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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법칙: 당신이 당신의 주인입니다.
업의 법칙: (feat: 당신이 당신의 주인입니다) 업(카르마):불교 용어이며 한 사람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행위를 말하며, 이 행위대로 결과를 맞이한다는 인과응보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몸으로 짓는 행위(신업:身業) 입으로 짓는 행위(구업:口業) 마음으로 짓는 행위(의업:意業) 위의 3가지 업인 삼업에 의해서  우리는 죄를 짓거나 복을 짓는 행위를 한다. 즉 업의 주인은 바로 내가 된다는 말을 의미한다. 불행도 내가 만들고 행복도 내가 만든다. ​ 문득 궁금했다.  이 업의 수레바퀴가 만들어내는 몇가지  원칙이나 결과는 무엇일지? 피할수 없는, 거부할수 없는 이 법칙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보고 글로 풀어보고 싶었다. 물론 완벽한 진리나 법칙이 아닌  단지 나의 작은 생각일 뿐이다. 많은 인생을 살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수행자처럼 큰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나름 마음공부를 조금 했으며 지난 10여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통과 아픔을 듣다보니 거부할수 없는 몇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1. 탐욕을 부리면 반대의 결과를 얻는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를 집착하고 잔소리하면 자녀는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면서 부모의 기대와 달리 일탈을 하게 된다.  돈에 대한 탐욕은 배고픈 돼지처럼  헐떡이듯 살아간다. 결국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잘못된 음식을 먹어서 모든 것을 토해내야한다. 외모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강박으로 인해서 성형중독에 빠졌으며 결국 그로인해서 예전의 자연스런 미소를 잃어버렸다. 욕망은 당장 내 결핍을 채워주는것 같지만 욕망의 심리는 두려움, 불안, 어리석음등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그 에너지는 그대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그대가 가진 소중한 것을 도리어 빼앗아 간다. ​ ​ ​ 2. 결국은 이 또한 내가 만들었다. 아닌 것 같지만 결국 나의 책임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대학입시를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돈이 없어서 알바를 해야했다. 순진한 나는 다단계에 속아 넘어갔다. 그때 인생이 끝날뻔한 위기가 찾아왔다.  나는 사기를 당한것인가? 내가 그것을 결정하고 선택한 것인가? 몰랐다는 것이.. 순수하게 믿었다는 것이.. 나의 잘못된 선택을 항변해주지 않는다. 결국 그 또한 어리석은 나의 몫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게된다. 그럴 시간에 좀더 지혜로운 내가 되어야한다. 지금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나의 무지함이 내 삶의 가장 큰 장애이자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3. 용서 화해 사랑 자비는 업을 씻겨준다. 복수 탐욕 미움 질투등의 마음은  당신을 어두운 동굴속으로 안내한다. 평화로운 세상이 아닌 전쟁터로 인도한다. 당장 그 전쟁터에서 싸움을 이기고 많은 전리품을 챙기고 승리를 만끽하겠지만 그렇게 타인에게 고통을 준 만큼 결국 고스란히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용서를 하면 더이상 미워할 사람이 없다.  화해하면 더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사랑하면 더이상의 악연을 만들지 않는다. 자비로운 마음은 훌륭한 공덕이 씨앗이 되면서 내가 어둠에 빠졌을때 작은 불빛이 될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고통을 주기도하지만 나 또한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일단 내가 먼저 악업을 쌓는 행위를 멈추고 선업을 쌓을수 있는 주체자가 되자. 힘들겠지만 용서 화해 사랑 자비를 선택하자.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더이상의 악연을 놓아버리거나 비워야 할 것이다. ​ ​ ​ 4. 정신적인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라.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돈이 주는 이로움에 길들여져 살아간다. 다만 물질의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정신적인 행복이 우리를 지혜로 이끌어준다. 일평생을 살면서 자아성찰에 힘써야 한다. 마음이 불안하고 죄의식에 빠져있고 우울한 자는 아무리 많은 재산을 지녀도 그 돈을 붙들고 있을뿐 풍요롭게 쓰지도 못한다. 마음이 평온하고 작은것에 감사할줄 아는자는 작은 돈으로도 큰 기쁨을 누릴수 있다. 적법하게 돈을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사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이지만 돈의 노예가 되지말자.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면 그 업의 주인이 된다. 하루에 10분이라도 나의 어두워진 정신에게 밝은 빛을 쏘여주는 시간을 갖자. ​ ​ 5. 죄의 화살은 틀림없이 당신을 향한다. 때로는 거짓과 위선이 정의로 둔갑하기도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과 명예와 권력이 정의를 앞서는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이런 경우들이 많기도하다. 그러나 당장은 악이 선을 이기는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순간이 되면 결국 순리대로 뿌린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선하게 산 사람은 당장 고통받을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틀림없이 선업의 결과(복)를 맞이한다. 악하게 산 사람은 당장 복을 받을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틀림없이 악업의 결과(벌)을 맞이한다. 복을 받기 위해서 애써서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닌 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닌 그것이 당연함을 알기에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오늘 하루를 사는 지혜로운 내가 되고 싶다. ​ ​ 6. 호사다마(일득 일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하나를 얻게되면 하나를 잃게 된다.  하나를 잃게되면 하나를 얻게 된다.  내 삶이 그러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절망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할 많은 것을 얻는 기쁨을 누렸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취해있는 순간 생각지도 못할 소중한 것을 얻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욕망에 취하지 말아야하며 잃는 것을 아까워하며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와 만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업이 균형을 맞춰간다.  업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땅에 닿게 된다. 업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허공을 떠다닌다. 얻은 자는 초심,겸손, 베품의 미덕이 필요하다. 잃은 자는 용기, 희망,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결국은 균형을 찾게 된다. 하나가 부족하면 하나로 채울것이며, 하나가 채워지면 하나가 부족해질 것이다. 즉,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나는 그동안 작은 성과에 취해서 살아왔으며 작은 실패에 좌절하며 살아왔다. 7. 지금 이 순간 깨어나서 업의 주인이되라. 당신이 당신의 주인이다. 당신이 당신의 미래를 만든다. 과거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지나갔다. 미래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아직 모른다. 오로지 지금 당신은 그 업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행위가 있다면 이를 반성하고 선업을 쌓을수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면 지금 선업을 쌓음으로써 지혜로 내일을 밝혀가자. 당신은 그 업의 노예처럼 살아온것 같지만 다른 그 무엇이 나를 조종하는것 같지만 나도 모르게 결과물을 맞이하는것 같지만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당신은 그곳에 존재한다. 당신은 어떠한 형태로든 관여했던 것이다. 다만 무지했으며 약했으며 순진했을수도 있다. 과거에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서 다소의 고통의 시간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마음의 눈을 뜨고 깨어나자. 과거의 습관이 만들어내는 망상에 빠지지 말고 마음속의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빠지지 말고 오롯이 눈을 뜨고 지금을 다시 살아가자. 그 과정속에서 선업을 맞이하기도하고 악업을 맞이하기도 하겠지만 업의 주인임을 분명히 알고 살다보면 업을 잘 다스리는 건강한 주인이 되리라 생각한다. ​ ​ 글쓴이 :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
그녀들...(feat. 보고싶은...)
언제부턴가 연예계 아니 예능이라고 말하는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 그 예능의 중심은 리얼이었다. 옛날 사라미인 내가 어렸던 그시절의 여자 연예인은 신비주의가 먹혀야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그 대표주자가 그당시 최진실 그리고 그 다음이 전도연 심은하 그리고 전지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리얼이란 없었다 항상 그들은 베일에 쌓여 알듯 모를듯한 미소만 지어야만 했다 마치 그들은 요정인것 마냥... 지극히 내 기준에는 그랬다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했던 전도연은 카더라 통신을 무시한채 난 연기로 승부함 하면서 정말 저세상 연기를 보여주며 명실상부 칸의 여인이 되었고 ( TMI 전도연을 보며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 임을 깨달음) 심은하는 이세상 청순을 담당하며 이런 저런 과거사의 카더라통신이 눈을 뜰때쯤 돌연 은퇴하며 결혼하여 연예계는 빠이 하며 정계 사모님이 되었다 지금봐도 그녀의 비주얼은..... 후덜덜 나름 후발 주자였던 전지현 초반엔 정말 신비주의를 고수하면서 청순가련 그러나 똘끼를 보여주는 영화(엽기적인 그녀) 로 등판을 하며 대중의 궁금증을 자극 했으나 그 어떤 언급도 없었으나 그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또 TMI 엽기적인 그녀 촬영을 신도림 역에서 직접 봤다... 그때 전지현님을 보고 “와 연예인은 저래서 연예인인거구나 할만큼 흰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신도림역 플래폼에서 술취한 연기를 하던 전지현 님을 잊을 수 없음) 간혹 광고에서 파격적으로 섹시함을 어필하곤 했으나 그래도 그녀의 실제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변했고 예능은 그 변화를 주도했다 언제부턴가 예능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각본이든 아니던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 사생활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와 맞물려 전지현은 예능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그녀의 본성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 뭐 그 전에 소속사와 이런저런 이해관계때문에 그랬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른다 그저 어느날 갑자기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그녀가 편하게 나왔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에서 그녀는 이게 실제 인지 극본인지 모를 만큼 푼수를 떨어댔다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그동안의 발연기 혐의를 확실하게 벗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뭐 항간엔 전지현이 데뷔땐 발연기였으나 역시 아줌마가 되니 연기에 물이 오른거다 라는 말도 있었지만 글쎄... 나는 그녀가 지극히 어리고 어릴때, 숨겨야만 하는 연기를 했어야 했기에 발연기 논란이 있었지 않을 까 싶다 이제는 당당히 “나 원래 푼순데...” 라고 말 할 수 있는 여배우의 시대가 온거지 그렇기에 맨 마지막에 나는 맨 처음 언급했던 배우 최진실을 얘기하고 싶다.... 어린시절 힘들었던 그녀... 그러나 너무 예뻤고 너무나 끼가 많았던 그녀 연기마저 이세상 연기가 아니었던 천상 배우 그녀... 그러나 그녀는 지금 우리 곁에 없다 그렇기에 난 더더 아쉽다 밥블레스유. 예능 프로를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프로가 최진실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리 고상한 역을 맡은 여배우라도 예능에선 빙구미를 보여줄 수 있고 그 빙구미는 그 여배우를 깎아내리는게 아니라 더 호감이 될 수 있는 지금의 예능 컨셉과 대중의 시선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그녀가 믿고 좋아하던 이영자와 최화정 이런사람들과 맛있는거 먹으며 웃으며 추억을 나누며 남편욕도 하고 힘든생활도 얘기하며 방송에서라도 삶을 나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 그랬다면 그녀의 연기를 지금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확한 날짜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 그때쯤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가 하늘로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일주일전.... 설리가 우리 곁을 떠났다... 난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넘 너무 예쁘고 어린 복숭아 설리 그녀가 삶을 놓아버렸다 멘탈이 강한줄 알았는데.... 그녀의 자유분방한 그 사고가 부러웠는데... 너무나도 아프게 그녀는 삶을 놓았다 설리가 생의 끈을 놓아버린 이 때쯤 유독 나는 최진실 그녀가 생각이 났기에 그녀들을 추모하며 이글을 남긴다.....
당신 마음속의 사이비교주(feat. 고통의 시작)
당신 마음속의 사이비교주(feat. 고통의 시작) 고통(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 몸이 건강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짜증난다. 인생이 잘 풀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이 잘 안풀리면 만사가 짜증난다.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뭔가 부족하다. 몸이 건강한데도 인상을 쓰며 사는 사람이 있다. 몸이 아픈데도 감사하는 맘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인생이 잘 풀려도 맨날 화만 내는 사람이 있다. 인생이 잘 안풀려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왜 고통을 받는가? 첫번째 : 내가 원하는일이 발생하지 않았을때 두번째 : 내가 원하지 않는일이 발생했을때 아이러니 하게도 고통은 외부의 원인이 아니라 실제로는 내 맘대로 되지 않았을때 발생한다. 물론 돈이 없고 명예가 없고 좋은 집이 없고 좋은 차가 없는등의 외적 요인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그것이 고통이 근본 원인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나 역시 이 의미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만 물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충족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내면의 충족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다. 내가 생각한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움이 몰려온다. 내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내가 죽도록 밉다. 내가 꿈꿨던 사랑이 배신하면 죽이고 싶도록 싫다. 내가 기대한 친구의 모습이 아니면 배신 당한 기분이 든다. 이런 모습은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자주 드러난다. 자기 기분대로 안되면 짜증내고 화내고 드러 눕는다. 울고 불고 난리치자 엄마는 아이를 달래듯 원하는 사탕이나 장난감을 쥐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그제야 행복감을 느낀다. 고통이 사라져간다. 이런 심리적인 과정은 성인이 되어도 유효하다. 아니 더 교묘하게 발전한다. 아니 겉만 번지르르할뿐 똑같다. 나 역시 그렇다.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안되면 화나고 죽을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의 어리석음을 보게 되었다. 왜 나는 무엇이든 내 맘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 주변 사람도 내가 원하는대로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성공하고 싶다고해서 꼭 성공한단 말인가? 내가 기도하면 틀림없이 신이 다 들어줘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대로 내 아들딸이 자라줘야 하는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자 주인이라고 생각하는가? 끌어당기면 우주의 에너지가 정말 나에게 온다고 생각하는가? 주인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녕 주인(내 맘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망상을 여전히 붙들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이런 착각? 오만함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는 자기안에 사이비 교주를 모시는것과 같다. 나 역시 지금도 그렇게 살아간다. 가장 위험한 독재자요. 가장 잔인한 폭력배요. 아래를 보지 못한 눈이 없는 자요. 마음을 잃어버리고 욕망에 물든자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요. 하나밖에 모르는 어리석은자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고프다면서 괴로워하는 돼지가 있고 부족하게 먹어도 행복하다면서 숟가락을 놓을줄 아는 멋쟁이가 있다. 즉 고통의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면이다. 그대의 내면에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고통이 되기도 하고 행복이 되기도 하다. 이 단순한 원리를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며 살아왔다.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달성해야 그것이 행복이며 내 삶의 목적인양 헐떡이며 달려왔다. 아니 삶의 미로에 갇혀서 오늘도 분주할 뿐이다. 얼굴은 인상을 쓰고 입술은 잘근잘끈 씹으며 주먹은 상대를 때릴기세로 거칠게 살아간다. 우리는 왜 고통을 받는가? 첫번째 : 내가 원하는일이 발생하지 않았을때 두번째 : 내가 원하지 않는일이 발생했을때 고통에서 해방하기 첫번째 :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기 두번째 : 내가 원하지 않는일이 발생할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이 말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왜곡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삶이 다소 힘들고 괴로울지 몰라도 최소한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저항할수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주어질 뿐이다. 나의 한낱 생각으로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것 자체가 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할수 있겠는가? 김영국 행복명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