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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일본에서 찾아온 뮤지컬 팬들

<사진= 뮤지컬 배우 로니 김철호(왼쪽)와 박진우. 대학 동기인 둘은 오랜 친구 사이다.>

<사진= 박진우가 일본 팬들에게 CD선물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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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초년병 시절, 사무실이 아닌 외부에서 가장 먼저 통성명을 나눈 연예인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였다. 동기 둘과 함께 문화부 고참 선배를 따라 갔다가 최씨의 공연을 보고 가벼운 맥주 뒷풀이를 함께 했다. 그땐 뮤지컬이 지금처럼 인기 분야도 아니었고, 최정원씨 역시 지금과 같은 최정상급도 아니었다. 1995년 겨울의 일이다.

당시 몸 담았던 회사가 매년 한국뮤지컬대상이라는 행사를 개최했기에 뮤지컬 배우들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지 않다. 요즘엔 뮤지컬 배우들의 안방 나들이도 많아진 게 사실이다. 연예 프로그램, 드라마 등에서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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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뮤지컬 전용 무대가 아닌 ‘작은 공간’에서 팬들과 만나는 배우들도 있다. 4월 2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카페 ‘삼청동4차원’에서 마주한 두 배우도 그랬다. 뮤지컬 배우 겸 가수 로니(Ronnie) 김철호와 박진우(39)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을 다녔고, 전공도 같고, 게다가 뮤지컬로 뭉친 오랜 ‘절친’(친한 친구)이다.

한옥카페 ‘삼청동4차원’에선 매주 토요일 마당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주인장 류태영 대표가 가수들을 섭외하고, 가수들은 무료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공연을 펼친다. 이날은 로니 김철호와 박진우가 뮤지컬 노래로 색다른 무대를 꾸몄다. 로니 김철호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섬세하다면, 박진우는 경쾌하고 흡인력이 강하다.

로니 김철호와 박진우는 ‘참 예뻐요’(창작뮤지컬 ‘빨래’ 중), ‘나를 태워라’(뮤지컬 ‘이순신’ 중)
‘지금 이 순간’(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중) 등의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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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날 박진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일본 여성 관객 두 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자는 공연 전 50대의 이 여성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요코하마에서 왔다는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공연 마지막 무렵, 박진우가 ‘나를 태워라’의 <먼 옛날 아주 먼 옛날 남쪽 해안에 거북이가 살고 있었네~>라는 도입부를 부르자 마유미씨가 작은 목소리로 기자에게 물었다.

“저 노래 제목이 뭐죠”(마유미씨)
“굳이 붙이자면 ‘오레오 모야스’(おれをもやす: 나를 불태우다) 정도 되겠죠”(기자)
“아 그렇군요. 듣고 보니 그런 분위기가 좀 나는 것 같아요.”(마유미씨)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마유미씨는 앉아서 차분하게, 유코씨는 신이 난 듯 일어서서. 마유미씨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가방에서 하얀 색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찍기 시작했다.

공연 도중 ‘몰래 카메라’ 같은 순간도 있었다. 막간의 토크 타임, 박진우가 아무것도 모른 체 관객을 향해 “가장 멀리서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라는 멘트를 날렸다. (기자가 옆에서 귀띔을 해주자) 마유미씨와 유코씨가 손을 들며 “요코하마”라고 대답을 했다. 박진우의 입에서 “오~”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냥 한국 관광을 하다 우연히 들렀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프라이즈 만남’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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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반 공연이 끝이 났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하는 박진우와 일본 손님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순간, 박진우는 깜짝 놀랐다.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그냥 이곳 북촌 일대를 지나가다 공연에 들른 게 아니었다. 박진우는 자신의 공연 내용이나 일상을 ‘인스타’에 자주 올리는데, 마유미씨와 유코씨가 그걸 보고 찾아 왔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박진우의 입에서 웃음과 놀라움이 섞여 나왔다. 큰 무대의 환호에 익숙한 그이지만, 일본 팬들 앞에서는 수줍은 배우였다.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공연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 로니 김철호와 박진우, 두 친구의 공연에 일본인 두 친구들은 행복해 보였다. 환해진 표정의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좋았어요, 좋았어요”라며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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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이든 일본 팬이든, 이런 팬들 하나 하나가 모여 크게는 ‘팬덤 현상’을 불러 오는 법이다. 팬덤은 장소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팬덤은 경제와도 직결된다. 북촌 일대는 상권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눈에 띄게 공실도 늘었다.

이런 기대를 해본다. 공연을 즐겁게 본 마유미씨와 유코씨가 북촌 일대 상가에서 ‘더 즐겁게’ 지갑을 열지는 않을까. 다음 방문 때는 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을 방문할 지도 모를 일이다.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사전 기자에게 “우리 얼굴 정면 사진은 SNS에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름 역시 가명이다.)

뮤지컬 ‘삼총사’의 히어로 박진우는 5월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안나 카레니나’(5월 17~7월 14일)에서 스티바 오블론스키 역을 맡았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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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2년 10월 14일 일본 첫 철도 개통 10월 14일은 일본 철도의 날이다. 도쿄 신바시(新橋)와 요코하마(横浜)를 잇는 일본 최초의 철도 개통(1872년 10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1825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이래 일본에 철도가 들어서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맛봬기’였지만 그 이전에 일본인들은 철도를 이미 구경했다. 1865년 글로버 저택(Glover's house)으로 유명한 영국 무역상 토마스 글로버(Thomas Blake Glover)가 나가사키 외국인 거류지 해안가에 약 600미터의 선로를 깔고 영국제 증기 기관차와 객차 2량을 선보였다. 영업을 위한 운전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최초로 철도가 달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인근에는 철도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일본 철도의 탄생은 한 남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JR도쿄역 광장에는 일본 최초의 철도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인공은 ‘일본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 1843~1910)다. 원래 동상은 2007년 건립됐다가 도쿄 역사(驛舍) 복원 공사로 철거됐다. 그러다 10년 만인 2017년 그의 고향(야마구치현 하기시) 사람들의 끈질긴 청원으로 재건립 됐다. 그에 앞서 2016년 10월 14일 야마구치현 하기(萩)시 역 광장에도 이노우에 마사루의 동상이 들어섰다. 도쿄역과 하기시역 동상의 차이점은 도쿄는 노년 시절, 하기시는 젊은 시절을 형상화 했다는 것. 일본의 선구자들 시리즈 9회는 이노우에 마사루 편이다. 막부 말기 영국 밀항 ‘조슈 파이브’ 중 한 명 막부 말기인 1863년, 조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번의 다섯 사내가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영국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일본 역사는 그들을 ‘조슈 파이브’라고 부른다. 다섯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훗날 일본근대의 정치와 산업을 바꾸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면면은 이렇다. ①우리가 잘 아는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②초대 외무대신이 되는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③조폐 국장에 기용되면서 ‘조폐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엔도 긴스케(遠藤謹助) ④ 공부경(工部卿)자리에 오르면서 ‘일본 공학의 아버지’로 지칭되는 야마오 요우조(山尾庸三). ⑤ 마지막으로 ‘일본 철도의 아버지’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다. 이중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는 다음 해 죠수번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곧바로 귀국했다. 엔도 긴스케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중도 귀국했다. 반면, 이노우에 마사루와 야마오 요우조는 끝까지 남아 유학 생활을 마무리 했다. 영국 유학 후 철도국장으로 철도 개통 총지휘 이노우에 마사루에 좀 더 집중해 보자. 그는 런던 대학의 윌리엄슨 교수 집에 하숙하면서 공부했다. 광산과 철도 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운 후, 밀항 5년 만인 1868년 귀국했다. 이노우에 마사루는 이듬해 메이지 신정부에 등용, 철도 사업과 관련된 영일 회견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철도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철도 간부로 지명, 1872년엔 일본 최초의 신바시~요코하마 철도 개통을 총지휘했다. 당시 일본 철도는 외국 초빙 기술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877년 철도국장에 기용된 이노우에 마사루는 오사카에 일본인기술자양성소를 세웠다. 이후 일본의 독자적인 힘으로 교토(京都)~오쓰(大津) 구간이 개통됐다. 1889년 신바시~고베 구간이 개통됐고, 그 이듬해인 1890년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청 장관으로 승진했다. 그 무렵 자본가들이 앞다퉈 사철(사설철도) 건설에 눈독을 들였다. 그걸 본 이노우에 마사루는 “자본가들은 이익에만 목적이 있다. 철도는 국가가 경영해야 한다”며 자본가들과 격하게 대립했다. 이런 일이 화근이 되어 그는 1893년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퇴직 후 유럽 철도 시찰하며 옛 은인 다시 찾아 퇴직 7년 후인 1910년.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원 총재로부터 유럽 철도시찰 의뢰를 받았다. 남만주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유럽에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옛 은인을 찾는 일. 영국 유학 시절 몸을 의탁했던 윌리엄슨 교수의 집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난 윌리엄슨 대신 그 아내와 40년 만에 재회했다. 그 기쁨도 잠시였다. 시찰을 하고 귀국하던 도중, 이노우에 마사루는 병으로 쓰러졌다. 살아서는 일본 땅을 밟지 못했다. 1910년 8월 2일의 일이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3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의 선구자들⑧/ 100엔숍 빅4
... ... 불황과 함께 찾아온 100엔숍 일본 아이치현 가스가이(春日井)시에 일본 최초로 100엔 균일 점포가 등장한 건 1985년이다. 100엔숍이라고 이름 붙인 이 점포는 불황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를 맞으면서 헤이세이 불황(平成不況)이라는 이른바 ‘잃어 버린 10년’(失われた10年)의 터널 속으로 빠져 들었다. 구체적으로 버블 붕괴는 주식과 토지의 거품이 빠진 걸 말한다. 이에 일본은 거품 경제의 파국을 맞으며 긴 디플레이션 불황에 빠져 들었다. 그러면서 시장의 소비 패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가 저하되고, 저렴한 상품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한 아이템이 100엔숍이었다. 다이소-세리아-캔두-왓츠 '100엔숍 4인방' 다이소산교(大創産業). 100엔숍의 대표적 브랜드인 다이소(ダイソー)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매출 규모로는 다이소 다음으로 세리아(セリア: seria), 캔두(キャンドゥ: Can☆Do), 왓츠(ワッツ:watts)가 있다. 다이소산교를 창업한 야노 히로다케(矢野博丈, 76) 회장은 일본 100엔숍의 선구자 격이다.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1943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노 히로다케의 본명은 쿠리하라 고로(栗原五郎). 아버지는 의사였다. 전시(戰時)에 중국 병원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일본이 패전하자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인 히로시마현으로 돌아왔다. 의사 집안치고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야노 히로다케 회장은 “의사의 가정이라면 부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버지는 가난한 환자에겐 치료비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덕분에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시사매체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 야노 히로다케는 고교 시절 복싱에 심취했다. 고3 때인 1964년에는 도쿄 올림픽 밴텀급 예비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복싱 탓에 공부와는 멀어졌다고 한다. 대학은 쥬오대(中央大) 토목공학과 야간부로 진학했다. 이름과 성 다 바꾼 다이소산교 창업자 결혼 후 처가에서 경영하던 양어장 사업을 ‘말아먹은’ 야노 히로다케는 도쿄로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백과사전 판매원으로 뛰었지만 영업사원 30명 중 실적은 꼴찌. “운은 없지만 능력은 있다”고 믿었던 야노 히로다케가 야노상점(矢野商店)이라는 이동 트럭 잡화점을 연 것은 1972년이다. 야노(矢野)는 아내의 성이다. 그는 장사를 위해 쿠리하라(栗原)라는 성을 야노로 바꿔 버렸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뭔가 스스로 장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쿠리하라’보다는 두 음절의 심플한 야노 쪽이 기억하기 쉽고, 친해지기 쉽다고 생각했다.> (원문: 何か自分で商売すると決めていたので、「クリハラ」より2音でシンプルな「ヤノ」のほうが覚えてもらいやすいし、親しみやすいと考えたからだ。) 다이소(大創)로 회사 이름을 지은 이유 아버지 또한 그의 그런 결정을 존중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술 더 떴다. 이름까지 바꿔 버렸다. 그는 “나중에 나는 고로라는 이름도 바꾸어 버렸다”(後に私は、「五郎」という名前も変えてしまう)며 “‘고로’ ‘고로 짱’에는 경영자로서의 위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명가가 히로다케(博丈)로 지어 주었다”(「ゴロー」「ゴロちゃん」では経営者として威厳に欠けると思ったからだ。姓名判断の先生に「博丈」と付けてもらった)고 했다. 야노상점을 운영하던 중, ‘싼 게 비지떡’(安物買いの銭失い)이라는 불만이 들려왔다. 체계화된 회사 시스템이 필요했다. 야노 히로다케는 1977년 가게를 법인화했다. 그럴듯한 회사 이름도 필요했다. 100엔짜리 장사로는 대기업이 된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부부의 꿈은 컸다. ‘연매출 1억 회사를 만들자’(年商1億の会社を作る)는 목표를 세웠다. ‘언젠가 큰 회사(大きな)를 만들고 싶다’(創りたい)는 생각을 담아 대창(大創)이라고 지었다. 대창을 일본어로 읽으면 '다이소'다. 일본 전역에 3270개 매장 보유한 비상장사 1987년 12월 100엔숍 매장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다이소는 현재 일본 전역에 3270개의 매장을 갖고 있으며, 취급 상품 수는 7만개에 달한다. 매출액은 4548억엔(4조 9832억원)을 웃돈다. 후발 주자인 세리아, 캔두, 왓츠가 상장사인 것과는 달리, 다이소산교는 비상장사의 현금 부자로 알려져 있다. 야노 히로다케는 2018년 3월, 사장직을 둘째 아들에게 물려주고 회장직으로 물러났다. 장남이 경영을 이어받지 않은 이유는 대학 의대 교수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일본 다이소는 한국 다이소와는 별개의 회사다. 한국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산업은 2001년 다이소산교의 지분을 일부 투자 받아 다이소아성산업으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간판도 다이소로 바꿔 달았다.) 2위 기업 세리아(seria)...이름 의미는 '성실함' 일본 100엔숍 매출 규모 2위는 세리아(セリア: seria)다. 기후현에 본사를 두고 있고, 1985년 설립됐다. ㈜산양에이전시(山洋エージェンシー)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회사는 2003년 4월 지금의 ㈜세리아(セリア)로 상호 변경했다.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세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마지메나’(まじめな)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마지메나’는 성실함을 의미한다. 창업자는 가와이 히로미츠(河合宏光, 71). 고교 졸업 후 가업인 세탁소를 경영하다 1985년 100엔숍을 오픈했다. 세리아는 현재 일본 전역에 1506개 점포(취급 상품수 2만 개)를 갖고 있고, 매출은 1591억엔(1조 7432억원)에 달한다. 세리아의 간판에는 영어 세리아 글자 앞에 ‘컬러 더 데이즈’(Color the days)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일상을 물들이자’라는 이 컨셉은 100엔숍 답지 않은 100엔숍 추구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ᐅ상품수를 줄이고 ᐅ실용성 위주 제품을 판매하며 ᐅ잡동사니가 널부러진 이미지를 불식, 매장의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다. 3위 기업 캔두는 ‘감동’(칸도우)에서 따와 100엔숍 3위 기업인 캔두(キャンドゥ: Can☆Do)는 도쿄를 기반으로, 1993년 설립됐다. 사명은 ‘100엔으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경영 취지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 손님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이다. 회사 이름 캔두(Can☆Do)는 아이 캔 두잇(I can do it)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경영 취지 속 단어인 ‘감동’(感動)과 관련이 있다. 감동을 일본어로 칸도우(カンドウ)라고 하는데, 이를 캔두(キャンドゥ: Can☆Do)로 연결시킨 것이다. 캔두는 다이소와 세리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 전역에 100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매출액은 707억엔(7746억원). 오사카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왓츠(watts) 가장 늦게 뛰어난 후발 주자 왓츠(ワッツ:watts)는 오사카에서 1995년 출발했다. 매장은 1160여 곳, 매출은 494억엔(5412억원) 규모다. 취급 상품 수는 세리아, 캔두와 비슷한 2만 개 수준이다. 100엔숍이 등장한지 30년, 매장들도 변신을 꾀한지 오래다. 100엔 균일이라는 간판을 떼거나, ‘탈100엔’을 추구하고 있다. 싼 값으로는 안된다며 300엔짜리 제품을 판매하고, 매장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등 신선함으로 승부하고 있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이재우의, 야쿠시마 B컷 에세이’/ 데칼코마니
재팬올이 ‘야쿠시마 사진전’ 개최(5월 31일~6월 13일, '삼청동 4차원') 사전 작업으로, ‘야쿠시마 B컷 에세이’를 연재 중입니다. 야쿠시마 사진 한 장에서 뽑아올린 단상(斷想)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저걸 찍어? 말어?” 야쿠시마숲을 오르다 고민에 빠집니다. 폭포 풍광이 너무 멋져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다들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쏟아지는 비. 우산을 옹기종기 쓴 사람들은 카메라를 방수팩에서 꺼내기가 망설여집니다. ‘에라~ 모르겠다’ 서너 컷 찍었다가는 물먹은 카메라가 되기 십상이니까요. 그래도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사진 찍기를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땐, 굳이 캐O. 니O, 올OOO같은 카메라를 꺼내진 마세요. 대신 ‘데칼코마니’(Decalcomanie)라는 카메라를 가동시켜 보세요. 비에 젖지도 않고 노출도, 초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됩니다. 셔터는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누릅니다. 가슴이 원하는 피사체를 수동이든, 자동이든 마음껏 찍어도 됩니다. 배터리가 무한대이니까요. 야쿠시마를 기계로는 담지 못해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담아 올 수 있습니다. 야쿠시마를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가슴에 불현 듯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헤집고 간 자리에 야쿠시마가 나타납니다. 그 모습과 선명함이 실제 야쿠시마와 포갠 듯 일치합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이재우 기자,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인>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