀즈]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지스타 2019] 올해 지스타에서 눈여겨 볼 인디게임 5선
지스타에도 인디게임이 있습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앉아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스타에는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인디게임이 많이 있습니다.  열정이 가득 담긴 졸업 작품들이 모인 대학교 부스, 세계적인 인디 게임쇼 반열에 오른 부산인디커넥트(BIC) 부스, 창업진흥원과 구글플레이가 선택한 중소게임사의 부스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됐는데요. 대형 부스도 좋지만 이런 곳에서 숨은 보석을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기자는 지난 이틀간 이런 부스를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올해 지스타에서 파밍할 만한, 안 하고 가기엔 아쉬운 인디게임 5개를 뽑아봤습니다. 지스타에서 인디게임도 즐겨보자고요 =) 1. <시티 오브 라이어즈> / 동서대학교 <시티 오브 라이어즈>는 사고로 모든 것이 차단된 도시에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의 생존기를 그린 게임입니다. 도시의 모든 시민이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약을 먹지 않는 주인공을 집요하게 쫓는 로봇들을 피해야 하죠.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생존을 돕는 듯 방해하는 듯한 카우보이의 정체를 파악해가며 게임을 진헹하게 됩니다. 게임의 장르는 스텔스 생존 어드벤처입니다. 각종 지형지물을 활용한 기도비닉이 필수며 스태미너, 헝거, HP 게이지를 모두 신경써야합니다. 정체불명의 로봇으로부터 무작정 살아남으면서 앞서 말씀드린 스토리를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유니티 엔진 어셋을 적극 활용한 그래픽 퀄리티도 괜찮습니다. 게임을 개발한 박시태 개발자는 열심히 도망다니면서 중앙으로 가고 뭔가 먹으면서 계속 살아남아야 하는 <팩맨>의 콘셉트를 재현한 가운데 그 위에 SF 타입 스토리를 담았다고 합니다.  동서대학교 백창호, 박시태 개발자 2. <리플 이펙트> / 서강대학교 게임&평생교육원 <리플 이펙트>는 미국 카툰 느낌이 뚝뚝 묻어납니다.  유니티 엔진으로 만든 액션 슈팅 게임인데요. 여기에 쿼터뷰 탄막 요소가 적절하게 추가되어있습니다. 위의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평상시에는 쿼터뷰, 총을 쏠 때는 TPS 시점으로 바뀝니다. 플레이어는 간단한 조작으로 시점 변경을 할 수 있는데 괴리감은 없고 긴장감은 더했습니다. 카툰풍 그래픽 속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무기를 가지고 다양한 스킬을 조합하는 재미도 잘 녹아있습니다. 탄막 게임 특유의 패턴 파악을 통한 생존 요소도 잘 구현되어있었고 난이도도 높았습니다. 게임은 9월 BIC에서 첫 선을 보였고, 지스타 출품을 한 뒤에 스팀에 얼리억세스로 론칭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지스타에서 해본 인디게임 중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참,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 부스에는 스팀 화제작 덱 디펜스 게임 <래트로폴리스>도 있으니 한 번에 즐겨보시면 좋겠네요.  3. <드림캐쳐>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월요일 클래스' 팀이 만든 <드림캐쳐>는 짧은 분량의 3D 액션 게임입니다. 아이돌 지망생이 악마가 만든 악몽에서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3D 전투, 더빙은 물론 그림과 애니메이션까지 전부 직접 연출했다고 합니다. 서브컬처 매니아를 만족시킬 만한 귀여운 그래픽이 인상적인데, 특히 주인공이 마법소녀로 변신하는 씬은 압권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4가지 미션 중 하나를 선택해 스테이지를 진행하고 스킬을 강화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죠. 과연 우리의 귀여운 주인공은 악마를 물리치고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을까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부스에서는 미국 카툰 풍의 그래픽이 귀여운 <클라우디아>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들을 해보실 수 있습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강동민, 오예은 개발자 4. <스컬> / 사우스포게임즈 사우스포게임즈의 <스컬>은 올해 많은 주목을 받은 게임이죠. 게임은 BIC에서 아트상을 수상했고, 텀블벅에서 5,000만 원이 넘는 돈을 펀딩 받았습니다. <스컬>은 로그라이크 요소가 가미된 2D 플랫포머 액션 게임으로 꼬마 해골이 머리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액션을 펼친다는 색다른 기믹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은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색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고, 죽어서도 즉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 게임 개발 동아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사우스포게임즈는 올해 안에 스팀 얼리억세스로 게임을 출시한 뒤, 이후 콘솔 플랫폼으로 게임을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벡스코 야외광장에 마련된 BIC 부스에서는 <스컬>뿐만 아니라 <씨 솔트>, <프린세스 & 나이트>, <커피 타임> 등 BIC 출전작들을 체험해보실 수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가보세요.  5. <MazM: 페치카> / 자라나는씨앗 저는 여러분이 지스타에서 <MazM: 페치카>를 안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뒷 부분이 너무 궁금하거든요. '스타게이트' 부스에서는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등 문학 배경의 게임을 만들어온 자라나는씨앗의 새 게임 <MazM: 페치카> 시연 빌드를 해보실 수 있습니다. <MazM: 페치카>는 일제강점기 러시아 한인들의 투쟁과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입니다. 스토리텔링 게임으로 술술 넘어가는 스토리, 아기자기함과 사실감이 동시에 녹아든 아트,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죠 아쉽게도 시연 빌드는 특정 지점까지만 구현됐습니다. 그래서 뒷 부분이 너무 궁금합니다. <MazM> 시리즈를 즐겁게 하신 분들과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자라나는씨앗 부스에서 맛보기만 즐기시고, 내년 상반기에 나오는 정식 버전도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따발총을 든 소녀
이 사진은 도대체 누구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아마 알고 계실 텐데 당시 11월 초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촬영한 반소련 저항군 일원 중 하나이다. 이름은 Szeles Erika Kornélia, 셀레시 에리커 코르넬리어(참조 1)이다. (헝가리어는 성씨가 앞에 오는 거 알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디에 실렸는가? 덴마크의 오래된 주간지, Billed Bladet의 1956년 11월 13일자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촬영자는 Vagn Hansen. 문제가 있다. 잡지가 나온 11월 13일은 이미 셀레시 에리커가 목 뒤로 총을 맞아 사망한 이후였다(참조 2). 일단 셀레시 얘기부터 해 보자. 그녀는 1941년생이고 유태계 가족에서 태어났었다. 그래서 잠시 세이브더칠드런 덴마크 지부로 보내서 살려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덴마크어를 좀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연히(?)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했고 어머니가 무남독녀로 홀로 키워낸다. 당시 사정에 맞게 크고 나서는 고등학교까지 진학하지는 않고 조리학교에 들어간 다음, 한 호텔에 보조 요리사가 된다. 그당시 서너살 위의 한 오빠와 사귀면서 사상전향(?)이 일어난다. 유태계 집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상당한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딸인 에리커는 급격한 반공주의로 바뀐다. 그래서 당시 소련의 억압에 대해 반항했고 급기야는 반항군에도 들어간 것. 어차피 헝가리군을 당시 소련이 해체시켰기에 반항군은 군 출신도 많았다. 이때가 10대 중반, 헝가리 혁명의 시기인 1956년이다. 다르게 보면 스탈린 사망 이후, 헝가리가 간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아직 너무나 어린 나이인 15세여서 반항군 내에서는 에리커가 전투병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간호 보조로 역할을 바꾼다. 바로 그당시 Vagn Hansen을 포함한 덴마크 저널리스트들이 멋대로(외교관 차량을 위조(!)해서 들어갔다, 참조 3) 헝가리에 들어갔었고, 아직 편제가 바뀌기 직전의 에리커를 촬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리커는 수 일 후, 적십자 마크를 달고 쓰러진 반항군을 구하러 다니다가 소련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11월 7일이었다. -------------- 1956년 당시 에리커의 사진이 나온 잡지를 본 Henning Schultz는 이 소녀에 대한 동경과 사랑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도대체 이 따발총을 들고 다부진 표정을 한 소녀는 누구일까? 문제는 잡지 사진에 이름만 덩그러니 있다는 점이었다(참조 4). 과연 그 때 살아있기는 했을까? (답: 사망했다.) 에리커 사진에 대한 집념을 갖고 있던 그는 지리학자로서 은퇴한 이후인 2000년대 후반부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그 잡지를 여러 권 갖고 있던 그에게 있어 그녀는 일종의, 헝가리 혁명의 상징(참조 4)이었다. 슐츠는 헝가리 언론사와 정부, 박물관 등 여러 군데에 의뢰를 했고 그제서야 초등학교 동창, 포크댄스 그룹의 일원 등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에서야 자세한 신원을 알 수 있었다(참조 5). 2008년, 슐츠의 도움을 통해 사진 촬영가였던 Vagn Hansen은 공식적으로 이 사진을 포함한 헝가리 혁명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헝가리 역사 박물관 측에 기증한다(참조 6).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헝가리 혁명의 상징 중 하나가 됐다. -------------- 참조 1.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는 하다. 자유를 향한 '혁명의 순간' 사진으로 남았다(2016년 11월 7일): http://naver.me/FcUMXfsQ 2. The heroes of 1956: The girl, who was already dead when her photo went around the world (2016년 10월 17일): https://dailynewshungary.com/heroes-1956-girl-already-dead-photo-went-around-world/ 3. »Pressefotograf var det værste. Jeg ville være fin portrætfotograf på femte sal”(2005년 5월 25일): https://journalisten.dk/pressefotograf-var-det-vaerste-jeg-ville-vaere-fin-portraetfotograf-pa-femte-sal/ 4. "Vörös hajú, szeplős, zsidó származású kislány volt" - Rábukkantunk a forradalom titokzatos jelképére!(2008년 11월 2일): https://mazsihisz.hu/hirek-a-zsido-vilagbol/archiv/voros-haju-szeplos-zsido-szarmazasu-kislany-volt-rabukkantunk-a-forradalom-titokzatos-jelkepere 5. https://hu.wikipedia.org/wiki/Szeles_Erika_Korn%C3%A9lia 6. AJÁNDÉK DÁNIÁBÓL(2008년 3월호): http://fotomuveszet.net/korabbi_szamok/200803/ajandek_daniab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