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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만드느라 매년 ‘1200억리터’ 물이 동난다



청바지 즐겨 입으시죠? 연간 전 세계에서 제작되는 청바지 숫자는 무려 24억 장에 달한다고 합니다. 청바지 제작에는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는군요. 혹시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재팬올 서포터즈 선설아씨가 그 ‘정답’을 알려드립니다.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설아씨가 일본 경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선씨는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이번 회는 4월 9일 방송된 가이아의 새벽(ガイアの夜明け) ‘독점! 유니클로 혁명의 진실’편입니다. <편집자주>



유니클로(UNIQLO)는 1984년 히로시마에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라는 이름으로 처음 오픈했다. 현재의 유니클로라는 이름은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의 줄임말이다.

방송에 따르면, 유니클로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후리스’는 누계 3억 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이런 유니클로이지만 초창기엔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유니바레’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였다. 이 말은 ‘유니클로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들켜서(바레루:バレる) 부끄럽다’는 뜻이다.

하지만, 2003년 히트택, 2008년 브라톱, 2009년에 울트라라이트다운과 같은 기능성이 높은 히트 상품들을 출시하면서 현재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가이아의 새벽’에서는 3년 전 출시하여 선풍을 불러일으킨 유니클로의 간판 상품 중 하나인 와이어리스 브래지어와 유니클로가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상품인 청바지 개발 현장이 소개됐다. 지금까지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상징이었던 유니클로는 다음 2가지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①친환경적 청바지
유니클로는 지금까지 100종류 이상의 청바지를 개발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엔 고민도 있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 회장은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어렴풋이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는 변할 것이고, 그 날은 머지 않았습니다. 의류 업계의 미래에 위기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죠.”

방송에서는 청바지의 제작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됐는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물’이다. 전 세계에서 청바지를 제작하는 과정 중에 세척 작업에만 연간 1200억 리터의 물이 사용된다고 한다.

청바지의 색과 질감을 내기 위해 많은 약품이 쓰이고,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청바지 한 장 만드는데 평균 5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연간 전 세계에서 만드는 청바지의 숫자는 무려 24억 장. ‘24억 장×50리터=1200억 리터’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야나이 회장은 당초 ‘앞으로 지구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의류 비즈니스를 계속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

유니클로의 청바지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청바지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주로 만든다. 야나이 회장은 필요한 수작업과 약품처리를 레이저 머신으로 대체했다. 그러면서 청바지 세척에 사용되는 물의 양을 평균 91% 줄이는 데 성공했다.

②고객 피드백 신속 반영
기존에 출시되었던 유니클로의 와이어리스 브래지어는 고객평가 5점 만점 중 4.3점으로, 매우 인기가 좋았다. 이미 잘 나가던 상품이지만 유니클로는 더 많은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더욱 진화된’ 와이어리스 브래지어를 올해 1월 출시했다.

하지만 새로 출시한 와이어리스 브래지어는 기존 제품의 고객평가 보다 ‘1점 낮은’ 3.3점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신상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고객도 있었지만, 기존의 제품이 더 좋았다고 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유니클로는 이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신상품을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니클로 내부에서는 신속하게 신상품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도쿄 아리아케(有明)에 있는 유니클로 본사에는 한 층에 상품기획, 생산, 마케팅 부서가 집결돼 있다. 사내 도서관(리딩룸)에서는 여러 부서가 함께 모여 업무를 하는 등 속전속결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이런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 ‘해답’을 찾아냈다.

또 예전에는 고객의 클레임을 대응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고객센터도 고객 상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유니클로의 새 변화였다.

야나이 회장의 마지막 멘트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의지가 없는 한 절대로 살아남지 못합니다. 꿈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인생은 꿈이죠.”<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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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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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도 물을 많이 쓰고 있겠군요 ㅎ
그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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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12일, 도쿄의 궁성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퍼레이드식이 펼쳐졌다. 검정색 오픈카를 탄 일왕 부부는 길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퍼레이드에 사용됐던 오픈카는 그해 영국에서 4000만 엔에 구입한 롤스로이스 코니쉬 차종이었다. 3년 뒤인 1993년 6월 9일,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도 이 오픈카가 사용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내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가을에 역시 즉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롤스로이스 오픈카가 동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입한지 28년 동안 단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 차는 연식이 오래돼 현재 주행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국산차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굳혔다. 현재 외국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왕실의 공식 의전차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다. 즉위 퍼레이드에 사용되는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갖는다. 일본 전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이 퍼레이드용 오픈카로 도요타에 특별 주문을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의 차종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 1대: ‘영일 동맹’ 맺은 영국의 다임러 차종 선택 과거 일본 왕실에서 사용했던 차종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변해왔다. 왕실의 전용 의전차를 ‘어료차’(御料車: 일본어로는 고료샤)라고 한다. 왕실 전용차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大正) 일왕 때부터다. 당시 국가 원수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유럽에 조사단이 파견됐다. 다임러, 벤츠, 피아트 등 회사를 방문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영국의 다임러(독일 다임러와는 별개)였다. 다임러가 선정된 것은 당시 일본과 영국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동아시아 이권을 나눠 갖기 위해 체결한 조약)을 맺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12년 다이쇼 일왕 즉위식엔 다임러 란도레(Landaulet)라는 차가 사용됐다. 당시 영국 왕실도 다임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같은 모델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 차가 일본 왕실의 ‘1대 의전차’다. █ 2대: 왕세자 암살 미수에서 롤스로이스 유리창 뚫려 ‘2대 의전차’가 도입된 건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 차종 2대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롤스 로이스를 수입한 2년 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도라노몬’(虎ノ門) 사건이다. ... (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유니클로 X 띠어리 콜라보레이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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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 블루보틀과 도쿄 롯본기 블루보틀
<사진=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서울 성수동의 블루보틀 ‘그 호들갑스런 대열’에 합류해 보기로 했다. ‘그 비싼 커피를 굳이’ 마시러 갔다.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은 노(NO). 주말과 휴일은 피해 평일로 택했다. 애플 신상품을 ‘득템’하기 위해 밤을 새거나 장시간 기다리는 장면은 종종 들었다. 하지만 기껏 커피 한 잔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다. 아니었다. 오픈(3일)이후 그런 광경은 내내 벌어졌다. ‘커피계의 애플’. 스페셜커피 블루보틀 매장으로 찾아간 건, 8일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지하철 뚝섬역에 내렸다. 역에서 불과 50미터. 큰 붉은 벽돌 건물보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50여 명이 4겹 줄을 서서 대기 중. 건물 내부는 특별할 게 없다. 성수동 특유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 천장. 1층에서 대기하고 계단을 통해 지하1층 매장으로 내려갔다. 커피 데스크에 핸드드립기가 6개. 바리스타가 순서대로 즉석에서 ‘핸드드립’ 중. 아메리카노 기본(블렌드)을 주문했다. 5000원. 스타벅스의 숏사이즈(3600원) 톨사이즈(4100원)와 비교하면 꽤 비싼 편. ‘5’자가 주는 부담감도 크다. 평일임에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정확히 9시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다. ‘득템’. 커피 양은 스타벅스 숏사이즈의 절반. 한 눈에 봐도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는 ‘한약’같다고 했다.) 맛을 잠시 음미하는 사이, 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커피 취재를 온 잡지매체의 기자란다. 연배 어린 후배기자에게 인터뷰 당하는 영광을 누렸다. 블루보틀 맛에 대한 평가는 짧은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한다. “(‘커피 맛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스벅마니아’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한 잔씩.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다. 쌉싸름한 맛이 나쁘지 않다. 와인으로 치자면,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같은 적절한 산미가 느껴진다.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줄 서는 일만 없다면 다시 찾을 것 같다.” “(‘블루보틀 커피가 유명한 건 왜일까요’라는 질문에) 성수동에 1호점을 낼 것이라는 입소문을 낸 게 오래됐다. 금방 매장을 열 수도 있었겠지만 상당히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커피팬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켰다. 파란 병 로고에는 굳이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파란 병=블루보틀’이라는 인식이 커피 팬들을 줄 세웠다고 본다.” 30분 동안 매장을 지켜본 후 나왔다. 밖엔 여전히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한 시간 뒤. 블루보틀 잔향이 혀에 그때까지 머물렀다. 오전 11시, 혀를 헹구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편집인> (아래는 도쿄에 거주하는 정희선 객원기자의 롯본기 블루보틀 ‘맛 평가기’입니다. ) <사진=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커피 전문점.> #도쿄 롯본기의 블루보틀 <정희선 객원기자=일본기업 분석 애널리스트>커피 맛은 호불호가 강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에 블루보틀은 더하다. 내 경우, 유학 때문에 몇 년 미국에서 지냈지만 커피를 델리키트하게 느낄 정도의 ‘혀’는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커피 대국’ 일본에 와서 몇 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 혀’는 그대로다. 내 혀보다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을 평가하는 게 나을 듯하다. 그 친구는 쓴맛과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맛이 너무 강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내 ‘혀’는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블루보틀은 확실히 스타벅스 커피보다 신맛이 강해~” 나만큼 커피 취향이 ‘고급지지 못한’ 내 막내동생은 한 술 더 뜬다. 블루보틀을 마시고 나선 심지어 “한약 먹는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이런 ‘한약 같은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오는 한국 커피 마니아들이 많다. 여기서 또 취향이 갈린다. 한국 사람들은 오리지널 블루보틀이 아닌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라떼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당분간은 한국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 6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선 도쿄에 9곳, 교토에 1곳, 고베에 1곳이 있다. 해외진출에 나선 블루보틀이 (한국 제외)오직 일본에만 매장을 낸 이유는 뭘까. 또 유독 도쿄에 몰려있는 건 왜 일까. 일단 ᐅ일본이 ‘커피 대국’이라는 점 ᐅ도쿄 사람들의 취향이 고급화 되어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창업자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다.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창업자 제임스 프리맨(James Freeman)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래된 커피 가게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특히 도쿄는 더 그러하다”(I'm very deeply inspired by the old-fashioned coffee shops of Japan, and in Tokyo particularly)고 말한 바 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 뒷 골목에는 아직도 레트로(retro: 복고풍) 느낌이 나는 오래된 커피숍들이 많다. 이들 가게 대부분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방식으로 고객 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제임스 프리맨이 이런 분위기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임스 프리맨은 처음에 어떻게 블루보틀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왜 굳이 블루보틀이란 이름일까. 여기서 커피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683년 유럽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터키군이 빈(비엔나)에 도착했다. 적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인근 폴란드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터키어와 아랍어를 할 수 있는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라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폴란드 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터키군이 물자를 남겨두고 퇴각을 했는데, 그 더미에서 콩 봉지들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낙타의 먹이인줄 알았지만, 아랍에 살던 경험이 있던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는 그게 커피 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원군 요청 포상금으로 그 커피 콩을 매입, 중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블루보틀’(The Blue Bottle)을 개업했다. 비엔나 커피 문화의 출발이었다. 그 319년 후인 2002년, 클라리넷 연주가 제임스 프리맨이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그는 비엔나를 구한 프란츠 게오르그 코루시츠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차원에서 가게 이름을 ‘블루보틀’이라고 지었다. 제임스 프리맨은 평소 직접 원두를 구입, 매일매일 로스팅해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블루보틀이 유명하게 된 건, 그가 볶은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커피원두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다. 입소문이 나면서 블루보틀 커피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네슬레가 4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에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보틀 커피를 흔히 ‘제 3의 물결 커피’ (Third wave coffee)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 1의 물결 커피’(First wave Coffee)는 1990년대 이전의 베이커리에서 빵과 함께 파는 커피, 혹은 개인이 공간을 임대하여 파는 형태를 지칭한다. 커피의 퀄리티에 주목하기 보다는 1~2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하였다. 1990년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제2의 물결 커피’(Second wave coffee) 시장이 열렸다. 집,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퀄리티 높은 커피를 제공했다. 요즘의 가장 흔한 커피 전문점 형태다. 그러다 2010년 이후,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드디어 ‘제 3의 물결 커피’(Third wave Coffee)가 시작 되었다. 대표적인 가게가 블루보틀(Blue bottle), 필즈 커피(Philz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등 이다. ‘제 3의 물결 커피’의 특징은 스타벅스 보다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며, 차별화된 로스팅 기법을 도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제공하다는 것. 대부분의 ‘제 3의 물결 커피’ 전문점들은 1~2분 이내에 커피를 내리기 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니즈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 준다. 핸드드립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객이 보는 앞에서 맛깔나게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다. 획일화된 커피 맛에 지친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 3의 물결 커피’는 서부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제 3의 물결 커피’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성장보다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 3의 물결 커피’ 중에 해외진출을 한 브랜드는 블루보틀이 유일하다. 이상이 ‘한약 같은 커피’ 블루보틀의 유래와 성장기에 대한 내용이다.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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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시장에서 1부 시장 승격 기준 완화” “도쿄증권거래소가 내년 2부 시장에서 1부 시장으로의 승격 기준을 완화할 전망”이라고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가 12월 3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거액 손실로 인한 자본 잠식 탓에 2부로 강등된 도시바(東芝)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도시바는 2006년 야심차게 미국 원자력업체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원전 부진의 여파로 경영난에 빠지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채무 초과에 빠진 도시바는 결국 2017년 8월, 도쿄증권거래소 2부 강등이라는 치욕을 맛봤다. 도시바, 2017년 도쿄증시 2부 강등 치욕 도요타자동차를 필두로 약 2000종목이 상장된 1부 증시와 달리, 2부는 시가총액 규모가 적고 유동성도 부족한 중소형주 약 500종목이 상장돼 있다. 2부의 시총 규모는 도쿄증시 전체(1부와 2부, 신흥기업이 중심인 자스닥과 마더스로 구성)에서 1.5%에 불과하다. 도요게이자이는 “1부 상장 지위를 잃은 도시바가 2부에서 ‘영원한 시총 톱’이라는 야유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5년 동안 유가보고서 허위 기재 없어야 복귀 도쿄증권거래소의 현행 규칙에는 2부에서 1부로 복귀하려면 '감사법인의 적정 의견'이 붙은 유가증권보고서 5년치가 필요하다. 5년 동안 허위 기재가 없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이 제안됐다는 것이다. 완화 논의가 나온 것은 10월 23일 금융청 금융심의회의 ‘시장구조전문그룹 4차 회의’라고 한다. 만약 완화 조치가 실현되면, 도시바는 이미 2018년 3분기와 2019년 3월기의 유가증권보고서에서 감사 법인으로부터 적정 의견을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1부 복귀의 길이 열리게 된다. 도시바가 가장 먼저 기준 완화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도요게이자이는 “경제산업성의 제안에 재무성도 이의가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도쿄증권거래소 ‘낙하산’ 횡행하는 자리 도쿄증권거래소가 일본 정부의 입김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많은 것은 ‘낙하산’이 횡행하는 전력 때문이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수장은 과거 일본은행 총재나 재무부 고위 관료들이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13년 도쿄증권거래소와 오사카증권거래소가 합병, ‘일본거래소그룹’이 출범했을 때 ‘이사회 의장’이라는 직책이 신설됐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이가 재무성 차관 출신인 하야기 마사카즈(林 正和)였다. 이런 점을 우려하면서 도요게이자이는 “회계 부정과 분식 회계가 드러나도 상장 폐지되지 않고, 게다가 단 5년 만에 1부로 복귀시킨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도덕을 추궁당하게 될 것”이라며 “그것을 용인하는 아베 정권도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창업자 데릴사위가 키운 스즈키 자동차
스즈키 자동차의 1대 창업주 스즈키 미치로.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 ... <김재현 기자> (이어지는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의 선구자들⑭/ 야마하 중흥의 아버지
... 가와카미 겐이치(川上源一:1912~2002). 그는 30년(1950~1977년 4대 사장, 1980~1983년 6대 사장) 동안 악기업체 야마하의 경영을 맡으면서 회사를 세계 최대의 악기 메이커로 도약하는 기반을 만들었고, 오토바이 제조업체 ‘야마하 발동기’도 창업해 사장을 겸했다. 그런 그를 ‘야마하 중흥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가와카미 겐이치는 야마하 창업자 가문 출신이 아니다. 아버지가 야마하(당시는 일본악기제조주식회사) 재건에 도움을 주면서 경영권을 이어받게 됐다. 그의 아버지 가와카미 가이치(川上嘉市:1885~1964)는 도쿄제국대학 공학부를 수석 졸업한 수재였다. 스미토모전선제조(住友電線製造: 현재의 스미토모전공)의 임원으로 일하던 가와카미 가이치에게 일생일대 기회가 찾아온 건 1927년이다. 야마하 창업자 야마하 도라쿠스 당시 일본악기제조(주)는 창업자 야마하 도라쿠스(山葉寅楠:1851~1916)가 사망하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기서 야마하 도라쿠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야마하 도라쿠스는 시즈오카현 하마마쓰(浜松)에서 망가진 오르간을 수리하는 데 성공하면서 악기 사업에 진출했다. 1889년 ‘야마하풍금제작소’를 거쳐 1897년 ‘일본악기제조주식회사’를 세웠다. 오르간 제조에 이어 1900년엔 일본 최초로 피아노 제작에 성공했다. 일본악기제조주식회사는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창업 100년을 맞은 1987년에 사명을 현재의 ‘야마하’로 변경됐다. 창업자 야마하 도라쿠스가 사망한 이후 회사는 노동쟁의까지 겹쳤다. 이럴 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가 스미토모전선제조의 가와카미 가이치였다. 3대 사장에 오른 가와카미 가이치 덕에 회사는 도산 위기를 넘겼다. 가와카미 가이치는 1950년 서른여덟 살인 장남 가와카미 겐이치(川上源一)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겐이치는 좀 색다른 ‘야마하 음악교실’이라는 경영전략을 폈다. 가와카미 겐이치의 ‘야마하 음악교실 전략’ 야마하의 전략은 이랬다. 아이가 태어나면 매달 1000엔 씩 저금을 하라고 권했다. 4세부터 야마하 음악교실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10세가 될 무렵에는 쌓인 돈으로 피아노를 구입하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야마하 음악교실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면서 야마하 팝송경연대회와 세계가요제(1970~1989년)도 개최했다. 야마하 음악교실을 열어 직접 수요를 창출하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큰 성공을 이뤘다. 일본이 지금도 피아노 보급률 1위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와카미 겐이치가 경영을 맡는 동안 야마하 오토바이와 야마하 골프클럽(골프채) 사업도 전개했다. 그가 일본 기업사에 길이 남는 유명한 말을 남긴 건 1977년이다. 65세이던 그는 “발밑이 밝을 때 굿바이”(足元が明るいうちにグッドバイ)라는 말을 하곤 사장직에서 퇴임했다. 가와시마 히로시에서 가와카미 히로시로 사장 이어져 사장 자리를 물려준 사람은 야마하 내부에서 성장한 가와시마 히로시(川島博: 혼다 2대 사장 가와시마 키요시의 동생)였다. 그러나 가와카미 겐이치는 1980년 다시 사장으로 복귀했고 1983년엔 마흔두 살의 장남 가와카미 히로시(川上 浩)를 후임 사장으로 지명했다. 가와카미 히로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일본 양궁선수권에서 우승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일본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소니에 입사해 테이프 레코더 상품화 개발에 종사했다. 1971년 일본악기제조(현재 야마하)에 입사해 아버지에게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습적 인사는 사내에서 비판을 받았고 리조트 사업 부진이 겹치면서 7대 사장 가와카미 히로시는 결국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런 가와카미 히로시는 1992년 퇴임 회견에서 “처음부터 42세의 풋내기가 야마하의 사장이라는 대임을 완수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사장은 다른 사람이 해주면 좋겠다”(最初から42歳の若輩でヤマハの社長という大任を果たせる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できれば社長はほかの人がやってくれるといいなと思っていた)고 말했다. 현재 매출 4조 7000억...악기 부문 3조 400억 130년 전 오르간 수리에서 출발한 야마하는 ‘악기의 대명사’를 넘어 음향기기, 전자제품, 오토바이, 골프 등 다양한 업군을 거느리고 있다. 야마하 경영지표에 따르면, 2019년 3월기 야마하의 현재 매출은 4374억엔(약 4조 7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악기 매출은 2819억엔(3조 400억원)이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의 선구자들⑮/ 립스틱의 원조
... 일본 립스틱의 뿌리… 화장품 회사 ‘이세한’ ‘키스해도 떨어지지 않는다’(キッスしても落ちない). 1955년, 당시로는 대담한 카피를 담은 립스틱이 일본에서 선을 보였다. 남녀가 키스를 해도 루즈가 입술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키스 미 슈퍼 립스틱’(キスミースーパー口紅)이란 브랜드의 이 제품을 만든 회사는 ‘이세한’(伊勢半, ISEHAN). 일본에서 여성용 화장품 메이커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일본의 선구자들’ 시리즈 15회는 일본 립스틱의 뿌리 ‘이세한’이다. 1955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키스 미 슈퍼 립스틱’의 지면 광고는 남녀가 금방이라도 키스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담고 있다. 출시 이후 상당한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반향을 불러왔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덕에 생산이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 되면서 대히트를 쳤다. ‘키스미’’(KISSME) 시리즈의 립스틱 인기 끌어 이세한이 화제를 불러 모은 건 이뿐 아니다. 앞서 일본 화장품업계로는 최초로 신문에 컬러 광고를 실었다. 1952년 1월 1일자 마이니치 신문 조간에 광고가 실리면서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세한은 이보다 더 앞선 1946년 ‘키스미 특수 립스틱’(キスミー特殊口紅)을 내놓으면서 처음으로 히트작을 성공시켰다. 전쟁 이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을 반영한 ‘입술에 영양을 준다’는 카피가 먹혔던 것. 상품 한가지 더. 이세한은 1970년 일본 최초로 윤기나는 립스틱인 ‘키스미 샤인 립’(キスミーシャインリップ)을 출시해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세한의 회사 연혁 페이지에는 “연간 1000만개 이상 팔려 나갔다. 이 제품은 지금도 ‘코스메틱계의 전설’로 불리고 있다”(年間1千万本以上を売り上げた。これは今でも「コスメ界の伝説」と呼ばれているという)는 설명이 올라 와 있다. 이처럼 이세한은 ‘키스미’(KISSME) 시리즈로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사진= 1952년 일본 화장품업계 최초로 신문(마이니치) 컬러 광고를 낸 '키스미' 립스틱.(왼쪽) 1955년엔 '키스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카피를 내세운 제품을 선보였다.> ... 1825년 창업…시세이도보다 업력 앞서 이세한의 창업 역사는 18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와다한에몬(澤田半右衛門)이라는 사람이 지금의 니혼바시 근처에서 염료가게 이세한(伊勢半)을 창업했다. 2025년엔 200년을 맞는 노포기업이다. 업력 역사로 보면, 일본 최대의 화장품업체 시세이도(1872년 설립)보다 수십년 앞선다. 에도 시대, 여성들은 붉은 색에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스틱이 아닌 붓으로 입술에 바르거나 문지르던 시절이었다. 립스틱의 원료가 되는 홍화(紅花)라는 꽃잎에 불과 1% 밖에 들어 있지 않는 붉은 색소를 추출, 수공정을 거쳐 염료를 만들었다. 창업자 사와다는 비단벌레(玉虫)를 뜻하는 타마무시색(빛의 방향에 따라 녹색이나 자줏빛으로 보이는 컬러)의 ‘소정홍’(小町紅)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평판을 얻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이세한은 1955년 산하에 키스미판매주식회사를 설립했고, 10년 뒤인 1965년엔 키스미판매주식회사의 이름을 키스미코스메틱으로 변경했다. 그러다 2005년 키스미코스메틱과 이세한(주)를 합병해 지금의 이세한이 됐다. 2009년 첫 여성 사장 사와다 하루코 취임 이세한의 홈페이지를 한번 클릭해보자. 화면 상단에 KISS ME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키스미=이세한’이라는 것. 이세한의 현 사장은 2009년 취임한 사와다 하루코(澤田晴子). 이 회사 첫 여성 CEO다. 그녀는 이세한의 7대 회장인 사와다 이치로(澤田一郎)의 아내다. <에디터=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